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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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노회찬 ‘안기부 X - 파일’ 사건 판결을 접하면서 법은 정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순수한 법 논리로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XX - 판결’이다. 노회찬 의원은 재벌가 두 사람의 여야 대선 후보 자금지원과 검찰 간부들에 대한 떡값 전달 대화 내용이 들어 있는 속칭 ‘안기부 X- 파일’을 공개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결국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어느 언론의 지적처럼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뇌물검사보호법으로 둔갑하였다. 뇌물을 전달하며 권력부패의 중심에 서있던 삼성 재벌가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았고, 오히려 정의를 부르짖은 노회찬은 범죄자가 되었다. 며칠 후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MB정권은 ‘떼법’이라는 듣보잡의 해괴한 용어를 창출해냈다. 그들이 말하는 떼법이란 ‘법이 있으면 지켜야지 떼를 쓰면 되느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상틱하게 말하자면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MB정권 5년 동안 법치주의는 줄곧 후퇴를 거듭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대다수 법률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나마 미네르바 사건, PD 수첩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등에서 보는 것처럼 법원이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 주면서 그래도 법치주의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을 법의 취지 및 정의와는 동떨어지게 MB정권의 떼법처럼 해석 적용하는 놀라운 용기를 보여주었다. 법이 정의를 지켜주지 않으며, 법이 정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례는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승만 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자행한 사사오입 개헌사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던 민주정부와 헌법을 뒤집어엎고, 자기들끼리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비상조치법을 만들어 공포 시행하고, 헌법을 개정한 일,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헌법 개정과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든 일, 전두환 등 신군부가 집권을 위해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을 개정한 일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유신헌법 국민투표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1972년 11월21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 박근혜 당선인, 육영수 여사(오른쪽부터)가 투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다시 말해 우리의 헌정사 자체가 법이란 정의가 아니라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독재자의 만능키로서 작동하였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 법은 법이라는 형식만 뒤집어 쓴 것이고, 실제로는 폭력과 전혀 다름없는 것에 불과하다. 법의 두 얼굴이고, 폭력과 법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대법원 판결 역시 법치가 아닌 정의를 저주하는 폭력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MB정권에서도 법률을 개악하는 일은 수없이 자행되었다. 한편으로는 검찰을 비롯한 법률기능공들을 이용하여 자의적인 법률 해석을 일삼고, 자기 입맛에 맞게 편파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며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다. 그리고 MB는 대통령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편에 서 있다고 보이는 사람들을 용감하게 사면시켜 주면서 법치주의를 무력화시켰다. 이제 향후 5년간은 박근혜 정권이 지배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박근혜가 말하는 법치주의 모습은 어떨까. 떼법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용어 자체가 너무 천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법이 있으면 지켜야지요. 법을 어기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입니다.” 즉 실질적으로 떼법 논리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정의를 위하여 법률이 만들어지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해야 할 법이 정의를 짓밟는 악마의 성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칙이다. 형식적으로는 법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법이라고 말할 수 없고, 법의 지배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법치주의 모습이다. 그래서 법치주의에는 정의를 지키는 일에 시민의 참여와 힘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政治)가 법치(法治)와 만났을 때 법치는 정치의 희생양으로 바뀌었고, 법치는 왜곡되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정의의 파수꾼으로서 법치주의가 실행되기를 어렵겠지만 기대해본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35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2013년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즐겁고 평화롭게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과 국경일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오늘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일상생활입니다. 