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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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두어 달 전부터 저는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 결제할 때 제 이름으로 사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씁니다. 제가 그렇게 사인을 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친구 때문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저 같은 서울내기의 경우로 말하자면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친구입니다. 꼼꼼하고 성실한 데다,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적이라고는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저와는 달리 공부도 꽤 잘했고 고교시절에도 거친 말 한 마디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난히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껏 한 직장에서만 수십 년을 일해 온 친구입니다. 올해 2월 중순쯤, 이대 부근 선술집에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 친구와는 여럿이 가끔 만나 술을 나누기도 했지만 이렇게 단 둘만 따로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근처 생맥주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결국 패가 나뉘고 자리가 엉망이 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맥주를 한 잔씩 마신 후였습니다. 그 친구가 요즘 세상이 어떠니 하며 느닷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명박이 참 대단한 사람이야.” “응?” “이명박이 너무 과소평가 된 것 같지 않냐?” “나, 명박이 싫어한다. 그런 얘기는 그만하자.” “어? 너 노빠였냐?” “명박이 싫어하면 노빠냐? 난 노빠도 싫어한다. 그러니 그만하자.” 제가 약간 목소리를 높이자 친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습니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에 흘렀습니다. 저는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가 직장을 퇴직하고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등, 누구의 아들이 뭘 어쨌다는 등등. 그런데도 그 친구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생맥주를 한잔 더 마신 그 친구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너, 박ㅇ자 씨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냐?” 참 뜬금없었습니다. 도대체 박ㅇ자 씨가 누구인지 그러니 그 사건이란 게 무언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저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것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때, 우리 군사작전지역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사망한 사람의 이름이 박ㅇ자 씨라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제 알겠지. 그 사건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아… 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해야 할까…. 그것도 몸서리쳐지는 이명박 정권의 일을…. 하지만 친구는 얼굴에 비장감마저 감돌 정도로 진지했습니다. 결국 저는 마지못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음… 분단국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의 대답이 뭐가 불만이었는지 친구는 들고 있던 술잔을 탕 내려놓으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뭐? 분단국가? 비극? 너, 종북이냐? 너랑 더 이상 술 못 마셔!” 친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저 친구는 술도 안 취했는데 왜 저러는 걸까….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 있다가 뒤따라 술집 문을 나서려는데 술집 주인이 저를 잡았습니다. “손님, 계산을….” 사진 출처 - MBC 술집 주인에게 카드를 내어주고 나니 황당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뭘 어쨌기에 종북이 된 걸까…. 오랜만에 만나 고작 500cc 생맥주 한 잔씩 마셨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습고 슬펐습니다. 술집 주인이 카드 결제 사인을 하라고 했을 때 저는 ‘박근혜’라고 또박또박 사인해주었습니다. 술집 주인이 제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때 화가 나서 그랬다면 저는 오히려 ‘이명박’이라고 적었어야지 왜 ‘박근혜’라고 사인을 했을까요. 아무튼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저는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물건 세 개를 사도, 단골 술집에서 맥주 두 병을 마셔도, 동네 마트에서 담배를 한 갑을 사도 무조건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박근혜’라고 사인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장난 같은 일이 정말 유치한, 흔한 말로 ‘찌질’한 짓이라는 것을요. 생각해 보니, 그 날은 유가족과 시민들이 팽목항에 함께 모였던 날이었습니다. 세월호를 건져 올리고 진실을 밝히자는 시민대회를 열었던 날이었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86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4월 16일에 대통령은 없었다. 작년에도 없었고, 올해도 없었다. 그런데도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존재한 적이 없는 분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말해 달라.”는 질문.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죽은 이유만 알자는데 그분과 위정자들은 아직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답변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은 오롯이 기억하기 위해서다. 답변을 거부하는 것은 기억을 방해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행패다. 바다 깊이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은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진실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을 거부하는 것은 살인사건에서 사체를 찾지 않고 기소한 것과 같다. 진실에 세월호 인양이 필요한 이유다. 죽음의 이유, 그 진실을 알기 위해 유가족 등이 요구한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 경우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거짓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수없이 내 뱉었다. 우리 사회의 의혹들에 대하여 특별검사를 11차례 실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짓말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그놈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수사 필요성이 인정되면 수사권을 주는 것이 법률이다. 구청 위생과 직원에게도 수사권을 주고 있고, 42개 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데도, 4·16 특별법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진실이 무서워서 수사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그자들의 뜻대로 팔과 다리를 한 쪽 씩 잘라버려 한계가 분명히 보이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진실을 묻어두려는 놈들의 1차 확인사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놈들이 시행령을 뒤틀었다. 조사 대상도 정부조사결과 분석만 하라고 한정하고, 기획조정실을 만들어 진상규명도 기획 조정하겠다면서 위원회 권한을 박탈하는 시행령을 만들어 버렸다. 특별법에서는 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고, 진상규명도 참사의 발생원인·수습 과정·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를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데도 시행령으로 특별법을 깔아 뭉개버렸다. 헌법은 대통령이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관해서만 대통령령을 발 할 수 있게 규정되어 있다. 