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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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수임비리 변호사」 검찰과 언론이 내게 붙여준 호칭이다.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라고 부르는 순간 난 비리 변호사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비리 변호사로 호칭되면서 인터넷에는 내 이름을 포함한 비리 변호사 기사로 넘쳐나고 있다.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로 호칭한 이후부터 만나는 사람, 전화 통화한 사람들 중 일부는 나에게 “괜찮냐? 정말 괜찮냐?”고 물었다. 난 이미 비리 변호사로 낙인찍혀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곤혹스러웠고,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냐?”라고 묻는 사람은 날 아끼는 사람들이다. 날 아는 지인 중에서 “괜찮냐.” 묻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는 내게 무관심한 사람이었거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 자식 인권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그 새끼도 속은 썩어빠진 새끼였어.” 등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일 거다. 날 아예 모르는 사람은 “민변, 좌빨 새끼들 속이 시원하다.”에서부터 “죄진 놈들은 단호히 처벌받아야 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렇게 속수무책 비리 변호사가 되어버렸는지 참으로 난감하다. 난 공자 같은 현자로 살겠다는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 성품과 능력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자들의 이름을 팔거나 호칭하면서 살아 갈 능력조차도 전혀 없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정치를 권유한 사람은 꽤 많다. 그렇지만, 난 정치인이 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하다. 난 박근혜 대통령님을 주군으로 받들고 따를 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못하다. 심지어 치열하게 사는 삶도 나의 방식은 아니라며 믿고 있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다. 삼시세끼 먹고 살기 위하여 알량한 법률 지식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그저 그런 변호사에 불과하다. 한승헌 변호사님 말씀처럼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고 시늉내면서 산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로 부르는 순간, 난 정말로 부끄럽게 산 놈이 되어 버렸다. 돈 벌려는 욕심도 별로고, 돈 버는 재주도 별로 없는 변호사다. 그러나 이제는 돈 벌려고 범죄를 저지른 놈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아 온 과정에서 본의든 본의 아니든 다른 사람의 가슴에 피멍울 지게 한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부족한 인격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할 몫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리 변호사, 범죄자로 인터넷을 도배할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실은 없다. 민변 소속으로 소송을 수행한 변호사가 변호인단에 같이 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승낙한 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의혹을 밝히기 위하여 노력한 죄 밖에 없는데, 무엇을 반성해야 하나. 참 더럽다는 말이 제격인 것 같다. 내가 조사한 사건은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원인(死因)을 밝히는 것이었고, 장준하 선생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긴급조치로 복역한 내용에 대한 것이다. 검찰은 전혀 다른 사건을 동일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딱 맞는 말이다. 이번이 세 번째 수난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고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2년 6월 남짓 재판을 받고, 이명박 정부 때는 아무 이유 없이 1년 넘게 특수부에서 내사를 하더니, 이번엔 비리 변호사로 날 몰아친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을 왜 이리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검찰 표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날 비리 변호사라 부르며 6개월 넘게 희롱하다가, 지난 7월 13일 날 기소유예 하였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기가 막힌다. 난 용서해달라고 한 사실도 없고, 잘못하였다고 반성한 사실도 없으며, 검찰의 출석요구에도 불응하였기 때문에 애당초 기소유예를 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그러함에도 내 죄는 인정되지만, 검찰이 자비심을 베풀어 마치 날 용서해 준 것처럼 발표하였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난 검찰이 맘대로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난 검찰 처분에 대하여 날 기소하라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남들은 검찰 용서를 받기 위하여 온갖 로비도 하는데, 난 기소해 달라고, 법원에서 재판받을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야 하니 참 희한한 세상이다. 검찰에 더 이상 날 갖고 놀지 말고 기소해달라고 애걸(?)했지만 그들이 내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제 2라운드로 공이 넘어갔다. 검찰과 지리한 헌법소원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검찰이 선전포고한 명예 전쟁에 맞서는 것이 힘들고, 싸우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싸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나도 내 명예만큼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인권단체에 이런 개인적인 글을 써서 공간과 지면을 사유화해도 되는 것인지 양해 바랄 뿐입니다.) * 관련 인터뷰 기사 보기     - “나를 기소하라” (한겨레21 제1071호)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77 | 추천: 0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21세기 초반부를 살며 우리는 희한한 싸움꾼의 신기한 싸움법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많은 이들이 ‘꿈같은 8월’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하던 지난해 여름, ‘프란치스코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뜨거운 열풍을 몰고 다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주인공이다. 가는 곳마다 ‘프란치스코 효과’ ‘프란치스코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지켜보며 탁월한 싸움꾼, ‘전사’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게 필자뿐일까. 수시로 교황 소식을 접하고 지난해엔 꼬박 4박5일 동안 교황을 밀착 취재하다시피 한 필자로선, 1096년부터 1272년까지 근 200년간 모두 8회에 걸쳐 십자군을 파견한 우르바노 2세(Urbanus II, 재위 1088∼1099) 교황을 비롯한 역대 교황들에 비해 결코 달리지 않는 내공(?)