말하자면, 개인이 하루하루 노동하고 생각하며 욕망하는 하찮은 삶들이 연대하여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인 기념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2013년 계사년을 맞아 우리가 뱀같이 차갑고도 매끄럽게 일상생활정치의 숲을 헤쳐 갈 몇 가지 말씀을 새해인사 삼아 모아보았습니다. Ⅰ 모든 혁명은 하나의 지배집단을 다른 지배집단으로 대치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그러나 모든 혁명은 목표를 넘어서는 힘, 지배와 착취의 근절(根絶)을 향하여 노력하는 힘을 풀어 놓았다. 그러한 힘들이 쉽사리 패배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설명을 요구한다. 권력의 상태도, 생산력의 미숙성도, 계급의식의 부재도 적절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모든 혁명에는 지배에 대한 투쟁이 승리할 만한 역사적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계기는 언제나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세력의 미숙이나 불균형이라는 이유의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자기패배의 요소가 혁명의 역할 속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배반당한 혁명이다. - 마르쿠제 1968년 혁명의 아이콘이며 신좌파의 대표 사상가였던 허버트 마르쿠제는 모든 혁명은 본질적으로 ‘배반당한 혁명’이라고 설명합니다. 혁명이 숙명적으로 실패하는 것은 계급(계층)의식의 미성숙이나 지배집단의 억압 때문이 아니라, 민중 혹은 다중(多衆)이 자발적으로 지배층의 세계관을 수용·모방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보통사람들은 교사, 기업주, 정치선동가가 외치는 “하면 [입학, 승진, 선진국] 된다!”는 ‘수행원칙’(performance principle)의 구호를 묻고 따지지도 않으며 합창합니다. 또한, 사용할 물건이 아니라 신분의 상징물인 외제가방이나 첨단전자제품 구입에 목을 매는 ‘과잉 욕구’(surplus desire)의 포로로 전락합니다. 마르쿠제의 분석에 따르면, 열심히 하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자유경쟁적인 시대정신과 내가 소비하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탈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등 떠밀려 우리는 혁명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배반합니다. ‘지배에 대한 투쟁이 승리할 만한 역사적 계기’가 바람처럼 날아갔습니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구호. "금지하는 것은 금지된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II 망각이란 천박한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그렇게 단속한 타성력(vis inertiae)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일종의 능동적인, 엄밀한 의미에서의 적극적인 저지 능력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원자료들이나 사료들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료나 사료들은 단순히 존재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와 정도로 언급되기도 하고 침묵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총포의 소음장치가 총소리를 침묵시키듯이 사람은 어떤 사실이나 한 개인을 ‘침묵시킨다.’ - 미셸 롤프-트루요 ‘배반당한 혁명’은 과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망각의 바다에서도 싹을 틉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과거 기억을 강제적으로 삭제하거나, 권력의 희생자들을 사탕과 채찍으로 침묵시키면서, 이긴 자들의 역사교과서에서 혁명은 늘 지연되고 실패합니다. 4.19와 5.16의 다른 기억들, 장준하가 베었던 돌베개의 고행과 구로공장에서의 각혈하는 노동의 새벽에 대한 기억은 근대화의 불쏘시기로 산화하였습니까? 국가권력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방해로 증언과 저항의 기억들이 탈색되지 않도록, 승자들의 달뜬 아우성에 우리들의 낮은 목소리가 침묵당하지 않도록, 역사의 기억투쟁은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III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 이 헛소리처럼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 이다 …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혁명은 가고 다시 오지 않을지라도, 그 거리에서 함께 부르던 노래와 연대감은 오롯이 남습니다. 안 되는 혁명에 쫓겨 낯선 방에 갇힌 나는 또 다시 녹슨 펜에 침을 묻혀 자유와 평등의 이름을 낙서합니다. 나의 ‘역사를 걱정하는’ 마음이 어리석은 농담처럼 경박할지라도, 우리가 맞이하는 새해는 촛불처럼 밝고 풍성합니다. 너와 내가 간직한 저항의 기억과 혁명의 추억은 봄날처럼 다시 꽃피고 지저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은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까마득한 망루에 올라 허공 속을 걷는 당신의 고독과 그 아래에서 마중하며 숨찬 나의 고독은 만나서 악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배반당하거나 승패가 있는 경주가 아니라, 일상적인 저항의 가벼움으로 비누거품처럼 번지고 서로 포옹하는 그 무엇인 것입니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37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개 부족한 것이 귀합니다. 귀한 것이 부족한건 아니구요. 부족 하다는 것은 자연의 객관적 실체이고 귀하다는 것은 사회가 부여한 가치기준일 뿐입니다. 하여 미리부터 귀한 존재는 없는 것이지요. 내 부모 내 아이가 귀한 이유는 핏줄 이라는 것 때문 이겠는데 세종대왕 이도는 부인이 여섯에 자식이 스물 둘입니다. 그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부인이 무려 열둘에 자식이 스물아홉. 이 양반들도 핏줄이라는 것 때문에 가족들이 귀했을까요? 가장 많이 살 부비고 가장 많이 입 맞추고 가장 많이 혼나고 또 가장 많이 역정 내며 살았던 세월의 흔적 그것만이 가족을 귀하게 만듭니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는”이유는 한 인간의 삶에서 가족과 같은 존재는 다시없기 때문, 즉 부족하기 때문 아닌가요? 금쪽같다고 그러기도 하고 금보다 귀하다고 그러기도 하던데 만약 금보다 흑연이 현재의 비율과 반대로 부족했다면 아마 인종차별이라는 말은 없었을 거라고 상상해 봐요. 금은 녹여서 지붕의 철판으로 쓰거나 자동차 바퀴의 휠 정도로 쓰일 것이지만 세상의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은 흑연으로 도배가 되었을 테니까요. 