그놈들은 특별법에서 위임하지도 않는 사항에 대해서 마치 위임받은 것처럼 시행령을 만들었다. 헌법도 무시하고, 발로 차버렸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잡아먹어 버린 것처럼 하위법령인 시행령으로 상위법인 특별법과 헌법을 꿀꺽 삼켜버렸다. 따라서 시행령은 당연히 위헌이고 무효다. 진실을 거부하는 놈들의 2차 확인사살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합동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선체 인양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분의 아버지는 권력 유지를 위해 헌법을 위반하고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면서 폭정으로 도배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벤치마킹하여 헌법과 특별법에 위반되는 제2의 긴급조치로 통제령을 만들어 위원회 무력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2의 유신정권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빠처럼 권력의 칼자루로 헌법을 베어버렸다. 서해성 작가가 한 신문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의는 법조문과 법조문 사이, 문자와 문자 사이에 비틀거리면서 서 있다.’ 그 노~옴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는 것 같다. 그자들이 엄청난 사실을 숨기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으니, 분명 거창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는 또다시 교통사고에도 미치지 못하는 위자료를 던져주면서, 죽음을 조롱하는 자들이 3번째 확인사살을 기도하고 있다. 4월 16일 난 한 방송에서 4·16 참사 1년을 맞이하는 심정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한마디로 더럽다. 정치인들의 위선, 뻔뻔스러움, 거짓말에서 악취가 풍긴다. 정말 더럽다. 너무 더러워서 침 뱉을 곳도 없는 대한민국 같다. 이게 도대체 뭐냐고... ” 대한민국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더러운 악취를 충분히 호흡하고 즐길 수 있어야 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더러운 자 들 만이 군림할 수 있는 세상이어도 망각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지만, 부도덕하고, 더러운 권력은 반드시 침몰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1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3년간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은 무려 10만 6022명이고, 학령기(초 1~ 고 3)의 어린이와 청소년 수는 713만 명이다. 이 들 중 658만 명은 학교에 다니지만 나머지 4%인 28만 명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교육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령기 학생들이 이 정도라면 그 전에 학교를 떠나 방황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얼마나 될까? 해마다 쏟아지는 '탈학교'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 그들은 버려져도 괜찮은 존재일까?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7년 만에 잿빛으로 돌아온 여동생”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2살 때 집을 나간 소녀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을 들은 가족(언니)은 도착한 병원에서 19살 어린 나이에는 걸리기 힘든 심각한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인해 온몸이 새카만 잿빛이었고, 죽음을 앞둔 몸 상태는 70대 노인과 다름없는 동생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어린 시절 계속되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녀는 집을 나간 날 성폭력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의 비난과 폭력으로 다시 가출을 하게 되고 그 후 소녀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두 명의 언니와 지내면서, 자신들에게 밥을 주었던 할아버지를 죽이려는 범죄를 저질렀다. 12살의 소녀는 일정기간 시설에서 지내다가 세상으로 나왔지만 폭력의 기억만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거리 생활을 했고, 고마운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죄책감으로 매일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하면서 7년 동안을 버티다가 쓰러져 죽음을 앞두고 가족을 만난 것이다. 동생을 마주한 2살 터울의 언니는 자기도 아버지의 폭력으로 버텨내기가 힘들어서 동생을 돌아보지 못했던 시절을 후회하면서 그간 애타게 동생을 찾고 있었다. 사진 출처 - SBS 그런데 소녀 지갑 속에는 시설에 있을 때 찍은 사진 한 장이 발견되었는데, 시설에서 생활할 때 찍은 모습으로 소녀는 그 어떤 때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있었다. 소녀는 시설에서 생활할 때는 미래에 대한 꿈도 꾸고 열심히 생활했었지만 시설에서 나온 소녀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은 두렵고 무서운 곳이라는 기억만 있었던 소녀가 시설 속에서 지낸 얼마간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가족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견뎌내면서 살아내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의 모습에 무기력감을 느꼈던 일들이 많았다. 이러한 아이들이 숨을 쉬고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다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최은주 서울가정법원 소년부 판사는 “10대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을 끌어주는 노력이 결국 우리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시설을 늘려도 답답한 상황에 2005년 아동보호치료시설 예산은 해당 시설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부담으로 규정이 바뀌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 역시 ‘지자체 이양 사업’이라는 원칙적인 입장만 고수해 청소년보호시설이 폐쇄 된다는 소식만 들린다. 국가는 판사들이 “청소년 품을 시설 국비지원 필요하다”(한겨레신문 2015.3.31. 서영지 기자)는 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또다시 소녀와 같은 아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국가와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80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상임대표 서석구·김현욱, 공동대표 김찬수·이계성) 소속 회원이라고 밝힌 이들 150여 명이 모여 '친북·반미·반정부 정치사제 100인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필자 앞으로도 100인 명단이 담긴 책자 두 권이 초대장과 함께 배달돼 온 것은 물론이다. 약칭해 ‘대수천’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 자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비난한 사제 3명, 친북반미 반정부 시국미사를 주도한 신부 73명, 정진석 추기경(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용퇴를 요구한 신부 25명 등 100명(중복자 제외)의 '정치사제'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치사제'들이 남남갈등을 부추겨 1년 갈등 비용이 82~246조원에 달하며 540만 명의 천주교 신자 중 420만 명을 냉담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종북성직자는 북한으로 가라' '종북신부들은 각성하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기자회견 내내 외친 구호다. 이제는 무덤덤하게 그저 ‘에고, 또….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대수천은 지난 2013년 9월에 결성된 가톨릭 평신도들의 모임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주요 일간지 광고를 통해 느닷없이 등장한 ‘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를 잇는 조직이다. 서석구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변호사,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전 서강대학교 총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 등이 대수천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인물들이다. 