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종, 종교, 민족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1951년 UN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 제1조 난민 규정)  우리말 ‘난민(難民)’은 영어 refugee의 번역어다. refugee는 ‘뒤로/반대로(re)’ ‘도망하다/쫓겨나다(fuge)’를 의미하는 라틴어 refugio에서 온 말이다. ‘반대편으로 쫓겨난 사람’이다. 그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피난민(避難民)’이다. 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언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난민(難民)’이라는 애매한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재난을 피해온 사람’이라는 말에서 ‘피한다’(避)는 동사를 쏙 빼고 나니, ‘난민’은 그 자체로는 알기 어려운 낱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인에게 난민은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위험한 외국인’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피난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리는 분위기도 커져가고 있다.  난민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나 민족 단위의 재난(전쟁, 분쟁...)이 가져다준 결과이고, 정치적 폭력의 산물이다. 난민협약도 세계대전 이후 자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피난민들을 국제적으로 보호하자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난민에는 기아로 도무지 살 수 없어서 좀 더 안전한 지대를 찾아 떠나는 경제적 이주민의 성격도 있다. 핵심은 피난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 체제 하에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국경’을 강화하면서 (피)난민이 타지역이나 국가에서 살아가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근본 원인은 국가나 사회가 제공해놓고, 그 책임은 약한 개인이 떠맡고 있다. ‘너희 때문에 우리도 힘들다’며 아예 자기 나라로 발붙이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흐름도 커지고 있다. 2015년 가을 터키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던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보며 안쓰러워하다가도, 정작 난민이 자국의 문제가 된다 싶으면 행여나 손해라도 볼세라 바로 외면해버리곤 한다. 한국은 다소 예외려나 싶었는데, 이번에 제주에 들어온 예맨 난민들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53.4%가 난민을 반대한다는 7월 4일자 리얼미터 여론 조사도 있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왜 그런 것일까. 부모와 헤어질까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는 멕시코 이민자 아이 사진을 보며 미국의 비인간적 이주민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제주에 들어온 예맨 난민 또는 이주민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배타한다. 한국인 전쟁 포로가 타국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이야기는 마음 아파하며 듣다가, 한국으로 오려는 난민에 대해서는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카레이스키’를 억압한 옛 소련에 대해서는 분노하다가, 예맨 난민은 그저 돈을 찾아 온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는 소문을 확산시키며 인종차별주의적 분위기도 강화시킨다. 이들 가운데 IS 대원이 섞여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한다.  보수 기독교인은 근거 없는 ‘이슬람 포비아’로 무슬림 난민을 잠재적 성폭행범이나 극단적 근본주의자 취급을 하면서 본국으로 송환하라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피난’의 기록인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난민 문제에는 관심이 없거나 자기감정을 기준으로 배타한다. 예수가 헤로데의 살인적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했었다는 성서의 기록은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외면한다. 그러면서 ‘난민 반대’라는 여론을 만들어간다. 종교도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만 수용하는 편협한 ‘자기신앙’으로 몰려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는 난민보호법이 있다. 세계대전을 겪은 뒤 1951년 유엔에서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an Relating to he Statues of Refugees, 이하 난민협약)이 발효되었고, 이 난민협약을 토대로 1967년에는 난민의정서(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es of Refugees)가 체결되었다. 한국은 1992년 12월에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따라 국제적 난민보호국의 대열에 동참했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규정을 신설한 뒤 2012년 입법 발효했고, 2013년부터 시행 중이다. 이 마당에 난민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은 유엔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위배되며 국제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다. 난민을 잘 가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만 남아있는 것이다. 단순히 여론으로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인 결단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는 권리의 주체를 ‘국민’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꾸고자 했던 청와대 헌법 개정안의 정신대로 난민심사위원과 잠정 수용시설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난민신청자 중에는 솎아내야 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이들은 잘 가려내면 된다. 그 과정에서도 인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저 돈의 논리로 처리하거나, 일종의 인종차별주의 혹은 알량한 문화적 우월주의가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삼한시대에는 일종의 제의 장소인 소도(蘇塗)가 있었다. 신성한 공간이어서 심지어는 도둑이 들어와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범죄자조차 단죄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아무리 그런 신성함 같은 것이 다 깨져버린 시대이기는 하지만, 전쟁 통에 살기 어려워 낯설디 낯선 곳으로 목숨 걸고 온 난민을 내쫓으라고 청원하는 이가 더 많다니, 슬프다. 설령 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온 이주민이라 해도 그렇다. 가능한 한 같이 살면서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궁리를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는 그렇게 비인간적인 지경으로 몰리게 되었을까. 우리가 피난민이었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 조금 전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8-07-06 | hrights | 조회: 2178 | 추천: 28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저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제1 야당의 선거 구호가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거일이 가까워오자 중간에 ‘나라’에서 ‘경제’로 단어가 바뀌었지요. 그것이 나라든, 경제든 상관없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통째로 넘겨야겠냐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동안 그들의 말을 살펴보건대 선거구호 문장에서 생략된 그 ‘누구’는 분명 ‘좌빨’ 혹은 ‘빨갱이’ 아니면 ‘종북’쯤 되는 단어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냐 마냐 하는 중대한 선거다, 자신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면 빨갱이들 손에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이었겠지요. 