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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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 2013년 한국의 자화상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지금까지 가톨릭교회에 몸담아 오면서 한 성직자가 이토록 빨리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사제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른바 ‘임수경 평양축전참가사건’으로 전대협 대표 임수경씨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뒤 축전이 끝나자 임씨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돌아온 문규현 신부(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도 박 신부처럼 빨리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 때와 지금과는 매체환경이나 여론의 유포 속도 등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아주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봉헌된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나온 박 신부의 말이 그토록 위력을 지닌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박 신부 덕(?)에 덩달아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박 신부를 팔아먹은(?) 주류언론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뿐 아니라 올 한해 대한민국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머리에 남을 열쇳말은 단언컨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 아닐까 한다. 국가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으로 촉발된 이른바 ‘국정원 사태’의 올바른 해결과 민주주의 가치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수그러들 줄 모르고 오히려 확대재생산 되는 모습이다. 2013년을 헤쳐 온 우리 국민들에게 올해는 유독 천주교 성직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던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터놓고 지내는 지인의 말대로 천주교가 끼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였다.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모습에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은 듯하다. 가톨릭교회를 향한 염려는 대체로 “종교는 정치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기도’나 열심히 하라”는 정도로 집약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종교적 신념이 개입하면 위험하다’는 이러한 논리는 실제 가톨릭교회에 대한 오해 내지는 무지를 깔고 있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의 신자들이 사회 속에서 나름의 종교적 삶을 살아가며 지니게 되는 신념은 단순히 각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적 내용의 반복이 아님은 당연하다.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체화시켜 나가는 개별 종교의 가치는 순간순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결국 현실정치 역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실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오히려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정치 사회 문화적 활동에 참여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반 신부나 수도자, 평신도는 물론이고 주교라고 예외가 없다. 따라서 종교적 신념 내지는 가르침을 교회 안에 가두어두려는 일부의 태도는 단언컨대 교회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교도권적 발언은 신자들에게 와 닿는 순간,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가 된다. 따라서, 세속과 완전히 절연된 상태가 아니라면 현실정치와 종교적 신념을 분리하려는 시도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수밖에 없다. 종교와 사회 참여를 획일적으로 분리하려는 논리 가운데 가장 황당한 것은 낙태를 비롯한 생명, 생태·환경 문제 같은 범주로 종교의 역할을 제한하면서 여타 영역, 주로 힘을 지닌 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제나 정치 등의 분야에서 종교가 목소리를 내거나 나서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못 박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DB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18일 성령강림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한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치가 혼탁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계속 혼탁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황은 “양떼를 찾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고립을 자초하는 목자는 목자가 아니다. 교회가 폐쇄적이면 부패하게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교황은 에둘러 ‘사회 참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정치 참여’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자 책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1960년대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꾸준히 개혁을 지향하며 시대의 아픔에 함께하기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가운데서 대안을 찾는 일에 함께해오고 있다. 이러한 가톨릭 고유의 내적 원리를 담은 ‘사회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치적 태도나 신념과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을 폄하하는 태도는 무지와 오만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면 그러한 행위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오”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오” 하는 베드로의 고백과 무엇이 다를까. 가톨릭교회는 현실에서 어떤 정치체제도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로 하느님의 뜻과 이웃의 선익에 반하는 ‘죄의 구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7항 참조) 우리는 폐쇄적 지배집단의 강압에 의해 침묵하거나, 때로는 무감각과 무관심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죄의 구조들의 확장을 돕는 위치에 서기도 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이 실종되는 상황 앞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2013년, 많은 천주교 사제들이 대한문에서, 밀양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쌍용자동차 철탑에서, 그리고 수많은 가난한 이들 곁에서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댔다.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용기가 없어서일까, 꼭꼭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꾀꼬리는 겁이 많은 새여서 잘 숨어서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 꾀꼬리를 찾아 사제들이 거리와 우리 시대의 광야를 헤매고 다녔던 셈이다. 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어두컴컴한 피시방에서 댓글이나 달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 할 때다. “응답하라 꾀꼬리!”
2017-07-14 | hrights | 조회: 511 | 추천: 2
