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어느 시인 토요일 오전 11시쯤, 전화가 왔습니다. 시를 쓰는 친구였습니다. “오늘… 나와야지?” 오늘은 3월 4일, 19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집안 일 때문에 참석을 못 할 것이라는 저의 말에 그는 조금 아쉬워하는 듯했습니다. “할 수 없지, 뭐….”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지난 18차 촛불집회가 이어져오는 동안 한 번도 저에게 참석 여부를 묻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 조금 특별한 전화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혹시, 어느 친박단체가 주장한 ‘세계 역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였다는 지난 삼일절 ‘탄국기 집회’ 직후라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특별히 오늘 집회 참석하느냐고 묻는 거야?” 그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집회잖아.”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탄핵 인용 전 마지막이 될 촛불집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는 저 역시 당연히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숨쉬기도 미안한 4월’을 해마다 겪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거의 세 시간 거리쯤 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 번도 빠짐없이 토요일 오후 두 시 반쯤이면 어김없이 광화문광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이 마지막 집회가 될 것이니 그동안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부끄러움 많은 소년처럼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에 범박한 저로서는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2. 어떤 수필가 지난 1월 말경,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시중에 절판된 그분의 저서와 인터뷰 모음집을 헌책방에서 구매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정회원입니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자서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여섯 권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출판업자임에도 저는 아쉽게도 그분의 저서 중, 단 한 권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심경 고백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 마음의 여정>(1995)이라는 책입니다. 표지에 붙어 있는 띠지에는 ‘대통령딸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 그리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여정-순리대로 나타나는 사계절에 자연이 순응하듯 순리대로 펼쳐지는 인생의 여정에 순응하며…’ 라는 카피가 눈에 띕니다. 이 책에는 ‘율리아나’라는 가톨릭 세례명과 선덕화(善德華)라는 불교의 법명을 함께 가진 분인 만큼 유불선을 넘나드는 사상만큼이나 자유로운 글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글들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어서 제가 가진 책에 쓰인 그대로를 조금 인용해보겠습니다. 오랫동안 큰 힘 또는 권력의 비호 아래 지내왔거나, 뭐든지 다 들어 주는 부모의 보호 아래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자란 사람들은, 그 권내를 벗어나면 참으로 비참한 지경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분노를 다스릴 줄 모른다. 자신의 뜻대로 되었던 세상과는 달리 이제 사사건건 방해와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 그 안에서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인내심을 일시에 잃어버리고 극도의 분노에 달하기 쉽다. 그리하여 약간 구부려도 될 일도 꺾어버리고 제동기를 밟아야 할 때 가속기를 밟고……. -[인생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중에서 남을 열심히 괴롭히는 자는 자기가 들어가 묻힐 굴을 열심히 파고 있는 중이다. 남에게 고통을 주려고 그런다지만 자기의 업장은 나날이 두꺼워진다. 남이 고통을 준다지만 사실 결정적인 최대의 고통과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는 자기 한 사람뿐이다. 분노에 눈이 멀어, 자만심에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아, 쾌락에 정신을 잃어, 곧 닥칠 수치와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를 파멸시키는 길로 달려간다. 이런 일은 하늘도, 부모도, 그 누구도 막아 줄 수 없는 일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샐까] 중에서 사족. 경박한 출판업자 생각보다 헌재의 심판 선고일 지정이 늦어져 싱숭생숭한 마음에 ‘구간소개’를 했습니다. 지난 2012년 10월, 저는 뜬금없이 찾아온 출판브로커 아무개로부터 책을 한 권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재출간이지만 서둘러 이 책을 내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박이 나면 수익금의 얼마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받은 책이 <박근혜 심경 고백 에세이, 내 마음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때 책을 냈으면 돈 좀 벌었을까요? 아무튼 당시 박근혜에게 별로 관심이 없던 저는 박근혜보다, 영세 출판업자들에게 브로커질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그 아무개 같은 사람이 너무 싫어서 단박에 거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토요일 이후, 한 시간이 일 년 같습니다. 시인 친구처럼 담담해야 하는데, 수필가 그분처럼 순리에 순응하며 기다리면 되는데…. 저는 참 어렵기만 합니다. 헌재는 언제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발표할까요?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29 | 추천: 1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태극기집회, 즉 탄핵반대집회가 3월 1일 최대인파를 기록했단다. 서초동 법원 앞을 지나 온 친구는 그 일대도 온통 태극기로 뒤덮여 있었노라고 전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스꽝스런 관제 시위였던 것이 기세 좋게 자라나 이젠 그 자체의 동력과 감정과 의지를 지니게 됐다는 인상이다. ‘노인회총회’며 ‘틀딱’이라는 조롱을 듣고 있지만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그 나름 사명감과 자부심에 굳건하다. 우연히 만난 블로그에는 ‘위대한 노인의 힘을 보다’라는 글이 걸려 있기도 했다. “이제 뒷방 노인으로 틀어박혀 있지 말고/ 사회로 뛰쳐나와 당당히 말해야 한다/ 주장해야 한다”고. 돌이켜 보니 태극기의 역사도 오래다. 1882년 제정됐으니 1백년을 훌쩍 넘는 연륜이다. 처음엔 대한제국의 국기로 출발했던 것이 대한민국의 국기로 계승됐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대중적 인기는 저조하던 것이 2002년 월드컵 이후론 꾸준히 사랑받는 대중적 기호가 됐다. ‘대-한 민-국!’과 붉은 셔츠와 태극기― 누구는 국가주의라며 우려하고 다른 이는 강요받던 애국과의 단절이라며 기꺼워하던 그 기억이 어디 갔나 했더니, 이제는 탄핵반대에 선점당해 서울 광장을 맴돌고 있다. 이번 탄핵 정국이 태극기의 용법을 가르는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되려나. 태극기가 미적으로 흡족친 못했다. 태극이며 건곤감리의 토대가 되는 우주철학도 20세기 이후론 낯설다. 