아무리 선거판이라 해도 그렇지, 기가 막혀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당에서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이 죄수복을 입고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마당에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 당일, 투표를 마치고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이런 기사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대변인까지 역임(!)했던 국회의원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인천 연수구을) 의원이 투표 중인 방송인 유재석씨를 비판하는 게시글을 공유했다. 그가 공유한 글은 “재석아 너를 키운 건 자유민주국민들이다. 이미 너의 사상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다신 인민국민 날라리들은 꼴도 보기 싫다. 너도 북으로 가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유재석이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모자를 쓴 점을 못마땅해한 것으로 보인다.  민 의원이 13일 공유한 게시물에는 흰 셔츠를 입고 파란 모자를 쓴 채 투표장에 나타난 유재석씨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이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채만식 선생의 소설 <도야지>의 시대배경은 해방공간입니다. 1948년 미군정 하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세워지는 때, 제헌의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사어(死語)사전이 편찬된다고 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당연히 거기에 오를 것이요, 그 주석엔 가로되,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孔孟敎人),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밖에도 000과 0000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그리고 차경석의 보천교나 전용해의 백백교 등도 거기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채만식 <도야지> 중에서  1948년에 10월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빨갱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게 될 것이라는 작가의 예견(?)은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날에 죽은 말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무려 60년 동안이나 같은 식으로 우려먹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사진 출처 - MBN  이번 선거에 참패한 ‘통째로 넘긴 당’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처절한 반성을 통해 새로워지겠다고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그 당에서 출마, 서울의 한 구청장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의 사례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물보다 정당을 택한 민심, 반성하고 새롭게 뛰겠습니다. 28.1% 고맙습니다.’  그리고 ‘빨갱이없는나라만들기국민운동본부’ 대표를 지냈다는 경기도의원 낙선자인 한 후보는 고양시의 어느 사거리에 크게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이재명 같은 자를 경기도지사로 당선시킨 여러분, 저 최성권 낙선 시켜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경기도의원 낙선자 최성권 드림’  북미 대화가 성사된 직후 소위 ‘태극기 집회’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그중 서너 명이 성조기와 트럼프 사진이 아닌 일장기와 아베의 사진을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다른 손에는 한미동맹이 아니라 ‘한일동맹’이라고 쓰인 피켓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 빨갱이가 된 걸까요? 어쨌거나 아무리 그래도 ‘불원한 장래’에 빨갱이라는 말은 분명 사어(死語) 사전’에 실리게 되겠지요.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8-06-20 | hrights | 조회: 1975 | 추천: 8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 북미관계정상화를 예상하였다.  2017. 7. 24.자 국가보안법위반 상고이유서에서, 북미관계정상화를 예상하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원심의 판단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판단인지는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객관적으로 증명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당시는 북미 핵 대결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상황이었다. 그러나, 세계적 패권의 맹주라는 아메리카 제국에는 승산이 없었다. 최대의 압박과 제재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북의 자위적 핵 억제력은 갈수록 고도화되었다. 제국에는 허세를 보이는 것 외에는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시간은 점점 없어졌고, 제국의 위신이 떨어지는 수모를 겪더라도 대화와 협상으로 종전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국은 쇠퇴와 몰락의 길로 가고 있었다. 북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우방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쇠퇴, 몰락과 함께 세계평화와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나날이 강대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정세인식과 전망을 갖고 다음과 같이 변론하였는데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과 함께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북한이 같은 민족으로 통일을 위해 화해하고 협력하여야 할 동반자임을 직시하고, 북한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극우보수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색깔공세(종북공세)라는 절대무기를 더 이상 휘두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지 못하도록 2000. 6. 15. 남북공동선언 및 2007. 10. 4.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문을 전면부정하고 위헌법률인 국가보안법에 기대어 시대착오적 대북대결정책으로 동족 간의 반목을 키워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남북화해와 평화통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남북미 쌍방 간 군사적 대결과정이 지속적으로 심화됨에 따라 결론적으로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객관적 현실로 증명되는 바, 외세 추종의 극우보수세력들이 현재 국제정세의 변화된 객관적 조건을 아무리 부인할지라도, 북한과 미국은 쌍방 간 핵전쟁 발발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바야흐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북미수교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작금의 미국 트럼프 행정부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담당자들 또한 객관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향후 북미 양국 사이의 신뢰관계 구축과 관계정상화는 기정사실로 실현되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미 폐지되어야 마땅할 위헌법률인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현 시점의 원심의 판단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판단인지는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객관적으로 증명될 것이다. " # ‘농구 코트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의 눈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가장 고대하며 감격해 하는 미국인이 있었다. 