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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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혁용(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중(병원장),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교수), 이재승(건국대학교 법전문대학원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 글을 씁니다.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K.A.L에 관한 추억 큰형은 46년생. 한국전쟁이 끝난 후 10대 후반에 이미 일제 강점기 때 온 나라의 산판을 휘저으며 나무를 실어 날랐던 제무시 도락꾸(G.M.C트럭)기사의 조수로 취직해 평생을 운전대로 먹고살았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를 했으나 군단장지프를 몰아 다행히 전운을 피할 수 있었고 70년대 초반 갓 결혼한 후 큰조카가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엔 사우디 개발의 전사가 되어 열사(熱沙)의 나라에서 산업역군 일을 톡톡히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형이 사우디에서 귀국한날의 풍경은 잊혀 지지 않는다. 매일 밤 살구나무아래 장독대 앞에서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안녕을 기원했던 어머니는 벌써 동구 밖에 나가 형이 타고 오는 버스가 왜 이리 늦느냐고 재촉을 하시고 17가구가 살던 동네 사람들은 마치 대동놀이회의를 하는 양 좁디좁은 초가집 단칸방으로 모여들었다. 형이 풀어놓은 선물은 대충 이랬다. 조니워커 블랙레벨과 캔트담배 그리고 각종 초코렛. 내가 받은 것은 파카 볼펜과 카시오 전자시계. 물건을 하나씩 내놓을 때마다 긴 설명이 이어졌다. 도둑질하면 손 잘린다 여자와 눈 마주쳐도 감옥에 간다 술 마실 생각은 꿈도 못꾼다 등등. 이어 사우디 공사현장의 더위와 열악함, 힘든 노동의 나날을 얘기 할 땐 형도 어머니도 동네사람들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었다. 그때 동네에서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형이 유일했다. 당연히 하늘을 나는 기분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행기 이착륙의 긴장에 대하여 스튜어디스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기장의 제복이 얼마나 근사한지에 대하여. 비행기 안에서도 밥을 준다는 것과 그 맛의 짜릿함에 대하여 긴 설명을 이어갔다. 그땐 레슬링하면 김일. 축구하면 차범근 회사하면 현대 그리고 외국을 떠올리면 대한항공(K.A.L)이었다. 김일과 차범근의 플레이는 전설처럼 멋진 추억으로 각인되어있고 현대(HYUNDAI)라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못할 짓 많이 한 회사라는 건 그 후로 몇 년 걸려 알게 되었지만 대한항공(K.A.L)의 국적기에 대한 위상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국위선양과 관련하여 모든 멋진 놈들은 대한항공의 트랩을 밟고 내렸고 대한항공의 트랩을 밟고 장도에 올랐으니까. 하늘을 나는 태극기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 바이칼호수와 대한항공(K.A.L). 마치 천국과 지옥 대략 내용은 이렇다. 지난 7월 6일 나는 29명의 순례단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에 나섰다. 분단을 넘어 대륙으로 미래로 향하는 길. 블라디보스톡의 안중근. 하바로프스크의 김 알렉산드리아를 만났다. 우수리스크의 최재형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도려내어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자했던 순교자의 날선 핏방울을 가슴에 새겼다. 역이주한 고려인들의 마을인 우수리스크의 고향마을에는 희망 과수원이란 팻말을 세우고 거기서 자란 과일이 우리가 역사의 이름으로 빚졌던 고려인들에게 얼마나 큰 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궁리하며 흐뭇해했다. 두 번의 일출과 세 번의 일몰을 맞으며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맞은 바이칼. 발목만 닿아도 무릎까지 시리는 차가운 물에 온몸을 담구고 내장을 꺼내어 삶에 찌든 찌꺼기를 흔들어 씻는 나만의 의식은 전율 이었다. 그렇게 스물아홉 도반들은 각자 때로는 함께 자근자근한 감동들을 쌓아가며 일정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13일이었던가. 마지막 날 밤 시베리아의 파리라 일컫는 이르쿠츠크에선 전제군주의 압제에 맞서 혁명을 꿈꾸었던 순진한 러시아 장교들의 데카브리스트의 흔적을 더듬으며 시베리아에서의 마지막 보드카를 들고 건배 하는 시간. 안내자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이르쿠츠크발 인천행 비행기(kal984편)가 연착이 되었다는 전갈이다. 정확히 975분 11시간하고 15분이다. 아예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지 않았단다. 이르쿠츠크 공항에 낀 안개 때문이라는데 이렇게 청량한 하늘에 웬 안개인가 의문이 들고 공항출발 두시간전인데 이제야 통보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싶기도 했으나 일단 벌어진 일. 부랴부랴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 한다. 오전 세시 반 출발이 다음날 오후 두시 반으로 늦춰졌으니 문제는 숙소와 이동수단인 버스다. 마침 이르쿠츠크에 대규모 유럽인들이 몰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길바닥에서 자야한다는 안내자의 다급한 요청에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건 총 2000달러 쯤 되는 추가 비용 때문이다. 여행의 막바지라 대부분 주머니에 차비만 남겨둔 상태에다가 방학 중 알바비를 아끼고 아껴 참가한 대학생, 큰맘 먹고 다섯 가족이 모두 참가한 경우. 기업의 지원을 받아 참가한 새터민 학생들에게 추가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될터. 어찌어찌하여 순례를 준비한 희망래일과 후원해준 회사의 추렴으로 숙박을 결정하고 그 밤 K.A.L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안주삼아 보드카를 들이킨다. 이르쿠츠크 공항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르쿠츠크 공항의 국제선은 무척 좁다. 80년 대비 내리는 호남선의 애환을 간직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의 호남선 대기실에 비해 약 1/3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아침 8시 반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비행기 탑승까지 무려 7시간을 더 지체해야 한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잠시 몸누일 공간도 없어 서너 평도 안되는 작은 상점을 들락거리며 연신 음료수만 먹어댔다. 억울한 마음에 푸념이라도 할 요량으로 K.A.L 직원을 찾았으나 코빼기도 안비추고는 달랑 사과문 하나 붙어있다. 역시 안개로 인한 연착이란다. 죄송하다지만 죄송한 흔적은 공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나중이라도 K.A.L 직원을 만나면 간단하게 섭섭한 심정을 전하는 정도. 국적기 아니던가 하늘을 나는 태극기 아니던가 말이다. 문제의 kal984편이 도착하려던 어제 저녁 이르쿠츠크 공항에 안개가 있었는지를 현지 공항 직원에게 물었다. 대답은 “아니오” 오히려 직원은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 어제 K.A.L기 연착은 인천공항의 사정 때문 아니었던가요? 여기는 모든 게 정상이었어요. 다른 모든 비행기는 제때 도착했습니다”. 뭔가 캥기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 번 직항을 운영하는 K.A.L이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자회사의 이익을 위해 비행시간을 마음대로 조정 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것 보게? 승객이 애완동물인가 지루한 대기시간이 지나고 비행기 표를 끊는 시간. 환갑을 넘기시고도 일행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던 박 선생. 우 선생 부부. 전 선생께는 무척 죄송한 마음이 든다. 말이 7시간이지 그야말로 돈 내고 묵는 감옥 아니던가.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지점장에게 점잖은 항의를 하고 나선 출국장 안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할 말은 많되 통로를 몰라 침묵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선생을 만났다. K.A.L측의 일방적 통보로 좌충우돌했던 우리와는 달리 선생일행은 항공사 제공으로 호텔에서 잠을 편히 잤다는 거다. 거기다가 아침까지 챙겨 드셨단다. “이런 일이 있으면 무조건 공항에 와야 해요. 와서 따지고 따지고 또따지고, 이XX들은 그래야 말을 들어요” 격한 언어를 써가며 열변을 토하시는 ***선생은 어젯밤 한 시간이 넘는 항의에 지금도 목울대가 아프다며 헛기침을 하셨다. “저희 일행 말고도 어젯밤 함께 공항에 왔던 부산의 일가 네 분이 있어요. 그분들도 함께 호텔에 묵었어요. 지점장이 말이지요 우리가 숙식을 제공 받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단 말입니다. 근데 그게 가당키나 해요? 이선생도 이건 아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 그때 나는 왜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먼저 생각났을까. 하늘을 나는 태극기 대한항공에 대한 믿음. 꿈의 바이칼로 편안히 모시는 Excellent in flight의 환상이 일거에 무너진다. 나는 목마른 놈이 되었어야 했다. 배고파 칭얼대는 아이가 되었어야 했고 불만이 있으면 온 집안을 헤집어 주인의 관심을 사는 애완동물이 되었어야 했다. 