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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삶?(정범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4-27 09:52
조회
273
정범구/ 장발장은행장
TV를 보다가 한 장면에 눈이 갔다. 중국집 주방에서 음식을 기름에 튀기는 작업을 기계가 하는 장면이었다. 요새 로봇이나 AI를 응용한 기술들이 하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장면은 무척 신기했다. 무슨 첨단 제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작업은 전통적으로 숙련된 주방장의 현란한 손목 돌림과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것일 텐데 AI를 응용한 기계 팔이 대신하고 있었던 게다.
흔히들 AI가 대체할 수 있을 미래의 직업들이 입에 오르내린다. 많은 사람이 판사, 검사, 변호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재판이라는 것이 과거의 판례들을 기반으로 기소하고 판결, 또는 변호하는 일일 테니, 그런 일은 오히려 사람보다 AI가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더군다나 판사 입맛에 따라 형량이 제각각인 지금 사법 현실에서, 그리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무리한 기소, 사또 재판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던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생각보다 영향받을 가능성 있는 직업”으로는 기자를 지목한다. 지금과 같이 단순 뉴스 작성과 속보 작성 위주로 기사를 내보낸다면 대체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단순 콘텐츠 제작자나 은행 창구 직원, 계산원 등은 이미 영향받는 직업이다.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사람들은 이제 점점 더 자기 자신의 “쓸모”, “유용함”을 걱정하고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AI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늘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에 생각이 멈춘다. 현직에서 물러난 은퇴자들 이야기이다. 빠르면 50대부터 ‘퇴직 후 삶’을 꾸려가야 하는 이들에게 흔히 말하는 ‘100세 시대’는 때론 가혹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쓸모가 나름 ‘시장’에서 인정받던 삶으로부터 이제 시장 밖으로 밀려난 삶은 가혹하다. 과거 100만 원짜리를 이제 만 원에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더구나 은퇴 후 삶이 물질적으로도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이들에게 시장으로부터의 ‘내쳐짐’은 더욱 험난하다. 이들이 자신들을 디스카운트해서라도 시장에서 “쓸모 있음”을 증명받기 위해 벌이는 사투는 종종 입주민들에게 비인간적 처우를 받다 생을 마감하는 아파트 관리인의 극단적 이야기로 등장하기도 하고, 단편 소설 소재가 되기도 한다.
물질적 걱정이 덜한 은퇴자들에게도 쓸모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밀려 나와 ‘무위도식’하는, 한마디로 밥만 축내고 사는 삶에 대한 자괴감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잊혀 가는 자신의 존재와 과거 잘나가던 시절의 화려한 추억 사이에서 자칫 “라테 꼰대”의 길로 빠져드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쓸모가 반드시 시장에서 ‘노동’으로 교환될 때만 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고, 노력을 제공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쓸모인가? 얼마 전 ‘인권연대’에서는 홍세화 상 제1회 수상자로 제주참여환경연대 박유라 사무국장을 선정하여 상을 주었다. “홍세화 선생처럼 이타적인 삶을 살며, 사회와 타인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고 있으나 아직 주목받지 못한 젊은 활동가”라는 선발 기준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과 공동체를 위하여 꾸준히 활동해 온 청년, 그러나 “주목받지 못한” 이에게 사회가 주는 격려와 위로를 담은 상이었다. “꾸준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하는 성경 구절까지 떠올리게 한 상이다.
그가 11년 동안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바친 시간은 마냥 신념에 찬 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 앞가림에 약삭빠른 세태에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고, 자신을 밀치고 앞으로만 뛰어가는 사람들에게 밀려 수 없이 쓰러졌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길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청년들의 손을 ‘홍세화 상’은 잡아주고 싶었다.
상금으로 받은 500만 원을 박유라 사무국장은 곧바로 다른 단체들에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인생의 사업에서 누구나 다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 인생의 삶에서는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위한 헌신! AI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쓸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