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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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선을 앞두고 정파 간 여론전이 치열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민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대중설득의 경쟁에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미디어의 보도는 의도적이든 결과론적이든 그때그때 특정 정파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정파는 매일 매일 미디어의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거꾸로 말하면 선거 국면이야말로 미디어가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대중의 주목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흔히 미디어들이 후보자들의 다양한 정책이나 국정 운영 방향 같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추문과 마타도어, 그리고 여론 조사 수치 같은 흥미 거리 보도에 열을 올린다고 비판받는 것은 그것이 대중의 관심을 더 많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흥미 위주의 선거 보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게 여론조사다. 선거철이 되면 거의 매일 여론조사를 통한 지지율 추이가 보도된다. 누가 1,2위를 달리고 있네, 유력 후보자들 간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네 벌어졌네, 지지율 격차가 줄면서 양강 구도가 형성됐네, 같은 보도가 매일 매일 지면을 장식하고 가장 핫한 뉴스로 취급받는다. 이런 보도가 마치 경마장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말들을 좇는 경마 중계와 비슷하다 하여 흔히 경마식 저널리즘(horse race journalism)이라 부른다. 이런 경마식 보도가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단지 흥미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의 기반이 허약하고 인물 중심 정치 문화의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는 특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여론조사가 세 가지의 전제를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이 의견을 갖고 있다, 둘째, 모든 의견이 똑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셋째, 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졌다, 등이다. 그런데 이런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여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부르디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여론조사의 타당성을 의심할 여지는 적지 않다. 이미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나 영국의 EU 탈퇴 투표, 거기에 한국 총선 결과까지 여론조사의 허구성을 증명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여론조사는 전체 모집단의 일부를 뽑아 전체 의견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표본을 뽑는 방법이나 질문을 던지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진 여론조사만 보아도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가 조사 기관에 따라 많게는 10%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집 전화와 모바일 조사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따라 조사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 어떤 방법이 가장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나 인정할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언론사나 조사 기관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여론조사 결과를 그에 맞게 만들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연히 미디어가 특정 후보를 띄우기 위해 여론조사를 이용하거나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 해석할 수도 있다. 미디어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특정 후보를 암묵적으로 부각시키는 일도 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흥행을 위해 누군가를 부각시켜 의도적인 경합 국면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후보 간의 격차가 크고 결과가 빤히 보인다면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흥행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입장에서 여론조사는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보도 상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여론조사 수치에 일희일비하면서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꼭 현실의 여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것, 얼마든지 현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여론조사 수치를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다. 여론조사 수치 따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투표하는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4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891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박근혜 탄핵과 구속 이후 장엄한 민중 승리의 광장은 바야흐로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적 과제의 청산의 길로 쉼 없이 나아가고 있다. 그 성과로 조기대선의 국면에서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명백해지고 있다. 더욱이 극우보수 세력들은 분열과 자중지란에 빠져 세력이 나날이 약화되고 있다. 극우보수세력이 우리사회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고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장의 힘으로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사드배치 강행이고, 또 하나는 종북몰이, 북풍, 간첩조작이 끊임없이 시도되는 현실이다. 