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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차 수요대화모임(09.09.23) 정리 - 이대근(경향신문 정치 · 국제 에디터)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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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8-08 10:49
조회
429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 평가를 할 때, ‘잃어버린 10년인가’ 혹은 ‘성공한 10년인가’ 하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회복, 민주화 운동을 한 세력이 집권함으로써 기본적인 정치적인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 남북 간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제 권력은 유지 혹은 확장되었다. 부동산 급등으로 부자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고 다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약화되었다.

따라서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 사이의 어느 사이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서민, 가난한 자들이 민주당 정권 10년을 버리고 이명박 정권을 선택했으며, 그리고 왜 또 다시 실망하고, 더 고통 받고 가난해지고 힘겨워하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고 한국 민주주의 과제를 밝혀내기 위해 10년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때 평가의 기준은 어떤 민주주의를 했는가, 즉 정치적 자유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의 개선, 사회적 시민권의 확보, 평등의 확산 등을 준거로 해야 한다.

사실 지난 10년은 보수정권의 긴 지배기간의 ‘짧은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운동이 약속한 혁명, 변화, 개혁, 민중생존권, 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은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어디로 사라지고, 한국 사회의 보수화가 심화되는 속에서 대안을 찾는 길은 지난 10년 정권을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설정한 의제와 한계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의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었다. 권위주의 청산, 정경유착 탈피, 정치개혁,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 민주주의 개혁과 함께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관치경제와 재벌을 시장을 통해 개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실패하고 관료에 의존하였고, 외형적인 외환위기는 극복하였으나 재벌개혁에는 실패하였다. 오히려 재벌의 독점과 집중 현상이 다시 나타났고, 한국을 외국자본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켰다.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카드 대란과 부동산 거품이 일어나고 서민생활은 악화되었다.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격상시키고 국가인권위원회, 여성부 설치 등 인권보호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부패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지역주의 가신정치의 폐해도 극복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의제는 특권과 차별의 철폐,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회적 부, 권력, 가치의 재분배, 소수자와 약자 보호를 통한 사회적 균형 유지였다. 이는 사실상 진보적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역시 스스로 설정한 국정목표와 지지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실현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현실적 실패에는 눈을 감고 그가 실현하지 못한, 실현할 엄두도 내지 않은 막연한 노무현 구상을 기준으로 노무현 정권을 평가하는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퇴임 이후 정치평론가로서의 노무현의 진보주의적 구상이 아니라, 진보주의적 개혁과 변화의 열망을 배경으로 집권한 이후 임기 5년 동안이 평가와 분석의 내용이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의 독점세력에게 시장 전체를 넘겨주는 시장주의를 지향했다. 아파트 분양가 원가공개와 상한제를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반대했고, 법인세와 특소세를 인하하고 재벌규제를 완화했다.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하였다. 시장에 대해 맹신하였고, 시장과잉을 제어하기보다 시장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그 결과 삼성공화국은 강화되었고, 갑작스럽게 한국사회 경제의 미국화를 추구하며 한미 FTA를 추진했다. 북유럽형 모델 논의는 중단되었다.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서민들은 시장의 폭력성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이미지는 진보적 정책이나 하물며 수사(修辭)에서 온 것이 아니라, 대결적 언어의 구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결적 언어로 인해 보수 세력으로부터 좌파, 진보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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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정치가 아닌 반정치를 했다. 서민들의 이해와 욕구를 국정에 반영하지 않았고, 대연정, 개헌 발언 등으로 정치의 기능 자체를 붕괴시켰다. 민주노총, 전교조 등과도 갈등하고 투쟁하였고, 노동운동에 대한 적개심과 무시하는 태도를 표출했다. 탈권위주의, 권력기관의 정치화 배제, 지역균형발전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퍼스널리티가 분열과 대결의 화법을 즐김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이 증폭되었고,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손실을 자초하고,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불신을 촉발시키는 한편, 반대세력을 결집시켰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세력은 화려한 약속과 달리 사회적 양극화, 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을 낳게 하였다. 이는 집권기간 중에 집권당이 몰락하고 해체하는 놀라운 정치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시민들은 집권세력에 복수를 하였고, 정권교체와 함께 국회도 반노무현 세력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배반당한 민주화 20년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소득분배 지표들이 악화되기 시작하는 등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이 2,316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등인 헝가리(1,986시간)와 300시간 이상 차이나고, OECD 평균 근로시간 1,768시간보다는 548시간이나 더 많다. OECD 가입국 중 빈곤률은 6위이고, 자살율은 3위, 출산율은 최하위이다. 여가시간과 수면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짧고, 삶에 대한 만족도는 30개국 중 24위다.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 삶의 질은 최하수준의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이게 과연 민주화 20년의 열정과 헌신,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의 대가인가? 이 모든 것이 자유주의 세력(민주화운동세력)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유주의 세력이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이 세력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무너졌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다.
현실을 극복할 대안은 없는가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등 야당 정치세력의 역할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호남을 기반으로 지역적 근거지를 축소시켰고, 잔존세력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결집한 당으로서 반대세력일 수는 있지만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문제의 본질은 10년 집권의 결과 참혹한 몰락을 초래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성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 원인을 따져보고 기초부터 다시 세우기보다는 과거 집권기 이탈세력의 재결집을 회생의 제1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식의 통합은 과거 세력의 재결집 이상의 의미가 없는 타임머신 정치이다. 이 같은 통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당 의원들의 일반적인 성향, 정책방향, 노선 등을 고려할 때 전반적으로 보수화의 경향이 드러난다. 한미 FTA, 비정규직법, 법인세 인하, 성장 주시 등 노선상에서는 한나라당과의 차이도 크지 않다. 물론 구체적 현안에서는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지만, 대립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노선이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나라당의 중도실용노선으로의 전환과 민주당의 중도개혁주의노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노 상의 차이를 매우 좁힐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노선의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이명박 세력의 대표권을 독점하고 있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같은 뿌리라는 인식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의 하락이 대안으로서의 진보정당 지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고, 동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독재로 규정하며 악마화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는 이명박 정권이 시대적응력을 상실한 무능한 보수정권이라는 본질을 은폐하며, 반대세력이 올바로 반대할 수 있는 길을 방해한다. 또한 자칫하면 지난 10년 정권을 미화하는 퇴영적인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올바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하고, 다수의 이익을 실현하고 복지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수의 정치적 조직화를 통한 자기 욕망의 실현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심화이고 진보이며 동시에 개혁이다.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이명박 정권은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지키느라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 반대는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서민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민주대연합을 견인하면서 동시에 진보의 확장을 추구하기 위한 진보대연합이라는 이중의 연대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대안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다수를 어떻게 뭉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