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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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즘 언론사 다니는 사람들 참 불쌍해.” 80년대에 친구들과 언론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런 소리가 꼭 나오곤 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정권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자기네 듣기 좋은 소리만 떠들도록 강요하던 시절이다. 아무리 월급 많이 받으면 뭐 하겠나,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앵무새처럼 떠들기만 해야 하니 그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 아닌가. 이 말에는 그 언론인들의 속뜻은 그게 아닐 거라는, 정직하고 제대로 된 보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거라는 최소한의 신뢰가 깔려 있었다. 실제 그 언론인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그런 속뜻을 가지고 있었음이 나중에 판명되었다. 한국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시절 일부 언론인, 특히 방송사의 언론인들은 80년대라면 꿈도 꾸기 어려웠을 보도를 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 해직과 구속을 감내하며 여러 차례 파업을 통해 언론민주화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언론에 대한 대화에서 그들을 연민하는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다. 그들은 자기 속내와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말만 하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월 어느 날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광장 농성이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농성으로 드러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이 왜 두 달이 넘도록 끼니를 거르며 그 고행을 계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이 그저 ‘허가받지 않은 불법’을 강조하는 기자의 표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고뇌’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만에 우리의 언론은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공감으로도 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애초에 별 기대도 없는 부자신문들이야 그렇다 쳐도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이 속절없이 망가져 가는 모양은 정말 참담하다. 임순례 감독이 새로 만든 영화 <제보자>는 새삼 언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수년 전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한 과학자의 그릇된 욕망과 허위의식이 이른바 국익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거대한 신화가 형성된다. 이후 몇몇 양심적 과학자와 언론인의 노력으로 진실이 드러나면서 온 국민을 사로잡은 거대한 신화가 허무하게 무너져간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이 사건에는 야망에 찬 과학자와 이익을 위해 진실에 눈 감는 주변의 연구자들, 생명과학에 마지막 기대를 건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의 열망, 권력자들과 정치권의 비호와 개입, 국익이라는 신화에 맹목적 신뢰를 보낸 수많은 사람들, 진실보다는 당장의 이익과 환호에 열광하며 춤을 추어 댄 언론의 추태, 그리고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또 다른 과학자와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추적 보도한 언론인들의 노력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엮여있다. 영화 <제보자>는 이 복잡한 사건을, 방송사 안팎의 압력을 뚫고 진실 보도를 위해 분투하는 PD의 노력에 집중해 재구성하고 있다. 영화 '제보자' 사진 출처 - 씨네21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건의 스토리를 다시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본 소감부터 말한다면 한 마디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관객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사건 자체가 가진 극적인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되면서 해야 할 말들을 빠짐없이 해주고 있다. 중간 중간 임순례 감독 특유의 유머코드가 실화가 가진 중압감을 덜어내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본 뒤끝이 즐겁지만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 우리 방송이 저랬던 적도 있었지.”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고, 방송사 간부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가로막고, 국익의 신화에 매몰된 시청자들이 항의 전화와 시위를 하는 중에도 꿋꿋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사명을 버리지 않으려 했던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지금 우리의 방송에서 그런 보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PD추적>의 모델인 MBC <PD수첩>은 오래 동안 시사 고발 혹은 탐사 프로그램의 상징으로 알려졌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지금 이 프로그램은 그런 영예를 잃은 지 오래다. 이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던 PD저널리즘마저 고사해 버린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직도 ‘국익’을 위해 ‘진실’을 덮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 사건 당시 제보자와 방송 제작진을 무겁게 짓눌렀던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국익이란 실체 없는 신화이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진실을 덮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국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진실보다 신화에 열광하곤 한다. 신화에 의해 감추어지고 억압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존재가치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길 바란다. 특히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보길 바란다. 보면서 언론의 참 역할에 대해, 진실의 가치에 대해, 세상을 뒤덮은 신화의 허구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30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대세다. "에델 케네디부터 저스틴 팀버레이크까지"라는 미국 ALS(루게릭병)협회의 표어대로 전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죄다 참여하고 있다. 대 부호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나 팀 쿡은 물론이고 만수르에 뤽 베송,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까지 인터넷은 이들의 찬물 끼얹는 동영상을 보며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소위 유명인사 중 다단계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이 운동에 지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낄 정도이니 지구촌이 들썩이는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미국 ALS 협회는 공식 보도 자료를 내놓은 8월 13일 이후 불과 열흘 만에 6,450만 달러(약 6백 50억)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누적액수 7,020만 달러-. 이것이 국내에도 상륙했다. 연예인, 운동선수, 기업인, 또 정치하는 양반들까지 각기의 방식대로 재밌는 영상들을 토해냈는데 내가 이 운동을 처음 본 건 오바마가 물 끼얹기를 거부하고 기부만 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였다. 그 즈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나경원 의원, 박지원 새정연 의원 등이 물 맞는 기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정몽준 전 의원의 챌린지 사진을 본건 부산시내에 기록적 폭우가 내린 그날 이었다. 중동으로도 번졌다. 물이 귀한 동네이니 만큼 얼음물 대신에 흙더미를 뒤집어 쓰는 방식이다. 내용도 진화하고 있다. 아이스 버킷(얼음물양동이)이 루게릭 환우를 위한 퍼포먼스라면 샌드 버킷(흙양동이)은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의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달 8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공습에 50여 일간 2,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69명이 이스라엘 군인이다. 전 세계의 눈이 중동의 평화에서 멀어지는 순간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은 매일 포탄에 허물어지는 흙더미를 뒤집어쓰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는 메시지다. 요르단의 코미디언 마흐무드 다르자위가 처음 시작했고 확산일로에 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하마스-이스라엘 평화협정이 26일 체결되면서 다시 불안한 평화로의 동거에 들어갔다. 