박근혜를 몰락케 한 광장의 힘은 박근혜 정권이 미국을 추종하며 함께 공모하여 북의 위협을 빌미로 강행하고 있는 사드배치 강행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조기대선의 국면에서 차기 정권에서 사드배치결정의 원점 재검토를 요청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사드배치 강행 알박기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너무나 모욕적이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자존심을 짓밟는 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정권교체를 자임하는 당선 가능한 대선후보들 가운데 이에 분노하며 사드배치 철회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대와 동족대결로 부패기득권을 유지해온 분단적폐세력을 대변하는 극우보수세력의 후보들이 사드배치 문제와 트럼프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제 살길을 찾은 양 역전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금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 트럼프발 전쟁 위기의 강풍에 정면으로 맞서 사드배치에 반대하며 북미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며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관계 개선으로 위기 국면을 돌파하자고 호소하는 상식적 발언을 하는 후보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분단적대 구조의 청산을 우리사회 적폐 중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차대한 해결과제로 삼아 광장의 힘을 결집시키는 그런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후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후보가 생겨야 한국사회의 발전을 전망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길진대 그런 후보는 종북몰이 당하는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한국사회에서 정권교체를 외치는 그 누구도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 극우보수세력들이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정권교체 병에 걸린 그 누구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자각된 힘으로 우리 사회에서 종북몰이(북풍, 간첩조작)를 청산해야 한다. 종북몰이가 사라지는 좋은 세상을 우리 모두 함께 추구하기 위해서도 종북몰이가 횡행하는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에 기반하여 종북몰이를 몰아내야 사대 극우보수세력들을 완전히 우리사회에서 퇴장시킬 수 있다. 종북몰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자각과 연대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악마와도 같은 메카시즘에 저항하지 않은 채 한국사회의 정상적 발전은 요원하다. 메카시즘에 저항하기 어려운 분단적대의 두터운 장벽 안에 우리는 갇혀있다. 자유를 잃은 새장의 새와 같은 우리들의 처지를 자각하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들의 자유를 위하여 종북몰이에 맞서 연대하고, 나아가 종북몰이 척결을 위해 연대하여 싸워야 한다. 사진 출처 - 시사인 현재의 시점에서도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종북몰이 체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자각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신유신 종북몰이 정권의 비참한 말로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의 광장에서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우리사회의 반성과 재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광장에서도 박근혜, 김기춘이 종북몰이 공작정치를 통해 수호하고자 했던 체제에 대한 극복의 과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김기춘이 지키고자 한 체제는 무엇인가. 바로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에 의해 수호되는 체제이다. 반미친북을 절대적으로 금기시하여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분단적대구조를 영구화하는 것이다. 종북몰이는 친미사대반북적대입장의 극우보수세력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그들에게 저항하는 자주평화통일세력을 비롯하여 그들의 낡은 메카시즘에 기반한 기득권체제 수호에 방해가 되는 누구든지 악마화 된 북과 연결하여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탄압하는 것이다. 종북몰이 척결을 위해서는 종북몰이로 유지되는 극우보수세력의 기득권 체제의 실체를 자각한 바탕 위에서 연대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어 종북몰이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종북몰이 공세에 주눅이 들어 이에 맞서지 않고 회피하거나 주저하며 자기합리화로 종북몰이의 표적이 된 희생양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종북몰이 체제를 강화시켜 우리들 자신의 사고와 표현의 자유를 가두게 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자각이 절실하다. 종북몰이를 산생시킨 분단적대구조의 청산을 위해 북한을 악마화하거나 기괴화하는 일체의 시도에 반대하여야 한다. 북한은 같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평화통일의 상대방으로 존중하고 화해하며 이해하고 신뢰를 증진해 나가야 할 동반자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대결과 비방, 불신의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우리사회를 종북몰이 체제에 가두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자각이 절실하다. 종북몰이 척결 그리고 종북몰이를 가능케 하는 분단적대구조의 청산은 우리사회의 근본과제이다. 광장에 모인 우리 모두의 연대의 힘으로 이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그 어떠한 과제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광장은 스스로의 자각된 힘을 키우며 그 힘을 믿고 연대할 때 한국사회는 적폐청산의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다. 사대와 동족대결을 주창하거나 종북몰이의 공포로 겁박당한 나머지 분단적폐세력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는 그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현실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4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950 | 추천: 0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동백꽃지다>는 강요배 화백의 4.3사건 화집(畫集) 이름이다. 나는 지난 주말에 제주 관덕정(觀德亭)에서 동백꽃 흩뿌리는 굿의 장면을 보았다. 관덕정은 제주목사가 군사들을 훈련시키던 곳에 세워진 정자로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제주도의 역사공간으로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그날 관덕정에서는 오전부터 해원굿이 펼쳐졌고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해원굿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사망한 여섯 분의 혼령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분의 작은 아버지(당시 15세 소년이었다)도 그 때 사망하였다. 관덕정은 이래저래 이재수의 난부터 이덕구의 시신 전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한을 담고 있다. 동백꽃이 흩부려져 있는 제주4.3해원굿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제주4.3기념사업의 일환으로서 조성된 제주평화공원에는 제주4.3사건의 맥락을 촘촘하게 엮은 역사의 동굴이 있다. 그곳을 지나노라면 늘 감정의 혼란과 도발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1948년 4월 3일에 공산주의자들의 무장봉기와 지서습격, 경찰살상이 사건의 발단이고 정부의 진압은 당연한 것이며 그 와중에 다수 민간인의 사망은 불상사였다는 식으로 강변해왔다. 그러나 2000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4.3위원회가 공식화한 4.3사건은 이와 달랐다. 사건의 발단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원의 무장봉기가 아니다. 