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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법의 개혁 논의(이재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9-01 09:58
조회
269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지난 8월 20일 국회 간담회실에서 열린 계엄법 독소조항에 대한 토론회에 참가하였다. 계엄법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진단에는 동조하지 않고 계엄법 자체가 민주헌정을 파괴하는 자해적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였다. 2024년 12.3 비상계엄을 겪은 후 국회는 2025년 국무회의의 회의록과 국무위원의 서명 등 국무위원의 책임을 추궁하려는 요건을 추가하거나 국회의원의 신변 안전과 국회 공관 보호에 초점을 맞춘 소꿉놀이 같은 계엄법을 통과시켰다. 우선 헌법상 불체포특권이 보장된 국회의원을 위해 신변안전에 관한 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한편, 불법적인 비상계엄에 동조적인 국회의원들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상황이라면 국회에만 초점을 맞춘 이러한 법 개정은 계엄 권력의 통제에 그다지 실효성도 없다. 내란 당시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도, 12.3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결의에 이른 상황도 우연한 사건이었다. 국회는 국가 기능 전체 그리고 모든 국민이 헌정파괴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방책을 계엄법에 새겨넣어야 한다. 더구나 80년 한국 현대사에서 군대가 예비검속을 빌미로 자행한 ‘초법적·약식·자의적 처형’의 악몽을 떨쳐낼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1723-1780)은 계엄령을 법이 아니라 마지못해 용인되는 어떤 이물질로 취급하였다. 그는 계엄이 선포되면 법이 중단되고 사태가 진정된 후 사법부가 군사행동의 필요성 여부를 심사한다는 선에서 계엄과 법의 절충을 취했다. 그러나 평시 상태로 복귀한 후에 과거의 계엄을 법적으로 통제한다는 사고방식(스위치 이론)은 적절한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전쟁 수행을 위한 진성(bona fide) 계엄이든 권력 장악을 위한 가짜(mala fide) 계엄이든 계엄 권력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처단하고자 극단적으로 남용되기 때문에 사후적 통제는 잘해야 사후약방문(死後藥訪問)이며, 많은 경우 평시 상태로 복귀한 후에도 과거의 과오를 문책할 수 없는 타락한 질서에 머물기 때문이다. 물론 한두 세대가 지난 후에 과거사 정리의 틀 안에서 명예회복이나 경제적 보상이 상징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블랙스톤은 ‘법원이 열려 있어 모든 사람이 국법에 따라 재판받을 수 있는 평시’에는 계엄이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였다.1) 민간법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군사재판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는 군대폭력에 맞서서 가장 중요한 보루이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이러한 원칙을 선언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Ex parte Milligan 1866)2)은 근대적인 군사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전시에 민간인에 대한 군사재판을 시행하는 데에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제에는 미풍양속에 해당한다.
나는 계엄을 어쩔 수 없는 예외상태로 간주하고 나중에 법으로 규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운명론(스위치 이론)을 거부하고 계엄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4년 국제법협회(ILA)가 채택한 <비상사태 아래서 인권보호에 관한 파리최저기준>3)은 계엄 아래서 재판 혹은 계엄에 대한 사법적 통제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공한다. 몇 가지만 거론해 보겠다.
