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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인도주의의 함정(전진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05 09:28
조회
464

전진성 /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인도주의는 좋은 느낌을 주는 단어다. 인종과 민족, 체제의 차이를 떠나 동시대를 사는 인류 동포의 고통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도덕적 결단이 이 단어에 아로새겨있다.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 더 나아가 공감과 신뢰는 각자도생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인간 이하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에 속한다. 인도주의는 이러한 덕목을 자각하며 타인의 고통을 줄이고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하자는 이념이다.


출처 - freepik


인도주의는 주로 비상 상황에 적용하기 적합한 이념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행동이지 백 마디 말이 아니다. 따라서 인도주의는 정치적 논쟁을 멀리하는 특징이 있다. 가능한 한 정치적 중립성과 공평함을 유지하려 한다. 이 점은 인도주의의 장점일 수 있지만 실은 훨씬 큰 맹점에 속한다. 말보다 실천이 정말로 더 중요한가? 그냥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가? 그것은 과연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인가? 시혜자와 수혜자 간의 비대칭성, 좀 더 원색적으로 표현하면 종속 관계는 인도주의적 실천의 피치 못할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타인은 정말로 나의 도움을 바라는 것일까? 설령 당장은 그렇다 해도, 실은 나의 욕망, 즉 타인을 나의 도움을 바라는 위치에 머물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야말로 이 모든 실천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나의 순수한 감정이란 혹여 타자가 겪는 고난의 정치적 본질을 애써 눈감아버리려는 속셈은 아닐까? 나의 실천은 진정 누구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


‘인도주의(humanitarianism)’라는 용어는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아동·미숙련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률 제정이나 적십자 창립 등의 과정에서 고안된 것이지만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주로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도덕 감각(moral sense)’이 논의되면서 싹을 틔웠다. 당시 생성되던 근대적 시민사회 특유의 개인주의에 힘입어 나 자신의 자율성을 인정받으려는 노력만큼이나 타인의 독립성도 인정하려는 기풍이 생겨났다.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독일 계몽철학자 칸트의 언명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그가 선구적으로 제시한 인간의 ‘존엄성’은 관념적 차원으로 그쳤고 양차 세계대전과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경험하고 난 20세기 중엽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정치적 현실성을 얻게 되는데, 심지어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서도 다소 맥빠진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인권, 인간이 아닌 국민으로서의 권리?


이처럼 개인의 ‘도덕 감각’에 호소하는 인도주의는 인권(human rights) 이념과는 계통이 다르다. 18세기의 자연권(natural rights) 사상에서 연원한 인권은 처음부터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이후 동아시아권에서 주로 ‘천부인권’으로 번역되고 이해되었던 ‘자연권’은 개개인의 자유나 존엄성보다는 오히려 전제 군주의 폭정에 대한 인민 대중의 정당한 저항과 이를 위한 조직화를 지향한 이념이었다. 당대에 만연하던 ‘동정’과 ‘연민’의 감정에 힘입어 자연권 사상은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더불어 그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폭군과 봉건적 기득권 세력, 그리고 반문명적인 미개인에 대한 무한한 적대감을 조장했다. 급진적 공화주의자 루소는 자연과 인민을 동일시했고 원조 자유주의자 로크는 “인민의 적”에 대한 투쟁을 선포했다. 자연권은 결코 ‘천부인권’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프랑스 혁명기의 구호 중 하나인 ‘우애(fraternity)’의 논리에 가까웠다.


출처 - 위키백과


18세기 말에 폭발한 프랑스 대혁명은 드디어 자연권 대신 인권의 기치를 들어 올렸는데, 혁명의 출발점이 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인간을 시민 내지는 국민에 국한 시키고 그 울타리 밖에 놓인 사람들을 일종의 ‘비인간’으로 배제했다. 혁명적 권리였던 인권은 어쩌면 혁명기에 등장한 ‘테러’, 즉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이었는지도 모른다. 혁명을 통해 새로이 등장한 정치체제인 국민국가는 절대왕정이 개발한 ‘주권(sovereignty)’의 논리, 즉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배타적 국가권력을 새로운 정치체제에 맞게 확대하고 강화하는 차원에서 자연권보다 좀 더 혁신적 느낌이 드는 인권 개념을 내세웠던 것이다. 모태인 자연권이 원래 그러했듯이 인권은 ‘천부인권’은커녕 국가의 구성원들, 즉 국민(=시민)만이 배타적으로 공유하는 집단적 권리였다. 말 자체로는 모든 ‘인간의 권리’이면서 실제로는 국민국가 내의 구성원 자격을 지닌 ‘국민(=시민)만의 권리’라는 모순이야말로 서구 자연권 사상에서 배태된 인권의 근본적인 분열상이다. 인권이 배타적인 주권 논리와 결별하지 않는 한 그 분열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



인도주의, 국가와 결탁한 인권


이처럼 인권이 계속 자기분열을 겪는 사이에 슬그머니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인도주의였다. 19세기의 인도주의는 18세기의 자연권과 인권이 지녔던 혁명성을 전혀 지니지 못한 채 18세기식 개인주의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인에 대한 개인적 동정과 연민을 내세울 뿐 정치적 이슈에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전혀 비정치적이지 않았다. 이전 시대의 인권이 그러했듯이 인도주의는 어느새 국가와 결탁해있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폭력을 국민국가 밖으로 연장하는 논리가 되어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 ‘문명화 사명’이나 ‘백인의 짐’ 등 언뜻 비정치적이고 자비로운 듯 들리는 논리는 서구 문명에 반대하는 세력을 ‘인류의 적’으로 단죄하여 제국주의 국가폭력을 조장했다.


인도주의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동안 인권은 오래도록 잊힌 듯했다. 2차 세계대전과 제노사이드를 경험하고 난 직후인 1940년대에야 비로소 인권의 논리가 오랜만에 다시 등장하여 1948년의 유엔 세계인권선언 등 쾌거를 이룩했으나 이미 인권은 본래의 혁명성을 잃은 채 인도주의로부터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나치 전범들을 기소한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라는 법률적 논리도 정치적 비판보다는 인도주의 특유의 도덕적 단죄의 성격이 짙었다. 이처럼 인도주의화한 인권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폭력성과도 연계된다. 민족과 인민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덕적 분노가 ‘적’에 대한 공세를 취하게 했던 것이다.


출처 - 교보문고


인권의 재탄생


인권이 인도주의에 함몰됨으로써 빠져드는 함정은 정치를 도덕과 혼동함으로써 결국 도덕을 정치화하는 것이다. 인도주의 특유의 정치적 중립성과 도덕 지상주의는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다. 인도주의가 촉발하는 정치는 현상 고수의 정치다. 도덕적 우월성은 타자와의 정치적 대면과는 거리가 먼 편견과 전면적 부정을 낳게 된다. 이를 통해 인도주의는 기성 권력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 하려 한다. 이와는 달리 인권은 애초부터 혁명적 권리였으나 배타적인 주권의 논리와 엮인 채 자기모순을 빚게 되었고 결국 인도주의의 대세 속에서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인권의 자기모순은 새로운 가능성의 계기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의 권리라는 무모한 발상은 극단적인 각자도생의 현실을 맞이하여 다시금 혁명적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덧 인권은 인간이라는 사실 외에는 어떠한 권리도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할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해 소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간이라는 류(類)의 자격을 공유하는 미지의 타자에게 부여된 권리로 재탄생했다. 인도주의라는 깊은 도덕적 함정을 빠져나온 인권은 기성 정치에 도전하는 새로운 정치를 선보이고 있으며 또 앞으로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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