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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한국사회와 가난 ② - 구룡마을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가난 (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2:09
조회
385

기획 [한국사회와 가난] ②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톨릭신문 기자


 버스 종점에서 내려 마을이 시작되는 곳을 찾았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라는 큼지막한 간판을 내단 망루가 고민을 쉽게 덜어주었다. 컨테이너 박스와 철제 계단 등으로 얼키설키 지어놓은 3층의 망루는 흡사 중세시대 야전초소를 연상케 했다. 철거촌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망루는 봄단장을 하는 중인지 페인트칠이 한창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아파트 단지나 제법 큰 상가 주차장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관리실에서 건장한 남자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 마을을 드나드는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부터 떠나지 않던 그들의 눈길이 잠시 다른 곳을 향해 있는 틈을 타 재빨리 마을로 들어섰다. 뒤통수에서 “어디 가시오?”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짐짓 못 들은 체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몇 번이나 소개돼 낯설지 않은 ‘구룡마을’ 탐방은 그렇게 약간의 긴장과 떨리는 마음을 누른 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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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마을에서 바라다 본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모습


 가난, 벗기 힘든 굴레


 본격적인 마을 초입에 이르자 머리를 맞대듯 지붕을 맞댄 판잣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몇 가구에, 몇 명이나 살고 있을까?’ 다닥다닥 붙어 숫자도 가늠하기 힘든 판잣집들, 인기척마저 별로 느껴지지 않아 딴 세상에나 온 듯 불안한 마음이 가슴 한곳에서부터 일어났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한가롭게까지 보이는 마을의 판잣집들은 높이가 사람 키를 크게 넘지 않았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은 꿈도 꿀 수 없을 듯 근근이 시멘트로 포장된 길도 얼마 이어지지 못하고 군데군데 끊기고 있었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570번지 일대를 일컫는 구룡마을, 그러나 이 마을은 행정 지도 어디에도 표시돼 있지 않다. 주민 대부분이 사유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별 주소도 없다. 이른바 유령 마을이다. 강남의 부를 상징하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직선으로 불과 1.3㎞ 거리인 이 마을에는 동사무소나 치안센터, 소방서 같은 기본적인 행정기관은 물론 흔하디흔한 학원이나 오락실 하나 없다.


 국내 최대의 판자촌


 구룡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7월,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부가 대대적인 빈민가 철거작업을 벌이면서였다. 88올림픽이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란 사실은 이곳에서도 분명해졌다. 하루아침에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지으면서 시작된 마을은 1988년 규모가 급격히 커져 현재 17만여평에 2천여 가구가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판자촌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서너평인 쪽집에 사는 주민들의 삶은 ‘열악함’ 그 자체다. 비닐 지붕과 너덜너덜한 문짝이 지탱하고 있는 집들은 걷어차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하다. 날이 따뜻해지면 더욱 심해질 악취와 색 바랜 옷들이 널린 빨래줄, 동네를 배회하는 비쩍 마른 강아지는 1960년대 판자촌 바로 그 광경이다. 공동화장실도 그때 그대로, 화장실 문을 열면 나무 발판 두 개 위에 나무 뚜껑이 놓여 있다. 주민의 80% 이상은 아직도 이런 공동화장실을 쓴다. 1960년대에서 진화된 것이 있다면 LP가스통이 들어와 연탄불을 벗어났다는 점과 전화선이 들어왔다는 것 정도. 학생이나 젊은 사람이 있는 가정에서는 인터넷을 끌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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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으로 남의 땅에서 살다보니 마을 주민들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자신이 살고 있는 개포동으로 올리지 못하고 인근 교회나 일하는 음식점, 친척집 등으로 위장전입을 해놓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이곳을 강남구 개포1동의 일부로 인정받아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등재하려고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기각되고 말았다.


 빈부의 차는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나무로 벽을 대고 비닐로 지붕을 씌운 판잣집의 규모부터가 다양하다. 최하 서너평짜리 쪽집에서 이런 집들을 두세채 튼 7, 8평짜리 집에서 20평이 넘는 ‘맨션’도 있다고 한다. 현재 2,000여채의 판잣집 가운데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1,000가구 정도다. 절반 정도는 비어 있는 셈이다. 비어 있는 집도 마을에서 인정하는 ‘주인’은 다 있다. 판잣집 입구마다 마을자치회에서 만든 주민 명표가 붙어있어 주소도, 건축물 대장도 없지만 ‘주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주거 주민’과 ‘딱지 주민’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 둘러싼 주민 갈등 깊어지는 구룡마을


 이 마을에는 2개의 자치회가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구룡마을자치회(마을자치회)’와 지난 1999년 만들어진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주민자치회)’가 그것이다. 양 자치회 회관은 마을 초입에 10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다.


 마을이 생길 당시부터 자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기요금 같은 공과금을 수납하는 일이다.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다 보니 집집마다 전기계량기를 달지 못하고 대신 자치회가 9개 지구마다 변압기 1대씩을 설치해 전기요금을 걷어 대납했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공과금을 걷다 보니 일부 자치회 간부가 이를 횡령하는 일이 생겨나면서 주민의 원성을 샀다. 이 과정에서 1999년 7월 2지구 100여채에 불이 난 사고를 계기로 자치회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구룡마을 주민자치회’를 구성해 떨어져 나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룡마을 주민은 이들 두 단체의 분리로 반으로 갈려 아직까지 공과금도 따로 낼 뿐 아니라 재개발 등 마을 운영방향을 놓고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갈등이 최고 수위에 올랐을 때는 두 단체가 상대방의 본부격인 마을회관과 자치회관을 중장비를 동원해 부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양쪽 회관 사이에는 남북한을 갈라놓고 있는 휴전선을 연상케 하는 긴장감이 감돈다.


 다시 들이닥치는 ‘개발 유령’, 그 끝은?


 구룡마을에 다시 ‘개발 유령’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마을주민들 사이에는 골이 깊어가고 있다. 개발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경. 5년이 지난 지금은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면서 마을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마을주민 상당수가 자신들의 미래는 물론 현재의 처지를 명확히 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거주 주민 상당수가 노인이거나 배움이 부족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법적으로 토지에 대해 주장할 권리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되기만 하면 새로운 삶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으라는 허망한 꿈을 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난 때문에 이곳을 택한 ‘주거 주민’들 가운데서도 언제부터인가 이른바 ‘딱지’(입주권)를 기대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구룡마을을 배회하는 ‘개발 유령’은 주민들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심어주면서 힘들지만 건강하게 살아온 이들의 삶과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어 가고 있는 것이다.


 둘로 갈라진 자치회의 갈등도 그래서 깊어지고 있다. 대표성 다툼이 치열하고 그럴수록 상대방의 도덕성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두 자치회 중 한곳에서 주민들의 전출입을 관리하기 위한 주민(회원)증을 발급하고 이 주민증이 ‘딱지’로 인식되면서 한 장에 수천만원씩에 거래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양분된 주민들 사이의 골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깊어졌다. 이런 일의 이면에는 대부분 개발 브로커나 부동산업자들이 있다. 주민들도 어렴풋이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를 어쩌지도 못한 채 더욱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 구룡마을에 대한 기사는 다음달에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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