멀쩡히 비싼 값의 요금을 지불하고도 K.A.L은 결국 승객을 애완동물 취급하고 거기다가 거짓말까지 강요했다. 이미 지난 2월13일 예정되어있던 시베리아 횡단과 바이칼 기행(한겨레 통일문화재단.(사)희망래일)주최)도 K.A.L의 일방적인 운항불가 통보로 취소 된 적이 있다. 항공편은 물론 열차(TSR)와 숙소 그리고 이르쿠츠크 시 의회와의 협약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행사를 진행했던 여행사의 본부장은 아직도 그 분을 삭이지 못한다. 배상은 물론 사과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 작년 그러니까 2011년 9월3일에도 일방적 결항 사태는 있었다. 그때는 우리보다 정도가 더했다. 역시 기상상황 악화가 그 이유다. 무려 28시간 지연. 아니 지연이 아니고 결항이라 불러야 옳다. 무슨 놈의 안개가 28시간씩이나 지속된단 말인가. 그들에게 기상상황 악화라는 말은 항공사 내부의 사정을 은폐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닌가. 사진 출처 - 필자 대학의 등록금 인상경쟁에 학생들은 알바 하느라 정신이 없고 제발 좀 그만 파헤치라고 사정해도 숫한 자연은 건설회사의 이익이 되어 속절없이 무너져 간다. 자기 집 허물지 말라며 폭압경찰에 항의하던 청년은 방화범이 되어 아직도 감옥에 있고 경찰도 아닌 조직깡패들의 용역질에 노동자들의 평안한 삶도 울부짖음으로 변한다. 목마른 세상이다 찾아야할 우물도 널려져있고 참 배고픈 세상이다. 울며불며 떼를 써야 할 일도 지천이다. “권리의 침대위에 낮잠 자는 권리는 어떤 것으로도 보호 받을 수 없다”지만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는 고객에게마저 애완동물 취급을 하는 항공사의 행태는 돈 내고 한뎃잠 자고 거기다가 항의까지 하지못하는 승객들을 서글프게 한다. 명색이 하늘을 나는 태극기 아닌가 말이다 Excellent in flight도 이르쿠츠크 행은 믿지 마시라. 당신도 언젠가는 우는 아이가 될 수 있으니까. 대한항공은 비행기 꼬리에 붙은 태극마크를 가려줬으면 싶다. 태극기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진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308 | 추천: 0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플래티나 데이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은 일본 도쿄 시부야 변두리 러브호텔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장면에서 시작되는데 담당형사 아사마는 상부의 지시로 경시청 특수해석연구소에 DNA샘플 조사를 의뢰합니다. DNA샘플이 전과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반 수사절차로 알았던 아사마는 DNA조사 결과를 보고 당황합니다. 조사결과는 “성별, 남성. 나이, 40세 플러스 마이너스 10세, 혈액형 RH+ O형. 신장은 170센터에서 180센티미터 사이….”로 시작되어 마지막으로는 “도쿄도 고토구에 살고 있는 야마시타 이쿠에. 이 여성의 3촌 이내의 친족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DNA로 범인의 인적 사항을 거의 확실히 찾아내는 수사기법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일본 경시청은 흉악범죄에 대한 검거율 상승을 명분으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DNA자진등록을 촉구합니다. 현실도 아닌 미스터리 소설을 언급한 것은 위 소설을 꼭 공상으로만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주민등록제도와 지문날인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를 뺀 다른 나라는 주민등록제도나 지문날인제도가 없어도 잘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유독 개인정보침해, 인권침해 문제가 큰 이 제도가 강건하게 존속되고 있는 것일까요? 단지 존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진화ㆍ발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수 차례에 걸쳐 전자주민등록증을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증의 위ㆍ변조와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입니다. 제도 도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의 위ㆍ변조로 인한 범죄의 폐해 사례가 집중적으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을 통한 신원확인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바로 주민등록 위ㆍ변조를 통한 범죄가 일반화된 것이라는 반론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최근 경찰청은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실종을 예방하고 실종 시 빨리 찾기 위해 지문사전등록제를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만 14세 미만 어린지, 지적ㆍ자폐성 정신장애인, 치매 환자 등을 대상으로 보호자가 지문과 얼굴 사진, 기타 신상정보를 경찰청에 등록해 두고 실종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련자료를 활용하는 제도로서 어린이의 경우 길을 잃었을 때 지구대와 파출소에 설치된 지문인식기를 이용해 보호자를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염려하는 부모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자기정보결정권 침해나 정보유출가능성으로 인한 위험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는 제도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을 토대로 적용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용산 초등학생 살해 사건 이후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 제도가 쉽게 도입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과거 인권에 대한 선구적 논의가 마련되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문제 상황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에 맞추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관리하고 결정할 수 있으며 국가가 이를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성범죄 방지를 위해 발찌 착용 제도를 도입한다거나 미아를 찾기 위해 어린이에 대하여도 지문등록제를 시행한다는 등의 손쉬운 방식에 의존하게 되면 문제 해결의 본질을 놓친 채 임기응변적인 해결만 모색하는 노릇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172 | 추천: 0
김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근래에 필자는 책방에서 책을 살피다가 제목에 ‘꽂힌’ 책이 있었다. 그 제목은 ‘가슴이 시키는 일’이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가슴이 시키는 일’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고, 하면 할수록 내가 정말 행복한 일’이며,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풍요롭다,” “하늘이 주신 지금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며, “항상 절망이 아닌 희망의 편에” 선다고 설명한다.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 마을 톤즈로 떠난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휘황찬란하고 볼거리가 많은 유럽 대신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로 가장 먼저 달려간 ‘바람의 딸’ 한비야 씨” 등을 예로 들며, 저자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한 걸음 더 내닫는 힘이 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의 질타와 무시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인생의 무게와 꿈을 바꾸지 않는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했기에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평범함을 뛰어넘어 비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사람들,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가슴이 시키는 일’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만 죽을 때 후회 않는다고 한다. 어떤 책을 보면,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5가지” 중 첫째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서 살지 않고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고, 둘째는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지 말걸 그랬어.”라고 한다. 