화폐의 가치도 흑연 본위로 매겨졌을지도 모르고 흑연과 닮은 검은색이 화려함의 기준이 되어서 무색인종에게 가장 각광받는 화장품도 검은색이었을 수도 있지요. 수도가 없었던 시절 한 마을에서 가장 귀한 것이 우물 이었습니다. 당연히 물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몽골 초원에서나 사막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오아시스입니다. 그 물로 나그네는 목을 축이고 짐승들도 갈증을 해소 합니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지요. 자연의 것 중에서 부족한 것은 모두 귀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귀한 것은 독점하지 않습니다. 그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방식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이와는 좀 다릅니다. 스스로에게는 “부족한 사람” 이라고 낮추며 겸손을 떨지만 자기보다 부족한 타인을 대할 땐 “부족함” 대신에 “모자라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지능이 부족하거나 학벌이 부족하거나 벌이가 부족하거나 죄다 모자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모자람”은 차별의 기준이 됩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모자란 사람은 점점 더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모자란 사람”의 노동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넉넉해진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부족한 것을 모자라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모자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혹독하기만 합니다. 하여 모자란 사람들은 한강대교의 난간 위를 오르기도 하고 칼바람 부는 송전탑위에서 농성을 하기도 하고 군사기지 반대를 외치며 5년 넘게 거리에서 싸우기도 합니다. 교육기업 재능교육의 해고자 여민희(39), 오수영(38)씨가 6일 오전 8시30분께 재능교육 본사 앞에 있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의 약 15m 높이의 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부족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자연의 방식이 그리운 날입니다. 그대로 적용을 한다면 신체적 자유가 부족한 장애인이 귀해지고 배움이 부족한 막노동꾼이 귀해지고 생존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귀해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단이라는 것도 귀해지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귀해 집니다. 오늘도 혜화동 성당의 15미터 첨탑위에 해고 노동자 두 분이 올라갔습니다. 그런 사람 또 없이 귀한 분들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79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 나이를 먹는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인생의 여정이 보인다. 나이가 심하게 나를 흔드는 것을 보니 갱년기인가 보다. 당뇨에도 흔들리지 않고 술과 인정에 취해 휩쓸렸건만 세월에 장사가 없다더니 허리 병의 고통에 지친 몸이 지난날의 객기를 통탄하누나. 젊은 시절부터 허리 병이 도져도 조금만 각성하고 몸을 관리하면 금세 원기회복이 되기를 수십년. 구부정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는 폼이 노인이 따로 없다. 채 몇 초를 걷지 못해 주저앉고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내 입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한숨과 함께 저절로 터져 나온 맹세가 있다. ‘남은 여생, 다시는 제 육신을 괴롭히고 학대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간혹 나이를 의식하게 된 계기들이 있다. 스물 여섯 살에 늦깎이 방위로 용산의 군 복지시설에서 웨이터를 했었다. 당시 나이어린 고참들이 ‘나이값 못한다’고 얼마나 갈구 던지... 양식당 웨이터 고참들이 제일 무서웠다. 그때까지 가난하게 자라고 연애 한 번 못해 양식을 먹어봤어야 양식 세팅이 수월했거늘 - 와, 양식에는 숟가락, 나이프, 포크, 빵에 바르는 것 등 가짓수도 많고 수프, 야채, 빵, 주메뉴 등 차례대로 격식을 차려 내놓고 주메뉴는 커다란 쟁반에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양손에 희안하게 껴서 서빙하라는 것이다. 정말 외우기도 어려웠다. 야채 나갈 때 빵 나갔다고 구르고, 수프를 너무 많이 떠서 줬다고 야단치고 주 메뉴는 격식대로 제대로 들고 나가지 못한다고 원산폭격 당하곤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나이값 하고 상관이 있겠는가, 이 어린 고참 녀석들은 항상 학력과 나이값 타령하며 심하게 갈궜다. 모욕적이었다. 암기에 능한 범생이로 자라나 개인 과외 외에는 사회적 경험도 고생도 전혀 몰랐던 자신을 돌아보며 자책도 하고 다짐도 했었다. ‘나이값’하며 살자고. 고참들의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양식당 웨이터에서 영원히 배제된 후 한식당에서 만큼은 된장찌개, 설렁탕 등 부지런히 서빙을 하는 가운데 국방의 소임을 무난히 완수했다. 다시 ‘나이값’에 대해 새삼 실감하게 되는 갱년기가 찾아왔다. 신체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지 못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며 인생의 중반전을 훌쩍 넘긴 줄도 몰랐던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의 적신호 하나로 육신과 정신의 변증법적 통일을 지향해 나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울로 자신을 찬찬히 훑어보는 귀중한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왜 이리 나이 먹어 가는 줄을 몰랐을까 하는 회한이 든다. 골병이 들 때까지 제 때 추스르지 못하고 ‘인생은 짧고 굵게’라는 객기로 세월을 거역하며 내 인생에 큰 불경죄를 저질렀다. 건강하게 살며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여정이다. 그 가운데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불혹을 넘겨 지천명으로 가는 내 인생의 여정은 솔직히 너무 멀리 왔다는 대오각성이 일었다. 육신의 쇠퇴를 경험하는 순간, 스스로의 경험과 학습의 부족을 느끼고 내 인생의 수많은 빈 구석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쳇바퀴 돌 듯 바쁜 직업의 일상에 안주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도 쇠잔해져 가고 있었다. 