이미 1년 전 1947년 3.1절 행사에서 군정청의 기마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단이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민 수 만 명이 3월 10일 총파업에 동참하였으며, 이에 군정청은 예비검속을 단행하였고 육지에서 응원경찰대를 파견하였고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을 투입하여 1948년 4월 3일 전까지 도민 2천 500여명을 검거하였다. 그 사이에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민 3인을 고문치사케 하였으며 그중에는 중학생도 끼어있었다. 친일경찰을 앞세워 무단통치를 지속하고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의도가 노골화되는 시점에 이러한 만행에 화가 난 의혈청년들이 사태를 좌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이다. 사진 출처 - 제주4.3위원회백서 무장봉기 이후에는 서로간의 인명손실은 불가피하였고, 이에 국방경비대 김익렬 연대장과 김달삼 무장대장 간에 4월 28일 평화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평화는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방화사건의 핵심인물은 대동청년단 소속 우익이었는데 군정청과 언론은 좌익이 방화와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5월 5일에 제주도에서 군정장관 딘 소장을 포함하여 ‘9인 최고수뇌회의’라는 일종의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조병옥과 김익렬의 유명한 육탄전이 벌어졌다. 5월 6일 온건파 김익렬은 연대장에서 해직되고 박진경 대령이 그 자리에 왔다. 미국은 이미 김익렬의 평화협상과 유화정책을 완전히 배격하고 강경진압을 기도하였다. 가을부터 해안선에서 5km떨어진 중간산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기획하고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한라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다. 9인 최고수뇌회의에 참석한 인사들 사진 출처 - 구글 미국은 당시 소련점령지역인 북한에서는 평화가 유지되는데, 미국이 점령한 남한에서는 사회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련당국의 비판에 자극받아 제주4.3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규정하고 강경진압을 단행한 것이다. 당시에 미군이 학살 작전에 직접 관여한 예를 찾기는 어렵다. 이미 미국의 충실한 하수인들(친일경찰, 서북청년단, 보수우익)이 존재했기 때문에 직접 손에 화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미군 장교들이 제주4.3사건의 전개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군사적 자문을 해준 사진들과 보고서들이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 발견되었으며, 그중에는 북한과의 협력을 감시하기 위해서 제주도를 봉쇄한 미구축함 크레이그호 사진도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 모든 정보들을 담고 있는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볼 수 있다. 4.3사건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이 집중적으로 자행되던 48년 겨울부터 49년 봄 사이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작전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4.3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한반도에서 현재까지 미군에게 군사작전권이 없는 시기는 1949년부터 1950년 7월 사이 1년 남짓한 기간뿐이다). 크레이그호의 모습. 사진 출처 - 구글 뉘른베르크 재판과 극동군사재판을 통해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를 처벌하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를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4.3학살에 대한 미국의 국제법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의 책임을 어떻게 추궁할 수 있을까?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악명 높은 미라이학살(1968년 민간인 370여명에서 500여명 정도가 학살당했다)에 대해서도, 한국전쟁중 충북 영동의 노근리학살(300여명 정도의 피난민 학살)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규약에 가입하였지만 미군의 국제형사재판소규약 위반범죄(침략범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제노사이드)의 기소에 대해서는 미국과 면제협정을 체결하였다. 미래에 자행될 미군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한국정부가 과거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다. 최근에 미국책임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판결이 하나 있다. 한국전쟁 중 미군이 포항해변의 피난민에게 포격을 가해 살상한 사건에 대한 2016년 국가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은 미군의 행위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책임이 없다는 아주 명쾌하지만 실로 이상한 판결을 내렸다. 동맹국인 미국의 행위를 한국을 위한 행위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한국정부의 책임으로 인정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위안부피해자 및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 한국정부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협상을 펼치지 않은 것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시사 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논지를 그대로 활용하면 한국인에 대한 미군 범죄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외교적 협상을 개시하지 않는 한국정부의 부작위 및 면제협정도 똑같이 위헌적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다음 정권은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지 자못 궁금하다. 누구나 알 것이다. 지난 정권의 몰락의 10대 원인중 하나가 한일간의 그릇된 위안부 합의였다는 점을. 국제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을 상대로 어떻게 법의 세계로 인도할 것인지 기대와 걱정이 앞선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제주도민들도 식민주의적 학살의 집단적 피해자였다. 제주4.3평화공원을 걷다가 국제법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 평화공원의 각명비와 위령비 옆에 미국이 4.3대학살을 지휘하고 관여한 데에 책임을 인정하는 진지한 미국의 사죄비가 4.3사건의 70주년이 되는 2018년에는 세워지기를 바란다. 소녀상을 세우듯이 우리는 학살이 자행된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학살의 주체들을 밝히는 비석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4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083 | 추천: 0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고전에 대한 대개의 해석이 그러하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평가도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부도덕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악마의 서(書)라 낙인을 찍고, 다른 쪽에서는 비정한 현실세계의 실상을 폭로한 고전이라고 상찬한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사악한 버전(version)으로 한 권, 숭고한 버전으로 한 권해서 따로따로 두 권의 『군주론』을 쓴 건 아니다. 