곧, 자신의 삶, 자신의 일이 먼저 주관적으로 ‘의미’가 있고 가슴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후회 없는 삶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의미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이 모든 것을 열심히 추구해서 큰 성과를 얻으면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참된 ‘행복’일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마태오 5장 6절)라는 성경 말씀은 ‘옳은 일’에 대한 추구 없이는 결코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할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동서양의 재벌, 갑부들이 인생 말년에 부랴부랴 큰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깨달음에서 오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이 시대, 한국인들은 ‘옳은 일’, 곧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책『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에서는 10만부 안팎으로 팔린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130만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샌델 자신도 “놀랍고 말문이 막힐 정도”라며 한국 독자들의 반응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월 스트리트 저널」이 2012년 6월 7일 서울발 기사에서 전한 바 있다. 이 신문은 미국은 38%의 응답자가 미국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답변한 것과 달리 한국은 74%의 응답자가 불공정하다고 답변했다는 것은 “한국 국민들이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사회경제적 불리함을 치유해야 한다고 믿는 확률이 한국은 93%로 미국인의 56%와 비교해서 더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 <가슴이 시키는 일 PART. 2: 실천편> 사진 출처 - 교보문고 이러한 ‘옳은 일’ 내지 ‘정의’ 문제의 핵심은 ‘인권’이다. 인간이라는 이유 그것만으로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인 그 인권조차 침해당하는 이들이 사방에서 급증하기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그 ‘옳은 일’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권 실천의 노력과 투신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각자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이 아주 작더라도 그것이 모이면 결코 작지 않음을 우리는 인권의 발달사, 혹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가슴이 시키는 일’과 ‘옳은 일’에 대한 목마름을 강조하며, 필자는 이 시대의 우리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기를, 그럼으로써 남들과 똑같지 않고 비범하게 인생을 살기 바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강조한 말도 바로 이것이었다. “너의 인생을 비범하게 만들라!(Make your life extraordinary!)”라는 그의 가르침은 “현재를 즐겨라!(Seize the day!)”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함께 명대사이자 참된 가르침의 예로서 그 영화가 나온 1989년 이래 현재까지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슴이 시키는 일’이 정의롭기까지 해서 ‘옳은 일’에 대한 목마름의 해갈에도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이것이 인권교육의 몫이며 ‘인권’이 ‘가치’로서 교육되어야 할 이유이다. ‘가치’로서의 인권에 대한 생각은 필자가 지난 15년 간 대학 강단과 시민강좌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갖게 된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군부독재시대가 아닌 지금의 시대에는 ‘이념’으로서보다는 ‘가치’로서 인권에 접근하는 것이 훨씬 호응도 크고 더 맞는 방법이다 싶다. ‘가치’로서 인권에 접근한다고 함은 사회변혁 이념으로서 혹은 지식이나 이론 내지 규범으로서 인권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혼란을 극복하게 해 주는, 분명히 옳기에 올곧게 추구할 만한, 특히 가슴을 뛰게 하는 ‘가치’로서, 인권을 가슴 안에 심어주는 것을 뜻한다. 이는 사회 안에 만연한 반(反)인권적인 가치와 불의에 대항하는 의로운 분노와 실천적인 저항, 그리고 가슴 뜨거운 소통과 ‘연대’(solidarity)와 자연스레 이어진다. 하여, 가슴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담음으로써 ‘인권이 시키는 일’이 곧 ‘가슴이 시키는 일’이 된다면, 그것을 하며 사는 일이야말로 행복과 만족의 길이며 “평범함을 뛰어넘어 비범한 삶을 사는” 길일 것이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가슴이 시키는 대로 못살고 익숙한 평범함에 안주해버리는 일, 적어도 그렇게는 살지 않으려 하는 것, 그 자체가 곧 비범함이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가슴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담아, 생각하면서 살 일이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226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6월8일과 10일 홍대 부근 일대의 클럽과 야외에서 금지곡 콘서트가 열렸다. 70년대 박정희의 유신체제 하에서 금지곡이 되었던 노래들을 요즘 세대의 젊은 음악인들이 새롭게 해석해 부르는 콘서트다. 이 콘서트는 의미심장하게도 6월 항쟁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생각해 보면 대중의 의식과 감성까지 통제하려 했던 군사 독재 시대의 유물인 금지곡만큼 민주주의 의미를 새롭게 기억하게 하는 게 또 있겠는가. 70년대 금지곡 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물론 당대 대학생들의 감성과 정신을 보여주었던 일군의 통기타 음악이다. 70년대 대학생 계층에 의해 주도된 청년문화, 특히 통기타와 록음악이 단지 일부 계층의 소비문화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청년 세대의 감성과 의식을 대변하는 뛰어난 작가적 뮤지션들을 통해서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뮤지션을 꼽는다면 모던포크의 기수였던 김민기와 한대수, 청년문화의 울타리를 넘어 주류권의 스타로까지 도약했던 송창식과 이장희 그리고 한국 록의 대부라 불리는 신중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대 청년 세대의 감성과 의식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많은 노래가 금지곡의 사슬에 묶임으로써 70년대 청년문화의 정치성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전체를 일사불란한 병영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게 대학생 집단은 가장 큰 반대세력이었고, 이들의 문화는 체제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방종으로 인식되었다. 군사정권은 이미 70년대 초부터 대중음악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며 금지곡을 양산하고 있었는데,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1975년에는 문공부가 나서서 아예 모든 대중가요를 재심사하며 222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이어 ‘방송윤리위원회(방륜)’이 ‘고래사냥’, ‘아침이슬’ 등에 추가로 금지조치를 행하게 된다. 그 해 말에는 이른바 대마초파동과 함께 청년문화의 주역 대부분이 활동을 정지당하고 방송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됨으로써 70년대 초반을 장식했던 통기타음악과 청년문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김민기의 경우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은 공식적으로 ‘아침이슬’ 뿐이었지만 사실상 그의 이름을 건 모든 작품이 음으로 양으로 금지되어야 했고, 한대수의 경우도 ‘물 좀 주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이미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송창식의 ‘왜 불러’와 ‘고래사냥’, 이장희의 ‘그건 너’ ‘한 잔의 추억’도 금지되었고 신중현의 ‘미인’ ‘거짓말이야’ 등 많은 노래도 금지되었다. ‘거짓말이야’의 금지 사유가 ‘불신풍조 조장’에 있었다는 건 그 시대를 함축하는 코미디지만, 더 기가 막힌 건 ‘미인’ ‘고래사냥’ 등 이미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노래를 금지시킨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당시 심의위원이 “가사나 곡 자체는 문제점이 없으나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좋지 못한 점을 감안’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노래 가사를 불건전하게 바꾸어 부른다는 게 이유였다. 음악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노래가 사회적으로 활용되는 사후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던 셈이다. 금지의 사슬은 국내 가요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구미의 많은 팝음악들이 이른바 가요정화를 위한 금지의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금지의 사유는 크게 1)혁명 고취 및 불온물, 2)퇴폐 저속 외설작품, 3)마리화나 음악 등이었다. 존 바에즈의 ‘We Shall Overcome'과 밥딜런의 ’Blowing in the Wind'는 ‘반전’으로, 비틀즈의 ‘Revolution'과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은 ‘불온’으로, 맬라니 사프카의 ‘Lay Down'과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Plastic Fantastic Lover'는 '불건전'으로, 시카고의 ‘25 or 6 to 4'와 템테이션스의 ’Psychedelic Shack'는 환각으로, 조니 미첼의 ‘Woodstock'은 ’퇴폐‘로 각각 금지당해야 했다. 