현역 시절 거친 수비 농구의 대명사로 리바운드의 제왕으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코트의 악동’이라 불리어진 NBA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이다. 그가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싱가포르를 찾았고 방송 인터뷰에서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5차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다. 묘기 농구팀을 이끌고 북미 농구교류를 진행했다. 그의 농구팬이었던 김정은 위원장의 든든한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생일을 맞은 김 위원장을 위해 북의 수많은 농구경기 관람객 앞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미국 내외의 온갖 위협과 조롱, 비난 속에서도 북을 꾸준히 방문하였다. 언제나 친구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하며 전 세계에 자랑했다. 북의 지도자와 북의 실상을 전하는 로드맨의 말은 언제나 궤변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김정은 위원장의 딸 이름을 알 정도로 북의 지도자와 친분을 쌓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독재자가 아니라 사람이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풀고 싶다며 언론 인터뷰를 하였다. 여론은 또라이로 취급하며 조롱했으나 북한 사람과 미국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신으로 꾸준히 북한을 방문해 왔다. "나의 방북은 세계를 위한 위대한 생각인데 사람들은 항상 내가 하는 것을 무시한다.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 같은 이들도 세계를 위해 멋진 일을 하는데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며 항변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그는 나의 친구이며, 나는 그를 사랑한다(I love my friend)"고 늘 밝혔다. 로드맨을 조롱하는 앵커에게 "앵커 당신은 지금 마이크 뒤에 앉아있지만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직접 북한에 왔고, 언젠가는 우리 덕분에 북한의 문이 열릴 것" 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의 모 하원의원은 로드맨을 일컫어 "히틀러와 점심식사 같이 할 양반" 이라고 비난했고,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도 출마했던 거물급 상원의원 존 매케인도 그를 '백치'(idiot)라고 부르며 비난에 합세했다.  로드맨은 북에 수감된 케네스 배의 석방과 오토 웜비어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트럼프와 친분이 있는 사이기에 김정은 위원장에게 트럼프의 책 ‘거래의 기술’을 선물하였다. 북과 미국 사이의 문호를 열기 위해 줄곧 노력해 왔기에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역사적 순간 그동안 자신의 노력이 열매를 맺게 되자 감내하기 힘들었던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방송 인터뷰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사진 출처 - JTBC # “세계는 중대한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6.12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첫 상봉 직후 환담)  “우리의 발목을 지루하게 붙잡던 그런 과거를 우리가 과감하게 이겨냄으로써 대외적인 시선과 이런 것들을 다 짓누르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마주앉은 것은 평화의 전주곡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거와 같지만 이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해 보지 못한, 물론 그 와중에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 훌륭한 출발을 한 오늘을 기회로 해서 함께 거대한 사업을 시작해 볼 결심이 서 있다.”  “우리는 성공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6.12 확대정상회담 모두 발언)  “역사적인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걷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문건에 서명하게 된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를 위해서 노력해주신 트럼프 대통령께 사의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6.12 북미공동성명 서명식) #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도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매우 도발적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주한미군을 돌아오게 하고 싶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상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미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지금껏 숱한 사이비 언론과 전문가로부터 거짓 정보를 제공받아오며 그것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경악할 일이었다. # 극우보수세력의 퇴장  반북 종북몰이로 기득권을 이어온 한 줌도 안 되는 무리들이 있었다.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이 무조건 싫었다. 드디어 새로운 역사적 시대가 도래하였다. 트럼프는 분단, 대결, 전쟁을 조장하는 지금껏 자신이 한 말을 모두 뒤집어버렸다. 친미극우보수 무리들의 상전에 대한 믿음에 가차 없이 철퇴를 꽂아버린 사변이 일어났다.  그들에게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놀아난 북미정상회담이었고, 안보파탄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다. 피로 맺은 한미동맹이 겨우 이거냐며 내 나라는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자주국방을 외쳤다. 미국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철수 발언을 두고 한미동맹 위기론을 펼쳤다. 북미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청와대에 종북몰이 화살을 날리며 대한민국의 현실이 암담하고 절박하다며 보수층 결집을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들 양치기 곁에 있어야 할, 있을 줄 알았던 국민들은 어느새 그들을 외면하였다. 스스로 자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황당한 얘기를 들으면서 내 나라는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는 그들의 앞날은? # 양립 불가능한 것들  우리사회는 이중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상호 적대행위 중지와 도발적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양립할 수 있는가? 종전과 평화협정 시대에 주한미군의 주둔은 양립할 수 있는가? 양립 불가능하다. 오래된 낡은 논리가 있었다. 북은 통일의 동반자요, 반국가단체다. 제정신이 아니다. 철학도 소신도 논리도 없다.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분단적대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자들의 간교하고 기회주의적 기교에 민중들은 기만당한 채 국가보안법의 쇠사슬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노예처럼 살아왔다. 남북화해와 국가보안법은 양립 불가능하다. 저항력을 거세당한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아무런 불편이 없이 양립 불가능한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적응하고들 살아간다. 국가보안법에 겁먹은 얼치기들이 행세를 하며 자기합리화를 위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민중을 오도한 때문이다.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은 세상 사람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더 이상 도돌이표 퇴행은 없다. 