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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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모든 사물의 현상에는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변곡점이란 것은 흐름과 추세를 보여주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말에서 변곡점의 뜻이 명확해진다. 인생도,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숱한 변곡점이 있다. 변곡점이 생기는 각 국면 뒤에는 엄청난 힘이 작용한다. 변화의 동력이 있는 것이다. 방향전환을 뜻하는 변곡점이 생기는데 작용하는 힘은 오랜 세월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곡점이라고 보는 사건, 그리고 삶과 사회의 변화의 흐름에는 그 기저에 반드시 인간의 개별적, 집단적 의지와 실천들이 있다. 그것이 쌓이고 쌓인 결과가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생에서 변곡점은 숱하게 많다. 나이를 먹는 자체가 삶의 변곡점을 가져다준다. 신체와 정신의 발달에 따라 저마다 무궁무진한 인생의 변곡점을 형성하며 희로애락을 가꾸어나간다. 그런데 수많은 인생의 변곡점 뒤에는 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뚜렷한 목표와 지향이 있다. 저마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변곡점에 대한 의미 부여가 달라진다. 저마다의 인생관에 따라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의미가 달라진다.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변곡점이 달라졌다고 보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돈이 최고의 가치 부여 대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압도적으로 뒤덮고 있는 생각이다. 부자가 되어 마음껏 누리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편하게 살고 싶은 꿈과 욕망이 넘쳐난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인생관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으로 믿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부자 되어 좋은 일하기 현상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부자가 되기 위한 꿈의 변곡점을 향한 우리들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변곡점을 향해 우리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쏟아 부으며 인생살이를 쳇바퀴 돌 듯 살아가다 보면 더 나은 삶의 변곡점이 주어질까. 다들 잘 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망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이루어질 수 없는 인생의 변곡점을 향한 수많은 인생들의 삶은 가련하고 비참하기 그지없다. 망상이 되어 버린 개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지금 우리들은 스스로 이율배반의 처지가 되어 아무런 지향도 의미 부여도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부자의 길…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또는 운 좋게 부자가 된 극소수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을까. 부자 되어 좋은 일하기(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도 더 어렵다. 왜 그렇게 될까. 우리들은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번 후에는 사회를 위해 공익을 위해 많은 기부와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 그럴 듯한 말인데 왜 실천으로 옮기기가 그렇게 힘이 들까. 아마도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번다’는 의미가 계속 충족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돈을 많이 벌다보면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고, 자신과 비교해 여러 가지로 부족한 그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기에는 자신이 번 돈의 가치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리라. 게을리 살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면 잘 먹고 살 수 있는데 괜히 기부하고 도와줘서 의존심만 키우리라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으리라. 불가능한 인생의 변곡점을 향해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지향 없는 삶은 이제 그만. 새로운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돈, 돈, 돈…. 무엇으로 바꾸어야 할까. 나만 편하게 살자고 각자도생하는 무한욕망을 향한 삶은 이제 그만. 이제는 나부터 편히 먹고 살아야 남도 돌아볼 수 있지라는 근시안적 생각을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가정과 이웃에서부터 각자의 인생의 변곡점을 향한 노력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협력과 나눔의 관계를 튼튼히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인생의 변곡점은 모두가 함께 삶의 가치를 누리는 방향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기부할 수 있는 그런 뚜렷한 지향과 목표를 담고 있어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73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강용석이란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가 누구와 연애를 하건 불륜을 저지르건 그건 개인의 문제이며 그런 사실이 굳이 까발려지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은 구역질이 나서라도 피해 왔고 방송에서 그 얼굴을 안 보게 되기를 바라왔지만, 그가 불륜 스캔들 때문에 방송하차 하는 데 대해 고소해 하는 글들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다. 강용석이 국회의원을 지낸 공인이고 사회적 유명인 이므로 그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비록 공인이라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구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정말 문제 삼고 싶은 건 강용석의 불륜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방송가의 스타로 떴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일차적으로, 강용석을 방송에 출연시켜 화제성을 키우고 이미지 세탁의 기회를 주면서 마침내는 여러 개의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는 TV스타로 만들어 준 방송사들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상업주의다. 정치권에서 퇴출된 계기가 되었던 그의 언행을 보면 그가 저렇게 대중적인 스타로 떠오른 건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선 다 줘야한다’는 식의 모욕적인 성희롱 발언을 했고 이후 한나라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에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등 좌충우돌하면서 대표적인 비호감 정치인으로 낙인찍혔고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것으로 정치적 생명이 끝나고 곧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 같았던 그가 되살아난 건 순전히 방송 때문이다.