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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으로 산다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1:23
조회
523
자존심 없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인생은 자존심으로 산다. 그래도 곱씹어 보면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생존의 경쟁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자존심은 무너지기 일쑤다. 알량한 자존심은 버려야 산단다. 자존심 타령은 상전의 눈치 보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본주의 체제 부적응자의 사치스런 헛소리로 전락하였다. 약자에게는 아부하고 타협하는 처신술만이 삶을 그르치지 않는 능사요, 살아가는 지혜가 된다. 약자는 강자의 횡포에도 맞서기 어렵고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조아리기를 강요당한다. 대중의 혼을 쏙 빼간다.

주변에서 알량한 자존심 내세우는 이 치고 제대로 부유하게 잘 사는 모습을 아직까지 제대로 본 바 없다. 자존심 있고 성실하게 일 잘하는 그런 이들 중에 부자는 없다. 부자가 되려면 자존심 꾹꾹 눌러 뱃속 밑에 집어넣거나 자존심 없는 인생을 찬양하고 즐겨야 한다. 조금은 엉겨 붙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엉기지 않고 돈 벌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정경유착, 관언유착 등 무수한 유착 없이 돈 번 사람 못 봤다.

변호사가 의뢰인과 만나 장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건 걸고 수임하잔다. 로비 해달란다. 눌러둔 자존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장난치나. 앞으로 변호사 욕하지 말라고 한소리하고 온갖 푸념 떤다. 그런 이에게 하는 법조비리의 수임 현실에 대한 푸념은 길게 돌고 돌아 그러니 강자 탓하며 강자에 엉겨 값없이 살지 말라는 거로 맺는다. 결국 꾸짖고 내보낸 꼴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그냥 의뢰인의 기대를 좇아 적당히 유연성을 발휘하며 같이 엉겼으면 돈 좀 버는데. 사건 하나 없이 수개월 주구장창 허송세월하며 마누라 푸념 듣고 남몰래 스트레스 받느니 좀 하면 어때서. 모든 에너지를 돈 버는데 집중하자 맹세해도 삼일천하.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돈 벌자 주문을 외워야 제 버릇 고칠까 웬만해서 어려울 것 같다.

참으로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강자의, 강자를 위한, 강자에 의한 체면을 중시하는 그런 자존심 말고(그런 알량한 자존심이야 버려야 사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 말이다. 이건 지켜야 사는 것이다. 걸고 지켜야 한다. 뭇 사람들은 그런다. 자존심을 지키는 인생을 존경하나 그 자신은 그렇게 따라 살기 어렵단다. 그런 사람 존경하면 따라 살게 된다. 다만 돈 못 번다.

지배적이고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강자 앞에서 머리 숙여 굴종을 강요당하는 피말리는 긴장된 싸움의 현장에서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일로 매진해야 우리가 산다.

 변호사는 직업적 자존심으로 살아야 한다. 형사 피의자를 위한 변호권은 변호사직을 걸고 지켜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원칙에서 추호도 동요하거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 정신력이다. 겁을 집어 먹는 순간 끝이다. 한 번 물러서면 바보 된다. 강자는 가지고 논다. 밀리면 변명하기 십상이다. 약자를 위해 강자 앞에서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고 약자에게 실리가 생길 것이라 변명치 말자. 겁을 집어 먹은 약자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용기를 불어넣고 강자 앞에 결코 쓰러지지 않는 역사와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을 찬양해야 한다. 약자를 위한 성실한 자세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서로 마음과 몸이 엉기어 난관을 뚫고 포기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낙관과 긍정의 힘을 체험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주체로 우뚝 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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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강자의, 강자를 위한, 강자에 의한 체면을 중시하는 그런 자존심 말고,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 말이다."
 



 그런 현장에서 항상 뇌리를 스친다. 눈물 많고 억척스런 어머니의 푸념어린 말씀들, 어릴 적 귀 닳도록 들었던 식상한 말씀. ‘죽으라는 법은 없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이 험한 세상에서 두려움과 초조함을 물리치고 마음을 뭉치고 난관을 극복한 철학이다. 한줄기 빛과 소금과 같다.

마누라의 푸념이 무섭고 주눅 든다. 그 사랑에 일편단심으로 바쳤고 바치고 있건만….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돈 벌라, 일찍 들어와라, 애들과 자주 놀라, 몸 챙겨라” 등등. 허나 자존심으로 살고자 하는 내게 마누라의 그런 얘기는 가당찮은 푸념으로만 들린다. 그렇더라도 마누라는 항상 나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는 또 다른 어머니인데, 사랑 앞에 알량한 자존심 타령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 그래도 필경 인생은 자존심으로 산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