초심은 과거일 뿐이고 현재를 채찍질하는 초심이 없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제 몸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그 모습 그대로 인생을 허투루이 소비만 하였을 뿐 채워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일상이 스트레스로만 느껴졌기에 술과 함께 일상의 탈출을 꿈꾸었던 것이 아닐까, 정신과 육체에 작은 것 하나라도 생산적으로 채워나가는 그 소중함을 망각하였던 것이 아닐까, 무엇 하나 제대로 채워 넣은 것 없는데 무엇에 안주하여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길을 이토록 방치하였단 말인가. 지천명이 다가오는 소리가 저만치 들린다. 이제 회한을 거두고 초심을 다시 만들어 ‘여생’에 대한 알찬 설계도를 그리자. 허리 병을 앓는 새해의 참회록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62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학생들이 “편하지 않은 집”, “창틀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란 답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과 드라마 <학교2013>은 지금의 학교가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과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 중학교 입학 때 왕따를 경험한 정순이(가명)는 2학년이 되어서는 왕따를 시키는 아이가 되어서 학생폭력위원회에 회부되어 강제전학을 가고, 항상 학생들이 자기를 때리고 괴롭힌다는 혁이(가명)는 2학년 때 신체가 커지면서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을 찾아 괴롭히고 협박을 하고, 폭력에 시달리던 정근이가 폭력서클에 스스로 가입해서 폭력을 일삼는 아이로 둔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교사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무기력함을 어쩌지 못하는게 사실이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학생 모두 심리분석 결과 높은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이 발견된다. 피해 학생들은 용기를 내 신고해도 그 증거를 입증해야 하고, 가해자가 처벌된 뒤에도 남아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가해학생의 경우에는 징벌을 완수한 뒤 자신의 행동을 후회는 해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이 적어, 같은 폭력이 되풀이 된다. 교사들이 보아왔던 폭력사건에 관련된 가해학생들의 대부분이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방치되어 올바른 생활습관도 배우지 못한 아이들, 병든 조부모 곁에서 버티며 사는 아이들, 정신과적으로 문제 있는 부모들(피해망상, 심각한 불안증, 대인관계 회피증)에게 습관화된 아이들, 가족들의 폭력이 일상화 되었던 아이들이었다. <학교의 눈물>의 담당피디는 “가해자를 지켜보고 있으면 의외로 순수하고 착합니다. 왜 그런 짓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처음부터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쁜 길로 빠져요.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둔해지는 거죠. 어른들이 사건 발생시 최초에 개입하게 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사진 출처 - SBS 이런 학생들에게 학교와 사회는 소통과 치유로 다가 가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소통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기르고, 교사와의 소통이 어려운 학생들은 ‘또래 상담’(상담활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와주는 것)을 통해서 학교폭력이든, 왕따든 부모나 교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친구를 통해서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과의 소통과 학생들의 치유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계속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사회의 빈부격차가 클수록 학교폭력 지수도 높다'는 캐나다의 한 연구팀 논문에서 지적 되었듯이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교의 눈물>은 학교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영혼의 패자로 남는 잔혹한 게임’이라 말한다.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부산스럽게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각 지방 경찰청과 교육청 협력으로 스쿨폴리스를 발족하며, 가해 학생의 징계가 더욱 강화되는 모순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학교의 눈물>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던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폭력의 일차적 책임은 아이가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겁니다. 이 아이들 전부 대한민국의 아이들 아닙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아이들을 벼랑 끝까지 내몬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꿈이 되지 못하고,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매질로 학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교의 눈물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82 | 추천: 0
