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혁용(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중(병원장),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교수), 이재승(건국대학교 법전문대학원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 글을 씁니다.
‘시민 주도 신형사소송법’, 형사법체계의 정상화를 위한 시대적 합의(서보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6-23 17:24
조회
506
서보학/ 인권연대 운영위원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간 유지되어 온 검찰 중심의 형사사법구조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사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역사가 증명하듯 권한이 특정 개인이나 기관에 집중되면 결국 남용되기 마련이다. 최근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서 드러난 검찰의 표적·강압·조작 수사의 실태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다양한 경력의 법학자, 변호사,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여 '시민 주도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 모임'을 결성하였다. 지난 4월부터 치열한 토론과 숙의를 거친 끝에, 6월 5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내용과 취지를 담은 설명자료를 발표하였다. 필자도 그 일원으로 개정 논의에 참여하였다. 이는 총리실 개혁추진단이 검사의 눈높이에서 만든 개정안 내놓기를 기다렸다가 수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직접 개정안을 만들어 형사법체계의 변화를 주도하자는 강력한 의지의 결과였다.
이번에 시민이 주도하여 만든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의미는 기관 간의 단순한 권한 조정을 넘어선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을 떠나 헌법상 권력분립과 적법절차의 원리, 인권존중의 요구를 형사사법 실무에 온전히 구현하려는 시도이다. 나아가 검찰 지배적 형사법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해체하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형 형사소송법'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이기도 하다.
이번 개정안은 총 106개 조항의 전면 개정을 통해 ①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 ② 수사 과정 전반에 걸친 시민 인권보호 장치의 획기적 강화, ③ 체계 대전환 속에서도 범죄수사역량의 빈틈없는 유지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고자 했다. 주요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 실현이다. 개정안은 검사의 직접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은 물론, 직접 보완수사권까지 전면 폐지하였다. 이에 따라 형사소송법상 수사 주체는 현행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서 '사법경찰관'으로 일원화된다.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면 검사는 기소 전담 기관인 공소청 소속으로서 기소 업무만 전담하게 된다. 수사의 완결성을 명분으로 모든 사건의 종결을 검사에게 떠넘기는 '전건송치주의'나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철저히 차단하였다.
기존 체계는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검사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부여함으로써 형사절차 전반을 통제하는 강력한 권한을 집중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여러 강압 수사와 조작 기소 사례는 권한 집중이 필연적으로 남용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개정안은 수사 주체를 사법경찰관(경찰 및 중수청 소속)으로 일원화하고 기소는 별도의 공소청이 담당하도록 하여, 권력분립 원리를 형사절차 내부에 실질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둘째, 시민의 인권보호 장치를 법률적 차원으로 격상하였다. 그동안 자백 강요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장시간·심야 조사와 반복적 출석 요구를 금지하는 조항을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에 직접 신설하였다. 또한 각 수사기관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개방형 직위인 '수사인권보호관'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수사 과정의 인권침해를 즉각 시정하고 위법 수사관의 교체 및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수사인권보호관 제도는 외부 전문가에 의한 상시적 감시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수사기관 내부 자기통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피의자 신문 시에는 피의자와 변호인의 메모권을 보장하고, 변호인이 피의자 곁에서 실질적으로 조력할 수 있도록 동석의 위치와 권한을 법에 명문화하였다. 나아가 피의자 진술은 최초 진술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을 의무적으로 녹음·영상녹화하도록 하여 인권보장과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강압적 심문을 방지하고자 했다.
신체 구속과 관련해서는 사법경찰관·검사·공수처 검사의 구속기간을 현행 10일에서 7일로 단축하고, 연장은 1차에 한 해 7일로 제한하였다.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는 전자장치 부착 등 조건을 달아 법원이 석방을 명할 수 있는 '조건부 석방제도'를 신설하여 불필요한 신체 구속을 최소화했다. 압수·수색 영장의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법관이 영장 발부 전 수사기관이나 참고인을 심문할 수 있는 '사전심문제'도 도입하였다. 또한 전자정보 압수·수색 시에는 검색어와 대상 기간 등 구체적 집행계획을 영장청구서에 기재하도록 하여, 무분별한 디지털 압수수색으로부터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진일보한 제도를 마련했다.