이 느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싸움꾼 기미는 이미 그가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지난 2013년 3월 직후부터 감지할 수 있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 역대 교황들이 머물던 화려한 교황궁 대신 바티칸시국 한켠에 있는 소박한 ‘성 마르타의 집’을 숙소로 택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교황 전용 리무진보다 교황청을 오가는 셔틀버스나 소형차를 애용하는 모습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해외 언론은 물론이고 국내 언론들까지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관련된 기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도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이 된 듯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교황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가 아니라 먼 아시아 대륙에서, 그것도 거의 실시간으로 그와 관련된 소식을 어느 때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종교학자나 사회학자들까지 ‘기이한 현상’ 나아가 ‘기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려놓았다. 역대 어떤 교황이나 종교인도 하지 못한 큰 판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여기서 그가 어떻게 싸움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자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외신 등을 통해 종종 접하게 되는 교황의 말 가운데 “충분하지 않다!”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4월 11일 발표한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도 그는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로 정의를 넘어 간다. 하지만 하느님은 정의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참 정의의 기초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과 함께 그것을 감싸고 능가한다”(21항)고 말한다. 교황은 지난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도록 격려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의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성경의 한 장면이 있다. 바로 ‘부자 청년의 비유’(마태 19, 16-22)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은 청년은 자신의 존재를 주님께 자랑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하고 예수님께 되묻는 청년에게서는 자부심과 긍지마저 묻어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청년은 충분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만한 자격을 지닌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요즘 말로 ‘필요조건’은 갖췄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는 것이 부자 청년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성경은 부자 청년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장면을 보자. 7월 5~12일 8일간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3개국 사목방문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 물신숭배 풍조를 강하게 질타했다. 7월 9일 사목방문 두 번째 나라인 볼리비아 시민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돈은 ‘악마의 배설물’(dung of the devil)로서 자본주의의 탐욕적 속성이 빈부격차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까. 아마 당장 ‘빨갱이’ ‘종북’이라는 말이 나올 게 뻔하다. 실제 미국 등 서방선진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교황을 ‘까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그러진 못한다. 이젠 판이 교황에게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교황은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자본주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추진하는 긴축 프로그램은 신식민주의이다.” “가난한 이들이 세계 경제 질서를 바꾸고 스스로 노동과 거주, 토지의 신성한 권리를 찾으라.”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 질서’ 수립을 요청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껏 역대 교황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름 자신의 페이스대로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판을 만들기 위해 기성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판까지 깨가며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 새로움은 모든 사람,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하고 있음을 본다. 그의 싸움이 갈수록 재밌어지는 이유다. 그의 싸움을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링 위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불끈 솟구치는 이유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42 | 추천: 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주목되는 현상은 이른바 ‘조중동’의 이반 현상이다. 해도 너무한 무능을 지적하는 글부터 대통령의 ‘여왕’ 놀이를 비판하는 칼럼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글이 이 신문들의 논조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상당한 변화가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특히 <중앙일보>의 행보를 눈여겨보고 있다. 여전히 진영논리에 입각한 아전인수식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분야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와 관련해 홍석현 회장의 인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홍 회장은 지난해 9월부터 <허핑턴포스트> 한국판과 미국판 블로그에 북한과 통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적어 올리고 있다. 심지어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웅적” 결단이라고 추어올리는 대목도 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쥐라고 에둘러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무렵 나온 책 <서울 평양 메가시티> 역시 홍 회장과 같은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계에 봉착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북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홍 회장은 경제보다 통일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결론은 같다). 정치통합은 요원하니 경제통합부터 먼저 이루자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쓴 민경태씨는 삼성전자에서 신기술과 기술벤처 투자,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해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중앙일보를 포함한 범삼성그룹 전략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그럼 북한마저 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자는 말이냐’고 항의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반론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따로 하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듯이 박근혜 정권은 이렇게 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아마 홍 회장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북 관계만이 아니다. 세월호와 메르스를 통해 ‘입증’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실력과 비전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커녕 국민의 안전조차 지키기 어렵다. 