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민주시민교육의 참된 핵심은 무엇이어야 하나?(장은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8-03 16:43
조회
497

장은주/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배재고 사태’ 이후 새삼스럽게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끌어냈다고 자부하는 기성세대는,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서 혐오 문화가 일종의 놀이처럼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는 여기저기서 절박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재오 이사장은 답답했던지 본인이 직접 배재고에 가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했다고 하고,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는 서둘러 학교민주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을 발표하는가 하면, 근현대사 교육의 비중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마련했다고 한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2학기부터 ‘혐오·차별 대응 가이드북’을 만들어 전국 학교에 보급할 계획도 밝혔다.

다 좋다. 사실 ‘일베’ 유의 혐오 문화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진작부터 학교에서든 시민사회에서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대한 요구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갖고 있다고 늘 표명해왔던 민주당 정권 아래에서도 이를 제대로 실천하기를 주저하거나 미뤄 왔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실제로 국민의 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 결국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강화할 뿐이라고 반대해 왔고, 개신교 쪽 일부에서는 심지어 민주시민교육이 학교에서 동성애를 확산할 거라며 저항하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도, 여기저기서 미래 세대가 올바른 시민적 소양을 갖게끔 하는 일에 이제라도 뭐든 해보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너무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이다. 보도를 보면 이재오 이사장의 특강 때 졸지 않고 제대로 들은 배재고 학생들은 극소수뿐이라고 하는데, 학교에서 이런 식의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까 싶다. 설사 학생들이 그런 유의 강의를 전부 제대로 들었다고 해서 이미 재미있는 놀이로 자리 잡은 혐오 문화가 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교위 발표대로 앞으로 (2030년 중학교부터) 역사 시간에 근현대사 비중을 높여 학생들이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 운동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공부를 더 많이 한다면 사정이 달라질까? 혐오·차별 대응 가이드북을 학교에 보급해서 학생들이 무엇이 혐오 표현이고 그런 표현의 사용을 왜 자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받으면 혐오 놀이가 줄어들까?

국교위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모델 삼아 정리해 냈다는 학교민주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은 틀림없이 진일보한 면이 있다. 이런 원칙을 통해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한 균형 잡힌 교육을 강조하는 걸 넘어 헌법 가치는 물론 혐오와 차별의 배제에 대한 교육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나아가 이런 교육을 하는 데서 늘 가해지는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줄이기 위해 교사들에게 면책권을 주는 법 개정도 추진한다고 하니 일단 입법화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MBC 뉴스 영상 갈무리


 

사실 그동안 우리 학교에서는 합당한 원칙이 없어서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건 아니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적 금치산자’로 족쇄가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직업적 안정성마저 위태롭게 하며 민주시민교육을 강행할 의지를 가진 교사는 별로 없었다. 교사들에게 온전하게 정치적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시민교육 강화 선언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그냥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국교위가 추진하는 민주시민교육 원칙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교사 면책권 보장이 최선의 방식으로 입법 단계를 통과하더라도 남아 있는 문제가 많다. 우선, 온통 상급학교 입시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한국의 학교 교육 현실에서 도대체 무슨 시간에 누가 민주시민교육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걸린다. 그냥 단발성 특강이나 계기 교육으로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게 이미 입증되었다. 다른 나라들처럼 민주시민교육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필수 독립 교과목이 없는 상태에서 역사 과목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늘리는 방식의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시민교육의 독립 교과화가 절실하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민주시민교육은 단순히 특정 교과나 지식에 관한 교육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핵심만 말하자면, 민주시민교육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삶의 양식’의 창출과 재생산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학교의 일상적 생활에서부터 차이의 존중, 상대의 의견 경청, 이질성에 대한 포용과 관용, 차별과 혐오의 배제, 상회 신뢰, 연대적 협력 같은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습득하고 내면화하여 말하자면 ‘제2의 본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데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지향이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자체가 민주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될 뿐만 아니라, 전체 교과 수업에서 연대적 탐구 학습이 가능한 협동 학습이나 프로젝트 학습 방식을 일반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과 외 학습 활동을 통해서도 말이나 지식이 아닌 일상적 삶의 일부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태도를 몸에 배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학교 교육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민주적 시민을 길러내는 과제를 철저히 내버리고 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중학교부터 모든 평가에서 상대평가가 원칙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 방식은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을 성적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등 민주적 삶의 양식을 심화해야 한다는 민주시민교육의 목적에 원천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입시 중심의 한국 학교 교육은 그 근본에서부터 민주적 시민의 양성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 교육의 많은 무비판적 관행과 지향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모든 걸 한꺼번에 다 바꿀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쉬운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가야 할 것이다.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더 많은 사회적 논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