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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 덕성여대 신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0:57
조회
864

[인권연재] 인권기획4 -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
외국인 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존중,
아직은 먼길...

<오창익 :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21세기는 인권의 시대라고 한다. 인권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제 인권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권리이다.
좀더 심도있는 인권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한 학기에 걸쳐 인권을 주제로
연재한다.
① 들어가며 - 왜 인권인가?
②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
③ 한국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
④ 사회적 약자의 인권 문제
⑤사회경제적 문화적 권리
⑥ 맺으며 - 한국의 인권, 대안은 무엇인가?
<편집자주>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은 남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여성이다. 어린이, 장년, 중년, 노년이 함께 살고 있고, 돈이 많은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가.

인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소중한 권리이다.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날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지니고 있’(제 1조)으며 ‘모든 사람은 인종,
살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 또는 그밖의 의견, 민족적 혹은

사회적 출신, 재산, 가문 또는 기타 지위 등으로 인하여 차별을 받지 않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분명히 옳은 소리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뭔가 공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우리 사회에는 ‘계급’이란 것이
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이 무엇에 의한 것인가를 살펴보면 바로 우리
사회에 무엇을 근거로 한 계급이 존재하는가를 알 수 있다. 앞서 적은 대로
[선언]은 ‘인종, 살색, 성별, 언어, 종교, 사상, 출신, 재산, 기타 지위’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이러한 것들에 의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 문제는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에는 약 25만명 정도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대부분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고, 한국사람들이 일하기 꺼려야하는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인권문제는 이미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할 정도이다. 임금체불은 물론이고, 산업재해를 당해서
팔뚝이 잘라져도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한국인에게 폭행당하고, 강간당하고,
비인간적 수모를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꿈의 나라 한국에
와서 당한 그들의 고초는 곧바로 반한감정으로 이어져서 외교통상부는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요청할 정도이다.

실제로 한국인 사업가 2명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내리자마자 ‘일본사람인가
한국사람인가’를 묻는 필리핀인들에게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몰매를
맞았다는 보고가 있다. 구타를 가한 필리핀인들은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단 구타를 피해 한국인들은 현지 경찰을 찾았다. 경찰서에서
진술을 듣는 과정에서 필리핀인들이 한국에서 당했던 학대와 수모를 이야기하자,
필리핀 경찰들까지 나서서 다시 이들을 팼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다른
이야기를 덧붙일 이유도 없다.

성별에 의한 차별은 교묘하고도 잔인하다. 한국에도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공식적으로 정부는 물론, 그 어떤 기업이나 학교, 단체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실제로 그런가는 아마 여성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여성은
마치 21세기 최후의 노예처럼, 최후의 식민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열등하다는 주술을 듣고 자라게 되고, 능력을 떠나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에 직면하게 된다. 어떤 여성이 경찰서장이 된 것이 신문에
나오는 나라이다. 여성은 중요한 자리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원초적으로 결여된
것처럼 여기는 사회이다. 환갑이 넘은 할머니가 갓 돌이 지난 손자를 ‘호주’로
모시고 사는 사회이다.

사상에 의한 차별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랄하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완벽하게 처벌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생각은 누구나 제
멋대로 할 수 있다. 공화국인 한국을 다시 왕정으로 돌려서 연산군같은 왕이
되어서 수천명의 궁녀를 거느리며 거들먹거리고 싶다는 한심한 생각도 그게
생각인 한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위험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예외이다. 한국에는 적어도 볼테르 식의 관용은 없다.

재산의 많고 적음에 대한 차별은 그것이 곧 ‘계급’이란 말을 연상시킬만큼
뿌리깊다. 재산의 많고 적음은 세습되며 모든 사회적 활동을 규정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한국과 같은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고 적음은 곧 사람의 가치를 좌우한다.

장애는 또 어떤가. 장애인이 4백만이나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의 권리는
거의 보호되지 않고 있다. 능력이 있어도 취직하기 어렵고, 심지어 입학을
거부하는 대학도 한둘이 아니다. 성적 취향이 다른 소수자들-동성애자-은 또
어떤가. 사회적 차별은 고사하고, 커밍아웃하는 순간 집에서부터 쫓겨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큰 것, 잘생긴 것에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사실 기준도
모호하다. 스스로 황인종이면서도 우리는 검은 것보다는 누런 것이, 그보다는
하얀 것이 더 아름답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큰 것, 숫자가 많은 것에 쏠리는
경향은 ‘거대주의’ ‘남근주의’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여긴
합리성도 다양성도 이웃에 대한 배려도 존재하지 않는다. 1등만이 존중받고
나머지 다수의 삶은 어떻게 되든지 관심조차 없는 사회, 올림픽에 나가서
은메달을 따도 억울해서 우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 주류적 질서만을 강조하고,
소수자, 주류와 좀 다른 사람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 아니 결국은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고 싶어하는 사회.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다수의 편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권조차 제대로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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