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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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미국에서 살게 된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다. 그동안 겪은 미국인들은 대체로 상냥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반갑게 안부를 묻고 1m 이내로 근접할 때는 반드시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무리 줄이 길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서서 기다린다. 한국 같으면 진즉 고성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관공서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 같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고압적이다. 이 기묘한 불일치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착한 미국 서민들을 보면서 나는 양처럼 순한 일본인들을 떠올렸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迷惑を 掛けるな, 메이와쿠오 가케루나) 교육을 어릴 때부터 철저히 받는 일본인들은 미국인 이상으로 착하다. 일본의 ‘메이와쿠오 가케루나’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분석은 그 뿌리를 사무라이 지배에서 찾는 것이다. 함부로 나대다가 언제 칼 맞을지 모르니 스스로 조심하는 문화가 형성됐을 거라는 얘기다. 사무라이들이 새 칼을 시험하려고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미국인들이 상냥하고 양순한 이유도 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함부로 나대다가 언제 총 맞을지 모르니 그럴 법 하다. 무지막지한 경찰의 폭력이 합리화되는 지점도 결국은 총이다. 경찰이 스스로 위협받았다고 판단하면 폭력은 정당화된다. 경찰의 폭력은 흑인과 백인,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는다. 무기도 없는 시민을 길바닥에 눕혀놓고 주먹으로 때리는 경찰관의 모습이 거의 매일 아침 방송 뉴스를 장식한다. 세계 일류 국가이자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고도 참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방인으로서 약간의 만용을 부려 추측해 본다면, 나는 그것이 국가주의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미국 초등학교는 지금도 수업 시작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1년 365일 집 앞에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집이 수시로 눈에 띄는 것은 이렇게 철저한 국가주의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나보다 국가를 앞세우게 되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일이 된다. 강력한 국가와 나약한 국민.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자신들이 국가의 대리인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질문은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세계 일류 국가인데도 왜 참느냐가 아니라 세계 일류 국가이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유보하는 대신 세계 최강 국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미국인들을 지탱하고 있다. 온순하기 때문에 제국의 신민이 된 것이라기보다는 제국의 신민이기 때문에 온순해 진 것이다. 가까이서 본 미국은 애국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전형적인 제국의 논리를 갖고 있다. NBC방송의 <제리 스프링거 쇼> 사진 출처 - 구글 스트레스는 3S(Sports, Screen, Sex)로 푼다. 지구상에서 가장 과격한 스포츠인 미식축구, 세계 최고의 자본과 인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포르노 산업. NBC방송의 <제리 스프링거 쇼>처럼 일반인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막장 프로그램이 한낮에 티브이에서 방송되기도 한다. 애인을 빼앗겼다며 주먹을 날리는 여자들의 악다구니를 보며 미국인들은 국가권력 앞에 왜소해진 자신의 폭력 본능을 쓰다듬는 것일까. 국가주의라는 점에서도 미국과 일본은 닮은 구석이 많다. 한때 제국이었고 다시 제국이 되고 싶어 하는 일본과, 그런 일본을 응원하고 이용하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제국인 미국. 그리고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르는 중국. 그 틈바구니에 낀 한반도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방법은 통일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룬다고 해도 우리는 제국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나는 온순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좋다. 그리고 벌써 그립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74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고영주는 2013년 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변호인’의 모델이 된 세칭 ‘부림사건’ 수사검사다. 단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인물이 아니라, 현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공안검사 출신의 실제 인물이다. 고영주는 국사학자 90% 이상이 좌경화된 사람들, 제1야당 문재인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확신, 문재인을 지지한 사람은 이적행위 동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로 각 호칭하고, 5·16군사쿠데타는 정신적 혁명이라는 극단적 망언을 날리며 매카시즘을 선도하려 하고 있다.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부산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하여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하여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였다고 용공 조작한 공안사건을 통칭한다. 그가 이 사건과 관련해 했던 거짓말을 분석해보자. 첫째, 고영주는 부림사건을 수사하면서 고문을 당했다는 말도 들을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고영주가 피해자들의 고문 호소를 묵살하였다는 증언은 여러 차례 나왔고, 당시 재판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 없이 최대 60여 일간을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야 했다. 불법 구금은 검사라면 수사기록을 한번만 훑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만일 불법구금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검사 자질이 원초적으로 없는 무능력자라는 뜻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영주의 주장이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둘째,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고문을 호소하였다면 법률상 공익의 대표자이고 인권옹호자인 검사는 고문 여부를 밝히는 수사를 반드시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그는 고문 호소를 묵살하였다. 