천주교 부산교구 김계춘 신부와 전 서강대 총장인 박홍 신부 등이 지도사제를 맡고 있으며, 서울, 대구, 마산, 춘천, 제주 등지에 지부를 두고 1100여 명의 평신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의 대결에 두고 있는 듯 한 인상이 짙다. 서석구 대수천 상임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는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고 정의와 사랑을 위하는 교회를 위해 종북, 반미, 반정부 사제들을 척결하고자 명단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고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를 포함한 모든 사제와 평신도의 영적 대각성은 물론, 회개를 통해 교회가 거듭 태어나도록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정치사제들은 이제라도 교회와 나라를 위태롭게 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주시기를 간곡히 기도드린다.”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거듭되는 행동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낯 뜨거울 때가 대부분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에 대해서도 “지난 2008년부터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국미사를 거의 매일하면서 공사를 방해해왔고 평화스럽던 구럼비 마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 폭력을 선동해 왔다. 이로 인해 공사가 5년씩이나 지연되어 국민혈세 수천억이 더 들어가게 만든 반역 정치신부”라고 말한다. 또 “주교회의 의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방한위원장을 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5회나 만나게 하면서 탈북동포들은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음성 꽃동네 방문을 방해하면서 쌍용자동차 농성장, 제주해군기지 농성장,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는 가도록 유도한 반역사제”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막가자’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한민국사랑 종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정문 앞에서 '친북, 반미, 반정부 정치사제 100인 명단 발표' 4대종단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취재 현장에서 몇 차례나 대수천 회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던 필자가 이들에게 품게 되는 생각은 ‘안타까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고와 행동의 ‘과잉’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시국미사를 봉헌하는 코앞에서 항의집회를 여는가 하면, 미사 중 성당 진입을 시도해 이를 막는 이들과 소동을 빚기도 한다. 사제의 강론이 귀에 거슬린다고 미사를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같은 형제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마치 ‘내가 기준이고 정통’이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이 ‘과잉’만 제거한다면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필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회 안팎의 전문가나 학자들은 이른바 ‘대수천 현상’을 그리스도교 정신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부재에서 찾는다. 한 마디로 신자로서 ‘공부’가 덜 됐다는 소리다. 실제 대부분의 신자들이 6개월에서 1년 남짓한 예비신자 기간 중 배운 교리나 성경 지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그리스도교의 실상이다. 길어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을 가지고 평생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대수천 회원들 가운데 소위 먹물깨나 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박사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의 신앙지식은 ‘거기서 거기’라고 할 만하다. ‘배운 게 없다보니’ 소아병적 발상과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나 기준을 알려주는 ‘사회교리’는 ‘정통’교리가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회교리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지만,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삶을 통해 역설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함께해야 하고 세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 서있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수천’은 이런 세상이 주는 십자가는 멀리하고 천상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이들이라고 하면 큰 모욕일까. 개인주의적 신앙, 사회적 관심이 심각하게 결여된 자기중심적 신앙의 행태는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7-07-20 | hrights | 조회: 1039 | 추천: 3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을 인상한 정권으로 기억될 거라는 힐난성 농담이 시중에 떠도는 모양이다. 담뱃값 인상을 빼고는 딱히 한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만들어낸 농담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내가 만약 ‘십상시’라면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나라만 생각하며, 퇴근할 때 자료 뭉치를 챙겨가 홀로 독파하는 대통령의 ‘열공 의지’를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지,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실로 많은 일을 했다. 십상시의 관점에서 지난 2년의 업적을 되짚어 보자. 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별도의 자료 조사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이렇게 많다. 1. 공직자 인사의 일관성 확립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사람들은 청와대와 내각을 육법당(육사+고시 출신)으로 채우려 하느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건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박 대통령이 육법당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한 이완구 총리의 예를 보자. 설마 박 대통령이 단지 행정고시 출신이라고 그를 총리에 지명했겠는가. 일단 이 총리는 새누리당 정권의 공직자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의혹 3종 세트’를 기본으로 장착한 사람이다.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특히 병역면제 분야에서는 자신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추가해 가산점을 받았고, 부동산 투기의 경우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개발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도덕성’ 분야에서 추가점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총리는 일단 후보 추천 안정권이다. 더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이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다. 이 총리는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장군의 친위조직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신이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총아로서, 하마터면 민간으로 넘어갈 뻔 했던 정권을 지켜냈으며, 당시 시가로 은마아파트 32채 값에 해당한다는 거액을 청와대 금고에서 찾아내 ‘인 마이 포켓’ 하지 않고 영애에게 건넨 ‘의리’의 사나이 아닌가. 바로 그런 전두환과 함께 국보위에 근무한 공으로 훈장까지 받은 진정한 애국자가 바로 이완구다. 게다가 말 잘 듣는 언론인은 대학총장도 시켜주고 까부는 언론은 김영란법 같은 신무기로 협박까지 하는 등 독재정권에 필수적인 언론 장악 신공(이건 확실히 국보위 시절 배운 기술인 듯)까지 겸비한, 문자 그대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 실무능력을 타고난 공직자 되시겠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한 이유도, 대타를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고 받들어 모셔야 한다. 