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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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박현도/ 종교학자 지난 해 초부터 불기 시작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와 달리 시리아는 1년 넘게 정부의 강력한 유혈진압 속에 국제사회가 개입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이미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나라들은 새로운 민주 정권을 창출하기 위하여 여러 정치 세력들이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실로 민주화의 길은 험난하고도 멀다.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내부사정만 복잡한 것이 아니다. 이들 국가를 둘러싼 국제 강국들의 움직임도 만만찮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은 행여나 반서구 기치를 내세우는 이슬람 정권이 중동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기회에 서구의 대중동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석유 자원이 풍부한 중동을 어떻게 해서든지 장악하려는 욕심이 빚어내는 추악한 풍경이다. 격변의 풍랑을 맞고 있는 중동을 보면서 자유롭게 한 표를 던지는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사실 굳이 중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민의를 왜곡하지 않고 반영하는 투표와 결과를 존중하는 민주 정치제도를 확립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부끄럽지만 우리나라도 이 점에서 온전한 민주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와 진보를 외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만 엄격할 뿐 스스로에게는 너무나도 관대한 통합진보당을 보면서 소위 시쳇말로 “멘붕”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굳이 중동의 민주화만 문제 삼을 수 있겠는가. 마침 선배라도 되는 양 중동국가에 민주화 훈수를 두려는 제 자신이 어찌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국가의 민주화 진척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현 중동의 민주화과정이 우리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반성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에 숨 막혔던 사회가 정의와 자유를 찾아 정상적인 삶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그 여정이 고통스러운 지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대다수의 독재정권이 그러하듯 민주화 시위 물결에 휩쓸려간 중동의 장기집권 지도자들 역시 자신들이야말로 국가를 선진대국으로 이끄는 적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러한 확신 하에 그들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총칼로 반대자의 입을 봉하고, 손발을 묶었다. 미행, 체포, 구금, 고문은 일상적인 통치 수단이 되었고, 국가안보와 부패비리척결이라는 구호는 정치적 반대자를 깔끔하게 제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반대가 없는 사회에서 대안세력이 똬리를 틀 공간은 없었다. 통치자는 곳곳에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을 세워 ‘라인’을 만들고 이익을 취하였다. 그들만의 정부가 굳건히 자리내린 것이다. 강력한 이인자는 위험하기에 그런 싹수를 보이는 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였다. 이러다보니 그들만의 정부는 통치자를 위한 기쁨조가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물론 이러한 일은 통치자가 다 계획한 것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아랫것들이 알아서 한 것으로 통치자는 모르는 일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다. 통치자의 개가 된 언론이 주인을 물 일이 만무하니 비판여론이 형성될 공간도 없었고, 비판적인 야당세력이 생기기도 어려웠다. 대안세력의 부재와 아울러 분열은 독재문화의 산물이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나중에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마따나 독재자 밑에서 자유와 변혁을 꿈꾸던 사람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미워하고 욕하던 사람을 닮아 독단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눈앞에 펼쳐진 민주화의 길을 어깨동무하며 함께 가기 어려운 것이다. 최악의 경우 무정부적 혼란보다는 독재자가 더 낫다며 군사 독재자를 다시 전면으로 불러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중동의 혼란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주화되었다고 우리도 자랑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힘들게 구축한 자유의 열린 광장을 다시금 우리 손으로 폐쇄할지도 모른다. 말끝마다 민주와 진보를 들먹이면서도 비민주적 구태를 반복하는 민주인사들이 넘치고, 나의 사랑은 로맨스라고 미화하면서도, 남의사랑은 불륜으로 매도하는 이율배반적 태도가 몸에 밴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곳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국가의 이익을 나눠먹고 시민들 뒷조사나 하는 부패한 정치인은 중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귀에 따갑도록 들은 영포라인, 민간인 사찰은 모두 국산이다. 벤 알리, 무바라크, 까다피, 살레 등 독재시장에서 1위를 두고 다투던 인물들이 중동 민주화 바람에 사라졌다. 지금 그들이 남긴 추악한 배설물 악취로 중동이 들썩인다. 그런데 그 냄새가 우리에게도 난다. 한국이 중동인지, 중동이 한국인지 모르겠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도 헷갈리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갈피를 못 잡겠다. 솔직히 우리가 중동을, 아니면 중동이 우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지 그 여부조차 잘 모르겠다. 중동이 민주화 되겠냐고 비웃지 말자. 한국은 민주화되었냐고 물을까 두렵다. 중동 민주화, 그 험한 길을 보면서 자꾸 낯 뜨겁고 자괴감이 든다.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멋모르고 까부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더 차분하게 성찰해야한다. 홀로 방안에 고요히 앉아 하루 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아도 부끄러운 것 하나 없는 삶을 추구했던 유학자를 선조로 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혼란의 중동을 보면서 우리를 반성하자. 민주주의에 비추어 부끄러운 것 하나 없는 나라가 되도록 말이다. 국격(國格)은 그렇게 높이는 거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2 | 추천: 0