윤다정/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린 연어는 늘 바다를 꿈꾸며 자랐다. 알 껍질 너머로 처음 본 실개울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어린 연어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바다는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강을 거슬러 오르고 알을 지키는 동안 너덜너덜해진 아버지의 비늘은 무지갯빛 비늘보다도 아름다운 훈장이었다. 허나 개천에서 강을 지나 바다로 통하는 길목은 너무 좁았다. 자신처럼 작고 약한 개체를 위해 만들어진 샛길을 비집고 들어가는 강한 개체를 지켜만 보길 수십 차례. 어린 연어는 결국 실개울에 남기로 했다. ‘큰 물’로 나가는 ‘연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쟁의 포화로 옛 것이 남김없이 타 없어진 한국전쟁 직후는 민물고기들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적기였다.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급 상승을 꾀했다. 그나마 손쉽게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 중 하나가 ‘공부’였다. 대학에 진학해 집안을 일으켜 세울 장남을 위해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헌신하는 풍경은 익숙하다. 물론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고교생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재에 와서는 ‘계급 상승의 수단’으로서의 진학이 갖는 역할은 다소 빛이 바랬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은 유효한 수단이다. 많은 교육 기관이 학업의 기회를 얻기 힘든 소외 계층을 위해 별도의 전형을 제공한다. 일종의 샛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샛길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이권을 공고히 하려는, 상대적으로 폭넓은 교육 기회를 얻는 이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교육 소외 계층이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입시 전형에서 또 다시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배려’라고 쓰고 ‘배제’라고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훈국제중학교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서울 영훈국제중학교, 경기 청심국제중학교 등의 입시비리를 둘러싼 잡음이 단적인 예이다. 이들 학교에서 마련한 사회배려자 전형은 소외 계층에게까지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거리였다. 실상은 해당 전형이 부유층 자녀의 손쉬운 입학을 위한 지름길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교육여건 낙후지역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대학교의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도 마찬가지다. 2013년도 해당 전형 합격자 중 소위 ‘교육 특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노원·양천구 출신 학생들이 3분의 1을 훌쩍 넘었다. 농어촌에 사는 고등학생을 정원 외로 추가 선발하는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에 위장 전입한 도시 거주자 자녀들이 합격한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허점은 있다. 법을 악용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은 손쉽게 허점이 드러난 샛길로 파고들어 사다리를 걷어찬다. 계층 고착과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실개울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개울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바다로 나가고 싶은 이들을 위해 길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더 큰 세상을 보고 돌아온 연어들은, 그리하여 자신의 지혜를 후대에 전할 수 있지 않을까.
2017-07-14 | hrights | 조회: 515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교육부는 2014년 교원임용 때 정원의 3%(약 600명)를 시간제교사로 뽑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사의 근무 시간의 절반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교사는 정규직 교육공무원으로 교과 수업, 학생지도만을 담당하고 행정업무를 맡지 않으며 5일간 오전에만 또는 오후에만 근무하거나 요일마다 자신이 원하는 근무시간에 하루 4시간 주 20시간 근무한다고 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각 부처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방침에 따라 2015년에는 800명, 2016년 1천 명, 2017년 1천200명 등 앞으로 4년간 3천6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 한다. 현재 학교에는 정규교사 외에도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 전문 강사, 체육 전문강사, 시간강사, 방과후교사, 특기적성강사, 보조교사(특수학급), 인턴교사(과학)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교사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기간제교사란 비정규직 교사로 교육감의 발령을 거치지 않고 학교 측과의 계약을 통해 정해진 기간 동안 일하고 있는 교사를 말한다. 이를 테면, 교사가 근무기간 중 출산을 하거나 입원을 하는 등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학교장이 일정자격을 갖춘 사람을 채용해 연가나 휴가를 낸 자리를 대신 하도록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 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만 하고 퇴근하는 시간선택제 교사들까지 등장한다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 고백하건데, 서울의 소규모중학교(20학급)인 우리학교는 40여명의 교사(비정규직 포함)중에서 담임업무가 곤란한 교사(교장, 교감, 부장, 특수직(보건, 진로, 상담, 특수학급, 영양, 사서)를 제외하면 담임교사를 할 수 있는 정규교사는 10여명 정도이고 나머지(10여개)학급은 기간제교사들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소규모 학교에서 겪고 있는 현상이며, 이는 몇 년 전부터 정책이 바뀔 때마다 예산절감이라는 이유로 갈수록 정규직 교사의 비율도 줄어들고,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는 명목하에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교사(영어 전문강사, 과학 전문강사, 체육 전문강사 등)가 있게 된 것이다. “아니 학교업무에 대해 알고나 하는 소리야? 학교가 무슨 자리바꿈식 일자리 창구인지 아나? 어떻게 그런 정책을 내놓을 수가 있어?” “아르바이트처럼 시간이 되면 나타나 수업만 하고 사라진다면 학생들 생활지도며 또 잡무처리는 누가하지?” ‘시간선택제 교사’를 뽑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초·중·고교 교원 4,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2.7%가 정규직 시간제 교사제도 도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지난 11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교원 도입계획 철회요구'기자회견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와 전교조 조합원들이 시간선택제 교사 도입방안을 철회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박미향(47)씨는 “만약 내 아이를 시간제 교사와 전일제 교사가 맡아 주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90만 원가량의 급여에 4시간만 교육하고 퇴근하는 그들보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해주는 전일제 교사가 맡아주는 것이 안심되고 믿음이 간다”며 “학부모 입장에서 보아도 시간제 교사는 교육적인 제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담임도 맡길 수 없고, 학생 상담도 할 수 없고, 수업준비 및 교재연구도 집에서 알아서 하는 교사로 채워지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학교는 일자리 창출 대안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시간제 파트 타이머 식의 일자리 공간이 아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아침부터 학생의 등교지도, 청소지도, 복장지도, 질서지도, 인성지도, 진로지도, 자기주도적 학습지도, 진로상담 등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학생들 생활의 모든 것이 교육의 대상이다. 