일부 곡이 금지가 되면 앨범 발매가 정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저 유명한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선 ’Lucy in the Sky with Diamond'와 ‘A Day in the Life'가 빠져야 했고, 사이먼 앤 가펑클의 <Greatest Hits>에는 ’Cecillia'가 없으며, 퀸의 <A Night at the Opera>에는 ‘Bohemian Rhapsody'가 없고 딥퍼플의 <In Rock>에는 ’Child in Time'이 빠져야 했다. 대부분 해당 앨범의 핵심적인 곡들이었으니 한국의 팝음악 팬들은 이 시기 팝음악의 정수를 제대로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했던 셈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이른바 빽판이라 불리는 불법복제판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6월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앞 놀이터에서 6월항쟁 25주년 행사국민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금지곡콘서트에서 인디밴드들이 70~80년대 금지곡들을 부르고 있다. 사진 출처 - 스포츠서울 금지곡에는 월북 작가의 작품이나 트로트 가요들도 적지 않았고 록 계열 음악도 있었다. 대마초 파동 역시 록 음악인들과 통기타 쪽에 두루 걸쳐 있었다. 중요한 것은 가요 재심사나 대마초 파동이 유신체제에 대한 사회적 도전을 엄단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일신해 이른바 국민총화를 달성한다는 군사정권의 정치적 전략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군사정권의 경직된 시각에서는 청년세대의 최소한의 자유주의조차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고, 대학가를 장악했던 청년문화는 이른바 국민총화를 해치는 ‘불온’과 ‘퇴폐’의 온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김민기와 이장희의 차이, 심지어 신중현과의 ‘차이’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모두가 국민총화를 해치는 척결 대상이었을 뿐이다. 6월8일과 10일의 금지곡 콘서트를 찾은 젊은 세대는 그들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금지곡의 시대를 아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노래들이 금지된 사유를 들으면서 아마 배꼽을 잡고 웃거나 어이없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수십 년 전에 있던 어처구니없는 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도 될 만큼 지금 우리의 현실이 편안하지 않다. 금지곡의 칼날을 휘둘렀던 독재자의 딸이 다음 번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심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 아버지 시대에 남발됐던 금지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5.16을 구국의 혁명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금지곡도 유신체제의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와 국민총화를 위해 불가피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할까? 그것이 궁금하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263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언젠가 역사가 반드시 심판해 줄 것이다!”―내가 가장 가소롭게 생각하는 굴절된 역사인식의 하나이다. 이는 정치·사법적 결정의 부담함에 항거하는 희생자들이 ‘역사라는 엄숙하고도 휘황찬란한 이름’을 빌려 항변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유감스럽지만, 정의의 칼날을 휘둘려 줄 역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과거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불완전하게 가매장된 ‘그 무엇’이며, 무덤 위에 새겨질 묘비명을 둘러싼 논쟁과 알리바이가 반복될 뿐이다. 말하자면, 역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형식과 내용으로 과거 기억을 채집, 구성, 유포, 기념, 공식화 하려는 세력들 사이의 투쟁이다. 기억/망각 투쟁에서 승리하여 현재를 호령할 목적으로 지배자들은 역사서술의 각종 공식 혹은 꼼수를 발명한다. 불편한 인물이나 사건 그 자체를 역사리스트에서 아예 삭제하거나, 하찮거나 실패한 이야기로 각색하여 기각시키거나, 구별하기(정상-비정상)나 등급나누기(선진국-개발도상국-후진국 따위)로 혼내주기 등의 전략이 동원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대혁명의 자유․평등․우애의 함성에 힘입어 카리브 해 생도맹그에서 발생했던 흑인노예들의 봉기와 아이티 혁명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건방진) 역사’로 강제 망각되었고, 이들이 탄생시킨 세계최초의 식민지해방 유색인 공화국(1804년)은 오랫동안 서양문화사에서 유령취급을 받았다. 또한, ‘검은 인권’의 신체와 영혼에 가해진 고통의 시간은 은폐되고 서구중심세계관으로 대체되었다. 절대정신(자유)이 발전(자기인식)되는 과정으로 세계사를 규정했던 헤겔은 “인간을 먹는 것은 아프리카 원리에 합치하고, 흑인들의 운명은 노예제도이다.”라고 《역사철학강의》에서 기록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망각을 조정하고 통제하려는 ‘기억의 정치학’은 현재진행형으로 작동 중이다. 냉전체제와 반민주적 근대화 과정에서 억압되고 왜곡되었던 기억들과 목소리들이 침묵의 철판을 뚫고 다시 돌아와서 위로부터 주입된 ‘단 하나의 국가 기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일상생활에 각인된 대항기억을 만들고 있다. 한국전쟁 때 발생했던 ‘거창양민학살사건’은 국가와 유가족 사이의 협상을 걸쳐 ‘거창사건’으로 추모되었으며, ‘박정희기념도서관’은 ‘마포-상암동 공립도서관’과 경합을 벌리고 있다. 청계천 보세공장에서 새벽마다 터졌던 코피는 전력으로 돌리는 인공 시냇물로 씻을 수 없고, 구로동 벌집과 가발공장 기숙사를 점령했던 산업먼지가 각혈했던 노동의 쓰라린 기억은 첨단적인 디지털 분칠로 감출 수 없다. 이처럼 ‘기억의 장소’를 거점으로 펼쳐지는 다른 기억들의 갈등과 쟁탈전이야말로 역사를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력이다. 다른 한편, 기억/망각 투쟁의 결과가 미래 역사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잘 알려진 통속적인 사례를 들자면,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국민투표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걸쳐 1852년에 프랑스 황제가 된 것은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대중의 기억/망각의 힘 덕분이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특정한 양식—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계승자이며 강력한 지도자의 표상이다―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어리석게도 과거의 나쁜 기억―나폴레옹은 언론과 노동권의 탄압자이며 전쟁광이다―을 망각했기 때문에, ‘빛나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삼촌의 대를 이은 조카에게 통치권이 주어진 농담 같은 역사극이 연출되었다. 이런 루이 나폴레옹의 등장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프루동(“사유재산이란 도적질 한 것이다!”라는 급진적인 발언을 했던 사회주의-아나키스트)은 해외로 망명해야만 했고, 나폴레옹 3세가 건설했던 제2제정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파리코뮌의 내란으로 붕괴되었다. ▲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노순택 사진가) 21세기의 어둑새벽을 견디는 이 땅에서도 미래를 담보로 한 기억과 망각의 또 다른 큰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식민시대 일본육사졸업생이며 해방공간의 ‘좌빨’ 청년장교 신분으로 군사쿠데타를 주도하여 스스로를 구제했던 야심찬 한 장군의 딸이 아버지에 대한 대중의 기억(혹은 망각)에 기대어 대권의 꿈을 엿보고 있다. 제3공화국 대통령이며 유신정권의 창출자였던 박정희의 맨 얼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분단국가의 한계 속에서 총과 삽을 들고 조국 근대화를 완수했던 불굴의 영웅인가 아니면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화운동을 냉동시켰던 겨울공화국의 독재자인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박정희의 실존적 정체가 정녕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대중이 그를 과연 어떤 ‘역사적 모습’으로 기억/망각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그 딸의 내일이 달려있을 것이다. 포항제철과 새마을운동, 월남파병과 남산 중앙정보부, 각하의 모심기 시범행사에 끌려나온 막걸리와 최후의 만찬장에서의 노래반주에 곁들여 마신 양주 시바스 리갈 사이의 모순되고도 풍부한 기억과 이미지를 누가 어떻게 조합, 각색, 은폐, 짜깁기하여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초상을 완성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눈물로 호소해도 “역사적 심판은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전쟁과 배고픔의 악몽, 4.19와 5.16의 숫자가 엮는 기억/망각의 숨바꼭질, 제주도 4.3, ‘대구 폭동’ 찍고,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시위, 작금의 종북(從北) 올가미 씌우기 등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숨 가쁜 고비와 행진을 어떤 빛깔과 용어로 덧칠(전문용어로 뽀샵^^)하고 (기억의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내서) 재활용 할 것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기억투쟁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2012년 후반의 대선을 준비하는 역사무대가 온갖 저질스러운 역사기억의 막장 드라마로 퇴행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 반세기 동안 혼란스럽게 뒤엉켰던 기억과 망각의 실타래를 (재)정렬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 중요한 미완성의 역사를 스스로 서술하려는 당신을 위해 덧붙이자면, “기억은 항상 개인에서 출발하여 개인에게서 완료된다.” 일상생활정치의 올바름과 역사적 책무는 ‘그 딸’이 자동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와 새롭고도 즐거운 공적 기억 다시 만들기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자.
