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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59
조회
638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려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방기(放棄)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국헌법(평화헌법) 제9조)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미군정의 주도로 헌법을 개정했다. 당시 개정 헌법의 핵심은 위에 인용한 일본국헌법 제9조, 즉 일본 국민은 평화를 추구하고 무력의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는 선언에 잘 담겨있다. 1954년 자위대가 창설되었지만, 자국 영해 근처에서 직접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견지해왔다. 그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이 헌법을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불러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일본 중흥을 외치며 우편향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어오다가 급기야 전후 70년째인 올해 헌법에 기반해 만들어진 안보 관련 법안 열 가지를 개정하고 한 가지를 신설해 국회의 승인을 얻어냈다. 일본의 평화를 지킨다는 ‘소극적 평화주의’에서 세계의 평화를 개척하겠다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워, 자위대가 사실상 세계 곳곳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미국을 후방 지원할 수 있다는 기존의 좁은 원칙에서 ‘미일안보조약’에 기여할 만한 국가, 한마디로 미국과 일본의 동맹국이 위협을 당하면 일본 군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둔 것이다. 기존 일본 중심의 ‘개별적’ 자위권에서, 동맹국까지 포함하는 ‘집단적’ 자위권 개념을 내세워, 일본 정권의 의도에 따라 자위대의 무력 혹은 무기사용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다. 2016년 총선 결과에 따라 현행 헌법, ‘평화헌법’마저 수정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니, 아베 정권의 선전과는 반대로, 일본의 군대가 과연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보전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이러한 때, 무력의 행사를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현 일본국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 내 시민운동은 가상하고 의미 있다. 그리고 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해 헌법의 평화적 정신을 국내외적으로 알려나가는 일도 주변국에서 할 수 있는 효율적인 협조 수단이 된다. 일본국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청원하는 운동이 그 좋은 대안이다. 실제로 2014년 일본국헌법 9조는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였다가, 사람이나 단체로 수상 자격을 제한하는 노벨평화상 규정에 맞지 않아 최종 탈락한 적이 있다.


il1-e1441941598178.jpg사진 출처 - 레디앙


그러자 한국에서는 올해 이홍구 전 총리, 이부영 전 의원 등의 주도로 원로 정치인과 교수 등 50명이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국회의원 140명이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실행위원회”의 취지에 동의하는 서명을 해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일본에서는 대학교수와 국회의원들 84명이 “일본국헌법 9조”와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국민”들을 2015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현재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에 평화상 후보로 접수된 상태이다.


‘일본국헌법 9조’와 ‘헌법 9조를 지키려는 일본국민’이 실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자위권을 정당화시킨 개정 안보법안이 폐기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도리어 이 기회를 노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공산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에 대한 염원이 비할 바 없이 소중하다는 여론을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는 계기는 분명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현재 수준의 평화라도 유지하려는 일본 국내외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또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서 한국인이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리어 큰 박수 소리로 환영할 일이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10월 9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2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