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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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즘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증권업계는 말을 곧이곧대로 하지 못하는 동네다. 주가가 내려갈 것 같을 때는 조심스럽게 “단기 조정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 주가가 오를 거 같을 때도 “증시의 하방 경직성을 높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꼬아서 말한다. 돈이 걸려 있는 문제라 까딱 잘못했다가는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다보니 생긴 습성일 것이다. 영어나 한자어가 난무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텐데, 좀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현학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증권업계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라고 부른다. 에둘러 표현하려고 한 건지, 현학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천안함 사건이건 연평도 피격 사건이건 모두 지정학적 리스크라고 부른다. 여기서 리스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바로 그 리스크다. 7천만 겨레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리스크를 테이킹’하면 한몫 건질 수 있는 수많은 리스크 중의 하나로 부르는 걸 보면, 금융시장이란 한편 냉정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지하의 카지노에서 카드 게임에 열중하는 갬블러의 모습이랄까. 그런데 왜 ‘북한 리스크’가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인지를 따져보면, 이 용어를 창안한 애널리스트가 왠지 글로벌(역시 이 동네에서 잘 쓰는 용어다)한 안목에 역사의식까지 지닌 사람일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지금 청와대와 정부에 앉아있는 당국자들보다는 그럴 거 같다는 얘기다. 북한한테 얻어맞은 건 한국인데, 왜 미국이 항공모함을 서해안에 보내는지, 중국은 왜 미국의 항공모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북한을 싸고도는지, 일본은 왜 북한 때리기를 계속하며, 러시아는 왜 안보리 의장 성명을 채택하려 애썼는지 등의 질문을 한방에 풀어줄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지정학’이다. 기억의 저편에서 암기 교육 시절의 추억을 끌어오자면, 우리나라는 언제나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우리는 쉬이 잊어버리지만 한국은 여전히 그런 나라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지정학적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흥적이고 편의주의적이며, 대중 영합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전략도 없고, 역사의식도 없다. 허둥지둥하며, 이랬다저랬다하고, 다음날이면 드러날 거짓말까지 한다. 허구헌 날 자존심 타령을 하면서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한다. 자존심이라는 감정의 영역으로 외교를 끌고 들어가니 외교가 뜻대로 풀릴 리가 없다.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애써 잡아놓고 처벌도 못하고 돌려보내 굴욕외교라는 비난을 받는 건 지당한 자업자득이다. 연평도 포 사격훈련이 지난 20일 오후 2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실시됐다. 사진 출처 - 사진공동취재단 이에 반해 북한은 전략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인다. 연평도에서 한국을 때려놓고,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불러들여 핵에 관한 통 큰 제안을 하는 걸 보라. 북한이 큰 그림을 갖고 다섯수를 내다보는 박보장기의 고수라면, 남한은 한수 한수에 쩔쩔매는 아마추어 수준처럼 보인다. 귀는 얇아서 훈수 두는 사람이 야유를 보내면 쉽게 마음이 흔들린다. 북한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북한정권이야말로 한반도 통일의 최대 걸림돌이 된 지 오래니까. 북한 정권은 철저하게 자기네들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생존이 걸린 문제를 놓고 무얼 못하겠는가. 대북 문제는, 이를 테면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링에 오른 선수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고 리영희 선생은 90년대 초반에 이미 “남북문제는 복안(複眼)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최소한의 균형 잡힌 관찰과 이해를 위해서도 두 눈의 원근법적 기능으로서의 각도와 거리의 파악이 필요”한데, “하물며 많은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다시 말해서 복합적 요소로 구성되고 변화하는 국제적 문제는 양안적 기능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런데 이 정부에는 복안은커녕 양안적 시각마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이 정권이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의 하위 요소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확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가, 표(=지지율) 떨어질까봐 단호한 대응으로 얼른 말을 바꾸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 같은 복잡다단한 사건을 지방선거에 이용하려고 서둘러 조사를 끝내느라 더 큰 의혹을 부르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니 나라의 품격이 제대로 설 수 없고, 백년지대계가 설 수 없다. 최근 중국이 북한의 나진항을 50년간 사용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청진항이나 단천항도 중국이 독점 개발하기로 했으며, 북한의 지하자원을 중국이 싹쓸이해 가고 있다는 소식은 진작부터 들려왔다. 동북공정프로젝트에서 이미 드러난 바지만, 중국은 북한을 실질적인 ‘동북4성’으로 만드는 오래된 꿈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정부의 대책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곧 망할 거니까, 망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평소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놓고 망하면 저절로 우리 게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더니 딱 그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전쟁을 각오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녕 전쟁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 세대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세대가 지금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한다. 뭐가 달라졌나. 우리가 그만큼 잘 살게 돼서, 경제력이 있으니까 쉽게 이길 것 같은가? 북한은 100만의 정규군을 가진 나라다. 화력의 대부분을 휴전선에 집결시키고 버튼만 누르면 남한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나라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의 핵무기가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곳이 한반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수나라 양제가 되지는 말기 바란다.(운하를 파는 건 이미 수나라 양제를 따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한한, 나는 헤겔의 ‘이성의 간지’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자잘한 파도쯤은 거대한 조류에 휩쓸려 내려간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자잘한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기 직전이라는 점이다. 한반도 전역이 불바다가 된 뒤에, 이성의 간지가 무슨 소용인가.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의 전 과정은 우연을 통해서 역사법칙이 굴절되는 그런 과정이다. 생물학 용어를 빌리면, 역사법칙은 우연의 자연도태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가 역사의 법칙이라고 믿는다면, 전쟁이라는 우연을 자연 도태시키기 위한 의지가 필요하다. 지혜가 필요하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39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올 한 해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가 <아저씨>였다고 한다. 