퇴행 없는 이행에 따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배적 역할은 쇠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등 극우보수기생세력은 숙주를 잃고 소멸, 퇴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금 한줌도 되지 않는 극우보수세력들은 발악을 하고 있으나 자충수만 두며 시대의 도도한 대세의 흐름 앞에 독 안에 든 쥐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세기사적 거대한 변화를 동반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8-06-14 | hrights | 조회: 2376 | 추천: 4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현생인류를 포함하는 생물 종의 학명. 우리말로 바꾸면 ‘슬기인간’쯤 되겠다. 1758년 현대 분류학을 창시한 린네가 인간에 이런 거룩한 이름을 붙인 이래, 생각하는 능력, 그것도 사리를 바르게 판단해서 일을 처리하는 슬기는 인간의 으뜸가는 특질로 자리 잡았다.  동물은 본능의 노예처럼 죽을 때까지 거기에 매여 산다. 욕망의 내용이나 모양, 가짓수가 바뀌는 법이 없다. 그래서 몇 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종류의 짐승이라면 그들이 사는 모양은 똑같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모양은 예전과 지금이 썩 다르다.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이 사는 모양은 하늘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동물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니라 인간은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이 오늘과 다른 세월을(정확히는 ‘역사를’) 살아왔다. 인간이 이렇게 다르게 살 수 있었던 비결도 일차적으로는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짐승이나 인간이나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일을 하는 동물이지만, 인간의 일은 동물의 일과 다르다. 무엇이? 인간은 자연을 다루면서 더 쉽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일의 방법을 고쳐온 것이 다르다. 이렇게 자연을 다루는 일의 방법을 고쳐나갈 수 있게 한 힘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라고 할 때의 그 ‘슬기’이며,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을 때의 그 ‘생각’이다.  인간의 생각은, 동물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본능이나 재주와 다르다. 동물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 독수리가 제 아무리 빨리 날려고 해도 제트기처럼 날 수 없다. 독수리가 타고난 엔진과 몸뚱이는 인위적 성능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보태질 수도 있고, 줄어들기도 한다. 인간은 생각의 힘을 쌓고 모아서 마침내 독수리보다 더 빨리, 더 오래 나는 비행기를 발명해 냈다. 인간의 생각은 후천적, 의식적 노력 여하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계통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개체적 차원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인류사적 차원에서 예술과 철학의 사조가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며 다양한 변천을 거듭해 왔듯이, 사람과 세계(자연과 사회)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를 거치면서 달라진다.  생각이 지닌 경이로운 힘을 체험한 인간은, 개별적인 기억의 전수나 집단적인 기록의 보전의 형식으로 경험과 기억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보유하는 생각의 몸집을 불리려고 노력해 왔다. 생각의 몸집 불리기 챔피언이라 할 만한 대표적인 서양 사상가를 꼽자면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 F. W. Hegel 1770-1831)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생각’을 합리적 사고능력을 뜻하는 ‘정신(die Geist)’ 혹은 '이성(die Vernunft)'라는 말로 치환하고서 <인류의 세계사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일종의 이성의 오디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헤겔은 역사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현상에 홀리지 않고 현상의 이면, 즉 속내(본질)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성이 역사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궁극적인 추동력임을 간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역사철학강의⌋에서 제시한 주장에 따르면, 역사의 표면적인 모습만 보면 이성은커녕 가장 추악한 일들이 쉼 없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사사로운 개별적 이해관계의 파노라마라는 외면적 현상만 보는 인간에게 역사는 회의와 실망의 무대이다. 그러나 역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역사는 다르게 보인다. 즉. 역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역사는 새로운 면모(본질적 측면)를 드러낸다. 헤겔은 인류의 역사에는 이성의 암호가 아로새겨져 있으며, 그 암호를 해독한다면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역사의 비밀을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역사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을 만들어내는 이성의 교묘한 속임수를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라고 불렀다.  헤겔은 역사 속에서 작동하는 이성인 세계정신이 세계사를 이끌어간다고 역설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세계정신이 직접 총칼로 무장하고 시가전을 벌이거나 전쟁을 수행한다고 주장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억측이다. 그는 특수한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인간 개인의 정열이 없다면 자유의 실현이라는 이성의 목적도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헤겔은, 자유의식의 진보라는 목적 실현을 위해서 이성은 행동대원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사적 이성인 세계정신은 역사적 현실에서 행동하는 개별적 주체(인간)의 활동의 매개 없이는 결코 자신의 추상성을 탈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소 딱딱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편적 이성은 역사 속에서 개별적 인간의 욕망과 통일됨으로써만 참다운 구체적 보편을 구현할 수 있다.  헤겔은 이성의 하수인으로 세계정신의 역사적 실현에 이바지하는 인간을 “세계사적 개인”으로 명명했다. 세계사적 개인은 그의 실제적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세계사의 도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초래한 실천적 행위자들이다. 그는 자신들의 정열과 노력이 역사의 궁극 목적인 자유의식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개인적 욕망과 특수한 이해의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정열적 인간이다. 헤겔은 이런 세계사적 개인의 전형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고자 했으나 의도치 않게 로마를 강력한 구심점을 갖춘 세계제국으로 만든 카이사르나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으나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유럽의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린 나폴레옹을 제시한다. 요컨대, 헤겔의 세계사적 개인은 현상적으로는 개인적 정열에 의해 추동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역사의 변증법을 실행하는 이성의 도구요, 그 시대의 필연적 요구를 채워주고 실현하는 세계정신의 실행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추구할 뿐 자신이 이성의 목적을 실행하는 대행자라는 것을 깨닫지는 못한다. 