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양념으로 출연하던 그는 특유의 순발력과 언변을 무기로 일부 프로그램의 고정을 꿰차더니 시나브로 웬만한 인기 연예인보다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예능스타가 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비호감 정치인이었던 그는 어느덧 말 잘하고 아는 것 많고 재미있는 아저씨 정도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대로 간다면 방송에서의 인기를 발판으로 다시 정치권으로 재진입하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번 스캔들이 아니었다면 정치권에서 퇴출된 사람이 방송을 통해 이미지를 희석하고 다시 정치인으로 복귀하는 아마도 최초의 사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JTBC <썰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가 방송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종편 채널들의 등장과 함께 더욱 격화된 채널 간 시청률 경쟁과 당연히 무관할 수 없다. 이슈를 만들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 방송사 입장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화제성을 갖고 있고, 서울대와 하버드대라는 스펙에, 국회의원에 변호사라는 이력, 게다가 화려한 언변과 두꺼운 안면까지 갖춘 강용석은 매력적인 캐스팅 카드였을 게다. 초반에는 물의를 일으킨 비호감 인물을 캐스팅한다는 비난을 받겠지만 시청률만 올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분명 상업적 성공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게다. 그리고 그런 판단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강용석을 캐스팅한 방송사들의 전략이 맞아떨어질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가 바로 그와 같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용석 같은 인물이 TV스타로 떠오른 현실은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시대적 흐름, 혹은 지배적인 정서 구조를 반영한다.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몰염치,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심리, 무슨 수를 쓰든 돈을 벌고 유명해지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생각, 강용석 현상의 배후에는 바로 그런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런 정서 구조 위에서, 기본적인 상식과 윤리, 가치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지고,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용석 현상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임을 방증한다. 이 사회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사회적 윤리와 대의, 인간적 가치를 좇던 사람들이 줄곧 패배하고 개인적 욕망과 이익, 세속적 가치를 추구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승리해 온 저간의 역사가 이미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더욱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되리라는 희망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그런 정서는 더욱 더 심화되고 강화되리라는 사실이다. 정말 획기적인 역사적 전환을 통해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강용석이 방송 무대에서 사라진다 한들 우리는 언제든 유사한 현상을 또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62 | 추천: 1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클린턴 대통령은 1893년 하와이 왕국의 전복에 대해, 호주 수상 케빈 러드는 애버리진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격리정책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는 식민지 카메룬에서 프랑스 정부가 자행한 원주민 집단살해에 대해 사과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볼리비아에서 신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자행된 학살과 폭력에 대하여 사죄하였다. 이렇듯 식민지배와 침략, 학살의 역사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원수들이 국경을 넘어 사죄하는 현상을 학자들은 사죄의 물결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사죄의 기원을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흉년과 전염병에 자신의 부덕을 탓했던 왕들의 예를 통해서 사죄는 매우 오래된 정치적 제도였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일련의 국정 실패와 대형참사 앞에서 국정책임자의 적절한 사죄가 있었더라면 국민의 신뢰를 강화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제대로 된 사죄는 실패의 원인분석과 시정방향을 함축하기 때문에 인간과 제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간적인 처방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사죄하기 싫어하는 정치적 최고책임자들이 즐비하다. 정치의 수단으로써 사죄는 오로지 양심의 통회로서만 의미를 갖는 종교적 참회와는 다르다. 정치적 사죄는 자연인으로서 사사로운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의 객관적인 직분과 관련된 사항이다. 베버의 용어로 표현하면 심정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의 문제이다. 따라서 내키지 않더라도 사죄를 할 수 있는 자는 정치인으로서 덕을 갖춘 자이다. 그는 사죄를 통해서 관계를 회복시키고 불화의 골짜기를 평탄하게 만들 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 8월 14일 아베 수상은 일본이 전쟁을 하게 된 배경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면서 적당하게 과거형으로 종래의 사죄를 언급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일본침략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시아 2천만 민중의 참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피해사실만큼은 깨알같이 나열하였다. 사죄의 담화가 아니라 일본의 피해사실을 국제사회가 알아야한다는 보고서와 같다. 그런데 아베 수상의 정신세계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죄의 어원과 의미의 변천사를 짚어보자. 법률용어로서(써) 사죄의 영어표현은 아폴로지(apology)이다. 아폴로지는 그리스어 아폴로기아(ἀπολογία)에서 유래하는데, 원래 이 단어는 이야기(story)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플라톤의 시대에 아폴로기아는 소송이나 공적인 맥락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수사학의 기술을 의미했다. 그래서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 기록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아니라 ‘변론’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변론은 자신이 옳다는 주장이라면, 변명은 틀렸다는 전제를 수용하면서 비난의 강도를 낮추기 위한 책략적 발언이다. 그런데 현재 아폴로지는 변명, 사과, 사죄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아폴로지의 의미의 감정적 폭이 이렇게 착잡하게 넓으니 제대로 깔끔하게 사죄하기 참 어렵겠다고 생각된다. 