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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잠연의 가물치, 그리고 놀고 있는 통발 - 인권평화연구원의 과제 탐색 ① -(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6-09 15:12
조회
391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전주대학교 명예교수


 

※ 앞으로 내 칼럼은 차례가 돌아오는 대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지역-농업(농촌)-공유’라는 범위에서 계속 다루어보려고 한다. 이 주제는 앞으로 인권평화연구원에서 공동으로 탐구했으면 하는 주제이다. 이들 이슈에서 어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어쩌다 나아지는 국면도 있겠지만, 조금 길게 보면 ‘저무는 근대 문명’의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역사학도로서의 불안감 때문이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말씀 기다린다. hallimoh@hanmail.net

 

버스를 타고 만경강 다리를 건널 때면 저기 물고기 많을 텐데, 하며 입맛을 다신 지 오래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뭔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어쩌다 호기심을 보이지만 이내 관심에서 멀어진다. 아무래도 체험으로도 상상으로도 닿기 어려운 딴 세상 얘기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삼천변을 걸을 때도 이 병이 도진다. 삼천은 전주를 가로지르는 전주천과 함께 시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로이다. 봄이면 화사한 벚꽃을 선사하고 지금은 기생초, 데이지가 하늘거린다. 전주천이 동남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며 만경강에서 만나고, 삼천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며 만경강에서 합류한다. 전주는 삼천과 전주천을 품고 있다.

 


[사진1(왼쪽) : 만경강 습지. 김제평야를 기름지게 하는 자연의 선물이다.]


[사진2(오른쪽) : 전주를 여유롭게 만드는 두 개천이 삼천과 전주천이다. 모두 만경강에 합류한다.]


 

삼천은 어지간해서 얼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삼천이 언 걸 보기는 지난 겨울이 처음인 듯하다. 그나마 일부였고 또 길지도 않았다. 하여간 잠시나마 언 삼천을 보면서 저기서 썰매를 탈 수 있을까 싶었다. 어릴 적 할머니의 걱정을 뒤로 하고 아이들과 새벽부터 썰매 타러 나가던 기억이 따라왔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썰매를 탈까, 문득 궁금해졌다.

가끔 낚시하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불법’이다. 지방하천으로 사람들이 수영하거나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어있다. 낭만이 그리운 사람들이 낚시를 할지언정, 수영이라니! 누가 저 보기에도 더러운 물에 들어가 수영을…. 그래도 물은 점점 맑아지고 있다. 청둥오리나 백로가 한가로이 물고기를 잡는 모습은 늘 볼 수 있다. 나도 저러고 싶었다.

① 너댓 명의 아이들이 모인다.

② 누군가 집에서 작은 냄비나 솥, 고추장, 성냥 따위를 챙겨서 나온다.

③ 내깔(냇가)로 가는 도중에 아무네 볏가리에서 짚단을, 또 고추, 깻잎, 파, 호박 등을 누군가의 밭이나 뚝에서 챙긴다. (저 ‘내깔’은 지도에 ‘학정천’이라고 적혀 있는데, 우리는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깔’이었고, 여름에는 멱감고, 겨울에는 썰매와 스케이트로 해지는 줄 모르던 우리의 영토 중 하나였다.)

④ 아이들은 홀딱 벗고 내깔로 들어가 붕어를 ‘움킨다’. 우리는 정말 물속의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았다.

⑤ 주로 붕어를 잡았다. 가끔 메기, 가물치, 뱀장어 등을 잡기도 한다. 보(洑)를 타고 올라오는 10cm 정도 되는 작은 뱀장어 새끼들은 잡지 않았다. 어차피 자라면 나중에 우리가 잡아먹을 거니까.

⑥ 적당히 잡으면 보에서 붕어 배를 딴다. 내장을 제거하는 것이다. 헹군다.

⑦ 끓는 동안 우리는 멱을 감는다.

⑧ 둘러앉아 떠들며 먹는다. 먹을 만큼 먹으면 또 멱을 감으며 논다.

우리가 싱싱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을 때를 떠올렸다. 이 경험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사람들의 주변에 있던 강이나 시내, 연못, 늪지에서 늘 하던 일상 생활방식이었다. 여기서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었다. 잠깐만 그물질하면 분유통으로 하나 가득 붕어를 잡을 수 있었다. 이중 아주 조금만 졸여서 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하지만 배 따고 씻어서 뒤란 항아리들 위에 올려놓아 말린 뒤 짚불에 구우면 바삭한 간식이 된다. 입이 구진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꺼내 먹었다.

