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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권력을 잃은 자, 김건희(박록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2-06 17:19
조회
239

박록삼/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도 십 년을 넘기기 어려운 법입니다. 달이 차면 이지러질 테고, 열흘 붉은 꽃도 없는 것이고요. 우리 시대에서 보편화한 민주주의 속 권력은 늘 움직입니다. 권력을 독점하지 않도록 분립하게 해서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하게 했고, 정당 간 경쟁을 통한 권력의 교체를 제도화했습니다. 꼭 이러한 현대 민주주의가 아니라도 과거 역시 그러했습니다. 고래로 세상의 인심은 전횡과 독주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인 봉건시대 송나라, 명나라 문인들이 저렇게 한 말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으니 권력의 이치란 동서고금에 걸쳐 한 모양인 듯합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무상하고 허망한 일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칭했으나 권력자들 주변 이들에게 아예 ‘V0’로 통했던 최고 권력자 김건희 씨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매일 술이나 마시고 떠들기나 좋아하는 현직 대통령을 ‘V1’ 허수아비로 내세우는 대신, 국정의 여기저기 깊숙이 관여하며 노심초사하던 자신의 고초를 알아주는 이조차 없었으니 분통 터질 일이었을 것입니다.

김건희 씨는 취임하자마자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정권 운영에 대한 의지를 다졌습니다. 자살 예방을 위해 마포대교에 직접 올라 안전시설을 시찰하기도 했고, 마음 건강 예산을 1조원이나 긴급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무책임의 극치였던 대통령 대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찾아 아련한 표정으로 추모하기도 했으며, 경찰학교 졸업식에서 여생도들과 따로 간담회를 갖고 헌신적 경찰 행정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뿐이었나요. 대통령실, 정부, 그리고 총선 공천에 이르기까지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하기 위한 인사도 고심했지요. 영국 여왕 장례 참석, 캄보디아 방문 등 국가 외교에도 적극적이었으니 그의 왕성한 활동은 최고 권력자 그 자체였습니다. 말들이야 많지만, 경복궁 근정전 왕의 의자에 잠시 앉은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국정 개입이니 뭐니 떠드는 이들에 대해 아마도 김건희 씨는 답답한 마음도 컸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를 명확히 알아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우인성 부장판사입니다. 그는 김건희 씨가 당대 최고 권력자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우 판사는 지난달 28일 김건희 1심 선고 법정에서 김건희 씨를 ‘권력을 잃은 자’로 칭했습니다.

우 판사는 선고에 앞서 “옛말에 ‘형무등급 그리고 추물이불양’이라는 말이 있다. 법의 적용에는 그 적용을 받는 사람이 권력자이든 아니면 권력을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다”면서 “마찬가지로 ‘인 두비오 프로 레오’, 즉 ‘불분명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와 같은 법의 일반원칙도 피고인이 권력자라 하여, 권력을 잃은 자라 하여 다르게 나눠서 적용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빗나간 소리지만 우 판사, 일단 문자 속이 기특합니다. 흔히 쓰는 법언을 라틴어로 말한 뒤 친절히 소개하는 자상함도 엿보입니다. 한자어도 난무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문 쪽에 취약함이 있을 텐데, 역시 자세히 뜻을 풀어 소개해줍니다. 물론 높은 법대의 권위를 개인의 권위로 만드는 장치인 듯도 합니다.

우 판사는 그러고서 대다수 국민이 기함할 만한 일을 벌였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와 명태균 씨로부터 받은 여론조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통일교로부터 명품 목걸이를 받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징역 1년 8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15년을 구형한 특검이 민망해질 일이었습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으나, 이제는 ‘권력을 잃은 자’가 된 김건희 씨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관대한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이날 법정에서 우 판사의 관대함에 배꼽 인사로 화답한 김건희 씨는 이 선고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이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냈습니다. 조만간 서울고등법원에서 법이 얼마나 상식에 부합하는지, 법 왜곡이 있는지, 또 권력을 잃은 자의 주장대로 혹여 부당한 수사와 여론몰이에 시달렸는지를 확인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KBS뉴스 영상 갈무리


 

하여튼 이 희대의 판결 앞에 세상은 우 판사의 기존 판결 사례들도 다시 관심을 가졌습니다. 권력자에게도, 권력을 잃은 자에게도 예외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우 판사는 2024년 5월 세상을 몸서리치게 했던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의 피고인 최 모 씨에게 1심에서 징역 26년 형을 선고한 인물이었습니다. 얼굴과 목 부위만 무려 스무 곳이 넘게 찌르고 베어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사체까지 유기한 잔혹한 범죄였죠. 검찰은 이 반사회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사형과 전자장치 부착 30년 및 보호관찰 명령을 구형했지만, 우 판사는 징역 26년형과 함께 전자발찌 부착 명령 등은 기각했습니다. 재범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향후 사회에 이바지할 것을 고려해서 선고한다’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흉악한 살인범 최 씨가 수능 만점자이며 현재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2심에서 ‘계획적인 범죄 정황이 확인됐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형량이 30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 판사는 ‘권력을 잃은 자’는 물론 ‘앞으로 권력을 가질 자’에 대해서도 예외와 차별을 두지 않고 충분히 관대하게 대하는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또 있습니다. 대선 기간이던 2021년 당시 이재명 후보를 가리켜 ‘소년원 출신’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각종 가짜뉴스를 전하던 가세연의 강용석 씨 김세의 씨에 대해서도 일부 유죄이고, ‘소년원 출신 발언’은 무죄로 판단해 벌금 1000만원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는 ‘권력을 가질 자’를 거들었던 사람에 대한 우 판사의 관대함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심 서을고법에서는 우 판사의 무죄 1심을 파기하고 강 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으로 그 죄를 명확히 물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우 판사는 이른바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맡아 1심에서 해당 국회의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2심에서 모두 무죄로 뒤집혔습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조폭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반복 제기한 장영하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항소심에서 우 판사의 판결은 파기됐고, 장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우 판사에게는 권력을 가졌건, 권력을 잃었건, 앞으로 권력을 가질 것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편에게는 예외와 차별 없이 관대하고, 나의 편이 아닌 쪽에는 추상같았습니다. 그저 판사의 권위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확고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봄,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국민의 선택 자체를 무산시키고, 반헌법적 내란 세력의 손을 들어주려 했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 판사는 고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윤석열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재판도 맡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면죄부를 주려면 뭔가 그럴싸한 논리를 마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이미 우 판사는 특검법에서 정한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1심의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라는 조항도 사실상 무시한 채 늑장 판결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사법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으니 국민들은 쉬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비상계엄 내란의 공포와 불안이 쉬 가시지 않습니다. ‘사법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가 더 극심해지기 전에 사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장치 마련이 시급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