김 실장만한 관록과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장기집권 토대였던 유신헌법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91년 분신정국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라는 구호로 동서분열과 지역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리게 했으며, 보수진영의 눈엣가시와도 같던 노무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과감한 기획을 주도했던 인물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대한민국 법조인맥의 진정한 좌장으로서 사법부와 검찰을 두루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아직 정신 못 차린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일부 판사들이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을 하고 있지만(ex: NLL 문서유출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대법원은 이미 완전히 장악했다. 검찰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상태다. 이제 김 실장이 물러나더라도 시스템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후속 인사까지 완료했다.(우병우 민정수석은 ‘리틀 김기춘’이다) 역사적으로 분골쇄신한 충신들이 없지 않지만 김 실장 만큼 대를 이어 충성을 다 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첫 번째 꼭지부터 사설이 길었다. 법무부 차관의 엽기적인 ‘별장 성접대 사건’, 무기 브로커 출신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 CIA 정보원 경력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업무추진비로 재테크의 신기원을 이룩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해외 순방 수행 중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준 공직자와 공직 후보자들이 수없이 많았는데(이게 바로 창조경제다!) 이를 일일이 섬기지 못하고 다음장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새누리당에는 이런 훌륭한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국내 인력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아프리카에서도 인재를 모셔와서 구멍 뚫린 집에서 쥐새끼들과 함께 잠을 자게하고(동물애호), 월급도 떼먹으며(근검절약) 혹사시킨 분이 사무총장을 지낸 당 아닌가. 요컨대 박 대통령은 일관된 공직 후보자 기준을 확립해 대한민국 행정부의 도덕성을 잡범 수준으로 낮춘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유명무실화해 예산 절약 기회를 마련했으며, 사표를 낸 정홍원 총리를 10달 가까이 재활용한 것도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꼭 필요한 모범을 보인 사례라 하겠다. 취임 2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직원 조회에 참석,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 신뢰와 원칙 지키기 다음은 불과 한 달 전 온 나라 월급쟁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나 미완에 그친 연말정산 혁명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부자들에 대한) 신뢰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증세는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 역시 신뢰의 정치인이다. 대신,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을 조삼모사 전략으로 털려고 했으나 약삭빠른 중산층의 반발로 일보 후퇴한 것일 뿐이다. 남은 3년 동안 다른 속임수로 다시 한 번 관철하면 될 일이다. 부자들에 대한 신뢰와 원칙은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담뱃값 인상을 보라.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확실히 세우니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 있지 않았나. 망국의 지름길인 무상복지 시리즈를 철폐하자는 본격적인 논쟁이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했으나 새누리당에조차 복지필요론자들이 창궐하고 있어 일단 무위에 그친 점은 끝내 아쉽다. 3. 통합진보당 해산과 우익 꿈나무 양성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률이 낮다고들 수군대지만 다 이유가 있다. 100% 대한민국 같은 경우를 보자. 모두들 비현실적인 공약이며 대놓고 거짓말한다고 비난했지만 박 대통령은 진심이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보라. 박 대통령에게 종북 세력은 100%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다. 어떻게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북한 편을 들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공안검사 출신의 정홍원 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기춘 비서실장 등으로 청와대와 내각을 꾸릴 때부터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100% 대한민국 만들기를 위한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던가를. 100% 대한민국은 착착 진행 중이다. 이제 아무나 종북으로 걸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하거나 외국으로 추방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언론이 그렇다고 보도만 해주면 끝이다. 시간도 없는데 사실 여부 확인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이제 조금만 삐딱하면 좌파서적으로 몰아서 출판시장에서 고사시킬 수도 있다. 언론에서 ‘종북종북’ 떠들어주고, 일베 같은 사이트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고등학생도 애국 테러를 감행하는 시대가 됐다. 여자가 싫어 IS 요원을 자처한 고등학생까지 출현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이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이런다고 설마 종북세력이 척결되지는 않겠지만 무수한 우익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하고 있다는 얘기다. 4. 통일대박 뻥카 날리고 반대로 행동하기 2년 동안의 업적 중 가장 복잡 미묘한 분야다. 전임 이명박 정부가 워낙 죽을 쑨 대목이기도 하다. 통일의 헛된 꿈을 깨고 대화를 중단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명박 정부는 너무 서툴렀다. 괜히 북한을 자극해 연평도 포격을 자초하는 등 인기 떨어질 일을 골라 했다. 무엇보다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하거나 반대로 행동하는 기만술이 부족했다. 박 대통령은 일단 말실수를 가장해 ‘통일대박’을 화제의 키워드로 만들었고, 실제로는 대북전단 살포를 용인하는 등 중단 없는 대북 심리전을 전개했다. 실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신의 기술이다. 결과적으로 통일이든 남북대화든, 경제교류든, 이산가족 상봉이든 모든 분야에서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 열강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요, 아무것도 안하면서 친미친일 외교의 성과를 거두는 일이다. 5.세월호 뭉개기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게 아니었다. 더 큰 실수는 서둘러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유족들과의 대화를 직접 진행한 것이다. 7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처사였겠지만, 이로 인해 세월호 관련 모든 논의는 박근혜라는 깔때기로 수렴되고 말았다. 검찰이 국민의 눈길을 유병언과 구원파로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번 고정된 시선은 돌리기 어려웠고,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정윤회와 대통령의 밀회 의혹도 세월호와의 관련성 속에서 뜨거워졌다. 결국 외신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해외토픽성 망신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도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제 7시간 의혹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저 검은 바다 밑에 영원히 수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깨에 손까지 올려가며 유족들이 원하는 모든 걸 해주겠다고 했던 다짐을 깡그리 모르는 척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강인한 아버지에게서 퍼스트레이디 수업을 받은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6.