한 마디로, 자신이 행했으나 그 행위의 의미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눈썰미 있는 독자는 알아챘겠지만, 세계사적 개인에 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에 비해 민주적이거나 인권 지향적이거나 도덕적인 인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노벨상을 타려는 개인적 욕망에서건, 11월 중간선거에서 자파 의원을 더 많이 당선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에서건 간에,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낡은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평화공존의 새로운 시대를 여느냐 마느냐는 당장은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의 운명을 한반도의 거주민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처지의 아쉬움을 잠시 제쳐 놓는다면, 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사적 개인의 반열에 오르길 강렬히 희망한다. 한반도 평화(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 그리하여 인과적으로 세계의 평화)와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좋다. 명예욕과 정치적 계산에 따른 행위일지라도, 그가 북미평화협정을 성공적으로 체결해서 노벨평화상을 꼭 받았으면 좋겠다. 남북 분단과 적대적 대립에 따른 역사적 비극과 인간적 낭비를 걷어내는 평화만 만끽할 수 있다면,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트럼프가 그런 21세기 세계사적 위인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평화와 인권의 정착이라는 우리 시대의 세계정신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채워주고 실천하는 세계사적 개인이 되기만 한다면, 나는 ⌈도널드 트럼프 위험한 사례⌋에서 말하는 정신분석학적 진단은 깡그리 무시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공을 기꺼이 성원하겠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8-06-07 | hrights | 조회: 2218 | 추천: 5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외과의사인 아툴 가완디가 의사였던 아버지의 노화, 투병, 죽음을 곁에서 지키면서 써내려간 글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들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데, 늙고 병들어서 오래 살고 잘 죽는 것 보다, 죽음에 대한 문제를 배워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면서 좋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팔십을 넘기신 분으로 고혈압 등 몇 개의 질병을 지녔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사셨다. 그러다 작년 여름, 뇌에 양성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후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의지하셨다. 어머니의 일상생활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어 모두들 지쳐갈 즈음, 또다시 허리 통증과 보행불능의 증상을 보이는 척추에 다른 문제가 발생해 응급 시술을 했다. 나와 형제들은 어머니의 간호와 돌봄에 허둥대며 무기력해지고, 어머니는 공포와 두려움, 건강했던 지난날처럼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과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 사이에서 방황하셨다. 평소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의 도움 받는 것을 싫어하시며 미안해하시는 분이시기에 가족들이 돌아가며 간호를 할 때마다 “~~야, 너무 미안하다 내가 빨리 나아서 너에게 신세를 지지 말아야지”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가족들은 두 번의 위험한 상황 속에서 어머니에게 찾아온 삶의 끝을 보면서 전과 같이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어머니에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질병의 상태와 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알려드리지 못했다. 나 또한 지난날과 같아지기 위해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는 어머니를 마주보며 죽음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우리 몸의 각 부품이 노쇠해지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할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머니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도 필요한 과제다.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늙었음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으로 진단을 받고 삶의 끝에 있다면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심폐소생술을 받는 치료를 거절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 들여 일상생활을 유지하던 곳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속에는 가족 또는 호스피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사진 출처 - Doingstock  가족이 나의 용기에 동의하면 좋겠지만 그들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입을 옷을 스스로 고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통제력, 불투명한 치료법에 현재를 양보하는 대신 최대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존엄을 목표로 삼는 호스피스를 찾는 것도 적절한 답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신적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는 것, 그리하여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8-05-30 | hrights | 조회: 1923 | 추천: 13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구감소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면 되는것 아닌가?’였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꽤 된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5%도 안 되는 국내 거주 외국인 200만명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설득력이 없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나라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저출산 문제는 말 그대로 브레이크가 없다.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1.0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0.1명 감소했다. 통상 아기가 가장 많이 태어나는 시기가 1분기라는 걸 감안하면 올해 합계출산율은 작년 1.05명보다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30∼34세 여성인구와 결혼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당분간 출산율 반등도 쉽지 않다.  어떤 분들은 좁은 땅에 500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바글바글대는게 더 큰 문제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구감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심각한 상황은, 통계청이 지난 2016년 12월 장래인구추계와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당시 통계청이 가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합계출산율 1.07이었다. 2016년 당시 통계청이 예상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는 2023년 5168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5166만명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40년에는 5000만명 이하로 떨어지는 등 급속히 감소한다. 현재 추세는 통계청이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도 더 최악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청년실업과 주거문제는 혼인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출산율 하락을 부채질한다. “혼인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인구감소이지만 결혼 주연령층의 실업률 상승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통계청 관계자 분석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이미 작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몇 년 안으로 전체 인구도 줄어들 게 확실해 보인다. 