2017-07-14 | hrights | 조회: 1383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흔히 국가보안법은 사문화 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과거 수많은 고문에 의한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은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 오·남용 사례는 오늘 날에는 사라져 가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는 마치 야권이 국회의 다수가 되면 국가보안법 폐지는 따 놓은 당상인 양 예상하기도 하였다.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국가보안법이 탄생한 이후 한반도를 지배하는 1948년 체제는 여전히 굳건한 장벽을 드리우고 있다. 그 장벽을 타고 넘거나, 깨드리고자 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소수이기에 ‘사문화’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소수의 사람들에 대하여 세상은 ‘미친 듯’ 그들을 미친 사람, 과격한 사람이라 놀려댄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분간키 어렵다. 장벽의 어두운 그늘에 짓눌려 소리 없는 아우성조차 내기를 포기한 용기 없는 자들이 다수가 되고 말았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그들이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으로 정상적으로 평가되는 그 자리에 국가보안법은 서슬 퍼런 칼날을 품고 지켜서 노려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 있는 자들의 투쟁과 단결이 없이는 절대 요행수로 폐지될 리 만무하다. 참여정부 시절 ‘하마터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뻔 했다는 전혀 근거 없는 루머가 횡행한 적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체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제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어둠의 장막이 이내 곧 걷힐 것처럼 거짓 소문을 온 동네에 퍼뜨린 탓이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어둠의 장막 속에 갇혀 그 곳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용기 없는 자들의 꿈에는 지금도 도깨비 요술방망이 같은 요행수를 쫓아 탈출의 신기루가 자주 보인다. 국가보안법은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분단 냉전 체제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킴으로써 친북, 반미 영역을 거세하거나 고립시키는 대신에 친미, 반북 정권을 유지, 온존하기 위한 법이다. 대북적대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한반도 분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노력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안법은 절대로 그 운명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 사진 출처 -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누구인가?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 피해자다.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자들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쳐놓은 장벽과 장막의 함정 안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정상적 상태로 간주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 피해 환자이다. 막걸리 집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북의 지도자를 위해 만세를 부르자고 제창한 이가 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친구의 제창에 함께 만세를 따라 부른 이가 있다. 또 한 명의 친구는 북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무서운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친구를 공안기관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1세기 ‘막걸리 보안법’ 사건이다.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국가보안법은 술자리에서 북의 지도자를 찬양한 ‘과격한’ 행동의 소지자를 처벌하고 있다. 친구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신고한 이는 물론, 현장에서 친구의 만세 제창에 호응한 이도 공안수사기관에서 과격한 친구를 탓하며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과격한’ 그 누구를 탓하며 마녀 사냥하지 않고서야 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1948년 체제는 여전히 건재하다. 친구를 밀고하고 비난하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없는 그들이 바로 국가보안법 피해 환자이다. 국가보안법을 탓하지 않고 그 체제에서 불편함 없이 일상을 살아가며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분단냉전체제에 무관심한 채 어느새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의식을 상실해 버린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 피해 환자이다. 국가보안법 피해 환자로서 병에 걸린 줄도 모른다면 치유될 수 없다. 국가보안법 피해 환자로서 그 피해를 자각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이를 고치기 위해 병원에 들려 진단하고 치료하기를 회피한다면 역시 치유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당신은 국가보안법 피해자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 모두가 손을 들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라는 분명한 현실을 인정하고 함께 힘을 모아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여 싸울 수 있을 때에야 국가보안법은 폐지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에 억눌린 피해자로서 우리 모두의 단합된 힘만이 국가보안법의 장벽을 부수고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우리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한반도를 살아가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여!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1948년 체제에 맞서 우리 모두가 국가보안법으로부터 해방되어 치유되는 그날까지 희생을 각오하고 단결하여 싸우자.
