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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갔다가 관광에 처하다 (이창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58
조회
294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올해 추석연휴에는 태국여행을 계획했다. 우리 부부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장인, 장모님도 모시고 갔다. 평소에도 놀아주지 못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신혼여행을 근사하게 가보지도 못한 아내와 모처럼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좋은 여행이 될 거야...’

태국의 첫 인상은 스산했다.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고가도로 위에서 본 콘크리트 건물들.

다음날부터 우리 가족을 포함한 열두 명의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버스를 타고 방콕과 파타야를 오가며 이곳저곳 관광지를 다녔다. 장인, 장모님은 의외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다니셨다. 아이들도 좀 피곤해 보였지만, 정작 가장 힘이 딸린 것은 우리 부부였다. 밤 12시까지 <관광>을 하고 다음날에는 새벽 6시 30분에 모닝콜을 해서 다시 새로운 <관광>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닌 길에 참 많았던 고가도로들은, 수도 방콕과 휴양지를 연결하고, 그 밑에 얼기설기 지어진 양철집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관광객들을 태국의 여기저기로 효율적으로 실어 날랐다. 아마도 국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사회적 인프라를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관광수입을 챙기기 위한 좋은 선택이었겠지. 관광객들은 태국 사람들의 삶은 전혀 접촉할 필요가 없고 유명 관광지를 오가기만 하면 되니까.

밤 11시에 안마를 받으러 가는 다른 일행들을 뒤로 하고 우리 부부와 아이들만 픽업트럭을 개조한 택시의 짐칸(승객석)에 타고 숙소로 이동한 일이 그나마 태국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것이었다.

우리 부부가 생각한 <여행>은, 에머랄드사원 같은 곳에 가면 휘~둘러보고 으레 정해진 장소에서 사진 찍고 나오기 보다는, 한나절을 거기 앉아서 태국의 역사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벽을 꽉 채운 벽화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을 들으며 그곳의 기운에 젖어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녁 6시쯤이면 숙소에 돌아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과 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한비야씨처럼 몇 달씩 머물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살지는 못해도, 태국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그런데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이 사실은 <관광>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인솔한 가이드는 말했다. “3일 동안 여러분은 방콕과 파타야를 알짜배기로 다 돌아본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태국에 여행 오지 마세요.”

 

07101702.jpg여행은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르페르



 돌아와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관광> 오는 외국인들도 고궁을 둘러보면서 내가 태국에서 <관광>한 것처럼 다니겠지. 내가 겉돈 것처럼, 그들도 겉돌고 돌아가겠지. 그리고는 한국을 얼마간이라도 경험했다고 생각하리라...

여행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삶을 접해 보기. 그래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나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기. 그러려면 그곳의 보통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어야 할 테고, 쳇바퀴 같은 삶이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고 동남아를 다니면서 마련해 놓은 여행의 방식이 이런 식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이렇게 <쉬고>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재충전이 되는지

어쩌면 이런 모습은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고, 또 다른 목표가 생기면 뒤돌아 볼 새도 없이 또 달려가고... 어른들이 그렇게 살고, 학생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여행하려면 평소에 제대로 살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다음 기회에는 진짜 <여행>을 갈 수 있게 조심해야겠다. 또 <관광>에 붙잡히지 않도록.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