똑같은 내용으로 된 『군주론』을 읽고서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군주론』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적 흥미를 자아낸다. 마키아벨리는 왜 『군주론』을 썼고, 거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걸까?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전언(傳言)은 무엇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불타오르게 한 전언은 뭐였을까? 그런 상반된 관점을 ‘지금 여기’에서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서 이런 문제들을 상론할 생각은 없다. 그저 서생의 입장에서 『군주론』에 기대어 지난 세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들이 보여준 행태를 잠시 생각해 보려 한다. 제목 때문에 『군주론』은 마치 한 개인으로서의 군주를 다루고 있는 듯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사적 개인’이 아니라 ‘공적 인격체’로 바라본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즘의 이해에 중요하다. 『군주론』이 마치 ‘어떻게 독재를 할 것이며 그런 폭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지침서인양 착각하는 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을 들여도 착각으로는 결코 사실의 탑이 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와 ‘공동체로서 국가’의 이익 일치를 의심하지 않지만, 이런 그의 가정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 『군주론』 집필이후 500년이 더 지난 역사 자체가 <인격체로서의 군주>와 <‘국민’국가>는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즉 봉건군주제가 아니라 민주공화제 하에서는 대통령이라 불리건 수상이라 불리건 정권(정부)이 곧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하나의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군주(현대의 대통령)=국가>라고 믿는 몰지각한 일부가 없진 않다. “궁궐에서 쫓겨나~”, “사약”, “마마” 따위의 표현은 그들의 시대착오적 망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힘주어 말하려했던 것은 군주란 자기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폭군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추구하는 정치적 행위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런 전제조건이 지켜질 때에만 군주의 행위는 사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라도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 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존립이라는 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의 장이 정치이므로, 거기에서는 ‘윤리적 선’이 자동적으로 ‘공적인 덕’으로 전환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기의 선함이 결과의 선함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즉 개인적으로 선한 의도가 반드시 훌륭한 공적 성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마키아벨리즘이 빚어졌다. 우리가 『군주론』에 나타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공공의 이익(마키아벨리 당대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통일된 국가의 건설과 유지)을 위해 정치라는 공적 영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즘이란 국가의 공적-보편적 목적이 아니라 군주 개인의 사적 이익이나 특정 파당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권력자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태는, (김욱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사이비마키아벨리즘”일 뿐이다. 또한 그것은 사적 개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주의주장도 아니다. 마키아벨리즘은 한 마디로, 나쁜 수단을 써서라도 좋은 목적을 이루어야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눈에 비친 인간은 구원을 바라는 경견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존재가 아니라 세속적 업적을 중시하면서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였다. 군주의 정치행위도 이런 이해 타산적 인간들의 세속적 현실세계에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군주란 그런 상황에 걸맞게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은, 좋은 수단을 써서 좋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쁜 수단을 쓰는 것은 나쁘다고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수단을 통해서나마 좋은 목적을 이루었느냐를 따지는 게 더 합리적”(고명섭)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마키아벨리는 악한 수단을 써야할 경우조차 그것을 잘 계산해서 통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악하고 잔인한 짓을 남발한다면 군주는 두려움의 대상에서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므로, 즉 조롱꺼리가 될 것이므로 국민의 명예와 재산을 함부로 침탈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마키아벨리즘을 이렇게 이해하면, 박근혜는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다. 그와 그의 수하이길 자처한 자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위들에서는 대한민국의 공공이익과 주권재민의 원리를 수호한다는 목적의 정당성도 찾아볼 수가 없고, 잔인한 조치조차도 초래할 결과를 합리적으로 타산해서 써야한다는 계산합리성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박근혜와 그의 일당들은 한낱 사이비마키아벨리스트였을 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나저나 박근혜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보긴 했을까? 아마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여느 대통령들이 으레 공개했던 휴가 독서목록조차 공개한 적이 없었다. 독서 목록이 알려지면 해당 출판사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다른 출판사가 소외받을 수 있어서라고 했지만, 책을 읽지 않아서 발표할 게 아예 없었을 것이다. “그의 서재에는 제대로 된 책이 없었다”는 증언은 과장이 아니며 그가 책읽기를 기피하고 드라마를 즐겨 봤다는 얘기는 낭설이 아니었다. 물론, 박근혜가 『군주론』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는 없다. 소설가 이외수의 말처럼 “인간을 제외한 지상의 어떤 동물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전을 읽지 않았다고 꼭 비난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고전은 누구나 칭송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틀어 말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국정을 담당했을 당시, 헌법을 도외시하고 주권재민의 원리를 몰랐던 (척하는) 것은 결코 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다. 