원빈이라는 매우 잘생긴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아저씨’의 이미지와는 그리 큰 상관이 없다. <아저씨>는 그가 원빈이기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일 테고 실제 우리 사회에서 ‘아저씨’들은 별로 인기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건 어디서건 아저씨란 호칭을 듣기 어렵게 되었다. 아줌마란 호칭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웬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저씨, 아줌마 대신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걸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저씨, 아줌마란 호칭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게다. 영국 런던 근교에 뉴몰든이라는 곳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 동네에 오래 전부터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한 한국 아저씨가 공원을 산책하는데 17, 8세 쯤 되어 보이는 백인 소년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빌려 달라고 했단다. 그러자 이 아저씨 대뜸 그 친구의 멱살을 쥐고는 이렇게 소리쳤다는 거다. “How old are you? What is your father's name?" 너 몇 살 먹었어? 너희 아버지 누구야?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 많이 듣던 소리가 영어로 직역될 때 생기는 생경함이 이 이야기가 주는 재미의 포인트다. 설마 그런 일이 진짜 있었을까도 싶지만 아무려나 이 에피소드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저씨’들에 대한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저 나이를 따져 상대방을 누르려 하고,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며 권위를 내세우지만 실상 아무런 권위도, 내세울 것도 없이 초라하게 찌그러지고 있는 존재, 그게 아저씨다. 아저씨들의 동반자가 아줌마들인데 ‘아줌마’라는 기호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로 채색되긴 마찬가지다. 뻔뻔스럽고 낯 두껍고 억척스럽고 목소리 크고 막무가내인, 그러면서 더 이상 여성으로서 성적 매력을 가지지 못한 존재, 그게 아줌마다. 잘생긴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아저씨’의 이미지와는 그리 큰 상관이 없다. 사진 출처 - 씨네21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되면 아저씨, 아줌마 호칭이 붙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체로 그 호칭을 반가워하지 않는 데는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저씨, 아줌마라는 기호가 품고 있는 그런 이미지들 때문이다. 모두가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한 단계에 대해 그런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 있는 건 불행한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저씨와 아줌마를 바라보는 시각이란 대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사실 나의 부모와 같은 세대이고 그들을 보는 나의 시선은 기실 부모에 대한 나의 시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저 권위를 내세우며 큰 소리만 치는 아버지, 억척스럽게 살며 잔소리를 해대는 어머니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난 이 다음에 저런 아버지(혹은 어머니)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테다. 그러나 부모는 그런 측면 외에도 다른 관계(이를테면 가족애, 경제적 후원, 인자하고 따뜻한 또 다른 모습 등등) 역시 존재하고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준 부모라는 점에서 쉽게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부정적인 측면은 나 아닌 남의 부모들, 즉 아저씨와 아줌마들에게 전가되어 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저씨 아줌마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사실 우리 부모의 부정적 측면이 대입되어 형성된 일종의 속죄양인 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토록 부모 세대를 닮고 싶어 하지 않은 자신들이 어느 틈엔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조금씩 나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갖게 되는 자기 부정의 감정이다. 어, 어느 새 나도 우리 부모처럼 잔소리가 늘고 뻔뻔해 지고 꼰대처럼 되어가고 있네, 그럴 때 순간적으로 휩싸여 오는 자기 부정의 감정은 불쾌하기도 하고 한편 쓸쓸하기도 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애써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가는 자신을 그로부터 멀리 떼어놓고 싶어 한다. 우리가 아저씨, 아줌마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자신은 ‘아직’ 저기까지 가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전판을 가지고 싶은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보다 일찍 아저씨 소리를 들은 편에 속한다. 대학 시절부터 흰 머리가 많아 실제보다 겉늙어 보였던 탓인데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싶었던 시절이라 아저씨 소리에 그리 개의치 않았다. 사실 내게 조금 충격적이었던 건 ‘할아버지’ 소리였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아빠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어느 꼬마가 우리 부자를 보더니 이러는 거였다. “어머, 내훈이는 아빠랑 안 오고 할아버지랑 왔네.” 유치원 아이의 판단 기준으로는 머리가 하얀 사람은 곧 할아버지였던 거다. 자칫하면 아저씨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할아버지 단계로 진입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았고 나는 지금 대체로 순탄하게 아저씨 단계로 연착륙한 셈이다. 물론 나는 지금의 나의 모습에 그런대로 만족한다. 적어도 누군가가 내게 20여 년 전의 청년 시대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그리 큰 고민 없이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그러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청년 시대는 대체로 불안했고 불만스러웠고 가난했다. 그게 청년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70, 80년대의 청년에게 그 시절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연옥이었다. 그 시대를 거쳐 지금 현재의 아저씨가 되어 버린 나 자신이 고맙고 대견스러울 정도다. 나는 불안보다는 안정을, 도전보다는 안주를 좋아하는 태생적 보수주의자가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 아줌마에 대한 혐오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에서 오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의 나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면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가는 것이 두려울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50 | 추천: 0