2017-07-14 | hrights | 조회: 1553 | 추천: 1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다시 공안검찰이 떴다.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 과정에서의 부정 사건을 수사한다며 당원명부를 빼앗아갔다. 정당의 당원명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임정혁 대검찰청 공안부장은 22일 통합진보당 사태가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넘어 공분을 초래하게 되었”다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앞장서 통합진보당의 불법과 탈법을 일소하겠다는 투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검찰은 자신이 무슨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도 되는 양 해결사를 자처한다. 그러나 이 신기한 기계장치는 정밀하게 조작된 특정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전가의 보도임에는 틀림 없으나 상대를 가린다는 특징이 있다. 달력을 다섯달 전으로 넘겨보자.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박희태 국회의장으로부터 돈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한 이른바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같은 공안사건이었지만,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발표 같은 건 없었다. 핵심 용의자인 박희태 의장은 폭로 직후 출국했다. 박 의장은 사건이 충분히 잊혀진 뒤 슬쩍 들어왔고, 검찰은 방문조사로 검찰 선배에 대한 예를 갖췄다. 검찰은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에 전념하기보다 뜬금없이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터뜨렸다. 관련 증거라며 CCTV 동영상까지 제시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돈봉투가 아니라 초청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스타일을 구겼지만 말이다. 수사 주체는 이번에 통합진보당을 압수수색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였다. 전형적인 물타기였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사건이 터지면 일단 핵심 당사자들이 나라를 떠나는 건 이명박 정권 들어 반복되는 현상이다. 한상률 국세청장이 그랬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이라는 정용욱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최근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자금관리인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동조 제이앤테크 사장이 출타중이다. 공교롭게도 박영준의 대구 선거사무실은 검찰의 압수수색 전날 포장이사를 통해 깨끗이 치워졌다. 이동조는 압수수색 당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검찰의 수사 정보가 새고 있거나, 혹은 누군가 저 높은 곳에서 조율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비근한 예는 차고 넘친다. 청와대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행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사건 등 그분 앞에만 서면 검찰의 수사 능력은 초라해진다. 정연주, 피디수첩, 미네르바, 곽노현 등 야권 혹은 반정부 세력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는 전광석화처럼 펄펄 뛰다가도 청와대나 여권 관련 수사에서는 갑자기 능력이 떨어지는 건 왜일까. 검찰을 일컬어 휘어진 검, 정치검찰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등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22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를 방문해 당사 및 서버관리업체 압수수색에 항의하며 권재진 법무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런 검찰이 거악 척결의 칼을 뽑은 것처럼 으스대는 꼴을 보면서 “걱정과 우려를 넘어 공분을” 느끼는 게 비단 나 혼자일까. 통합진보당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부정경선 잘못됐고 폭력행위 잘못됐지만 정당 스스로 해결할 문제다. 정치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했다. 더구나 다른 당은 적당히 나눠먹는 비례대표를 경선을 통해 뽑다가 생긴 일이다. 그런데 검찰은 특정 세력을 위한 플레이어임을 자임했다. 혹시 유전자 깊이 각인돼 있는 빨갱이 척결이란 명령어에 신호가 전달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의 고대 동문 한상대 검찰총장의 취임 일성이 “종북좌파와의 전쟁 선포” 아니었던가. 80년대 공안대책협의회의 악몽이 떠오른 것도 나 혼자일까. 구국의 일념으로 빨갱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밤샘근무를 자청했던 열혈 검사들 말이다. 옆으로 새는 얘기지만 이것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지난 정권에서 모든 권력기관이 과거사를 반성할 때 나 홀로 버틴 조직이 검찰이다. 경찰, 법원, 국정원까지 과거의 독재부역 행위와 인권유린 행위를 스스로 조사하고 반성했지만 검찰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그것이 설령 종북좌파라도 사상의 시장에 맡겨야 한다. 북한의 3대세습을 언급조차 못하는 세력에게 동조할 국민이 몇명이나 있을 거라고 이렇게 안달인가. 우리 국민은 충분히 성숙한 민주시민이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의 공안계통의 밥그릇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나는 발견하지 못하겠다. 검찰의 개입으로 인해 이석기를 비롯한 통진당 구당권파는 버틸 명분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검찰을 불러들인 진상조사위원회와 혁신비대위를 비난하며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들 것이다. 이석기 등이 버티는 게 조중동과 검찰에게도 바람직할 일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까지 쭉 끌고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걸 일컬어 ‘적대적 공생 관계’라 했던가. 검찰의 정치적 의도가 더욱 사악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법(法)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물(水)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것처럼 자연스런 규칙을 말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할 때 억지스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이 왜 국민적 분노를 사게 됐는지 부디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수뇌부들이야 어차피 충분한 영화를 누린 몸들이니 개의치 않겠지만 앞길이 창창한 젊은 검사들이라도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검찰이 왜 떡검, 섹검이라는 비아냥거리로 전락했는지. 국민 위에 일시적으로 군림할 수 있을지 모르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조직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가르친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147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종교언론에 몸담고 있어서일까, 정말 기적 같은 일들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어쩌면 그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온 이런 기적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또 다른 기적(?)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다. (왜 기적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함께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거나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자리에서 한두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낯설지 않은 이 말의 주인공은 돔 헬더 카마라(Helder F. Camara, 1909~1999) 대주교다. 브라질 동북부의 대표적인 빈민지역인 레시페-올린다 대교구에서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살았던 카마라 대주교에게는 「가난한 이들의 형제」「성자」라는 호칭과 함께 「공산주의자」「빨갱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교차한다. 1952년 레시페-올린다 대교구장에 임명된 카마라 대주교는 바로 그해에 지역 교회간의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질 천주교 주교회의(CNBB)를 창설해 초대 의장을 맡기도 했다. 1955년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는 그가 새로운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이 대회 마지막 날 프랑스 리옹대교구 게릴리어 추기경은 카마라 대주교에게 "당신의 뛰어난 재능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쓸 생각을 왜 하지 않는가? 빈부 격차는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는 정신이 번쩍 드는 얘기를 한다. 카마라 대주교는 이를 두고 극적인 회심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카마라 대주교가 사회복지사업만으로는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브라질 사회는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엘리트 특권층들은 국민총생산의 60%를 차지하여 부유하게 사는 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4500만 명은 36크루제리오(약 8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연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국적기업들과 결탁한 군사독재정권과 언론은 이러한 현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더 부끄러운 사실은 교회가 권력자들과 결탁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카마라 대주교는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다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더욱 깊이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안락한 주교관을 버리고 방 세 개짜리 서민아파트로 이사하는가 하면, 주교관을 개방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신학교도 빈민가로 옮겨서 신학생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만 살아온 이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일이다.) 