진실을 외면한 직무유기 그 자체로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고문과 가혹행위를 모르쇠하면서 독재자의 하수인 노릇을 한 자가 아직도 국가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정의가 실종된 믿기지 않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부림사건이 재심절차를 거쳐 무죄로 확정된 이후에도 고영주는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운동이며 오늘날 종북세력의 뿌리이고,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사법부가 좌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까지 한다. 시정잡배의 사적 농담도 아닌 공적인 자리에서 법조인이 한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이러한 발언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적법절차를 부인하는 것이다. 적법절차를 위반한 수사와 재판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주장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 변호인에서 ‘차동영’이 자행한 잔혹한 고문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짓이다. 사법부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빨갱이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을 빨갱이로 간주하고 빨갱이는 때려죽여도 되고, 법도 필요 없다며 내뱉고 있는 말이다. 현대판 마녀사냥인 것이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세운 IS(이슬람 국가)가 중동을 피바다로 물들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영주 같은 이념적 극단주의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념 전쟁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는 자들의 행동도 똑같은 이념 전쟁을 원하는 자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은 “흑과 백 둘 중 하나를 골라라. 네가 나의 적이 될 것인지 아군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고 시민을 윽박지르고 있다. 나와 다른 것은 모두 적(공산주의자, 빨갱이)으로 여기는 극단적 이분법만을 가진 자들이 불행하게도 현실을 장악하고 있다. IS 이슬람국가와 국내의 극단주의자들은 모두 폭력과 증오를 근본 뿌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은 공통적으로 극단적 이념을 신봉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항상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살인과 억압, 고문, 사건 조작을 정당화하는 폭력신봉자들이다. 이들의 말로라도 비참해야 하는 것이 인과응보에 맞다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반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오히려 이런 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이 되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헬(지옥)조선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자유 수호와 인권을 금기시하고, 통일된 문화국가를 꿈꾸는 것조차 금지하고, 평화를 거론하는 것도 반역자로 치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꿈꾸는 세상. 그것은 조국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 아니다. 단지 조국을 더럽히고 질식하게 만들 뿐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99 | 추천: 0
- 안철수의 리더십과 아마추어 정치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이는 누굴까. 몇몇 정치인이 떠오르겠지만 단연 압권은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서울 노원구병)이 아닐까. 꼭 안 의원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는 아쉬움을 넘어서 가슴 칠 일로 기억될 것이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격적으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광화문 유세가 끝난 뒤 안 의원은 측근들에게 “새정치는 없고, 친노만의 선거다. 민주당과 앞으로 더 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건 안 되건 나는 내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역사적인 대선 투표 당일 가방을 싸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천생 ‘아마추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 후과가 얼마나 큰지 자신은 알고 있는지. 안 의원은 대선이 끝난 뒤 신당(新黨) 창당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사람은 안 모이고 최장집 교수 같은 멘토들이 떠나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격 합당을 선언했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안철수가 ‘새정치’라는 깃발을 내걸고 창당했지만, 창당을 하자마자 정글의 법칙에 익숙한 그의 측근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떠나는 사람을 잡지도 않았다. 그 결과 어느 순간, 안철수의 우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게 됐다. 호시탐탐 안철수의 입만 노리는 하이에나 떼들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부산 시내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 출처 - 한겨레21 안 의원의 정치 입문(入門)은 이제 고작 3년을 넘겼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청춘콘서트’가 인기를 끌고 젊은이들이 그를 신데렐라처럼 떠받들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바람을 잡기 시작한 게 2012년 3월이다. 당장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난 뒤 후보를 전격 양보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봐줄만 하다. 안 의원이 대표로 있을 당시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안 대표가 세월호 사고 수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일이 전혀 없다. 아니, 안철수가 대표로 있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지 모른다. 무늬만 대표였지 그에 걸맞은 실력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관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안철수 자신만 모르고 있다. 정당의 대표는 주식회사 대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 입문 3년이 지나도록 이점을 간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안 의원이 회사를 운영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정당 운영도 회사 대표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아마추어적 행태는 여기서 비롯된다. 