창조경제라는 공허한 깃발조차 남루해진 경제 상황, 미국 손에 이끌려 강제로 일본과 손을 잡으면서 명분도 실리도 잃어버린 한심한 외교,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한 행패로 이른바 ‘유승민 사태’를 불러온 정치 파행 등 하는 일마다 분란을 일으키고 상처를 키우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요컨대 박근혜 정부는 21세기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 집단이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1970년대의 (혼자만) 화려했던 기억에 갇혀 지적 성장을 멈췄고, 그런 퇴행의 시각과 인맥으로 구성한 (대부분 인사청문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패 집단이기 때문에 능력보다는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위주로 구성한) 사상 최악의 무능 정부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 보수의 바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용인술의 대가였던 박정희는 물론이고, 전두환이나 노태우도 이 나라의 우파 에이스들로 정부와 청와대 참모진을 꾸렸다(인권 탄압의 흑역사를 제외하면, 나는 그들의 성과를 인정하는 편이다. 압축성장으로 인한 모순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마련한다면 그 자체로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모순을 외면하거나 부인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현실을 재단하는 청맹과니 같은 태도다. 저임금에 기반한 대외수출 정책으로 이 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규모에 비해 내수시장이 형편없이 작고, 부의 불평등 정도가 높은 것은 노조를 비롯한 한쪽 날개를 거의 완전히 부러뜨려버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분배가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은 갈수록 자명해지고 있다). 경제성장 같은 보수의 테제가 시대적 효용을 다 하자 더 이상 보수의 깃발로 사람을 모을 수 없었는데, 2007년에 쓰지 않고(못하고) 남겨둔 박근혜라는 히트 상품 덕에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한다. 박근혜는 미래 비전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향수로 집권했다. 그에게는 애초부터 미래 비전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유권자들도 그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심각한 무능력자들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 외교, 민생이 총체적 파탄 상태다. 레임덕 수준을 넘어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내편 네편 갈라 충성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착란 상태가 아닌가 싶다.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이 나라는 보수가 세운 보수의 나라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 나라 보수들이 선택할 차례다. 3류들과 함께 망하는 길로 갈 것인가. 이념을 뛰어넘어 미래로 갈 것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77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바야흐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시대다. 봄부터 이어져온 가뭄에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장마철로 우중충해야할 하늘은 철없는 아이의 웃음마냥 화사하다. 덕분에 모내기도 못하고 있다는 농초(農草:농사밖에 모르는 촌부를 일컫는 말)들의 하소연이 온 나라에 득실한 때 드디어 그녀께서 납시었다. 굵은 소방호스에 그저 손 하나 얹고 갈라진 논바닥을 향해 일발 발사하니 광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어느새 논밭을 물 천지로 만드시고 가뭄에 목마른 농심 어쩌구저쩌구 했던 방송국 나리들의 쭉 삐져나온 입도 쑥 들어가게 하시더니 이윽고 그녀께서 물만 주신다면야 칠월에 씨 뿌려도 대풍년 가을이라 외쳐대는 그녀 바라기 지천인 나라를 만드시니 어찌 “해동에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를 외치지 않을 수 있을텐가.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여 궁핍한 백성의 노고가 심심치 않으니 다시 그녀께서 납시신다. 역병이 승한 병원은 제껴두고 격리환자도 없는 곳에 찾아가셔서 방호복 든든히 입은 의원 나리와 그저 큼지막한 사진 한 장 박으시니 신문마다 넘쳐대던 역병 소식을 일거에 잠재우시고 백성들로 하여금 각처도생(各處度生)이란 실한 말도 만들고 깨우치게 하여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드높게 하시니 어찌 “덕망이 뎌리 하실세, 도라올 군사가 황포(黃袍)를 니피오니”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림판 더욱이 맹자께서 2,500년 전에 미리 말씀하신 군주의 기본은 너무도 잘 지키시는 바 “무릇 군주란 백성을 제일로 여기고 사직을 섬기는 가벼운 자리이다” 라는 말씀을 신조처럼 여기사 가벼운 자 여기저기 함부로 나타나면 안된다 여기셔서 “죽지마라 이 꽃 보고 죽어라 보고 보고 나보다 훨씬 뒤에 죽어라-오봉옥의 시 너희들의 세상이다 중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눈감는 숱한 아이들의 생명을 향해 아비된 심정으로 외치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세상을 울리던 그날에도 어디서 무얼 하는지 그 행적을 묘연하게 하시는 능력도 탁월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째려보는 눈빛 하나 만으로도 국정을 장악하시다가 그 눈빛으로 주르륵주르륵 굵은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아직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여린 청춘들을 기리는 그 긴 연설문을 목소리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읽어 내시어 백성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셨으니 그 어찌 신공이라 아니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젊었을 한철 독재정권 퇴진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소위 야당 인사라는 치들조차 퇴진은커녕 사과 한마디 해 주십사 달려들어 애걸하는 처지로 만들었으니 그녀의 능력은 신공을 지나 가히 천공(天功)이라 할 만하지 않는가. 눈빛만으로 손짓 하나 만으로 말 한마디만으로 슬쩍 웃어주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뭇 백성들의 아픈 가슴을 위무해 주시는 과화숙식(過火熟食)-지나가는 불에 밥을 짓는다. 손 안 대고 코 푼다-의 깊은 내공으로 21세기 전 세계의 왕조국가 유일한 여왕으로 군림하시는 그녀의 與民정신에 억지로라도 감읍해야 하는 백성인 나는 아으 동동다리도 아니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도 아니고 철지난 용비어천가나 불러제낄 수 밖에. “군위(君位)를 보배라 할 세 큰 명을 알외오리라 바다우히 금탑이 솟사니”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월호 사건 이후 자주 떠오르는 주제가 생겼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더 확실해진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국가란 무엇인가’, 좀 더 좁혀 ‘주권이란 무엇인가’이다. 국가가 영토와 국민과 주권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특히 ‘주권’(sovereignty) 개념이 궁금했다. 이것을 잘 파악해야 국가도 이해될 것 같았다. 국어사전에서는 정치학적 해설을 반영하여 ‘주권’(主權)을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 성립된 것일까. 이하의 글은 카야노 도시히토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다. 국가 및 주권을 묻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폭력이다. 폭력을 물어야 국가의 본질이 좀 더 분명해진다. 압도적 폭력이 다른 폭력을 이기고 그 폭력이 정당화되는 과정에 국가가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이렇게 규정했다.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이다.” 물론 ‘실효적으로 요구한다’지만,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주먹질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건대, 폭력 자체가 아니라 폭력이 행사될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이들이 그 폭력에 대해 묵인, 동의, 복종하면서 폭력이 정당해지고, 그 폭력의 가능성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적용되면서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폭력은 권력으로 작동한다.