내가 이 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건 “특정 질병을 지원하는 자선 단체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것이 좋은 생각은 아니며 다른 단체의 기부를 생각할 때”라는 Felix salmon의 지적에 동의해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인기인의 유명세를 이용한 전형적인 일회성 캠페인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10년만 지나도 세계적 전쟁광으로 역사책에 기록될 조지 부시까지 물 끼얹으며 생명을 말하는 꼴이 가당치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지명을 받으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엔 나를 지명한 이의 체면을 생각해야지 했는데 그것도 무척 속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루게릭병에 대해 조금 더 마음을 두면서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송 cbs-fm 그대와 여는 아침의 김용신 아나운서로 부터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이어 받았습니다. 루게릭 환우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할 기회가 되어서 고맙습니다. 내가 많이 모르는 탓에 당장 환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 합니다. 그러니 루게릭 환우들과 가족들 또 다른 수많은 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돈이 없어 우는 사람들. 오늘 아픔의 덩어리가 가슴에 맺힌 모든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아픈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급히 일정을 바꿔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경희대에서 광화문까지의 행진에 참가했습니다. 물도 끼얹지 못하겠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하는 곳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대신 행진에 참가했던 학생들과 함께 나눌 물을 미리 준비했고 또 함께 마셨습니다.” - 아이스 버킷 챌린지 참가의 변 나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결국 아이스도 버킷도 없는 행사가 되었다. 통상 바닥에 버려지는 물은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목을 축였고 찬물에 몸서리치는 쾌감의 퍼포먼스는 세 시간여의 행진으로 바꾸었다. 나를 지목한 김용신 아나운서도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일일단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대신했다. 내가 지목한 세 명도 함께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했다. 어떤 이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기부하되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주었고 어떤 이는 아예 광화문의 일일 단식에 참여했으며, 또 다른 어떤 이는 세월호의 현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루게릭병은 정신이 살아있으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질환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도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전쟁중독의 중동에서는 평화의 버킷이, 기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에서는 빈곤 탈출의 버킷이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 진실규명을 갈망하는 특별법 버킷이. 그래서 각기의 현장에서 가장 아픈 곳을 지향하는 운동이 된다면 조지 부시가 됐든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하는 김무성 대표가 됐든 아니면 4.16일 7시간이나 행방이 묘연한 그분이 됐건 무엇을 끼얹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39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대세다. "에델 케네디부터 저스틴 팀버레이크까지"라는 미국 ALS(루게릭병)협회의 표어대로 전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죄다 참여하고 있다. 대 부호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나 팀 쿡은 물론이고 만수르에 뤽 베송,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까지 인터넷은 이들의 찬물 끼얹는 동영상을 보며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소위 유명인사 중 다단계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이 운동에 지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낄 정도이니 지구촌이 들썩이는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미국 ALS 협회는 공식 보도 자료를 내놓은 8월 13일 이후 불과 열흘 만에 6,450만 달러(약 6백 50억)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누적액수 7,020만 달러-. 이것이 국내에도 상륙했다. 연예인, 운동선수, 기업인, 또 정치하는 양반들까지 각기의 방식대로 재밌는 영상들을 토해냈는데 내가 이 운동을 처음 본 건 오바마가 물 끼얹기를 거부하고 기부만 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였다. 그 즈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나경원 의원, 박지원 새정연 의원 등이 물 맞는 기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정몽준 전 의원의 챌린지 사진을 본건 부산시내에 기록적 폭우가 내린 그날 이었다. 중동으로도 번졌다. 물이 귀한 동네이니 만큼 얼음물 대신에 흙더미를 뒤집어 쓰는 방식이다. 내용도 진화하고 있다. 아이스 버킷(얼음물양동이)이 루게릭 환우를 위한 퍼포먼스라면 샌드 버킷(흙양동이)은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의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달 8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공습에 50여 일간 2,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69명이 이스라엘 군인이다. 전 세계의 눈이 중동의 평화에서 멀어지는 순간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은 매일 포탄에 허물어지는 흙더미를 뒤집어쓰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는 메시지다. 요르단의 코미디언 마흐무드 다르자위가 처음 시작했고 확산일로에 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하마스-이스라엘 평화협정이 26일 체결되면서 다시 불안한 평화로의 동거에 들어갔다. 내가 이 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건 “특정 질병을 지원하는 자선 단체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것이 좋은 생각은 아니며 다른 단체의 기부를 생각할 때”라는 Felix salmon의 지적에 동의해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인기인의 유명세를 이용한 전형적인 일회성 캠페인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10년만 지나도 세계적 전쟁광으로 역사책에 기록될 조지 부시까지 물 끼얹으며 생명을 말하는 꼴이 가당치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지명을 받으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엔 나를 지명한 이의 체면을 생각해야지 했는데 그것도 무척 속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루게릭병에 대해 조금 더 마음을 두면서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송 cbs-fm 그대와 여는 아침의 김용신 아나운서로 부터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이어 받았습니다. 루게릭 환우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할 기회가 되어서 고맙습니다. 내가 많이 모르는 탓에 당장 환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 합니다. 그러니 루게릭 환우들과 가족들 또 다른 수많은 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돈이 없어 우는 사람들. 오늘 아픔의 덩어리가 가슴에 맺힌 모든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아픈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급히 일정을 바꿔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경희대에서 광화문까지의 행진에 참가했습니다. 물도 끼얹지 못하겠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하는 곳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대신 행진에 참가했던 학생들과 함께 나눌 물을 미리 준비했고 또 함께 마셨습니다.” - 아이스 버킷 챌린지 참가의 변 나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결국 아이스도 버킷도 없는 행사가 되었다. 통상 바닥에 버려지는 물은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목을 축였고 찬물에 몸서리치는 쾌감의 퍼포먼스는 세 시간여의 행진으로 바꾸었다. 나를 지목한 김용신 아나운서도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일일단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대신했다. 내가 지목한 세 명도 함께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했다. 어떤 이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기부하되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주었고 어떤 이는 아예 광화문의 일일 단식에 참여했으며, 또 다른 어떤 이는 세월호의 현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루게릭병은 정신이 살아있으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질환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도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전쟁중독의 중동에서는 평화의 버킷이, 기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에서는 빈곤 탈출의 버킷이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 진실규명을 갈망하는 특별법 버킷이. 