특히 안철수는 정치판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칙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랬으니 추진하고자 한 일마다 파토가 났던 것이다. 또한 공작과 음해와 역공이 난무하는 정치판의 생존원리조차 알지 못했다. 이것이 안철수 정치의 한계이자 현주소다. 안철수가 정치인으로 적어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안목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구 민주당과 합당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6.30 지방선거에서 단 한 석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또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전멸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며 고집스럽게 갔다면 지금쯤 대안정당으로 국민들 뇌리에 자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 당장 죽어도 내일은 살아날 길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안철수는 역시 아마추어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그는 여의도 정치판으로 진입한 이후 눈에 띄는 대권 주자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지도는 대권에 도전했을 당시보다 한참이나 떨어진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 구호와 선전,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상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정치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전장에서 전투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정치는 더러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다른 면에서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경우 일방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거나 청와대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정치적 쇼를 통해 이미지 정치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그에게서 전투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이유다. 지금까지처럼 아마추어 같은 모습에 머문다면 정치인 안철수의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불어 역사의 아픔도 깊어질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를 그만두든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이 아마추어를 말릴 수 있을까. 이 글은 2015년 10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05 | 추천: 11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은행잎은 애초에 노랗지 않다. 봄볕이 무르익을 때 쯤 연두색 아주 여린 이파리로 태어난다. 한여름의 뙤약볕. 심지어는 아파트 창문까지 날리는 태풍까지 다 받아내고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일생을 나무에게 필요한 엽록소를 공급하기 위해 제 할일을 다한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의 계절이 되면 나무는 이제야 스스로 겨울날 걱정을 한다. 나뭇잎이 나무 본체로부터 영양분을 받았던 유일한 통로인 떨켜를 막는다. 나무 본체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 추운겨울 내가 살아야겠으니 너는 이만 내 인생에서 사라져” 아침드라마에서 나오는 아주 못된 배우자의 대사 같은 것이다. 매정한 이별통보 혹은 절교 선언이다. 신호를 받은 나뭇잎은 그제서야 이별을 준비한다. 더 이상 나무 본체를 위해서 광합성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사랑의 대상을 잃은 나뭇잎은 서서히 말라간다. 제 몸속에 남겨두었던 초록의 엽록소가 점점 옅어지고 노란색 낙엽으로 변한다. 봄날 태어날 때부터는 카르티노이드라고 하는 노란색 색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무의 일원이 되어서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위해서 노동했던 그 순간에는 단 한 번도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나무 본체와 이별하고 난 뒤의 단 며칠 혹은 2,3주 그제서야 자기 색깔을 드러낸다. 참담한 이별의 결과다. 그게 우리들의 책갈피에 곱게 모셔둔 노란 은행잎의 실체이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자꾸 낮은 곳으로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가을엽서. 안도현 - 은행잎이 거리를 뒹구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게도 지구가 가지고 있는 중력이란 것 때문이다. 지구 가장 깊은 곳의 중심에서 모든 사물들을 낮아지라고 잡아끄는 힘이다. 그 중력 때문에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은 땅위를 걷는다. 지구상의 모든 자연이 사는 모든 행위들은 모두 이 중력의 힘에 의존한다. 너무도 당연해서 일상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힘이 바로 중력이다. *사실 높은 곳은 다 위태롭다. 보기만 해도 까마득히 솟아있는 대형교회의 십자가도, 어둠의 군주 사우론의 성(城)을 닮은 주상복합 아파트 꼭대기도, 나도 좀 살려달라고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오르려 한다는 한강대교의 아치도 모두 위태롭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만의 호화로운 삶을 위해 높은 곳으로 가고 어떤 이들은 가난한 삶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아니면 더 이상 추락하지 않기 위해 높은 곳으로 간다. 나는 신이 있다면 하늘에는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인간들이란 자기가 믿는 신을 가장 위태로운 하늘 꼭대기에 매달아 놓고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같은 종족들을 얼마나 많이 착취해 왔는가 말이다. 나는 다시 신이 있다면 지구의 가장 중심부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해 진지하게 기도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중력에 의해 삶을 보장받고 중력은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은행잎은 죄가 없다.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적도 없고 원해서 사라지는 적도 없다. 오직 나무 본체만을 위한 끊임없는 노동을 해 왔을 뿐이다. 그 지나치리만큼 가혹한 노동의 대가는 당연히 은행이라는 열매로 맺어진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똥 냄새라고 했다. 은행잎의 숭고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인간의 발끝에서 뭉개지면 풍기는 지독한 냄새다. 가을 바람맞은 풀섶이거나 메뚜기 폴짝대는 잔디밭이거나 냇물 졸졸 흐르는 도랑가에만 떨어졌다 해도 그런 냄새를 풍기지 않았을 터이다. 썩을 수 없어 돌아갈 고향도 잃어버리게 만든 시멘트 바닥을 깔아 놓은 것도 인간이다. 서울시만 해도 11만 4천 그루나 되는 은행나무가 스스로 손들어 가로수가 되겠다고 자원 했을 리 만무하다. 