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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호] 동요 속에 스며든 반(反) 인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1-20 10:19
조회
348

이광택/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국민대 명예교수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르르릉


저기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목일신 선생(1913~1986)이 13세, 전남 고흥 흥양보통학교 5학년 때인 1926년에 쓴 노랫말로 1931년 5월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에 발표되었다. 1933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작곡가 김대현 선생(1917~1985)이 이 가사에 곡을 붙여 습작으로 발표하여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애창 동요 <자전거>가 되었다.


출처 : 정책기자단 네이버블로그


1920년대의 자전거 경적소리와 지금의 경적소리가 달라진 점도 있지만, 이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찌르릉 찌르릉’이 ‘따르릉 따르릉’으로, ‘저기 가는 저 영감’이 -> ‘저기 가는 저 노인’-> 저기 가는 저 사람’으로, ‘꼬부랑영감’이 -> ‘조심하세요’로, ‘우물쭈물’은 -> ‘어물어물“ 등으로 노랫말 일부가 수정되어 오늘날의 버전은 다음과 같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자전거가 등장하던 시대에 생겨난 동요로서 호기심과 주의력을 이끌기에 충분한 동요였다.


 

독립운동가 문치숙의 아들인 작사자 목일신 선생은 전주 신흥학교 2학년 재학 중이었던 1930년 광주학생사건으로 투옥 후 퇴학 되기도 했다. 1938년 일본 칸사이(関西)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순천여고, 목포여중, 이화여중고, 배화여중고에서 국어교사로 활동하였고, 1977년 모교인 고흥동초등학교에 ‘자전거’ 노래비가 제막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우리아버지(<동아일보> 1929), 산새(<조선일보> 1930), 우체통(<아이생활> 1932), 누가누가 잘자나?(<신가정> 1935), 자장가(<아동문예> 1935), 비누방울(<동아일보> 1935) 등 주옥같은 동시들이 있다.


 

함경남도 흥남 출생인 작곡가 김대현 선생은 일본 데이코쿠(帝國)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관북(關北)관현악단과 원산실내악단을 지휘하였다. 해방 후에는 경희대 강사, 서라벌 예술대학 음악과장을 역임하였다. 1951년 피난 시절 민속설화에 기초를 둔 가극 <콩쥐 팥쥐>를 부산·대구 등지에서 공연하여 민족가극 창작의 기선을 잡았다. 이어서 오페레타 <사랑의 신곡(神曲)>(1951), 교향시곡 <광복 10년>(1955), 칸타타 <그로리아>(1961)·<8월의 태양>(1963)·<새해여 솟아라>(1964)·<성웅 이순신>(1969) 등 합창과 관현악을 중심으로 한 큰 작품들을 남겼다. 동요곡으로 〈자전거〉, 〈종소리〉 등이 있다.


 

동요 <자전거>는 당대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와 작곡가에 의해 탄생하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자전거>의 노랫말은 오늘날의 도로교통법을 고려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자전거 운전자가 보행자를 비켜나라고 할 수는 없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으면 차도에서 운행하여야 한다. 인도에서는 자전거를 운행할 수는 없고 끌고 가야 한다. 예외적으로 보도에서의 운행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자전거 운전자는 보도 중앙으로부터 차도 쪽 또는 안전표지로 지정된 곳으로 서행하여야 하며,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될 때는 일시 정지하여야 한다. 횡단보도에서 마찬가지로 도로를 횡단할 때에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보행하여야 한다.


 

<자전거>가 교과서에 실리며 노랫말이 ‘저 영감 꼬부랑영감’-> ‘저 노인 꼬부랑노인’-> ‘저 사람 조심하세요’로 보행자에 대한 인식이 약간씩 개선되긴 했지만, 자전거 운전자가 통행우선권이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물론 이 동요의 치명적 결함은 첫 줄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에 있다. 도로교통법상 ‘비켜라’라는 명령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자전거 운전자가 자동차 운전자가 되었을 때 이 명령어를 사용하면 매우 위험하다.


 

자전거 운행자가 가마 탄 고관이 통행하며 수행관헌이 “물렀거라”를 외치는 장면을 연상했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동요가 발표된 때로부터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보행자가 우선이다. 2022년 7월 12일부터 도로교통법이 강화되어 횡단보도가 있는 교차로에서 우회전 시,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또는 건너려 할 때도 반드시 멈춰야 한다. 아울러 신호기가 없는 어린이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는 일단 멈추고 난 다음에 출발해야 한다.


 

또 ‘보행자 우선도로’도 전국 21곳에 지정이 됐는데, 보행자 우선도로는 골목길이나 이면도로처럼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보행자가 통행에 우선하도록 지정된 도로를 말한다. 보행안전법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근거해 시행됐는데 보행자 우선도로에는 시속 20km/h로 속도가 제한된다. 어린이보호구역이 30km/h인데 비하면, 더 강력한 속도 제한이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보행자는 도로 중앙 등 도로의 전 부분에서 보행할 수 있다. 단, 고의로 차량의 진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운전자가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보행자 보호 의무를 불이행하였을 경우 승용차 기준 4만 원의 범칙금과 10점의 벌점을 받게 된다.  


 

동요에서의 자전거 운전자가 자동차 운전자가 되어 ‘따르릉’ 하듯 횡단보도에서 일시정지하고 있는 차량 뒤에서 불필요하게 경적을 울리게 되면 범칙금 4만원이 부과되며, 더군다나 어린이보호구역이나 노인보호구역에서는 범칙금 8만원이 중과된다.


 

90년이 지나며 문명사적 전환을 맞아 동요 <자전거>의 노랫말도 다시 바뀌어야 할까? 바뀐다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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