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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올해는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다. 견우와 직녀도 매년 칠월 칠석에 한 번은 만나건만 꽉 막힌 남북관계는 좀체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작년 북측 고위급인사의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 참석 이후 10월 말에서 11월 초 갖기로 했던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올해 초에는 남북 당국 모두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22일 북한 붕괴 발언 이후 북한은 미국과는 더는 마주 앉을 용의가 없다고 반발하며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3월 키 리졸브 독수리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면서 훈련이 종료된 4월말까지 남북미 사이에 대화 성사의 계기는 사라졌다. 러시아 전승 70주년을 맞아 러시아의 초청을 받은 양 정상이 5월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예상되기도 하였으나 끝내 불발되었다.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아 7년 만에 그 성사가 기대되는 가운데 추진된 남북공동행사도 결국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의 문제와 정치색 배제 여부를 둘러싼 행사의 성격 문제에 대한 남북 당국 사이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희망은 끊이지 않고 분출될 것이고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은 결코 멈출 수도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한 30여명의 세계 여성평화운동가들이 지난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라”라는 취지의 ‘비무장지대를 걷는 여성들’(Women Cross DMZ) 행사에 참여하여 경의선 육로를 이용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비무장지대를 걷는 여성들’(Women Cross DMZ) 행사의 성사는 남북이 분단 적대의 비극을 극복하고 더 이상 전쟁에 휩싸이지 않는 평화로운 삶을 이뤄나가기를 바라는 국제 여성계의 바램이 일구어낸 역사적 장거로 기록될 것이다. 군사분계선이 사라지고 남북이 평화롭게 자유로이 오고 갈 평화통일의 그날은 먼 미래의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현실의 일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세계 여성평화운동단체 '위민크로스디엠지'(WCD) 회원들이 지난 5월 24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북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고 민통선 철책옆 길을 걸어 임진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7월 3일부터 14일까지 광주에서 개최되는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게 된다면, 작금의 메르스 확산 사태로 우리 사회 전체가 혼란과 걱정에 휩싸여 시달리는 상황에서 더 없는 위안과 기쁨이 될 것이다.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닫힌 숨통이 트이고, 8.15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로까지 이어져 남북화해와 남북관계발전을 향한 선순환의 큰 전기가 열리기를 바란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에 놓인 난관과 시련은 언제나 매우 엄중하다. 8월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계기로 정전상태의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와 공포가 다시 엄습할지도 모른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응할지 모른다. 상호 적대행위가 숨통이 트인 남북관계를 언제든지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상호 적대관계의 악순환 일로의 그칠 줄 모르고 줄달음질쳐 가는 북미 대립과 남북관계 경색 분위기 속에서 훈풍을 불러올 남북대화 추진의 동력은 없는 것일까? 남북 사이의 대화와 협상의 분위기를 창출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에 크게 기여할 방도는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들로 인하여 남북대화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정부에 남북관계에 훈풍을 불러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능동적 조치로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함에 앞서 남북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촉진시키는 원칙에 대해 상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 당국 모두 남북합의에 기초하여 이를 성실히 이행해 나가며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7.4 남북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에 의하면, 남북문제는 자주적, 평화적, 민족대단결에 의거하여 민족의 존엄과 이익에 지향시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는 남북합의의 정신에 기초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언이다. 먼저, 정부는 남북교역과 민간접촉 및 대북 신규 투자를 불허하는 5.24 조치를 해제하기를 바란다. 현 정부 여당의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지는 모르나, 5.24 조치의 해제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대북경제협력을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도 정부가 적극적 입장에서 선제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정부는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는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는 남북 간 상호 불신과 상호 비방전을 야기하여 남북 대결을 격화시킴으로써 정부의 남북대화 추진 입장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접경 지역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심각히 위협하는 행위로 그 위험성이 명백하므로 제지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미 대립과 별개로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핵실험을 둘러싼 북미 사이의 대결과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북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매개하고 지지할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향한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하여 적극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저해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역행하는 종북몰이 공안탄압을 중단하여야 한다. 북한에 대한 불신과 증오에 기반한 종북몰이 공안탄압은 남북대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정부가 남북합의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계기를 살릴 수 있는 전향적 조치를 통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기를 바란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47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다소 늦게 일어난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 갑자기 아이가 코피를 쏟는다. 내 손에 떨어진 아이의 선혈... 놀란 가슴에 솜을 찾아 코를 막고 얼음을 꺼내 코 주위에 냉찜질을 하며 지혈을 해본다. 이제는 좀 괜찮으려나 싶어 솜을 빼보지만 멈추지 않고 뚝뚝 피를 흘린다. 아이의 피한방울이 이렇게 가슴 아플 수 있을까? 오후가 되어서야 코피가 멎는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래도 계속 지혈이 되지 않으면 병원에라도 가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병원에 가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5월 17일 국내에 첫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환자가 병원을 찾았고, 해당 병원 의사는 메르스를 의심하여 질병관리본부에 확진요청을 했지만, 검사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환자 가족이 “검사를 안 해주면 정부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항의하자 질병관리본부는 병원 측에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병원이 책임지라”는 단서를 달고서야 확진 검사를 실시했다. 최초 검사 요청을 한 때로부터 2일을 허비하고서야 메르스 확진 검사결과가 나왔다. 이후 6월 1일 발표에 의하면 메르스 확진 환자는 25명, 격리대상자는 682명, 메르스 감염 사망자 2명이 되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40%에 이른다. 