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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검찰 장난감이 아니다 (김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52
조회
356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수임비리 변호사」 검찰과 언론이 내게 붙여준 호칭이다.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라고 부르는 순간 난 비리 변호사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비리 변호사로 호칭되면서 인터넷에는 내 이름을 포함한 비리 변호사 기사로 넘쳐나고 있다.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로 호칭한 이후부터 만나는 사람, 전화 통화한 사람들 중 일부는 나에게 “괜찮냐? 정말 괜찮냐?”고 물었다. 난 이미 비리 변호사로 낙인찍혀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곤혹스러웠고,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냐?”라고 묻는 사람은 날 아끼는 사람들이다.


날 아는 지인 중에서 “괜찮냐.” 묻지 않는 사람들 중 일부는 내게 무관심한 사람이었거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 자식 인권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그 새끼도 속은 썩어빠진 새끼였어.” 등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일 거다.


날 아예 모르는 사람은 “민변, 좌빨 새끼들 속이 시원하다.”에서부터 “죄진 놈들은 단호히 처벌받아야 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렇게 속수무책 비리 변호사가 되어버렸는지 참으로 난감하다.


난 공자 같은 현자로 살겠다는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 성품과 능력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자들의 이름을 팔거나 호칭하면서 살아 갈 능력조차도 전혀 없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정치를 권유한 사람은 꽤 많다. 그렇지만, 난 정치인이 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하다. 난 박근혜 대통령님을 주군으로 받들고 따를 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못하다.


심지어 치열하게 사는 삶도 나의 방식은 아니라며 믿고 있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다. 삼시세끼 먹고 살기 위하여 알량한 법률 지식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그저 그런 변호사에 불과하다.


한승헌 변호사님 말씀처럼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고 시늉내면서 산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날 비리 변호사로 부르는 순간, 난 정말로 부끄럽게 산 놈이 되어 버렸다. 돈 벌려는 욕심도 별로고, 돈 버는 재주도 별로 없는 변호사다. 그러나 이제는 돈 벌려고 범죄를 저지른 놈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아 온 과정에서 본의든 본의 아니든 다른 사람의 가슴에 피멍울 지게 한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부족한 인격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할 몫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리 변호사, 범죄자로 인터넷을 도배할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실은 없다. 민변 소속으로 소송을 수행한 변호사가 변호인단에 같이 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승낙한 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의혹을 밝히기 위하여 노력한 죄 밖에 없는데, 무엇을 반성해야 하나. 참 더럽다는 말이 제격인 것 같다.


내가 조사한 사건은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원인(死因)을 밝히는 것이었고, 장준하 선생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긴급조치로 복역한 내용에 대한 것이다. 검찰은 전혀 다른 사건을 동일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딱 맞는 말이다.


이번이 세 번째 수난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고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2년 6월 남짓 재판을 받고, 이명박 정부 때는 아무 이유 없이 1년 넘게 특수부에서 내사를 하더니, 이번엔 비리 변호사로 날 몰아친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을 왜 이리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검찰 표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날 비리 변호사라 부르며 6개월 넘게 희롱하다가, 지난 7월 13일 날 기소유예 하였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기가 막힌다. 난 용서해달라고 한 사실도 없고, 잘못하였다고 반성한 사실도 없으며, 검찰의 출석요구에도 불응하였기 때문에 애당초 기소유예를 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그러함에도 내 죄는 인정되지만, 검찰이 자비심을 베풀어 마치 날 용서해 준 것처럼 발표하였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난 검찰이 맘대로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난 검찰 처분에 대하여 날 기소하라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남들은 검찰 용서를 받기 위하여 온갖 로비도 하는데, 난 기소해 달라고, 법원에서 재판받을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야 하니 참 희한한 세상이다.


검찰에 더 이상 날 갖고 놀지 말고 기소해달라고 애걸(?)했지만 그들이 내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제 2라운드로 공이 넘어갔다. 검찰과 지리한 헌법소원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검찰이 선전포고한 명예 전쟁에 맞서는 것이 힘들고, 싸우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싸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나도 내 명예만큼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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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인권단체에 이런 개인적인 글을 써서 공간과 지면을 사유화해도 되는 것인지 양해 바랄 뿐입니다.)


* 관련 인터뷰 기사 보기
    - “나를 기소하라” (한겨레21 제1071호)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