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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호] 난민, 피난민 그리고 노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8-18 10:38
조회
327

김항수/ 신부, 천주교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 난민전담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 난민의 시작


딱 10년 전만 해도 ‘난민’이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낯선 단어였다. 2018년 여름 제주도에 500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입국하기 전까지 나 역시 난민 문제에 관해서는 간혹 국제뉴스에서나 접하였을 뿐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를 포함해서 세상 안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난민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난민이라는 용어는 1600년대 프랑스에서 위그노(칼벨파 개신교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박해로 인해 생겨났다. 중세 종교개혁 이후 1598년 국왕은 가톨릭국가였던 프랑스 내 개신교의 종교 자유를 낭트칙령으로 보장하게 되는데 89년 후 그 칙령을 철회하면서 프랑스 남부지역의 개신교도들을 억압하고 학살하기에 이른다. 가톨릭의 억압에 견디다 못한 약 30만 명의 위그노 개신교도들은 생존을 위해 주변국인 네덜란드와 영국은 물론 러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이주하게 된다. 당시 그들을 가리켜 ‘난민’ 또는 ‘망명자’라고 불렀고 지금까지 그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가톨릭 문화 안에서 위그노 개신교도들은 사회 갈등의 주범이자 테러리스트로 간주하였던 거다. 나와 다른 믿음, 다른 문화를 가진 자들이 ‘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역사에는 난민은 없었는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바로 한 세대 우리 부모 세대만 보더라도 그들은 난민이었거나 난민 자녀로서 그 혹독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한국전쟁으로 피난민 500만 명이 난리를 피해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또 다른 지역과 나라로 목숨을 걸고 피난길에 올랐다. 한국인의 정서에 실향민(失鄕民)이나 한국전쟁 전쟁피난민, 이산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있다. 그런데도 난민이라고 말하는 순간 곱지 않은 시선들이 날아오고 대화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실향민과 피난민, 이산가족 모두 난민을 설명하는 말이다. 피난민이 곧 난민이다. 고향을 잃고 떠나온 사람들이 타향에서 자기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다른 지역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과연 부산 사람들에게 선주민들에게 그렇게 큰 위협이 되었을까?


난민이라는 말은, 나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돌과 같은 심장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태도는 그들을 반드시 물리쳐서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지난 3월 대구 이슬람사원 건축 현장에서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돼지고기를 구워 먹은 이른바 ‘돼지고기 시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던 낭트칙령이 다시 한번 한국에서 철폐되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인이 명절 때마다 지내는 제사가, 예배당의 찬송가가, 불자들의 법회 절 기도가,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나 성모상 앞에 초를 밝혀 기도하는 행위가 다른 이에게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말인가?


낯선 땅에서 노예처럼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역사는 이주민, 난민의 역사이다. 구약성경의 중심축인 이집트 탈출 사건은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설움과 막막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그들은 후대에 또다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만들어지게 된다. 성경 역사 안에서 디아스포라는 난민의 다른 이름이었다.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용어가 뜻하는 바대로, 삶 전체가 산산조각이 난 채 흩어 뿌려진 사람들이다.


유학 생활이든 직업 때문이든 해외에서 생활해 본 이들은 이미 외국의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된지 잘 알 것이다. 삶의 터전을 떠나온 사실만으로도 서러운데 목숨 걸고 도망 온 그곳에서 다시 노예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더 비참하고 절망스러울지…. 이집트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고 한국으로 피신 온 난민 신청자들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면서 떳떳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는 말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생존을 위해 떠나온 곳에서 난민들은 다시 최하층민으로 다시 생존 투쟁에 내몰린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흩어진 채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부터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그들은 ‘기생충’ 내지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다. 어두운 공장 구석이나 두세 평 남짓한 반지하 월세방이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안식처다. 살기 위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 그들이 선진국 대한민국을 찾아온 손님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여준다.


유토피아 : 자유롭게 일하며 배우는 장소


16세기 초반 영국의 인문주의자이자 법관이었던 성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집필하는데,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상, 유토피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스스로 자유롭게 일하는 세상’이며 ‘배움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이다.


지난 3월 UN 난민기구에서 동두천에 방문하여 난민(신청자) 공동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어려움에 대한 경청 그리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이곳 동두천까지 피난 온 사람들의 눈빛은 진지함을 넘어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들의 바람과 요구는 단순했다. ‘제발 좀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목소리였다. 그게 전부였다. 정당한 노동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아직 떠나오지 못한 가족을 돌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요구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만한 내용으로 들리는가?


그들에게 언어와 문화를 배우도록 돕는 것, 활동가와 봉사자들과 연계하여 도움을 주는 활동은 물론 중요하고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있다. 그들에 대한 시선이다. 난민들을 하층민 노동자나 시혜가 필요한 특별한 이들로 바라보지 않고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톨릭 사회교리의 토대와 핵심은 ‘인간 존엄을 지켜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신께서 주신 생명이, 내 삶이, 또 내 가족과 친구들이 소중하다면 난민들의 가족과 친구들도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오 8장 20절) 예수님의 한숨과 고단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인간 세상에 인간이 되어오신 하느님도 이주민이자 난민으로 살았다. 한 가족 누울 방이 없어 외양간에서 잠을 청했고 세상 권력자의 학살을 피해 옆 나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예수님을 구세주라 믿고 따르는 이들이라면 더욱이 난민들에게서 그분의 눈빛을 발견하고 그분 향기를 맡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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