- '찌질함'에 대한 짧은 생각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그날(!) 이후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책상을 정리하다 문득 이중섭이 떠올랐다. 책상 위를 나뒹굴던 종이쪽들 때문이었을까. 나도 기가 찼다. 지금 왜 이 사람을…. 그놈의 ‘왜?’를 파먹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순간 프랑스 상징시인 폴 발레리의 말처럼 이 또한 무슨 ‘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보통 사람들이 이중섭하면 빈센트 반 고흐처럼 강렬한 인상을 던져주는 그의 ‘소’ 연작을 떠올릴 때 나는 그의 ‘찌질함’이 먼저 떠오른다. 고흐처럼 생전 가난과 인연이 많았던 이중섭은 6.25 때문에 제주도로 피난을 가서도 그림에 대한 갈망은 누를 수 없었든지 담뱃갑을 벗긴 은박지쪼가리나 눈에 띄는 어디에라도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남겼다. 하찮은 사물들도 그의 천재성의 세례를 받으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빛을 발하기 일쑤였다. 담배 은박지를 이용해 그린 <게와 가족>, <아이들> 등의 작품도 그의 찌질한 구석, 그의 가난한 삶에서 나온 셈이다. 그는 생전에 그린 500여 점의 작품 중 200여 점의 유화보다 더 많은 작품을 은지화로 남겼을 정도로 찌질한 삶을 살았다. 갑작스레 이중섭의 찌질함이 떠올랐던 건 우리 삶이 그 못지않게 찌질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중섭 <아이들> 1950년대 사진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무엇 하나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품고 있는가!’ 이 물음에 쉬 긍정의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현재에 대한 슬픔이 찌질함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중섭은 뭔가 달랐던 모양이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찌질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았던 게 틀림없다. 그는 아내 마사코, 3살, 5살 되는 어린 두 아들과 1.4평의 코딱지만 한 방에서 살았던 1년 남짓한 서귀포에서의 시간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되뇌고 있다. 제주 4.3사건과 6.25전쟁 등으로 변변한 영정사진 하나 없이 졸지에 변을 당한 이웃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 건네던 화가 이중섭은 겉으로 드러나는 찌질함에 비해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빛나는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도라는 자부심이 조금은 남아있었던 시절, 이중섭을 흉내 내 신문지 여백이나 종이쪽 귀퉁이 등에 몇 자 끼적여 놓고는 통쾌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건 또 왜일까. 이문열이나 김지하의 훼절 또는 배신을 보며 가슴을 할퀴어대던 기억이 몽롱하다. 그들이 그 길로 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그들을 내 가슴에서 죽였다. 육당이나 춘원을 보지 않았더란 말인가.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글 빚을 넘어서 스스로를 노예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모습이라니…. 이중섭처럼 일찍 죽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 스스로는 자신들의 처지가 찌질하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군상들이니 더 그렇다.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인터넷에서 이들의 이름을 치면 '변절'이라는 말이 함께 뜬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의 노예가 되었길래 스스로 찌질이의 길을 택한 것인가. 권력, 그리고 시대의 노예가 수없이 양산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이중섭처럼 잠시나마 행복의 기억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다시 묻고 싶어진다.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품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답하지 않고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답답함과 찌질함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힘들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마음은 영원히 풀지 못하고 안고가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됐건 가슴을 뛰게 할 무언가를 지니고 살아가지 못한다면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음을 본다. 문득 심장이 뛰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찌질함 속에서도 열정을, 사랑을 불살랐던 이중섭이 보고 싶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45 | 추천: 2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조권력의 정상을 구가했음에도 최근 들어 정당정치와 정부권력에 들어가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공무원노조나 교사의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정치성을 두들기더니 그들의 돌진적 정치성의 정체가 궁금하다. 삼성과 김앤장에 취업하는 법조인만 문제가 되겠는가? 나는 그들의 정치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들이 타인에게 요구하는 위선적 비정치성과 고위법조인으로서 자신의 은폐된 정치성을 비난할뿐이다. 헌법재판소의 장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헌법재판소는 자체적으로 바뀔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 외과적인 수술, 헌법을 고쳐야만 바꿀 수 있는 기구이다. 그래도 바꾸어야 한다. 제도로서는 완전히 미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한 기구는 해체해야지 마냥 숭배할 일이 아니다. 때마침 헌법재판소장의 인준청문절차를 앞두고 후보자의 재판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정의진보당 노회찬 의원은 후보자가 반역사적이고 반사회적 견해를 가졌다고 질타하였다.(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8865) 지금 정부여당의 기세로 봐서는 헌법의 부재증명을 하던 인물이 소장의 반열에 오를 것도 같다. 그러한 분이 헌법재판소장이 된다면 유감스럽지만 헌재의 앞날은 말하기 더욱 쉽겠다. 헌법재판소는 무엇인가? 사회적 갈등에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사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공공기관이 어디 있겠는가! 헌법재판소는 다만 이 작업을 특별히 헌법과 기본권의 이름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명성도 덤으로 얻고 있다. 그러나 현재 헌법재판소는 이 이름에 어울리는가?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편향 속에서 악법을 두둔하며 사회갈등을 지속시키고 있다. 용산참사, 노동자의 자살사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기업가의 탐욕, 이를 정당화하는 악법, 그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법원, 그 법을 정상화하는 헌법재판소가 있다. 