위대영/인권연대 운영위원   일체유심조,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으로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라고 한다. 아내의 생일에 맞춰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에 다녀왔다. 산에는 이미 가을 단풍도 모두 져버린 때라 쓸쓸한 풍경이지만, 송광사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고즈넉한 맛이 묻어나는 사찰이었다. 지난봄 전주 금산사에 찾아갔을 때, (경내에서조차) 오며가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사람들을 볼 수 없고, 천년 사찰의 벽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온통 도배질해 놓은 낙서를 볼 수도 없었다. 어느 사찰이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불경 소리가 없고, 입구를 가득 매운 기념품 가게도 없었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3대 사찰 중 하나인 송광사는 다른 무엇보다 수도도량으로 이름이 높고 많은 수도승이 수행 중이다. 운 좋게도 송광사에서 3년째 수행 중이신 한 스님께서 송광사의 역사와 특징, 송광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점들을 설명해주셨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마지막에 대웅보전 오른편에 있는 삼일암(담당국사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3일 만에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여 붙여진 당호임)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스님은 모든 이들 마음에 부처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며 듣는 이들에게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를 설명해주셨다. 이에 바로 앞서 스님은 부처님이 수행하신 모습을 벽화로 그려둔 불전 앞에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때가 어느 때인지 벽화를 보고 맞춰보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추기는 했지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에 해당하는 그림은 삼라만상이 그려진 풍경 위에 붓으로 커다란 원을 그려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8번째 벽화에 해당하니, 그렇다면 9번째, 10번째 벽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맞춰 보라고 하셨다. 다들 우물쭈물 말을 못하고 있을 무렵, 스님은 9번째 벽화는 깨달음을 얻고 둘러본 풍경은 깨달음을 얻기 전의 풍경과 같더라는 것이고, 10번째 벽화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해탈의 길로 안내하기 위하여 다시 중생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깨달음의 단계로 한걸음만 더 내디디면 될 것인데도, 자신의 뒤에 있는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들을 보고 이들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신 지장보살의 서원을 비롯해 송광사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보낸 두 시간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 일상에 청량한 한줄기 바람과 같았다. 사진 출처 - 송광사 한낱 윤회를 거듭하는 중생의 하나인 나로서 일체유심조의 의미와 지장보살의 서원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겠다. 날이면 날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울고, 웃고, 슬퍼하고, 화내는 평범한 사람이 오로지 마음먹음으로 하나로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매년 반복되는 위정자들의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를 보며 마음만 돌이켜 보면 한낱 부질없는 일로, 공허한 일로 치부해 버리기는, 그리고 이것들이 마음먹기에 달린 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진다. 깨닫기 전의 세상과 깨달은 후의 세상이 다르지 않듯이, 깨달은 자에게 있어서 깨닫기 전에 수행하며 중생을 계도하는 것과 깨달은 후 중생을 계도하는 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부딪히는 인간사 모든 일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인간사 모든 일과 다르지 않다면,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때의 마음가짐에는 실천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면 마음가짐은 항상 실천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실천이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은 거짓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도달한 깨달음은 공허하다. 언제나 일의 시작은 마음가짐부터다. 그 마음가짐이 어떻게 연유되었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 마음가짐이 실천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더욱 중요하다.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그리고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반성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 이 다음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 조용히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83 | 추천: 0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여름 일본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가 한국 학생들과 함께 연합캠프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의 인기 등으로 가려진 양국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 기획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일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국내외 어느 곳 못지않게 인기있는 여행지여서 모두들 한두번은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참가자 모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신청자가 많아서 부득이 면접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선발해야 했습니다. 한국 인기가 만만치 않다더니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면접을 통해 확인한 것, ‘겨울연가’의 영향이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신청학생 대부분 겨울연가 골수팬인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그 관심이 넓어져서 이들에게 이르러서는 ‘신한류’라 불릴 정도로 한국음악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저보다 한국 가수와 가요를 더 많이 알고 있더군요. 문제는 참가취지였는데, 지금까지 아시아에는 관심이 없었고 본인이 아시아인이라는 자각도 없었지만 이번 캠프를 계기로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는 학생도 있었고, 자기들은 미국을 미워하지 않는데 한국이 일본을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나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그나마 대견한 경우였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이돌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이라는 나라의 또래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것뿐이었습니다. 한국 학생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기 역사에 대한 이해, 자기 현실에 대한 이해가 안타까울 정도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한일병합 100주년과 분단문제에 대한 강의가 끝난 뒤 일본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난처해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한국학생들 마저도 이번 캠프가 외국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난 2009년 인권연대 창립 10주년 기념식·감사의 밤 행사에 함께한 리영희 선생님의 생전 모습.   요즘은, 보고서 책자를 만들기 위해서 학생들의 캠프 감상문 원고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생각 밖이었습니다. 준비된 프로그램에 잘 따라올 뿐 깊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로 꽤나 큰 자극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100년이나 지난 과거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의 분단현실을 보고 도대체 자신의 국가가 어떤 일을 저질러 왔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는 학생이 많았고, 심지어 인생이 변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젊은이들과의 좋은 기회를 만들어 놓고도 그저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비판만 해댔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아침 버릇대로 책상에 앉자마자 메일함을 열었는데, 리영희 선생님의 타계 소식이 제일 먼저 눈에 뜨였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스승을 잃고서야 깨닫습니다. 젊은이들과 제대로 어울려 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의 무심함을 탓하기만 했던 제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말입니다. 