사스의 치사율이 10%였던 점에 비교하면 얼마나 위험한 질병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고, 이와 접촉한 사람들 중 2차 감염자가 발생하는 등 메르스의 빠른 확산 속에 국민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메르스는 공기로 전파된다거나 어느 지역에 있는 어느 병원에 가지 말라는 등의 얘기가 SNS망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메르스 의심환자 및 확진 환자를 위한 격리센터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보건당국은 이틀 만에 격리대상자 수가 2배가 늘어난 사실을 발표하고, 메르스 확진 환자인지 장담할 수 없다던 환자가 사망하고서야 메르스 확진 환자였다고 발표한다. 이젠 3차 감염자가 나타나고 있다. 2차 감염자는 1차 감염자와 접촉하거나 같은 병원에 입원, 간병하던 사람들이다. 3차 감염자는 2차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보건당국은 “의료기관 내 감염이었기 때문에 지역사회로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밝힌다. 정부는 초기 대응에서도, 메르스 위험지역 분류에서도, 전염성 정도에 대한 판단에서도 모두 잘못 대응했다. 심지어 출입국 관리도 허술해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미 우리는 지난 해 4월 16일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객실에서 꼼짝 않고 있던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으로 생매장한 세월호의 잔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초기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시시각각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며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부질없는 기도를 했던 그 바로 기억 말이다. “전원구출”이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결국 정부의 무능한, 무책임한 대응으로 꽃과 같은 아이들은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고, 지금도 가슴속 응어리를 풀지 못한 유가족과 국민들은 벌써 1년이 넘도록 길바닥을 집 삼아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메르스의 급격한 확산 속에서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의 수장인 박근혜는 철저한 방역대책의 강구 대신 “괴담”을 유포하는 자를 엄벌하겠다는 식의 국민 협박을 늘어놓는다.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알려주지 않는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것을 두고 괴담을 유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이때, 누가 괴담이나 유포하며 이 사태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그 머릿속이 궁금할 뿐이다. 스스로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두고 괴담 유포 운운하는 것을 보니, 아이들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며 자기 살 궁리만 하던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하고, 비열한 안내방송이 귀가를 맴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미군이 국내로 배달한 탄저균은, 부정비리의 종합선물세트 성완종 리스트는, 단군 이래 최대 비리인 사자방 문제는, 정부를 총동원한 부정선거는, 모두 메르스로 묻고 가려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는 말.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대한민국을 거대한 세월호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상상하라~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영화 홍보 문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보다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아이의 코피가 반나절이 지나도록 멎지 않는데도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 과민해서인가?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20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삶은 기억의 축적이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 무언가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한 켜 한 켜 쌓아올린다는 뜻이고, 우리의 삶을 무력화시키려 하는 수많은 장애에 저항하며 삶의 온전함을 끝내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결국 우리는 기억하는 만큼 사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우리 귀에 속삭인다. 잊으라, 잊어버리라. 세월호를 잊고, 5.18을 잊고 또 많은 것을 잊으라고 말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은 그래서 깊게 다가온다. “권력에 대한 모든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음악은 기억을 유지하는 대단히 중요한 매개다. 어느 순간 내 삶의 한 장면을 함께했던 음악을 통해 우리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음악은 의식이 아니라 몸으로 스며들어 내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전율시키며 잊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낸다. 우리가 노래를 듣고 부를 때 울컥 눈물을 흘리거나 심장을 감고 도는 어떤 뜨거움을 느끼곤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몸의 기억은 어떤 강제나 억압을 통해서 억지로 지워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몸에 음악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기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음악은, 기억을 통해 삶의 온전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우리의 기억 투쟁의 중요한 무기가 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가 있다. 80년대를 겪은 세대라면 누구나 이 노래를 기억한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80년 5월을, 그리고 그 5월로부터 시작되어 그 시대 전체를 관통했던 피의 역사를 잊지 못한다. 80년대 내내 수많은 투쟁의 현장에서 불렸던 이 노래는 민주화의 흐름 속에 합법적인 음반으로 발매되면서 민중가요의 테두리를 넘어섰고 나아가 동남아와 중국, 일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민중들이 함께 부르는 국제적인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살된 윤상원 열사와,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곡된 노래이며, 백기완 선생의 시를 토대로 소설가 황석영이 노랫말을 다듬고 김종률이 작곡한 노래라는 사실은 이제 그리 중요한 게 아닌지 모른다. 중요한 건 5월 광주와 80년대의 격랑 속에 불렸던 이 노래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역사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노래는 노래말이나 멜로디, 혹은 편곡과 가창 같은 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시대의 맥락을 갖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노래들은 한 시대의 가장 치열했던 역사 전체의 무게를 담보하기도 한다. ‘라 마르세이유’나 ‘인터내셔널가’, 혹은 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말이다. 언제부턴가 정부는 이 노래를 망각의 저편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5.18 추도식의 주제가로 불리던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건 5.18 광주의 역사 자체를 잊으라 하는 강요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그것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진보시키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을 억누르고 싶어 하는 권력자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고작 노래 하나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건 단지 그들이 ‘쪼잔’한 자들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온 거대한 역사의 한 줄기를 무력화시키고 끝내 지워버리고자 하는 그들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시도의 일부분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켜내는 것, 이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이 노래를 함께 부를 때 우리 머릿속에 소환되는 역사의 장면 장면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우리가 노래를 잊는 순간, 우리는 역사를 잃는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65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필자가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5월 7일에 베를린에 개최된 기념행사에 야스쿠니촛불공동행동의 일원으로 참석하여 발제한 것을 약간 수정하였다.) 