우선, <파리최저기준>은 계엄 자체에 대하여 의회의 정치적 통제를 위해서 의회의 존속과 항구적인 기능 유지를 강조한다. 계엄으로 의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의회를 해산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나아가 <파리최저기준>은 계엄 권력에 대한 의회의 통제 규정을 헌법에 도입할 것을 권고하고, 계엄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국회의 승인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한국에서 계엄선포에 대한 국회의 승인이 바람직하나 이는 헌법개정 사항으로 여겨진다. <파리최저기준>의 여타 제안들은 국회가 계엄법에 반영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둘째, <파리최저기준>에 비추어볼 때 가장 심각한 것은 계엄사령관의 무제약적인 권력이다. 계엄법은 계엄사령관에게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에 대한 관장권(제7조)과 지휘·감독권(제8조)을 부여한다. 이는 헌법상 대통령 중심제 아래 문민적 행정 계통과 지방자치제, 삼권분립을 형해화할 수 있다. 특히 고유한 헌법적 권한을 가진 사법기관들이 계엄사령관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게 된다는 규정은 사법부를 계엄권력의 합법적 도구로 전락시킨다. 실제로 지난 12.3내란에서 대법원이 계엄사령부에 어떻게 협력하였는지가 국회 상임위에서 초점화되었다. 대법원의 보신주의를 비난하기에 앞서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받도록 정한 계엄법과 이를 여전히 방치하는 국회를 책망했어야 했다. <파리최저기준>은 사법부(법원, 헌법재판소)가 선포된 계엄이 요건을 충족했는지, 개별적인 포고령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개별적인 조치들이 법령에 일치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계엄법은 사법부를 계엄권력을 통제하는 기구가 아니라 통제받는 기구로 상정하고 있다. 차제에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할 범위를 군사관련적 업무(질서유지, 인력 및 물자동원 조달, 군사작전)로 엄격히 한정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계엄사령관의 특별한 조치가 문제 된다. 한국의 계엄법 제9조 제1항은 비상계엄 지역 내에서 계엄사령관이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반드시 ‘법률로써’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계엄법은 이를 사령관의 ‘특별한 조치’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특별한 조치’의 구체적인 범위나 한계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사령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체포나 구금 등 인신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제한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결국 계엄사령관은 영장 없이 사람을 자의적으로 구금할 수 있게 된다. 자의적 체포와 연행은 한국현대사의 모든 불행과 연관된다.
넷째, 특별한 조치는 안보위협세력과 연관되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2.3내란과정에서 국정원 안보조사국이 안보위해세력의 명단을 작성한 사실이 불거졌다. 사태의 전개에 따라서 그러한 명단은 살생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계엄법 차원에서 어떤 방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체포·연행·구금의 목적과 방법, 구금 장소, 구금 해제 시점을 명료하게 법제화해야 한다. 전시에 선포된 진성 비상계엄에서는 인신구속절차에서 표준적인 영장주의가 제한된다는 점은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단 체포 구금된 사람들에 대한 구금의 적절성에 대한 심사절차habeas corpus가 확립되어야 한다. 물론 범죄의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은 안보위해세력(security risks)과 달리 현재의 형사소송법상 인신보호절차에 따른 보호를 받으면 충분하지만, 적과 협력할 소지가 있는 위협세력이라는 이유로 연행·구금된 사람들은 별도의 명확한 인신보호절차habeas corpus를 마련해야 한다. <파리최저기준>은 이러한 절차는 한국전쟁기에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경찰서에 소환하고서 자의적으로 처형한 전례를 극복하기 위해 구금기간을 비상사태가 종결된 시점까지 한정하고, 처단이 아닌 ‘예방적’ 혹은 ‘행정적’ 구금으로 한정한다. 그것은 적과의 협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일뿐 적과 협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처단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보위해를 이유로 체포, 구금, 소환을 당한 사람들은 그 사유의 적정성에 대해 사법적 혹은 준사법적 기구에 의한 심사를 청구할 수 있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가족의 면회와 접견권을 보장받으며, 그들의 수용조건도 죄수들의 수용조건보다 훨씬 양호해야 하며, 이러한 이유로 체포 구금되거나 석방되는 경우에 관보에 공시하도록 <파리최저기준>은 요구한다.