그래서 각기의 현장에서 가장 아픈 곳을 지향하는 운동이 된다면 조지 부시가 됐든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하는 김무성 대표가 됐든 아니면 4.16일 7시간이나 행방이 묘연한 그분이 됐건 무엇을 끼얹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24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진도 앞바다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하여 470여 명을 태운 세월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가라앉는 광경을 전 국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속절없이 바라보는 가운데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무려 300여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지 어언 4개월이 지나갔다. 사건 직후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던 당국자들의 말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특별법이 표류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망망대해도 아닌 육지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서, 그것도 폭발이나 태풍 등의 급박한 사고도 아닌 서서히 배가 침몰해가는 과정을 많은 국민들이 몇 시간 동안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하고 300여 명이 넘게 희생된 이런 참사는 전례가 있었던가? 구체적 사고 원인은 진상규명을 통해 밝혀져야 할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물질을 인명보다 우선시하는 풍토 속에서 배양되어 왔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집권 여당은 ‘전례’를 운운하고, 사소한 법조문 따위를 핑계 대며 시간만 잡아먹고 있다. 인명을 우선시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또 다른 세월호의 침몰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가 어떻게 들어설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지난 8월15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기소권·수사권 있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국가를 경영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자라면 이런 일이 터졌을 때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여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텐데 왜 외면하는 것일까? 세월호의 침몰원인과 구조과정에서의 어처구니없는 방관 등 밝혀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판에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져야 이 나라가 비로소 새로운 틀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리고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조사 행위에 누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인가? 의혹 당사자가 감추려 들 때 강제력이 없다면 어떻게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집권여당은 어떤 생각으로 저렇게 몽니를 부리는 걸까? 아무래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면 이 정권에 크나큰 타격이 될 만한 일들이 많아서 그러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시간과 보수언론은 자기들 편이니 적당히 뭉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다르는 것은 결국 이 정부에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똑같은 말도 사용하는 이에 따라서 개념이 달라지는 판이니 제대로 소통이 될 리가 없다. 상식과 염치는 이미 안 보이는 곳에 유폐시키고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신공을 내보이는 자와 대화가 될 리가 없다. 이미 국민을 위한 국가는 부재하고 정의를 위해 저항하는 시민을 겁박하는 공권력만 남아 있는 나라에서 현명한 시민들이 취할 바는 연대와 불복종, 쟁취만이 있을 뿐이다. 기억하라! 분노하라! 연대하라!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56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100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날이면 날마다 위정자들의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말들만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참담하고 죄스런 마음입니다. 온통 나라 안이 뒤숭숭하던 때, 이미 한참 전에 예매를 해놓았던 것이라 하는 수 없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 다행히 가는 곳마다 지인들이 있어 밥값과 숙박비를 최소화 할 수 있었고, 현지의 모습을 조금은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 첫 느낌은 모범생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할 무렵 창을 통해 내려다본 뒤셀도르프는 숲이 내려앉은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나무들은 잘 보존되고 있고, 집과 건물들은 나무 높이를 넘지 않아 멀리서 보면 그 넓은 땅이 모두 나무들의 세상 같았습니다. 자전거를 위한 전용도로가 설치되어 있고, 자전거 통행에 필요한 신호등이 횡단보도마다 함께 설치되어 있으며 사람들과 자전거의 통행은 원활했습니다. 토요일 하루 동안 지인의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털어내 먹어치우고 더 이상 먹거리가 남아 있지 않아 일요일 아침 일찍 마을의 중심지에 갔더니 참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마트란 마트는 모두 문을 닫았고, 커피숍과 식당 정도만 몇 군데 문을 열었습니다. 토요일에 일하는 사람은 모두 일당의 2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요일에는 모두 쉽니다. 대한민국 근로기준법도 비슷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선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데, 독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뭐 이리 불편한지... 그런데 유쾌합니다. 일주일의 하루, 일요일. 그 날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 프레시안 프라이부르크는 생태수도라 불리기도 할 만큼 자연친화적인 도시로 유명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가 동물들이 사육되는 처참한 광경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동물원에 아이를 데려가 보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콘크리트 바닥에 자신이 배설한 오물과 함께 뒹굴고 있는 동물은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은 동물원에 가지 말자고 합니다. 아니 뭐 동물원까지 가느냐고 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근처 5분 거리에 있는 농장으로 향합니다. 돼지, 소, 닭, 토끼, 말, 양, 오리, 칠면조... 코끼리와 기린, 악어와 사자가 없어 아쉽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면 아이가 동물들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아 보였습니다. 직접 돼지의 등을 긁어 주고, 소에게 여물을 주고, 닭에게 사료를 주고, 말을 만져보고 올라 타 볼 수 있으니 멀찌감치 서서 동물 잠자는 것이나 구경하는 것보단 훨씬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농장은 동물들의 습성에 맞게 방목을 합니다. 자연적인 상태에서 길러진 이 동물들은 프라이부르크 주민들의 밥상도 책임집니다. 행복하게 살다간 결과가 결국 사람의 밥상 위라는 것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머리만 빼곡히 내민 채 컨테이너 하나 가득 들어찬 닭장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한국에서 태어난 닭보단 이곳의 닭들이 그나마 행복해 보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독일 몇 군데를 둘러보고 한국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습니다. 귀국 전날,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지인의 집에서 확인한 한국의 상황은 떠나올 때보다 더욱 참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집권 여당은 보궐선거에서 당당하게 승리해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더군요. 더구나 21세기 하늘 아래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도무지 의심스러운 윤 일병 폭행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이제는 ‘엄마발 엑소더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독일이라고 사건사고가 없겠냐마는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의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고, 노동자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등록금 없이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고, 신나치의 집회에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의 방패가 신나치를 향하는 이 나라가 한참 부럽기만 했습니다. 이런 독일을 뒤로 하고 귀국을 앞둔 내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Welcome Dynamic Hell, Korea!”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할 수는 있을까? 의미는 있을까?’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 대부분의 국민들이 뿌리박고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말입니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03 | 추천: 0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인권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촌평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칼럼에 이어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또 다시 거론해야 하겠다. 8월이 오면 애국의 월간이라도 되는 양, 한일간의 과거사들이 부상하고, 특히 위안부 문제는 외교현안으로 빠지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외교현안이라는 표현은 언어적으로 빈곤한 수사이다. 