월드 패션쇼 취임 초기에 재미 좀 봤던 이벤트였다. 너무 자주 하면 약발이 떨어지므로 적당히 시차를 두고 써먹어야 한다. 비록 외교적 성과를 낸 순방은 한 번도 없었지만 한국의 미를 알리는 구실은 톡톡히 해냈다. 하루 만에 이렇게 여러번 옷을 갈아입은 대통령은 아마도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대통령이 일을 열심히 한다는 증거 아닌가. 국내에서 방송을 보던 노인 팬들은 “우리 영애 아가씨 참 곱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마다 지지율이 오르는 효과는 덤이었다. 말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대통령의 옷이 얼마나 많은지 필리핀 이멜다와 비교해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택도 없는 얘기다. 티브이에 나올 때는 막걸리 먹고 안가에서는 시바스리갈을 즐겨 마시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검약정신이 어디 갈쏘냐. 다음 달에 중동에 간다는데 또 얼마나 많은 옷을 싸들고 갈지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다. 7. “나쁜 사람” 쫓아내 공직기강 바로 세우기 박 대통령은 “나쁜 사람”을 수첩 왼쪽에 적었다가 나중에 혼내준다(수첩 오른쪽에 적힌 ‘착한 사람’에게는 벼슬을 준다). 정윤회 딸을 괴롭힌 승마협회를 혼내주라고 했더니, 정윤회 쪽도 승마협회도 둘 다 잘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보고를 했던 문체부 공무원들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장관을 집무실로 불러 “나쁜 사람”을 혼내주라고 지시했다. 인사에서 확실히 물을 먹여서 공직기강을 바로 세웠다. 자식을 숨겨두고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한 검찰총장도 자리에서 쫓아냈다. 눈치 없이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검찰총장이었다. 사생활에 관한 문제니 만큼 청와대가 직접 나서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선일보에 슬쩍 흘려줬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들여다본 일이 있어 일부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이 무슨 민주주의 시대도 아니고 웬 참견들인가. 어차피 국가가 관리하는 정보인데 필요하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채 총장과 달리 소리소문 없이 가방을 싼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게 다 “나쁜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신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α 박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앞서 거론한 모든 업적을 뛰어넘는 게 하나 있으니 다름 아닌 ‘의리 지키기’다. 천금 같은 지지율을 까먹으면서도 측근들을 비호하는 눈물겨운 의리를 보여줬다. 조폭들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을 모셔서 회당 천만 원짜리 강의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살려고 친구에 마누라까지 팔아넘기는 가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보기 드문 미담이다. 특히 사대부의 유교정치 탓에 이 나라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던 ‘환관정치’를 조정에 뿌리내리게 한 공로는 조선 건국 이래 최대 업적이라 할 것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04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로 인해 세계가 시끄럽고 불안하다. IS는 기존의 ‘원리주의자’들 중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은 방식으로 폭력을 구사한다. SNS를 적절히 이용하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는 방식이 교묘하고 잔인하다. 기존 무슬림들도 혀를 내두르며 IS의 폭력성과 반이슬람성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IS는 시리아 등에 걸쳐 일부 영토까지 장악하고 있어서 기존의 탈국가적 무장 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무슬림 학자 126명이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게 IS의 행위가 이슬람적이지 않은 이유를 세세하게 담아 테러 행위를 멈추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IS를 보며 IS와 같은 비이성적 집단이 사라진 평화 세상을 상상해보게 된다. 민간인 학살과 납치 등 만행을 저지르는 이슬람국가(IS)는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난 9월1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청사 앞에서 이라크계 쿠르드족 주민들이 IS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러면서 왜 IS 같은 집단이 힘을 얻게 되는지 근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IS의 폭력적 행위를 전적으로 IS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그보다 더 큰 구조적 폭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령 2001년 9.11 사건은 이른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미국에 저항하며 벌어진 일이다. 그들은 왜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를 가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적’ 행위를 구미 열강이 편들던 역사로 이어진다.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근대 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시초의 범죄’가 영웅담과 같은 ‘고귀한 거짓말’로 포장되면서 근대 국가 권력이 정당화되었는데, 이스라엘이 국가 형성 과정에 남겨둔 ‘시초의 범죄’의 폭력적 흔적에 대해 이슬람권 일부가 저항하면서 테러 같은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저항에 폭력적 테러라는 딱지를 붙여놓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행했던 서구적 폭력의 역사가 놓여있다는 사실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대단히 불편해한다: “(이스라엘은) ‘불법적 기원’이라는 ‘시초의 범죄’의 흔적을 아직 지우지 못한 곳이며, 그 흔적을 영원한 과거 속에 억압해둔 곳이라는 느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모든 국가권력의 지워진 과거이다.” 이 말의 속내인즉, 이슬람 원리주의 현상은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에 대한 이슬람권의 불편한 심정은 나폴레옹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방적으로 공격받으며 시작되었던 이른바 ‘십자군전쟁’도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제국주의적 서구가 보여준 폭력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 뒤 서구의 침탈의 역사를 경험해온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무언가 서구의 세속주의적 정복주의 같은 것이 내내 불편하다.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IS 같은 무장 단체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다. IS는 끔찍한 행동을 멈춰야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왜 남들이 다 끔찍하게 여기는 일들을 자처해서 더 적극적으로 벌이는지는 그 역사적 원인과 속내까지 드러날 때에야 알려지고 또 해소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77 | 추천: 0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장 계곡의 장. 읊어보니 참 외로운, 혹은 독립적인 이름이다.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기 전에도 그는 충분히 외로운 존재였다. 세상을 떠난 형 대신 형수와 조카들이 있었지만, 형수는 살뜰하지 않았고 조카들도 다정하지 않았다. 장 발장이 번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밥 먹을 때면 그를 흘기곤 했다. 먹고 살기 너무 고단해 그랬을 게다. 19세기 초, 혁명과 혁명 사이에 낀 프랑스. <레미제라블>은 혁명기 인민에 대한 책이자 나폴레옹과 루이 필립에 대한 책이고, 1832년의 봉기에 대한 책인 동시에 가톨릭 사회주의를 전파하는 책이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여전히 ‘장 발장 이야기’다. 