사죄를 잘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 간의 사소한 잘못이라도 무성의한 사죄는 분노를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유효한 사죄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사람은 사태에 대한 공통의 이해, 피해자에 대한 책임의 인정,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의 시인, 자신의 잘못에 대한 판단, 후회의 표시, 장래 행동에 대한 의지표명 등을 교과서적으로 제시한다. 어떤 이는 책임수용, 즉각적 사과, 상대방의 분노의 정확한 인정, 용서 구하기와 자신에 대한 용서를 사죄의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사죄의 의견을 표시할 때 적절한 타이밍에 명료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조건부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변명이나 해명을 하지 말고, 사죄 후에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고 조언한다. 어떤 사태에 책임 있는 사람이 이와 같이 사죄한다면 상대방은 심각한 피해가 아닌 이상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죄를 수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사죄의 요령은 개인들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그런데 중대한 인권침해 앞에서 국가원수가 앞의 요령에 따라 절절한 감정이 묻어나는 사죄발언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중대한 인권침해 앞에서 실질적인 회복조치를 담지 않는 사죄는 부정의한 사죄이다. 침해가 상징적인 수준이거나 경미한 수준이라면 사죄의 표현은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행동이 된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야기한 사안에서라면 보상 요소를 수반하지 않는 사죄는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니다. 공식적 사죄가 인권침해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 구제수단을 포함하는 때, 피해자 집단에게 일정한 참여기회를 열어두고 대화의 형태를 갖게 될 때, 그러한 사죄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가해자의 죄책감을 이완시키고 인간을 각성시키고 연대감을 고양시킨다. 식민지 잔혹행위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죄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일과거사에서 책임인정의 수위를 놓고 우리는 고노 담화(1993년)나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예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15일 발언에서 아베의 발언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했다고 정리하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였다. 20여년 전에 나온 이들의 담화는 정확히 무엇이었는가?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발언이었고, 무라야마 담화는 종전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지배와 관련해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당시 수준으로 보면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규범침해에 대한 명백한 인정과 법적 책임의 공식적 이행을 예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한 담화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서 식민지배 책임을 완결지었다는 기본전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담화의 뒤끝에 이른바 도의적 책임으로 치장된 국민기금(1997년)이라는 어정쩡한 수단이 나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국민기금을 법적 책임의 이행수단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수상의 사죄편지와 기금이 제공하는 위로금을 거부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현 정부도 일본의 법적이고 공식적인 책임이행을 요구해왔는데 박 대통령이 아베의 발언이 역대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했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 평가한다고 하니 놀랍다. 외교가 꼭 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정부가 다투고 있는 전제를 다시 인정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아베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회복조치를 취하라!’고. 지난 20년은 한국에서 국가폭력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관철시켰던 시대였다. 우리의 규범의식은 고노 담화를 뛰어넘었다. 이 20년의 국가폭력 청산의 역사를 한국의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치지도자도 학습해야 한다.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후 수립되고 심화된 거대한 인권 체제의 자장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가 동시대인이 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1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78 | 추천: 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불경기입니다. 출판 쪽 역시 워낙 불황인지라 요즘 별 볼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제가 일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시쳇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그날 오후 2시: 지인의 지인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50대 중반의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개인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나니 돈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보다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신의 사업 계획이 얼마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습니다. 저는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이니 사회적 기업이니 하는 말이 무슨 유행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귓등으로 대충 흘려들었던 것이 전부였으니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업계획 설명에 열을 올리던 그가 잠시 숨을 고를 때가 되어서야 저는 겨우 한마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께 무얼 해드리면 되는 건가요?” 그는 잠시 저와 눈을 맞추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습니다. “저... 명함을 하나만 만들어주셨으면 하는데 그게 어려울까요?” 