죄의 정치 어떤 죽음을 기억하고 어떤 죽음을 배제하고,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이상화할 것인지는 예로부터 정치의 본령에 속한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아테네 병사들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유족의 위태로운 감정을 배경으로 애도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일본사회가 그랬듯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도 희생자를 어떻게 애도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앓고 있다. 그런데 애도의 대상이 전쟁과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라 전범이나 가해자라면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파행을 겪게 된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를 생각할 때 애도의 정치가 아니라 죄의 정치(politics of guilt)가 더 어울린다. 죄의 정치란 전쟁범죄나 중대한 인권범죄에 따른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이행하고 국내적 또는 국제적인 평화를 수립하는 역동적인 정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국가폭력을 자행한 사회의 성원들은 죄의 얼룩에서 벗어나기 위해 윤리적으로도 정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법적 대가도 치러야 한다. 죄의 정치는 외부세력의 강박이 아니라 사회의 내재적인 발전을 통해서 전개되는 경우에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국가폭력에 소극적으로 연루되거나 수수방관하였던 보통사람들이 후회와 성찰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재구성하려는 집단적 정치적 의사를 형성할 때, 죄의 정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죄의 정치의 최종생산물은 평화를 사랑하는 건강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희생자의 판타지로서 백조일손지지 총칼로 전쟁을 하지 않는 동안 인간은 기억과 관념을 가지고 전쟁을 한다. 기억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 지금도 제주4.3사건의 희생자명단에서 남로당원을 배제해야 한다고 우파들은 주장한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지금도 강변한다. 군경은 6.25전쟁 초기에 수만 명의 민간인들을 예비검속의 명분으로 체포하 여 학살하였고, 제주4.3사건의 관련자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정부당국은 제주도 모슬포에서 130여 명을 집단살해하고 6년이 지나도록 그 시신에 접근하는 것조차 금지하였다. 접근이 허용되었을 때에는 시신들은 뒤엉켜서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고, 유족들은 유해를 임의로 짜 맞추어 묘지를 만들었다. 그 시신들은 원래의 몸이 아니지만 각각 개인으로 취급되어 안치되었다. 대신 유족들은 이 무덤을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백여 명의 조상에 대하여 그 후손들은 한 사람처럼 봉사하고 애도하자는 뜻을 담는 공동묘지)라고 부르고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므로 백조일손지지는 학살 이후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판타지이다. 학살을 제거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분단을 극복해달라는 유지를 품은 불가사의한 묘지로서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할만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백조일손지지의 정반대의 시설이다. 침략주의의 충전소 야스쿠니 신사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의 강제합사, A급전범(침략범죄자)의 합사, 일본수상의 참배 등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 상황을 증폭시킨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제거한다면 이제 감당할만한 시설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 자체에 있다. 서승은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시설이 아니라 군사시설이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실제로 식민주의와 침략주의의 만신전과 같다. 타이완침략, 조선강제수교, 오키나와 병탄, 청일전쟁, 러일전쟁, 독도병합, 조선강제병합,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은 제국주의 일본의 70년전 쟁 또는 대(對)아시아전쟁--대동아성전이 아니라--이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어느 국가나 국민이든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에 대해 문화적 자율성을 갖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몰자를 위한 추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그러한 시설들과 동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곳은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꿈꾸는 시설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오로지 제국주의 침략과정에서 천황제의 지지대로서 역할 했다. 일본정부가 70년간의 침략전쟁을 통해 자행한 범죄와 야만에 대해 주변국가에 사죄의 감정을 갖고 진정으로 평화적인 관계를 원한다면 그러한 혐오시설은 일본제국의 패망과 동시에 일찍이 해체되었어야 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고스란히 담은 시설을 일본이 유지하는 데에는 자민당 정부와 일본의 우익의 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아패권(亞覇權)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계산도 한 몫 한다. 과거사에 대한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학자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역사경계선과 안보경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학습의 차이에서 역사의 차이로 형사책임과 관련해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1945년 이후 연합국은 나치 전쟁범죄를 강도 높게 청산하였다. 물론 나치공직자들이 군정말기에 대체로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독일정부는 유대인학살과 전쟁범죄에 관여한 자들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처벌하였다. 일본에서도 1945년 이후 연합국은 많은 전범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맥아더는 전쟁범죄의 총책인 일본천황의 책임을 면제하였으며,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생화학무기를 제조하였던 731부대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연합국의 점령통치가 종결된 이후에는 일본정부는 전쟁범죄자를 처벌한 사례가 전무하다. 이 점은 독일과 일본의 역사를 오늘날 상당히 다르게 만들었다. 예컨대, 1960년대의 제2차 아우쉬비츠 소송이나 2011년 뎀잔주크(Demjanjuk) 소송(영화 <뮤직박스>의 모델)은 독일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도 전쟁범죄와 경각심, 책임을 학습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 대중들은 연합국의 점령과 강제청산을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와 같이 지속적인 학습과정을 통해 20세기가 지향하는 국제인도법의 정신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정부와 대중에게는 이러한 학습의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까지의 일본의 행위와 책임을 아직까지도 총정리하지 못했다. 위안부문제, 식민침략, 남경대학살 등은 여전히 일본 시민들에게는 평화와 인권의 정신을 만회하기에 좋은 학습기회이다. 그러나 일본사회와 일본정부는 그와 같은 일차적 죄를 부인하고 책임의 이행을 부인하면서 독일 작가 랄프 지오르다노가 말한 '제2의 죄'를 지속적으로 범하고 있다. 전쟁선동으로서 참배행위 야스쿠니 신사 자체는 죽은 자에 대한 사사로운 애도의 공간일까?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를 위해 죽은 군인이나 그에 준하는 자만이 묻혀있기 때문에 사사로운 애도의 감정이 아니라 숭배와 찬양의 감정이 작동한다. 거기에 합사된 자들은 일체화되고 신으로 격상된다고 한다. 인권법적으로 평가하자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행위는 자유권규약이 금지하고 있는 전쟁선동이다(ICCPR 제20조 제1항). 