정 붙일 데 하나 없었던 장 발장.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올 때쯤엔 그는 전형적인 전과자가 돼 있다. 배척당하는 데 익숙하고 기회 닿는 대로 잇속을 챙기려 하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레미제라블>은 특이하게도 한 인간의 변모를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소설은 많은 경우 변신담이지만, 변신담이 실현되는 것은 보통 결말에 이르러서인데 말이다. 미리엘 비엥브뉘 주교의 변신과 죄인 장 발장의 변신. 비엥브뉘(Bienvenu), ‘웰컴’이란 뜻의 성을 갖고 있는 미리엘 주교는 프랑스대혁명 이전에는 평범한 귀족이었을 뿐이다. 잘 놀고 유쾌하고 적당히 매력적이었던 이 청년은 혁명 이후 성스러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왜인지는 모른다. 다만 혁명이 그 위대성을 통해, 혹은 그 추악을 통해 한없이 성스러우면서도 한없이 개방적인 어떤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 전해질 뿐이다. 사람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나를 보나 남을 보나, 참 많이 바뀐 것 같다가도 그 원형이 문득 살아난다. 하긴 이토록 작은 존재로서 어떻게 끝없는 확장을 감행할 수 있으랴 싶다. 열 몇 살 나와 마흔 몇 살 내가 희한하게 닮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끝없이 바뀐다. 최상의 위인에서 최악의 범죄자까지, 대부분의 인간은 그 자체로 거의 우주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요소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있다. 사회를 논하고 좋은 지도자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 있을 터이다. 공동체로서 지속 가능한 선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미리엘 주교는 이 목표를 잊음으로써 이 목표에 헌신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한히 타인을 신뢰하고 어떤 경우에나 타인을 ‘환영’한다. 강도가 날친다 해도 대문을 잠그는 법 없고, 치안이 불안하다 해서 경계를 요청하는 일 없다. 신성모독의 구 자코뱅 지도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쫓길 걸 각오하고 허위단심 먼 길을 간다. 장 발장에게 베푼 호의가 배반당했을 때도 그는 더 큰 호의를 베풀 뿐이다.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에 의해 생애 처음으로 ‘환영’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촛대를 선사받은 장 발장이 들판에서 겪은 사건을 보면 그렇다. 은전 한 닢을 얻어 즐거워하는 소년이 아차, 그 돈을 놓친 것이 장 발장 앞으로 굴러간다. 장 발장은 ‘무의식적으로’ 그 돈을 밟아 감춘다. 그것은 마음이 저지르기 전에 몸이 저지르는 죄다. 의식하지 못한 채 장 발장은 소년을 윽박질러 쫓아버리고, 그런 후에야 제가 저지른 일을 알아채고 흐느껴 운다. 냉대와 배척뿐인 세상에서 기회 닿는 대로 잇속을 챙기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우리라는 생각, 태어나 중년이 될 때까지 뼛속 깊이 새겨 넣은 생각은 그토록 강했던 것이다. 장 발장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건 그 다음이다. 영화 '레미제라블' 사진 출처 - 네이버 <레미제라블>은 한편, 장발장처럼 성화(聖化)된 존재로도 세상과 인간을 바꾸긴 지난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을 남겼지만 장 발장은 누구를 남겼나. 그는 코제트를 거두었고 테나르디외를 용서했지만 그들은 장 발장이 안겨준 안온한 환경을 누리고 혹은 모든 것이 장 발장 탓이라며 저주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무른다. 아마 장 발장이 바꾸어 놓은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평생 그를 쫓았던 형사 자베르일 것이다. 옥중 여죄수의 몸에서 태어난 자베르, 그는 추방 직전의 존재가 권력에 충성을 다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여실히 상기시키는 존재다. 의심받고 버림받기 쉬운 존재로서, 그는 과잉 충성과 고도의 효율성을 통해 살아남는다. 인간다운 정이 가 닿을 곳 없어 뵈는 그는, 장 발장의 끝없는 관용에 의해 마침내 뿌리에서부터 흔들린다. 그러나 변화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변화하느니 파멸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몇 십 년 지켜온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 자베르는 세느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길을 선택한다. 파리 경시청의 제도 개선을 제안하는, 극히 무미건조한 유서를 남겨둔 채다. 유서의 내용이 비단 제도의 효율성뿐 아니라 수감자의 인권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변화라면 변화였을까. 자베르가 남긴 유서는, 권력에의 맹목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형사도 시시각각 문제를 느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한 마디 이의 없이 권력의 효율적 기계로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증명한다. 미리엘 브엥브뉘와 장 발장과 자베르(여죄수의 몸에서 태어난 까닭인지 그는 성으로 불리지 않는다).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혁명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외면당할 때도 살아남고, 세상이 축제로 떠들썩할 때도 구석에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자신이 변화하지 않고 타인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그 때조차 세상은 아마 거의 바뀌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애초에 자기 자신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큰 난제인가. 인권연대에서 ‘장발장 은행’ 계획을 들을 때마다 절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갈피다.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07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귀순한 탈북자들은 누구나 ‘합동신문과정’을 거친다. 합동신문과정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합동신문과정에 대한 실상을 아는 사람은 합동신문과정에 참여한 신문관과 귀순동기 등에 대하여 추궁을 당하는 탈북자들이다. 합동신문소나 합동신문센터가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하여 그들 이외에는 그곳을 출입하는 극소수 사람밖에는 몰랐다.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이후 특수시설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합동신문과정에 대한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고 있다. 어떻게 밝혀지고 있는가. 유가려 씨 등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다. 합동신문과정에서 당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실상은 알면 알수록 참혹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인권유린 실상에 대하여 눈과 귀를 막은 채 숨죽이고 있다. 비겁하다. 탈북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의 만행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발 벗고 나서는 이가 드물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대성공사' 사진 출처 - 프레시안 김관섭 할아버지는 1974년 8월 말 귀순한 북한군 중대장 출신이다. 그의 사연은 이렇다. 1974년 8월 말부터 1978년 3월까지 3년 6개월간 귀순자 합동신문소(대성공사)에서 수용생활을 하였다. 대성공사와 중앙정보부를 오가며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하여 위장 귀순하였다는 허위진술을 강요당하였고 신문관으로부터 구타와 잠 안 재우기, 고춧가루 탄 물고문 등 별의별 고문을 당하며 허위자백을 하였다고 한다. 고문이 멈추면 다시 진정으로 귀순하러 왔다고 답하기를 반복했단다. 어엿한 귀순자라는 판정을 받기까지 3년 6개월의 불법 감금과 숱한 고문의 인권유린은 그에게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으나 나이 여든을 넘기고서야 죽을 날이 머지않아서, 무서울 게 없어지고서야 과거 고문 사실을 공론화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자세한 사연은 ‘귀순용사’ 김관섭은 왜 피켓을 들었나, 프레시안 기사, 2015. 1. 참조). 남몰래 풍선에 ‘삐라’를 실어 북한에 띄우는 탈북자 이민복 씨도 대성공사의 고문 피해자다. 그는 1995년 2월 중순 귀순하여 입국하였다. 