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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제61차 수요대화모임 지상 중계(08.5.28) - 고전에서 배우는 공부의 비전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9-01 11:23
조회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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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에서 배우는 공부의 비전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고미숙/ 수유+너머 연구원


 어딜 둘러봐도 공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새삼스럽게 공부를 말한다는 것에 무슨 뜻이 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공부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에서 얘기를 풀어가겠다. 먼저, 학교 공부를 보자. 한국의 학교에는 공부가 없다. 다만 성적이 있을 뿐이다. 성적으로 나타나는 학교. 공부가 좋은 대학에 가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공부에 불과하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교수들은 돈 되는 프로젝트 따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대학생들은 고시와 연애 외에는 관심이 없다. 대학 공부가 잘 나가는 직장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역시 대학에도 공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사정이 나은가. 사회에서는 엉터리 공부들이 유행한다. 다이제스트 판 공부나 인터넷 검색 같은 공부로는 내공을 쌓지 못한다. 당장은 폼이 날지 모르지만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스스로 질문하지 못하니 겉은 화려해도 속은 텅 비게 된다.


 이런 공부를 하다 보니 경제적 가치 외에는 아무 것도 사유하지 못하는 지적 주체들이 길러지고 있다. 자립적 활동력을 상실한 채 소유에 서서히 길들여지는 노예와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소유를 추구하는 삶은 파멸할 수밖에 없고, 삶으로써 결코 완성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든, 정신이든, 물질이든 무언가를 완벽히 소유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유하고자 원하는 대상과의 완벽한 일치가 소유의 완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소유에 길들여진 주체의 욕망과 동선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진짜’ 공부는 충동에서부터 자유로워짐을 뜻하며, 소유가 가져올 강렬한 죽음에의 욕구에서 자유로워짐을 뜻한다.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하고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유의 힘을 길러줘야 한다.


 이런 공부는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계몽이 아닌 ‘촉발’이고 훈육이 아닌 ‘감염’일 뿐이다. 그렇게 공부는 위, 아래 없이 서로 감염시키며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스승이란 따로 있지 않다. 스승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를 말한다. 스승이란 가장 열심히 배우는 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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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때 필요한 것들


 공부를 할 때 필요한 것들 몇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공부는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나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下心), 이 두 가지 태도가 공부에 반드시 필요하다.


 스승과 도반이 필요하다. 근대 이전에는 학인들이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그야말로 삶의 역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스승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훌륭한 공부가 되었다. 근대적 지식에는 이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스승과 도반과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고도의 훈련 또한 필요하다. 강도 높은 학습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 학습 없는 토론은 아주 유치한 수준에서 헛바퀴만 맴돌 뿐이다. 이미 이런 문제가 심각해진 대학에서 특히 공부 모임의 재구성이 절실하다.


 자기 비움의 자세 역시 필요하다. 공부할 때는 자기만의 편견을 싹 비우고 늘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자신을 낮춰야만 한다.


 이런 자세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이제 공부의 핵심인 독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상매체 등에 밀려서 갈수록 독서가 설 자리를 뺏기고 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독서의 힘을 재발견해야 한다. 독서는 단지 지적 능력의 보완이나 정보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시각의 폭주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입구이다. 삶과 문화에 대한 전복적인 사유는 책읽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어떤 책을 피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우선 논술서적, 처세술을 다룬 책자들을 피해야 한다. 대신 시대의 통념을 뚫고 나와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보여주는 ‘고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일단 나보다 훨씬 폭넓게, 강렬하게 살았던 분들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 숨 쉬는 책, 생사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이고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책이다.


 고전을 읽자


 고전은 흔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어 사람들이 쉽게 손에 들지 못한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 방법을 알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일상과도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대로 된 공부를 위해서는 자기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과 벗들이 필수적이다. 고전에서 그러한 스승과 벗들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공부의 정수다.


 고전을 읽어갈 때 실천하라고 권하고 싶은 공부법들이 있다. 암송과 구술과 글쓰기이다. 암송은 암기와는 다르다. 일정한 진도가 필요한 암기와는 다르게 몸과 마음을 열어두고 진도 따위는 의식하지 말고 소리내어 암송을 해 보라. 구술이란 어떤 문맥이나 상황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말과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삶과 존재도 변모시킬 수 있다. 글쓰기는 공부의 마지막이다. 글은 자신의 신체 혹은 삶의 개별성과 특이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자신의 문체를 살펴보면 된다.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문체를 다듬고 나아가 자신의 존재도 변화시키는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얘기한 것을 정리하자. 공부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 고로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 곧 나의 운명이니, 나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다른 공부는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여러 실험들을 각자 삶의 현장에서 하도로 하자. 공부가 일상이고, 일상이 공부이다. 그래서 일상은 언제 어디서건 존재의 생성과 변이를 가능케 하는 혁명의 자리가 된다. 공부에 외부란 없고, 삶의 모든 과정이 공부다. 그러므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공부할 수밖에 없다.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 우리의 선택은 간단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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