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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이오샤샤 하이야”(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6:09
조회
611
지난 10월 4일부터 8일까지 오키나와를 방문하였다. 이번 일정의 대부분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를 제대로 보고 듣기 위해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사이의 평화 교류회 행사도 가졌고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들을 둘러보며 기지 주변의 오키나와 주민들, 평화 운동가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3박 4일 동안 오키나와에 대한 향학열에 불타 많은 일정들을 소화해 나가며 호기심을 풀어나갔다. 바쁘게 움직이며 의문들을 풀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오키나와에 흠뻑 빠져들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그날그날의 감흥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하루하루 술잔을 비우며 뒤풀이를 이어나갔다.

처음 방문한 오키나와 방문에서 보고 느낀 벅찬 감동의 여운은 “이오샤샤 하이야”로 들려오고 있다. “이오샤샤 하이야”는 오키나와 전통의 춤과 노래, 연주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오키나와의 전통 북춤 공연에서 무대의 춤꾼들이 전투적으로 북을 치며 “이오샤샤”를 선창하였고 관객들은 “하이야”로 흥을 돋구었다. 오키나와 전통 노래와 연주에서도 고음의 경쾌한 후렴구로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반주에 맞춰 “이오샤샤 하이야”를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오샤샤 하이야”와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놀이의 한판은 두고두고 인상 깊게 남아있다. 며칠 전 딸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흥겹게 “이오샤샤 하이야”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키나와로부터의 감동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어른, 아이 모두에게 한결같다.

 

071114web01.jpg “이오샤샤 하이야”는 오키나와 전통의 춤과 노래, 연주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 그들은 삽시간에 어우러져 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들 한다. 한번 만나면 다 형제라는 오키나와 속담도 있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음주에 가무로 이어져 형제와 같은 정을 나눌 정도로 정을 중시하였다. 우리와 진한 정서적 만남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여 일본 본토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오키나와 전통 무용과 음악 속에 대동의 한판으로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같이 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하나 되는 큰 감흥을 얻었다.

류큐 왕국은 19세기말 일본에 정복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오키나와 말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대동아 전쟁의 목적 아래 오키나와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기지가 되었다. 오키나와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조선인들도 강제 징용되었다. 오키나와는 일제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의 출격 기지가 되었고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전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과 함께 동굴에서 옥쇄(집단자결)를 강요당했다. 오키나와인 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도, 오늘날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옥쇄를 왜곡 기술한 고교 역사 교과서에 항의하는 10만여 명이 넘는 오키나와인 들의 항의집회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와 닿았다.

우리와 오키나와는 미군 주둔 문제에 대하여도 동병상련의 처지다.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평택 주민들의 투쟁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과 똑같았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후텐마 비행장의 대체시설로 헤노코 비행장의 건설 강행 역시 미국의 해외 미군기지 재편의 일환이었다. 오키나와의 헤노코 신기지는 탄약고, 유류저장고, 해상 비행기지가 한 기지에 일체화되어 확장 건설될 예정이었다. 헤노코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발진기지로 후방 보급기지로 기능할 것이다. 미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오키나와 민중들의 삶과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오키나와와 함께 연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현장은 평화를 향한 의지와 실천으로 가득 찼다. 헤노코 기지 건설의 상징적 인물로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금까지 기지건설현장을 감시하고 있는 “가요” 아저씨의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투쟁열정을 잊을 수가 없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리본을 그 곳 미군기지 철책에 달았다.

한국, 오키나와, 괌을 비롯한 미군이 주둔하는 아시아 지역 민중들의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하 요우이치” 오키나와 기노완 시 시장은 우리들을 만나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를 향한 건설적 합의가 연이어 도출되어 그 이행과정에 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이 추진되는 등 한국과 오키나와, 그리고 괌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는 그 존재 이유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기노완 시장은 후텐마 비행장 기지를 없애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후텐마 비행장으로 인한 소음문제와 국제대학 헬리콥터 추락 사고와 같은 추락의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고통 해소를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후텐마 미군기지의 폐쇄와 조속한 반환을 비롯한 미군기지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를 위해 시정을 펼치며 반기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기노완 시청 옥상에는 미군 헬기에서 내려다  보이도록 크게 쓰여진 “DON'T FLY OVER OUR CITY! U.S. HELOs OUT NOW!" 라는 글귀가 있다. 기노완 시장의 시정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인상 깊었다.

 

 05122808.jpg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리본을 그 곳 미군기지 철책에 달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미군기지 없는 평화를 향한 오키나와와 우리의 뜻이 같다. 함께 연대해야 승리의 길을 열 수 있다.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현장방문을 통해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의 발전을 위한 많은 교훈을 얻었다.

미국의 군사패권 유지를 위한 전략은 어느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우리는 물론 오키나와 민중들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애호하는 모든 민중, 나아가 전 세계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은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유지를 강요하며 한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오키나와 민중들의 평화를 향한 염원과 우리들이 추구하는 반전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열망이 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언어와 사는 곳이 달라도 오키나와 민중들과 우리는 미군기지 없는 오키나와, 미군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반전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투쟁의 길에 오키나와 민중들의 미군기지 없는 오키나와를 실현하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고 오키나와 민중들의 미군기지 철폐를 위한 투쟁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위기가 사라지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함께 연대하는 길에서 오키나와 민중들과 “이오샤샤 하이야”를 노래 부르고 싶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