이민복 씨를 비롯한 탈북자 8명은 대성공사에서 당한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배상받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국가배상소송에서 폭로한 대성공사의 고문가혹행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행위에 대한 증언이었다. 그들의 사연을 보자.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신변을 염려하여 자신의 이름을 허위로 진술하였다가 그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신문관으로부터 전신을 구타당하였다는 탈북자 A. 신문관의 질문에 즉시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류뭉치로 머리를 얻어맞고 이에 항의하였다가 욕설과 함께 구둣발로 전신을 구타당하였고, 대성공사 지하실로 끌려가 약 1미터의 참나무 곡괭이자루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구타당하였다는 탈북자 B. 신문관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항의하였다가 양팔을 붙잡힌 채 곤봉으로 허벅지를 구타당하고, 자신의 신분에 관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필통을 던지는 신문관에 항의하였다가 구둣발로 전신을 구타당하였다는 탈북자 C. 신체검사를 위해 옷을 모두 벗은 상태에서 성기 등 특정한 신체부위를 대상으로 조롱을 받기도 하고, 대성공사에서 준비한 내용을 암기하여 VTR 촬영에 응할 것을 요구받고 암기할 내용이 사실과 달라 촬영에 응할 수 없다고 항의하였다가 1미터의 참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를 구타당하였다는 D. 자신의 신분 등에 관하여 진술한 내용이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으로 판명되었다는 이유로 신문관으로부터 곤봉으로 손바닥과 엉덩이를 구타당하고 여자 신문관의 질문에 대답하였다가 감히 여직원의 질문에 대답하였다는 이유로 다른 신문관으로부터 손과 주먹으로 얼굴을 구타당하고 곤봉으로 엉덩이를 구타당하였다는 E. 신문관으로부터 “북한에 있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인간쓰레기”라는 폭언을 들었고, 자신의 신분에 관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곤봉으로 엉덩이를 구타당하였다는 F. 신문관으로부터 “야, 이 새끼야.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굴러들어와 사람을 고생시키냐”는 욕설과 함께 전신을 구타당하였고, 안마를 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모욕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신문관의 교체를 요구하였다가 “인간쓰레기”라는 욕설과 함께 주먹 및 곤봉으로 2시간 동안 전신을 구타당하고, 이를 막으려다 손목인대가 늘어나는 등의 상해를 입었으며, 어머니와 동생도 북한을 탈출하여 입국하게 되자 나라가 어려울 때 가족까지 불러들여 귀찮게 고생을 시킨다는 이유로 전신을 구타당였다는 G. 신문관으로부터 “인간쓰레기”라는 등의 욕설을 듣고 이에 항의하였다가 주먹 및 곤봉으로 전신을 구타당한 뒤 바지가 벗겨진 상태에서 성기 등 특정한 신체부위를 대상으로 조롱을 받았고, 국가정보원의 승인 없이 신문사 등 언론기관에 정부에 불리한 내용의 기고를 하였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 청사로 끌려가 주먹으로 뺨, 가슴 등을 구타당하였다는 이민복 씨(자세한 사연은 '대북 삐라' 이민복 "나도 국정원 고문 피해자", 프레시안 기사, 2015. 1. 참조). 그나마 세간에 알려진 유가려 씨의 증언을 보자. 그는 “잠재우지 않고 너무 힘들고 정신적으로 제대로 진술 안하게 되면 때리지, 보는 것마다 날아오지, 무섭지, 또 그 다음에 세우지, 세워도 계속 욕하지, 무섭지, 그 다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마지막에는 ‘이러다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죽었으면 마음 편하겠는데,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라고 증언하였다. 진술강요, 회유, 가혹한 폭행을 하고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쓴 종이를 등 뒤에 붙여 놓고 탈북자들 앞에 세워놓고 “탈북자로 가장하여 들어 온 나쁜 년이다. 얼굴보세요. 구경하세요”라고 하며 모욕을 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어 “독방에 갇혀 있으니까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지, 직원들이 와서 문 열어줘야 나가지, 안에서 별난 생각 다 들었고, 조사받을 때는 언제까지 조사를 받는지, 언제 내보내주는지에 관한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해주지 않고 조사가 다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만 하여 저는 조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로 힘들게 조사를 받았습니다”라며 인권침해시설에서 오랫동안 갇힌 채로 조사를 받으며 자포자기상태가 될 수밖에 없어 말도 안 되는 허위자백을 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탈북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의 대물림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 대성공사의 관행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이후 조금씩 국가폭력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탈북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의 시정이 왜 중요한가. 그 시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탈북자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이 행해지고 있는 특수인권침해시설이 오랜 기간, 현재까지도 버젓이 각종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는 우리 사회의 대응역량은 매우 미약하다. 왜 그런가. 우리 모두 스스로 점검해 보자. 분단 트라우마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를 회피하고 있지 않는지. 분단정신병 환자로 종북몰이 공안통치에 정면으로 저항하지 못하면서도 인권과 정의, 진실과 상식을 외치고 있는 사이비 얼뜨기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자. 이제는 탈북자들의 인권침해에 대하여 제대로 연대하지 못한 우리 안의 비겁과 우리 안의 의심과 불안에 대하여 솔직히 인정하고 그 병의 치료를 위해 용기를 내어보자.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낡은 메카시즘 잔재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탈북자 인권유린 실상에 대하여 모두 함께 그 진상을 파헤치고 탈북자들의 인권옹호를 위해 함께 연대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탈북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에 맞서 그들의 인권옹호를 위한 지킴이로 거듭 태어날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상식이 통하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바로 세워진다. 양심이 회복된다. 인권이 신장되고 인간다움이 넘쳐난다. 당장은 현재 진행 중인 신유신의 광풍을 몰아가는 종북몰이 공안 통치를 종식시킬 수 있다. 나아가 낡은 메카시즘이 기생하는 숙주가 되어온 분단의 비극을 해소하고, 남과 북이 서로 존중하고, 관계개선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분단 트라우마에 기반한 국가폭력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면 우리는 중도반단 되거나 후퇴하지 않는 민주주의와 민생복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달릴 수 있다. 국가폭력으로부터 탈북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싸움에 연대해 나가는 길은 우리 안의 ‘분단정신병’을 고치는 길이다. 우리 모두 더 이상 분단정신병에 걸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하지 말고 분단정신병을 고치는 건강한 세상을 향해 함께 질주하자.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899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갑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갑과 을은 보통 계약서 따위를 쓸 때 양 당사자를 편의상 구분하는 용어로 쓰인다. 대체로 갑은 권력을 갖고 계약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쪽이고 을은 갑에 종속되어 지시를 받고 갑이 원하는 바를 해 주어야 하는 쪽을 의미한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갑은 돈을 주는 쪽이고 을은 돈을 받는 쪽이다. 스스로 갑이라 믿는 사람들은 을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리고 함부로 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땅콩 서비스가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비행기를 회항시키고, 직원을 강제로 내리게 한 재벌 3세처럼 말이다. 몇 백만 원 어치 물건을 샀으니 주차관리요원 무릎을 꿇리는 것쯤 우습다고 생각하는 백화점 모녀도 있었다. 