야스쿠니 신사의 출범부터 마지막까지 일본침략의 수행자들이 묻혀있기 때문에 동북아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기타 희생자를 위한 간이시설(예컨대, 진영사)을 지어 구색을 맞춘다고 해서 시설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자행한 침략과 만행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이행하는지 여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동북아 시민들의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학살이나 남경대학살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이행하지도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시민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강화를 당연히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전몰자들은 대개 아시아에서 일본의 패권을 위한 70년간의 침략전쟁 수행자들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서 뭔가를 기린다는 것은 일본의 침략국가성을 찬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인 일본이 안고 있는 내면의 어둠이다. 물론 모두를 전쟁의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모호하게 접근하는 독일의 ‘노이에 바케(Neue Wache)’ 1)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야스쿠니 신사가 구조적으로 그와 같이 전환되기 어렵다고 본다. 일본에서 합당한 죄의 정치가 발현되고 과거사의 책임을 이행하고 평화를 위해 깨어날 때, 그 때에나 노이에 바케와 같은 시설이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침략전쟁의 전범과 가해자들을 참배의 대상으로 한 야스쿠니 신사는 관리주체와 법적 지위를 아무리 변경하더라도 여전히 국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띨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가 발산하는 기운은 침략주의와 맹목적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고민한다. 전쟁에서 죽은 자를 추도하는 시설로써 전쟁과 애국심을 선동하지 않는 형태가 가능할까,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가 진정으로 평화주의의 제도로써 가능할까? 평화의 제도는 권력과 권위를 통해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고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평화의 제도일 수밖에 없다. 노이에 바케를 만들고도 독일은 미국과 함께 전쟁동반자관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1) 노이에 바케는 최근에 타협을 이룬 독일의 전몰기념공간이다. 그러나 시설은 죽은 군인을 영예롭게 하는 의도를 추구하지 않고 널리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 상만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 모두를 애도하고 있다. 시설의 입구에 쓰여진 애도문구에서 여전히 동서독간의 이데올로기적 상흔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66 | 추천: 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두어 달 전부터 저는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 결제할 때 제 이름으로 사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씁니다. 제가 그렇게 사인을 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친구 때문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저 같은 서울내기의 경우로 말하자면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친구입니다. 꼼꼼하고 성실한 데다,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적이라고는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저와는 달리 공부도 꽤 잘했고 고교시절에도 거친 말 한 마디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난히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껏 한 직장에서만 수십 년을 일해 온 친구입니다. 올해 2월 중순쯤, 이대 부근 선술집에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 친구와는 여럿이 가끔 만나 술을 나누기도 했지만 이렇게 단 둘만 따로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근처 생맥주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결국 패가 나뉘고 자리가 엉망이 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맥주를 한 잔씩 마신 후였습니다. 그 친구가 요즘 세상이 어떠니 하며 느닷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명박이 참 대단한 사람이야.” “응?” “이명박이 너무 과소평가 된 것 같지 않냐?” “나, 명박이 싫어한다. 그런 얘기는 그만하자.” “어? 너 노빠였냐?” “명박이 싫어하면 노빠냐? 난 노빠도 싫어한다. 그러니 그만하자.” 제가 약간 목소리를 높이자 친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습니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에 흘렀습니다. 저는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가 직장을 퇴직하고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등, 누구의 아들이 뭘 어쨌다는 등등. 그런데도 그 친구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생맥주를 한잔 더 마신 그 친구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너, 박ㅇ자 씨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냐?” 참 뜬금없었습니다. 도대체 박ㅇ자 씨가 누구인지 그러니 그 사건이란 게 무언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저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것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때, 우리 군사작전지역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사망한 사람의 이름이 박ㅇ자 씨라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제 알겠지. 그 사건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아… 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해야 할까…. 그것도 몸서리쳐지는 이명박 정권의 일을…. 하지만 친구는 얼굴에 비장감마저 감돌 정도로 진지했습니다. 결국 저는 마지못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음… 분단국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의 대답이 뭐가 불만이었는지 친구는 들고 있던 술잔을 탕 내려놓으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뭐? 분단국가? 비극? 너, 종북이냐? 너랑 더 이상 술 못 마셔!” 친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저 친구는 술도 안 취했는데 왜 저러는 걸까….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 있다가 뒤따라 술집 문을 나서려는데 술집 주인이 저를 잡았습니다. “손님, 계산을….” 사진 출처 - MBC 술집 주인에게 카드를 내어주고 나니 황당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뭘 어쨌기에 종북이 된 걸까…. 오랜만에 만나 고작 500cc 생맥주 한 잔씩 마셨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습고 슬펐습니다. 술집 주인이 카드 결제 사인을 하라고 했을 때 저는 ‘박근혜’라고 또박또박 사인해주었습니다. 술집 주인이 제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때 화가 나서 그랬다면 저는 오히려 ‘이명박’이라고 적었어야지 왜 ‘박근혜’라고 사인을 했을까요. 아무튼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저는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물건 세 개를 사도, 단골 술집에서 맥주 두 병을 마셔도, 동네 마트에서 담배를 한 갑을 사도 무조건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박근혜’라고 사인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장난 같은 일이 정말 유치한, 흔한 말로 ‘찌질’한 짓이라는 것을요. 생각해 보니, 그 날은 유가족과 시민들이 팽목항에 함께 모였던 날이었습니다. 세월호를 건져 올리고 진실을 밝히자는 시민대회를 열었던 날이었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12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4월 16일에 대통령은 없었다. 작년에도 없었고, 올해도 없었다. 그런데도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존재한 적이 없는 분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말해 달라.”는 질문.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죽은 이유만 알자는데 그분과 위정자들은 아직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답변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은 오롯이 기억하기 위해서다. 