허니 은행의 똥 냄새가 아무리 지독하다 한들 바닥을 아니 도시 전체를 온갖 콘크리트로 도배해놓고 경제성장 축제(economic growth festival)를 벌이기에만 여념이 없는 인간들의 치졸한 욕망의 냄새에 비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은행 열매가 열리는 암컷나무 3만여 그루 중 매년 300그루씩을 제거하기로 했단다. 올 가을이 더 슬퍼지게 생겼다. 대지와 겨우내 뒤엉겨 봄의 새싹을 만들어 내는 생명의 이파리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희생으로 점철된 고단한 낙엽의 일생을 마감하며 마땅히 겨울잠 청할 곳 하나 만들어주지 못하는 도시라는 몰인정한 생태계가 고작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암나무를 베어 버리는 인정머리란 게 도대체 이 가을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똥냄새가 싫다는 이 도시를 포기해야 할까보다. 은행잎으로 상징되는 가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 * (스파시바, 시베리아에서 인용)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1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41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려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방기(放棄)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국헌법(평화헌법) 제9조)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미군정의 주도로 헌법을 개정했다. 당시 개정 헌법의 핵심은 위에 인용한 일본국헌법 제9조, 즉 일본 국민은 평화를 추구하고 무력의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는 선언에 잘 담겨있다. 1954년 자위대가 창설되었지만, 자국 영해 근처에서 직접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견지해왔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이 헌법을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불러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일본 중흥을 외치며 우편향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어오다가 급기야 전후 70년째인 올해 헌법에 기반해 만들어진 안보 관련 법안 열 가지를 개정하고 한 가지를 신설해 국회의 승인을 얻어냈다. 일본의 평화를 지킨다는 ‘소극적 평화주의’에서 세계의 평화를 개척하겠다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워, 자위대가 사실상 세계 곳곳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미국을 후방 지원할 수 있다는 기존의 좁은 원칙에서 ‘미일안보조약’에 기여할 만한 국가, 한마디로 미국과 일본의 동맹국이 위협을 당하면 일본 군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둔 것이다. 기존 일본 중심의 ‘개별적’ 자위권에서, 동맹국까지 포함하는 ‘집단적’ 자위권 개념을 내세워, 일본 정권의 의도에 따라 자위대의 무력 혹은 무기사용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다. 2016년 총선 결과에 따라 현행 헌법, ‘평화헌법’마저 수정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니, 아베 정권의 선전과는 반대로, 일본의 군대가 과연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보전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이러한 때, 무력의 행사를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현 일본국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 내 시민운동은 가상하고 의미 있다. 그리고 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해 헌법의 평화적 정신을 국내외적으로 알려나가는 일도 주변국에서 할 수 있는 효율적인 협조 수단이 된다. 일본국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청원하는 운동이 그 좋은 대안이다. 실제로 2014년 일본국헌법 9조는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였다가, 사람이나 단체로 수상 자격을 제한하는 노벨평화상 규정에 맞지 않아 최종 탈락한 적이 있다. 사진 출처 - 레디앙 그러자 한국에서는 올해 이홍구 전 총리, 이부영 전 의원 등의 주도로 원로 정치인과 교수 등 50명이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국회의원 140명이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실행위원회”의 취지에 동의하는 서명을 해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일본에서는 대학교수와 국회의원들 84명이 “일본국헌법 9조”와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국민”들을 2015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현재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에 평화상 후보로 접수된 상태이다. ‘일본국헌법 9조’와 ‘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국민’이 실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자위권을 정당화시킨 개정 안보법안이 폐기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도리어 이 기회를 노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공산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에 대한 염원이 비할 바 없이 소중하다는 여론을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는 계기는 분명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현재 수준의 평화라도 유지하려는 일본 국내외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또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서 한국인이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리어 큰 박수 소리로 환영할 일이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10월 9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2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858 | 추천: 0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큰애 담임선생님을 두고 학부모 몇 명이 해임을 요구했다. 교장실을 방문해 육박했다는데, 그 이유로 11개조를 제시했다고 들었다. 금품수수, 불법찬조금 모집, 차별대우 등의 내용이었단다. 금품수수? 그 중 두 명이 각각 옷과 화장품을 내밀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받았다고 한다. 불법찬조금이라면 나도 안다. 학생들이 2박3일 여행을 갈 때 간식비 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꺼이 냈다. 급식 모니터링이며 교통지도며, 학교엔 이런저런 눈길과 손길 필요한 데가 많다.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면제받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돈 자랑인지 모르겠지만, 대신 학급비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좀 과하다 싶게 열정적인 타입이다. 시험 전날 밤이면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고, 학교 행사도 꼬박꼬박 챙긴다. 애들 사진도 자주 보내준다. 