위안부 문제는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카드로 쓰는 외교적 소모품이 아니라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상 중대한 권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일과거사와 관련해 간과할 수 없는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이 주제에 식견 있는 법률가들(대한변협)이 독일의 기억책임미래재단법(2000년)을 참조하여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인권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안’을 기초하고 2014년 6월 18일에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개최하였다. 한일간에는 강제동원과 관련해서도 평행선이 존재한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대법원은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사건에서 식민지배는 불법이고, 강제노동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고, 설혹 한일청구권협정에서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획기적으로 판결하였다(대법원 2012.5.24. 선고 2009다 22549 판결). 물론 일본 법원은 과거에 상이한 취지로 판결해왔다. 식민체제에서 강제동원은 불법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적법한 조치이므로 손해배상 사안이 아니라 기껏해야 원호의 문제에 해당하며, 그에 관한 일본정부의 책임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구도 속에서 대한변협은 강제동원에 대한 해법으로 이른바 <2+2방식>에 의한 재단을 제시하였다. 즉 일본정부 및 강제동원 노동자를 착취한 일본기업들, 그리고 청구권자금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한 한국정부와 그 청구권자금을 유용한 한국기업 등이 출연하여 재단을 만들고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일정한 경제적 보상과 지원, 일정한 기념사업을 수행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한변협은 이 법안을 가지고 2014년 7월 28일 일본에서 일본변호사연합회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 법안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우선 한국의 국회가 임의로 일본정부 및 일본기업의 책임과 출연을 전제로 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가이다. 관할권의 문제이다. 한일 국회의원들이 각기 자국의 국회에서 유사한 법률을 통과시키는 고도의 팀플레이를 전개한다면 보기 좋겠지만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이든 책임에 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이나 일본의 구체적인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의 일부기업들의 출연의사만 믿고 너무 가벼이 움직이는 인상을 받는다. 독일의 기억책임미래재단법의 탄생 전에 상응하는 정부간 협정(agreement)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6월 1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일제강제동원피해자 인권재단 설립에 관한 공청회’모습. 사진 출처 - 대한변협신문 이제 위안부와 관련된 부분을 검토해보자. 이 법안은 위안부를 강제동원 피해자 범주에 포함시켜 함께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법안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를 합당하게 존중하고 법적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결여하고 있다. 이 법안의 기본발상은 일본정부나 기업이 돈을 재단에 출연하면 과거사의 책임을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인데, 강제동원 일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며, 더구나 위안부 문제의 해법으로서 과연 옳은지 정색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재단법안은 실패한 국민기금의 국적을 바꾸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민기금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상기하기 바란다. 몇 가지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우선, 일본기업들은 노무자의 강제동원에는 책임이 있지만 위안부 문제에는 책임주체로서의 성격이 미약하다. 나아가 법안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한국정부 및 한국기업의 출연의무를 상정하였다. 이제 책임원칙은 사라지고 재원확보를 위한 경영마인드만 보게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인도적 책임과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뒤섞을 수 있는지도 문제이다. 다음으로, 이 법안(제1조)은 가해행위의 성격을 규정하지 않고 막연히 ‘피해’라고 규정한다. 즉 법안은 강제동원을 명백하게 불법이라고 천명하지 않는다. 일본이 돈을 제공하면 이를 책임이행으로 간주하겠다는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지와 전쟁 치하에서 가장 끔찍한 인권침해 형태라며 국제사회가 인도에 반한 범죄이자 성노예제로 규정하는 위안부 문제를 단지 피해라고 언급한다면 이는 성노예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행태이다.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정부의 불법이고 범죄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나 법안작성자들은 어려운 문제를 모조리 우회할 요량인 듯하다. 물론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정부가 공식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정이다. 그런데도 법안은 강제동원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그 너머 위안부 문제를 끼워 넣어 어영부영 처리하고 있다. 일본은 인도적 책임을 이행하려고 할뿐인데, 재단법안은 그것을 법적 책임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의 혼선은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에 도사리고 있다. 필자는 현재의 법안 수준이라면 강제동원 피해자 범주에서 위안부를 논외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우선, 식민지배는 병합조약에 따라 이루어졌기에 그 후 일본법이나 식민지법에 입각한 모든 조치는 적법하다는 극단적인 내재적인 관점(국제법은 논의로 하고)을 따르면 ‘군인, 군속, 노무자의 강제동원’을 합법적 조치로 주장할 소지가 있지만 내재적 관점에 따르더라도 ‘위안부의 동원’은 일본법에서도 합법적인 행위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의 부인주의자들은 위안부 동원에 국가관여나 강제성을 부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만일 위안부의 동원에 국가가 관여한 것이 사실로 확정되면 국제법상으로도 국내법상으로도 국가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에 그렇게 부인했던 것이다. 따라서 합법성의 맥락에서 회색지대가 넓은 강제동원 개념을 군인, 군속, 노무자에 국한하는 것이 합당하며, 범죄코드에 해당하는 위안부의 동원까지 확장해서는 안 된다. 강제동원과 위안부동원이 모두 심각한 인권침해인 점은 분명하지만 청구권협정에서부터 현재까지 문제해결의 역사와 방식이 같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혼합의 이유를 몇몇 국내법에서 찾을 수 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2010년)> 및 그 선행법인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2004년>)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군인, 군속, 노무자, (군)위안부로 규정하였다. 이 연장에서 대한변협의 재단법안은 위안부를 포함시켰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이행과 관련되어 있는 <대일민간인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1971년)>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명료하게 군인, 군속, 노무자에 한정하였다.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위안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범주에서 배제하였다는 점은 반영하는 것이며, 이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별도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앞의 두 법률은 위안부를 강제동원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청구권협정과 관계없이(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제공할 한국정부의 의향을 반영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와 관련해서 한국정부에게 법적 귀책사유가 없으므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생활안정자금)은 인도적 지원책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앞의 두 법률에서 위안부를 강제동원의 피해자로 규정한 것은 법규범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대한변협이 제안하는 재단법안은 일본의 범죄와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고 그 법적 책임을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경제적 지원을 이유로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완전히 털어버리게 하려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일본정부가 이러한 법률을 만들어도 시원치 않는 국면에 한국국회가 이러한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재단법안의 책임사상은 전체적으로 일본의 인도적 책임이나 도의적 책임론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질적인 책임주체들을 엮어서 두루뭉술하게 해결하려는 것은 과거사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재단에 거금을 출연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책임인정과 사죄 등 규범적인 잉여를 생산할 것 같지 않다.