수업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교재연구, 동학년, 동교과 간의 정보교류, 학습자료 제작, 방과 후 생활지도 등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업만 하고 사라지는 교사들이 모인 학교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다. 교육은 수업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학생들 생활의 모든 것이 교육의 대상이다. 교사가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교육에 임할 때 학생들에게 보다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거나 신분보장이 되지 못해 불안한 교사들로 어떻게 양질의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간선택제 교사는 철회되어야 한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621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홍범도를 아는가. 제지공장의 악덕 친일파 공장주를 두들겨 패고 금강산으로 도망간 십팔세 소년 홍범도 말고, 삼수갑산을 지나 청진으로 진격하여 일본 주둔군을 괴멸 시켰던 의병장 홍범도 말고.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로 부르는 “날으는 홍범도가”를 탄생시킨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대한독립군 사령관 홍범도 말고, 1922년 모스크바 피압박 민족대회의 조선 유격단 대표로 레닌을 만나 뜨겁게 포옹하던 소비에트 주의자 홍범도 말고, 그 사람 홍범도를 아는가. 1937년 9월9일 새벽 블라디보스톡 역을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가축 칸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어디쯤이라는 목적지도 없는 긴 여행을 떠난 유랑자 홍범도를 아는가. 불모의 땅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에서 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며 말년을 보낸 고려극장 문지기 홍범도를 아는가.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다시 전쟁터에 나가 일본 놈을 무찌르고 내 나라를 되찾겠다고 카자흐스탄 당국에 호소하던 73세의 노인 홍범도를 아는가. “평생 일본 놈들에게 안 잡히고 여생을 마칠 수 있어서 나는 복 받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올해로 꼭 70년째 이역의 땅 스따라야 마기라-홍범도의 무덤이 있는 곳-를 배회하는 영혼 여천 홍범도(1868-1943))를 아는가. 지난번에 썼던 원고를 여기까지 읽다가 그만 울컥했다. 남과 북도 아닌, 좌도 우도 아닌 그저 민족을 사랑했던 열혈 청년 홍범도를 다시 떠올렸던 건 순전히 대한민국의 책임총리라는 그 냥반 정 모시기 덕분이었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도종환 의원: “일제가 우리 의병들을 소탕. 토벌했습니까 아니면 학살 했습니까? 그 당시 우리가 일본에 쌀을 수출했습니까 아니면 수탈당했습니까?” 정홍원 총리: “아니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시면 어떡합니까? 자세한 내용은 역사학자들이 다뤄야할 내용 아닙니까? ” 식민지 근대화론을 대놓고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의 일제 만행을 축소·외면했음은 물론 이승만·박정희의 독재까지 찬양했다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에 대한 총리의 입장을 묻는 시간 이었다. 총리의 안이한 역사인식을 답변으로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분노를 느꼈던 이가 비단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약 60여개 나라가 식민지로부터 독립한다. 그중에 식민지세력이 그대로 정권을 이양 받은 경우는 오직 48년도에 건국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아시다시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이전에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길 소원했던 백범 김구가 있고 몽양 여운형이 있다. 그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조선의용대의 수령 광복군 군무부장으로 태항산 일대에서는 일제가 그림자도 밟지 못했다던 대장군 약산 김원봉은 해방이후 동대문의 자택에서 일본의 간악한 순사 출신 노덕술에 의해 잡혀간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다가 뒤처리도 못한 상태로. 약산이 활약했던 태항산 에서 1942년 여름 조국을 찾겠다고 길을 나선 석정 윤세주를 비롯한 조선 의용대 3000여명을 몰살 시킨 이는 자랑스런 대 일본제국의 중장 “고 시요쿠 (홍사익)”아니던가. 조선인으로서는 군부 내 가장 높은 위치까지 갔던 홍사익을 따랐던 숱한 후배들은 스스로 일본인이 되어 너도 나도 욱일승천기를 품고 니뽄도를 휘두르며 독립군들의 목을 베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후배들 중 누구는 대통령이 되고 누구는 총리가 되고 약 40 여 년 동안 군 수뇌부의 요직을 차지한 나라, 그 이후에는 대통령이 된 후배를 흠모 했다던 또 다른 후배가 대통령이 되고 다시 후배의 따님이 대통령이라고 뉴스에 나오는 나라. 문득 “그들“은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인 이었다는 탄식을 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의 울분을 떠올리게 되면 품고 싶지 않은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2의 일제 강점기를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 신부의 강론이 연일 뉴스에 등장한다. 이른바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두둔했다는 이유다. 한때 방송을 진행 하면서 내가 주로 했던 멘트가 “여러분들의 신청곡은 빛의 속도로 배달해 드립니다” 였는데 보수단체의 고발을 받은 검찰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빛의 속도로 수사를 시작 한단다. 허긴 1975년 4월8일 사형선고 받은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혁당 재건위의 여덟 목숨을 앗아간 순발력 있는 집단이긴 하다. “그들”의 종북 놀이가 정점을 넘어서더니 이제는 조국 묻기 놀이로 바뀌어 가고 있다. 80년 광주항쟁의 참상에 아파하다 평생 다리를 절게 된 노신부에게 광주 학살의 원흉인 자의 한때 사위가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를 떳떳하게 묻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독립군 소탕인가 학살인가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총리가 다시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를 묻고 있다. 다카키 마사오 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이 싫어 완전한 일본 이름으로 개명한 오카모토 미노루의 따님도 일갈한다. “국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언행은 용납하지 못한다”던가.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는 “날으는 홍범도가”의 청년 의병장 홍범도에게 내가 묻는다. 제대로 된 묘비명 하나 없이 이역만리 크질오르다에서 해방조국의 미래를 꿈꾸었던 고려극장 문지기 홍범도에게 내가 다시 묻는다. “홍범도 장군, 저들의 조국은 과연 어디란 말입니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615 | 추천: 2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는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들의 이익과 생존권,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합리적 보수 세력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단지 세력화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그들의 생각을 모으거나 대변할 만한 매체가 없어서 존재감을 확인할 길이 없을 따름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건강한 보수가 보이지 않는다. 건강하고 상식 있는 보수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극우세력들만이 일부 언론의 부추김 속에 힘껏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좌표는 영락없이 극우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분단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에 따른 소모적인 이념 대립 상황이 큰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극우세력들은, 정책의 건전성이나 도덕성의 여부 등은 상관없이, ‘빨갱이’ 색칠 하나면 간단하게 반대파의 손발을 묶어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색깔론이라는 만능의 무기로 그들은 줄곧 저희에게 유리한 대립 구도를 만들어 왔고, 그 속에 저희의 무능과 부패와 매국을 감춰 왔다. 