공인(公人)에게 그것은 비난과 처벌을 받아 마땅한 죄이다. 사인(私人)이 된 그에게 이제 곧 주어질 긴 영어(囹圄)의 시간에 고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헌법은 읽어보았으면 싶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전직(前職)놀음은 고사하고 인간노릇 하기도 어렵고 무망(無望)할 것이므로!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2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818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안고 가신다고 했다. 그 모든 결과를 안고 가신다고.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한때 지도자였던 그대를 파면한 이후 꼬박 57시간 만에 대리인의 입을 통해 내뱉은 네 줄짜리 일성(一聲). 거기에 그 말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외쳤던 광화문의 오열을 베낀 듯한 마지막 구절에 탄핵 불복이라며 삿대질을 했지만 나는 그대의 세 번째 구절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그 말에 고마웠다. 정말로 안고 가시겠다니. 국가와 결혼했던 몸 이제 국가와 이별했으니 얼마나 챙겨갈 것이 많겠는가. 남김없이 안고가시라. 안고가기가 무거우면 그대에게 버림받은 폐지 줍는 노인의 카트라도 빌려줄 터이니 거기에 차곡차곡 실어 끌고 가시라. 시꺼먼 안경에 빨간 모자 쓰고 정작 군인들은 입지도 않는 군복을 입고 가끔은 야구방망이도 휘두르는 무뢰배들의 예의 먼저 싣고 가시라.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 국가의 상징에 대한 모욕도 모자라 탄핵 재판정에서 조차 국가기관을 조롱했던 그대의 궤변자들도 끌고 가시라. 사진 출처 - MBC “헌재로 돌격”, “국회 때려부셔”, “빨갱이놈 죽여” 따위의 험한 구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외쳐댔던 카랑카랑한 여인네의 목소리도 끌고 가시라. 그리고 그날 평생 태극기를 그대의 분신으로 여겼던 그 분, 그대를 구하러 가는 길 결국 그 길에서 일어서지 못한 이름 모를 세분의 영혼도 안고 가시라. 비록 그대의 부모를 조국으로 여겼고 성조기 미국을 어버이로 모셨으나 그분들 또한 어느 귀한 자식의 어버이셨으니 그분들의 영혼을 안고 그대의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로 여기며 평생을 사시라. 그대의 목적지가 굳이 역사의 뒤안길은 아니어도 좋다. “정치는 자원의 권위적 배분” 이라고 했던 데이비드 이스턴의 말을 그대의 입을 통해 듣지는 못했으나 그대의 정치를 통해 뼈저리게 학습했다. 배분은 없고 오직 권위만을 무기로 통치행위에만 전념했던 그대는 “그 어떤 이득도 채운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이득을 채우지 못한 이들은 나로 상징되는 민중들이었다. 나의 곳간이 무너져 고작 몇 푼 남은 통장 잔액을 허망하게 바라볼 때 그대의 곳간은 그 비싼 말들이 널뛰는 정경유착의 비열한 빛깔로 채워졌고, 이유 없이 낙방한 대학 재수생들의 한숨은 돈도 실력이라는 그대가 보살피던 어린아이의 비아냥으로 돌아왔다. 그대 아비의 친일행적을 감추기 위해 역사교과서까지 바꾸려 했으나 건국훈장 애족장 집안의 후손인 나는 내 할아비가 겪을 모욕감을 감출 수 없어 쓴 소주를 들이켰다.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대는 그대가 수족처럼 부리던 어떤 여인의 잘못이었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결국 그대가 저지른 그 모든 일들을 다 안고 가겠다 했으니 꼭 그리 하시라. 그리고 이제 그대의 최종 목적지는 반드시 역사의 뒤안길이 되어야 한다. “혁명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 아니라 낡은 삶의 마침표이며 먼 길을 위해 지불한 비싼 가격이다- 베르자예프” 그대의 삶과 정반대에 있는 나는 그대의 태생과 그대의 권위적 삶과 그대를 교주로 모시고 있는 맹목적 신도들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먼 여행에 이미 비싼 여비를 지불해 왔다. 비싼 여비의 실체는 그대가 손에 쥐고 흔들며 살아온 지폐뭉치의 힘에 대항했던 내 청춘이다. 몇몇 편중된 자들의 소유가 된 지폐뭉치로 인해 소외되고 핍박받고 때론 노예로 전락했었던 그러나 낡은 삶의 마침표를 갈구했던 민중들의 삶이다. 국가와 이혼했으니 더 이상 그대는 국가를 들먹이지 마시라. 나는 민중이 되어 스스로 국가의 일원임을 자처해야겠다. 나 따위의 보잘것없는 청춘조차 주인으로 품어주는 국가를 기다리며 더 먼 여행을 준비해야한다.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 이다” 그대의 사전에는 없었던 이 말을 늘 반복하며.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2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84 | 추천: 0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자를 하면 뭐가 좋을까.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온갖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기자들은 초짜일 때부터 어디가든 기죽지 말라는 말을 선배들한테 자주 듣는다. 기가 죽어 움츠러들면 힘있는 사람, 돈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올 수가 없다. 이런 특징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자란 족속들은 어딘가 건방지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다소 선입견이 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보고 듣는 것도 많으니 할 말도 많고, 불편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버릇은 충분히 예의 없게 비칠 수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서 기자들을 많이 접해본 한 지인은 “기자들은 수백명 사이에 가만히 섞여 있어도 금방 티가 난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기자들은 어딜 가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어서”였다.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어찌 보면 꽤나 무서운 권력이다. 흔히 하는 얘기로 언론은 국민들을 대신해 질문한다. 다시 말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질문할 권리를 위임받았다. 이는 곧 언론에게는 질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특검에서 말마다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이명박근혜 9년을 거치며 나라꼴이 망가진 게 어디 한두 개이겠느냐마는 언론의 '금도'가 무너진 것은 무엇보다 뼈아프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질문할 권리'를 포기하고 '질문할 의무'를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는 재임 4년 동안 기자회견을 한 게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데 그나마 미리 정해놓은 각본에 따라 묻고 답했다. 이건 기자회견이 아니라 그저 '쇼'일 뿐이다. 그 쇼에 기자들 스스로 동참했다는 게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쪽팔릴 따름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대통합을 위해 이명박근혜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발본색원해서 응징하는 미래지향적인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질문할 권리와 질문할 의무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각오를 가장 먼저 새겨야 할 사람은 물론 필자라는 점을 밝힌다.) 이제 본격적인 대통령선거가 시작됐다. 