올해 들어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 연속 취업자가 10만 명대 증가에 그쳤다. 고용률과 실업률은 큰 차이가 없고 청년실업률은 0.5% 포인트 감소했는데도 취업자 수가 좀처럼 20만명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자체가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인구 감소 충격’이 원인이다. 취업자 증가폭이 둔화되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소비감소와 경제 활력 저하, 노인인구 부양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저출산 해결을 위해 122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간다며 저출산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관론이 터져 나온다. 과연 그럴까? 저출산 예산 규모와 추이를 살펴보면 정부예산 규모가 오히려 너무 적다는 게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뿌린대로 거둔 것 뿐이다.  우리나라 ‘가족정책지출’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타 선진국에 한참 미흡하다. OECD 평균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45%(2013년도 기준)인 반면 한국은 1.38%로 1% 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저출산 극복의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히는 프랑스(3.70%)와는 2% 포인트 이상이다. 단순계산해도 한국이 OECD 평균 수준이 되려면 1년 예산규모가 15조 원가량, 프랑스 수준이 되려면 30조원 가량 정부예산을 더 써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OECD에서 한국보다 가족정책지출이 적은 나라는 터키, 멕시코, 미국 뿐이다.  가족정책지출은 가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현금지원 성격의 정부지출을 뜻한다. 크게 아동수당이나 육아휴직급여 등 직접적 현금지원, 보육료 지원이나 국공립보육시설 지원 등 서비스 지원, 세제지원 등 세 가지로 구분한다. 한국이 다른 선진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영역은 직접적 현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0.18%인 반면 OECD 평균은 1.25%, 프랑스는 1.56%, 영국은 2.42%였다. 대표적인 현금지원인 아동수당만 해도 한국은 9월부터 5세까지 지급할 예정인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수십 년 전부터 16~18세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녀가 늘어나면 아동수당도 늘어난다.  저출산은 거의 모든 선진국이 경험했던 일이다. 가령 프랑스는 1995년 합계출산율이 1.71명, 스웨덴은 2000년 1.56명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15년 합계출산율은 각각 1.98명과 1.90명으로 인구유지를 위한 합계출산율(2.1명)을 회복하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 반면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의 평균출생아 수가 외벌이보다도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성평등 수준과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각종 복지제도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자. 취업을 못해서, 비정규직이라서, 집이 없어서, 등록금 빚 때문에, 안전하게 키울 자신이 없어서, 불안해서, 헬조선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저출산 원인은 하나같이 인권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저출산은 인권문제의 결과물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인권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인권 수준을 높여야 출산율도 올라간다. 다시 한 번,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8-05-23 | hrights | 조회: 1694 | 추천: 6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이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 사는 길은 없다. 문제는 뭐든 다 소유하려는 데 있다. 쌀, 돈, 집, 땅을 소유할뿐더러, 가치, 신념, 권위, 심지어 자신의 행위마저도 소유한다. 가치 있게 살기보다는 가치를 소유하고, 권위로 존재하기보다는 권위를 소유한다. 많이 소유하고 크게 소유할수록 이익도 큰 시대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인간의 언어 관습조차 소유 양식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프롬의 정리에 따르면,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명사의 사용은 늘고 동사의 사용은 줄었다고 한다. 인간의 직접 경험을 반영하는 동사는 단순해지고, 소유의 대상이 되는 명사는 세분화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가령 구미인들은 흔히 “머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두통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아픔은 체험되는 것이지 소유되는 것이 아닌데도, 아픔을 사물화시켜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언어를 구사한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자기도 모르게 나를 아픔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나와 아픔이 별개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안다”가 아니라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지식의 소유를 인간의 척도로 삼는 소유적 실존양식의 증거들이다. 인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업적이나 결과로 인간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간이 지식이라는 소유물을 활용해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 인간의 삶은 그 지식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는 대로 살기보다는 그저 알 뿐이다. 깊이 알기 보다는 많이 알 뿐이다. 너도나도 그 길에 나서다보니 지식이라는 추상적 명사들만이 재생산되고 대단한 성과인 냥 체계화되어 떠다닌다. 세상에 지식은 넘쳐나지만 인간은 그 지식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 지식을 낳기 위해 명사적 지식의 생산에 ‘올인’하고 그 지식 체계로 사회는 작동하지만, 그렇게 작동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도리어 소외되고 사물화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Morguefile  어디 그뿐이던가. 원래 신(神)은 인간이 내적으로 경험하는 지고한 가치의 상징이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신도 하나의 사물로, 즉 ‘우상’으로 만들어 나의 소유를 정당화시키고 확대시키는 수단으로 삼는다. 자신의 힘을 그 사물에 투영함으로써 자신을 약화시키고, 자신이 만든 그 사물에 굴종한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만든 우상의 소유물로 전락한다. 우상은 한낱 사물이기에 인간이 소유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우상의 소유를 위해 우상에 굴종하는 형태로 우상이 인간을 소유하는 것이다.(『소유냐 존재냐』, 1부 2장) 결혼으로 사랑도 소유하고 독점하면서 더 이상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사랑조차 내가 소유하는 그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자기중심적 평화주의”(ego-centric pacificism)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평화와 평화들』 1부 2장) 인간, 사회, 종교, 국가가 이른바 소유적 실존양식에 휘둘리다가 평화마저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였다. 평화를 자신에 유리하게 ‘소유’하고 자신을 위한 사물로 만드는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중국이 저마다 평화를 내세우며 아시아에서 갈등을 촉발시키고, 미국이 자유와 평화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희생시키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다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사례들인 것이다.  