돌이켜보면 일제 강점기나 군사독재시대에 그 시대 권력의 끈을 잡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소신과 정의와 지조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 번도 국민들의 편에 서서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오직 권력에 충성하고 그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할 뿐이었다. 그들은, 만일 대한민국이 무능하고 부패한 공산정권 치하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인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권력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개 같이 공산정권에 충성을 다할 것임이 분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종북 좌빨’이라고 매도당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공산당 일당 독재에 항거하며 탄압과 핍박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끈을 잡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권력을 위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극우로 기꺼이 기울었다. 그들 극우세력이 발호하는 속에 나라가 돌아가는 모양이 저 옛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으니,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명백한 불법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오히려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이나 검사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하고 결국 수사관을 바꿔버리는 비상식이 난무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나라의 근본이 어지러운 상황(국기문란)임이 분명하다. 이준호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 전 팀장인 윤석열 여주지청장 등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런 어지러운 상황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런 극한의 상황을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는 지금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합리적 보수를 포함한 온건한 중도보수는 평소에 침묵하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폭발하고야 마는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79년 부마항쟁의 ‘90%의 시민’이 그랬고, 87년 6월 항쟁의 ‘넥타이부대’가 그랬다. 극우 매체나 어용 방송은 여전히 몰상식과 편가르기로 기승을 떨며 마치 이 상황이 언제라도 계속될 듯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상황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에 상식 있는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21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글을 볼 리는 만무하겠지만, 그 측근의 측근이라도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이 ‘댓통령’이라는 말을 알지 모르겠다. 국정원과 국군 등 국자 돌림 형제가 ‘댓풍’을 일으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총풍, 세풍, 안풍에 이은 댓풍이다. 본인들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이 이 나라 절반 이상 국민들의 생각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연일 쏟아내는 댓글과 관련한 궤변들은 이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사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돼 있다. ‘진실’이란 날이 어두울수록 도드라져 보이는 불빛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엔엘엘로 가려보려 했고, 내란음모 사건을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터뜨려 보기도 했으며, 혼외자식 논란을 일으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그 때 뿐이었다. 이번엔 수사를 방해하려고 직접 찍어 누르다 들통이 났다. 급기야 국가보훈처에 이어 행정안전부까지, 걷잡을 수 없이 진실이 폭로되고 있다. ‘대선 불복’이라는 적반하장 프레임도 수명을 다했다. ‘그러면 너희는 헌법 불복 세력’이라는 반격 앞에 맥을 못 추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방법은 단 하나, ‘인정’하는 것이다. 댓풍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게 아니다. 댓풍이 있었다는 사실만 인정하면 된다. 이미 검찰이 기소했고, 트위터 5만 건으로 추가 기소장이 제출됐기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정하는 순간 정말 댓통령이 돼 버리는 게 아닌가 두렵겠지만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고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이미 대통령이 된 사람을 끌어내릴 방법도 없다. 공소시효도 지났고, 탄핵의 대상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의 두려움은 한 마디로 기우다. (대통령 하야론자들은 당장 ‘대통령 아님’을 선포하고 싶겠지만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 인정하고 나면 5년 내내 흔들 거 아니냐고? 천만에, 거꾸로다. 인정하지 않으면 5년 내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인정하면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다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진실을 가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려 한다면 더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당장 정홍원 총리가 ‘대신 읽은’ 담화문이 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10월 28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등 현안과 관련해 새 정부 들어 첫 총리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원고만 읽고 9분만에 퇴장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지만) 지금 중요한 건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느냐 여부가 아니다. 단 한 건이라도 국가기관이 선거 관련 댓글을 달았다면 그것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를 어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 여당이 국가기관을 선거에 동원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무너진다. 이번에 처벌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하게 된다.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 유지의 기본 전제인 헌법정신과 법치주의가 무너진다. 무질서와 무법 상태로 떨어질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을 것이다. 여당은 전에도 괜찮았으니 또 해도 된다고 불법을 저지를 것이고, 야당은 ‘쟤네도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고 불법을 저지를 것이다. 모두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데 야당만 처벌하면 법의 형평성이 깨진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 깨지게 되면 이 나라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렵다. 그 이후의 사태 전개는 상상하기도 싫다. 나라가 깨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정말 그런 사태가 오기를 바라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충심으로 말한다. 나는 박 대통령을 대통령 권좌에서 끌어내리길 원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법과 원칙이 제대로 서길 원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정의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16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본이 급속히 우경화한다며 많은 이들이 염려한다. 