어렸을 적엔 세계 각국 국기가 그려져 있는 도감을 볼 때면 태극기의 난해성이 더 못마땅해지곤 했다. 3·1 운동 때며 해방 때도 사람들이 태극기를 그리느라 진땀 뺐다지 않나. 사괘를 그려내긴 어려워서 일장기의 붉은 원 아래쪽만 파랗게 칠해서 들고 나왔다고도 하고. 자유·정의·진리를 상징한다는 다른 나라의 단순 명쾌한 국기가 부러워질 때가 자주 있었다. 3·1 운동이 아니었다면 태극기가 이렇듯 오랜 생명을 지속하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3·1 운동 때도 태극기가 처음부터 당연한 듯 쓰였던 건 아니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는 태극기를 제작해 사용했지만 서울에서는 태극기를 준비하진 않은 듯 보인다. 이후 5월까지 이어진 시위 과정을 통해서도 태극기는 다른 깃발과 공존했다. 3월 5일 서울에서의 학생 시위 때처럼 붉은 깃발이 등장하는 일도 있었고, ‘대한독립만세’라고 한자로 적은 대형 깃발을 앞세우는 일은 아주 흔했다. ‘독립만세기’라는 명칭이 일제에 의해 준공식화됐을 정도다.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사진 출처 - 문화재청 모종의 망설임이 있었던 탓이 아니었을까. 근 10년 경험한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 때문에 ‘독립’을 외치긴 했으나, ‘독립’한다면 이루게 될 나라에 대한 합의는 분명치 않았던 터다. 마지막 황제 순종이 돌아와야 하나? 중국에서도 신해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졌다는데 공화정을 세워야 하나? 정치체제도 중요하지만 세금은, 교육은, 토목과 행정은 누가 어떻게 끌어 갈 텐가? 그런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옛 대한제국의 국기를 꺼내오기를 한 구석 꺼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결국 태극기를 기억하고 사용하고 지지했다. 태극기 깃폭을 가로질러 ‘독립만세’ 같은 글귀를 적어놓아 옛 대한제국의 국기 그대로가 아니라, 달라진 시대 달라진 대중의 깃발이 되어야 함을 웅변하긴 했지만. 태극기는 그렇게 3·1 운동을 통해 부활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통해 이어졌으며, 마침내 대한민국의 깃발이 되었다. 해방기의 만세 속에서, 해방 후 3·1절에 좌우가 충돌하는 분열을 겪으며, 한국전쟁으로 분단의 폭력을 아로새기고, 개발의 미명에 동원되고 한편 반독재의 대오 곁에 펄럭이면서. 그러니 1882년의 태극기와 2017년의 태극기는 같은 깃발이지만 또한 같은 깃발이 아니다. 대한제국의 신민이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가 다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고, 그 후 수십 년이 흐르도록, 태극기는 ‘대한’이라는 이름 아래 꿈꾼 새 나라에 대한 열망을 집약하는 기호였다. 여기 있는 나 그대로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상을 열망하듯, 현재의 대한이 더 나은 대한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태극기를 보며 느끼는 애착의 마음이란 그런 역사에 대한 경의다. 어느 세대보다 열심히 살아 온 지금 6·70대 또한 더 나은 대한을 꿈꾸련만. 소외와 우울과 분노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내민 손은 분명히 있으련만. 3·1 운동 98주년, 서울 광장의 태극기를 보며 마음은 여러 겹 착잡하다.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22 | 추천: 2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촛불 집회를 뒤로하고, 오랜만에 지인들과 동행 방문한 장소가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 전적지’였다. 햇볕 한 움큼도 들지 않는 음습한 자리에 동학혁명위령탑이 서 있었다. 위령탑이 부서져 내리며 빨간 벽돌이 뼈처럼 드러나 있는 모습에서 이루지 못한 미완의 혁명, 그 얼굴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서해성 작가는 위령탑이 서 있는 장소가 동학농민혁명군이 전몰당한 장소가 아니라, 일본군과 관군이 동학혁명군에게 총을 쏘아대던 장소라고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동학혁명위령탑이 혁명 전사들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장소가 아니라 참살당한 영혼을 구금 유폐한 장소처럼 보였다. 사진 출처 - 구글 동학혁명은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었으며,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 널리 백성을 구한다는 광제창생(廣濟蒼生) 운동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이라고 다 인간이 아니었던 세상.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던 천대받던 민초들도 다 같은 인간이고, 모든 인간을 하늘처럼 귀한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평등사상을 이 땅에 실현하려던 혁명운동이었다. 그러나 120여 년 전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부패한 권력과 일본군 앞에 무릎을 꿇었고, 선혈만 낭자한 피고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국가도 주권도 잃어버렸다.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헌정유린과 권력 남용을 일삼으면서 주권자인 국민을 개·돼지 쓰레기 취급하다가 탄핵소추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에 대한 사망선고를 앞 둔 시점에 후안무치하고 무도한 자들이 벌리고 있는 광기들이 가관이 아니다. 석고대죄 해야 할 자, 단죄 받아야 할 자가 누구인데, 거꾸로 시민이 벌 받는 사람처럼 주말엔 광화문으로 출석해야 한단 말인가. 주말을 빼앗긴 고단한 삶의 촛불은 변함없이 타오르고 있는데, 그 끝이 무엇인지도 참으로 우려스럽다. 부패하고 더러운 권력을 처단하여 도탄에 빠진 국민을 구하며, 차별과 배제 특권 없는 평등 세상을 갈구하였던 120년 전의 동학혁명과 촛불혁명의 함성이 놀랍도록 닮아있다.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같은 간신들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은 동학혁명보다 한발 앞선 전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신 모리배들이 일부 구속되었다고 촛불의 꿈이 완수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시민은 알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 촛불혁명의 꿈. 정의를 짓밟은 자들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시민의 바램이다. 라틴어에 기원을 둔 평등은 공정, 정의를 의미한다. 평등한 세상,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권력과 부를 가진 자만이 인간 취급 받는 세상을 배척하자는 것. 법률 앞의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자는 것. 그래서 부자와 빈자 사이에 자유의 불평등한 향유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 인격적으로 존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세상. 그것은 한낱 꿈으로 끝날 꿈에 불과할까. 국민의 대표기관인 2월 임시국회를 보면 촛불의 꿈이 어찌 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상법, 고위공직자수사비리처 신설 법안, 공영방송 정상화 법안 등이 꿈의 계단을 올라가는 첫 걸음마가 될 것이다. 첫 계단도 올라서지 못한다면 120년 전의 함성처럼 혁명은 미완의 변주곡으로 끝나 버릴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서해성 작가의 혼이 담긴 한마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들은 저 언덕(우금치)을 넘지 못했다.”.....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저 언덕을 넘을 수 있을까.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2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26 | 추천: 2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 아닐까!” 