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만으로 재단이 기능하는지는 의문이다. 가해국가인 일본정부가 국가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식적인 사죄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이고 그 돈으로 기념관을 지은들 어떤 쓸모가 있을까? 그 기념관은‘책임의식의 착오와 혼동의 박물관’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을 받는 이유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15년 전에 도의적 책임에 입각해서 사과문과 위로금을 제공하겠다는 국민기금의 제안을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부하였는데, 대한변협이 이제 다시 받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행동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해법으로서는 재단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지금의 재단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가의 책임 인정과 공식사과 위에서만 재단도 가능한 것이다. 광복 70주년이 눈앞에 있다. 인간의 생애적 시간에 제약받는 사건들을 다루다보면 답답한 마음에 속전속결의 의지가 앞설 수 있다. 그러나 1965년 회담도 한일관계의 정상화에만 골몰한 나머지 너무나 많은 것을 소홀히 하였다. 지금 또다시 그래야할 이유가 없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비근한 예를 들어보겠다. 수십억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몇 백 만 원을 떼어먹으려는 인간이 있다고 하자. 채권자는 그 자의 돈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며, 그 인간이 개과천선하는 것은 채권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국가가 권력을 동원하여 시민에게, 이웃나라 시민에게 엄청난 만행, 이른바 국가범죄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돈 받고 떨어져’라는 소극적인 방식에 만족할 수 있을까! 과거의 인권침해사건, 국가범죄에 대한 피해자들의 규범적 주장은 오로지 금전적 동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금전배상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재단법안의 작성자들은 친절하게 사죄광고 위헌판결에 기대어 사죄를 상대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한 대목은 과거청산법과 이행기정의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법률안에 대한 Q&A).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제법상 책임의 첫 단추는 사죄(apology)에 있다. 2005년에 유엔총회가 채택한 피해자권리장전(Basic Principles and Guidelines on the Right to a Remedy and Reparation for Victims of Gros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and Seriou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Adopted and proclaimed by General Assembly resolution 60/147 of 16 December 2005) 제19조에서 제23조까지를 참조하면 국가폭력 이후 사회와 국가가 이행해야 할 일들을 빼곡하게 적고 있다. 피해자권리장전은 배상의 내용으로 원상회복, 금전배상, 재활조치, 만족, 재발방지의 보증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돈만 받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 이후 사회가 져야할 책임의 두께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소송이나 법률투쟁을 넘은 문화적 투쟁의 영역에 속한다. 대한변협의 재단방안은 (외견상으로) 현재 한국법원의 판결,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위안부 피해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와도 사뭇 동떨어져 있다. 협상은 자신의 모든 주장을 관철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국제적인 규범과 원칙을 무시하고 돈만 받겠다는 납작한 자세로 임할 수는 없다. 재단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일본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법이 될 것이다. 손에 한 움큼 쓰레기를 들고 걷다가 휴지통을 만난 것과 같다. 해방 이후 70년의 세월을 감안한다면 법안은 해당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법이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양국이 책임에 관한 원칙협정을 채택하고, 그 아래 양국정부가 추가적인 이행사항을 각기 법제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2+2는 재원조달 방식이 아니라 한일과거사를 둘러싼 사람들의 소통방식이 되어야 한다. 즉 양국정부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일본정부가 일본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대한변협이 먼저 재단법안을 제시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시도이다. 필자는 한일협정 50주년인 내년에는 양국이 ‘식민지배와 전쟁책임의 해결에 관한 한일정부간의 추가협정’을 만들고, 다음으로 일본정부가 일본의 국내법으로 피해자권리장전의 취지를 전향적으로 반영한 ‘식민지배와 전쟁피해의 청산법’을 제정하기를 희망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52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세관이 된 교회 평화로운 일상에 쩍하고 금이 가듯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왜 이리 시끄러운 거야?” 세관장이 투덜거리며 나와 보니 몇몇 세리들이 한 청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세관장님, 이 사람 아주 막무가내입니다. 여기가 자기 아버지 집이라면서, 막 들어가려고 합니다.” “뭐라고? 뭣해, 빨리 경찰 부르지 않고.” “이미 불렀습니다. 마침 저기 오는군요.” “왜 남의 집에서 소란을 피우는 겁니까? 신분증 내놔 봐요.” 경찰이 다그치자 청년의 얼굴에 기가 차다는 표정이 스친다. “여기 야훼라는 분이 살고 계시지 않나요?” “아니, 그런 사람 안 살아요.” “분명 여기가 맞는데….” “아니 이 사기꾼이 어딜…. 업무에 지장이 많으니 빨리 잡아가든지 하세요.” 경찰에 끌려 나오는 청년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여기가 맞아!” 이렇게 말하며 청년이 세리들과 경찰 앞에 내민 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못자국이 선명했 다. 안타까움이 뚝뚝 듣는 듯 한 청년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니, 정녕 나를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청년이 떠난 건물 한 귀퉁이에는 낡은 명판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뒹굴고 있었다. '○○○교회'라는 이름만이 그 곳이 청년이 애타게 찾던 아버지의 집이었음을 들려주고 있었다. #세리가 된 성직자 수도권 한 교구 신부의 사제관. 본당 주임을 맡고 있는 바오로 신부와 인사차 찾아온 후배 신부들과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루카 신부, 어떻게 요즘은 골프 좀 쳐?” “아닙니다. 아직…. 저희 본당은 이쪽하고 차이가 많이 나서요.” “허허, 신부가 사목 제대로 하려면 골프도 좀 치면서 외부 사람들하고도 어울릴 줄 알아야 해.” 다른 후배 신부가 끼어든다. “신부님, 골프 잘 치신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뭐 그냥, 따라다니다 보니 조금씩 늘게 된 게지.” “우와! 이건 그 유명한 ○○○○가 아닙니까.” “아, 그거…. 몇 년 전 내 생일 때 누가 선물해준 건데. 필요하면 가져.” “그래도 됩니까.” “난 그거 말고도 많으니까 부담 없이 가져가.” 아니나 다를까, 사제관 이곳저곳뿐 아니라 장 안에 들어있는 골프채 세트만 5개가 넘었다. 한켠에는 미니 골프연습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역시 이런 데서 사목을 해봐야 사제 생활하는 맛이 난다니까….” #허물어져 가는 아버지의 집 신약성경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은총을 이야기할 때 세리는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로 부르신 마태오도 세리였다. 예리코를 지나가시던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자캐오라는 사람도 돈 많은 세관장이었다. 하지만 세리는 단죄 받아야 할 인간 무리를 꼽는 데도 빠지지 않는 존재였다. '세리와 도둑', '세리와 강도', '세리와 죄인', '세리와 창녀', '세리와 이방인'처럼. 로마 총독의 위임을 받아 인두세, 토지세, 통행세, 시장세, 물품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던 세리들은 세금 징수권을 독점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수탈을 자행했기에 동족인 유다인에게도 경멸과 미움의 대상이었다. 로마 제국의 하수인으로 유다인 사회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세리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됐다.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했으며 이방인이나 죄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됐다. 이 때문에 세리들에게는 공민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배심원이나 공증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천대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처럼 경멸과 저주의 대상인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른 것은 자신의 복음화 여정에 치명타를 안겨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모험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런데 2000년이 흐른 지금, 예수의 선택에 금이 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뽑아 세운 사람들 사이에서…. 