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협박만으로도 그 대상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푸코는 ‘권력’이라고 규정했다. 이른바 권력은 국민이 폭력의 가능성을 내면화하고 그에 동의하면서 성립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폭력은 더 은밀하고 공고하게 구조화된다. 하지만 그 사용 가능성에 대해 국민이 동의했기에, 폭력은 구조적으로 작동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베일에 가려진다. 권력은 자신 안에 법을 끌어들인다. 법이 법으로 규정되면서 다시 권력이 정당화된다. 그러면서 법 자신도 정당화된다. 발터 벤야민이 폭력을 ‘법규정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으로 구분한 바 있는데, 법을 만들고 법을 유지시켜나가는 것도 폭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에 의해 승인된 폭력, 즉 권력이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 자신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은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권력의 합법적 부의 축적이 세금의 징수이다. 동의를 통해 폭력을 권력으로 바꾸어준 국민은 권력이 요구하는 세금을 낸다. 만일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내기 싫더라도 처벌을 피하려면 세금을 내야 한다. 물론 세금의 일부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권력은 세금을 징수해 국민에게 재분배한다. 하지만 세금의 재분배 자체가 권력의 목적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재분배를 통한 권력의 자기 유지이다. 권력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려면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소득을 높여주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경제 정책을 입안한다. 그래서 국민의 수입이 늘면 국가가 징수하는 세수도 는다. 세수가 늘면 그만큼 권력이 강화된다. 그래서 권력은 자신을 위해 국민에게 끝없이 경제 성장을 주문하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하게 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배경에도 그 정책을 통해 사실상 권력을 확보하고 확장시키려는 깊은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 축구 선수가 열심히 축구 경기를 하면 할수록 축구의 규칙이 더욱 정당화되듯이, 국민이 세금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것은 권력이다. 들뢰즈는 국가의 이러한 세금 징수 시스템을 ‘포획장치’라고 명명한 바 있다. 국가는 그러한 포획장치를 폭력이 아니라 권리로 여기고 선전하면서 출현하고 성립되기 때문이다. 권력이 국민의 안전을 약속하는 궁극 목적도 권력 자신에 있다.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국민이 동의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그래야 자신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은 사실상 부차적이다. 내적 목적은 권력의 자기 유지이다. ‘조폭’이 상권을 보호해준다며 대가를 요구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조폭 자체에 있는 것과 구조상 과히 다르지 않다. 이렇게 권력의 목적은 권력 자신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삭제해가며 국민을 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민을 위해서라도 권력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권력이다. 목적이 국민에 있지 않기에, 세월호든 메르스든, 정말로 국민을 위한 국민적인 일에는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결론은 명백하다. 국가 없이도 안전할 수 있고 평화로울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라는 것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이른바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상향적으로 집중해낸 중심의 거대 권력을 다시 하향적으로 분산시켜 주변의 여러 작은 권력들로 분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작은 권력들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확보해야 한다. 거대한 주권을 작은 주권들의 관계망으로 재구성해내야 한다. 이런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써보련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63 | 추천: 0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부(富)란 누군가의 몫을 빼앗은 것이고 가난이란 누군가에게 몫을 빼앗긴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제3세계적 정서에 가깝겠다고 여기긴 했다. 해방기의 적산불하(敵産拂下), 한국전쟁 전후 매점매석과 폭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재벌 정책이며 부동산값 폭등… 한국에서 부의 정당성을 의심할 근거는 넘치도록 많다. 돈을 좋아하지만 돈을 쓸 때면 죄책감을 느낀다. 어느 모로나 ‘중상’에 해당할 법한 생활을 하면서도 고급품 사는 일은 꺼린다. 집도 있고 절도 있고, 보험도 잔뜩이고, 집 청소마저 남의 손에 맡기고 살지만 그런 사실을 입 밖에 내려면 얼굴이 홧홧거린다. 의로우려면 가난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이젠 아닐진대. 불의 없이 부자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폭력적 선입견이 아닌지 따져 묻게 됐으면서도. ‘죄 많은 부자’의 반면은 ‘가난하고 착한 사람’이다. 가난이 구조적 문제라면 가난한 사람은 잠재적으로 다 선한 사람이어야 마땅했다. 개인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렸는데 그 덫에서 저나 제 주변을 물어뜯는다고 탓할 수는 없다.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그의 탓이 아니니, 덫이 아니라면 그는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었을 터이므로. 가난의 낌새만 봐도 소스라치면서도 공상은 잔뜩 얹어놨었다. 고분고분하고 성실하고 착한, 모범 노동자풍 가난의 상은 만만해서 딱 좋았다. ‘철의 노동자’건 ‘반란 대중’이건 그런 원형에 우겨 넣곤 했다. 결국은 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존재니까. 돌봐줘야 할 사람들이니까. 노동가치설 같은 쟁점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오직 노동’이니 노동하지 않는 자가 차지한 부는 일종의 횡령이라는 생각으로 전용시켰다. 몇 해 전부터, 젊은 세대 상당수가 나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또래에도 많았던 것을 내 생활 반경 안에서 겪지 못한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명문대 잘 나가는 학과에 다니는 누구는 이른바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로의 진입을 갈망했다. 누군가는 한 끼 수십만 원의 구르메 파티를 부러워했다. 증권회사 신입사원 아무개는 버스 운전기사와 자기 월급이 별 차이가 없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마지막 아무개의 말에 따르면, 운전기사의 일이 단순 노동에 지나지 않는 반면, 자신의 일은 복잡한 지식과 적잖은 위험 부담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경제 분석 능력과 세계 금융에 대한 지식, 그리고 정확한 판단과 과감한 결정이 요구되는 일을 어찌 종일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기계적 노동에 비길 수 있느냐고 했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까지 다녀온 학력 투자도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젊은 세대의 불만과 초조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갖고 있는 죄책감이랄까 기득권 의식도 여유의 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박사 실업자 생활도 몇 해 했고 오직 돈 때문에 참고서 대필도 여러 권 해 봤지만, 불안정을 넘어 가난에 실질적으로 위협받아 본 적은 없다. 