일본 밖에서는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를 한다. 일본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그것은 국제 관계나 외교적 차원에서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일 때가 많다. 참배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은 드물다. 신사 참배는 일본인에게 문화적 차원에서 익숙한 행위이기에 야스쿠니와 같은 국가주의적 신사 참배로 인한 국제적 문제의 소지는 언제나 상존해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본 문화사적 차원에서 보면 일본의 국가주의화는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일본은 왜 자국중심의 국가주의적 정책을 펼치는지 그 문화적 뿌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사상가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1933~)의 입장에서 배운 바 크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동양의 고전인 『논어(論語)』에는 계로(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죽음과 귀신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로가 ‘귀신 섬김(事鬼神)’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잘 못 섬기면서 어찌 귀(鬼)를 섬기겠는가.’”(『논어』 선진) 공자의 관심은 사후 보다는 삶, 귀신보다는 사람에 있었지만, 공자의 대답은 별 의심 없이 귀신을 긍정하던 이들에게 귀신의 유무 및 존재 방식과 관련한 논란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죽은 이의 영혼이 어떻게 산 이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지와 관련한 담론도 생겨났다. 주자(朱子)는 죽은 자나 산 자나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되 형태가 다를 뿐이라는 입장을 펼쳤다. 이러한 해설은 동아시아 사상가들의 귀신 담론 및 민중의 조상 숭배 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귀신 담론의 또 다른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해 일본에서도 사람들은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 생각했고, 죽은 이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조상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면서, 이른바 귀신 관념을 생활화했다. 고야스에 의하면, 일본에서 귀신담론은 오랫동안 사회를 움직여가는 살아있는 실재였다. 귀신담론이 정치적 정책과 만나면서 사회 통합의 강력한 근거로 작용해왔다. 실제로 일본 근대화의 틀을 결정지어준 메이지유신 – 한국의 시월‘유신’도 이 메이지유신이라는 말을 따다 만들었다 - 은 조상 제사를 기반으로 하던 유교적 질서를 민중적 종교인 신도(神道)의 정서와 연결시키고 다시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면서 성립되었다. ‘호국영령’(護國英靈), 즉 ‘나라를 지키다 죽은 꽃다운 영혼’을 국가적 담론 속에 살게 하고, 국가와 국민의 제사 대상으로 재구성하면서, 천황을 정점으로 수직적 통일 국가체계를 확립하려고 했던 정치적 시도가 메이지 유신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령’이라는 말은 메이지시대 이래 전쟁을 통해 국가의 모양을 갖추어가던 과정에 나라를 위해 죽은 전몰 군인을 지칭하기 위해 일본에서 발명된 언어이다. 한국에서도 이 말을 별 생각 없이 따다 쓰고 있지만, 영령이라는 말 속에는 자민족 혹은 자국중심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들어있다. 좁게는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 중심적 사유를 하게 함으로써 정권 유지에 이용되어온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일본에서의 ‘호국영령’은 국가와 국민의 제사 대상으로 재구성된 일종의 ‘담론상의 전사자’이다. 국가를 위해 존재해달라고 국가에 의해 요청된 영혼, 일종의 담론상의 귀신인 것이다. 이른바 귀신에 대한 상상이 국가적 이데올로기 속으로 들어오고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드는 정치적 역학은 일본에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가령 국가적 희생자(忠)를 현양하는(顯) 날(日)이라는 한국의 현충일(顯忠日)도 죽은 이들을 드높인다는 외적 명분하에 실상은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국민의 정신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로 이용되어온 측면이 크다. 호국영령이라는 말이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국민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지 않던가. 현충일 역시 ‘귀신의 정치학’의 연장인 것이다. 일본 미에현에 이세신궁이라는 신사가 있다. 일본의 개국신 및 황실의 조상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우리에게도 종묘가 있는 것처럼, 이세신궁은 황실의 종묘이다. 동시에 천황이 전쟁의 개시와 그 종결이라는 국가의 대사를 보고하고 국가의 흥륭을 원하는 제국 신민들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제국의 큰 사당[大祠]이기도 했다. 문제는 연초가 되면 수상이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것이 정례화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도 하지만,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데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나아가 천황이 즉위해서 제사를 드릴 때는 전국의 신사가 천황의 즉위를 봉축하는 깃발을 내건다. 이세신궁이 천황 중심의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온 일본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는 뜻이고, 일본의 전통 문화인 신도가 그저 개인적 행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국가의 정치 행위 속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국가신도는 패전 이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세신궁 내궁(內宮)으로 들어가는 우지하시도리(宇治橋鳥居)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야스쿠니신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을 위한 내전 희생자들의 혼령을 모시고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지내기 위해 창건(1868)된 신사이다. 그 뒤 청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에 걸친 전몰자들의 영혼을 합사해 제사함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호국의 정신과 자세를 갖게 하는 데 기여해온 국가주의적 신사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2,133,823위(位)의 영혼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모든 전쟁 희생자들, 모든 전몰자들이 모셔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 정치의 제국주의화에 부합한다고 판단된 혼령들만 선별적으로 모셔져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그 자체로 특정한 의도적 해석이 개입되어 창건되고 운영되고 있는 신사라는 뜻이다. 그 기준은 오랫동안 천황을 중심으로 수직적 체계를 이루어온 일본 중심의 호국(護國)이었다. 이 때 호국의 기준은 천황제 하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현양시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야스쿠니신사 내 박물관인 ‘유취관(遊就館)’이 “영령을 현창하고”(英靈顯彰) “근대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해석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희생자의 영이 ‘아름다운 영(英靈)’이 되고, 일본의 근대사가 그들에게 ‘진실’이려면, 사자의 혼령이 일본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고취시킨다고 해석될 만한 사건에 연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패전으로 국가적 영광에 상처를 입힌 사건의 희생자들은 국가적 제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차대전 당시 미국과의 최후 교전이 벌어졌던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희생자는 국가가 제사지내지 않는다. 