목사를 비롯한 교직자들이 뭇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가톨릭교회는 그 여파에서 멀리 비켜나 있는 듯했지만, 한동안 이웃종교에 머물던 손가락질은 어느 새 교회의 변두리를 넘어 중심을 향해 가고 있다. 아버지의 집 한켠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한복판에 사제들이 서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공감대가 시간을 거듭할수록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들 뇌리에는 ‘사제’하면 ‘목자’라는 의식보다는 ‘관리자’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게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세관, 사제는 세리가 되고 만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교회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교회 쇄신을 부르짖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은총의 촉진자보다는 은총의 세리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입니다.”(복음의 기쁨 제47항)   #어쩌다가 아버지의 집이 아직 한국교회에서는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목자가 세리로 추락하는 양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현대를 살아가는 사제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젖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전 세계 교회를 통틀어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교회의 ‘중산층화’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이들의 교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별히 사목자들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문제의 본질은 사제를 필두로 많은 교회 사목자들이 동족을 못살게 굴던 ‘세리’의 위치로 전락해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제가 마치 하느님 나라로 가는 통행세를 걷는 세리처럼 여겨진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세상이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사회로 막무가내로 진화할 때 교회가 그 흐름에 편승해 보조를 맞추면서 이제는 자본의 논리가 교회를 압도하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세상의 도전에 교회가 적절한 응전에 나서지 못함으로써 실기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교회의 중산층화를 걱정하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풍조마저 확산되고 있다. 오히려 발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신자들이 잘 살게 되고 영향력도 커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버젓이 부자의 문 밖에 가난한 라자로가 굶주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세례 받은 이들이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특정 구조와 일부 본당과 공동체들의 냉랭한 분위기, 또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단순한 문제든 복잡한 문제든 이에 대응하는 관료적인 태도에 기인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많은 곳에서 행정적인 측면을 사목적 측면보다 우선시하고, 복음화의 다른 형태들은 뒷전으로 물리고 성사 집전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제63항) 관료적·행정적 모습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교황의 질타가 폐부를 찌르듯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교황은 아버지의 집을 갉아먹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영적 세속성에서 찾는다. “영적 세속성은 신앙심의 외양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93항) 겉으로는 별 문제 없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신앙의 가면’을 쓴 영적 세속성이 교회 안에 스며들면 단순히 도덕적인 다른 모든 세속성보다 더 엄청난 재앙이 되고 마는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들이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자상한 충고를 잊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 종교가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셨다. 교회가 나중에 추가한 규범들이 ‘신자들의 삶에 짐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종교를 종살이로 만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면서 끊임없는 식별을 통해 복음의 핵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회의 일부 관습들을 걸러내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라고 요청한다. 교황이 지적한 신자들의 삶에 짐이 되는 규범과 복음의 핵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관습이 오늘날 교회가 겪고 있는 질곡을 낳는 것이라면 과감히 이를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늘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 효율과 실리만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은 골리앗과 다윗의 예를 들며 양으로 살라고 권고한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92 | 추천: 1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권은 주로 권리에 대해서 말하지만, 헌법이 정한 의무 말고도, 시민들에게 주어진 몇 가지 의무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환기시키려고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권리(침해금지의무), 다른 사람을 도울 의무(구조 의무)같은 것이다. - “사람답게 산다는 것” 중에서 - 율이(가명)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지적장애를 가진 중학교 1학년 특수학급 여학생이다. 입학 얼마 후 같은 반 학생들이 교사를 찾아와서 “율이가 하굣길에 같은 특수학급의 철이(가명)에게 학교근처 놀이터로 끌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이야기 했다. 이에 학교는 즉시 교육청과 경찰에 신고하고(2012년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성폭력 발생 시 학교는 즉시 신고의무가 있음) 이 사실에 근거하여 폭대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처리하였다. 5년 전 중학교에 입학한 철이는 뇌병변장애인(다리재활치료로 2년을 휴학)으로 일반학생들과 잘 적응하고 생활한 특수학급학생이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도우미학생을 괴롭혀 우울증까지 생기게 했고 이에 견디다 못한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등 지속적으로 일반학급의 학생들과 마찰이 있었다. 율이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철이는 긴장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곧 예전의 거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율이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했지만, 부모에게는 “율이의 가방만 만졌고, 교사들이 무섭게 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율이는 여러 날 동안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면서 불안해했다. 율이와 같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어렵게 생활하던 율이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서 매우 흥분했지만, 다음날에는 철이네 부모와 합의를 했음을 알려왔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운 아버지는 피해자 부모로부터 “죄송하다, 철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가해자인 철이 어머니가 학교 관리자를 상대로 “자신에게 폭언하고, 장애인차별”을 했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얼마 후 “철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감금하고 협박했다”는 내용으로 학생부장, 담임을 교육청과 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다른 학부모를 통해서 “학교가 바로 경찰에 신고한 것에 대해서 용서할 수 없어서 민원을 계속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악의적인 마음으로 제기한 민원에 학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소명하기 위한 자료준비로 오랜 시간을 소모했다. < SBS스페셜 > 3부작 '학교의 눈물'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SBS 장애를 가진 율이의 아버지는 피해자인 율이를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인 철이네 부모가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피해자를 공격하고, 학교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 무력감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에게는 가장 아픈 곳인 율이를 도울 의무가 있었고, 율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하기 어려운 가정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지역의 보호센터를 연결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렵지만 철이에게도 가해행위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율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모든 학생들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14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권은 주로 권리에 대해서 말하지만, 헌법이 정한 의무 말고도, 시민들에게 주어진 몇 가지 의무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환기시키려고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권리(침해금지의무), 다른 사람을 도울 의무(구조 의무)같은 것이다. - “사람답게 산다는 것” 중에서 - 율이(가명)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지적장애를 가진 중학교 1학년 특수학급 여학생이다. 