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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회복, 사람이 희망이다 (김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6:02
조회
334
올해 2007년 10월에 인권 회복 사례 2가지가 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다. 유방암 투병 이후 신체검사에서 2급 장애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역되었다가 외로운 싸움을 통해 시행규칙의 개정과 복직 가능성을 얻어낸 예비역 중령 피우진씨의 경우와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다 제적된 후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이겨 학교로 돌아갔던 현재 서울대학생인 강의석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승소한 사례가 그것이다. 이런 성공 사례는 인권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사례를 접하며 필자는 인권의 회복에 대한 희망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의 외로운 노력, 그리고 희망의 이루어짐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평소 좋아하던 시 구절들과 명언들을 그러한 사례 속에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남들과 다른 의견이라고 여겨져도 굽히지 않는 소신, 그것을 위해 벌이는 외로운 투쟁, 결국은 이루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자세로 생각이 이어진다.

우선, 필자는 피씨와 강씨가 지녔던 소신과 그것을 위한 외로운 싸움에 대해 생각한다. 피씨의 경우는 유방암 진단이 나와 절제술을 받은 후 수술 경과가 양호하고 완치 가능성이 90% 이상이며, 그 후 3년간의 체력검사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았고 수술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현역으로 복무하는데 아무런 장애 사유가 없음을 주장하며 육군본부 전역심사위원회에 인사소청을 냈으나 기각된 후, 국방부 장관에게 소송을 냈고, 그 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퇴역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강씨의 경우는 대광고 3학년때 “모든 학생은 예외 없이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학교 방침에 대해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20조)는 짧고도 또렷한 소신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 한 달 만에 제적되었고, 그 후 학교를 상대로 법원에 낸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대에 진학한 강씨는 “학교가 종교 행사를 강요해 헌법에 보장된 종교 및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학교와 서울시에 손해배상청구를 냈고 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한번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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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중령과 강의석씨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사례는 조각가 로댕이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깊고 의연하고 성실하십시오. 여러분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그 발표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인간에게 깊은 진실인 것은 만인에게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한 사람이 지닌 깊은 진실, 그 확고하면서 정의로운 소신은 결국 만인에게도 진실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신 때문에, 더욱이 한사람의 의로운 싸움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는 권력에 의해, 수없이 상처받아도 꿋꿋이 버틴 그 외로운 투쟁, 그리고 절망을 넘어 그들이 지닌 희망에 대해 생각하며 고정희 시인의 시 구절도 떠올리게 된다. 건강함을 증명하고자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피중령이 벌인 20여 일간의 1인 행군, 그리고 어린 고등학생이었던 강군이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헌법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외다?!”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지속적으로 벌인 1인 시위, 그 하루도 쉽지 않았을 서럽고 외로웠을 그들의 투쟁에 대해 숙연히 생각한다.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그리고, 그러한 꿈은 결국 길이 된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하듯, “좋은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와 있는 좋은 삶,” “이루어놓은 작은 기쁨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으로
세상 힘겨울 때
우리 속에 이루어놓은
작은 기쁨들을 봐
. . . . . .
저 아득하고 먼
아직과 이미 사이를
내가 먼저 좋은 세상 이루어내는
우리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이제 우리는 그들의 외로운 투쟁에 손잡아 주었어야할,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에서 그러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이제라도 “마주잡을 손”으로 다가가야 할 우리에 대해 생각하자. “어느 한사람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을 때는 우리 모두의 인권도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는가? 인권을 말함은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이 외롭게 당한 억울한 고통이 함께 했어야 할 우리 모두의 고통이었음에 대한 고백이며, “마주잡을 손”으로 다가가고자 연대하겠다는 다짐 아닌가?

인권은 참으로 진실 된 소신과 희망이다. 우리 모두가 “깊고 의연하고 성실”하게 추구할만한 보편적인 가치이며,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기준이자 가르침이다. 그리고, 인권의 회복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서로 서로가 있음에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의 어려움에 대해 두 눈을 감고 온갖 허상을 향해 손짓하는 이 시대에 인권 회복을 위해 손잡는 연대만큼 절실히 요청되는 도덕률이 또 있을까? 희망을 갖기에 사람이며, 사람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게 하는 친구, 곧 연대이다.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