나라와 집안이 다 ‘살림살이 좋아지는’ 과정을 겪으며 자란 까닭인지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암암리에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가진 자라는 확신이 단단했기에 못 가진 자에 대해 으스대고 있었는지도.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 부부가 거액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펼쳐나가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업시간에 종종 ‘상속 없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클라르테 운동을 통해 번졌던 사상이고, 한반도에서는 해방기에 활발하게 논의됐던 아이디어다. 평생을 통해 부를 축적할 권리를 인정하되, 단 부의 상속은 제한하자는 것이 골자다. 벌써 수십 년 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도 좋은 사례일 것이다. 상속을 전면 부정하는 급진론은 소수고, 대부분은 일정 규모 이상, 혹은 재산의 2/3 가량을 사회에 돌리도록 권장한다. 아직까진 ‘상속 없는 사회’에 적극 찬성을 표하는 학생은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망설이면서, 그래도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기대 없이는 노동 의욕 자체가 저하될 것 같다고 했다. 능력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데 과잉 교정이 더 위험한 것 같다고도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절로 아인 랜드의 반론이 떠올랐다. 혁명기 러시아를 탈출해 미국에서 작가 생활을 한 그이는 ‘공장 노동자의 노동은 몇 천 년 전 석기 시대의 그 노동’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노동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새로운 기술과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리·경영이 가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힘이지, 수천 년래 똑같은 노동이 가치 창출의 원천은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말이다. 노동과 경영. 나아가 산업과 금융.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확한 사고의 기초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다만 고용이나 복지 등 앞으로 계속 부딪힐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도 다시 배우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만을 절감하고 있다. ‘죄 많은 부자’와 ‘가난하고 착한 사람’에 대한 내 오랜 선입견도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1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올해는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다. 견우와 직녀도 매년 칠월 칠석에 한 번은 만나건만 꽉 막힌 남북관계는 좀체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작년 북측 고위급인사의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 참석 이후 10월 말에서 11월 초 갖기로 했던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올해 초에는 남북 당국 모두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22일 북한 붕괴 발언 이후 북한은 미국과는 더는 마주 앉을 용의가 없다고 반발하며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3월 키 리졸브 독수리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면서 훈련이 종료된 4월말까지 남북미 사이에 대화 성사의 계기는 사라졌다. 러시아 전승 70주년을 맞아 러시아의 초청을 받은 양 정상이 5월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예상되기도 하였으나 끝내 불발되었다.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아 7년 만에 그 성사가 기대되는 가운데 추진된 남북공동행사도 결국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의 문제와 정치색 배제 여부를 둘러싼 행사의 성격 문제에 대한 남북 당국 사이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희망은 끊이지 않고 분출될 것이고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은 결코 멈출 수도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한 30여명의 세계 여성평화운동가들이 지난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라”라는 취지의 ‘비무장지대를 걷는 여성들’(Women Cross DMZ) 행사에 참여하여 경의선 육로를 이용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비무장지대를 걷는 여성들’(Women Cross DMZ) 행사의 성사는 남북이 분단 적대의 비극을 극복하고 더 이상 전쟁에 휩싸이지 않는 평화로운 삶을 이뤄나가기를 바라는 국제 여성계의 바램이 일구어낸 역사적 장거로 기록될 것이다. 군사분계선이 사라지고 남북이 평화롭게 자유로이 오고 갈 평화통일의 그날은 먼 미래의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현실의 일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세계 여성평화운동단체 '위민크로스디엠지'(WCD) 회원들이 지난 5월 24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북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고 민통선 철책옆 길을 걸어 임진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7월 3일부터 14일까지 광주에서 개최되는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게 된다면, 작금의 메르스 확산 사태로 우리 사회 전체가 혼란과 걱정에 휩싸여 시달리는 상황에서 더 없는 위안과 기쁨이 될 것이다.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닫힌 숨통이 트이고, 8.15 민족공동행사의 성사로까지 이어져 남북화해와 남북관계발전을 향한 선순환의 큰 전기가 열리기를 바란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에 놓인 난관과 시련은 언제나 매우 엄중하다. 8월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계기로 정전상태의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와 공포가 다시 엄습할지도 모른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응할지 모른다. 상호 적대행위가 숨통이 트인 남북관계를 언제든지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상호 적대관계의 악순환 일로의 그칠 줄 모르고 줄달음질쳐 가는 북미 대립과 남북관계 경색 분위기 속에서 훈풍을 불러올 남북대화 추진의 동력은 없는 것일까? 남북 사이의 대화와 협상의 분위기를 창출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에 크게 기여할 방도는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들로 인하여 남북대화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정부에 남북관계에 훈풍을 불러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능동적 조치로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함에 앞서 남북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촉진시키는 원칙에 대해 상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 당국 모두 남북합의에 기초하여 이를 성실히 이행해 나가며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7.4 남북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에 의하면, 남북문제는 자주적, 평화적, 민족대단결에 의거하여 민족의 존엄과 이익에 지향시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문제를 풀어나가는 남북합의의 정신에 기초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언이다. 먼저, 정부는 남북교역과 민간접촉 및 대북 신규 투자를 불허하는 5.24 조치를 해제하기를 바란다. 