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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동칼럼] 법 왜곡죄 만들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2-03 09:41
조회
431

수사는 흔히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 부른다. 범죄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밝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용의자를 확보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등 수사기관의 활동은 모두 죄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과정이다. 그러나 수사를 그저 기소의 전 단계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죄가 없어 보이거나, 아예 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도 수사와 기소를 밀어붙이는 경우들이 그렇다. 법원의 유죄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피의자에게 타격을 주는 게 목적인 것처럼 요란하고 떠들썩한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도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압수수색도 수백 번씩 하는 등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는데, 먼지털이식 수사라는 지적이 많다.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무관하게 수사를 특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했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였는데도 업무상 배임죄로 수사와 재판까지 받았던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이 그랬다. 이명박 정권이 방송장악을 위해 정 사장을 내쫓는 과정에서 검찰은 청부 수사’를 했다. 정 사장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억울함을 풀었지만, KBS 사장에서 쫓겨난 다음의 일이었다.


 



탈북자 출신으로 처음 공무원에 임용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도 그랬다. 국정원과 검찰은 증거 조작, 증인 조작까지 해가며 유씨를 간첩으로 조작해 구속했다. 유씨가 간첩 조작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못마땅했던지, 보복 기소도 감행했다. 그래도 처벌받은 검사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한 이시원 변호사는 검사 시절 유우성씨를 구속기소했고, 재판과정에서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조작했던 사람이었다. 처벌은 없었고, 오히려 영전했다.


 

없는 죄를 따지기도 하지만, 엄연한 범죄를 감싸는 일도 많다. 검사의 범죄를 수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후배 검사를 폭행하는 범죄를 저질러 김홍영 검사를 죽음으로 내몬 김대현 부장검사가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족이 싸움을 멈추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시간만 끌다가 공소시효가 만료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폭력 의혹 사건’처럼 처리했을 거다. “누가 우리를 건드려”하는 식의 제 식구 감싸기가 반복된다. 숱한 증거가 쏟아져도 대통령 부인과 장모를 수사하지 않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제 식구 감싸기로 보인다.


 

검사는 법 집행 전문가다. 죄가 되는지 아닌지도 제법 잘 안다. 그러니 없는 죄를 묻겠다며 괴롭히거나, 죄를 지었는데도 수사와 기소를 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거다. 일반 범죄와 달리,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법이 부여한 권한을 악용해 법을 왜곡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악질 범죄다. 이런 범죄 때문에 검찰과 법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매우 낮다. 한국의 사법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43개국 중에서 41위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인들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22%로 OECD 평균 57%와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검사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검찰청법 제4조의 규정은 공연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훈시규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검사 등 법 집행 공무원이 법을 왜곡하는 악질적인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하는 안전장치는 없다.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처벌할 수 있겠지만, 처벌 규정 자체가 모호해서 검사 등 법 집행 공무원의 일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검사 등 법 집행 공무원의 일탈에 대해 관대한 우리와 달리, 많은 나라들이 독일처럼 법 왜곡죄’를 두고 있다. 독일은 법관이나 기타 법 집행 공무원이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고 있다.



 

법 집행 공무원들이 법을 왜곡하며 멀쩡한 사람을 괴롭히는 이상한 현상을 막기 위해 우리도 법 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검사의 범죄를 예방하고, 악질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다. 법을 아는 검사 등 법 집행 공무원들이 법을 무시하고 왜곡하면서 없는 죄를 만들거나 있는 죄를 덮어주면,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나중에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교훈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무렇게나 막 하면 안 된다는 경계를 삼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법 왜곡죄’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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