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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차 수요대화모임(09.10.28) 정리- 박용현(한겨레21 편집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50
조회
421
인권과 언론보도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저널리즘의 기본요소>(The Elements of Journalism). 날로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 미국 언론인들이 1990년대 말 ‘우려하는 언론인 위원회’를 만들어 대대적인 연구·조사활동을 거쳐 내놓은 책이다. 변해가는 언론 환경 속에서 언론인들이 지켜야할 원칙과 저널리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담겨 있다.

이 책은 첫 번째 원칙으로 진실(truth)를 제시한다. 그런데 공정성(fairness)이나 균형(balance)이란 준칙은 따로 다루지 않고 있다. 연구·조사 결과 이들 준칙은 너무 주관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떤 언론인들은 근래 몇 년 사이 ‘진실성’(truthfulness)의 원칙에 대한 대체물을 제안했다. 크게 두 가지로, 공정성과 균형이다. 그러나 공정성은 너무 추상적이고 결국 진실보다 주관적이다. 누구에게 공정하자는 건가? 어떻게 공정함을 입증하는가? 진실성은 최소한 입증할 수라도 있다.” “균형 또한 너무 주관적이다. 양쪽 당사자에 공정한 균형 잡힌 보도는, 만약 양쪽이 사실에 있어 같은 무게를 지닌 게 아니라면, 진실에 대해선 불공정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는 사실인가? 압도적인 다수의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언론은 양쪽 주장에 똑같은 무게를 둔다.” 그러므로 최고 가치는 진실이며, 공정성과 균형은 이를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공정성과 균형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언론인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책이 제시하는 답은 시민(citizen)이다. 회사가 첫 번째 충성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업무와 편집의 철저한 분리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양쪽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의견을 나누되, 보도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뉴스룸 쪽이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옵저버> 편집장들이 사내 광고부문의 회의에 참가해서 했다는 말이 소개된다. “우리는 아이디어에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간섭엔 열려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권력 감시 그리고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 주기(Offer Voice to the Voiceless)�이다. 이는 정부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권력을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권력의 치부를 들추는 탐사보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눈돌림을 동일한 무게로 강조한다.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정리하자면, 인권에 충실한 보도는 크게 첫째 인권 원칙에 충실히 따르는 보도, 둘째 인권 실현을 충실히 추구하는 보도로 나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첫째 원칙과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의 문제와 같은 언론과 인권 원칙이 충돌하는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프라이버시와 관련해 참고할만한 해외사례가 있다. 99년 모나코 캐롤라인 공주의 사진이 몰래 촬영되어 보도된 사건인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해당 보도가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언론사의 요구를 더 중시한 것이다. 모든 이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려면 그런 보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유럽 인권재판소 재판관들은 캐롤라인 공주의 사생활 보호에 무게를 실었다.
공주의 사생활도 보호되어야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언론의 역할이 여론 형성에 있다고 해서 단순한 오락 기사를 헌법상 보장된 언론 자유의 대상에서 제외해선 안되며 여론 형성은 오락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아니라고’ 봤다. 또한 ‘오락성 기사도 여론형성에 기여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사는 오로지 사실만 다룬 정보성 기사보다 더 지속적으로 여론 형성을 촉진하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캐롤라인 공주에 대한 보도가 표현의 자유로 보장된다는 거다.

이에 비해 유럽 인권재판소는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저울질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는 해당 사진과 기사의 보도가 일반의 이해관계가 걸린 토론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중점을 두었다. 청구인, 즉 캐롤라인 공주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인물이고 문제된 기사도 오로지 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만 다뤘기 때문에 그런 기여를 전혀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나아가 청구인이 비록 유명인이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장소에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대중이 그의 위치와 사생활에서의 행동 방식 등을 알아야 할 정당한 이해관계를 지닌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캐롤라인 공주의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보호 사이의 엇갈리는 견해에 대해 참고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두 번째 원칙인 인권 실현을 충실히 추구하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거의 모든 문제가 인권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인권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해외사례를 보자. 2001년 영국 히드로 공항 인근 주민들이 유럽 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공항에서 나오는 야간의 소음으로 인해 ‘가정·사생활·가족의 삶을 존중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했다는 이들의 제소에 대해 유럽 인권재판소 1심 재판부는 5대 2의 판결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2대 5의 판결로 영국 정부가 주민들의 권리와 다른 이들의 권리, 즉 승객의 여행할 권리 및 국가 경제에 필요한 기업의 영업권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재판관들은 영국 정부의 정책이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했다고 봤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권 보호와 환경 보호의 시급한 필요성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 상황에서 건강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이며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이 사건에서처럼 밤낮으로 계속해서 또는 주기적으로 비행기 엔진의 소음이 일상을 뒤흔든다면, 가정의 사생활과 관련해 인권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건강을 사생활의 한 요소로 보호하려 할 때 그것이 항공기 이용자들과 국가 경제에 방해가 된다면 이는 분명한 딜레마다. 이러한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더욱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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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현대 언론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문제점은 다 나온 얘기들로 치부하거나, 어떤 문제는 인권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어린이, 빈곤, 평등권 문제 등은 인권문제인데도 인권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인권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는 경향이 존재한다.

인권에 대한 언론보도를 연구한 사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1970~80년대 뉴욕타임스, 타임, CBS, 영국 타임스 등의 보도를 분석한 논문(Ovisiovitch, Jay Samuel)에서는 시민·정치적 권리(신체적 학대나 정치적 탄압)에 집중했던 미디어의 모습을 분석했고, 2000년대 나온 국제인권정책연구회(International Council on Human Rights Policy)의 보고서 ‘저널리즘, 미디어, 그리고 인권 보도의 어려움’에서는 눈에 덜 보이고, 더디게 진행되는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인권은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빈곤, 불평등, 사회·경제적 차별 등의 문제는 대개 무시되는 미디어의 특성을 지적했다.

2009년 영국 어린이·청소년 인권연대(the Children's Rights Alliance for England) 보고서에서는 10개 신문 6개월치를 분석한 결과,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와 평등을 다룬 기사는 어린이·청소년 관련 기사의 1.8%에 불과했다. 물론 빈곤문제 등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마치 ‘머리와 심장을 쟁취’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미지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계량적 분석은 못해봤지만,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문제가 날로 중요해지고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의 정책에서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그런 만큼 인권 이슈에 대해 보도하고 설명할 책임(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직업적 책임)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개선을 위해 인권친화적 보도를 위한 언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조건은 무엇보다 인권교육이다. 저널리즘 스쿨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국제 인권기준에 대한 직무 교육등도 수반되어야 한다. 회사 자체적으로도 인권 이슈에 대한 보도를 검토하는 사내 프로그램을 기획·진행되어야 하고, 언론인과 인권단체 사이에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활동들이 장려되어야 한다. <인권연대>가 기자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언론인권상을 만들어주거나, 기자들을 위한 인권교육활동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안팎에서 함께 인권의 진전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