정재원/ 서울대 국제대학원 강사 러시아에서 유학할 당시의 일이었다. 선정성, 독립성 등에 있어서 악명 높은 러시아 언론 매체들에서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총선에 즈음하여 이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즉 공산당으로부터 이탈한 민족주의적 분파들이 ‘조국’이라는 독자적인 정당을 창당, 선거에 임하면서 선거 광고가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우리네 상식을 초월하는 인종주의적인 것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러시아의 이슬람계 소수민족들이 거리에 앉아 수박 씨(수박은 소수민족들의 대표적 상품이다)를 바닥에 지저분하게 뱉으면서 지나가는 러시아 여성을 희롱한다. 게다가 이들은 러시아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본 ‘조국’ 당의 당수가 그들에게 다가가 여기는 러시아 땅이니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라고 하면서 훈계한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리의 쓰레기들을 치우자. 그리고 프랑스 외곽에서의 이민자 폭동을 보여 주면서 이들은 경고한다.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도 곧 저런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종주의적 선거 광고가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어 의회에서 제약이 가해지기 전까지 버젓이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마지못한 의회의 방송 금지 조치가 있었지만, ‘조국’ 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의 화면을 그대로 내보내되, 단지 이것은 프랑스의 상황이라며 프랑스어로 더빙하고, 아래에 러시아어 자막이 나오는 버전으로 바꾸어 광고를 계속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리고 이 새로운(?) 버전 속에서 수박을 먹던 소수민족 청년들은 아랍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더빙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체제 전환 선언 이후 벌어졌던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사회경제적 붕괴는 거의 모든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스킨헤드로 대변되는 각종 극우민족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등의 부활을 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일련의 스킨헤드들의 인종주의적 행태들이란 반드시 특정 파시스트 집단의 조직원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종주의적이고 타민족배타주의적인 분위기는 일반대중들에게서도 만연되어 있다 보니 인종혐오범죄의 상당수는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여러 여론 조사에 따르면, 방법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으나, 러시아인들 중 인종주의적 범죄자들의 주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과반수를 넘는 충격적인 결과들을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반인류적, 반인권적 광고가 버젓이 공중파를 탈 수 있었던 데에는 정치엘리트들 뿐 아니라, 러시아 일반 대중들 또한 비러시아 민족에 대한 혐오감이 극도에 달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상황은 러시아와 과연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에도 독도, 정신대, 욱일승천기 문제 등으로 크게 불거지고 있듯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늘 비판하고 분노하면서도, 우리가 타민족에 대해 차별과 억압을 자행한 역사 혹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저들과 다를 바 없는 논리로 자신들의 언행과 행동을 정당화하곤 한다. 특히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대중들은 불만을 사회의 약자들에게로 터뜨리곤 하는데, 최근 우리 사회도 이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사실상 결혼 이주민 여성들의 동화와 이주 노동자 가족 등 다른 형태의 이주민들의 배제 정책에 다름 아닌 현재의 다문화 정책과 외국인 고용 정책에 대한 불만은 엉뚱하게도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이주민들에게 향하고 있다. 즉 기업들이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선호함으로 인해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임금 인상이 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외국인들 더 받아들이자는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특히 경제 위기와 사회 양극화, 사회안전망 부재의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하층 집단들에게 커다란 불만을 갖게 하였고, 특히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내국인이 차별받고 있다는 식의 논리는 한국 고유의 순혈주의에 대한 환상과 겹치면서 가히 폭발적인 수준의 적대감으로 돌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필리핀 이주 여성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상징적으로나마 정치권력까지 