한동안 세간에 화제를 몰고 다닌 TV 드라마 〈도깨비〉 때문에 유명세를 탄 말이다.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음직한 원초적인 의문이 아닐까.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분한 도깨비나 이동욱이 분한 저승사자는 ‘망각’을 신이 자신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여긴다. 그럴 만도 하다. 적게는 300년에서 많게는 900년도 넘게, 칼에 찔린 듯 한 고통에 찬 삶을 견뎌 온 이에게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는다는 게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축복일 수 있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해본 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현실에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길로 망각을 선택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망각이 쉬 이뤄지지 않을 때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고통의 기억을 대체하기도 한다. 그것이 쉽지 않을 때 극단적인 방법으로 마약류를 통해 고통의 기억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망각의 기제가 사회에 투사될 때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망각의 반대인 ‘기억’을 전제로 생존해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에게 기억이, 그리고 그 기억의 전달이 없었다면 지구상에서 수없이 명멸해간 다른 존재들처럼 어느 한 순간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존재도 자신들이 살던 동굴에 암벽화를 남긴 기억의 행위로 4만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까지 살아남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존재임에도, 망각의 기제를 사회에, 공동체에 강요하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그만 잊으라”고, “망각의 강 저편으로 떠나보내라”고 자꾸 주문을 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도,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도, 용산 참사도, 쌍용차 노동자의 눈물도, 4대강의 신음도, 제주 강정의 통곡도, 미순이 효선이의 한도…. 모두 잊으라고만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박정희기념사업회 등 기억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난리다. 이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 세상에 퍼뜨리고자 하는 것은 결국 ‘가짜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기억’은 원래 실체가 없는 기억이다. 이미 있던 정보가 왜곡되어 나타난 환상 같은 것도 아니고 아예 뿌리가 없는 기억이다. 꿈이나 특정 경로를 통해 접한 정보를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하거나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자신이 한 거짓말마저 실제라고 믿어 버리는 ‘리플리 증후군’도 이 ‘가짜기억 증후군’의 일종이다.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는 무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 이유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며 강고하게 구축된 ‘가짜 기억’의 성(城)을 삶의 뿌리로, 존재의 기반으로 여기는 ‘박사모’ 같은 이들의 존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가짜 기억’의 성에 들어가려 몸부림치더니, 어느 순간 그 성을 만드는 일에 부역하다 거짓의 성에 갇혀버려 이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들 존재 자체가 거짓으로 만들어진 성의 밑돌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다시 물음을 던져본다, 나 자신에게, 우리에게.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감히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의 기억, 연대의 기억, 투쟁의 기억, 나눔의 기억, 하나됨의 기억…’ 기억할 때, 기억을 공유하는 우리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이 글은 2017년 2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073 | 추천: 3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촛불집회에 맞서서 태극기를 들고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등장했다. 일당 받고 관제 데모한다는 세간의 소문이나 보도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참석한 이들도 제법 있는 것 같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거나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도 20% 정도는 된다니 말이다. 이른바 ‘태극기집회’가 가장 많이 내세우는 말이 ‘애국’이다. ‘박사모’도 대한민국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라며 박사모 회원 한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투신자살하자 애국시민들은 궐기하자며 등장한 선동적 구호 속에도 애국이 들어 있다. 특히 보수단체들 중심으로 애국 혹은 애국시민이라는 말이 툭 하면 튀어나온다. 나라를 사랑한다니,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꼭 한 가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더욱이 국가를 사랑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탄핵을 거부한다며 투신까지 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이유에서 또 다른 안타까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인 일인가. 국가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국가가 이루어지려면 국민, 영토, 주권이 있어야 한다. 특정 영토 내 주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을 때 이들을 종합해 국가라 한다. 이 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주권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대한민국헌법 1조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온 것일까. 이 지당한 헌법은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헌법은 민초들이 참여해 만든 게 아니다. 헌법을 만든 주체는 당시의 권력이다.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는 했겠으되, 법은 당시의 정치권력이 만들었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지면서 사회는 체계화하고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회가 안정될수록 보이지 않게 정당화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법이고 동시에 법을 만든 권력이다. 권력자가 한결같이 질서와 안정을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 제기되는 또 하나의 질문, 이런 권력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사진 출처 - 구글 국가의 성립사를 보면, 권력이 있기 전에 있었던 것이 폭력이다. 국가는 압도적 폭력이 다른 폭력을 이기고 그 폭력이 정당화되는 과정에서 성립되어 왔다. 그러면서 다른 폭력을 불법적인 것으로 배제하며 폭력을 독점해왔다. 대표적인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로 규정한 바 있다. 