오키나와도 국가적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이지만, 자랑스럽지는 않은 역사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관련된 제사에는 이미 국가주의적 혹은 자국 중심적 해석이 들어있다. 메이지시대 이래 일본인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게 적응해왔다.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야스쿠니신사나 이세신궁을 이해하고 참배해왔다. 이들은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가 자국 중심일 뿐만 아니라 정권 유지와 강화를 위한 정치 행위라는 사실을 별반 인식하지 못한다. 도리어 이에 대해 문제 삼는 한국이나 중국이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분위기 탓에 총리나 국회의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어져가고, 그 속에 전쟁을 정당화해온 군국주의적 분위기도 다시 심리적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힘을 얻는다.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되어 희생당한 뒤 야스쿠니신사에 강제로 합사되어 있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부모형제의 이름을 빼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쿄지방법원에 강제 합사 철폐를 위한 이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소송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며칠 전 아사히신문이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몰자 추도 방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사설을 실은 것은 이러한 운동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소수이긴 하지만 신사참배로 인한 외교 마찰을 피하려는 일본 내 흐름을 일부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들이다. 2001년도에도 A급 전범만을 분사해 따로 모시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사망한 무명 군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인근 치도리가부치 묘원을 확대하자는 제안이 나온 적이 있지만, 보수적 국회의원들과 야스쿠니신사측이 반발해 무산된 적이 있다. 한 번 합사된 영혼을 분사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이지만, 국가주의적 상징성을 지니는 야스쿠니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나 상징성이 위축 가능성은 적지만, 외교적 마찰이라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력 일간지를 통해 나오는 것은 작은 변화의 첫걸음은 된다는 점에서 다행은 다행이다.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정치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752 | 추천: 0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금부터 대략 400년 전후에 이탈리아에서 살다 죽었던 두 남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 사람은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이름 없는 시골뜨기이며, 다른 사람은 과학자와 대학교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인사이다. ‘가방끈’과 사회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건방진 책’ 때문에 말년을 망쳤던 종교재판의 죄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첫 남자 도미니코 스칸델라라(1532∼1599)는 본명보다는 메노키오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인구 600-700명의 고향에서 목수, 제분업자, 방앗간 주인 등 여러 직업을 가지며 마을이장과 교회교구 행정관직을 맡았던 시골유지였다. 부인과 11명의 대가족을 부족함 없이 부양할 정도로 경제기반도 튼튼했고, 당시 외딴 시골마을에서는 드물게 스스로 공부하여 라틴어 기도문을 암송할 정도의 교육수준을 갖춘 유식쟁이이기도 했다. 잘 나가던 메노키오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52세 때였다. 그는 성경과 가톨릭의 교리에 어긋나는 불경한 발언으로 마을사람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1584년에 동네 사제에게 고발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신앙고백을 위해 신부님을 찾는 것 보다는 나무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가 더 위대하다.” “예배의식과 법정언어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치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듯이 이 세상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석방 후에도 이런 위험한 세계관을 전파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메노키오는 15년 후에 다시 체포되어 결국 67세의 나이로 화형 당했다. 메노키오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시퍼런 (종교)권력에 무릎 끓지 않은 그의 용기와 양심이었다. 무식한 시골 중늙은이가 우주탄생의 비밀과 종교생활에 관한 급진적인 생각을 감히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종교재판관은 “배후와 공범자를 불어라”고 그를 겁박했다. 고문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메노키오는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머리에서 나온 의견들”이라고 맞섰다. 카를르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사진 출처 - 아마존 그는 금서, 여행기와 연대기, 이슬람 코란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고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석하면서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세계관과 우주관을 키웠다. 말하자면, 메노키오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인쇄혁명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 깨우친 민중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참조] 두 번째 남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이다. 예순이 넘은 메노키오가 고문과 재판으로 고생할 때 30대 초반이었던 갈릴레오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파도바 대학 수학교수로 출세길에 들어섰다. 메노키오가 불타죽던 1599년에 갈릴레오는 애인(마리아 감비나)을 만나 단란한 가정의 성을 쌓았다. 야심에 불타는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선하여 원로원에 선물했고,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별들에게 ‘메디치 가문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당대를 호령하던 권력자에게 아부했다. 이런 반짝이는 처세술 덕분에 그는 피렌체 대공의 수학자 겸 피사 대학교의 수학 종신주임교수라는 부와 명예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잘 나가던 갈릴레오도 하필이면 52세가 되던 1616년에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지지했다는 혐의로 종교재판에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유명세와 권력자들과의 인맥에 힘입어 지동설을 공개적으로 주창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경고조치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633년에 갈릴레오는 『두 가지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1632)에서 금지된 지동설을 전파했다는 죄목으로 종교재판에 다시 얽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유죄판결을 받은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허튼 역사가들이 없던 명대사를 지어내어 그를 과학혁명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메노키오 사례와 비교되는 갈릴레오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권력 앞에 쫄은 과학자의 초라하고 비굴한 태도이다. 재판관이 『대화』에 서술된 관련 부분을 읽어주고 “당신은 언제부터 지동설을 믿었는가?”