그는 출판사와 인쇄소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직은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라 돈이 부족하지만 나중에 사업이 잘되면 홍보용 전단지나 팸플릿 등등 일이 많을 것이니 서비스로 명함을 좀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하얘졌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 화를 낼 수도,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어서 윗사람과 상의해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날 오후 8시 30분: 제가 일하는 사무실 가까운 곳에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 술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외상도 되는 집이어서, 퇴근길에 그 술집에 들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젊은 여성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두어 달 전까지 이 선술집에서 일했었던 ‘알바생’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취업이 되었다며 축하해달라고 했던, 특히 상냥하고 친절했던 친구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 반 만에 비로소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했던 당시의 기억이 생생했습니다. “역시... 직장인 되더니 더 어른스러워지고 세련되어졌구먼.” 반가운 마음에 제가 객쩍은 농담을 던졌을 때 왠지 그 친구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말이 없다가 그 친구는 곧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고 했습니다. 120만 원의 급여에도 수당이 없는 잦은 야근도 견딜 수 있었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걸핏하면 ‘왜, 회사 다니기 싫어?’ ‘그러려면 그만두든지’라는 말을 해대는 직장상사의 말은 정말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 안에 회사를 나올 것이라는 그 친구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새삼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분야에서 아직도 일하고 계시니까요.” 저는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그렇지 않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등등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 10시 30분 아내는 저에게 오늘도 일 없었냐고 물었습니다. 별일이 있는 날이 1년 중 며칠이나 될까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별일 없는 날입니다. 오늘도 역시 별일 없는 날이었습니다. 괜히 비겁하고 부끄럽고 콧등이 조금 시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65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수임비리 변호사」 검찰과 언론이 내게 붙여준 호칭이다.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라고 부르는 순간 난 비리 변호사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비리 변호사로 호칭되면서 인터넷에는 내 이름을 포함한 비리 변호사 기사로 넘쳐나고 있다.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로 호칭한 이후부터 만나는 사람, 전화 통화한 사람들 중 일부는 나에게 “괜찮냐? 정말 괜찮냐?”고 물었다. 난 이미 비리 변호사로 낙인찍혀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곤혹스러웠고,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냐?”라고 묻는 사람은 날 아끼는 사람들이다. 날 아는 지인 중에서 “괜찮냐.” 묻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는 내게 무관심한 사람이었거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 자식 인권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그 새끼도 속은 썩어빠진 새끼였어.” 등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일 거다. 날 아예 모르는 사람은 “민변, 좌빨 새끼들 속이 시원하다.”에서부터 “죄진 놈들은 단호히 처벌받아야 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렇게 속수무책 비리 변호사가 되어버렸는지 참으로 난감하다. 난 공자 같은 현자로 살겠다는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 성품과 능력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자들의 이름을 팔거나 호칭하면서 살아 갈 능력조차도 전혀 없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정치를 권유한 사람은 꽤 많다. 그렇지만, 난 정치인이 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하다. 난 박근혜 대통령님을 주군으로 받들고 따를 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못하다. 심지어 치열하게 사는 삶도 나의 방식은 아니라며 믿고 있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다. 삼시세끼 먹고 살기 위하여 알량한 법률 지식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그저 그런 변호사에 불과하다. 한승헌 변호사님 말씀처럼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고 시늉내면서 산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로 부르는 순간, 난 정말로 부끄럽게 산 놈이 되어 버렸다. 돈 벌려는 욕심도 별로고, 돈 버는 재주도 별로 없는 변호사다. 그러나 이제는 돈 벌려고 범죄를 저지른 놈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아 온 과정에서 본의든 본의 아니든 다른 사람의 가슴에 피멍울 지게 한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부족한 인격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할 몫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리 변호사, 범죄자로 인터넷을 도배할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실은 없다. 민변 소속으로 소송을 수행한 변호사가 변호인단에 같이 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승낙한 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의혹을 밝히기 위하여 노력한 죄 밖에 없는데, 무엇을 반성해야 하나. 참 더럽다는 말이 제격인 것 같다. 내가 조사한 사건은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원인(死因)을 밝히는 것이었고, 장준하 선생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긴급조치로 복역한 내용에 대한 것이다. 검찰은 전혀 다른 사건을 동일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딱 맞는 말이다. 이번이 세 번째 수난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고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2년 6월 남짓 재판을 받고, 이명박 정부 때는 아무 이유 없이 1년 넘게 특수부에서 내사를 하더니, 이번엔 비리 변호사로 날 몰아친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을 왜 이리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검찰 표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날 비리 변호사라 부르며 6개월 넘게 희롱하다가, 지난 7월 13일 날 기소유예 하였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기가 막힌다. 난 용서해달라고 한 사실도 없고, 잘못하였다고 반성한 사실도 없으며, 검찰의 출석요구에도 불응하였기 때문에 애당초 기소유예를 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그러함에도 내 죄는 인정되지만, 검찰이 자비심을 베풀어 마치 날 용서해 준 것처럼 발표하였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난 검찰이 맘대로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난 검찰 처분에 대하여 날 기소하라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남들은 검찰 용서를 받기 위하여 온갖 로비도 하는데, 난 기소해 달라고, 법원에서 재판받을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야 하니 참 희한한 세상이다. 