정치학계에 널리 알려진 국가 규정이다. 한 마디로 국가 이전에 권력이 있었고, 권력 이전에 폭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폭력이 행사될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이들이 그 폭력에 대해 묵인, 동의, 복종하면서 폭력이 정당해지고, 그 때부터 폭력은 권력으로 작동한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권력이란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협박만으로도 그 대상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권력은 폭력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들이 폭력의 가능성을 내면화하고 그에 동의하면서 성립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근대 국가의 형성에는 힘에의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 약한 힘이 강한 힘에 동의 또는 동화되면서 강한 힘에 의해 국가라는 것이 형성되어 왔다. 그 강한 힘이 권력이 되면, 그에 동의한 사람들 간 공유의식을 객관화해줄 법과 제도를 확정한 뒤, 그 법과 제도 안에 머무는 이를 애국자라며 칭송해왔다. 법을 어기면 매국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그 논리가 적용될수록 법이 정당해지고, 법이 정당해질수록 권력도 강화되는, 순환적 포획의 그물을 펼쳐온 것이다. 애국하면 할수록 견고해지는 것은 사실상 권력인 것이다. 물론 권력이 튼튼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 마치 ‘조폭’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들을 일정 조건 하에서 보호하듯이, 권력도 분명히 권력에 동의한 이들의 주권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민의 주권을 보호하지 못한 권력 때문에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권력이 튼튼해져야 백성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에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좀 더 근원적인 데 있다. 압도적인 힘에서 비롯된 권력은 속성상 언제나 하향적이다. 권력은 아래로부터의 상향적 요구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자신을 유지하고 남는 만큼만 아래를 돌아보고 보호하려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도 역설적이게도 그 잉여 권력의 작품이다. 이 권력을 은근히 국가와 동일시하면서 권력을 실제로 국민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제어해온 것이 권력이기도 하다. 애국이란 무엇인지. 국가를 사랑하는 것과 기존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같은 말인지 다시 질문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실체는 역시 사람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중요하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주권에 일방적인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물론 그조차 어느 정도 하향적 권력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결국 국민이 움직여야 할 도리 밖에 없다. 정치권력은 그렇게 하지 않기, 아니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국가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그 선언이 국민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되며 드러나는 동적인 과정에 가깝다. 애국의 진짜 대상은 기존의 권력이나 권력 집단이 아니라, 주권을 지닌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는 행위가 권력의 근간인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지속시키며, 주권을 그저 말뿐이게 만든다. 그것이 권력의 남용이다.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권력의 남용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실체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위로부터 주어진 권력을 그저 승인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아래로부터 존중하고 살리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국가는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과정이지, 기존의 강고한 권력 체계가 아니다. 사랑해야 할 것은 인간이지 권력 집단이나 정부 조직이 아니다. 이제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인간 개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아래로부터 목소리 하나하나를 모아 진행되는 지금의 탄핵 정국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남용해온 권력의 이기적 속성과 관습을 타파하고, 주권을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호기다. 사랑이라는 숭고한 행위의 대상은 정부 조직이 아니다. 친해져야 할 것은 권력 집단이 아니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이고, 참으로 인간다운 가치다. 권력을 사랑할 일이 아니고 사람을 사랑할 일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2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835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신영복 선생님이 꼭 1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성공회대학교장으로 열린 장례에는 8000명이 넘는 분들이 조문을 오셔서 선생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웅하였습니다. 차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살을 에던 1월 18일 많은 분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공회대학교 성당에서 영결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마지막 교정을 보셨던 서화집 <처음처럼> 개정판이 별세 직후인 지난 2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유분은 4월 3일 경남 밀양의 선산에 수목장으로 모셔졌고 이 자리에 표지석과 함께 진달래 숲이 조성되었습니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더불어숲을 결성했고 6월 16일 법인 허가를 받으면서 정식 출범하였습니다. (사)더불어숲은 신영복 선생님의 뜻을 널리 알리고 오래 기리고자 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준비하고 또 실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에 관련한 자료를 모으고, 또 선생님의 뜻을 담은 샘터 찬물 편지를 많은 분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소식지도 발간하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강연회를 열기도 합니다. 다양한 소모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예연습도 하고 또 한 번씩 밀양에 찾아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서로의 뜻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세대재단과 함께 신영복 선생님의 육성을 담은 소리 아카이브 작업을 위한 협약도 맺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신영복 선생님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선생님의 뜻을 오랫동안 널리 알리는 다양한 활동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독립적 공간을 마련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학교에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유업을 잇고자 신영복 선생 추모사업추진단이 결성되었습니다. 