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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제51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 - 건강한 사회 없이 건강한 개인 없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0:02
조회
172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지금까지 다양한 보건의료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흐름들을 한마디로 ‘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한 활동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건강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면 산재나 직업병으로부터의 자유라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포괄적 의미에서의 건강권은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질병은 개인적 불행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특권과 차별이 스며든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질병을 대하는 것은 사회의 몫


 헌법 35조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밑에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건강권을 환경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영역의 한 부분으로 설정했다. 독자적인 영역으로서의 건강권은 없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1981년 제34차 세계의학협회에서 채택한 ‘환자의 권리에 대한 리스본 선언’을 참고할 수 있다.


 선언의 전문은 의사들이 양심을 따르며 항상 “환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확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환자의 이익’이란 표현으로 ‘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리스본 선언’은 환자의 권리 몇 가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첫째가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환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따라 선택의 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동네병원과 대학병원은 분명 차이가 있다.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할 권리 실행은 불가능하다.


 선언의 세 번째 조항은 환자가 치료를 수락하거나 거절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의사가 치료 결정권자가 아님을 주장하는 굉장히 중요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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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는 의사에 대해 절대적인 약자다. 그런데 선언은 이런 현실을 뒤집어 약자인 환자에게 치료 결정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어서 선언은 환자의 정보 존중,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성직자의 도움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권리 등을 담고 있다.



 보건의료 운동은 사회 운동


 이러한 권리들은 모두 서구 의학의 발달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각각의 의미를 깊이 해석하면 문명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과도 같은데, 중요한 것은 의료분야에서의 하나의 흐름이 진행되고, 그것의 정신과 원칙이 명문화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운동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60년대 후반부터 의료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서울의대 사회의학연구회에서 공해지역 비교조사, 농촌 의료봉사, 판자촌 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특히 판자촌에서 함께 생활하며 1971년에 ‘판자촌민 연구’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70년대에 축적된 운동 역량들이 87년 6월 항쟁이후 분야별 집단의 결속으로 전문가 집단이 출발하게 된다.


 올해 20번째 생일을 맞는 단체들이 많은데, 주로 ‘민주’자가 들어간 단체들이 그렇고, 보건의료부문에서는 ‘건강’자가 들어간 단체들이 그렇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등이 있다.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대표적인 단체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다. 인의협은 굉장히 많은 일을 해왔는데 영세민, 장애인, 해고 노동자, 파업 노동자 등의 의료 상담·진료에서부터, 상봉동 진폐증,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직업병, 유기용제중독증의 조사 작업, 고문 피해자, 시위 중 사망 학생, 구속자, 의문사 진상 조사 등의 권력 피해자 돕기 등을 전개했다.


 이런 활동들은 기존 보건의료부분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으로, 돈벌기 위한 진료가 아니라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료 운동이었다.


 내가 제일 많이 한 것은 권력의 피해자 돕기였다. 시위 중에 학생이 사망하면 항상 내가 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검 담당의사로 알았다. 경찰폭력이나 의문사가 생기면 유족들과 반 고문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의료보장 확대, 공공의료 확대 등 환자중심 의료 개혁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게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문제다. 민간보험이 들어서면서 의료의 공공성이 수익 지향적 진료에 의해 많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전체가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의료제도 개혁 운동하다가 인의협이 많이 약해졌다. 의약분업 당시 인의협 의사들이 파업을 반대하니까, 당시 회원이 약 2천여 명이었는데, 이제는 회비내는 회원 250여명으로 규모가 줄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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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에게는 권리가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성과물로 1993년에 생긴 원진재단과 1999년에 발족한 원진노동자건강종합센터를 모태로 한다.


 이황화탄소 중독증을 유발해 각종 신경계장해, 행동장해, 정신장해 등을 일으켰던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태는 직업병을 사회적으로 문제화시킨 계기이며, 그 투쟁을 통해 직업병 관리제도와 환자복지에 대한 새로운 전형을 창출해 냈다.


 한국에서 원진 직업병 환자는 약 930명이 진단을 받았는데, 현재 약 850명의 환자가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일본에서 건너온 기계가 한국에서 직업병을 뿌리고, 지금은 중국 반둥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에 개원한 녹색병원은 철저하게 환자중심의 진료를 지향하고 있는데, ‘녹색병원 환자의 권리와 책임’을 인쇄해서 환자에게 나눠주고 외우게 한다.


 환자의 권리로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 충분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 진료비 내역을 알 권리, 의료 행위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 등이 있다.


 반면에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의료진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성실히 협조해야 할 책임을 진다.


의료 운동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 기제가 되려면 몸으로 실천하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운영되어야 한다. 녹색병원을 그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나는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녹색병원에 가라’는 말이 나오도록 수익이 아니라 안심하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익성을 구현하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



 


좋은 의사를 만드는 주체는, ‘우리’


 그러나 이 꿈은 동시대인들의 실천을 필요로 한다. 의사를 믿고 병원을 믿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의사의 진료에 대해 ‘그래서 병명이 뭡니까?’,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라고 질문하여 의사가 믿음 받을 만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단순히 좋은 의사를 찾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좋은 의사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와 무관한 건강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건강권 또한 사회 전체가 논의와 공감, 실천을 통해 합의해 나가야 한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 건강한 개인이 존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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