이국에서 외국인들에게 선생이라 불리고 있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스승 없다 탓하면서 스스로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어보려 노력한 적 없었음을 말입니다. 선생님 같을 수야 있겠습니까만, 적어도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바로 보도록, 아니 그들과 함께 바로 보려 노력하겠다 다짐해 봅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신부로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60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변호사를 그만 두고 학교에서 일한지 6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변호사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나 그와 관련한 느낌들이 기억나곤 한다. 변호사 업무 중 힘든 것 중 하나는 사건 진행을 위해 법정에 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변호사 초기에는 책을 읽는 등 소일거리를 찾으려 시도한 적이 있으나 집중하기 어려워 모두 포기하고, 그냥 다른 사건의 진행 과정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사건 기록을 뒤적거리는 정도에서 만족하게 되었다. 그날 오후에도 형사법정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진행되던 사건은 어떤 지역의 조직 폭력배들이 공갈죄 등으로 기소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변명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즉, 자신들과 동네 상인들은 모두 선후배이거나 친한 사이이고 자신들은 돈을 상인들로부터 강취한 적이 없고 빌린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다만 사정이 어려워 갚지는 못했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결국 자신들은 경찰의 실적 위주의 잘못된 수사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취지였다. 관련 진술이 매우 진지하긴 했지만, 마음속에서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하루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들이 차용증이나 변제의 확신 없이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나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한국에는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인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있다. 파견법에 따르면, 기업이 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를 지휘·감독하며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2년 이상 사용할 경우에는 그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제조업 등 일정 분야에서는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제조업 기업들은 이런 법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하여 일견 도급의 겉모습을 띤 계약을 하청업체와 체결한 후 이들을 사실상 파견근로자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참고) 도급 관계의 경우 일반적으로 도급인이 하청(수급)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파견근로로 보지 않고 따라서 이들에게는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근로자들의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하청업체이므로 도급인과 근로자들 사이에는, 단체교섭과 같은 집단적 노사관계와 관련된 문제나 특별법을 별론으로 한다면, 권리의무 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결국 비정규 근로자들을 사용하면서도 그 법률적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방법으로 도급 계약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1월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는 불법이지만,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하였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노무비를 절약하고 노무관리 등의 부담을 더는 손쉬운 방법으로서 탈법적인 도급 방식을 유지하였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규모는 확대되고 노동권은 보호받지 못했다. 올해 7월 대법원은 이러한 방식에 의해 근로자를 사용할 경우에도 파견법이 적용되고,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이렇게 2년 이상 사용한 이상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판결하였다. 즉 파견법을 어긴 기업도 파견법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을 어긴 사람이 법을 지킨 사람보다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치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판결이 최선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판결은 결국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게 합법적인 기업과 동일한 책임을 지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법을 저지른 자에게는 법을 지킨 자보다 더 큰 불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함에도, 대법원 판결이 그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 현대자동차의 대응이 너무 이상하였다. 대법원 판결 이후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자동차는 계속 자신의 책임 없음을 다투고, 관련 사건에서는 파견법이 재산권과 경영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하청업체와의 도급 계약을 해지함으로써(아마도 현대자동차는 노동조합 때문에 자신들이 이런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청업체에 소속된 비정규 근로자들이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정규직으로 고용될 것을 기대하던 근로자들이 이에 항의하자, 현대자동차의 용역들은 항의하는 근로자들을 폭행하였고, 이들이 공장에 모이자 회사는 불법 파업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폭력배에 돈을 뺏긴 상인들이 폭력배의 사무실에 찾아가 법원 판결에 따라 돈을 달라고 요구하니깐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으니 돈을 직접 갈취한 부하에게 받으라고 하고, 오히려 주거침입을 했다면서 상인들을 때리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과 같다. 그리고 돈을 갈취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 규정이 자신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이러한 사태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경박함에 대한 지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행해질 수 있는지, 이제 한국의 노사 현장에서 법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비정규 근로자들이나 노동조합의 요구가 지나치고 현대자동차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기업의 경쟁력 측면에서 현대자동차의 염려나 우려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란 조직도 한국의 법 제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법에 대한 존중은 그런 기업의 의무 중 하나이다. 따라서 마땅히 현대자동차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그 뜻에 따라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대우해야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련 문제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노사 현장의 분쟁이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해결되는 국면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지난 7월의 대법원 판결이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게 합법적인 기업과 동일한 책임을 부과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로서는 판결에 따라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일단 버티고 저항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롭고 이를 사회가 용인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사 현장에서 법원의 판결마저 힘을 잃게 될 때 과연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과 소수자들은 누가 보호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48 | 추천: 1