다섯째, 1981년 개정된 「계엄법」은 계엄군법회의가 재판할 수 있는 대상 범죄를 25종에서 13종으로 축소하였다(제10조 1항). 그런데 기타 범죄에 대해서는 민간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는데 이러한 범죄에 한해서 군사재판을 왜 시행해야 하는가? 또한, 심각한 범죄혐의자라고 하더라도 계엄의 종료 후 민간 법원이 재판할 수 있는데도 구태여 계엄하에서 군사법원이 민간인을 재판해야 하는가? 계엄법은 내란, 외환, 국교, 공안, 폭발물, 공무방해, 방화, 통화, 살인, 강도, 국가보안법 위반, 총포도검화약류법 위반, 그밖에 법률이 정한 군사상 필요에 따른 일정한 죄에 대해 군사법원의 재판을 예정한다. 사실 제주4.3사건과 한국전쟁에서 국방경비법과 국가보안법 등의 간첩죄, 이적죄, 내란죄만으로도 대규모 자의적 처형을 완수했기 때문에 처벌조항의 축소는 아무 의미도 없다. 파리최저기준은 특히 정치적 성격의 범죄에 대해서 군사재판소의 판결을 금지하고, 사형선고를 금지하고, 사형의 집행을 금지한다. 비상계엄 아래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도륙했던 역사적 체험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민간인을 군사법정에 세우지 않는 것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민간인의 범죄는 민간법정에서 군인의 범죄는 군사법정에서 다룬다. 독일은 군사법정을 설치하지 않고 군인의 범죄도 민간형사법정에서 다룬다. 스웨덴은 평시든 전시든 관계없이 군사법정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채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에서 자의적 재판을 배제하려는 열망이 법 제도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군사재판에 의한 사법살인을 겪고서도 민간인에 대한 군사재판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어쨌든 군사법원에 의한 정치재판이나 졸속재판을 막을 방책이 필요하다. 나는 군사법원은 오로지 군인에 대한 징계법원으로만 작동하고, 나머지 모든 형사사건은 민간법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문명국가의 절차적 권리에 여러모로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군대와 군대 법제는 항상 외부의 적에 대해서는 무능하고, 내부의 적에 대해서 과도하게 효과적이며, 본질적으로 잔인하고 자해적이다. 이번 기회에 계엄법 안에 계엄시 금지 사항을 범죄목록으로 명시해야 한다. 계엄시 금지 사항 위반행위를 헌정질서 파괴범죄로 규정해 공소시효를 영구히 배제해야 한다. 내란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한 자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12·3 내란범죄는 헌정질서 파괴범죄로서 특별법에 의해 공소시효가 배제되기 때문에 끝까지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시기는 국가폭력법제로서 계엄법, 군인복무기본법, 군형법, 군사법원법 등을 민주헌정과 인권보장의 시각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절호의 기회이다. 비상권력의 남용에 대항하는 제도적 구성 방식은 입법·사법·행정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할까지 아울러야 한다. 이러한 통제 기능들이 유기적으로 체계화되고, 동시진행형 장치로 결합한 경우에만 계엄은 고삐 풀린 예외상태가 아니라 특수한 법적 통제상태로 정립될 것이다.
1) William Blackstone,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 Bk.1, Chapter 13 (Of the Military and Maritime Stat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1765], p. 400.
2) 밀리건은 북군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이자 변호사로서 링컨의 노예해방도 비판하고 남북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이었다. 북군은 그를 반역자로 몰아 군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 후 인신보호청구가 받아들여져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군사위원회의 관할권을 부정하고 석방을 결정하였다.
3) 1984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61차 국제법협회International Law Association 회의는 국가의 존립life of a nation을 위협하는 비상사태의 선포 및 시행을 규율하는 파리최저기준(The Paris Minimum Standards of Human Rights Norms in a State of Emergency)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기준에는 비상사태 중에도 개인이 보장받는 훼손 불가능한non-derogable 권리와 자유를 명시한 16개 조항이 포함된다. 이는 조약은 아니지만 비상계엄에 대한 인권친화적인 통제원칙으로 부를 수 있고, 미구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나 인도에 반한 범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언급될 것이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