검찰에 더 이상 날 갖고 놀지 말고 기소해달라고 애걸(?)했지만 그들이 내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제 2라운드로 공이 넘어갔다. 검찰과 지리한 헌법소원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검찰이 선전포고한 명예 전쟁에 맞서는 것이 힘들고, 싸우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싸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나도 내 명예만큼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인권단체에 이런 개인적인 글을 써서 공간과 지면을 사유화해도 되는 것인지 양해 바랄 뿐입니다.) * 관련 인터뷰 기사 보기     - “나를 기소하라” (한겨레21 제1071호)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4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21세기 초반부를 살며 우리는 희한한 싸움꾼의 신기한 싸움법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많은 이들이 ‘꿈같은 8월’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하던 지난해 여름, ‘프란치스코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뜨거운 열풍을 몰고 다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주인공이다. 가는 곳마다 ‘프란치스코 효과’ ‘프란치스코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지켜보며 탁월한 싸움꾼, ‘전사’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게 필자뿐일까. 수시로 교황 소식을 접하고 지난해엔 꼬박 4박5일 동안 교황을 밀착 취재하다시피 한 필자로선, 1096년부터 1272년까지 근 200년간 모두 8회에 걸쳐 십자군을 파견한 우르바노 2세(Urbanus II, 재위 1088∼1099) 교황을 비롯한 역대 교황들에 비해 결코 달리지 않는 내공(?)이 느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싸움꾼 기미는 이미 그가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지난 2013년 3월 직후부터 감지할 수 있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 역대 교황들이 머물던 화려한 교황궁 대신 바티칸시국 한켠에 있는 소박한 ‘성 마르타의 집’을 숙소로 택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교황 전용 리무진보다 교황청을 오가는 셔틀버스나 소형차를 애용하는 모습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해외 언론은 물론이고 국내 언론들까지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관련된 기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도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이 된 듯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교황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가 아니라 먼 아시아 대륙에서, 그것도 거의 실시간으로 그와 관련된 소식을 어느 때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종교학자나 사회학자들까지 ‘기이한 현상’ 나아가 ‘기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려놓았다. 역대 어떤 교황이나 종교인도 하지 못한 큰 판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여기서 그가 어떻게 싸움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자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외신 등을 통해 종종 접하게 되는 교황의 말 가운데 “충분하지 않다!”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4월 11일 발표한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도 그는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로 정의를 넘어 간다. 하지만 하느님은 정의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참 정의의 기초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과 함께 그것을 감싸고 능가한다”(21항)고 말한다. 교황은 지난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도록 격려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의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성경의 한 장면이 있다. 바로 ‘부자 청년의 비유’(마태 19, 16-22)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은 청년은 자신의 존재를 주님께 자랑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하고 예수님께 되묻는 청년에게서는 자부심과 긍지마저 묻어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청년은 충분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만한 자격을 지닌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요즘 말로 ‘필요조건’은 갖췄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는 것이 부자 청년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성경은 부자 청년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장면을 보자. 7월 5~12일 8일간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3개국 사목방문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 물신숭배 풍조를 강하게 질타했다. 7월 9일 사목방문 두 번째 나라인 볼리비아 시민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돈은 ‘악마의 배설물’(dung of the devil)로서 자본주의의 탐욕적 속성이 빈부격차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까. 아마 당장 ‘빨갱이’ ‘종북’이라는 말이 나올 게 뻔하다. 실제 미국 등 서방선진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교황을 ‘까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그러진 못한다. 이젠 판이 교황에게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교황은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자본주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추진하는 긴축 프로그램은 신식민주의이다.” “가난한 이들이 세계 경제 질서를 바꾸고 스스로 노동과 거주, 토지의 신성한 권리를 찾으라.”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 질서’ 수립을 요청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껏 역대 교황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름 자신의 페이스대로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판을 만들기 위해 기성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판까지 깨가며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 새로움은 모든 사람,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하고 있음을 본다. 그의 싸움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이유다. 