답변을 거부하는 것은 기억을 방해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행패다. 바다 깊이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은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진실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을 거부하는 것은 살인사건에서 사체를 찾지 않고 기소한 것과 같다. 진실에 세월호 인양이 필요한 이유다. 죽음의 이유, 그 진실을 알기 위해 유가족 등이 요구한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 경우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거짓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수없이 내 뱉었다. 우리 사회의 의혹들에 대하여 특별검사를 11차례 실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짓말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그놈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수사 필요성이 인정되면 수사권을 주는 것이 법률이다. 구청 위생과 직원에게도 수사권을 주고 있고, 42개 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데도, 4·16 특별법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진실이 무서워서 수사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그자들의 뜻대로 팔과 다리를 한 쪽 씩 잘라버려 한계가 분명히 보이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진실을 묻어두려는 놈들의 1차 확인사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놈들이 시행령을 뒤틀었다. 조사 대상도 정부조사결과 분석만 하라고 한정하고, 기획조정실을 만들어 진상규명도 기획 조정하겠다면서 위원회 권한을 박탈하는 시행령을 만들어 버렸다. 특별법에서는 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고, 진상규명도 참사의 발생원인·수습 과정·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를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데도 시행령으로 특별법을 깔아 뭉개버렸다. 헌법은 대통령이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관해서만 대통령령을 발 할 수 있게 규정되어 있다. 그놈들은 특별법에서 위임하지도 않는 사항에 대해서 마치 위임받은 것처럼 시행령을 만들었다. 헌법도 무시하고, 발로 차버렸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잡아먹어 버린 것처럼 하위법령인 시행령으로 상위법인 특별법과 헌법을 꿀꺽 삼켜버렸다. 따라서 시행령은 당연히 위헌이고 무효다. 진실을 거부하는 놈들의 2차 확인사살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합동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선체 인양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분의 아버지는 권력 유지를 위해 헌법을 위반하고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면서 폭정으로 도배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벤치마킹하여 헌법과 특별법에 위반되는 제2의 긴급조치로 통제령을 만들어 위원회 무력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2의 유신정권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빠처럼 권력의 칼자루로 헌법을 베어버렸다. 서해성 작가가 한 신문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의는 법조문과 법조문 사이, 문자와 문자 사이에 비틀거리면서 서 있다.’ 그 노~옴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는 것 같다. 그자들이 엄청난 사실을 숨기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으니, 분명 거창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는 또다시 교통사고에도 미치지 못하는 위자료를 던져주면서,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이 3번째 확인사살을 기도하고 있다. 4월 16일 난 한 방송에서 4·16 참사 1년을 맞이하는 심정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한마디로 더럽다. 정치인들의 위선, 뻔뻔스러움, 거짓말에서 악취가 풍긴다. 정말 더럽다. 너무 더러워서 침 뱉을 곳도 없는 대한민국 같다. 이게 도대체 뭐냐고... ” 대한민국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더러운 악취를 충분히 호흡하고 즐길 수 있어야 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더러운 자 들 만이 군림할 수 있는 세상이어도 망각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지만, 부도덕하고, 더러운 권력은 반드시 침몰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29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3년간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은 무려 10만 6022명이고, 학령기(초 1~ 고 3)의 어린이와 청소년 수는 713만 명이다. 이 들 중 658만 명은 학교에 다니지만 나머지 4%인 28만 명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교육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령기 학생들이 이 정도라면 그 전에 학교를 떠나 방황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얼마나 될까? 해마다 쏟아지는 '탈학교'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 그들은 버려져도 괜찮은 존재일까?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7년 만에 잿빛으로 돌아온 여동생”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2살 때 집을 나간 소녀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을 들은 가족(언니)은 도착한 병원에서 19살 어린 나이에는 걸리기 힘든 심각한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인해 온몸이 새카만 잿빛이었고, 죽음을 앞둔 몸 상태는 70대 노인과 다름없는 동생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어린 시절 계속되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녀는 집을 나간 날 성폭력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의 비난과 폭력으로 다시 가출을 하게 되고 그 후 소녀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두 명의 언니와 지내면서, 자신들에게 밥을 주었던 할아버지를 죽이려는 범죄를 저질렀다. 12살의 소녀는 일정기간 시설에서 지내다가 세상으로 나왔지만 폭력의 기억만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거리 생활을 했고, 고마운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죄책감으로 매일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하면서 7년 동안을 버티다가 쓰러져 죽음을 앞두고 가족을 만난 것이다. 동생을 마주한 2살 터울의 언니는 자기도 아버지의 폭력으로 버텨내기가 힘들어서 동생을 돌아보지 못했던 시절을 후회하면서 그간 애타게 동생을 찾고 있었다. 사진 출처 - SBS 그런데 소녀 지갑 속에는 시설에 있을 때 찍은 사진 한 장이 발견되었는데, 시설에서 생활할 때 찍은 모습으로 소녀는 그 어떤 때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있었다. 소녀는 시설에서 생활할 때는 미래에 대한 꿈도 꾸고 열심히 생활했었지만 시설에서 나온 소녀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은 두렵고 무서운 곳이라는 기억만 있었던 소녀가 시설 속에서 지낸 얼마간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가족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견뎌내면서 살아내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의 모습에 무기력감을 느꼈던 일들이 많았다. 이러한 아이들이 숨을 쉬고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다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최은주 서울가정법원 소년부 판사는 “10대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을 끌어주는 노력이 결국 우리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시설을 늘려도 답답한 상황에 2005년 아동보호치료시설 예산은 해당 시설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부담으로 규정이 바뀌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 역시 ‘지자체 이양 사업’이라는 원칙적인 입장만 고수해 청소년보호시설이 폐쇄 된다는 소식만 들린다. 국가는 판사들이 “청소년 품을 시설 국비지원 필요하다”(한겨레신문 2015.3.31. 