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강좌

[20070214]<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이렇게 보실거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1-09 12:41
조회
237

“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이렇게 보실거야…”
이찬수 교수의 시민종교강좌 종강


최철규/ 인권연대 간사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는 깨끗하고 엄격한 선민을 자처하는 유대인 베드로가, 신앙에는 충실하지만 불결한 이방인쯤으로 여기던 고르넬리오라는 백인대장의 초대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만남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사도행전 10:34-35)


 ‘성서적 타종교관’을 주제로 ‘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마지막 강의를 진행한 이찬수 교수는 베드로의 고백이 “관례에 따라 이방인을 금기시하고 기독교 공동체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그 동안의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비로소 알게 된 중요한 고백”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은 민족중심의 유대교가 현재와 같이 보편적인 그리스도교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교를 보편종교로 만든 베드로의 고백


 1세기 그리스도교회가 당면한 문제 중의 하나는 우상숭배 논쟁이었다. 다른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공동체와 신의 재통합을 위한 의례로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는 관행이 있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신이나 우상이라고 생각되던 것에 제물로 드렸던 것을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느냐를 고민했다.


 바울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세상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또 하느님은 한 분밖에 안계십니다. 남들은 하느님도 많고 주님도 많아서 소위 신이라는 것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고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는 그 분을 위해서 있습니다.”(고린도전서 8:4b-6a)


 이 교수는 이방인이나 우상숭배 등에 대해 성서가 알려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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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중요한 책이지만,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문자를 통해 신앙을 드러낸 사람들의 상황과 생각을 유추하며 맥락을 읽어가는 행간 읽기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십계명의 일부인 우상숭배 금지 조항은 구체적인 형상 안에서 신을 찾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몰이해에 대한 사제들의 신학적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는 구체적인 형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우상숭배 금지 규정은 없으며, 음행이나 탐욕 등 세상일에 마음 쓰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우상숭배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우상에 대한 성경의 속뜻보다는 고대 유대교의 율법적 정의에만 얽매어 어떤 형상에 절하기만 하면 무조건 단죄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바울로가 말한 것처럼, 천지의 창조주이고 주재자인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신에 대한 상대성의 오류와 유일신에 대한 몰이해에 빠져 있다.


 “신이 있다, 없다라는 논쟁은 그 자체가 신을 있거나 없거나 하는 상대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는 커다란 오류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다’ 또는 ‘나는 나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야훼’(I am that I am)라는 말 자체가 다른 그 무엇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필요가 없는 절대적인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마치 여러 신들 중의 최고신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표현도 신에 대한 부정이며 성서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많은 목사들도 다른 신을 경쟁자로 생각하며 최고신적 관점에서 하느님을 이해하는 신앙을 갖는데, 그러면서도 유일신을 강조합니다. 말 자체가 모순이며 유치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유일신이 갖는 속뜻은 ‘하나는 전체’라는 것이므로, 결국 여러 신들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세상 그 모든 것 안에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 교수는 한국의 개신교가 ‘문자 속에 신을 가두고 죽이는 성서 절대주의의 오류’에서 빠져나와 성서의 행간에 스며있는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을 제대로 이해해야 예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다른 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자이며 유일자인 하느님을 드러내는 성서는 하느님이 성서안에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성서를 넘어서는 그 어떤 곳에도 존재하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성서를 성서답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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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문자에 갇히지 않는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며 이 교수는 “나누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시간이 항상 부족해서 참 안타깝다”라며 강좌를 끝내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한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전했다.


 ‘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좌는 이슬람, 불교, 똘레랑스를 주제로 이희수 한양대 교수와 윤영해 동국대 교수,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특강을 하였으며, 이찬수 교수가 5강을 진행했다.


 “다양한 종교들을 통해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였으나,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했던 이야기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그렇게 보실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귀한 존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