현 정부 여당의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지는 모르나, 5.24 조치의 해제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대북경제협력을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도 정부가 적극적 입장에서 선제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정부는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는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는 남북 간 상호 불신과 상호 비방전을 야기하여 남북 대결을 격화시킴으로써 정부의 남북대화 추진 입장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접경 지역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심각히 위협하는 행위로 그 위험성이 명백하므로 제지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미 대립과 별개로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핵실험을 둘러싼 북미 사이의 대결과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북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매개하고 지지할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향한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하여 적극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저해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역행하는 종북몰이 공안탄압을 중단하여야 한다. 북한에 대한 불신과 증오에 기반한 종북몰이 공안탄압은 남북대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정부가 남북합의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계기를 살릴 수 있는 전향적 조치를 통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기를 바란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22 | 추천: 0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다소 늦게 일어난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해,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 갑자기 아이가 코피를 쏟는다. 내 손에 떨어진 아이의 선혈... 놀란 가슴에 솜을 찾아 코를 막고 얼음을 꺼내 코 주위에 냉찜질을 하며 지혈을 해본다. 이제는 좀 괜찮으려나 싶어 솜을 빼보지만 멈추지 않고 뚝뚝 피를 흘린다. 아이의 피한방울이 이렇게 가슴 아플 수 있을까? 오후가 되어서야 코피가 멎는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래도 계속 지혈이 되지 않으면 병원에라도 가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병원에 가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5월 17일 국내에 첫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환자가 병원을 찾았고, 해당 병원 의사는 메르스를 의심하여 질병관리본부에 확진요청을 했지만, 검사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환자 가족이 “검사를 안 해주면 정부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항의하자 질병관리본부는 병원 측에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병원이 책임지라”는 단서를 달고서야 확진 검사를 실시했다. 최초 검사 요청을 한 때로부터 2일을 허비하고서야 메르스 확진 검사결과가 나왔다. 이후 6월 1일 발표에 의하면 메르스 확진 환자는 25명, 격리대상자는 682명, 메르스 감염 사망자 2명이 되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40%에 이른다. 사스의 치사율이 10%였던 점에 비교하면 얼마나 위험한 질병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고, 이와 접촉한 사람들 중 2차 감염자가 발생하는 등 메르스의 빠른 확산 속에 국민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메르스는 공기로 전파된다거나 어느 지역에 있는 어느 병원에 가지 말라는 등의 얘기가 SNS망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메르스 의심환자 및 확진 환자를 위한 격리센터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보건당국은 이틀 만에 격리대상자 수가 2배가 늘어난 사실을 발표하고, 메르스 확진 환자인지 장담할 수 없다던 환자가 사망하고서야 메르스 확진 환자였다고 발표한다. 이젠 3차 감염자가 나타나고 있다. 2차 감염자는 1차 감염자와 접촉하거나 같은 병원에 입원, 간병하던 사람들이다. 3차 감염자는 2차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보건당국은 “의료기관 내 감염이었기 때문에 지역사회로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밝힌다. 정부는 초기 대응에서도, 메르스 위험지역 분류에서도, 전염성 정도에 대한 판단에서도 모두 잘못 대응했다. 심지어 출입국 관리도 허술해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미 우리는 지난 해 4월 16일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객실에서 꼼짝 않고 있던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으로 생매장한 세월호의 잔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초기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시시각각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며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부질없는 기도를 했던 그 바로 기억 말이다. “전원구출”이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결국 정부의 무능한, 무책임한 대응으로 꽃과 같은 아이들은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고, 지금도 가슴속 응어리를 풀지 못한 유가족과 국민들은 벌써 1년이 넘도록 길바닥을 집 삼아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메르스의 급격한 확산 속에서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의 수장인 박근혜는 철저한 방역대책의 강구 대신 “괴담”을 유포하는 자를 엄벌하겠다는 식의 국민 협박을 늘어놓는다.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알려주지 않는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것을 두고 괴담을 유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이때, 누가 괴담이나 유포하며 이 사태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그 머릿속이 궁금할 뿐이다. 스스로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두고 괴담 유포 운운하는 것을 보니, 아이들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며 자기 살 궁리만 하던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하고, 비열한 안내방송이 귀가를 맴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미군이 국내로 배달한 탄저균은, 부정비리의 종합선물세트 성완종 리스트는, 단군 이래 최대 비리인 사자방 문제는, 정부를 총동원한 부정선거는, 모두 메르스로 묻고 가려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는 말.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대한민국을 거대한 세월호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상상하라~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영화 홍보 문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보다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아이의 코피가 반나절이 지나도록 멎지 않는데도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 과민해서인가?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596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삶은 기억의 축적이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 무언가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한 켜 한 켜 쌓아올린다는 뜻이고, 우리의 삶을 무력화시키려 하는 수많은 장애에 저항하며 삶의 온전함을 끝내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결국 우리는 기억하는 만큼 사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우리 귀에 속삭인다. 