우선 선생님의 말과 글, 삶과 뜻을 젊은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신영복 함께 읽기’ 수업을 만들어 지난 학기에는 대학원 과정에 개설했고, 다음 학기에는 학부 과정에 개설할 예정입니다. 또 학교 뒷산에 선생님이 모셔진 밀양과 똑같은 모습으로 추모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또 (사)더불어숲과 구로구청, 서울시와 함께 성공회대학교에서 푸른수목원으로 연결되는 산책로에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작품들을 설치하면서 더불어숲길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신영복 선생 추모사업추진단은 내년이나 후년 학교에 새 건물이 지어지는 시점에 맞추어 적당한 자리를 확보해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뜻, 작품을 기억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교내에 마련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사)더불어숲 1주기를 맞아 몇 가지 의미있는 행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선생님이 남기신 글과 말, 대담을 묶은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그리고 <손잡고 더불어> 두 권이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또 선생님께서 생전에 바라시던 바대로 선생님의 서체 컴퓨터 폰트를 누구나 무료로 배포받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월 10일부터 19일까지 동산방화랑에서 선생님의 서화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15일에는 성공회대학교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한 가운데 1주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19일에는 추모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1년을 회고하면서 만약 선생님이 조금 더 사셔서 현재의 시국을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의 이 구절을 선생님은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십니다. 촛불 광장의 시민들이 끝내 먹히지 않은 씨과실을 심으면서 이 사회에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아마 선생님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눈을 사로 잡았던 환상과 거품을 말끔히 걷어내고, 앙상하게 노출된 뼈대를 직시하며, 새롭게 뿌리를 거름하여 희망의 씨앗을 일구는, 엽락(葉落)과 체로(體露), 분본(糞本)의 지혜를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또 힘 있는 쪽, 높은 쪽에서 좀 더 약한 쪽, 낮을 쪽을 향해 가는 하방연대(下方連帶)의 가치를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들로 하여금 서로 손잡고 더불어 숲을 향해 함께 가는 아름다운 동행을 당부하실 것 같습니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1월 1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265 | 추천: -1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시절인 2014년 6월 14일부터 2015년 1월 9일까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의 지시사항을 매일 매일 날짜별로 자세히 메모하였다. 유족들에 의하여 세상에 공개된 업무일지에는 김기춘의 직권남용 범죄가 낱낱이 드러나 있다. 업무일지는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공안통치의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되고 있다. 업무일지에 드러난 신유신 공안통치의 기획자 김기춘의 사고나 업무스타일은 어떤 걸까? 그는 국가정체성과 헌법가치, 체제수호를 위해 전사들이 싸우듯이 비타협적 자세와 강철 같은 의지로 대통령과 대한민국 보위를 위해 근위병, 호위무사로서 끝까지 전투력을 잃지 않도록 힘과 기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 노선을 제시하며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할 것을 주문한다. 이념대결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5. 16과 유신헌법에 대한 평가는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공통된 인식이 필요한 대상이다. 5. 16은 북한보다 가난한 대한민국이 반공의식마저 약화된 안보 위기상황에서, 또 초등학생도 시위에 나서 사회질서가 문란한 상황에서 애국심 가진 군인들이 구국의 일념에 일으킨 사건으로, 그 결과 대한민국은 경제성장과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신헌법은 월남 패방 직전 7.4 남북공동성명과 체제경쟁, 남북대결 속에서 카터 행정부의 미군철수와 북한의 헌법 개정에 맞서 국력결집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그에게는 전사적 자세로 이념대결 속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도록 집요하게 투쟁을 전개하는 반체제세력이 있다. 반체제세력에 대한 그의 태도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군으로 관념해야 하고 온정주의는 금물이다. 그가 보기에 반체제세력의 목록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의 도처에 깔려 있었고 그의 할 일은 태산 같았다. 내란음모 사건이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과 같이 헌법가치, 국가정체성 수호에 환호성을 질렀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석기의 선처를 호소하는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서한에 대한 반박도 필요했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을 반영하는 헌법교육 강화방안도 필요했다. 반체제세력의 집요함에 골치가 너무 아팠다. 보수의 약점은 집요함이 없는 것이다. 내심 반체제세력의 집요함이 부러웠다. 민주노총, 통합진보당은 차치하고서라도 쌀 관세화 유예 연장을 요구하며 쌀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단체, 법외노조 철회와 한국사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전교조, 청와대를 대상으로 한 언론의 문제보도 기사 하나 하나에 대응해야 했다. 언론의 청와대 문제보도는 청와대에 대한 신뢰와 권위를 추락시키는 허위왜곡보도였다. 비서실장 시절 내내 언론은 성가신 존재였다. 그가 모니터링하며 대응해야 할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만 갔다. 세월호 참사원인에 청와대 보고 및 그 과정의 혼선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는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일거리였다. 세월호 특별법은 좌익들의 국가기관 진입 욕구에서 비롯된 국난초래의 법이었다.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도 필요했고, 교육감의 좌파적 낭비 시정도 그의 일이었다. 대통령을 모독하는 그림을 그린 홍성담과 같은 사이비 예술가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교황방문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움직임에도 대비해야 했다. 반체제세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파지식인 결집, 우파시민단체와의 협력도 청와대의 업무가 되었다. 그가 쉴 새 없이 강조하였던 내부 보안의 생활화도 준수되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문건이 외부 언론사에 유출되는 국기문란의 보안유출사고까지 터져 그 수습에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했다. 