입학 얼마 후 같은 반 학생들이 교사를 찾아와서 “율이가 하굣길에 같은 특수학급의 철이(가명)에게 학교근처 놀이터로 끌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이야기 했다. 이에 학교는 즉시 교육청과 경찰에 신고하고(2012년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성폭력 발생 시 학교는 즉시 신고의무가 있음) 이 사실에 근거하여 폭대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처리하였다. 5년 전 중학교에 입학한 철이는 뇌병변장애인(다리재활치료로 2년을 휴학)으로 일반학생들과 잘 적응하고 생활한 특수학급학생이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도우미학생을 괴롭혀 우울증까지 생기게 했고 이에 견디다 못한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등 지속적으로 일반학급의 학생들과 마찰이 있었다. 율이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철이는 긴장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곧 예전의 거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율이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했지만, 부모에게는 “율이의 가방만 만졌고, 교사들이 무섭게 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율이는 여러 날 동안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면서 불안해했다. 율이와 같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어렵게 생활하던 율이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서 매우 흥분했지만, 다음날에는 철이네 부모와 합의를 했음을 알려왔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운 아버지는 피해자 부모로부터 “죄송하다, 철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가해자인 철이 어머니가 학교 관리자를 상대로 “자신에게 폭언하고, 장애인차별”을 했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얼마 후 “철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감금하고 협박했다”는 내용으로 학생부장, 담임을 교육청과 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다른 학부모를 통해서 “학교가 바로 경찰에 신고한 것에 대해서 용서할 수 없어서 민원을 계속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악의적인 마음으로 제기한 민원에 학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소명하기 위한 자료준비로 오랜 시간을 소모했다. < SBS스페셜 > 3부작 '학교의 눈물'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SBS 장애를 가진 율이의 아버지는 피해자인 율이를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인 철이네 부모가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피해자를 공격하고, 학교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 무력감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에게는 가장 아픈 곳인 율이를 도울 의무가 있었고, 율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하기 어려운 가정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지역의 보호센터를 연결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렵지만 철이에게도 가해행위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율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모든 학생들도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453 | 추천: 0
- 내 정당의 집은 어디인가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들어가는 말 박근혜 정권이 집권 1년차에 이어 2년차에도 내각 구성을 못해서 끙끙 앓고 있다. 반공논리로 무장한 친일·독재세력이 박근혜라는 얼굴마담을 내세워 - 그리고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동원해 - 그럭저럭 정권 재창출에는 성공했으나, 실은 나라를 통치할 능력은커녕 장관을 임명할 인재풀조차 갖추지 못한 무능 정권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시대착오적 무능’이라고 본다. 이들이 원래부터 무능했던 집단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능했기에 바뀐 시대에 재빨리 적응했고, 대한민국 역사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그러나 기득권이 공고해질수록 이들의 의식은 점차 화석화했고, 극에 달한 아전인수식 역사해석은 국민 일반의 인식과 최대치의 괴리를 노정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인식이 무능을 낳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문창극 사태의 공통점은 박근혜 정권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꼬여갔다는 데 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정권의 안위(대통령의 체면)와 기득권 유지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다보니 빤히 보이는 얄팍한 공작 정치와 이미지 조작의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늘 꼬리를 밟힌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한국호는 맹골수도의 사나운 물살에 갇혀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5년 내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집권세력과 그에 반발하는 국민의 싸움이 전개될 듯하다. 문제는 6·4 지방선거에서 확인했듯이, 이토록 후진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국민이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기어코 지지한다는 30%의 골수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동층조차 새누리당을 지지했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야당을 지지할 이유가 이토록 후진 새누리당만큼도 없다는 말이다. 더욱 심각한 건 진보정당의 실종이다.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녹색당(이상 지지율 순) 등 4개 정당을 합친 지지율(이하 모든 정당 지지율은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기준)이 8.14%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여당이 졌네, 야당이 졌네, 말들이 많았지만, 최후의 패배자는 진보정치가 아니었을까. 나의 경우에도 이번 선거처럼 지지해야할 정당이 명확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 글의 주제는 한 정치문외한이 보는 한국정치의 결핍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나의 결핍에 대한 호소에서 정치를 발명해낼 능력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이 글을 쓰는 나의 자격은 순전히 개인적인 정치 소비자다. 부디 다른 오해는 말아주시길.) #몸말 먼저 부끄러운 고백부터. 한 때 나는 정치(인) 혐오증을 갖고 있었다. 정치는 권력욕에 찌든 쓰레기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정치를 (직접) 하거나,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건 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오래 전, 대학 다닐 때 일이다. 내가 속한 세대는 학생운동권 출신의 정치인 욕을 하며 자랐다. ‘학생운동 하는 이유가 결국 나중에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의 손가락질에 대처하려 긴급 발행한 ‘미래의 부재증명’ 또는 ‘알리바이 채권’ 같은 걸 호주머니에 갖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너무 미욱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 이 채권의 유효기간은 꽤 길었다. 신문사에 들어가서도 한참동안 정치부에 눈길 한번 돌린 적이 없다. 정치부 기자는 내 사전에 없었다. 그러다 10년차 정도가 됐을 무렵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했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이다. 정치를 쓰레기들에게 맡겨놓으면 안된다고, 양질의 사람들이 정치에 많이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기자 생활 10년 만에야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다니,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 요즘 후배들 앞에서 말을 꺼내기조차 낯 뜨거운 기억이다.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연차로는 정치부에 가는 게 무리였다. 이미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은 후배들이 여럿 있었고, 새삼 손을 들기가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정치부 기자는 내 사전에 영영 없어져버렸다. 어릴 적 치기어린 다짐이 달성(!)된 것이다. 