라고 다그치자, 갈릴레오는 “나는 단 한 번도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지지한 적이 없으며 현재도 그렇다. 만약에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렇게 오해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헛된 야심과 순진한 무지 탓”이라고 옹졸하게 변명했다. 시골촌부 메노키오가 “내 머리에서 나온 위험한 사고방식은 전부 나의 것”이라고 떳떳이 밝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당대의 유명한 먹물지식인 갈릴레오는 자신이 책에서 언급하고 증명했던 과학적 진리(지동설)를 손바닥 뒤집듯이 부정했던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초상화 사진 출처 - 구글 재수 없게 종교재판의 덫에 걸렸던 불쌍한 두 늙은이들의 ‘죽음 이후의 삶’은 매우 달랐다. 재판 후 금서목록에 올랐던 『두 가지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는 1835년에 해제되었고, 그보다 훨씬 지난 1983년에 갈릴레오는 교황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사면·복권되었다. 그러나 빅뱅이론에 버금하는 우주탄생의 비밀을 혼자 깨우치고 가톨릭의 낡은 관행을 비판했던 메노키오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역사의 죄인이며 억울한 패배자로 남아있다.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적 변혁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 헌신과 희생을 교황으로 대변되는 권력자는 먼지처럼 귀찮고 하찮은 것으로 침묵·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남자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획득할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책을 (잘못) 읽거나 서술하는 행위는 당사자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위험천만하다고? 동양철학적으로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의 무거운 나이에 해당하는 오십대(현재의 386세대)가 공연히 공권력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나섰다가 괜한 신세를 망친다고? 아니다. 메노키오와 갈릴레이의 사례로부터 우리가 새삼스럽게 배우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권력의 시대착오적 집요함과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함이다. 그렇다. 메노키오를 위한 국가와 권력은 없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옛날 옛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2013년 지금 이곳의 문제로 고쳐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두려움 없이 실천했던 메노키오는 이 땅의 양심수, 내부고발자, 군의문사 진실추적자 등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메노키오의 역사적인 복권은 낡은 시대를 견디며 저항하는 ‘또 다른 메노키오’인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38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본 평화헌법은 제9조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 및 교전권을 부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평화헌법의 상징과 같은 제9조는 첫째,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과거사 반성의 뜻을 담고 있고, 둘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기 위한 재무장을 금지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는 형식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는 제9조의 취지조차 무색케 하고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청산해야 할 과거사를 반성하고 그 피해를 배상하는 대신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망언을 하고, 내각의 관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과거 식민 지배와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우경화 행보에 거침없이 나서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전후 동아시아 역내 평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한 제9조의 기능과 역할을 완전히 부인하며 군국주의 부활과 재무장 강화의 움직임을 날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패권 유지 전략을 추종하여 중국을 견제하며 북한과는 군사적 대결을 추구하는 미일 군사동맹 및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동맹 강화, 군비증강 및 전쟁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급기야 전쟁 참여를 위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법적 제도적 장애물에 해당하는 평화헌법의 해석의 변경을 검토하고 아예 제9조를 개악하기 위한 헌법 개정 추진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아베 정부의 이러한 우경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떨까? 규탄과 분노 일색일까?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수미일관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수많은 국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바로 현실이고 그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라는 것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일 미·일 양국의 외교·국방 담당 장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안전보장협의위원회는 미-일 양국의 외무장관과 국방장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른바 '투 플러스 투' 회담이다. 사진 출처 - YTN 먼저 친북, 반북, 반미, 친미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만장일치의 이견이 없을 만큼 규탄과 분노의 목소리로 뒤덮이는 대목이 있다. 일제 패망 7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일본은 미국에 기생하는 극우보수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하여 주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이 조선 여성들을 유인, 납치하여 일본군의 성노예로 유린하는 등의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며 배상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한국인은 아예 없다 싶을 정도다. 그런데, 평화헌법 제9조를 개악하면서까지 미일군사동맹에 의존하여 군비 증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나서는 일본 아베 정부의 재무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론은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와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니, 대다수 국민들은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쉽사리 판단하지 못해 눈치를 보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에 대하여 규탄과 분노의 태도로 일관하지 못하고 각각의 대목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배경에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종북 혐오이든 친일 혐오이든 간에 대중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경우 개인의 정치생명은 물론 정치세력과 정권의 운명까지도 판가름할 수도 있는 폭발력 있는 여론몰이가 통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의 부활과 재침략의 위험을 경계하고 이를 불안해하며 반대하는 것이 일관성 있는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실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해 나서는 미국의 태도를 본 다음부터 발생한다. 