잊으라, 잊어버리라. 세월호를 잊고, 5.18을 잊고 또 많은 것을 잊으라고 말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은 그래서 깊게 다가온다. “권력에 대한 모든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음악은 기억을 유지하는 대단히 중요한 매개다. 어느 순간 내 삶의 한 장면을 함께했던 음악을 통해 우리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음악은 의식이 아니라 몸으로 스며들어 내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전율시키며 잊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낸다. 우리가 노래를 듣고 부를 때 울컥 눈물을 흘리거나 심장을 감고 도는 어떤 뜨거움을 느끼곤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몸의 기억은 어떤 강제나 억압을 통해서 억지로 지워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몸에 음악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기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음악은, 기억을 통해 삶의 온전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우리의 기억 투쟁의 중요한 무기가 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가 있다. 80년대를 겪은 세대라면 누구나 이 노래를 기억한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80년 5월을, 그리고 그 5월로부터 시작되어 그 시대 전체를 관통했던 피의 역사를 잊지 못한다. 80년대 내내 수많은 투쟁의 현장에서 불렸던 이 노래는 민주화의 흐름 속에 합법적인 음반으로 발매되면서 민중가요의 테두리를 넘어섰고 나아가 동남아와 중국, 일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민중들이 함께 부르는 국제적인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살된 윤상원 열사와,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곡된 노래이며, 백기완 선생의 시를 토대로 소설가 황석영이 노랫말을 다듬고 김종률이 작곡한 노래라는 사실은 이제 그리 중요한 게 아닌지 모른다. 중요한 건 5월 광주와 80년대의 격랑 속에 불렸던 이 노래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역사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노래는 노래말이나 멜로디, 혹은 편곡과 가창 같은 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시대의 맥락을 갖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노래들은 한 시대의 가장 치열했던 역사 전체의 무게를 담보하기도 한다. ‘라 마르세이유’나 ‘인터내셔널가’, 혹은 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말이다. 언제부턴가 정부는 이 노래를 망각의 저편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5.18 추도식의 주제가로 불리던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건 5.18 광주의 역사 자체를 잊으라 하는 강요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그것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진보시키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을 억누르고 싶어 하는 권력자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고작 노래 하나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건 단지 그들이 ‘쪼잔’한 자들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온 거대한 역사의 한 줄기를 무력화시키고 끝내 지워버리고자 하는 그들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시도의 일부분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켜내는 것, 이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이 노래를 함께 부를 때 우리 머릿속에 소환되는 역사의 장면 장면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우리가 노래를 잊는 순간, 우리는 역사를 잃는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38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필자가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5월 7일에 베를린에 개최된 기념행사에 야스쿠니촛불공동행동의 일원으로 참석하여 발제한 것을 약간 수정하였다.) 죄의 정치 어떤 죽음을 기억하고 어떤 죽음을 배제하고,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이상화할 것인지는 예로부터 정치의 본령에 속한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아테네 병사들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유족의 위태로운 감정을 배경으로 애도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일본사회가 그랬듯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도 희생자를 어떻게 애도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앓고 있다. 그런데 애도의 대상이 전쟁과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라 전범이나 가해자라면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파행을 겪게 된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를 생각할 때 애도의 정치가 아니라 죄의 정치(politics of guilt)가 더 어울린다. 죄의 정치란 전쟁범죄나 중대한 인권범죄에 따른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이행하고 국내적 또는 국제적인 평화를 수립하는 역동적인 정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국가폭력을 자행한 사회의 성원들은 죄의 얼룩에서 벗어나기 위해 윤리적으로도 정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법적 대가도 치러야 한다. 죄의 정치는 외부세력의 강박이 아니라 사회의 내재적인 발전을 통해서 전개되는 경우에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국가폭력에 소극적으로 연루되거나 수수방관하였던 보통사람들이 후회와 성찰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재구성하려는 집단적 정치적 의사를 형성할 때, 죄의 정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죄의 정치의 최종생산물은 평화를 사랑하는 건강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희생자의 판타지로서 백조일손지지 총칼로 전쟁을 하지 않는 동안 인간은 기억과 관념을 가지고 전쟁을 한다. 기억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 지금도 제주4.3사건의 희생자명단에서 남로당원을 배제해야 한다고 우파들은 주장한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논리를 지금도 강변한다. 군경은 6.25전쟁 초기에 수만 명의 민간인들을 예비검속의 명분으로 체포하 여 학살하였고, 제주4.3사건의 관련자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정부당국은 제주도 모슬포에서 130여 명을 집단살해하고 6년이 지나도록 그 시신에 접근하는 것조차 금지하였다. 접근이 허용되었을 때에는 시신들은 뒤엉켜서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고, 유족들은 유해를 임의로 짜 맞추어 묘지를 만들었다. 그 시신들은 원래의 몸이 아니지만 각각 개인으로 취급되어 안치되었다. 대신 유족들은 이 무덤을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백여 명의 조상에 대하여 그 후손들은 한 사람처럼 봉사하고 애도하자는 뜻을 담는 공동묘지)라고 부르고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므로 백조일손지지는 학살 이후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판타지이다. 