이렇게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자 엘리트 특권층들과 권력자들은 그를 ‘국가전복자’,‘빨갱이’라며 탄압했다. 네 번씩이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카마라 대주교의 강연과 강론에 대한 보도는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금지됐고 그가 거주하던 곳은 군인들의 집중 사격을 받기도 했다. 카마라 대주교가 남긴 또 다른 유명한 얘기.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이 가난한가 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브라질에 기적 같은 희망을 선사한 카마라 대주교는 이렇게 어떤 이들에게는 ‘성자’로, 다른 이들에게는 ‘빨갱이’로 불렸다. 카마라 대주교를 존경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Luiz Inácio Lula da Silva)가 노동자당(PT) 후보로 출마해 브라질 사상 최초로 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된 것은 그의 선종 3년 후인 2002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의 정신을 따르는 이들이 지금도 브라질 사회를 희망이 조금씩 더 자라나는 땅으로 일궈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자신들의 안락한 사제관을 떠나기 싫어하는 성직자들의 삶이 너무도 당연한 것인 양 통용되는 현실. 이러한 땅에서 기적을 바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을 때가 적지 않다. 카마라 대주교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꾸고자 했던 꿈은 엄청난 기적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꿈은 브라질의 현실이 되어 가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기적이 필요한 일로 비치는 건 왜일까. 카마라 대주교가 꾸었던 꿈은 어쩌면 너무도 단순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습은 카마라 대주교 당시의 브라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희망은 스러져가고 있다. 희망을 일깨워줄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망가져가고 있다. 교회는 병들어 제 몸 간수도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언론은 탐욕을 더해가고 있다. 온갖 희망 섞인 미래를 들고 나오는 기성 정치인보다 안철수, 박원순 같은 이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어쩌면 카마라 대주교처럼 꿈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갈구가 아닌가 싶다. 카마라 대주교가 남긴 또 하나의 명언. “시간이 흘러 공산주의는 정부가 말하듯이 괴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진짜 괴물은 가난과 비참이다. 이 괴물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기적을 필요로 하는 시대, 우리 시대가 맞닥뜨린 진짜 괴물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기적은 성자를 낳을 것이다. 성자를 빨갱이로 매도하는 현실이 무너질 때 기적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279 | 추천: 3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과 자살을 예방한다는 목적에 전국 초.중.고 모든 학생에게 ‘정서행동발달 심리검사’를 동시에 실시하고 심리검사 결과는 학교에서 학부모한테 통보한 뒤 고 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들을 치료해 학생폭력과 자살을 예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심리검사 결과와 경찰이 학생들에게 실시하는 학교폭력예방교육은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심리검사 결과 같은 중요한 신상정보가 교내에 유포될 수도 있고 심리검사 결과를 믿지 않거나, 거부하는 학부모, 더욱이 요즘같이 학교를 불신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교사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영주에서 자살한 중학생은 지난해 5월 경북도교육청이 실시한 초·중·고 학생에게 실시한‘정서행동발달 심리검사’에서 ‘자살감성지수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상담센터와 연계 병원에서 심층검사를 받았으나, 이런 사실이 올해 담임교사에게는 제대로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고 언론은 보도했고, 더욱이 교육 당국이 학교폭력 예방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삼는 정보가 정작 교육 현장의 교사에겐 전달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런 ‘정보 불통’은 심리검사 결과 같은 중요한 신상정보가 외부에 유출되거나 교내에 유포되는 사태를 고려해야 하는 사정도 있고 또 다른 학교에서 전입온 교사에게 바로 알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경북 영주의 중학생 이모군 운구차가 모교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작년에 중학교에 입학한 유선이는 학급에 심한 자폐성장애를 가진 천수가 같은 학급에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천수가 쓰는 책상, 학용품 등을 더러워했고 심지어 천수가 자기 곁을 스치기만 해도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틈틈이 천수를 때렸고, 담임, 학생부실, 상담실을 찾아가서 막무가내로 천수를 학교에서 치워달라며 학교를 향해서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유선이의 강박적인 모습에 같은 학급의 학생들은 천수를 보살피고 유선이를 미워하게 되었다. 유선이는 천수를 보호하고 자신을 야단치는 학급의 학생들을 끊임없이 교사들에게 알리고 “이 학생들을 믹서에 갈아 마시고 싶다”는 말을 거침없이 해서 교사들을 경악시켰다. 그즈음 실시한 심리검사에서 유선이는 우울증을 비롯한 많은 문제가 나타나서 담임교사는 이 사실을 유선이 엄마에게 알렸다. 유선이 엄마는 인정하지 않았고, 학교에 나와서 상담교사에게 결과를 들을 때에도 “담임교사가 자신의 아이를 학급에서 보호하지 못하고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심리치료는 필요 없다며 집으로 가버렸다. 그랬음에도 학교에서는 상담치료를 하려고 했으나 유선이는 완강하게 거부했고, 학급에서는 계속 소란을 피웠다. 2학년이 돼서 천수와 다른 반이 된 유선이는 다른 문제로 교사들을 당황하게 했다.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가 늦게 귀가하면서 유선이가 야동사이트에 빠져 학교에서 자기보다 체격이 적은 남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성추행을 하는 일이 교사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춘기의 또래 남학생들에게 성적인 호기심을 이용하여 따돌림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유선이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이 유선이를 친구로 대해주고, 집에 와서 학교가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는 상황이 좋았다고 이야기 할 때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모든 학생들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로 위기학생들이 나타날 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부모에게 알려서 심리상담치료센터로 보내거나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거부하면 어떤 조치도 취할 수도 없는 행정적인 대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교사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사회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 즉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사회가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경쟁이 가득한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교육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표면적인 심리검사만 보여주기에 그치기보다는, 그와 동시에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교육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239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자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버리는 현상이 자살이다. 한국에서 자살자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IMF이후다. 1990년대까지는 대략 10만 명당 10명대를 유지하다가 2000년 이후에는 20명을 돌파하였고, 최근에는 30명대에 이르렀다. 2009년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하였고, 2.9명이 살해당했다(미국은 2008년 인구 10만 명당 11.8인 자살하고, 5.4명이 살해당하였다. 