팬을 관리하는 연예인처럼 헌법재판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품고 있는 환상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 가끔씩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정의의 환상을 재생산해야 한다. 그래야 법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을 빨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환상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 저차원의 폭력기구들 위에서 헌법의 개념을 구사하는 고비용의 기구일 뿐이다. 헌법재판소는 흔히 말하는 87년체제의 부산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87년 헌법의 장식품이자 법조인들에게는 망외의 불로소득이었다. 헌법재판은 법조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큰 빵이었다. 물론 87년 직후 얼마동안 헌법재판소는 과거 억압적 유신체제와 5공의 유산을 법치주의적으로 정비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러나 지금 헌법재판소가 다양한 정책적 법제에 대하여 그러한 통제역할을 수행할 만큼 국회보다 전문적이고 진보적인가? 아니다. 더구나 헌법재판소가 구사하는 코드는 합헌위헌 하나뿐이고, 이것도 대부분 합헌으로 귀결되고 있으므로 헌재는 더 이상 효과적인 통제장치가 아니다. 이러한 허구적인 통제장치는 도리어 의회의 부실입법을 조장할 우려마저 있다. 사진 출처 - SBS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혁신해서 활성화해야 하는가? 첫째로, 근본적인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법률가식 합법불법 코드로 충분하지 않다. 법률가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재판관으로 참여하여 국제적인 기준과 현장의 체험에 기초하여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권고하는 정책적 포럼을 만들어야 한다. 위헌성여부가 법적으로 과중한 의미를 갖는 한 위헌심사는 효과적이고 일상적인 개혁수단으로 작동할 수 없다. 인권 침해적 법률에 대해서도 다양한 결정방식을 마련하여 권고의견을 시간표에 따라 이행하도록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로, 갈등당사자들은 갈등해결기구에서 적절한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옹골차게 보수적인 노신사가 9인중 6~7인에 이른다면 헌법재판소는 기능부전상태에 이른다. 헌법재판소에서 변호인들이 인권에 대해 아무리 훌륭한 경연을 펼치더라도 결과는 쇠귀에 경읽기다. 재판관(패널)이 최소한 정치적 견해의 점유율에 부합하면서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더 정의롭게 말한다면 의회와 행정부를 차지한 정치세력은 이미 과도하게 대표되고 있으므로 정치적 반대파와 사회적 소수파의 정치적 점유율을 할증해 주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 상설적인 기구로 만들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다수가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앞의 두 방안은 현재의 헌법재판소를 땜질하여 일종의 다수의 전문가위원회의 정책권고기구라고 할 수 있다면, 마지막 방안은 상설적인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헌법배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법률의 위헌성여부는 크게 보아 법률의 공익성과 합리성의 문제이다. 일반형사사건의 배심제와 유사하게 공익판단을 위한 헌법적 배심제를 구상해보는 것이다. 전국적 수준에서 성인남녀의 신청을 받아 배심원명부를 작성하고 무작위로 추첨하여 재판부(200명)를 구성하고 해당갈등에 대하여 주말 워크샵 방식을 통해 전문가의 설명과 난상토론을 지켜보도록 하고 다시 일정한 시간을 가진 후에 공식적인 법정에서 투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법조엘리트에서 찾아 보통사람들에게 되돌리는 일이다. 아무튼 사회일각에서 87년 헌법체제의 수명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와 같은 헌법재판소는 반드시 해체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76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전 지구적으로 만성적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서민들의 가계 주름도 날로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취업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가뜩이나 사회적 안전망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아직 정년이 한참 남은 나이에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 절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그래도 한 가지 ‘비빌 언덕’이 있다면 ‘실업급여’ 제도이다. 그 수령기간이나 수령액이 얼마 되지 않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지만 그나마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사진 출처 - KBS 주위에서 실업급여를 과거에 탔거나 현재 타고 있는 사람들, 또는 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적잖게 대하게 되는 요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서는 꾸준한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아주 오래 전(십여 년 전쯤)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건성으로 ‘좀 이해가 안 가는데?’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구직활동의 알리바이를 위해 면담이나 명함 등을 요청하는 경험을 하게 되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되었다. 