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실

home > 자료실 > 일반자료실

[김대중정권 1년의 인권정책과 현실] - 현장에서 미래를 1999.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0:56
조회
460

이렇게 본다/『현장에서 미래를』42(1999/4)


김대중정권 1년의 인권정책과 현실

오 창 익(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지난해 12월 우리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았다


"인류사회의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함은 자유와 정의와 세계평화의 기본"(세계인권선언 전문)임을
천명하는 세계인권선언은 제 1조에서 밝히고 있듯이 "날 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와 이성과 양심을 지닌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본적인 내용을 그 조항으로 하고 있다.

문명국가들이 인류역사상 최초로 합의한 대헌장인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는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50으로
꺾어지는 숫자의 놀음 때문이었는지, 지난해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요란한 행사가 마련되었다. 발빠른 공영방송 KBS는 인권의 이름으로
열린음악회를 열었고, 각종 기념식과 시상식이 때맞춰 열렸다. 해를 넘긴 올
2월에는 제주도의 한 특급호텔에서 주최측이 항공료를 포함한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는 가운데 100여명의 전문가들이 초대받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일찍이 이렇게까지 '인권'이 장사가 된 적은 없었다. 인권운동가들에 의해 가장
반인권적인 언론으로 비난받는 조선일보조차 사고(社告)와 기사를 통해 연일
'인권'을 치고 나온다. 대통령도 그렇고, 그 동안 인권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던 어떤 야당도 고문이다 도청이다 해 가며 인권을 외치고 있다. 인권은
국제사회에서도 가장 잘 먹혀 들어가는 아이템이다. 너나없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그러면 한국의 인권은 얼마만큼 좋아졌는가.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과도해 보이는 것은 그 관심만큼이나 실질적인 내용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제고된 것은 누가 뭐래도 5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것인데,
그러면 정권교체로 출범한 김대중정권의 인권정책과 현실은 어떤가 지난 2월
실시된 특별사면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대통령선거를 통해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확정된 1997년 12월 18일 밤, 전국의
교도소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는 양심수들은 물론이고, 일반 형사사건으로 수감된 분들까지도 너나할 것없이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교도소는 그날
흥분과 감동에 휩싸였다. 역사는 이렇게 바로 잡혀가는구나.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되어가겠구나. 이런 국민적 바램은 물론이고, 나도 이제는 억울한 옥살이를 접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바램으로 교도소는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1년 몇 개월이 지났고 그 동안 세번의 특별사면이 있었다. 대통령 취임을
경축한다고 한번, 정부수립 50주년이라고 해서 한번, 대통령 취임 1주년이라고
해서 모두 세번을 했다. 세번의 사면 모두 나름의 의미는 있었다. 서경원,
황석영, 손유형 씨가 풀려나고 수백만명의 자잘한 범법자들이 사면의 혜택을
받았던 3.13사면, 박노해, 김낙중, 신인영 씨 등이 쏟아져 나온 8.15 사면,
17명의 비전향장기수와 강용주, 파키스탄 사형수들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온 2.25
사면을 죄다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김대중씨가 집권을 했기에 망정이지 또 다른
유력한 후보가 정권을 잡았더라면 석방이 쉽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생각이 미치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싶은 대목도 없지 않다.

이번 2.25사면만 해도 매번 끼여들어 사면권 남용의 시비를 불러 일으켰던
비리사범들이 제외되었고, 준법서약 없이 19명이 석방되었고, 매우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안에 박노해 씨 등이 복권되었다는 점은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온갖 못된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준법서약의 문제이다. 지난해 8월 사면을 앞두고 정부는 '전향제 폐지,
준법서약제 도입'을 발표하며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던 반인륜적인 전향제를 과감히
폐지하여 인권을 신장시키고, 대신 공안, 시국사범에 대해서는 간단한
준법의지만을 묻겠다고 했다. 이는 대단히 유혹적인 제안임에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지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적
공감대도 불러올 만 했다. 그러나 검사들에 의한 준법의지의 확인은 비록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불러왔고, 종이
한 장의 차이에 의해 석방의 여부가 가름되었다. 뿐만 아니라 준법서약을 하지
않은 양심수들은 교도소에서 여전히 비전향의 불이익을 강요받아야 했다. 말로는
전향제가 폐지되었다지만, 준법서약을 하지 않은 양심수들은 접견제한, 종교집회
참석 금지, 출역금지 등의 전향여부에 의한 불이익을 그대로 감수해야했다.

결과적으로 준법서약제는 전향제의 이름만 바꾼 꼴이 되었다. 악법과 잘못된
제도는 필연적으로 자의적 적용을 가져오는 법. 2.25사면에서는 아예 준법서약을
하고도 석방되지 못하는 사람, 준법서약을 하지 않고도 석방되는 사람이 나오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비전향장기수 17명이 준법서약 없이 석방되고, 유신이래
20년간 구금되었던 조상록 씨와 구미유학생사건의 강용주 씨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정말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준법서약을 하고도 안재구, 최호경
씨 등이 석방되지 못한 것, 만 71세의 고령임에도 류낙진 씨가 석방되지 못한
것은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활발한 석방운동이 있는 경우에는 오로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석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애초 양심수들을 석방할 의지가 없었으니 그대로 붙잡아 둔다는
식이다. 이는 이번에 석방된 북한관련 초장기수가 27년 이상 복역한 17명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애초 인권단체들은 '세계적
양심수인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가 복역했던 26년보다 더 오래 구금된 인사들'이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통해 야만적인 장기구금현실을 고발해왔다. 그런데
이런 구호에 불과한 '27년'이 아예 석방의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같은 처지의
손성모, 신광수 씨 등은 27년이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했다. 꺾어지는
숫자인 구금 년수 10, 15, 20년을 석방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또 몰라도 27년이
기준으로 제시된 것은 너무도 이상하지 않는가.