서영지 기자)는 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또다시 소녀와 같은 아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국가와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08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상임대표 서석구·김현욱, 공동대표 김찬수·이계성) 소속 회원이라고 밝힌 이들 150여 명이 모여 '친북·반미·반정부 정치사제 100인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필자 앞으로도 100인 명단이 담긴 책자 두 권이 초대장과 함께 배달돼 온 것은 물론이다. 약칭해 ‘대수천’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 자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비난한 사제 3명, 친북반미 반정부 시국미사를 주도한 신부 73명, 정진석 추기경(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용퇴를 요구한 신부 25명 등 100명(중복자 제외)의 '정치사제'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치사제'들이 남남갈등을 부추겨 1년 갈등 비용이 82~246조원에 달하며 540만 명의 천주교 신자 중 420만 명을 냉담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종북성직자는 북한으로 가라' '종북신부들은 각성하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기자회견 내내 외친 구호다. 이제는 무덤덤하게 그저 ‘에고, 또….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대수천은 지난 2013년 9월에 결성된 가톨릭 평신도들의 모임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주요 일간지 광고를 통해 느닷없이 등장한 ‘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를 잇는 조직이다. 서석구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변호사,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전 서강대학교 총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 등이 대수천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인물들이다. 천주교 부산교구 김계춘 신부와 전 서강대 총장인 박홍 신부 등이 지도사제를 맡고 있으며, 서울, 대구, 마산, 춘천, 제주 등지에 지부를 두고 1100여 명의 평신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의 대결에 두고 있는 듯 한 인상이 짙다. 서석구 대수천 상임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는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고 정의와 사랑을 위하는 교회를 위해 종북, 반미, 반정부 사제들을 척결하고자 명단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고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를 포함한 모든 사제와 평신도의 영적 대각성은 물론, 회개를 통해 교회가 거듭 태어나도록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정치사제들은 이제라도 교회와 나라를 위태롭게 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주시기를 간곡히 기도드린다.”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거듭되는 행동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낯 뜨거울 때가 대부분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에 대해서도 “지난 2008년부터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국미사를 거의 매일하면서 공사를 방해해왔고 평화스럽던 구럼비 마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 폭력을 선동해 왔다. 이로 인해 공사가 5년씩이나 지연되어 국민혈세 수천억이 더 들어가게 만든 반역 정치신부”라고 말한다. 또 “주교회의 의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방한위원장을 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5회나 만나게 하면서 탈북동포들은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음성 꽃동네 방문을 방해하면서 쌍용자동차 농성장, 제주해군기지 농성장,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는 가도록 유도한 반역사제”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막가자’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한민국사랑 종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 100인 명단 발표' 4대종단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취재 현장에서 몇 차례나 대수천 회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던 필자가 이들에게 품게 되는 생각은 ‘안타까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고와 행동의 ‘과잉’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시국미사를 봉헌하는 코앞에서 항의집회를 여는가 하면, 미사 중 성당 진입을 시도해 이를 막는 이들과 소동을 빚기도 한다. 사제의 강론이 귀에 거슬린다고 미사를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같은 형제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마치 ‘내가 기준이고 정통’이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이 ‘과잉’만 제거한다면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필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회 안팎의 전문가나 학자들은 이른바 ‘대수천 현상’을 그리스도교 정신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부재에서 찾는다. 한 마디로 신자로서 ‘공부’가 덜 됐다는 소리다. 실제 대부분의 신자들이 6개월에서 1년 남짓한 예비신자 기간 중 배운 교리나 성경 지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그리스도교의 실상이다. 길어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을 가지고 평생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대수천 회원들 가운데 소위 먹물깨나 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박사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의 신앙지식은 ‘거기서 거기’라고 할 만하다. ‘배운 게 없다보니’ 소아병적 발상과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나 기준을 알려주는 ‘사회교리’는 ‘정통’교리가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회교리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지만,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삶을 통해 역설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함께해야 하고 세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 서있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수천’은 이런 세상이 주는 십자가는 멀리하고 천상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이들이라고 하면 큰 모욕일까. 개인주의적 신앙, 사회적 관심이 심각하게 결여된 자기중심적 신앙의 행태는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7-07-20 | hrights | 조회: 1072 | 추천: 3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을 인상한 정권으로 기억될 거라는 힐난성 농담이 시중에 떠도는 모양이다. 담뱃값 인상을 빼고는 딱히 한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만들어낸 농담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내가 만약 ‘십상시’라면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나라만 생각하며, 퇴근할 때 자료 뭉치를 챙겨가 홀로 독파하는 대통령의 ‘열공 의지’를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지,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실로 많은 일을 했다. 십상시의 관점에서 지난 2년의 업적을 되짚어 보자. 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별도의 자료 조사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이렇게 많다. 1. 공직자 인사의 일관성 확립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사람들은 청와대와 내각을 육법당(육사+고시 출신)으로 채우려 하느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건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박 대통령이 육법당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한 이완구 총리의 예를 보자. 설마 박 대통령이 단지 행정고시 출신이라고 그를 총리에 지명했겠는가. 일단 이 총리는 새누리당 정권의 공직자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의혹 3종 세트’를 기본으로 장착한 사람이다.