누군들 얼른 재취업하여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그런데 말처럼 취업이 쉬운 게 아니고, 또 사람에 따라서는 한두 달 정도 쉬고서 재취업한다든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텐데 실업급여를 타는 조건을 이처럼 까다롭게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취업 상태에서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부정수급자라면 엄정하게 가려내고 법적인 책임도 물을 일이겠지만 취업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주지 않겠다는 발상은 국민들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구직활동이 아닌, 아는 사람을 통하여 면담을 보았다고 해달라든지 명함 좀 달라든지 하는 식으로 본의 아닌 거짓말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 구직활동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경력사원을 뽑는 구인공고가 폭넓게 있어야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볼 수 있을 텐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구인 광고 조차 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꾸준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실효성이 없는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하여 국민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이런 제도는 한시바삐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실업급여가 종신까지 무기한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몰라도 불과 최장 6개월간 지급되는 실정을 고려한다면, 실업급여의 수령조건은 다니던 직장에서 본의 아니게 그만 두게 되는 경우에는 구직활동에 대한 입증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것으로 하루빨리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59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선거가 끝났다. 개인적으로 이른바 멘붕이란 게 어떤 건지 실감해 본 며칠이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기대가 컸고 결과적으로 좌절과 배신감이 컸던 때문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경상도 지역의 여전한 패권주의와 보수성, 세대 간의 투표율 차이, 50대의 반란, 언론의 불공정성, 민주당의 전략적 실패와 한계 등등 패배의 요인들이 거론된다. 다들 그럴 듯한 얘기들이지만 어떤 것도 이 답답함을 속 시원히 해소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아무려나 특정한 지역이나 세대, 집단이나 개인에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가 잘못임은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지금까지의 어떤 민주 진영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했다. 그 정도면 가히 한국 사회 진보 개혁 역량의 총합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결국 이번 선거는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수구 보수의 강고한 벽이 얼마나 두터운 것인지를 확인하게 한 선거라 할 수 있다. 방송사 출구 조사를 보며 패배를 예감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모처럼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던 젊은 세대나 일말의 희망으로 선거를 지켜보았을 거리의 노동자와 언론인들이 겪게 될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 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틀 후 158억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횡포와 노조탄압에 시달리던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최강서 조직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또 하루 만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이운남 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모든 절망의 행렬은 그만큼 이번 선거를 통해 뭔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새 세상이 조금은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이 컸고 또 절박했다는 의미이다. 절망의 또 다른 표현은 냉소와 무관심이다. 선거가 끝난 후 트위터 계정을 없애고 사라져 버린 트위터리안들이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서로 공격하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면서 상처를 주는 언사들도 SNS 상에 적지 않게 넘쳐난다. 이 역시 높은 기대와 희망이 어처구니없이 꺾인 데서 오는 좌절의 양상들일 게다. 지난 12월 19일 밤 11시쯤 대학로 벙커원에 모인 2030 유권자들이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 주간경향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은 절망할 때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수십 년간의 현대사에서 민주개혁 진영이 대선에서 이긴 것은 1997년과 2002년 두 번 뿐이며 집권 기간이라야 고작 10년뿐이다. 그 두 번의 승리도 DJP연합이나 행정수도 이전 같은 이슈를 통해 보수 세가 분열됨으로써 가까스로 가능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기껏 60여년에 지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왕조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고 냉전 시대의 관점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근대의 문턱을 충분히 넘어서지 못한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온전히 민주진보 세력의 힘으로 범 수구보수 세력과 대결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셈이고 그 속에서 48%가 넘는 지지를 얻은 것은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 그 오랜 억압의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이나 만들어졌다는 뜻 아닌가. 