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북한 암살조 보도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광조 CBS PD)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8:12
조회
145

이광조/ CBS PD



최근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박근혜 의원이 2002년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부부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소를 자아내는 이 해프닝을 보도한 국내 한 언론사의 기사는 “김 위원장 부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중국 온라인 매체나 네티즌들은 김 위원장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박 전 대표를 제대로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김정일의 부인’이라고 소개하며 유포한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다. 기사는 이어서 “현재 이 같은 황당한 사진에는 각양각색의 황당한 설명도 붙었다. ‘김정일의 4번째 부인’이라는 설명이 가장 많지만 ‘김정일의 절세미녀 4번째 부인’ ‘김정일의 2번째 부인’ ‘좀 오래된 사진이지만 김정일의 부인’ 등과 같은 설명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이나 그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웃고 넘어갈 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단순히 개인의 신상에 관한 엉터리 정보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와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사안이, 위에서 인용한 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제대로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보도된다면 어떨까?

지난 8월 10일 중앙일보는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김관진 국방장관을 암살하려는 특수임무조가 국내에 잠입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 암살조가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의 군·정보 당국이 파악하고 암살조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김 장관 암살조가 움직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와 경색된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국방장관을 암살한다는 것이 곧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정말 현실성이 있는지, ‘정부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 신뢰할만한 건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 보도를 필두로 중앙일보를 포함해 여러 언론에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김관진 국방장관의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 예비군 부대가 김정일, 김정은 부자 표적지를 사용한 것이 암살조 파견의 배경으로 제시됐고 급기야 북한 내부 기관 사이의 충성 경쟁까지 거론됐다. 어느새 북한 암살조의 암약이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10112347203_60100050.jpg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 뒤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국방부 장관의 의연한 자세가 화제가 되었다. 그의 하루 일과가 지면을 장식하는가 하면 “나와 함께 다니면 큰 일 날지 모른다”는 장관의 쿨 한 농담이 기사가 되고 김관진 국방장관의 강경하고 의연한 태도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고 있어 미 국방부에서 이를 ‘김관진 이펙트’라고 부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뿐인가 또 다른 신문은 김 장관이 장관 취임 이후 지휘 서신 1호에서 인용한 이순신 장군 결의를 인용하기도 했다.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여기에 장관이 트위터에 올렸다는 ‘저는 건재합니다’라는 발언까지. 총성 없는 전쟁이긴 하지만 국민들은 의연한 장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편의 장엄한 드라마를 지켜본 셈이다.

그런데 장엄한 드라마는 꼭 여기까지였다. 결말은 ‘이 모든 것이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라는 것이었다. 온갖 극적인 반전 끝에 ‘이 모든 건 주인공의 꿈이었어’라고 마무리는 드라마처럼 8월 10일부터 근 열흘간 긴박하게 진행되던 드라마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것도 주인공의 입을 통해.

국민들이 느꼈을 허탈감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었는지 한 여당의원은 김 장관에게 “북한 암살조 첩보가 허위라면 유표한 기자를 처벌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럼 정보를 흘린 정부 고위 관계자는 어떻게 하며, 언론이 불어대는 가락에 장단을 맞춘 우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중국 포털 사이트의 ‘박근혜, 김정일 4번째 부인’ 보도에 혀를 차는 한 신문 기사를 보며 ‘썩소’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누굴 나무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