각종 토론회가 열린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기자라는 명패를 달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온갖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문하는 사람이 아무거나 막 던져도 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가 다 부끄러운 질문이 쏟아진다. 관훈클럽에서 열린 안희정 초청 토론회에서 어떤 논설위원이 안희정에게 ‘대통령 되면 미국부터 갈거냐 중국부터 갈거냐’는 질문을 했다는 얘길 들었다. 하다못해 우리집 꼬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질문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했다. 논설위원 정도 되면 언론사 경력이 20년 안팎은 될 텐데 그런 분이 안희정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번뇌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대통령 후보 문재인은 ‘미국에게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얘길 했다. 한미동맹 훼손 우려라느니,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느니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은 부모님이 시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는 게 효자라고 생각하는걸까? 친구 사이라면 새벽 두시에 술먹으러 고속버스 타고 오라고 해도 가야 한다는 건가? 미국에게 NO라고 했다가 큰일나는 사이라면 그게 갑을관계라는 생각이 안드는게 더 신기하다. 최근 사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국과 중국이 얽혀 있는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이럴 때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느니 ‘중국의 협박에 위축되면 안된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이런 주장이 언론에서 그대로 확대 재생산된다. 필자가 보기엔 언론이 질문을 하지 않거나 틀린 질문만 던지고 있다. 왜 지금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지 질문은 없고 “북핵이 없으면 사드도 없다”며 미국이 들려주는 얘기만 진실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왜 북한보다도 중국이 더 반발하는지 그 까닭을 먼저 살펴보고, 그 이유가 타당한지 검토해보는 절차는 생략한 채 “치졸한 보복”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찾은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잖아.” 이우진은 훌륭한 언론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언론이라는 걸 안다. 질문 잘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이요 실력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의무다. 달을 가리킨다고 달만 쳐다보는 바보는 되지 말자.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76 | 추천: 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어느 시인 토요일 오전 11시쯤, 전화가 왔습니다. 시를 쓰는 친구였습니다. “오늘… 나와야지?” 오늘은 3월 4일, 19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집안 일 때문에 참석을 못 할 것이라는 저의 말에 그는 조금 아쉬워하는 듯했습니다. “할 수 없지, 뭐….”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지난 18차 촛불집회가 이어져오는 동안 한 번도 저에게 참석 여부를 묻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 조금 특별한 전화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혹시, 어느 친박단체가 주장한 ‘세계 역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였다는 지난 삼일절 ‘탄국기 집회’ 직후라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특별히 오늘 집회 참석하느냐고 묻는 거야?” 그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집회잖아.”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탄핵 인용 전 마지막이 될 촛불집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는 저 역시 당연히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숨쉬기도 미안한 4월’을 해마다 겪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거의 세 시간 거리쯤 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 번도 빠짐없이 토요일 오후 두 시 반쯤이면 어김없이 광화문광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이 마지막 집회가 될 것이니 그동안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부끄러움 많은 소년처럼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에 범박한 저로서는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2. 어떤 수필가 지난 1월 말경,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시중에 절판된 그분의 저서와 인터뷰 모음집을 헌책방에서 구매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정회원입니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자서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여섯 권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출판업자임에도 저는 아쉽게도 그분의 저서 중, 단 한 권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심경 고백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 마음의 여정>(1995)이라는 책입니다. 표지에 붙어 있는 띠지에는 ‘대통령딸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 그리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여정-순리대로 나타나는 사계절에 자연이 순응하듯 순리대로 펼쳐지는 인생의 여정에 순응하며…’ 라는 카피가 눈에 띕니다. 이 책에는 ‘율리아나’라는 가톨릭 세례명과 선덕화(善德華)라는 불교의 법명을 함께 가진 분인 만큼 유불선을 넘나드는 사상만큼이나 자유로운 글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글들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어서 제가 가진 책에 쓰인 그대로를 조금 인용해보겠습니다. 오랫동안 큰 힘 또는 권력의 비호 아래 지내왔거나, 뭐든지 다 들어 주는 부모의 보호 아래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자란 사람들은, 그 권내를 벗어나면 참으로 비참한 지경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분노를 다스릴 줄 모른다. 자신의 뜻대로 되었던 세상과는 달리 이제 사사건건 방해와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 그 안에서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인내심을 일시에 잃어버리고 극도의 분노에 달하기 쉽다. 그리하여 약간 구부려도 될 일도 꺾어버리고 제동기를 밟아야 할 때 가속기를 밟고……. -[인생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중에서 남을 열심히 괴롭히는 자는 자기가 들어가 묻힐 굴을 열심히 파고 있는 중이다. 남에게 고통을 주려고 그런다지만 자기의 업장은 나날이 두꺼워진다. 남이 고통을 준다지만 사실 결정적인 최대의 고통과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는 자기 한 사람뿐이다. 분노에 눈이 멀어, 자만심에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아, 쾌락에 정신을 잃어, 곧 닥칠 수치와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를 파멸시키는 길로 달려간다. 