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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공문은 무소불위 (황미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26
조회
399
이제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개학을 하면 다시 아이들과의 생기 넘치는 교류(?)가 시작될 것이다. 기대이상 커져있을 아이들의 까무잡잡한 모습이 떠오르며 다가올 만남의 시간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방학식날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떠올리며 2학기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 반 걱정 반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본다.

다른 학교는 지난달 21일이 방학이었으나 본인이 소속된 학교(초등학교임)는 하루 앞당겨 20일에 방학을 시작했다. 이유는 개교기념일이 휴일과 겹쳐서 미리 부여된 휴일 중 하루가 남아 방학을 하루 앞당기게 된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남들보다 하루 일찍 시작된다는 것에 아이들도 괜스레 들뜬 분위기였고, 교사들은 그만큼의 업무를 서둘러 마쳐야하는 바쁜 시간이었다. 방학에 대한 안내와 성적표 배부, 담임교사가 어린이 하나하나에게 부여하는 특화된 과제 등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의 업무로 교실 안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북적대었다. 그러던 중 잠깐 모이라는 부장교사의 지시로 동학년 교사들끼리 모였다. 모인 자리에서의 이야기인즉, 수재민들을 위한 모금을 서울시 전체 교원, 학생들이 하는데 다른 학교는 내일이 방학이어서 오늘 예고하고 내일 모금하면 되는데 우리학교는 오늘이 방학이라 예고는 어려우니 그냥 현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모금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반부터 시작해 마지막반까지 아이들을 줄을 세워 방송실로 내려오도록 해 모금운동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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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군 진부면 일대 가오교. 끊어진 다리가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
ⓒ2006 생태지평 오마이뉴스



 어려움에 처한 수재민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했다. 그렇지만 방식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였다. 우선, 이것은 그동안 행한 교육의 일관성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학생들이 돈을 가지고 다니게 되면 간혹 발생하는 금품갈취 사건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불량식품이나 사행성 게임에 사용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평소에 학생들에게 돈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꾸준히 지도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모금을 하겠다는 것은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학생들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모금하는 장면을 학교 방송을 통해 내보내는 것은 모금을 많이 하도록 독촉하는 것이고, 또 모금에 동참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학교의 여건상 어렵다면 비록 교육청의 협조 공문이 있다 하여도 학교장이 자율적 판단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를 들어 교감선생님께 문제제기를 하였고, 더불어 좋은 취지를 살려 방학 중 학생들에게 수재민 돕기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하는 선에서 마치자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반은 이런 모금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방송실에 내려가지 않았고 많은 교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행하였다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고 열린 교무회의에서 교장선생님의 발언은 다시 한 번 내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앞서 행해진 모금운동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보낸 수재민 돕기 협조공문에 의한 것이고, 하루 앞당겨 방학에 들어가는 우리 학교로서는 비록 60여만 원의 성금을 내게 되었지만 모금운동 참여명단에 빠지지 않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1,200여개의 초중등학교의 학생들이 이 공문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물론 수재민을 돕기 위한 운동은 매우 훌륭한 것이고 될 수 있으면 모든 시민들이 함께 동참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의 기본은 자발성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어거지로 이행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원칙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칫 누군가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웃지 못 할 코미디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날, 거의 모든 학교들이 방학에 들어간 21일 저녁 뉴스 시간에 확인되었다.

“수재의연금을 내주신 분들입니다. …… 000 서울시 교육감과 교사, 학생 1억원. (000 교육감의 커다란 사진과 이름, 또 모금액. 그에 반해 아주 작은 글씨의 교사, 학생이라는 글씨) …… 성금을 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아! 어제의 그것은 바로 오늘의 이것을 위한 해프닝이었구나!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