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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것: ‘목포신항에 세월호 기억공원 만들기’(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1-30 11:59
조회
434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팽목항(진도항)의 노란 리본과 빨간등대가 시야에 들어오기 직전, 마음은 기대감에서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어여 가서 보고 싶다는 기대감과 단박에 대면해도 되나 하는 머뭇거림이 교차했다. 마음보다는 몸이 빨랐다. 발걸음은 저절로 빨간등대로 향했다. 벌써 10년...


‘가만히 있으라’, ‘움직이지 말고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믿고 기다리던 304명의 심장이 처절하게 할퀴어진 곳, 그곳이 저 섬들 너머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조여오는 곳, 긴 세월에 낡은 노란 리본들이 매서운 바람에 휘날리는 곳, 한겨울 진도 팽목항이었다.


팽목항 등대


선착장에서 자동차 여러 대를 싣고 제주로 떠날 채비를 하는 대형 페리호와 그 옆에서 녹슬어가는 허름한 컨테이너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0416 팽목기억관’... 녹슨 컨테이너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 가라앉아가는 세월호를 TV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당시 ‘대통령의 7시간’으로 분노하던 10년 전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현장으로 달려가지 못한 부끄러움이 겹쳐서였다. 작은 용기를 내어 살며시 두 번의 문을 열었다. 눈에 들어온 304명 청춘들의 사진... 그 앞에서 또 울컥했다. 상주하는 이 없어 더 허름해졌지만, 컨테이너 ‘기억관’ 내부의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 듯했다.


팽목항에 있는 0416팽목기억관


팽목항에 소규모나마 기억의 공간을 공식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유가족과 시민의 호소를 정부는 외면해왔다. 낡고 작은 컨테이너 기억관은 시민이 가까스로 지켜오고 있었다. 그 대신 정부는 팽목항 도보 10분 거리에 화려하고 깨끗한 ‘진도국민해양안전관’과 유스호스텔을 지어놓았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의미를 지닌 사람 형상의 거대 조형물과 함께...


각종 해양 관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훈련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안전관 정면에 설치된 야외수영장에는 아연실색했다. 유스호스텔 단체 이용자나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물놀이 시설 같았고, 안전훈련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도보 10분 거리에서 비바람에 삭아가는 컨테이너 ‘0416 팽목기념관’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전승해온 상징적인 장소 바로 옆의 물놀이장은 생뚱맞은 정도를 넘어 거의 ‘만행’처럼 여겨졌다. 국가가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 수준에 머문다는 것은 부끄럽고 화나는 일이었다.


팽목항에서 도보 10분거리에 있는 진도국민해양안전관. 건물 앞에 수영장이 설치되어있다


이런 씁쓸한 느낌을 가슴에 담고 목포신항만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3년, 지상에서 비바람을 받으며 7년을 버티고 있는 세월호 선체가 궁금해서였다. 세월호를 직접 보려면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정보공유 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기에 ‘거치소’의 위치 파악차 휴대전화 ‘네이버 지도’를 검색했다. ‘네이버 지도’에서는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가 아닌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안내소’가 나왔다. 같은 곳이려니 했다. 그런데 운전하며 지도의 방향을 자세히 보니 온라인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목포시청 내 안내 시설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번엔 ‘카카오맵’에서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를 검색해 주소를 확인한 뒤 핸들을 돌려 ‘거치소’로 향했다. 가며 생각했다. ‘네이버 지도’에 ‘거치소’가 아닌 ‘거치 안내소’만 검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리즘에 따른 안내라고 하기에는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는 숨은 전략이 일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방향을 돌려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첫인상은 씁쓸했다. 자동차 없이는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인데, 임시주차장이나 간이주차장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거치소 입구에 잠시 주차하고 철제 컨테이너 형태의 거치소에 문의하려는 찰나, “정문 근처에는 차대면 안 된다”, “다른 곳에 대라”는 큰 소리부터 들려왔다. 한적한 곳이기는 했지만 대로변에 사실상 ‘불법 주차’를 하게 만들었다. 내가 문의한 시간이 12시 58분, 출입은 1시부터 가능했으니, 불과 2분 전이었다. 그런데 거치소에서는 ‘시간 지켜 오라’는 타박부터 했다.


2분을 기다려 1시에 신분증을 맡기고 전화번호 등 정보공유에 동의를 하고 낡은 노란 리본이 줄줄이 매여있는 연두색 펜스를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임시주차장을 만들 공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주차장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것을 보면서도, 시민의 접근을 가능한 제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닐까, 세월호의 기억을 흐릿하게 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의구심을 키우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세월호는 거치소 입구에서 먼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접근 가능한 곳까지 다가가 보니 세월호는 ‘기억’이나 ‘기념’은커녕 ‘전시’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놓여있었다. 세월호에서 뜯어져 나온 온갖 부품들이 하나같이 고철이 되어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목포신항만에 있는 세월호와 그 파편들


세월호는 펜스에 막혀 몇십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는 거대한 고철처럼 삭아가고 있었다. 왜 이리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빨리 녹슬고 삭아서 더 이상 지상에 두기 곤란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것일까. 갑자기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이 생각났다. 1945년, 고향인 조선으로 돌아가려던 수천 명의 조선인을 수장시킨 ‘우키시마마루호’를 진상조사는커녕 바닷속에 9년간 방치했다가 분해해 고철로 팔아넘긴 70년 전 일본 정부처럼 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세 번째 의심이 들었다.


세월호. 녹색표시 위와 뒤에 있는 것은 TMC(심해광물탐사 회사)의 배이다. 세월호 관련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멀리서 보면 한 배처럼 보인다.


목포신항 주변에는 드넓은 땅이 많았다. 그곳에 ‘세월호 기억공원’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누워있는 세월호에 지붕이라도 씌워 부식을 늦추면서 아픈 야만의 역사를 기억하도록 개방형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가슴 아픈 폭력과 무책임의 역사인 세월호 침몰 사건을 두고두고 기록하고 기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진도의 팽목항에는 작은 기억관이라도 공식적으로 만들어 4.16연대 같은 곳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 차원에서의 해양안전문화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계기였던 세월호 사건을 희생자, 피해자, 함께 아파하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기억하는 일이 비할 수 없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징적 공간인 팽목항에 설치한 물놀이장은 철거해 마땅하다. 해양안전관이 행여라도 세월호 사건을 외면하는 야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억하고 체험해야 할 4월 16일의 아픔을 그저 안전시설로 대체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