이런 일은 하늘도, 부모도, 그 누구도 막아 줄 수 없는 일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샐까] 중에서 사족. 경박한 출판업자 생각보다 헌재의 심판 선고일 지정이 늦어져 싱숭생숭한 마음에 ‘구간소개’를 했습니다. 지난 2012년 10월, 저는 뜬금없이 찾아온 출판브로커 아무개로부터 책을 한 권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재출간이지만 서둘러 이 책을 내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박이 나면 수익금의 얼마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받은 책이 <박근혜 심경 고백 에세이, 내 마음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때 책을 냈으면 돈 좀 벌었을까요? 아무튼 당시 박근혜에게 별로 관심이 없던 저는 박근혜보다, 영세 출판업자들에게 브로커질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그 아무개 같은 사람이 너무 싫어서 단박에 거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토요일 이후, 한 시간이 일 년 같습니다. 시인 친구처럼 담담해야 하는데, 수필가 그분처럼 순리에 순응하며 기다리면 되는데…. 저는 참 어렵기만 합니다. 헌재는 언제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발표할까요?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700 | 추천: 1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태극기집회, 즉 탄핵반대집회가 3월 1일 최대인파를 기록했단다. 서초동 법원 앞을 지나 온 친구는 그 일대도 온통 태극기로 뒤덮여 있었노라고 전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스꽝스런 관제 시위였던 것이 기세 좋게 자라나 이젠 그 자체의 동력과 감정과 의지를 지니게 됐다는 인상이다. ‘노인회총회’며 ‘틀딱’이라는 조롱을 듣고 있지만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그 나름 사명감과 자부심에 굳건하다. 우연히 만난 블로그에는 ‘위대한 노인의 힘을 보다’라는 글이 걸려 있기도 했다. “이제 뒷방 노인으로 틀어박혀 있지 말고/ 사회로 뛰쳐나와 당당히 말해야 한다/ 주장해야 한다”고. 돌이켜 보니 태극기의 역사도 오래다. 1882년 제정됐으니 1백년을 훌쩍 넘는 연륜이다. 처음엔 대한제국의 국기로 출발했던 것이 대한민국의 국기로 계승됐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대중적 인기는 저조하던 것이 2002년 월드컵 이후론 꾸준히 사랑받는 대중적 기호가 됐다. ‘대-한 민-국!’과 붉은 셔츠와 태극기― 누구는 국가주의라며 우려하고 다른 이는 강요받던 애국과의 단절이라며 기꺼워하던 그 기억이 어디 갔나 했더니, 이제는 탄핵반대에 선점당해 서울 광장을 맴돌고 있다. 이번 탄핵 정국이 태극기의 용법을 가르는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되려나. 태극기가 미적으로 흡족친 못했다. 태극이며 건곤감리의 토대가 되는 우주철학도 20세기 이후론 낯설다. 어렸을 적엔 세계 각국 국기가 그려져 있는 도감을 볼 때면 태극기의 난해성이 더 못마땅해지곤 했다. 3·1 운동 때며 해방 때도 사람들이 태극기를 그리느라 진땀 뺐다지 않나. 사괘를 그려내긴 어려워서 일장기의 붉은 원 아래쪽만 파랗게 칠해서 들고 나왔다고도 하고. 자유·정의·진리를 상징한다는 다른 나라의 단순 명쾌한 국기가 부러워질 때가 자주 있었다. 3·1 운동이 아니었다면 태극기가 이렇듯 오랜 생명을 지속하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3·1 운동 때도 태극기가 처음부터 당연한 듯 쓰였던 건 아니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는 태극기를 제작해 사용했지만 서울에서는 태극기를 준비하진 않은 듯 보인다. 이후 5월까지 이어진 시위 과정을 통해서도 태극기는 다른 깃발과 공존했다. 3월 5일 서울에서의 학생 시위 때처럼 붉은 깃발이 등장하는 일도 있었고, ‘대한독립만세’라고 한자로 적은 대형 깃발을 앞세우는 일은 아주 흔했다. ‘독립만세기’라는 명칭이 일제에 의해 준공식화됐을 정도다.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사진 출처 - 문화재청 모종의 망설임이 있었던 탓이 아니었을까. 근 10년 경험한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 때문에 ‘독립’을 외치긴 했으나, ‘독립’한다면 이루게 될 나라에 대한 합의는 분명치 않았던 터다. 마지막 황제 순종이 돌아와야 하나? 중국에서도 신해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졌다는데 공화정을 세워야 하나? 정치체제도 중요하지만 세금은, 교육은, 토목과 행정은 누가 어떻게 끌어 갈 텐가? 그런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옛 대한제국의 국기를 꺼내오기를 한 구석 꺼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결국 태극기를 기억하고 사용하고 지지했다. 태극기 깃폭을 가로질러 ‘독립만세’ 같은 글귀를 적어놓아 옛 대한제국의 국기 그대로가 아니라, 달라진 시대 달라진 대중의 깃발이 되어야 함을 웅변하긴 했지만. 태극기는 그렇게 3·1 운동을 통해 부활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통해 이어졌으며, 마침내 대한민국의 깃발이 되었다. 해방기의 만세 속에서, 해방 후 3·1절에 좌우가 충돌하는 분열을 겪으며, 한국전쟁으로 분단의 폭력을 아로새기고, 개발의 미명에 동원되고 한편 반독재의 대오 곁에 펄럭이면서. 그러니 1882년의 태극기와 2017년의 태극기는 같은 깃발이지만 또한 같은 깃발이 아니다. 대한제국의 신민이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가 다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고, 그 후 수십 년이 흐르도록, 태극기는 ‘대한’이라는 이름 아래 꿈꾼 새 나라에 대한 열망을 집약하는 기호였다. 여기 있는 나 그대로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상을 열망하듯, 현재의 대한이 더 나은 대한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태극기를 보며 느끼는 애착의 마음이란 그런 역사에 대한 경의다. 어느 세대보다 열심히 살아 온 지금 6·70대 또한 더 나은 대한을 꿈꾸련만. 소외와 우울과 분노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내민 손은 분명히 있으련만. 3·1 운동 98주년, 서울 광장의 태극기를 보며 마음은 여러 겹 착잡하다.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92 | 추천: 2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촛불 집회를 뒤로하고, 오랜만에 지인들과 동행 방문한 장소가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 전적지’였다. 햇볕 한 움큼도 들지 않는 음습한 자리에 동학혁명위령탑이 서 있었다. 위령탑이 부서져 내리며 빨간 벽돌이 뼈처럼 드러나 있는 모습에서 이루지 못한 미완의 혁명, 그 얼굴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서해성 작가는 위령탑이 서 있는 장소가 동학농민혁명군이 전몰당한 장소가 아니라, 일본군과 관군이 동학혁명군에게 총을 쏘아대던 장소라고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동학혁명위령탑이 혁명 전사들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장소가 아니라 참살당한 영혼을 구금 유폐한 장소처럼 보였다. 사진 출처 - 구글 동학혁명은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었으며,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 널리 백성을 구한다는 광제창생(廣濟蒼生) 운동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이라고 다 인간이 아니었던 세상.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던 천대받던 민초들도 다 같은 인간이고, 모든 인간을 하늘처럼 귀한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평등사상을 이 땅에 실현하려던 혁명운동이었다. 