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특히 병역면제 분야에서는 자신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추가해 가산점을 받았고, 부동산 투기의 경우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개발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도덕성’ 분야에서 추가점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총리는 일단 후보 추천 안정권이다. 더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이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다. 이 총리는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장군의 친위조직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이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총아로서, 하마터면 민간으로 넘어갈 뻔 했던 정권을 지켜냈으며, 당시 시가로 은마아파트 32채 값에 해당한다는 거액을 청와대 금고에서 찾아내 ‘인 마이 포켓’ 하지 않고 영애에게 건넨 ‘의리’의 사나이 아닌가. 바로 그런 전두환과 함께 국보위에 근무한 공으로 훈장까지 받은 진정한 애국자가 바로 이완구다. 게다가 말 잘 듣는 언론인은 대학총장도 시켜주고 까부는 언론은 김영란법 같은 신무기로 협박까지 하는 등 독재정권에 필수적인 언론 장악 신공(이건 확실히 국보위 시절 배운 기술인 듯)까지 겸비한, 문자 그대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 실무능력을 타고난 공직자 되시겠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한 이유도, 대타를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고 받들어 모셔야 한다. 김 실장만한 관록과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장기집권 토대였던 유신헌법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91년 분신정국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라는 구호로 동서분열과 지역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리게 했으며, 보수진영의 눈엣가시와도 같던 노무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과감한 기획을 주도했던 인물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대한민국 법조인맥의 진정한 좌장으로서 사법부와 검찰을 두루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아직 정신 못 차린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일부 판사들이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을 하고 있지만(ex: NLL 문서유출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대법원은 이미 완전히 장악했다. 검찰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상태다. 이제 김 실장이 물러나더라도 시스템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후속 인사까지 완료했다.(우병우 민정수석은 ‘리틀 김기춘’이다) 역사적으로 분골쇄신한 충신들이 없지 않지만 김 실장 만큼 대를 이어 충성을 다 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첫 번째 꼭지부터 사설이 길었다. 법무부 차관의 엽기적인 ‘별장 성접대 사건’, 무기 브로커 출신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 CIA 정보원 경력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업무추진비로 재테크의 신기원을 이룩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해외 순방 수행 중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준 공직자와 공직 후보자들이 수없이 많았는데(이게 바로 창조경제다!) 이를 일일이 섬기지 못하고 다음장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새누리당에는 이런 훌륭한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국내 인력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아프리카에서도 인재를 모셔와서 구멍 뚫린 집에서 쥐새끼들과 함께 잠을 자게하고(동물애호), 월급도 떼먹으며(근검절약) 혹사시킨 분이 사무총장을 지낸 당 아닌가. 요컨대 박 대통령은 일관된 공직 후보자 기준을 확립해 대한민국 행정부의 도덕성을 잡범 수준으로 낮춘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유명무실화해 예산 절약 기회를 마련했으며, 사표를 낸 정홍원 총리를 10달 가까이 재활용한 것도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꼭 필요한 모범을 보인 사례라 하겠다. 취임 2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직원 조회에 참석,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 신뢰와 원칙 지키기 다음은 불과 한 달 전 온 나라 월급쟁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미완에 그친 연말정산 혁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부자들에 대한) 신뢰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증세는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 역시 신뢰의 정치인이다. 대신,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을 조삼모사 전략으로 털려고 했으나 약삭빠른 중산층의 반발로 일보 후퇴한 것일 뿐이다. 남은 3년 동안 다른 속임수로 다시 한 번 관철하면 될 일이다. 부자들에 대한 신뢰와 원칙은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담뱃값 인상을 보라.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확실히 세우니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 있지 않았나. 망국의 지름길인 무상복지 시리즈를 철폐하자는 본격적인 논쟁이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했으나 새누리당에조차 복지필요론자들이 창궐하고 있어 일단 무위에 그친 점은 끝내 아쉽다. 3. 통합진보당 해산과 우익 꿈나무 양성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률이 낮다고들 수군대지만 다 이유가 있다. 100% 대한민국 같은 경우를 보자. 모두들 비현실적인 공약이며 대놓고 거짓말한다고 비난했지만 박 대통령은 진심이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보라. 박 대통령에게 종북 세력은 100%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다. 어떻게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북한 편을 들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공안검사 출신의 정홍원 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기춘 비서실장 등으로 청와대와 내각을 꾸릴 때부터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100% 대한민국 만들기를 위한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던가를. 100% 대한민국은 착착 진행 중이다. 이제 아무나 종북으로 걸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하거나 외국으로 추방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언론이 그렇다고 보도만 해주면 끝이다. 시간도 없는데 사실 여부 확인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이제 조금만 삐딱하면 좌파서적으로 몰아서 출판시장에서 고사시킬 수도 있다. 언론에서 ‘종북종북’ 떠들어주고, 일베 같은 사이트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고등학생도 애국 테러를 감행하는 시대가 됐다. 여자가 싫어 IS 요원을 자처한 고등학생까지 출현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이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이런다고 설마 종북세력이 척결되지는 않겠지만 무수한 우익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하고 있다는 얘기다. 4. 통일대박 뻥카 날리고 반대로 행동하기 2년 동안의 업적 중 가장 복잡 미묘한 분야다. 전임 이명박 정부가 워낙 죽을 쑨 대목이기도 하다. 통일의 헛된 꿈을 깨고 대화를 중단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명박 정부는 너무 서툴렀다. 괜히 북한을 자극해 연평도 포격을 자초하는 등 인기 떨어질 일을 골라 했다. 무엇보다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하거나 반대로 행동하는 기만술이 부족했다. 박 대통령은 일단 말실수를 가장해 ‘통일대박’을 화제의 키워드로 만들었고, 실제로는 대북전단 살포를 용인하는 등 중단 없는 대북 심리전을 전개했다. 실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신의 기술이다. 결과적으로 통일이든 남북대화든, 경제교류든, 이산가족 상봉이든 모든 분야에서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 열강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요, 아무것도 안하면서 친미친일 외교의 성과를 거두는 일이다. 5.