그러니까 한국의 자살률은 미국의 3배에 해당한다!!). 이미 한국의 자살률은 전염병 수준을 넘어 세계의 톱을 다투고 있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단연 1위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 들었던 민초들의‘끈질긴 생명력’과 같은 자산은 이제 없다. 신문들은 수많은 자살 사건을 보도함으로써 자살을 일상화할 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맥락을 만들지 못한다.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맥락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맥락은 대책을 예비한다. 그러나 자살은 흔히 말하는 자살예방 하이테크로 막을 수 없다. 자살하기 전에 구조요청을 하고, 생명의 전화와 상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림으로써 자살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 자살이 봄에 많이 발생한다고 하여 봄을 없애면 자살은 줄어들까? 최근에 자살이 정치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정신의학자가 국내에 소개되었다. 정치는 말 그대로 생사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지만 자살의 결심은 순전히 개인의 심리적 현상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해명하기가 불가능하다. 더구나 유사한 처지에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사정을 일반화시키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일정한 조건과 자살 간에 상관성을 발견하기 위한 학술적 노력이 계속되었다. 자살연구의 역사에서 자살의 사회적 맥락을 발견한 인물은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Durkheim)이다. 그는 <자살론>를 통해 자살이 사회적 소속감과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제시하였다. 결속(유대)의 정도가 높으면 자살률이 떨어지고 결속의 정도가 낮으면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직업, 종교, 혼인여부 등 사회적 요소들이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살이 순전히 개인의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는 탁견을 제시하였다. 앞서 말한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뒤르켐의 자살연구에 정치적 맥락을 분명하게 부여하였다.(길리건, 왜 어떤 정치인들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교양인, 2012) 그 내용은 싱거울 정도로 심플하다. 진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근 100년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자살과 살인을 다루고 있으며, 자살률과 살인률의 증감이 집권정당과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제임스 길리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1. 폭력사망률(자살과 살인을 포함함)은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했을 때만 전염병 수준(인구 10만 명당 20인 이상)으로 올라가고 민주당이 차지했을 때만 전염병 수준 밑으로 내려간다. 2. 공화당 정부가 집권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폭력사망률의 순누적 증가분이 커지고, 민주당 정부가 집권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폭력사망률의 순누적 감소분이 커진다. 3. 자살과 살인을 부추기는 사회적 경제적 원인들, 실업, 불경기,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경제적 스트레스는 공화당 정부 아래서 심각하게 증가한다. 1과 2는 통계적으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3은 일종의 해석적 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3의 명제를 밑받침해주는 부분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길리건(Gilligan)은 정신의학자로서 미국의 교정정책에서도 관여하면서 겪은 흥미로운 경험도 거론한다. 다른 여러 교화정책들이 그다지 실효적이지 못했는데 이른바 교소도내에서 학위취득 프로그램을 통해 학위를 취득한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제로에 가까웠다는 실례를 제시하고, 이러한 효과적인 정책을 공화당 정치인에게 소개하였더니 이들은 오히려 프로그램을 박살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율을 낮추겠다고 선전하지만 공화당이 집권하는 내내 범죄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간층이나 빈곤층들이 공화당을 선택하는 이유를 조지 오웰의 이중화술(double speak)과 분리통치의 기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진보파의 범죄대책은 역사 이래로 경제적 자립과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정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은 효과적이었다. 반면 보수파들은 언제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무관용정책 등 가혹한 처벌로 일관하지만 범죄율을 결코 떨어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범죄가 증가할수록 공화당의 집권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우리사회에서 남북경색이 보수진영에 무조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이러한 역설을 정연하게 해명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고 나왔던 수많은 대책도 미국 공화당의 정치적 슬로건과 꼭같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군인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하여 관심사병제도가 있다. 자살의 요인이 있는 병사를 다른 병사가 계속 관찰하고 주시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애먼 군인을 감시하고 왕따시키고 자살위험인물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대 내의 인권침해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상책이다. 마찬가지로 불평등, 실업, 빈곤의 바다에 빠져 있는 절망적인 사람에게 생명의 존귀함으로 설득하는 것은 잠시 효과가 있는 하책에 불과하다. 길리건은 자살이 특정한 정치의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사회경제적 평등과 자립의 달성과 자존감의 회복이 인간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삶의 의지도 지속시킨다는 정책적 메시지를 끌어낼 수 있다. 지난주에도 이 대통령은 스페인의 재정위기가 보편적 복지 탓이라고 말하고 언론은 여전히 이를 받아썼다. 스페인이 우리보다 나은 수준의 복지국가라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상당히 의문스러운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보고서들에 의하면 스페인 위기는 장기저리의 융자로 시작된 주택구매 열풍, 주택건설경기의 과열과 붕괴, 건설부문의 대량실업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복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현정부가 토건족 정권이라는 무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된다. 보편적 복지를 건강하게 구현하는 사회를 유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복지에 발을 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자살률 통계를 보면 1980-90년대까지는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10만 명당 연평균 20인 이하로 자살하였는데 IMF이후 특히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 20인을 상회하였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는 무려 30인을 돌파하여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수준이다. 한국에서 진보정권과 보수정권 아래서 자살률이나 살인율의 추이를 길리건의 분석처럼 비교하여 제시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로 한국의 진보정권은 집권기가 매우 짧아서 보수정권과 추세를 상호 비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 둘째로 1995년 이전에는 한국사회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서 완전고용에 가까운 저실업 사회였으므로 자살의 경제적 위험요인이 매우 작았다는 점, 셋째로 IMF 이후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IMF의 구조조정정책을 수용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취함으로써 초래된 대규모 정리해고가 파국적 작용을 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어쨌든 2000년대 이후상황에서는 길리건이 관찰한 것과 유사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17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