사진 출처 - 민변 엎친데 덮친 격으로 탈북자 직파간첩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 정상적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했다. 그에게 체제수호의 3개 기둥은 국군장병, 주한미군, 국가보안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되는 일이 터진 것이다. 재발방지책이 필요했다. 국가적 행사 때마다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 있다는 멘트로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법관 성향에 따라 트집거리 주지 않도록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간첩 수사를 저해하는 형사법제를 개정하여 한국판 애국법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간첩 무죄를 밝힌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도 추진했다. 민변 변호사들이 무서워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진행하는 마을변호사도 민변이 악용할 우려가 들었다. 탈북자 홍강철씨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9월 6일자 업무일지에 “홍강철의 변심이 key - 방지 위한 접촉 법원 거부감과 제재”,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 있다는 멘트 필요 -> 국가적 행사 때”라는 메모가 있다. 업무일지에는 체제수호의 3개 기둥을 훈시한 그날(2014년 9월 10일)에 추석인공기 계양은 국보법 무력화 위한 교묘한 책동으로 강한 분노로 엄한 처벌을 지시하며 생존을 위협하는 적군으로 관념해야 하고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였다. 그가 업무일지에서 김영한 전 민정수석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처절하였다. 자식새끼 1년 가까이 병상에 있었지만 가보지도 못하고 미력하나마 대통령을 보필하였다. 그의 말로가 참으로 애처로우나, 희대의 독재 부역자에 대한 온정주의는 금물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1월 1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170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주 국정농단사태에 대한 국회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가 단연 돋보였다. 특히 주무부처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전혀 모른 듯이 말하였다. 그러나 정권의 실세들도 블랙리스트의 작성이나 운용이 불법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천만 다행이었다. 존재하는 블랙리스트를 대통령인들, 장관인들 어찌하겠는가! 무려 1만 여명에 육박하는 문화예술인 명단이 누구의 발상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구체화되고 확장되어 갔는지를 특검이 촘촘하게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아마 이러한 유형의 정권이 향후 10여년 정도를 더 집권하게 된다면 동독의 쉬타지 문서처럼 몇 백만의 시민이 요시찰대상자명부에 등재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인류역사에서 삐딱한 학자나 문화예술인들을 좋아하는 권력자는 없다. 권력자들은 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을 금지하거나 그 영향력을 깎아 내리려고 애를 쓴다. 블랙리스트나 금서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작품 경향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라는 지적인 수공예작업을 전제한다. 그런데 작품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시국선언이나 야당후보의 지지선언에 동참한 것만으로도 리스트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에서 권력집단이 통치의 열성에서 너무 불성실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명단을 인터넷에서 쓸어 담았으니 권력자들이 통치하기가 쉬운 세상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국방부의 불온도서 사건은 어떠했는가? 무자격의 국방당국이 제멋대로 휘둘러 인문사회도서를 불온도서로 지정하였음에도 헌법재판소는 이를 합헌이라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타락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작품이나 학술도서를 직접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정체불명의 리스트를 만들어 합법과 불법의 중간영역에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성향의 집단을 배제하는 것 같다. 더구나 처음부터 대놓고 배제하면 표가 날 것이고, 실상을 아는 당사자가 드잡이를 할 여지가 있으니 적당히 끼워주었다가 배제하는 수법을 취한 모양이다. 그러한 냉탕과 온탕의 방식이 비판적인 예술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데에 가장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실세들은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일관되게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블랙리스트의 작성 또는 운용을 정책 범죄(crime of policy)라고 생각한다. 물론 유신 정권은 한수산, 김지하, 남정현, 현기영 등 비판적인 작가들을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불러와 개처럼 두들겨 패는 등 적나라한 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이제는 작가를 더 이상 팰 수 없기 때문에 국가적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책 범죄는 정부가 일정한 사업 분야에서 재량을 갖고 있다는 명분 아래 신청자의 정치적 성향을 사업수행자격과 부당하게 결부시키는 결정이라고 보면 된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이러한 방침을 통해 볼 때 지난 10년 동안 운영된 모든 정부지원사업에서 예컨대, 정치적 현안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회과학자나 인문학자들의 신청사업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학술적 고위공직은 이미 정치적으로 특정한 성향을 보인 사람들에 의해 장악되었고 그 아래 다양한 평가단계들이 제대로 설계되어 온당하게 진행되었다고 믿기 어렵다. 정권교체 이후에 이러한 심사과정에 관여한 학자들과 그들의 평가진술에 대한 분석과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만적 학술활동과 과학적 사기를 통해서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하게 한 세력들에게 법적인 응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에 도처에서 날뛴 크고 작은 괴벨스들을 찾아내야 한다. 전국의 국립대학교 총장 임명에 정부가 멋대로 순위를 바꿔 임명하거나 심지어 수년 째 임명을 거부하는 일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권력의 실세들이 개입하였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여기서 블랙리스트의 본질과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블랙리스트의 작성은 권력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피아를 식별하는 것이라면, 블랙리스트는 그 식별의 결과물이다. 아마도 정치가 적과 동지의 구분에 입각한 투쟁이라고 한다면 모든 조직 또는 권력은 잠재적으로도 누가 벗이고 적인지를 가늠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문제는 현실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악의 무리로 상정하고 그에게서 시민으로서 향유해야할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할 수 없다는 점이다. 