그의 싸움을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링 위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불끈 솟구치는 이유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72 | 추천: 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주목되는 현상은 이른바 ‘조중동’의 이반 현상이다. 해도 너무한 무능을 지적하는 글부터 대통령의 ‘여왕’ 놀이를 비판하는 칼럼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글이 이 신문들의 논조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상당한 변화가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특히 <중앙일보>의 행보를 눈여겨보고 있다. 여전히 진영논리에 입각한 아전인수식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분야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와 관련해 홍석현 회장의 인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홍 회장은 지난해 9월부터 <허핑턴포스트> 한국판과 미국판 블로그에 북한과 통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적어 올리고 있다. 심지어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웅적” 결단이라고 추어올리는 대목도 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쥐라고 에둘러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무렵 나온 책 <서울 평양 메가시티> 역시 홍 회장과 같은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계에 봉착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북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홍 회장은 경제보다 통일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결론은 같다). 정치통합은 요원하니 경제통합부터 먼저 이루자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쓴 민경태씨는 삼성전자에서 신기술과 기술벤처 투자,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해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중앙일보를 포함한 범삼성그룹 전략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그럼 북한마저 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자는 말이냐’고 항의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반론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따로 하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듯이 박근혜 정권은 이렇게 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아마 홍 회장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북 관계만이 아니다. 세월호와 메르스를 통해 ‘입증’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실력과 비전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커녕 국민의 안전조차 지키기 어렵다. 창조경제라는 공허한 깃발조차 남루해진 경제 상황, 미국 손에 이끌려 강제로 일본과 손을 잡으면서 명분도 실리도 잃어버린 한심한 외교,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한 행패로 이른바 ‘유승민 사태’를 불러온 정치 파행 등 하는 일마다 분란을 일으키고 상처를 키우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요컨대 박근혜 정부는 21세기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 집단이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1970년대의 (혼자만) 화려했던 기억에 갇혀 지적 성장을 멈췄고, 그런 퇴행의 시각과 인맥으로 구성한 (대부분 인사청문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패 집단이기 때문에 능력보다는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위주로 구성한) 사상 최악의 무능 정부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 보수의 바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용인술의 대가였던 박정희는 물론이고, 전두환이나 노태우도 이 나라의 우파 에이스들로 정부와 청와대 참모진을 꾸렸다(인권 탄압의 흑역사를 제외하면, 나는 그들의 성과를 인정하는 편이다. 압축성장으로 인한 모순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마련한다면 그 자체로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모순을 외면하거나 부인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현실을 재단하는 청맹과니 같은 태도다. 저임금에 기반한 대외수출 정책으로 이 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규모에 비해 내수시장이 형편없이 작고, 부의 불평등 정도가 높은 것은 노조를 비롯한 한쪽 날개를 거의 완전히 부러뜨려버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분배가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은 갈수록 자명해지고 있다). 경제성장 같은 보수의 테제가 시대적 효용을 다 하자 더 이상 보수의 깃발로 사람을 모을 수 없었는데, 2007년에 쓰지 않고(못하고) 남겨둔 박근혜라는 히트 상품 덕에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한다. 박근혜는 미래 비전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향수로 집권했다. 그에게는 애초부터 미래 비전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유권자들도 그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심각한 무능력자들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 외교, 민생이 총체적 파탄 상태다. 레임덕 수준을 넘어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내편 네편 갈라 충성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착란 상태가 아닌가 싶다.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이 나라는 보수가 세운 보수의 나라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 나라 보수들이 선택할 차례다. 3류들과 함께 망하는 길로 갈 것인가. 이념을 뛰어넘어 미래로 갈 것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6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바야흐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시대다. 봄부터 이어져온 가뭄에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장마철로 우중충해야할 하늘은 철없는 아이의 웃음마냥 화사하다. 덕분에 모내기도 못하고 있다는 농초(農草:농사밖에 모르는 촌부를 일컫는 말)들의 하소연이 온 나라에 득실한 때 드디어 그녀께서 납시었다. 굵은 소방호스에 그저 손 하나 얹고 갈라진 논바닥을 향해 일발 발사하니 광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어느새 논밭을 물 천지로 만드시고 가뭄에 목마른 농심 어쩌구저쩌구 했던 방송국 나리들의 쭉 삐져나온 입도 쑥 들어가게 하시더니 이윽고 그녀께서 물만 주신다면야 칠월에 씨 뿌려도 대풍년 가을이라 외쳐대는 그녀 바라기 지천인 나라를 만드시니 어찌 “해동에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를 외치지 않을 수 있을텐가.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여 궁핍한 백성의 노고가 심심치 않으니 다시 그녀께서 납시신다. 