인간에 대한 예의 - 삶을 생각하며, 운동을 생각하며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반추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욕하거나 타박할 때나 쓰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사람”이란 말은 식자들 사이에서나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서는 꽤나 파급력이 있는 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나 또한 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적지 않다. 대체로 이런 기억들은 이제는 뇌리 속에서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옅어져버린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지금은 진부하게까지 들리는 ‘학생운동’이 살아(?) 있던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듯 나 또한 정의와 진리를 위해 기꺼이 투신하고 당연히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나는 이 시절 지금도 유일하게 존경의 마음을 품게 만든 선배 한 명을 만났다. 당시 한창 몸담고 있던 조직도, 한껏 기대를 받고 있던 그룹의 일원도 아니었던 그 선배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두 동생의 앞길마저 책임져야 하는, 누구 못지않게 어깨가 무거운 가장의 위치에 있었다. 과외에 아르바이트에, 이른바 돈 되는 일이라면 몸 안 사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쫓아다니던 그 선배는 시위나 집회가 있는 날이면 언제 나타났는지 늘 군중들 맨 앞에 있었다. 지금 떠올려도 참 기이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 선배를 좋아하고 존경하게까지 된 것은 그의 정의감이나 성실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집회가 있는 날이면 그의 두세 평 남짓한 자취방은 시위꾼들의 뒤풀이 장소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 또한 그가 자처한 일이었다. 술집을 전전하며 울분을 토로하다 주머니까지 톡톡 털어낸 날이면 그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끌었다. 한 아름에 들어오는 조그만 냉장고 속까지 다 털어내고 나면 우리는 그대로 쓰러져 얼마 후면 닥칠 내일이 오길 기다렸다. 한 번은 후배들과 세미나를 마치고 몇 번이나 차수를 바꿔가며 술자리를 전전한 끝에 갈 곳이 없어 다시 선배의 자취방을 찾은 적이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비밀번호로 열고 들어가 또 냉장고 속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던 선배는 기어이 냉장고가 완전히 드러난 새벽녘이 다 돼서야 들어왔다. 나였다면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한 녀석들 혼꾸멍을 내줬을 법한데 선배는 오히려 방이 좁다며 미안해하며 그 추운 새벽,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먹었다. 나는 그 후로도 선배가 한 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시위를 나갔다 온 날이면 술자리에서 눈물짓는 그를 간간이 보았을 뿐이다. 이런 선배가 있었는가 하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합의와 투표로 결정된 결과마저 없었던 일로 돌려버린 선배가 있었다. 그 일로 많은 동료들이 자신이 품어왔던 이상에, 걸어왔던 삶에 회의를 느끼고 투신해오던 장을 떠나갔다. 그 가운데는 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던 이들도 있었다. 또 한 번 눈물 날 일이었다. 이제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지켜온 가치, 자신의 삶은 고귀하며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은 값어치가 덜하거나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요즘 들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그런 이들은 대체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비인간적이란 사실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디까지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다. 그런 생각조차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지도층입네 하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다는 것이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이다. 나아가 스스로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친한 사이일 때나 지켜야 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서글픈 일이다.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가까운 이웃이, 이상을 함께 나눠왔던 동료가, 사랑하는 이들이 자기로 인해 상처를 입고 함께 나눠온 가치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상대가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니고 있기에 꼭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다. 나눔, 진보, 발전, 생명, 믿음, 희망, 사랑…. 훌륭한 가치를 지닌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인간에 대한 예의가 들어 있지 않다면, 그래서 그토록 갈구하던 인간의 존엄성에 발길질을 해댄다면 세월이 흐른 후 자신의 삶 또한 허무해지리란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나는 깨닫고 있다.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받고 싶은 대로 먼저 해주려 했던 선배의 마음, 그 마음과 실천을 닮아가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회복하는 길임을, 그래서 참다운 운동성을 되살려나가는 길임을….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41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사가 공정하고 원칙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그 조직이 시행하려는 모든 일에 대하여 조직원들의 신뢰가 쌓이고 원칙이 바로 서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 소속의 교사들 또한 매년 이맘때 전격적인 인사가 이루어진다. 중등도 그렇지만 초등의 경우, 현재 진행되는 인사제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 문제들이 학교의 민주적 운영을 저해하고 있고 인사와 관련해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간의 각종 비리를 양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정기 전보와 비정기 전보라는 형태로 근무지를 옮긴다. 정기 전보는 근무하던 학교에서 만 5년을 근무하면 학교를 옮겨 근무지를 바꾸는 형태이고 비정기 전보는 교사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만 1년이 지나면 근무지를 옮기도록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와는 별도로 초빙, 전입요청, 전보유예라는 제도가 있어 교장의 판단과 희망하는 교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인사 제도가 있다. 우선 초빙교사제도는 학교장이 각 학교에 필요한 유능한 우수교사를 확보하기 위하여 교사를 초빙하는 제도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행된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도입 취지는 공교육 정상화와 학원자율화를 꾀하여 학교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것이었고 1996년 6월 교육공무원법에 의거하여 신설, 1996년 9월부터 초빙교장제와 함께 실시되기 시작한 제도이다. 두 번째로 전입요청제도는 정기 전보 대상자 중 해당 학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분야의 자격증 소지자 또는 지도·연수·연구 실적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교사나 체육특기자, 상담, 특수학급담당교사 등을 학교로 전입 요청하는 제도이다. 