학살을 제거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분단을 극복해달라는 유지를 품은 불가사의한 묘지로서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할만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백조일손지지의 정반대의 시설이다. 침략주의의 충전소 야스쿠니 신사는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의 강제합사, A급전범(침략범죄자)의 합사, 일본수상의 참배 등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 상황을 증폭시킨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제거한다면 이제 감당할만한 시설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 자체에 있다. 서승은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시설이 아니라 군사시설이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실제로 식민주의와 침략주의의 만신전과 같다. 타이완침략, 조선강제수교, 오키나와 병탄, 청일전쟁, 러일전쟁, 독도병합, 조선강제병합,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은 제국주의 일본의 70년전 쟁 또는 대(對)아시아전쟁--대동아성전이 아니라--이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어느 국가나 국민이든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에 대해 문화적 자율성을 갖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몰자를 위한 추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그러한 시설들과 동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곳은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꿈꾸는 시설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오로지 제국주의 침략과정에서 천황제의 지지대로서 역할 했다. 일본정부가 70년간의 침략전쟁을 통해 자행한 범죄와 야만에 대해 주변국가에 사죄의 감정을 갖고 진정으로 평화적인 관계를 원한다면 그러한 혐오시설은 일본제국의 패망과 동시에 일찍이 해체되었어야 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고스란히 담은 시설을 일본이 유지하는 데에는 자민당 정부와 일본의 우익의 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아패권(亞覇權)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계산도 한 몫 한다. 과거사에 대한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학자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역사경계선과 안보경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학습의 차이에서 역사의 차이로 형사책임과 관련해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볼 수 있다. 독일에서 1945년 이후 연합국은 나치 전쟁범죄를 강도 높게 청산하였다. 물론 나치공직자들이 군정말기에 대체로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독일정부는 유대인학살과 전쟁범죄에 관여한 자들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처벌하였다. 일본에서도 1945년 이후 연합국은 많은 전범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맥아더는 전쟁범죄의 총책인 일본천황의 책임을 면제하였으며,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생화학무기를 제조하였던 731부대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연합국의 점령통치가 종결된 이후에는 일본정부는 전쟁범죄자를 처벌한 사례가 전무하다. 이 점은 독일과 일본의 역사를 오늘날 상당히 다르게 만들었다. 예컨대, 1960년대의 제2차 아우쉬비츠 소송이나 2011년 뎀잔주크(Demjanjuk) 소송(영화 <뮤직박스>의 모델)은 독일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도 전쟁범죄와 경각심, 책임을 학습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 대중들은 연합국의 점령과 강제청산을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와 같이 지속적인 학습과정을 통해 20세기가 지향하는 국제인도법의 정신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정부와 대중에게는 이러한 학습의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까지의 일본의 행위와 책임을 아직까지도 총정리하지 못했다. 위안부문제, 식민침략, 남경대학살 등은 여전히 일본 시민들에게는 평화와 인권의 정신을 만회하기에 좋은 학습기회이다. 그러나 일본사회와 일본정부는 그와 같은 일차적 죄를 부인하고 책임의 이행을 부인하면서 독일 작가 랄프 지오르다노가 말한 '제2의 죄'를 지속적으로 범하고 있다. 전쟁선동으로서 참배행위 야스쿠니 신사 자체는 죽은 자에 대한 사사로운 애도의 공간일까?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를 위해 죽은 군인이나 그에 준하는 자만이 묻혀있기 때문에 사사로운 애도의 감정이 아니라 숭배와 찬양의 감정이 작동한다. 거기에 합사된 자들은 일체화되고 신으로 격상된다고 한다. 인권법적으로 평가하자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행위는 자유권규약이 금지하고 있는 전쟁선동이다(ICCPR 제20조 제1항). 야스쿠니 신사의 출범부터 마지막까지 일본침략의 수행자들이 묻혀있기 때문에 동북아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기타 희생자를 위한 간이시설(예컨대, 진영사)을 지어 구색을 맞춘다고 해서 시설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자행한 침략과 만행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이행하는지 여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동북아 시민들의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학살이나 남경대학살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이행하지도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시민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강화를 당연히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전몰자들은 대개 아시아에서 일본의 패권을 위한 70년간의 침략전쟁 수행자들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서 뭔가를 기린다는 것은 일본의 침략국가성을 찬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인 일본이 안고 있는 내면의 어둠이다. 물론 모두를 전쟁의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모호하게 접근하는 독일의 ‘노이에 바케(Neue Wache)’ 1)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야스쿠니 신사가 구조적으로 그와 같이 전환되기 어렵다고 본다. 일본에서 합당한 죄의 정치가 발현되고 과거사의 책임을 이행하고 평화를 위해 깨어날 때, 그 때에나 노이에 바케와 같은 시설이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침략전쟁의 전범과 가해자들을 참배의 대상으로 한 야스쿠니 신사는 관리주체와 법적 지위를 아무리 변경하더라도 여전히 국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을 띨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가 발산하는 기운은 침략주의와 맹목적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고민한다. 전쟁에서 죽은 자를 추도하는 시설로써 전쟁과 애국심을 선동하지 않는 형태가 가능할까,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가 진정으로 평화주의의 제도로써 가능할까? 평화의 제도는 권력과 권위를 통해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고 깨어있는 시민들만이 평화의 제도일 수밖에 없다. 노이에 바케를 만들고도 독일은 미국과 함께 전쟁동반자관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1) 노이에 바케는 최근에 타협을 이룬 독일의 전몰기념공간이다. 그러나 시설은 죽은 군인을 영예롭게 하는 의도를 추구하지 않고 널리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 상만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 모두를 애도하고 있다. 시설의 입구에 쓰여진 애도문구에서 여전히 동서독간의 이데올로기적 상흔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4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