세상은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주로 인간 내면에서 찾는 에리히 프롬 식의 진단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형 인간’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그의 연구는 여전히 통찰적이다. 인간다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근본 이유와 인간다워지기 위한 일차적 동력이 어때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인간적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인간으로 존재해야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선언은 당연하다. 그 소유를 제한하는 온갖 장애에 저항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 저항이 인간의 주체성을 살리고 인간다움의 기초를 다져주겠기 때문이다. 이론과는 달리 세상은 더 강력하게 비인간의 얼굴로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때이기에 더욱이나 소유형 인간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려 애쓸 도리 밖에 없는 것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8-05-15 | hrights | 조회: 2184 | 추천: 12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TV 앞에만 앉아 있었습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거짓말 같았습니다. 현실이 아닌 영화 같았습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옛사람의 말이 그저 그대로 온몸에 착 달라붙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 저는 아침 첫 뉴스부터 마감뉴스까지 하루 종일 뉴스만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뉴스도 이 방송, 저 방송을 돌아가며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티비X선까지 찾아볼 정도이니, 이렇게까지 TV를 챙겨보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둘 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왠지 빨리는 안 되더라도, 제가 죽기 전까지 통일이 될 거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냉철한 평가(?)만 봐도 판문점 회담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 살아생전 통일이 될 거라는 기대까지 하고 있으니 대단한 일입니다.  어느 시인의 ‘애국, 애국, 애국 소리 딸꾹질 같아...’ 하는 표현에 깊이 공감했던 제가 애국자일 리는 없습니다. 거기에 ‘통일염원 몇 년’ 하는 식의 연호(?)를 쓰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있었던 지난 기억으로 볼 때, 소위 민족주의자는 더더욱 못 되는 제가 이렇게 들떠 있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가슴이 기대감을 주체 못해 벌렁벌렁하는 걸까요. 사진 출처 - 뉴시스  어버이날,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먼저 와 있던, 저보다 여섯 살이 많은 누이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 개성하고 장단에 땅 있다고 하지 않았어?”  개성에 살던 저희 할아버지는 장단으로 이주해서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고 했습니다. 누이는 개성에 산이 있고 장단에 전답이 있는데 큰댁에 그 땅문서가 있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역시 정상회담 때문이었겠지요.  집에만 오면 뭐라도 하나 챙겨가려는 누이가 못마땅했는지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야, 통일이 되도 그 땅을 OO이가 너한테 쪼개 주겠냐? 미친 소리...”  ‘OO이’는 큰댁 장형(長兄)입니다. 어머니는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듯이 한마디를 더 얹었습니다.  “그리고 이북 놈덜을 뭘로 믿냐? 통일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알어...”  “아유, 내가 무슨 땅을 어떻게 하겠다고 했어?”  누이는 그냥 궁금해서 해본 소리라고 멋쩍게 웃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북한 사람들을 ‘빨갱이 새끼덜’이라고 하지 않고 ‘이북 놈덜’이라고 말한 것에 놀랐습니다. 혹시 이번 정상회담 분위기가 열렬한 박정희 신도인 어머니에게도-비록 503 때문에 많은 실망을 했어도-어떤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30년 전쯤, 존경하는 소설가 한 분이 문학 수업 중에 하셨던 말이 떠오릅니다.  “보따리 하나 둘러메고 판문점에 가서, 그냥 ‘나 고향 갈랍니다’ 하고 넘어가면 왜 안 되나?”  함경도 회령이 고향이었던 선생의 얼굴은 굳어 있었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시작했지만 말하고 나니 새삼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한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선생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셨던 것 같습니다.  두 정상이 마치 놀이하듯이 남북을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하다는 것은 어떤 걸까, 이런저런 이유를 달수록 오히려 구차해지는,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냥 당연한 것, 그것만으로 마땅한 것은 어디쯤 있을까요.  비록 멀리 돌아왔지만,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당연한 것이 당연히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당연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8-05-09 | hrights | 조회: 1625 | 추천: 8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 사내가 죽었다. 향년이라고 하기엔 이른 나이 55세. 김아무개씨였다. 핸드백을 하나 훔쳤다고 했다. 그 죄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으레 그렇듯이 기초생활 수급자인 그도 벌금을 낼 돈이 없었다. 한 달에 수급비로 받는 70만원으로 그가 물어야 할 벌금의 액수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다. 그는 노역형을 선택했다. 그는 심부전증 환자였다. 돈이 없어 병원 진찰도 겨우 받은 그에게 의사는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 퇴원을 요구했던 그에게 의료진은 기초생활 수급자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의 내용을 찾아주었고 그 덕분에 가까스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며칠 더 요양을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거부하고 그는 퇴원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없었다. 퇴원한지 4일째 되는 지난 4월 13일 서울구치소 노역장에 들어갔고 이틀 후 아침 반 시체가 된 그의 몸뚱이를 구치소는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 벌금 150만원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뒤 이틀 만에 숨진 김아무개씨의 방 사진 출처 - 한겨레  봄날의 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날 이었다. 손님이 떨구고 간 스마트 폰을 사용한 택시운전사가 잡혔다. 술 취한 동료의 지갑에서 현금 40만원을 빼냈던 직장인도 잡혔다. 그들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통상 절도죄에 벌금 150만원 형은 그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받는 벌이다. 그가 훔쳤다는 핸드백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는 그 죄로 인해 사실상 사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역 광장위에 흡연실에는 출장 가는 직장인들과 휴가 나온 군인들로 늘 북적인다. 그들의 틈에 섞여 담뱃불을 붙일 때 한눈에도 초라해 보이는 청년이 들어왔다. 얼굴은 흙빛으로 추위에 얼은 듯한 표정이었고 옷은 안쓰러울 정도로 얇았으며 왼쪽 손은 없는 듯 소매가 하늘거렸고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절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오물로 인해 다들 일부러 외면하는 쓰레기통위의 담배꽁초를 두리번거렸다. 