이 또한 전보 대상자의 30% 이내에서 요청이 가능하며, 30%를 초과하더라도 학교당 최소 2인까지는 가능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전보유예제도는 정기 전보 대상자 중 근무하던 학교에 더 근무하고 싶은 교사들이 전보를 미루는 제도로 객관적으로 유예를 인정할만한 사유가 있어야하고 학교장과의 논의를 통한 후 학교 인사자문위원회의 회의를 거쳐 대상자를 결정하는 제도이다. 문제는 학교장이 이 제도들을 활용하여 교사 정원의 30%(자율학교는 50%까지 교사를 초빙할 수 있음)까지 확보할 수 있어, 일반 교사들의 수에 비하여 너무 높은 비율로 인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본인이 근무하는 강동·송파지역 학교의 경우 10년을 근무하면 거주지 밖으로 반드시 나가야하는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총 442명의 전보대상 교사 중 36%인 158명이 이 방법으로 강동·송파지역에 계속 근무하게 되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지역에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교사들이 결과적으로 근무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난 8월 서울시 교육청에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강연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는 서울지역 고등학교 교장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또한 학교장이 모집 교사수를 정하므로 전횡을 일삼을 우려가 있고, 실제로 학교현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근무하는 교사들을 학교의 중간 관리나 학교의 중요 직책을 맡겨 학교장의 정책이나 운영방침을 일선 교사들에게 주입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학교 운영과 관련해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든지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 등은 그 내용이 사장되거나 동료교사들로부터 오히려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결국 열정적이고 능동적인 교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일에 대하여 의견을 내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려하기보다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편하게 되고 책임을 회피하는 분위가 팽배하게 된다.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현 교육 방침에서 이런 식의 비민주적 학교운영은 많은 교사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교육에 대한 희망의 빛을 사라지게 만든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나 인사자문위원회가 학교장의 휘하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학교의 경우 이러한 제도는 도입 취지를 유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교사 개인적으로 원하는 학교로 전출가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원하는 학교로 전보되기 위해서 강남권은 400만원, 비강남권은 200만원이라는 공공연한 소문도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검증되지 않은 실력 없는 교사가 초빙되기도 하고 교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를 들어서 전입 요청을 하거나 실제와는 다른 업무를 보는 사례, 또 구체적이지 않은 불분명한 이유를 들어 요청을 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 정기전보를 하는 수많은 교사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학교 내에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2월 12일 서울시교육청(교육감권한대행 김경회)에서 발표한 공립 중등교사에 대한 3월 정기전보 결과를 보면 2010년 인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전입요청·유예·초빙교사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를 구체적 수치로 살펴보면 전입요청 교사는 전년도 422명에서 560명으로, 전보유예 교사는 794명에서 838명으로 늘었다. 특히 초빙교사는 93명에서 566명으로 크게 늘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라 전체 전보교사 가운데 전입요청·유예·초빙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도 34.0%(1,309명)에서 50.0%(1,964명)로 늘어났다고 하였다. 이제는 인사에 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줄서지 않고 정상적으로 인사 이동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경로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기까지 한다니 이 제도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진보 교육감시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92 | 추천: 1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쓰빠씨~빠 시비르 (고마워요 시베리아) 어디서든 소리 없이 따라오는 자작나무 숲의 빛깔을 어둠에 묻고 쿠페라 부르는 4인용침대칸에서 일행과 함께 비운 보드카 한 병의 바닥이 보일 때 쯤 잠이 든다. 눈 뜨면 광야. 밤새도록 쉬지 않고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따라 어김없이 자작나무는 가녀린 흰 바탕의 군락이 되어 다시 나타나고 백야(白夜)의 태양은 광활한 대륙을 넘나들기 시작한다. 하루의 시작. 취기가 덜 빠진 감각 없는 손으로 컵라면을 데우고 누군가 건네주는 해장 술 한잔이 잠자는 땅 시베리아에서의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일거라고 생각한다. 전날 마셨던 보드카의 경로를 따라 내장을 훑는 진저리 치는 술의 독성이야말로 그토록 갈망했던 시베리아 횡단의 꿈을 이루고 있는 여행객의 객고를 위로하기엔 제격이다. 충혈된 눈을 씻으려 창밖을 본다. 지평선을 넘으니 다시 지평선. 끝도 모를 지평선의 대지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실핏줄 같은 강줄기들. 시베리아의 태양을 반사시킨 강물에 내 흐린 시선을 몇 번이나 씻은 뒤에야 기차는 피곤한 달음질을 잠시 멈추고 사람이 사는 마을의 입구에서 새 손님을 맞는다. 군데군데 마을을 품고 흐르는 강줄기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아니면 열차가 강줄기를 따라 끊임없이 달렸다. 강줄기가 잠시 마을로 가는 길을 잃으면 열차가 앞서 길을 찾았고 열차가 사람의 온기를 잃으면 강줄기가 열차를 이끌어 마을로 안내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베리아의 속살을 곁눈질하며 바이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베리아는 바다였다 모든 것들을 다 받아주는. 낯선 이방인들은 그곳을 게으른 땅이라 불렀다. 어떤 이방인들은 그곳을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제 속살을 죄다 내 놓고도 이방인들의 버릇없는 비아냥거림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애초 그곳을 게으른 땅이라 명명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의 길, 마을과 마을의 소통이었던 강줄기를 꼭꼭 틀어막아 댐을 쌓고 주위를 온통 콘크리트로 도배질 한 후 개발의 완성을 자축하며 키득대는 문명의 게걸스러움에 한 치의 마음도 빼앗길 이유가 없었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던 비아냥거림에도 역시 동의할 수 없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간이라도 내어줄듯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대는 친절함을 가장한 비굴함과 거기에 얹혀사는 이들을 비참하게 무릎 꿇리는 자본의 비정함이 조용한 땅 시베리아까지 스며드는 것이 두려웠다. 시베리아는 자존(自尊) 땅이었다. 아마존과 더불어 세계 양대 허파라고 불리는 대 자연이 있고 인류의 산업을 적어도 수 백년 동안 지탱 시킬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을 땅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자본의 위대함을 앞세워 요기(妖氣)어린 손짓을 보내는 탐욕의 떨거지들에게 시베리아는 조용히 훈계하고 있었다. “시베리아는 자연을 사는 모든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는 있으나 탐욕스런 너희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는 없다”고. 바이칼의 언덕에 누워 별을 헤아린다. 팔을 벌리면 왼쪽 손끝에서 오른쪽까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오직 별 뿐이다. 별들은 스스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빛내고 있다. 밤사이 형형색색의 조명을 틀어대고 경쾌한 뽕짝을 울리며 관광객들을 취하게 하는 유람 이 몇 척 정도는 있어야 상식에 맞는 나라에서 온 나는 변변한 숙소하나 없이 별빛 하나만으로도 2500만년을 살아온 거대한 자연의 나라 바이칼에서 자존과 공존(共存)의 하늘을 보며 감격해 하고 있다. 