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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사회권국가(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40
조회
180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달 유엔 권리위원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12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저소득취약계층에 대한 사회권 보장을 제대로 실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 즈음에 프레시안이나 경향신문 등 많은 매체들이 우리나라를 '고성장, 저사회권국가'로 규정하였다. 당연히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사회권 정책의 실상을 설명할 때에 좀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점을 제대로 밝히면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개혁정권이 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절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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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1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가 유엔 권리위 보고서를 수용하도록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부의 불평등에 대해 다양한 측정도구가 있지만, 오늘날에도 대체로 지니계수로 불평등의 실상을 해명한다. 지니계수는 인구누적분과 소득누적분을 축으로 하여 불평등을 평가하는데, 지니계수가 이론상 0이면 완전평등사회이고, 1이면 완전불평등사회가 된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0이나 1은 불가능한 수치이므로 대체로 0.2에 가까우면 매우 평등한 사회로, 0.3을 넘으면 불평등한 사회로, 0.4를 넘으면 매우 불평등한 사회로 규정한다. 지니계수는 작성기관마다 편차가 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최근 발행된 국회예산정책처 현안분석자료 48호에 따르면, 이른바 IMF 직전인 1995년의 지니계수를 0.268로, 2008년의 지니계수를 0.325로 추산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통계치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해석하는데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빈곤문제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빈곤과 소득불평등은 지난 개혁정부가 마땅히 시정했어야함에도 시정하지 못하여 현 정부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태가 이렇기 때문에 현 정부는 오히려 인기영합적인 빈곤정책을 펼쳐 여러 가지로 혹세무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구인회의 <한국의 소득불평등과 빈곤(서울대출판부, 2006>은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국의 산업화시기로부터 고도성장기, 90년대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체제 이후의 사정을 반영하여 부의 불평등 분배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 통계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첫째로, 60년대 이후 한국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하였고, 산업화 이후 지니계수는 점차 낮아졌으며 1995년을 전후하여 저점에 이르러 비교적 평등한 사회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IMF 구제금융 이후에 지니계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빈곤층이 폭증하여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이 다루고 있지 않는 최근 몇 년 간의 상황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부터 얻은 시사점은 고도성장기, 완전고용, 개발의 논리는 한국사회에서 97년을 고비로 끝났다는 것이며, 물론 완전고용 시대에는 국가가 재분배정책을 실시하지 않아도 빈곤층이 취업활동을 통해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IMF 체제와 같이 절대적 빈곤층이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일자리가 증발하는 고실업 구조 하에서는 빈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빈곤층에게 빈곤탈출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IMF와 동시에 집권한 개혁정부는 소득격차를 완화시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재분배정책에 의한 소득개선정도는 시장지니계수와 세후지니계수(가처분지니계수)의 편차를 통해 알 수 있는데, 개혁정부하에서도 그 편차가 미미하였다. 실제로 소득재분배가 절실히 필요하였는데 개혁정부는 도리어 신자유주의를 들고 나오면서 사태를 어지럽힌 끝에 정권을 상실한 것이다.

물론 소득불평등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아니고, 현 정부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어쨌든 성장과 완전고용의 신화(박정희의 신화)에 입각한 경쟁적 사회의 모델은 끝났으므로 사회문화적 안전망을 갖춘 좋은 사회로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는 현 정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사회권규약 제2조에 따르면, 당사국은 가용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여 사회권을 점진적으로 실현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용산참사에 보듯이 사회적 약자의 생활터전을 최대한 약탈하고, 콘크리트 자본가들을 위하여 가용자원을 최대한으로 한강에 투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