특사는 양심수나 그 가족, 또는 인권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구걸을 해서 형량을 좀
낮춰보고, 풀어내자는 차원에서의 흥정이 아니다. 특사도 엄연한 국가의
통치행위이고 국민대화합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인 만큼 엄정한 기준에 의해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조치는 온통 자의적이며 알 수 없는
기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학생들이나 청년, 노동자들과
잡범이라 불리는 일반 형사사건 연루자들이 이번 사면에서 제외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같은 날짜로 단행된 복권은 더욱 자의적이다. 서경원, 박노해, 백태웅 씨 등
이른바 유명인사들은 석방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복권이
되었지만 같은 시기에 석방된 다른 유명하지 못한 인사들은 복권조치에서
제외되었다. 심지어 유신시대 조작된 조직사건인 인혁당, 통혁당, 남민전, 오송회
등에 연루된 인사들도 국민의 정부는 외면해버렸다.

사면과는 별도로 진행되지만, 이미 전향을 했고, 고령이고, 그들이 말하는
'재범의 우려와 현존하는 위험성'이 전혀 없는 인사들도 여전히
보안관찰처분대상자로 묶여 '요시찰'인물로 굴종을 겪으며 살아야하지만 박노해
씨 등 일부 유명인사들은 보안관찰처분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 박노해 씨가
복권되고, 보안관찰처분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분명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에
대해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그런데 이 정부의 인권정책, 기조가 늘 이런 식이란
것이다. 과거정권과 다르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요한 국정지표로 삼겠다면서
정책적 판단의 기조는 늘 정치적이다. 사면이 정치행위이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정치적이면 곤란하다. 아니 곤란함을 넘어서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새삼스럽게 과거 김대중씨와 그가 지도하는 정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법률을 입법하자고 주장했다는 이야기까지 꺼내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국가보안법의 문제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침해하는 매우 잘못된 법률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고치거나 아예 없애 버리면 되는데, 개정이나 폐지를 위한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서도 엄연한 실정법이니 국가보안법은
요지부동이다. 악법은 필연적으로 자의적 법 적용을 낳는 법.

김대중정권 출범 이후 국가보안법 적용대상자들은 한결같이 학생운동의 급속한
침체로 이미 만만해진 학생들이나 아무런 보호막도 갖지 못하는 청년들이다.
국가보안법은 그들에게만 그 칼끝을 번뜩이고, 유명인사나 유력인사들, 또는
친김대중 인사들은 웬만큼 실정법의 테두리를 넘나들어도 문제될 게 없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큰 탓일까.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급격하게 사회권이
신장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기지개를 켜게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자신을 오랜 시간 동안 인권피해자이게 만든 양심수를 양산하는 고리만큼은
확실하게 끊을 줄 알았다. 선거가 있던 날 밤 감옥에서의 환호성은 그런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김대중 정권이 과거 정권에 비해 인권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인권문제를 진일보시킬 수 있는 정권이라는 평가도 그리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논의 과정에서 일그러지긴 했지만 국가 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부분적이나마 행형의 여러 문제를 개선하고, 전교조가 합법화되었다든지 하는
성과는 평가할 만하다. 절차적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는 잘 안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민주화이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박성인 사무처장은 인권하루소식 주최로 열린 [김대중
정권 1년 인권상황 평가 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1년간의 인권상황을 평가할 때 김대통령 개인의 의지 수준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부분적인 진전이 있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에서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또 주목할
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과거에 비해 없어진 그 공간을 시장경쟁 논리로
채워가고, 기업 자본 등의 생존권 침해, 민주주의의 후퇴 등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김대중정부의 인권정책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에 의해 기본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핵심적인 정책기조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부분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더라도 전체 인권상황은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박 처장의 이러한 지적은 핵심을 찌르고 있다. 거리의 실업자가 200만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단위 사업장에서의 노동인권이 1987년 이전의 노동상황으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의 절차의 진전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인권 현실에서 지적하고 싶은 보다 중요한 근원적인 문제는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간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적
전통은 이미 옛것이 되어 버렸고, 합리성은 아직 우리 것이 아니다. 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은 별것 아닌 차이만으로도 같은 반 친구들을 가혹하게
차별하는 '왕따'를 일삼고 있다. 배려나 관용 같은 말들이 우리와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문제가 있고, 모순이 있는 곳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 있는 법인데, 지금
한국의 산적한 인권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을 지키기 위한 인권운동의
현실은 어떤가. 이런저런 곳에서 여러분들이 고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매우
고무적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권운동은 침체되어 있다. 1993년
인권운동사랑방이 인권운동의 전문화를 외치며 고군분투하고 있고,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의 종교단체들이 애쓰고 있지만, 인권운동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는' 인력부족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에 대한 인권교육은 물론이고, 인권운동가에 대한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이 인권운동'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세대의 충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인권운동의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고, 인권운동의 전망이 어두운 그만큼 한국 인권의 미래도 밝지 않다.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I am text block. Click edit button to change this text.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scing elit. Ut elit tellus, luctus nec ullamcorper mattis, pulvinar dapibus l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