담배 찾으세요? 라고 내가 물었고 그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봄추위에 언 눈빛만으로는 그가 초췌한 노숙자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맑은 사람이었다. 내가 담뱃갑 하나를 통째로 내밀었을 때 그는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건넸는데 담뱃갑을 뒤적이던 그는 곧 그중에 한 개비를 빼고는 남은 담배를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담뱃갑을 다시 돌려받았다. 승차장으로 가는 계단위에서 후회 했다 그걸 돌려받다니.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할 저녁이 있다.” – 이면우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중  대전으로 내려가는 차창으로는 오후의 햇볕이 가득했다. 나는 그 담배 갑을 돌려받지 않아도 됐었다. 아무 조건 없이 피어난 봄꽃과 품 하나 안들이고도 내리쬐는 봄볕에 내 얼굴을 들이밀며 담배 갑을 내게 돌려주는 청년의 거친 손에 미안했다. 그게 뭐라고 그게 무슨 재산이라고 그걸 돌려받다니.  맑은 눈빛의 그 청년이 허기질 때면 서울역의 어느 편의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머지 한손으로 컵라면 따위를 슬쩍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 광장의 의자에 떨어진 지갑을 팔 없는 소매에 숨기고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두려운 눈빛으로 지갑의 현금을 셀 수도 있을 것이다. 핸드백에 죽음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훔쳤던 김 아무개 씨처럼.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을 싣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날 오후 눈빛 맑은 그러나 한 팔이 없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청년의 순수함에 답을 해야만 했다.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으나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고. 55세의 김 아무개씨는 그렇게 죽었다. 심성 고운 맑은 눈빛의 청년 또한 그렇게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8-04-26 | hrights | 조회: 2415 | 추천: 16
-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 30년 전 : 엉뚱한 호기심에  30년 전 대학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딜 즈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요즘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주변은, 산정에 낀 운무처럼 늘 매캐한 최루탄 가스로 그윽할(?) 때가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백골단’이라고 불리던 사복경찰과 전경이 수시로 학교 주변을 에워싸고 불심검문을 해댔다. 나 같이 선량한(!) 학생들도 괜히 주눅이 들어 지냈던 기억이 지금도 기분 나쁘게 떠오른다. 집회가 있는 날은 학교 건물 곳곳이 가려질 정도로 근처 집이고 사람이고 최루탄을 뒤집어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대입전형에서 가고 싶은 대학을 먼저 정하고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때라, 내가 ‘대학’과 ‘과’를 정하고부터 집안은 물론 주위 어른들의 염려의 말을 적잖이 들어야 했다. ‘그 학교는 어떠니’, ‘그 과는 어떻다’느니, ‘절대 데모하는 근처에도 가지 마라’…. 다녀본 사람들보다 ‘빠싹하다’는 투였다. 그런 말들로 이미 단련된 나였기에 주위의 ‘꼬임’(!)에도 눈과 귀 모두 닫고 도서관과 하숙집만을 오갔다.  아니, 그런데…. 그런 내 눈에 척 들어와 박힌 책 제목이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우리 운동의 절박한 문제들]이란 부제를 눈여겨보았더라면 내 인생항로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 출처- yes24  ‘앞으로 무얼 하지….’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걸까’ 한창 고민하던 때여서였을까, 기어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의 책을 펴들고 말았다. 그 한 권의 책이 오늘의 나를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알려진 대로 블라디미르 레닌(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랴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의 대표적 저작으로 꼽히는 책이다. 그때는 이런 류의 책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아야 했다. 동아리방이나 학생회 사무실에 ‘짱박아’ 두고 읽어야 동티가 나지 않을 법한 책이었다.  놀랍게도 20세기에 막 들어서던 무렵인 1902년 세상에 나온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시 국제 노동운동에 횡행하고 있던 기회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학습’하며 이른바 ‘무지가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새겼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 2018년, 오늘을 살며 : 선택하는 삶  30년 전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우연’히 다가오는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상상도 하지 못할 분수령을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많은 이들이 함께 경험한 ‘촛불집회’였다.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우리 역사 중요한 고비마다 ‘필연’은 ‘우연’의 모습을 띠고 나타났다.  차가운 광장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던 촛불을 경험하며 우리는 지금 또 한 번의 분수령을 맞고 있다.  그 분수령 앞에서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운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언제 깨어져 꺼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로 무거운 돌을 던져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살얼음판 같은 역사 현장에 돌을 던져대고 있음에도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게 돌인지 아닌지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정권 창출이나 권력 쟁취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른바 ‘공신’(功臣)의 모습이나 예의 최순실과 같은 ‘고마운 분’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현실이기에 예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을 떠올리게 됐던 모양이다.  이 시대는 레닌이 살았던 시대보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몇 곱절 확장돼 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선택하지 말아야 할 ‘무엇’이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의 ‘우연’적 선택에 따라 역사의 수레바퀴가 10년 전으로, 아니면 더 과거로 미끄러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안희정, 김기식….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공신’(功臣)들의 궤도이탈에서 그 퇴행적 증후를 본다. 중차대한 역사의 고비 한가운데 서있다는 인식 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성취’에 취해 역사 자체를 되돌려버린 뼈아픈 사례를 무수히 보아온 우리들이다.  ‘역사’나 ‘사람’이 아니라 ‘개인’에 갇힐 때, 매몰될 때 그 후과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이명박근혜’ 9년의 역사는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9년의 역사는 30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제대로’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역사적’ 개인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이라면 모르겠지만….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8-04-24 | hrights | 조회: 2262 | 추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