정신을 차린 나는 비록 국외자이지만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괜찮은 후배들에게도 정치부를 꼭 가보라고 권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예전의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너희가 정치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도 그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시민단체들도 ‘정치 알리바이 채권’을 호주머니에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게 말도 안 되는 자기검열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보기엔 너희가 시민단체를 하면서 한국사회를 들었다놨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정당을 하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겠냐”, 뭐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술 먹고 한 얘기라 그리 정밀한 얘기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만, 밖에서 보기에, 시민단체로서 그 단체의 활력이 이전보다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엔지오에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지만) 인사적체 현상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도 그런 느낌을 가졌으리라. 이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실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까지는 그 후로도 몇 년이 더 걸렸다. 그런데 그 방식은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들이 좀 더 조직적으로, 당당하게 정치를 시작하길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개별적 투항(좋게 말해 투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모았던 기대와 참신함은 그들의 정치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말한 정치활동은 아니었다. 내가 지지하고 싶은 정치세력 하나가 이렇게 형성돼 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다음은 정의당이다. 한 때 나는 노회찬, 심상정의 심정적 지지자였다. 한국사회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존경했고, 그들의 이념적 변화에 동의했다. 그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시민이나 이정희와의 연대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정당을 만들려는 포석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한번 갈라섰던 세력과 다시 연합을 형성할 때는 그들의 기질과 깜냥을 상수로 놓고 정치력으로 풀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결별보다 더욱 심한 내상을 남겼다. 진보정치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정의당이라는 당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도덕한 이명박 정권의 안티테제에 불과한 것 아닌가. 아무리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행했기로서니, 진보를 표방하면서 이렇게 추상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이름을 내걸다니,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지하고 싶은 또 하나의 정치세력은 이렇게 깃발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노동당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데, 그들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옳다는 걸 내가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다. 현재의 노동당은 이념적 견결성을 중시하는 일군의 현장노동자들과 아카데미즘의 집단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노동당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활동을 하는지 대중인 나는 알 수가 없다. 단순히 돈이나 인력의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언론 탓도 하지 말기 바란다. 일단 외생 변수는 논외로 치자. 중요한 것은 당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이다. 나는 노동당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지만, 당 활동의 대부분이 기존 지지자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자기들끼리는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밖에서는 알 도리가 없다. 나름 관심을 갖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정도라면 1000명 중 지지자가 6명에 불과한 현실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6·4 지방선거 당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광산네거리에 지방의회 선거 후보들의 선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고백하자면, 나는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녹색당을 찍었다. 깊이 생각한 결과는 아니었다. 한국에도 녹색당 같은 대안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녹색당 지지율은 0.55%였다. 나의 한 표는 소수점을 넘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다. 근대의 과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매사에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녹색의 꿈은 정녕 요원한 것인가, 나는 절망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다른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기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새정치민주연합. 현재의 김한길-안철수(줄여서 김철수라고 부르겠다) 공동대표 체제에 대한 민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쟤들 뭥미?’ 정도인 것 같다. ‘여 8 야 9로 야당이 졌다’는 <한겨레21>의 지방선거 관련 표지 제목을 보고 무릎을 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민한당 이후 최약체 야당, 혹은 새누리당 2중대라고 비난받아도 싸다고 생각할 정도다. 김철수의 행보를 보면, 어떻게 하면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의 욕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무능은 새누리의 시대착오적 무능과 달리 ‘기회주의적 무능’이라고 부를 만 하다. 김철수가 당권을 장악하게 된 것 자체가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말린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은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대 계파인 ‘친노’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손발을 묶어버렸다. 김철수는 바로 그 조-새 프레임에 편승해 당권을 장악했고, 조-새 프레임의 유지보존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김철수가 당권을 갖고 있는 한 조-새 프레임은 계속될 것이다. #나가는 말 짐작했겠지만, 나의 관심은 새누리당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그들도 변할 것이고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변화는 진보정치가 변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진보의 역동성이 보수의 변화를 추동했다는 건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다만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늘 외형만 변했을 뿐 본질은 바뀐 적이 없다. 새누리당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진보정치가 촉발하는 변화의 압박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정치가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문제는 진보정치도 대중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말을 좋아하고 잘난 체 하기 좋아한다. 자기가 정치하는 걸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알아봐주길 바란다. 그래서 목이 뻣뻣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 진보정치의 치명적인 약점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정치인이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결국 정치는 세 싸움인데, 세를 늘리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진보정치는 세를 줄이는 마이너스 게임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집을 같이 짓고 같은 지붕 아래 각자의 방을 쓰면서 거실을 공유하는 식으로 세력을 넓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의 또 다른 영역,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건 순전히 아마추어로서 하는 얘긴데, 이런 상상을 해본다. 정의당과 노동당과 녹색당이 당을 합치면 어떨까. 혹은 이들이 한꺼번에(아니면 일부라도)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왼쪽 블럭을 차지하면 어떨까. 나는 김부겸의 대구 출마를 지지하고 존경하지만(그 반대의 의미로 부산 출마를 거부했던 안철수를 경멸하지만) 지역주의는 당분간 여전히 힘이 셀 것이다. 지역주의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당판을 새로 짜야하지 않을까. 새누리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 구조에 균열을 내는 방법이 반드시 제3당을 통해서인지 자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기억하는 분이 많으시리라. 나는 지금 네마자데의 집을 찾아 좁은 골목길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던 아마드의 심정이다. 아, 정녕, 내 정당의 집은 어디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1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