블랙리스트를 취업금지자명단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역사에서도 몇 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전두환 신군부는 80년대에 언론을 강제로 통폐합하고 비판적인 언론인들에게 재취업의 기업을 봉쇄하고자 언론인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유신시대 이래로 노조활동 관여자나 해직노동자들의 재취업을 막았던 노동자리스트도 기억해야 한다. 1990년 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은 국군보안사령부가 명부를 작성하여 정치인이나 운동권에 대한 사찰을 지속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한국에서 리스트는 취업을 방해하거나 정치인의 일상을 감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6.25전쟁 중에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이나 예비검속에 따른 민간인 학살도 명부가 그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총괄적인 명부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정치사회에는 다양한 위험원인에 대한 다양한 리스트가 존재해야 한다. 예컨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의심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는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심각한 범죄나 테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무능한 조직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일반적인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고 그러한 한도 안에서 정부와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이들을 블랙리스트에 기재하는 것은 심각한 불법이다. 블랙리스트는 적법한 권리행사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의 작성만으로도 범죄에 해당한다. 이러한 명단에 입각하여 지난 몇 년간 문화예술사업을 설계하고 운영했다면 국운쇠락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보아야 한다. 블랙리스트의 작성 및 운용과정에 관여한 모든 공직자들을 상대로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문화예술인들이 집단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차제에 국민의 이름으로 불법적인 권력농단을 더 이상 국가행위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건에 연루된 공직자, 대통령에서 문체부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모든 재산을 책임재산으로 삼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공직자에게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자행하려면 자신의 직위와 재산까지도 모두 걸어야 한다는 점을 학습시킬 최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1월 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93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대학 같은 과 동기들과 차기 대선을 주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포함 4명밖에 안 되니까 즉석 설문조사를 했다. 2명이 안희정 지지자였고, 다른 2명은 각각 박원순과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했다. 유유상종일 것이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난 뒤 거의 28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도 아니었다. 특히 외국계 기업 임원인 한 친구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유명 인사들과 교유관계가 꽤 두터운 데도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해서 의외였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여권 주자 이름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문재인 이름이 나오지 않은 걸까. 조중동이 벌써 대통령 된 것처럼 행세하지 말라고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 유력 주자인데. 구중궁궐의 엽기적인 뉴스가 줄을 이을 때만 해도 문재인은 지지율 1위였다. 하지만 여론조사 그래프를 보면 최고조일 때조차 문재인 지지율이 20~25% 사이 박스권에 갇힌 형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반기문이 대선 출마를 사실상 선언하자마자 바로 뒤집혀 버릴 만큼 허약한 지지율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노무현의 친구라는 프리미엄과 청와대 국정 경험, 학생운동과 인권 변호사라는 감동적인 경력, 군 미필자들이 득실거리는 정치권에서 특전사 출신이라는 비교우위와 믿음직한 외모라는 상품성까지 갖췄으며, 각종 미담의 주인공인 문재인의 인기는 왜 오르지 않는 걸까. 상당수 야당 지지자들이 문재인의 비밀을 알아버린 게 아닐까. 문재인에 대한 내 결론은 ‘훌륭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다’이다. 정치인 문재인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도자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다. 김대중은 지도자의 덕목을 국민보다 반 발 앞서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의 어법을 빌리면 노무현은 국민보다 한 발 앞서간 사람이다. 방향은 대체로 옳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문재인은 국민보다 한 발 뒤에 서 있는 느낌이다. 늘 주저하며 눈치를 본다. 특유의 우유부단함이 이번 박근혜 퇴진 촛불 국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반 발도 아니고 한 발 뒤처져 있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다. 앞장서서 퇴진과 탄핵을 외친 이재명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중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정치인에게 열광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눈치 보는 정치인은 인기가 없다. 안철수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도 이와 같다. 문재인이 종종 과격해질 때도 있다. 이럴 땐 그가 완급조절이 잘 안되는, 말을 정제해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인데, 말을 잘 못하니 어려운 일이 많다. (가끔 답답했지만) 무릎을 치게 하는 혜안을 보여줬던 김대중이나 (사고도 많이 쳤지만) 속 시원하게 상식을 설파했던 노무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사람들이 지금 머리가 아픈 것은 바로 문재인이 여전히 야권 지지율 1위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1위의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박근혜의 살신성인으로 어느 때보다도 야권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는데도 그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선 투표를 도입한다고 해결될 성질은 아닌 것 같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야권 인사들은 반기문을 ‘기름장어’라고 놀리지만 나는 그가 간단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때로 위대한 능력으로 스스로를 감동하게 하지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속물근성이 강하다. 