사실, 나처럼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한 성격으로선 좀 버거웠다. 말도 어찌나 직설적인지 딱 한 번 학부모회에 갔을 때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남학생들은 무난한 것 같은데 여학생들 문젭니다. 얌체가 너무 많아요. 제 것만 챙겨요. 그럼 안 됩니다!” 아이도 힘들어했다. 숙제도 많고 일도 많으니 나중엔 불평도 했다. “공동체란 말이 싫어졌어요.”라고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심지어 교실 앞에 본인 사진을 걸어두기까지 했단다. ‘내가 늘 너희를 보고 있다’는 표식이라며. 요컨대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인 교사였다. 학부모 몇 명이 단도직입 해임을 요구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뜻밖이었다. 귀가 어두워 며칠 후에야 들었는데, 바로 그 날 교장선생님이 학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긍정적 응답이 많을 테니 그걸 증거 삼아 학부모 요구를 물리칠 요량이었는데, 의외로 다수 학생이 담임 교체를 바란다고 적어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문제가 더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담임선생님을 옹호하는 이들에 따르면, 문제 제기하고 나선 학부모 중 일부는 열성적 임원이었단다. 학교에 붙어살다시피 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데도 담임선생님이 자녀를 꾸짖고 못마땅해 한 탓에 마음을 다친 것 같다고 한다. 좀 시간이 지나자 그 자녀들이야말로 문제라는 사람들이 나섰다. 교사 말을 우습게 알고 급우들에게도 함부로 대한 게 학교폭력으로 문제 삼아야 할 정도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방문한 예의 그 날 학생들이 담임선생님 사진을 떼어 내 쓰레기통에 버렸단다. 당연히 몇 명이 주동했을 테고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채 지켜봤을 거다. 지금은 그 학부모 중 한두 명이 출근하다시피 교실을 감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담임선생님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거다. 부담임 교사가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데, 그런 지 1주일여다. “교장선생님은 왜 이대로 계신 거예요…?” 교육청에 고발할 테면 하시라, 강경하게 나서도 될 것 같은데 분위기가 묘하다. 글쎄요, 교육청 감사 나오고 해서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은퇴 앞두고 있는데 말썽이 싫으시겠죠. 전화라도 한 통 하고 싶지만 당최 사정에 어두운 터라 조심스럽다. 기껏 담임선생님에게 소심한 문자를 넣는다. 선생님,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빕니다. 마음 너무 다치지 마시고요.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문제 제기한 학부모들은 나름의 정의감이 충천한 모양이다. “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문자가 돌았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선 그 자녀들을 겨냥한 분노가 자라난다. 담임 교체까진 혹시 몰라도 그런 학생들이 기승스러운 교실에 애들을 둘 수 없다는 거다. 학교폭력에 대한 증언이 모이기 시작하고, 최악의 경우 차라리 아이를 전학시키겠다는 학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직 중학생들이다. 교실은 지금 어떨까. 어떤 악의와 혼란이 번지고 있을까. 학부모들도 난장이다. 문제 제기한 학부모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고, 담임 해임이나 교체라니 말도 안 된다며 강경한 사람들도 있고, 상당수는 주저주저, 무기력하게 걱정하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선생님도 걱정되고 아이들도 걱정되고 물의를 일으킨 학부모들마저 걱정된다. “휩쓸리지 말고, 차분히 보렴.” 기껏 아이에게 한다는 말이 이 따위라니. 2015년 가을, 대한민국의 어느 평범한 중학교.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54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모든 사물의 현상에는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변곡점이란 것은 흐름과 추세를 보여주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말에서 변곡점의 뜻이 명확해진다. 인생도,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숱한 변곡점이 있다. 변곡점이 생기는 각 국면 뒤에는 엄청난 힘이 작용한다. 변화의 동력이 있는 것이다. 방향전환을 뜻하는 변곡점이 생기는데 작용하는 힘은 오랜 세월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곡점이라고 보는 사건, 그리고 삶과 사회의 변화의 흐름에는 그 기저에 반드시 인간의 개별적, 집단적 의지와 실천들이 있다. 그것이 쌓이고 쌓인 결과가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생에서 변곡점은 숱하게 많다. 나이를 먹는 자체가 삶의 변곡점을 가져다준다. 신체와 정신의 발달에 따라 저마다 무궁무진한 인생의 변곡점을 형성하며 희로애락을 가꾸어나간다. 그런데 수많은 인생의 변곡점 뒤에는 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뚜렷한 목표와 지향이 있다. 저마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변곡점에 대한 의미 부여가 달라진다. 저마다의 인생관에 따라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의미가 달라진다.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변곡점이 달라졌다고 보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돈이 최고의 가치 부여 대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압도적으로 뒤덮고 있는 생각이다. 부자가 되어 마음껏 누리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편하게 살고 싶은 꿈과 욕망이 넘쳐난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인생관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으로 믿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부자 되어 좋은 일하기 현상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부자가 되기 위한 꿈의 변곡점을 향한 우리들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변곡점을 향해 우리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쏟아 부으며 인생살이를 쳇바퀴 돌 듯 살아가다 보면 더 나은 삶의 변곡점이 주어질까. 다들 잘 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망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이루어질 수 없는 인생의 변곡점을 향한 수많은 인생들의 삶은 가련하고 비참하기 그지없다. 망상이 되어 버린 개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지금 우리들은 스스로 이율배반의 처지가 되어 아무런 지향도 의미 부여도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부자의 길…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또는 운 좋게 부자가 된 극소수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을까. 부자 되어 좋은 일하기(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도 더 어렵다. 