전범국 일제에 대한 친일, 반일의 기준에서 명확히 이해가 되던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문제가 친북, 반북의 논리가 생기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여 친미, 반미의 선택지가 눈앞에 보여지는 순간 그 곳에는 더 이상 들어서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순식간에 판단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극과 극의 냉온탕을 오갈지 모르는 역동적 상황이 조성되고 이와 같은 여론의 향배는 닻이 없는 변덕스런 배를 탄 형국이 된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 아베 정부와 같이 그 정치적 성격에서 친미 의존적이고 극우 보수적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미일 동맹 강화에 편승하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한일 군사협력에 당당히 나서며 대북 대결 노선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도 같지만, 현실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종북 혐오에 기반한 종북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듯 한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도 미국을 추종하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에는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여론의 반발이 몹시 두려운가 보다. 1965년 선친의 대통령 재직 시절, 굴욕적 한일협정 체결로 인하여 국민적 저항을 불러와 계엄령까지 선포하였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극우보수세력을 대변하는 박근혜 정부의 친일 트라우마에 못지않게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을 견제할 충분한 힘을 여전히 갖추지 못한 우리 국민들의 입장에서 겪는 극우보수세력의 매카시즘 선풍에 대한 공포도 현재 진행형이다. 매카시즘의 공포에 짓눌려 살아가다 보니,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한결같은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나아가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지지하는 미국에 반대하여 규탄과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가 특별한 각오 없이는 정말 어렵다. 우리 국민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주춤하는 사이 한미군사동맹에 의존하여 같은 민족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해 온 불행한 역사는 아직도 우리의 힘으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563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이 그냥 속담으로만 남아 있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국정원은 온몸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 정치인과 선량한 시민을 사찰 탄압하고, 각종 공작을 통해 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일까지 무수한 만행을 저질렀다. 참여정부 시절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성찰하겠다며 자체적인 과거청산 기구도 만들어 활동하고,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모두 위선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에서 국정원은 선량한 시민과 단체들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는 신종 매카시즘 공작을 조직적으로 자행하였다고 검찰은 발표하였다. 이러한 정치공작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였다. 18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여론이 심상치 않자 박근혜 당선을 위해 여론조작 작업을 벌리고, NLL 논쟁을 조장하였다. 국정원 행동의 핵심은 국민주권주의를 침탈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놓고도 국정원 댓글녀는 뻔뻔한 육성으로 피해자라고 자처하고, 원세훈, 김용판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위증을 서슴지 않았다. 더 나아가 청와대는 검찰총장이 국정원의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을 처리하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근거도 불분명한 “ --- 카더라 통신”의 혼외자를 운운하면서 목을 베었다. 이런 훌륭한 기관은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 걸까. 국정원의 예산이 얼마인지는 예산․결산을 심사하는 국회의원들도 잘 모른다. 대충 1조원 정도라고 한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댓글 쓰는데 들어간 비용으로는 너무 너무 큰돈이다. 시민이 낸 세금에 대해서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시민은 알 권리가 있다. 시민이 낸 세금을 시민이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다. 국정원에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업무에 사용되는 예산으로 특수 활동비가 있다. 각 부처에 숨겨진 특수활동비가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국정원법 제12조 제2항에 의하여 예산액은 총액만 표시하면 되고, 예산처에 사용처와 명세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심사도 생략되고, 결산심의에 영수증도 제출할 필요가 없다. 국정원 예산 자체가 2급 비밀로 규정되어 있다. 국회를 통한 견제도 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무력화되고, 감사원 감사도(제13조) 국가안전보장이라는 이유로 감찰이 불가능하다. 죽의 장막, 철의 장막이 없어진 때가 언제인데 국정원은 여전히 비밀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철의 장막 속에서 몸을 숨기며, 여전히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법치주의 국가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SBS 국정원 존폐 문제에 대해서 법률가들이 즐겨 쓰는 방식의 학설로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국가안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절대적필요설, 국민을 상대로 한 정보기관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어 폐지해야 한다는 폐지설, 국가정보기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가안보라는 제한적 역할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제한적 존치설이 존재해왔다. 나는 그동안 절충적인 견해에 가까운 입장에 서 있었다. 금번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그 이후 대응을 바라보면서 기존의 견해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빈 수레가 시끄럽다.’ 는 속담도 그냥 속담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대한민국 주권을 뒤흔들어 민주주의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 놓고도 무엇을 잘했다는 것인지 떠들어대는 국정원의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면 국정원 자체가 빈 깡통처럼 보인다. 국정원 자신이 빈 깡통이니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빈 깡통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요란을 부리는 짓거리로 보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탄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민주주의는 살아있는가’라고 다시 묻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농단하고, 민주주의를 빼앗아 가려는 무뢰한 집단을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이 정의인가.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국정원이 셀프서비스로 스스로를 개혁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주고 먹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개과천선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짓’에 불과하다. 이제는 아예 국정원을 없애자고 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국정원 스스로 소리 높여 웅변하고 있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9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