그러나 120여 년 전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부패한 권력과 일본군 앞에 무릎을 꿇었고, 선혈만 낭자한 피고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국가도 주권도 잃어버렸다.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헌정유린과 권력 남용을 일삼으면서 주권자인 국민을 개·돼지 쓰레기 취급하다가 탄핵소추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에 대한 사망선고를 앞 둔 시점에 후안무치하고 무도한 자들이 벌리고 있는 광기들이 가관이 아니다. 석고대죄 해야 할 자, 단죄 받아야 할 자가 누구인데, 거꾸로 시민이 벌 받는 사람처럼 주말엔 광화문으로 출석해야 한단 말인가. 주말을 빼앗긴 고단한 삶의 촛불은 변함없이 타오르고 있는데, 그 끝이 무엇인지도 참으로 우려스럽다. 부패하고 더러운 권력을 처단하여 도탄에 빠진 국민을 구하며, 차별과 배제 특권 없는 평등 세상을 갈구하였던 120년 전의 동학혁명과 촛불혁명의 함성이 놀랍도록 닮아있다.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같은 간신들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은 동학혁명보다 한발 앞선 전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신 모리배들이 일부 구속되었다고 촛불의 꿈이 완수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시민은 알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 촛불혁명의 꿈. 정의를 짓밟은 자들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시민의 바램이다. 라틴어에 기원을 둔 평등은 공정, 정의를 의미한다. 평등한 세상,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권력과 부를 가진 자만이 인간 취급 받는 세상을 배척하자는 것. 법률 앞의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자는 것. 그래서 부자와 빈자 사이에 자유의 불평등한 향유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 인격적으로 존엄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세상. 그것은 한낱 꿈으로 끝날 꿈에 불과할까. 국민의 대표기관인 2월 임시국회를 보면 촛불의 꿈이 어찌 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상법, 고위공직자수사비리처 신설 법안, 공영방송 정상화 법안 등이 꿈의 계단을 올라가는 첫 걸음마가 될 것이다. 첫 계단도 올라서지 못한다면 120년 전의 함성처럼 혁명은 미완의 변주곡으로 끝나 버릴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서해성 작가의 혼이 담긴 한마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들은 저 언덕(우금치)을 넘지 못했다.”.....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저 언덕을 넘을 수 있을까.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2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697 | 추천: 2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 아닐까!” 한동안 세간에 화제를 몰고 다닌 TV 드라마 〈도깨비〉 때문에 유명세를 탄 말이다.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음직한 원초적인 의문이 아닐까.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분한 도깨비나 이동욱이 분한 저승사자는 ‘망각’을 신이 자신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여긴다. 그럴 만도 하다. 적게는 300년에서 많게는 900년도 넘게, 칼에 찔린 듯 한 고통에 찬 삶을 견뎌 온 이에게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는다는 게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축복일 수 있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해본 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현실에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길로 망각을 선택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망각이 쉬 이뤄지지 않을 때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고통의 기억을 대체하기도 한다. 그것이 쉽지 않을 때 극단적인 방법으로 마약류를 통해 고통의 기억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망각의 기제가 사회에 투사될 때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망각의 반대인 ‘기억’을 전제로 생존해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에게 기억이, 그리고 그 기억의 전달이 없었다면 지구상에서 수없이 명멸해간 다른 존재들처럼 어느 한 순간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존재도 자신들이 살던 동굴에 암벽화를 남긴 기억의 행위로 4만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까지 살아남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존재임에도, 망각의 기제를 사회에, 공동체에 강요하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그만 잊으라”고, “망각의 강 저편으로 떠나보내라”고 자꾸 주문을 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도,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도, 용산 참사도, 쌍용차 노동자의 눈물도, 4대강의 신음도, 제주 강정의 통곡도, 미순이 효선이의 한도…. 모두 잊으라고만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박정희기념사업회 등 기억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난리다. 이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 세상에 퍼뜨리고자 하는 것은 결국 ‘가짜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기억’은 원래 실체가 없는 기억이다. 이미 있던 정보가 왜곡되어 나타난 환상 같은 것도 아니고 아예 뿌리가 없는 기억이다. 꿈이나 특정 경로를 통해 접한 정보를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하거나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자신이 한 거짓말마저 실제라고 믿어 버리는 ‘리플리 증후군’도 이 ‘가짜기억 증후군’의 일종이다.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는 무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 이유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며 강고하게 구축된 ‘가짜 기억’의 성(城)을 삶의 뿌리로, 존재의 기반으로 여기는 ‘박사모’ 같은 이들의 존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가짜 기억’의 성에 들어가려 몸부림치더니, 어느 순간 그 성을 만드는 일에 부역하다 거짓의 성에 갇혀버려 이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들 존재 자체가 거짓으로 만들어진 성의 밑돌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다시 물음을 던져본다, 나 자신에게, 우리에게.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감히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의 기억, 연대의 기억, 투쟁의 기억, 나눔의 기억, 하나됨의 기억…’ 기억할 때, 기억을 공유하는 우리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이 글은 2017년 2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026 |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