바다 같은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알혼섬의 끝자락 어디쯤에서 손톱 같은 달이 떠오른다. 나의 생살 보다 더 붉은 달빛 사이로 소금을 흩뿌리듯 별똥별이 떨어진다. 달빛은 흠칫 놀라며 점점 더 가까이 내게로 오고 나는 수평선이 되어 달빛을 한참동안이나 올려다 본다. 고마워요 시베리아. 저녁 열시반 그제서야 알혼섬의 태양이 저물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필자 고마워요 두리반. 두리반의 겨울나기는 연탄을 들여놓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전기가 끊긴지 100일쯤 되는 10월의 저녁,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 촛불을 몇 개 켜놓고 그 아래부터 차곡차곡 연탄 천장을 쌓았다. 3공 9구짜리 연탄난로도 장만했다. 두리반을 지키는 평화 활동가 한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마포 일대 철물점을 다 뒤졌고 민노당 마포 위원장은 트럭을 몰았다. 난로가 들어오던 날. 위원장은 그 위에 고구마를 구우면 참 맛나겠다고 했고 나는 소뼈를 우려 사골을 내면 좋겠다고 했다. 두리반 바깥주인은 계급의 차이가 연탄난로위의 음식까지 다르게 한다고 껄껄 웃었다. 사실 내가 입이 고급이라 사골국물을 생각한건 아니었다. 다만 어렸을적 하도 많이 먹었던 고구마가 싫었을 뿐이다. 난로를 설치하고 이어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단풍잎이 채 붉게 물들기도 전에 닥친 기습한파에 연탄난로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고구마를 구울 정도의 불은 피우지도 못하고 자주 꺼트렸다. 난로가 꺼진 원인을 두고는 주인장 부부가 자주 설전을 벌이고는 했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안주인이 “난로 구멍은 조절 했느냐 시간은 잘 맞추었느냐” 등등을 물으면 바깥주인은 “아~참 이사람 다 맞추었다니까. 중국놈 빤쓰를 겹으로 껴입었나 그리 의심이 많아. 의심이 많으면 철학을 해야지...” 바깥주인의 기상천외한 반격에 안주인도 웃고 난로주위에 모여든 두리반 사람들도 다들 킥킥대는 형국 이었다. 바깥 날씨가 영하를 가리키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연탄 난로의 화력도 점차 강해졌고 두리반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난로 주변에 모여 들었다. 2009년 12월 24일 성탄 이브를 축하하며 세상이 흥청거리던 그날. 두리반은 들썩 거렸다. 생살 같은 피붙이를 앗아간다 해도 분노가 이만할까. 멀쩡했던 가게의 집기가 들려나오고 깨지고 부서지고 주인부부는 평생 가도 다 못들을 쌍욕을 들으며 울부짖었다. “이곳은 나의 우물, 이 척박한 사막의 땅에서 물 한 모금 길어내기 위해 손톱 끝에 피 맺히는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파낸 나의 땅. 철거되어야 할 놈들은 너희 G.S건설, 그 하수인 남전 디앤씨, 그리고 깡패 새끼들. 그것도 뒷골목이나 어슬렁거리며 제 손목에 담배 빵 이나 붙이다가 돈 몇푼 쥐어준다 하니 좋다고 소주 값 벌러 온 쌈마이 중의 쌈마이. 깡패라는 말 조차도 거룩한 칭호인 인생 하빠리들. 철거 용역. 진정 철거되어야 할 놈들은 너희들이다” 안주인은 머리채를 휘어 잡혔고 바깥주인은 멱살을 내어주었다. 그 추웠던 한날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 합니다”라는 대형건물의 광고판 아래에서 두리반은 그렇게 내동댕이쳐졌다 연탄난로에 올려놓은 주전자가 뚜껑을 들썩이며 끓는다. 지난여름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전기가 끊어졌다. 에어컨. 선풍기는 고사하고 조그만 냉장고 하나 돌리기 어려웠던 날에는 손님들 커피 끓이는 가스의 열기에도 등줄기가 땀에 절었다. 난로에 둘러앉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커피를 훌훌 거리며 슬러시가 된 맥주 얘기를 한다. 창문이 깨질 듯 얼어 붙은 혹한의 밤과 무작시럽게 내렸던 눈발을 전기장판 하나로 견뎌야 했던 일 년 전 겨울 머리맡에 놓아둔 페트병 맥주가 얼어 슬러시가 되었다. 난로의 온기 옆에 있는 지금 그 기억은 아릿한 추억이 되고 있다. 두리반 철거에 맞서 부부가 농성을 시작한지 일 년. 많은 이들이 두리반에 다녀갔다. 스스로 상근을 자처해 어려운 날을 함께 사는 대학생, 아침마다 출근길에 꽁꽁 얼린 물병으로 더운 여름을 식혀주던 직장인.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의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두리반에서 목청껏 소리 지르는 젊은 예술인. 두리반은 낙엽 이었다. 나무의 본체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은 날, 스스로 떨켜를 닫고 조용히 눈감는 은행잎이었다. 그리곤 애초에 타고난 빛깔, 깊게 깊은 노랑으로 물들어 햇살 밝은 거리를 짙게 물들이는 사랑 이었다. 탐욕스런 세상으로부터 철거를 통보받지 않은 두리반은 몇몇의 단골들이 들락거리는 괜찮은 칼국수 집이었으나 용역 깡패들이 들이닥쳐 문을 부수고 사방을 철판으로 막아 두리반 이라는 이름조차 없애려고 했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색깔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이 한 겨울 두리반에서 희망을 보기로 한다. 희망이란 새날의 기약보다 현재의 극복에 더 가깝다는 것을 두리반 부부의 낙관적인 웃음에서 찾기로 한다. 황홀한 일몰에 어깨위에 내리는 통증을 기대며 길 없는 길을 날아 새 길을 만드는 어린 새의 날개 짓이 두리반에 있다. 두리반이 내게 속삭인다, “길이 끊어졌다고 행장을 꾸리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죄요”. 몇 평 되지 않는 두리반에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시베리아의 자존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건물앞에 걸어놓은 현수막과 대자보를 읽다가 쑥스러움을 감추고 두리반의 문을 여는 순간 그때부터 당신은 두리반이다. 고마워요 두리반. - 이글은 계간 리얼리스트에 송고한 글입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43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즈음 학교는 반사회적 품행으로 여타 학생의 신체·정서적 안정을 파괴하고, 학습방해로 학급 구성원을 고통스럽게 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모든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인 학습권이 침해되는 등 학생과 교사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학년인 노민이(가명)는 수업시간에 자주 교실을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 장난을 쳐서 참다못한 교사가 주의를 주면 “뭘 어쩌라구요 에이...”하고 소리 지르면서 수업을 방해 하고 교실 문을 걷어차면서 뛰쳐나가는 행동을 했다. 그런데 방학 후에는 머리를 삭발하고 귀와 눈 주위에 멍이 있는 상태로 등교를 해서 담임교사를 또다시 놀라게 했다. 평소에 몇몇의 학생들에게 맞고 돈을 빼앗긴 일들과 수업시간에 이상한 언행으로 교사들로부터 많은 말이 오르내리던 아이라서, 담임교사가 힘들게 밝혀낸 결과는 방학 때 학교근처의 공원에서 몇몇 학생들의 장난으로 면도칼로 머리를 밀고 구타당했던 것이다. 1학기를 지나는 동안 노민이 얼굴은 멍자국이 항상 있었고 귀도 심한 타박상으로 병원을 여러 차례 다녔다. 그런데 노민이는 자기를 구타하거나 머리를 깍은 학생들을 거의 언급한 적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노민이를 때렸다는 이야기가 있어야만 겨우 인정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맞고 보복을 당하다 보니 누구도 믿지 못한 탓도 있지만, 정신질환(공상허언증:거짓말을 지어내 떠벌리면서 자신도 믿는것, 정신분열증)이 있는 어머니와 살면서 양아버지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보았던 노민이에게는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노민이가 오히려 1학년 학생들을 구타하고 금품갈취를 하며 괴롭히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오랜 교육경력의 담임교사도 노민이의 증상을 대할 때마다 곤혹스러웠지만 지속적인 상담과 관찰을 하면서 노민이를 괴롭히는 20여명의 학생들에게 중학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징계인 10일간의 등교정지를 하였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지내는 노민이는 학교의 노력에도 변화되는 모습이 없고 가정으로 돌아가면 증상이 반복되는 일이 계속 되고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정당하게 통제하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할 대안이 교사들에게는 절실한 상황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학생 상호간의 폭력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자기방어조차 힘겨운 교사들의 문제도 많이 나타난다. 인근의 교사(중학교)들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욕설과 폭력으로 병원에 입원 하거나 병가를 냈다는 이야기들은 이젠 주변의 학교들이 겪고 있는 흔한 이야기다. 더욱이 어떤 교사는 수업시간에 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때린 학생을 경찰에 고소하면서 학교와 교육청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방법밖에 없다는 비장한(?) 