왜 그렇게 될까. 우리들은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번 후에는 사회를 위해 공익을 위해 많은 기부와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 그럴 듯한 말인데 왜 실천으로 옮기기가 그렇게 힘이 들까. 아마도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번다’는 의미가 계속 충족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돈을 많이 벌다보면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고, 자신과 비교해 여러 가지로 부족한 그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기에는 자신이 번 돈의 가치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리라. 게을리 살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면 잘 먹고 살 수 있는데 괜히 기부하고 도와줘서 의존심만 키우리라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으리라. 불가능한 인생의 변곡점을 향해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지향 없는 삶은 이제 그만. 새로운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돈, 돈, 돈…. 무엇으로 바꾸어야 할까. 나만 편하게 살자고 각자도생하는 무한욕망을 향한 삶은 이제 그만. 이제는 나부터 편히 먹고 살아야 남도 돌아볼 수 있지라는 근시안적 생각을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먼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가정과 이웃에서부터 각자의 인생의 변곡점을 향한 노력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협력과 나눔의 관계를 튼튼히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인생의 변곡점은 모두가 함께 삶의 가치를 누리는 방향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기부할 수 있는 그런 뚜렷한 지향과 목표를 담고 있어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39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강용석이란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가 누구와 연애를 하건 불륜을 저지르건 그건 개인의 문제이며 그런 사실이 굳이 까발려지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은 구역질이 나서라도 피해 왔고 방송에서 그 얼굴을 안 보게 되기를 바라왔지만, 그가 불륜 스캔들 때문에 방송하차 하는 데 대해 고소해 하는 글들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다. 강용석이 국회의원을 지낸 공인이고 사회적 유명인 이므로 그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비록 공인이라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구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정말 문제 삼고 싶은 건 강용석의 불륜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방송가의 스타로 떴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일차적으로, 강용석을 방송에 출연시켜 화제성을 키우고 이미지 세탁의 기회를 주면서 마침내는 여러 개의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는 TV스타로 만들어 준 방송사들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상업주의다. 정치권에서 퇴출된 계기가 되었던 그의 언행을 보면 그가 저렇게 대중적인 스타로 떠오른 건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선 다 줘야한다’는 식의 모욕적인 성희롱 발언을 했고 이후 한나라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에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등 좌충우돌하면서 대표적인 비호감 정치인으로 낙인찍혔고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것으로 정치적 생명이 끝나고 곧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 같았던 그가 되살아난 건 순전히 방송 때문이다.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양념으로 출연하던 그는 특유의 순발력과 언변을 무기로 일부 프로그램의 고정을 꿰차더니 시나브로 웬만한 인기 연예인보다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예능스타가 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비호감 정치인이었던 그는 어느덧 말 잘하고 아는 것 많고 재미있는 아저씨 정도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대로 간다면 방송에서의 인기를 발판으로 다시 정치권으로 재진입하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번 스캔들이 아니었다면 정치권에서 퇴출된 사람이 방송을 통해 이미지를 희석하고 다시 정치인으로 복귀하는 아마도 최초의 사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JTBC <썰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가 방송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종편 채널들의 등장과 함께 더욱 격화된 채널 간 시청률 경쟁과 당연히 무관할 수 없다. 이슈를 만들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 방송사 입장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화제성을 갖고 있고, 서울대와 하버드대라는 스펙에, 국회의원에 변호사라는 이력, 게다가 화려한 언변과 두꺼운 안면까지 갖춘 강용석은 매력적인 캐스팅 카드였을 게다. 초반에는 물의를 일으킨 비호감 인물을 캐스팅한다는 비난을 받겠지만 시청률만 올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분명 상업적 성공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게다. 그리고 그런 판단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강용석을 캐스팅한 방송사들의 전략이 맞아떨어질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가 바로 그와 같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용석 같은 인물이 TV스타로 떠오른 현실은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시대적 흐름, 혹은 지배적인 정서 구조를 반영한다.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몰염치,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심리, 무슨 수를 쓰든 돈을 벌고 유명해지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생각, 강용석 현상의 배후에는 바로 그런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런 정서 구조 위에서, 기본적인 상식과 윤리, 가치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지고,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용석 현상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임을 방증한다. 