세월호 뭉개기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게 아니었다. 더 큰 실수는 서둘러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유족들과의 대화를 직접 진행한 것이다. 7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처사였겠지만, 이로 인해 세월호 관련 모든 논의는 박근혜라는 깔때기로 수렴되고 말았다. 검찰이 국민의 눈길을 유병언과 구원파로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번 고정된 시선은 돌리기 어려웠고,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정윤회와 대통령의 밀회 의혹도 세월호와의 관련성 속에서 뜨거워졌다. 결국 외신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해외토픽성 망신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도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제 7시간 의혹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저 검은 바다 밑에 영원히 수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깨에 손까지 올려가며 유족들이 원하는 모든 걸 해주겠다고 했던 다짐을 깡그리 모르는 척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강인한 아버지에게서 퍼스트레이디 수업을 받은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6.월드 패션쇼 취임 초기에 재미 좀 봤던 이벤트였다. 너무 자주 하면 약발이 떨어지므로 적당히 시차를 두고 써먹어야 한다. 비록 외교적 성과를 낸 순방은 한 번도 없었지만 한국의 미를 알리는 구실은 톡톡히 해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여러번 옷을 갈아입은 대통령은 아마도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대통령이 일을 열심히 한다는 증거 아닌가. 국내에서 방송을 보던 노인 팬들은 “우리 영애 아가씨 참 곱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마다 지지율이 오르는 효과는 덤이었다. 말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대통령의 옷이 얼마나 많은지 필리핀 이멜다와 비교해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택도 없는 얘기다. 티브이에 나올 때는 막걸리 먹고 안가에서는 시바스리갈을 즐겨 마시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검약정신이 어디 갈쏘냐. 다음 달에 중동에 간다는데 또 얼마나 많은 옷을 싸들고 갈지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다. 7. “나쁜 사람” 쫓아내 공직기강 바로 세우기 박 대통령은 “나쁜 사람”을 수첩 왼쪽에 적었다가 나중에 혼내준다(수첩 오른쪽에 적힌 ‘착한 사람’에게는 벼슬을 준다). 정윤회 딸을 괴롭힌 승마협회를 혼내주라고 했더니, 정윤회 쪽도 승마협회도 둘 다 잘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보고를 했던 문체부 공무원들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장관을 집무실로 불러 “나쁜 사람”을 혼내주라고 지시했다. 인사에서 확실히 물을 먹여서 공직기강을 바로 세웠다. 자식을 숨겨두고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한 검찰총장도 자리에서 쫓아냈다. 눈치 없이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검찰총장이었다. 사생활에 관한 문제니 만큼 청와대가 직접 나서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선일보에 슬쩍 흘려줬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들여다본 일이 있어 일부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이 무슨 민주주의 시대도 아니고 웬 참견들인가. 어차피 국가가 관리하는 정보인데 필요하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채 총장과 달리 소리소문 없이 가방을 싼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게 다 “나쁜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신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α 박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앞서 거론한 모든 업적을 뛰어넘는 게 하나 있으니 다름 아닌 ‘의리 지키기’다. 천금 같은 지지율을 까먹으면서도 측근들을 비호하는 눈물겨운 의리를 보여줬다. 조폭들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을 모셔서 회당 천만 원짜리 강의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살려고 친구에 마누라까지 팔아넘기는 가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보기 드문 미담이다. 특히 사대부의 유교정치 탓에 이 나라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던 ‘환관정치’를 조정에 뿌리내리게 한 공로는 조선 건국 이래 최대 업적이라 할 것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31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로 인해 세계가 시끄럽고 불안하다. IS는 기존의 ‘원리주의자’들 중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은 방식으로 폭력을 구사한다. SNS를 적절히 이용하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는 방식이 교묘하고 잔인하다. 기존 무슬림들도 혀를 내두르며 IS의 폭력성과 반이슬람성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IS는 시리아 등에 걸쳐 일부 영토까지 장악하고 있어서 기존의 탈국가적 무장 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무슬림 학자 126명이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게 IS의 행위가 이슬람적이지 않은 이유를 세세하게 담아 테러 행위를 멈추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IS를 보며 IS와 같은 비이성적 집단이 사라진 평화 세상을 상상해보게 된다. 민간인 학살과 납치 등 만행을 저지르는 이슬람국가(IS)는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난 9월1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청사 앞에서 이라크계 쿠르드족 주민들이 IS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러면서 왜 IS 같은 집단이 힘을 얻게 되는지 근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IS의 폭력적 행위를 전적으로 IS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그보다 더 큰 구조적 폭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령 2001년 9.11 사건은 이른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미국에 저항하며 벌어진 일이다. 그들은 왜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를 가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적’ 행위를 구미 열강이 편들던 역사로 이어진다.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근대 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시초의 범죄’가 영웅담과 같은 ‘고귀한 거짓말’로 포장되면서 근대 국가 권력이 정당화되었는데, 이스라엘이 국가 형성 과정에 남겨둔 ‘시초의 범죄’의 폭력적 흔적에 대해 이슬람권 일부가 저항하면서 테러 같은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저항에 폭력적 테러라는 딱지를 붙여놓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행했던 서구적 폭력의 역사가 놓여있다는 사실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대단히 불편해한다: “(이스라엘은) ‘불법적 기원’이라는 ‘시초의 범죄’의 흔적을 아직 지우지 못한 곳이며, 그 흔적을 영원한 과거 속에 억압해둔 곳이라는 느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모든 국가권력의 지워진 과거이다.” 이 말의 속내인즉, 이슬람 원리주의 현상은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에 대한 이슬람권의 불편한 심정은 나폴레옹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방적으로 공격받으며 시작되었던 이른바 ‘십자군전쟁’도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제국주의적 서구가 보여준 폭력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 뒤 서구의 침탈의 역사를 경험해온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무언가 서구의 세속주의적 정복주의 같은 것이 내내 불편하다.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IS 같은 무장 단체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다. IS는 끔찍한 행동을 멈춰야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왜 남들이 다 끔찍하게 여기는 일들을 자처해서 더 적극적으로 벌이는지는 그 역사적 원인과 속내까지 드러날 때에야 알려지고 또 해소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