결심을 이야기할 때 너무도 놀라울 뿐이다. 학교라는 환경에 오랫동안 있다 보면 학생들에게서 많은 위로도 받지만, 일부학생들에 받은 피해로 고통을 겪으면서 상처만 들여다보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을 종종 본다. 이럴 때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바꾸어서 바라보면 어떨까. 20여년이 지나서야 교직생활 속에서 학생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이 나에게 있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사의 눈만 갖고 살아왔는데 학생의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지사지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노민이 같은 친구들을 더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시급히 마련하지 못하는 것, 자신의 방어조차 당당히 요구할 수 없는 현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했지만 해마다 달라지는 학생들의 모습에 대한 혼란스러움 역시 우리가 감당해 내야 할 몫이다. “학생은 학생입니다. 교사인 우리가 감싸주고 그들에게 더욱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최신유행가요프로를 보고, 개그프로 등 여러 가지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보면서 노력을 합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는 나의 학생들을 끝까지 보듬어야 하는 것이 교사입니다”라는 정년을 앞둔 선배교사들의 말이 가슴속에 울림이 된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43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야기 한 토막: 아주 오랜 옛날 하느님과 인간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이 얘기를 꺼냈습니다. “뭐 재미있는 놀이 없을까?” “숨바꼭질 놀이 어때요? 하느님이 숨으시면 저희가 찾는 놀이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찾아내기 전에 숨은 데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그래 좋다. 내가 숨으마.” 하느님은 사람들이 찾기 힘든 곳에 몸을 숨겼고, 그렇게 해서 인간의 하느님 찾기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하느님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높은 산위에도, 골짜기에도, 바다에도, 숲 속에도 다 가보았는데 하느님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끝나지 않는 놀이는 무의미해!” “하느님이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이 아닐까?” “숨바꼭질 때문에 하느님이 사라졌으니 숨바꼭질 자체를 아예 그만두자.” 그리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느님! 저희는 숨바꼭질 그만 하겠습니다!” 그런 뒤 더 이상 하느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서 생겨난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군대가 생기고, 무기 장사가 생기고, 자꾸만 전쟁이 생겼습니다. 세상이 혼란하니 법이 생기고, 법이 생기니 도적이 생기고, 도적이 생기니 자꾸 세상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지금이라도 당장 숨은 데서 나와 자기들 맘대로 놀이를 끝낸 인간들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몇몇 바보들이 아직 있어서 이리저리 하느님을 찾아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성이 기울이는 관심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그러면서 (1)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형이상학(철학), (2)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도덕’, (3)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종교’라고 정의했다. 그가 종교의 영역을 ‘희망’에서 찾은 것은 굉장한 통찰이다. 안다는 것, 행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쉽게 얻어질 수도 있지만, 희망(希望)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끝없는 바람이며, 끝없는 과제의 영역이다.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현실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이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이기에 현실에서의 경험과 언제나 모순된다. 그래서 희망으로는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되고, 저러고 싶지 않은데 저렇게 된다. 돈을 벌어 베풀며 살고 싶은데 벌리지 않고, 걱정 없이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정치 현실도 경제 구조도 희망대로 이상대로 되었던 적이 별로 없다. 현실은 늘 희망과 달리 나타난다. 그런데도 희망하는 만큼 현실은 달라진다 믿고, 그런 이상을 현실에서 이루어보려는 이들도 있다. 그 ‘모순’을 살아내려는 이들이 이 시대의 진짜 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은 희망이되, 현실 변혁적 힘이기도 하다. 희망하는 만큼 몸도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는 순간 그것은 삶의 한 복판에 들어와 삶을 변혁한다. 희망은 구름 너머에 있지도, 미래적 사건이기만 하지도 않다. 그것은 현재를 혁신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상을 꿈꾸고 희망을 가지는 만큼 현실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상과 희망으로 현실을 이기게 해주는 것이 종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몰트만이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신앙이다’. 그리고 ‘절망이 죄’이다. 평화인문학 수료식 모습 인권연대가 주관하는 최고의 교육프로그램, “평화인문학”이 지금 진행 중이다. 올해는 안양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벌써 8기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초점은 재소자의 인간적 자존감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종교 강의를 한다. 물론 선교적인 차원이나 교리 강의 차원이 전혀 아닌, 종교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능한 한 일상적인 언어로 솔직하게 나누고자 한다. 강의실 분위기가 밝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어둡지도 않다. 어떤 이의 표정은 깨끗하고 어떤 이의 눈은 빛나며 어떤 이는 그 와중에도 딴 짓을 한다. 팔짱을 끼고 줄곧 시비조의 표정을 짓는 이도 있다. 여느 강의실에서 보여주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강의가 기독교 교리와 어긋난다 싶으면 이내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면 종교는 교리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깊이를 성찰해보고 거기서 울려나는 양심의 소리대로 살려 애쓰는 곳에 있다며 답을 하곤 한다. 언젠가 강의 후 줄지어서 나가던 재소자 중 한 사람이 급히 내 손을 부여잡으며 정말 감사하다는 짧은 말을 내뱉었다. 그 억양과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져 뿌듯했다. 나는 그이들이 현실을 변혁하는 이상적 희망과 인간적 자존감을 갖게 되기를 바랐다. 교도소 안에서 도리어 진정한 ‘종(宗)-교(敎)’를 터득하게 되기를 바랐다. 희망을 갖는 일은 종교의 핵심이다. 암울할 것 같은 현실이 암울함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희망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포기한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놀이에 첫 약속을 믿고 지궁스럽게 하느님을 찾는 술래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정의나 사랑이라 한다면 더 좋겠다. 그것은 한 번도 이루어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은 적도 없다. 정의의 그림자를 드러내려 애쓰는 이들에 의해 실제로 정의는 이루어져 간다. 남의 일에서 자신을 보는 이들로 인해 세상은 돌아간다. 지궁스럽게 신을 묻고 찾되, 인간 안에서 그렇게 하는 이들의 희망과 이상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간다.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놀이는 재미있는 일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2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