이 사회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사회적 윤리와 대의, 인간적 가치를 좇던 사람들이 줄곧 패배하고 개인적 욕망과 이익, 세속적 가치를 추구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승리해 온 저간의 역사가 이미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더욱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되리라는 희망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그런 정서는 더욱 더 심화되고 강화되리라는 사실이다. 정말 획기적인 역사적 전환을 통해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강용석이 방송 무대에서 사라진다 한들 우리는 언제든 유사한 현상을 또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36 | 추천: 1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클린턴 대통령은 1893년 하와이 왕국의 전복에 대해, 호주 수상 케빈 러드는 애버리진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격리정책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는 식민지 카메룬에서 프랑스 정부가 자행한 원주민 집단살해에 대해 사과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볼리비아에서 신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자행된 학살과 폭력에 대하여 사죄하였다. 이렇듯 식민지배와 침략, 학살의 역사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원수들이 국경을 넘어 사죄하는 현상을 학자들은 사죄의 물결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사죄의 기원을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흉년과 전염병에 자신의 부덕을 탓했던 왕들의 예를 통해서 사죄는 매우 오래된 정치적 제도였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일련의 국정 실패와 대형참사 앞에서 국정책임자의 적절한 사죄가 있었더라면 국민의 신뢰를 강화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제대로 된 사죄는 실패의 원인분석과 시정방향을 함축하기 때문에 인간과 제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간적인 처방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사죄하기 싫어하는 정치적 최고책임자들이 즐비하다. 정치의 수단으로써 사죄는 오로지 양심의 통회로서만 의미를 갖는 종교적 참회와는 다르다. 정치적 사죄는 자연인으로서 사사로운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의 객관적인 직분과 관련된 사항이다. 베버의 용어로 표현하면 심정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의 문제이다. 따라서 내키지 않더라도 사죄를 할 수 있는 자는 정치인으로서 덕을 갖춘 자이다. 그는 사죄를 통해서 관계를 회복시키고 불화의 골짜기를 평탄하게 만들 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 8월 14일 아베 수상은 일본이 전쟁을 하게 된 배경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면서 적당하게 과거형으로 종래의 사죄를 언급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일본침략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시아 2천만 민중의 참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피해사실만큼은 깨알같이 나열하였다. 사죄의 담화가 아니라 일본의 피해사실을 국제사회가 알아야한다는 보고서와 같다. 그런데 아베 수상의 정신세계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죄의 어원과 의미의 변천사를 짚어보자. 법률용어로서(써) 사죄의 영어표현은 아폴로지(apology)이다. 아폴로지는 그리스어 아폴로기아(ἀπολογία)에서 유래하는데, 원래 이 단어는 이야기(story)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플라톤의 시대에 아폴로기아는 소송이나 공적인 맥락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수사학의 기술을 의미했다. 그래서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 기록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아니라 ‘변론’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변론은 자신이 옳다는 주장이라면, 변명은 틀렸다는 전제를 수용하면서 비난의 강도를 낮추기 위한 책략적 발언이다. 그런데 현재 아폴로지는 변명, 사과, 사죄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아폴로지의 의미의 감정적 폭이 이렇게 착잡하게 넓으니 제대로 깔끔하게 사죄하기 참 어렵겠다고 생각된다. 사죄를 잘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 간의 사소한 잘못이라도 무성의한 사죄는 분노를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유효한 사죄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사람은 사태에 대한 공통의 이해, 피해자에 대한 책임의 인정,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의 시인, 자신의 잘못에 대한 판단, 후회의 표시, 장래 행동에 대한 의지표명 등을 교과서적으로 제시한다. 어떤 이는 책임수용, 즉각적 사과, 상대방의 분노의 정확한 인정, 용서 구하기와 자신에 대한 용서를 사죄의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사죄의 의견을 표시할 때 적절한 타이밍에 명료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조건부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변명이나 해명을 하지 말고, 사죄 후에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고 조언한다. 어떤 사태에 책임 있는 사람이 이와 같이 사죄한다면 상대방은 심각한 피해가 아닌 이상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죄를 수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사죄의 요령은 개인들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그런데 중대한 인권침해 앞에서 국가원수가 앞의 요령에 따라 절절한 감정이 묻어나는 사죄발언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중대한 인권침해 앞에서 실질적인 회복조치를 담지 않는 사죄는 부정의한 사죄이다. 침해가 상징적인 수준이거나 경미한 수준이라면 사죄의 표현은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행동이 된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야기한 사안에서라면 보상 요소를 수반하지 않는 사죄는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니다. 공식적 사죄가 인권침해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 구제수단을 포함하는 때, 피해자 집단에게 일정한 참여기회를 열어두고 대화의 형태를 갖게 될 때, 그러한 사죄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가해자의 죄책감을 이완시키고 인간을 각성시키고 연대감을 고양시킨다. 식민지 잔혹행위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죄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일과거사에서 책임인정의 수위를 놓고 우리는 고노 담화(1993년)나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예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15일 발언에서 아베의 발언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했다고 정리하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였다. 20여년 전에 나온 이들의 담화는 정확히 무엇이었는가?