나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며 50대의 욕망 투표에서 절망을 찾는 것보다 20-30대의 각성 투표가 보여준 희망에 주목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마땅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어느 선거보다 많은 수의 20,30대 젊은 세대가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의 경험이 허무와 냉소로 전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좁은 의미의 정치나 권력의 자장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일상의 영역에 남겨진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SNS를 기반으로 대안언론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기존 진보 미디어와 시민 단체에 대한 후원이 늘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선거가 닥쳐서 벌어지는 싸움 속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소통하고 힘을 모아가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 단체를 후원하고 대안 미디어에 힘을 보태고 SNS에서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공유와 소통의 폭을 넓혀가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정권보다 더 소중하다. 다시 신발 끈을 조여매고 미래를 준비하는 그 몸짓에서 희망은 시작된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02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악몽과 같은 밤이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 새벽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원망. 제일 먼저 내게 다가온 감정이다. 원망. 왜 그와 같은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그토록 많은 시간 보여주고 또 보여주었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 속고, 짓밟히고, 고통 속에 신음해왔는데 도대체 왜 그와 같은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불쌍해서? 어차피 똑같으니까? 아니면 이젠 스스로를 살필 수 없을 만큼 세뇌되어 조금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단 말인가. 미련하고, 천박하고, 멍청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세상이라니. 절망. 두 번째로 내게 온 감정이다. 희망은 정녕 없는 것일까? 강고한 벽에 부딪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외침이 있지만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 소수는 조금은 더 많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공명되었을 뿐 다수의 웅성거림 속에 커다란 울림통으로 소리 내지 못했다. 다수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강고한 바위, 목을 치켜들고 올려다봐야 할 높은 벽 위에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들의 입가에는 이죽거리는 듯한 웃음이 스쳐간다. 어디 감히 여길 쳐다보냐는 듯 경멸의 눈빛으로 내려 깔아 보는 이도 있는 것 같지만 이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희망은 사라진 것일까? 불안. 세 번째로 내게 온 감정이다. 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눈이 보이지 않도록, 귀에 들리지 않도록 세상을 온통 암흑으로 만들어 버린 시간이었다. 충분히 어둠이 짙어 졌으니 새벽이 가까이 왔으리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둠은 걷히지 않고 걷히지 않을 것만 같다. 겨울이 지날 시기가 되었는데 피어야 할 매화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해가 뜨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나, 뭘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기는 하나? 공포. 이제 해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차갑고 어두우며 고통스런 시간이 흐를 것이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새벽의 한기가 떠오른다. 바람이라도 스치면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이 떨린다. 조금만 더 지나면 손끝부터 마비가 되어 마침내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몸부림치는 것도 순간, 더 깊어 가는 어둠과 함께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막아낼 방도가 없다. 이를 악물어 보지만 갈수록 비정상적인 고통만 남는다. 담담함. 꼭 앞으로만 가야하나?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니 꼭 앞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없고, 있는 그대로를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 후 찾아온 감정. 아침도 맞지 못하고 해가 져버린 때도 있었고, 해가 뜨지 않고 비가 내리고 바람만 불던 날도 있었다.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으로 깊은 어둠을 헤매던 때도 있지 않았던가. 우매함이라 치부해버렸던 나의 우매함이란. 사실 소수의 목소리를 잠재운 다수의 웅성거림이란 또한 여러 소수의 목소리들이었을 것인데 그 소리들까지도 진지하게 들으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소리란 본시 하나이지 않는 이상 웅성거림일 뿐인데. 저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이들이 웃고 있었던 것은 뒤를 돌아본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웃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앞으로 나갈 길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웅성거림도 실은 절벽에 막혀 아우성치는 비명소린 아니었을까? 믿음. 돌아본 그 길에는 나와 같은 이들이 함께 서서 웅성거리고 있다. 원망의 소리와 절망에 빠진 비탄의 소리.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 비명소리. 하지만 이내 이들도 함께 주위를 둘러보고 있고, 생각에 잠긴다. 더 이상 움직일 틈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꼭 앞으로만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 알려준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함께 있노라고. 일단 뒤로 조금 돌아가면 길고, 좁지만 샛길이 있으니 서로를 믿고 조금씩 몸을 틀자고. 손을 놓지 않고 한 사람씩 빠져나가면 이 어둠이 걷힐 무렵에는 모두 앞으로 나갈 새 길에 당도할 수 있노라고. 꿈과 뒤섞여 버린 나의 생각의 끝은 여기까지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2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