역병이 승한 병원은 제껴두고 격리환자도 없는 곳에 찾아가셔서 방호복 든든히 입은 의원 나리와 그저 큼지막한 사진 한 장 박으시니 신문마다 넘쳐대던 역병 소식을 일거에 잠재우시고 백성들로 하여금 각처도생(各處度生)이란 실한 말도 만들고 깨우치게 하여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드높게 하시니 어찌 “덕망이 뎌리 하실세, 도라올 군사가 황포(黃袍)를 니피오니”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림판 더욱이 맹자께서 2,500년 전에 미리 말씀하신 군주의 기본은 너무도 잘 지키시는 바 “무릇 군주란 백성을 제일로 여기고 사직을 섬기는 가벼운 자리이다” 라는 말씀을 신조처럼 여기사 가벼운 자 여기저기 함부로 나타나면 안된다 여기셔서 “죽지마라 이 꽃 보고 죽어라 보고 보고 나보다 훨씬 뒤에 죽어라-오봉옥의 시 너희들의 세상이다 중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눈감는 숱한 아이들의 생명을 향해 아비된 심정으로 외치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세상을 울리던 그날에도 어디서 무얼 하는지 그 행적을 묘연하게 하시는 능력도 탁월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째려보는 눈빛 하나 만으로도 국정을 장악하시다가 그 눈빛으로 주르륵주르륵 굵은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아직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여린 청춘들을 기리는 그 긴 연설문을 목소리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읽어 내시어 백성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셨으니 그 어찌 신공이라 아니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젊었을 한철 독재정권 퇴진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소위 야당 인사라는 치들조차 퇴진은커녕 사과 한마디 해 주십사 달려들어 애걸하는 처지로 만들었으니 그녀의 능력은 신공을 지나 가히 천공(天功)이라 할 만하지 않는가. 눈빛만으로 손짓 하나 만으로 말 한마디만으로 슬쩍 웃어주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뭇 백성들의 아픈 가슴을 위무해 주시는 과화숙식(過火熟食)-지나가는 불에 밥을 짓는다. 손 안 대고 코 푼다-의 깊은 내공으로 21세기 전 세계의 왕조국가 유일한 여왕으로 군림하시는 그녀의 與民정신에 억지로라도 감읍해야 하는 백성인 나는 아으 동동다리도 아니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도 아니고 철지난 용비어천가나 불러제낄 수 밖에. “군위(君位)를 보배라 할 세 큰 명을 알외오리라 바다우히 금탑이 솟사니”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18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월호 사건 이후 자주 떠오르는 주제가 생겼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더 확실해진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국가란 무엇인가’, 좀 더 좁혀 ‘주권이란 무엇인가’이다. 국가가 영토와 국민과 주권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특히 ‘주권’(sovereignty) 개념이 궁금했다. 이것을 잘 파악해야 국가도 이해될 것 같았다. 국어사전에서는 정치학적 해설을 반영하여 ‘주권’(主權)을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 성립된 것일까. 이하의 글은 카야노 도시히토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다. 국가 및 주권을 묻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폭력이다. 폭력을 물어야 국가의 본질이 좀 더 분명해진다. 압도적 폭력이 다른 폭력을 이기고 그 폭력이 정당화되는 과정에 국가가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이렇게 규정했다.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이다.” 물론 ‘실효적으로 요구한다’지만,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주먹질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건대, 폭력 자체가 아니라 폭력이 행사될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이들이 그 폭력에 대해 묵인, 동의, 복종하면서 폭력이 정당해지고, 그 폭력의 가능성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적용되면서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폭력은 권력으로 작동한다.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협박만으로도 그 대상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푸코는 ‘권력’이라고 규정했다. 이른바 권력은 국민이 폭력의 가능성을 내면화하고 그에 동의하면서 성립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폭력은 더 은밀하고 공고하게 구조화된다. 하지만 그 사용 가능성에 대해 국민이 동의했기에, 폭력은 구조적으로 작동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베일에 가려진다. 권력은 자신 안에 법을 끌어들인다. 법이 법으로 규정되면서 다시 권력이 정당화된다. 그러면서 법 자신도 정당화된다. 발터 벤야민이 폭력을 ‘법규정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으로 구분한 바 있는데, 법을 만들고 법을 유지시켜나가는 것도 폭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에 의해 승인된 폭력, 즉 권력이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 자신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권력의 합법적 부의 축적이 세금의 징수이다. 동의를 통해 폭력을 권력으로 바꾸어준 국민은 권력이 요구하는 세금을 낸다. 만일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내기 싫더라도 처벌을 피하려면 세금을 내야 한다. 물론 세금의 일부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권력은 세금을 징수해 국민에게 재분배한다. 하지만 세금의 재분배 자체가 권력의 목적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재분배를 통한 권력의 자기 유지이다. 권력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려면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소득을 높여주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경제 정책을 입안한다. 그래서 국민의 수입이 늘면 국가가 징수하는 세수도 는다. 세수가 늘면 그만큼 권력이 강화된다. 그래서 권력은 자신을 위해 국민에게 끝없이 경제 성장을 주문하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하게 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배경에도 그 정책을 통해 사실상 권력을 확보하고 확장시키려는 깊은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 축구 선수가 열심히 축구 경기를 하면 할수록 축구의 규칙이 더욱 정당화되듯이, 국민이 세금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것은 권력이다. 들뢰즈는 국가의 이러한 세금 징수 시스템을 ‘포획장치’라고 명명한 바 있다. 국가는 그러한 포획장치를 폭력이 아니라 권리로 여기고 선전하면서 출현하고 성립되기 때문이다. 권력이 국민의 안전을 약속하는 궁극 목적도 권력 자신에 있다.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국민이 동의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그래야 자신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은 사실상 부차적이다. 내적 목적은 권력의 자기 유지이다. ‘조폭’이 상권을 보호해준다며 대가를 요구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조폭 자체에 있는 것과 구조상 과히 다르지 않다. 