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발언이었고, 무라야마 담화는 종전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지배와 관련해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당시 수준으로 보면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규범침해에 대한 명백한 인정과 법적 책임의 공식적 이행을 예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한 담화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서 식민지배 책임을 완결지었다는 기본전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담화의 뒤끝에 이른바 도의적 책임으로 치장된 국민기금(1997년)이라는 어정쩡한 수단이 나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국민기금을 법적 책임의 이행수단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수상의 사죄편지와 기금이 제공하는 위로금을 거부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현 정부도 일본의 법적이고 공식적인 책임이행을 요구해왔는데 박 대통령이 아베의 발언이 역대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했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 평가한다고 하니 놀랍다. 외교가 꼭 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정부가 다투고 있는 전제를 다시 인정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아베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회복조치를 취하라!’고. 지난 20년은 한국에서 국가폭력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관철시켰던 시대였다. 우리의 규범의식은 고노 담화를 뛰어넘었다. 이 20년의 국가폭력 청산의 역사를 한국의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치지도자도 학습해야 한다.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후 수립되고 심화된 거대한 인권 체제의 자장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가 동시대인이 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1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51 | 추천: 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불경기입니다. 출판 쪽 역시 워낙 불황인지라 요즘 별 볼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제가 일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시쳇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그날 오후 2시: 지인의 지인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50대 중반의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개인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나니 돈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보다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신의 사업 계획이 얼마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습니다. 저는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이니 사회적 기업이니 하는 말이 무슨 유행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귓등으로 대충 흘려들었던 것이 전부였으니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업계획 설명에 열을 올리던 그가 잠시 숨을 고를 때가 되어서야 저는 겨우 한마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께 무얼 해드리면 되는 건가요?” 그는 잠시 저와 눈을 맞추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습니다. “저... 명함을 하나만 만들어주셨으면 하는데 그게 어려울까요?” 그는 출판사와 인쇄소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직은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라 돈이 부족하지만 나중에 사업이 잘되면 홍보용 전단지나 팸플릿 등등 일이 많을 것이니 서비스로 명함을 좀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하얘졌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 화를 낼 수도,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어서 윗사람과 상의해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날 오후 8시 30분: 제가 일하는 사무실 가까운 곳에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 술집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외상도 되는 집이어서, 퇴근길에 그 술집에 들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젊은 여성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두어 달 전까지 이 선술집에서 일했었던 ‘알바생’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취업이 되었다며 축하해달라고 했던, 특히 상냥하고 친절했던 친구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 반 만에 비로소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했던 당시의 기억이 생생했습니다. “역시... 직장인 되더니 더 어른스러워지고 세련되어졌구먼.” 반가운 마음에 제가 객쩍은 농담을 던졌을 때 왠지 그 친구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말이 없다가 그 친구는 곧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고 했습니다. 120만 원의 급여에도 수당이 없는 잦은 야근도 견딜 수 있었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걸핏하면 ‘왜, 회사 다니기 싫어?’ ‘그러려면 그만두든지’라는 말을 해대는 직장상사의 말은 정말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 안에 회사를 나올 것이라는 그 친구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새삼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분야에서 아직도 일하고 계시니까요.” 저는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그렇지 않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등등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 10시 30분 아내는 저에게 오늘도 일 없었냐고 물었습니다. 별일이 있는 날이 1년 중 며칠이나 될까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별일 없는 날입니다. 오늘도 역시 별일 없는 날이었습니다. 괜히 비겁하고 부끄럽고 콧등이 조금 시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3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