미꾸라지는 어떤가. 요즘 추어탕 끓이는 귀여운 미꾸라지는 잡지도 않았다. 어른 손가락 굵기의 먹음직한 것들만 잡아도 충분했다. (미안하지만) 소금 뿌려 펄펄 뛰는 얘들을 잠재운 뒤 호박잎에 쌓아 짚불에 넣는다. 적당하게 익힌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살점을 발라먹는 맛이라니…. 우렁이는 쫀득한 식감에서 보면 으뜸이었고, 이것들은 더 쉽게 논두렁에서 건져올 수 있었다. 내가 어디 아픈 데 없이 그럭저럭 건강하게 사는 건 다 얘들 덕분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를 낭만적 회고라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는 미화될 수도 있고, 다시 반복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력에 대한 희구와 다양한 삶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 예전과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현실화하지 못한다고 예단하는 것도 성급하지 않을까.

그래서 소박하게 결심하였다. 우선 연구실 앞에 있는 천잠연에 사는 것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천잠연은 뒷산 천잠산을 따서 지은 연못 이름이다. 전주대 내 연구실 앞에 있다. 거기에는 가끔 물고기가 뛰고, 햇볕 쬐러 나온 자라, 수초에 몰려든 가물치가 눈으로 보아도 차고 넘칠 정도다. 연못 주변을 어슬렁거릴 때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한참 골라 그물을 하나 장만했다. 된장을 넣고 물고기를 유인한 뒤 들어오면 나가기 어렵게 만든 통발이었다. 내 야무진 계획을 들은 친구가 한마디했다. “내가 징계위원회에서 자넬 보지 않게 해줘.” 천잠연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도 교칙 위반이라고 한다. 그래도 마음을 접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동료가 덧붙였다. “저기는 물고기에서 냄새나서 못 먹을 거예요.” 조금씩 배수를 한다고 해도 대체로 고여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사진3(왼쪽) : 전주대에 있는 천잠연. 물고기가 넘친다.]


[사진4(오른쪽) : 천잠연에서 붕어, 가물치 잡으려고 샀던 통발. 어쩌면 제 몫을 못하고 폐기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퇴각했다. 무기력하게. 그 뒤로 누누이 스스로 물어보았다. 정말 교칙 때문에, 또 잡은 물고기에서 냄새가 날까봐 잡지 않은 것인가? 교칙과 냄새를 무릅쓰고 굳이 저것들을 잡을 이유가 내 생활에 없었던 것이겠지. 이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누가 언제부터 학정천이나 삼천이 지방하천이라고 고기 잡으면 안 된다고 경고할 권력을 부여했는가? 이 일방적 금지 역시 근거는 빈약하다고 생각하지만, 금지를 거부하면 귀찮고 불편한 일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것이 이유의 다였을까?

실은 내 맘속에 만경강과 삼천을 볼 때마다 느낀 동경 한편으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더는 붕어나 가물치를 맨손으로 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말이다. 맨손으로 움키기는커녕 그물을 주어도 제대로 잡지 못할지 모른다. 이제는 맨발로 저 ‘더러운 개흙’을 쑥쑥 밟고 ‘오염된 냇물’에 몸을 담근 채 쭈그려 앉아 수초에 팔을 쓸리기에는 내가 너무 청결하게 살고 있던 것이다. 나는 문명화되었고, 내 몸은 너무 깨끗한 데 익숙하다. 개흙은 물론 잔디밭의 흙도 만져본 기억이 언제던가. 개천물은커녕 수돗물 외에 다른 물에 손이나 몸을 담가본 적도 없는 듯하다.

감각과 민첩성을 또 어떤가. 개천에 쭈그려 앉아 더듬더듬 수초 사이를 탐색하는 정밀도, 물고기와 다른 것을 구별하는 감각, 손 어딘가 닿은 놈을 낚아채는 기밀함을 발휘할 재간이 남아 않았다. 뭐든 사먹고 살고 있으니. 어쩌면 난 이미 잃어버린 자립성, 원시성, 야생성을 직감했는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DNA에 내재하던 생명력 같은 걸 잃었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통발은 일부러 버리지 않았다. 그걸 버리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연구실 귀퉁이에 놓여 있는 그물을 보면서 잊지나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이 넘었다. 그러다 늦기 전에 잃어버린 몸의 감각과 생생함을 찾고 싶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흙, 둠벙, 논밭, 지역에 다가가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