한편 스스로 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갑의 횡포에 저항하지 못한 채 자존심을 버리고 수모를 감수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훨씬 더 험한 꼴을 당하게 되리라는 불안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갑에게 당할 만큼 당한 을은 또 다른 공간에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갑의 권세를 과시한다. 회사 상사에게 수모를 당한 회사원은 술집 종업원에게 화풀이를 하고 술집 종업원은 편의점 알바에게 진상을 부린다. 그렇게 이어지는 갑을관계의 연쇄 속에서 상호존중의 인간관계는 사라지고, 사회는 삭막한 야만의 정글로 변해간다. 그러니까 이건 단지 갑과 을이라는 당사자 개인들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결부되어 있는 이 사회의 구조적 상황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아시아투데이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봉건적 신분제가 사라지고 합리적 계약에 기초한 근대사회가 도래했다’고 역사책은 가르친다. 하지만 봉건적 신분제가 자본주의적 신분제로 바뀌었을 뿐 신분으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서구사회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가 됫받침되면서 평등주의적 인간관계의 경험이 비교적 오래 동안 유지되어 온 셈이지만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사회적 불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봉건적 신분 질서와 전근대적 계층의식이 채 사라지기 전에 황금만능의 시장 논리가 들어오고, 여기에 부정부패가 결합하고 경쟁주의가 강화되어왔다. 이른바 불완전한 근대, 지체된 근대성의 토대 위에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전근대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직 자본주의적 욕망만을 키워왔다. 거기에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히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불안해진다. 이 불안한 사회에서 모든 욕망은 오직 신분 질서의 상위에 올라 ‘갑’이 되는 것에 모아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최상위 갑이 되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최상위의 갑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갑의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을 놓치지 않는다. 각종 서비스 노동자에게 행패를 부리고 감정노동자의 인격을 쉽게 짓밟아버리는 갑질은 따지고 보면 이 신분제 사회의 승자가 되고 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욕망의 무의식적 발현인 셈이다. 결국 이 사회에 만연한 갑질의 문제는 당사자 개인의 횡포를 비난하고 세상 갑들의 회심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갑질이니 갑을관계니 하는 말들은 이 사회 전반에 내재한 구조의 문제를 몇몇 개인의 인성과 부도덕의 문제로 치환하기 쉽다. 진부한 얘기지만 기본적으로 갑을 관계로 표상되는 사회 구조, 즉 자본주의적 신분체제에 대한 근원적인 변화의 모색이 요구된다. 나아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 욕망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필요한 건 우리 모두가 ‘을’이라는 자각일 터이다. 갑들은 결코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세상의 을들이 갑으로부터 당한 설움을 또 다른 병과 정에게 갑질하는 식으로 풀어버리는 한, 갑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삶의 불안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대’와 ‘공감’이 세상 을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일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2 | 추천: 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말 그대로 세월은 무심하기만 합니다. 지난 연말, 돌아보니 피로와 무기력으로 보낸 1년이었습니다. 쉽게 꿰어지지 않는 생각들로 마음은 자꾸 무거워졌습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름 석 자 겨우 쓰실 줄 알았던 분이었으니, 책에서 읽으신 게 아니라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였겠지요.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쯤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은 아니구… 그냥 옛날….” “응!” “한 나그네가 길을 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 전날 비가 왔거든… 작은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있었지 뭐야. 개울을 건너려면 신을 벗어야 하고, 바지를 걷어 올려 붙들어야 하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닌 거야.” “그래서?” “그래서 나그네가 어찌할까 궁리하다 보니 옆에 장생이 서 있는 게 아니겠어?” “장생?” “장생 몰라? 천하대장군 무슨 여장군 하는 그거….” “아… 장승!” “그래, 장생… 아무튼 나그네는 그 장생 두 개를 뽑아서는 개울에 척 걸쳐놓고는, ‘아이구, 마침 잘됐다’ 하고 장생을 다리 삼아서 개울을 건너갔어.” “하하하!” “그러구 나서, 얼마 있다가 그 동네 사는 나무꾼이 개울을 지나가게 됐어. 나무꾼이 깜짝 놀랐지.” “왜?” “아… 글쎄, 어떤 미친놈이 부정 탈라구 작정을 했는지 멀쩡한 장생을 뽑아다가 개울에 다리를 놓아버렸거든?” “참, 그렇지….” “화들짝 놀란 나무꾼이 허겁지겁 물에 들어가서… 그거를 수습해서… 그러니까, 그 장생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 놓았어. 그렇게 하구선 한 손엔 신발을 들고 다른 한 손은 걷어 올린 바지를 잡고 개울을 건너간 거지. 그런데….” “그런데?” “그랬는데… 일이 난 거야. 장생이 화가 난 거지. 자기를 밟아 지나가게 쑥 뽑아서 다리를 만들라고 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그래서?” “머리끝까지 화가 난 장생이 너무 분해서 해꼬지를 했지….” “어떻게?” “동티를 내렸지.” “동티가 뭐야?” “그런 거 있어… 아주 나쁜 거…. 아무튼 그래서 그 나무꾼이 죽을 병 나서 죽어버렸대.” “나무꾼이? 나그네가 죽었겠지.” “아냐… 뒤에 갔던 나무꾼이 죽었다고… 동티나서….” “왜? 나그네가 나쁜 놈이고, 나무꾼은 착한 사람인데?” “몰라, 이놈아…. 나무꾼이 죽었대!” “왜? 왜? 나무꾼은 착한 사람인데… 왜?” “아유… 나두 모른다니까…. 내가 들은 얘기가 원래부터 그래!” “그래두….” “아이구… 얘기가 그렇다니까…. 그만 가서 자!”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왜 나그네가 아니라 나무꾼이 죽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내가 갈무리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지난 때였습니다. ‘어떤 것에 마음이 매이는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마음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그러니까 쓸데없는 것에 마음이 걸려서는 안 된다는, 나름 괜찮은 교훈을 찾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우울해지기만 하는 연말이었습니다.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쓸데없고, 느닷없고, 한심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혹시 필요하면 제 맘대로 장승을 밟고 나그네는 권력이나 돈 같은 것은 아닐까. 나무꾼과 장승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일을 저지른 나그네 같은 놈은 뻔뻔할 수 있지만, 오히려 비슷한 처지인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치고받는….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끔찍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사진 출처 - 한겨레 처참해지기까지 하는 연말이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주변이 어둑신해질 때쯤, 핸드폰 문자음이 울렸습니다. 한순간 생각이 멈췄습니다. ‘드디어 인권연대 회원이 오늘부로 2천 명이 넘었습니다 … 새해 복 많이 ….’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답문자를 보냈습니다. ‘정말 멋진 연말입니다….’ 그대로 서서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았던 청승맞고 주책맞은 저의 연말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이지요? 부디 용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8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