이렇게 권력의 목적은 권력 자신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삭제해가며 국민을 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민을 위해서라도 권력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권력이다. 목적이 국민에 있지 않기에, 세월호든 메르스든, 정말로 국민을 위한 국민적인 일에는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결론은 명백하다. 국가 없이도 안전할 수 있고 평화로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라는 것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이른바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상향적으로 집중해낸 중심의 거대 권력을 다시 하향적으로 분산시켜 주변의 여러 작은 권력들로 분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작은 권력들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확보해야 한다. 거대한 주권을 작은 주권들의 관계망으로 재구성해내야 한다. 이런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써보련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85 | 추천: 0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부(富)란 누군가의 몫을 빼앗은 것이고 가난이란 누군가에게 몫을 빼앗긴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제3세계적 정서에 가깝겠다고 여기긴 했다. 해방기의 적산불하(敵産拂下), 한국전쟁 전후 매점매석과 폭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재벌 정책이며 부동산값 폭등… 한국에서 부의 정당성을 의심할 근거는 넘치도록 많다. 돈을 좋아하지만 돈을 쓸 때면 죄책감을 느낀다. 어느 모로나 ‘중상’에 해당할 법한 생활을 하면서도 고급품 사는 일은 꺼린다. 집도 있고 절도 있고, 보험도 잔뜩이고, 집 청소마저 남의 손에 맡기고 살지만 그런 사실을 입 밖에 내려면 얼굴이 홧홧거린다. 의로우려면 가난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이젠 아닐진대. 불의 없이 부자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폭력적 선입견이 아닌지 따져 묻게 됐으면서도. ‘죄 많은 부자’의 반면은 ‘가난하고 착한 사람’이다. 가난이 구조적 문제라면 가난한 사람은 잠재적으로 다 선한 사람이어야 마땅했다. 개인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렸는데 그 덫에서 저나 제 주변을 물어뜯는다고 탓할 수는 없다.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그의 탓이 아니니, 덫이 아니라면 그는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었을 터이므로. 가난의 낌새만 봐도 소스라치면서도 공상은 잔뜩 얹어놨었다. 고분고분하고 성실하고 착한, 모범 노동자풍 가난의 상은 만만해서 딱 좋았다. ‘철의 노동자’건 ‘반란 대중’이건 그런 원형에 우겨 넣곤 했다. 결국은 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존재니까. 돌봐줘야 할 사람들이니까. 노동가치설 같은 쟁점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오직 노동’이니 노동하지 않는 자가 차지한 부는 일종의 횡령이라는 생각으로 전용시켰다. 몇 해 전부터, 젊은 세대 상당수가 나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또래에도 많았던 것을 내 생활 반경 안에서 겪지 못한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명문대 잘 나가는 학과에 다니는 누구는 이른바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로의 진입을 갈망했다. 누군가는 한 끼 수십만 원의 구르메 파티를 부러워했다. 증권회사 신입사원 아무개는 버스 운전기사와 자기 월급이 별 차이가 없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마지막 아무개의 말에 따르면, 운전기사의 일이 단순 노동에 지나지 않는 반면, 자신의 일은 복잡한 지식과 적잖은 위험 부담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경제 분석 능력과 세계 금융에 대한 지식, 그리고 정확한 판단과 과감한 결정이 요구되는 일을 어찌 종일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기계적 노동에 비길 수 있느냐고 했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까지 다녀온 학력 투자도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젊은 세대의 불만과 초조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갖고 있는 죄책감이랄까 기득권 의식도 여유의 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박사 실업자 생활도 몇 해 했고 오직 돈 때문에 참고서 대필도 여러 권 해 봤지만, 불안정을 넘어 가난에 실질적으로 위협받아 본 적은 없다. 나라와 집안이 다 ‘살림살이 좋아지는’ 과정을 겪으며 자란 까닭인지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암암리에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가진 자라는 확신이 단단했기에 못 가진 자에 대해 으스대고 있었는지도.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 부부가 거액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펼쳐나가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업시간에 종종 ‘상속 없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클라르테 운동을 통해 번졌던 사상이고, 한반도에서는 해방기에 활발하게 논의됐던 아이디어다. 평생을 통해 부를 축적할 권리를 인정하되, 단 부의 상속은 제한하자는 것이 골자다. 벌써 수십 년 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도 좋은 사례일 것이다. 상속을 전면 부정하는 급진론은 소수고, 대부분은 일정 규모 이상, 혹은 재산의 2/3 가량을 사회에 돌리도록 권장한다. 아직까진 ‘상속 없는 사회’에 적극 찬성을 표하는 학생은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망설이면서, 그래도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기대 없이는 노동 의욕 자체가 저하될 것 같다고 했다. 능력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데 과잉 교정이 더 위험한 것 같다고도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절로 아인 랜드의 반론이 떠올랐다. 혁명기 러시아를 탈출해 미국에서 작가 생활을 한 그이는 ‘공장 노동자의 노동은 몇 천 년 전 석기 시대의 그 노동’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노동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기술과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리·경영이 가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힘이지, 수천 년래 똑같은 노동이 가치 창출의 원천은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말이다. 노동과 경영. 나아가 산업과 금융.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확한 사고의 기초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다만 고용이나 복지 등 앞으로 계속 부딪힐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도 다시 배우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만을 절감하고 있다. ‘죄 많은 부자’와 ‘가난하고 착한 사람’에 대한 내 오랜 선입견도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2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