셋째, 기소권·영장청구권 독점의 해체와 시민의 사법적 통제이다. 검사의 전속적 기소권에 대한 시민의 직접 통제를 제도화하기 위해 지방법원 단위로 국민 9인으로 구성되는 '공소심의회'를 신설하고 그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하였다. 예컨대 검사가 불기소처분한 사건에 대해 심의회가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기소를 의결하면,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가 공소를 제기하고 공소 취소 없이 끝까지 재판을 수행한다. 반대로 심의회가 불기소를 의결하면 검사가 기소할 수 없다. 이는 위법한 수사 및 조작된 증거에 기초한 기소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방지하는 장치이며,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실질적 견제로서 국민주권 원리를 형사사법 영역에 직접 반영하는 제도적 혁신이다.
아울러 공소 제기와 수행 전반에서 검사의 객관의무를 명문화하여, 검사가 일방적 추궁자가 아닌 객관적·중립적인 공소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검사의 기소권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소기각 사유도 구체화·다양화했다. 검사의 위법한 기소로부터 국민을 조기에 구제하기 위해 '중대한 위법 수사에 기하여 공소가 제기되었을 때'와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여 공소가 제기되었을 때'를 새로운 공소기각 사유로 추가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법원은 본격적인 실체 심리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위법한 기소를 조기에 걸러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사실상 검찰의 재량에 맡겨져 있던 영장심의위원회의 구성 방식을 개선하여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에 대한 실질적 견제를 강화했다. 재정신청제도 역시 개선하여 법원이 기소명령을 내릴 경우 검사 대신 지정변호사가 공소 제기 및 유지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고, 수사기관의 봐주기식 부실수사가 있었던 경우에는 법원이 '재수사'까지 명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하여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한층 강화했다.
넷째, 빈틈없는 범죄수사역량의 유지이다. 수사·기소 분리라는 큰 틀의 전환이 수사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사건 송치 후 검사는 지체 없이 보완수사요구를 하도록 했고, 그 방식을 표준화·문서화했으며, 검사가 보완수사의 이행 여부를 철저히 관리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과했다. 수사기관 간 사건 경합을 조정하기 위한 '수사권관할조정협의회'를 설치하는 한편, '제 식구 감싸기'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소속 공무원의 범죄를 스스로 수사할 수 없도록 '수사기관 상피제도'를 신설하여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했다. 또한 스스로 고소·고발할 능력이 없는 아동·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주체를 고발인까지 확대했다.
이러한 내용의 '시민 주도 신형사소송법'은 지난 72년간 왜곡되어 온 국가 형벌권의 구조를 정상화하려는 시대적 결단이다. 권력은 나눌 때 비로소 투명해지고 견제받을 때 비로소 국민을 향한다는 헌법정신을 형사절차 전 영역에서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이 개정안은 진영 논리에 갇힌 기관 간의 다툼이 아니라 학계, 법률가, 시민사회가 수개월에 걸친 숙의를 통해 만들어 낸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수사와 기소를 실질적으로 분리하는 핵심 조항들은 그 시급성을 고려할 때 다가오는 임시국회에서부터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한다. 인권보호 장치의 법제화, 공소심의회와 같은 시민참여형 기소통제 제도, 그리고 빈틈없는 수사역량 유지를 위한 보완장치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패키지로 함께 검토되어야 마땅하다. 수사·기소 분리는 더는 선택적 개혁이 아니라 권력남용 방지를 위한 구조적 필수조건이다. 인권보장 장치의 법률화 역시 형식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수사 관행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강제적인 규범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시민 참여에 의한 통제 장치 또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이므로, 그 실효성을 담보할 충분한 권한과 절차적 보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모든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법이다. 이번 개정안이 담고 있는 시민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숙의 결과가 정치적 셈법에 가려지지 않고 국회 논의 과정에 충실히 반영되어, 마침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형사법체계로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시민 주도 신형사소송법'이 던진 화두가 이번 국회 논의의 출발점이자 중심축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