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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30
조회
502

- 표류하는 2016. 한국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민생 말고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 방송 진행자의 멘트였다.
역시 말도 격식을 깰 때 신선하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파격적인 언사를 방송에 흘린 그 진행자는 다행히도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골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이 말은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에 육박하는 영화 ‘곡성(哭聲)'에 등장하는 대사다.


영화 속 딸로 등장하는 효진(김환희 분)이 이상증세를 보이자 경찰인 아버지(곽도원 분)가 “니 그 사람 만난 적 있제? 말혀 봐. 중요한 문제잉께”라고 묻는다. 그러자 효진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고 귀기(鬼氣)어린 소리를 질러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유명세를 탔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잖아'라는 대사 자체의 뜻은 유별나지 않지만 배우의 호연(好演)으로 유행어가 됐다. 이 점에서 2015년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유아인 분)가 남긴 유행어 “어이가 없네”와 닮아 있다. ‘어이가 없다’는 표현 역시 평소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유아인의 강렬한 연기 덕분에 지난해 하반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언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언어는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개념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생겨나거나, 기존의 개념에 더해 새로운 가치를 담은 개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새로운 유행어나 신조어들을 하나의 속어나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판단해서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때가 많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보다 넓은 안목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하게 변하고 있어 새로운 유행어와 신조어가 금방 나타났다 눈 깜짝할 새 사라지기도 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IT매체가 널리 보급돼 있는 현실에서 유행어는 과거와는 또 다른 함의를 지닐 때도 적지 않다. 이러한 유행어들은 일반적으로 우연성이 강하지만,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 말을 쓰는 언중들 사이의 공감대가 없이는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라고 묻는 유행어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는 말 끝마디에 방점이 찍히는 듯하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돌아가는 세상, 또 그렇게 만드는 세태로 인해 이 말이 유행어로서 힘을 얻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뭣이 중헌디’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헷갈리게 만드는 우리 정부와 고위 공직자, 나아가 이른바 ‘금수저’들을 향해 이 땅의 민중들이 던지고 싶은 말이 아닐까. 자타가 공인하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고 하면서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수시로 보여주니 말이다. 이제 실망하고 화를 낼 힘마저 남아있지 않은 게 이 땅의 ‘흙수저’들이 처한 현실이 아닐까.


63528_133752_2347.jpg이정현 대표가 지난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국민을 ‘개·돼지’라고 표현해 파면당했다. 국민을 개·돼지쯤으로 본 그가 그동안 펼쳐온 정책으로 인해 힘없는 서민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홍만표 변호사, 진경준 검사장, 우병우 민정수석…. 검사라는 지위를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리 정도로 이용한 이들의 행태는 실망을 넘어서 절망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들을 용인하고 오히려 부추겨 온 나라꼴에 분노를 느낀다면 잘못된 일일까. 한 나라 대통령의 말은 ‘애국심 도취한 국뽕 연설’이라는 표현으로 조롱당하는 상황이 됐다. 급기야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론을 제 맘대로 하려던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새누리당 대표가 된 현실 앞에서는 국민으로서 치욕감마저 든다.


이것이 언제까지 표류할지 모르는 대한민국 오늘의 자화상이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이들이 굴려가는 나라에서 질식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뭣이 중헌디!”라는 민중들의 외침은 “지발 좀 정신 차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이 글은 2016년 8월 1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