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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사회> 어떤 만남 2 - 강의실에 두고 온 것들 (이찬수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5:00
조회
493
이찬수 교수
강의한다는 것은 즐겁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후회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강의 중 내 속에 있던 알량한 앎이나마 필요한 지식으로, 또는 삶의 신선한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이들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 교수 노릇 하는 보람도 그럴 때 찾아진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가만 보면 두려움의 이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무수하게 내뱉어놓은 말들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 즐거움의 반대편에서 내게 적지 않은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종교적 가르침과 관련된 강의일수록 그러한 느낌은 더하다. 책임을 덜 지려면 말수라도 줄이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직업적’ 상황을 그 책임에 대한 면죄부로 삼아버리고 만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나를 비워 너를 내 안에 담아내야 한다고, 그것이 성현들의 가르침이라고, 예수 메시지의 핵심도 결국 그런 식으로 생명의 살리는 행위에 있다고 수도 없이 입밖에 내뱉었을 텐데, 그 엄청난 말들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 때가 태반이니, 나는 그 말들을 어디에다 버려두었단 말인가. 내가 기억도 못할 말들로 강의를 포장해왔다니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즐거움의 이면에서, 아니 내면에서 벌어져왔고 또 벌어지고 있을 그 무책임한 말들과 일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나는 너무나 많은 말들을 강의실에 그냥 남겨두고만 다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황지우, “두고 온 것들” 중에서)
뜻밖의 일로, 정말 뜻밖의 일로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에서 풀어놓게 된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제목의 강의는 세상에는 부당한 일을 저지르는 이들도 많지만 거기에 항거할 줄 아는 이들도 많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시켜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로 이해 적지 않은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쉬움과 두려움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강남대에서 7년 여 해오던 강의의 축소판인지라 새삼 준비해야 할 내용은 기실 별로 없었지만, 그래서 부담도 크지 않았지만, 바로 그만큼 아쉬움과 두려움으로 남는 것도 사실이다.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반인권적 상황과 종교적 편협성에 시위할 줄 아는 뜻있는 이들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일곱 차례 강의를 마쳤고, 내 인생 역정에서 남다른 밀도나 농도를 지닌 시간이었지만, 내가 기억도 못할 말들이 살아서 그 어디선가 영향을 주고 흔적을 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짐짓 두려워진다. 강의 때문에 원근 각지에서 찾아오신 분들께 대한 ‘서비스’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는 느낌 때문에 후회스럽기도 하다. 왜 당연한 말 한 마디도 좀 더 준비하는 가운데 하지 못했을까 아쉬워진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나의 언어적 체취들을 그냥 강의실에 두고 온 듯하여 가장 두렵다.
내 삶으로 가져올만한 것들만 뱉어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든 크든 말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할 도리밖에 다른 것이 없을 듯하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지금보다는 좀 더 크게 보며 살아야 겠다. ‘인권연대’, ‘종자연’을 비롯해 여러 사회, 종교 단체들, 그리고 “기독교와 현대사회” 다양한 수강생들과의 만남이 내게 준 것은 바로 그런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