위인전까지 나와 있는 유명인사의 선거 경쟁력은 만만히 볼 게 아니다. 12월27일 창당을 선언한 개혁보수신당이 반기문을 영입해서 유승민과 경선을 치를 경우 그 승자의 본선 경쟁력은 막강할 것이다. 콘텐츠가 부족한 반기문으로서는 일찍 열린 대선판이 반가울 것이다. 검증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이쪽으로 붙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승자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설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잘 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그의 발언을 보면 박근혜의 안티 테제로서 자신을 세우려고 할 뿐, 이 나라를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방향은 제시하지 않는다. 특히 재벌 개혁이나 서민 경제 등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메시지가 잘 들리지 않는다. 2012년보다 조금이라도 진전된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좋게 보려고 해도 노무현 정부 때 이미 확인됐듯이 친재벌적 성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앞선다. 박근혜 옆에 문고리 삼인방이 있었다면 문재인 옆엔 삼철이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친문세력의 핵심인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문재인이 벌써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재명이 반문연대를 제안했다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모양이다. 안희정조차 이재명을 비판했다. 나는 안희정의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내부 경쟁이라고 해도 다른 점을 드러내고 토론하는 게 정치다. 그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가 확인되는 것이다. 같은 편이라고 비판하지 말자는 것은 새누리당식 전체주의다. 새누리당이 쪼개지면서 정치적 역동성이 여당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선거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쪽이 우세하다. 여론이 관심을 가지고 따라가기 때문이다. 부자 몸조심하다가 막판에 되치기당한 힐러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노무현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문재인은 정치에 별 뜻이 없었다. 문재인 스스로도 자신이 정치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대선에 나서는 과정도 그렇다. 권력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었다기보다는 노무현 지지 세력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떠밀려 나왔다. 그런데 대선에서 떨어지고 나서부터 사람이 좀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권력의지가 강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을 위한 권력의지인지 잘 모르겠다. 누가 봐도 지금은 야권이 유리한 최고의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기각하지 않는 한) 앞으로 야권은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재인 지지율 역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이럴 때 ‘훌륭한 사람’ 문재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권교체를 위한 불쏘시개가 되라고 하면 무리한 주장일까. 지난 총선 당시 밝힌 정계 은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승적인 관점에서 2선 후퇴를 함으로써 가능성을 품고 있는 다른 후보들에게 양보하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도 성공한 대통령을 한번 가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2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876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교를 다니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일까? 최근에 “고전이 건네는 말 5 ”을 읽고 나서 학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이반 일리치(오스트리아 철학자, 신학자)는 “학교는 사람들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르는 것만으로 뭔가를 배운 것처럼 여기게 한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학교는 학교의 교육적 형식에 불과한 것을 마치 배움 그 자체인 것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을 배웠는지,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학교에 다닌다는 것, 학교의 교육과정을 잘 따르는 것, 학교가 주는 졸업장을 얻는 것이 중요한 현상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학기말 시험과 학생생활기록까지 끝난 11월~2월의 교실 풍경은 3월 학기 초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다.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질서 있었던 모습에서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결정된 후에는 학생들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학생 중에 일부는 어떤 이유로든 학교를 나오지 않고 학원과 집을 오가며 고등학교에서 배울 선행 학습을 하고, 학교를 나와도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수업을 하려는 일부 학생과 교사를 방해하기도 하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교사의 훈육에 반항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게 행동한다. 졸업장을 갖게 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돌변한 학생들에게 준비되지 못한 교사들은 심한 자괴감을 느껴 학생들을 방조하거나 심하면 교직을 떠나기도 한다. 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모두에게 주었지만,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대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한 학교를 지켜보고 있어야만 할까? 이반 일리치의 “배운다는 것”은 수업이라는 형식에 맞추는 일도, 시험점수나 학력을 따내는 일도 아니었다. 배운다는 것은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 알고 익혀서 자신의 쓰임에 따라 배운 바를 활용하고 삶의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은 그런 자세를 길러주는 것이고 이러한 배움이 없는 학교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학교만이 유일한 배움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가정, 공동체, 지역사회 모두가 배움의 공간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자신의 힘으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율적인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배우는 공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이 되길, 수유너머 지음 -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2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8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