부여할 기미를 보이자 이러한 불만은 극에 달했고,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오원춘 사건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증이 현실에서도 조직화되는 단계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공장과 건설 현장, 심지어는 출입국관리소나 단속공무원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차별과 착취, 구타 등 다양한 인종주의적 만행들은 비일비재했지만 이는 창피한 일로 취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7월, 필리핀 이주 여성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자스민 의원이 주최한 다문화정책 토론회에서 외국인 혐오 단체 소속 회원들이 소란을 피웠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가령,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도주하다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이나 침몰한 중국 어선에서 사망 실종된 선원들에 대해서도 잘 죽었다는 댓글이 쉽게 발견되고, 성범죄 사건 때마다 혐의를 즉각 외국인들에게 돌리며, 전혀 상관없는 과거의 사건들과 연관시켜 인종주의적 모독을 서슴지 않는 댓글이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은 결단코 우리네 현실이 러시아의 그것보다 낫다고 하기 어렵다. 중국동포에 대한 적개심에서 보듯, 향후 본격적으로 특정 이민자 집단의 수가 더 증가하게 되면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인 하층 집단들의 불만이 소위 ‘묻지마’ 범죄 등으로 폭발하고 있는 현재, 그 불만이 이주민들에 대한 공격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이주민들은 다 선하다거나 약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 사회 구성원들과 똑같이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이민자, 특히 비서구권 이민자들에 대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방조하여 사실상 용인해 온 것이 사실이다. 욱일승천기를 철십자와 동일시하는 노력의 근본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과거의 상징이 아닌 현재의 인간에 대한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올림픽 당시 말만으로도 스위스 축구 선수와 그리스 육상 선수가 자국 국가대표를 박탈당한 것을 상기하자.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국제적 수준으로 인종주의와 파시즘 선동에 대해 단호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제정이 시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라도 아직은 낯선 인종주의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며, 이주 노동자나 이주민 권리 운동은 반드시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 운동과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60 | 추천: 0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가을 초입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평온한 저녁,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안에서는 의미 있는 음악회가 열렸다. 퓨전국악과 록밴드, 성악, 자연주의 기악연주 등 다채로운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며 펼쳐진 이 음악회의 목적은 제주 강정마을을 후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년째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응원하는 내용이었지만, 'from DMZ to JEJU'라는 모토처럼 이 음악회에는 DMZ와 제주의 만남이라는 각별한 의미가 배어 있었다. from DMZ to JEJU 모토로 열린 강정후원 음악회의 제목은 ‘레가토’이다. ‘레가토’는 음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의미의 음악 용어인데, 평화가 DMZ에서부터 제주에까지 이어지길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음악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3시간 넘게 이어졌다. ⓒ 송복남 DMZ가 강정을 만난 이유 남북을 가르는 경계지대 DMZ와 ‘평화의 섬’ 제주의 만남,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군사적 대립의 장소와 적극적 가치로서의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만남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만남을 매개한 강정마을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만남에는 그 동안 ‘군사안보’의 다른 이름으로 왜곡돼 온 ‘평화’를 새롭게 쓰자는 염원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군사기지가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 평화는 곧 군사안보를 의미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군사력에 기대지 않는 평화는 그 곳의 오랜 염원이 되었고, 비로소 조금씩 그 싹을 틔워 왔을 것이다. 그 몸부림이 군사기지 건설문제에 고통당하는 강정을 불러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DMZ가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을 초대해 이뤄진 만남 그 자체는 오늘 날 매우 불온한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분단에 따른 군사적 대치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그것도 그것의 접경지역에서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을 초대해 만나다니. DMZ의 평화는 이제 새로 쓰여져야 한다. ⓒ 페이스북 엄미경 안보와 평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 제주 해군기지 문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평화’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2007년에 정점을 이뤘던 그 문제의 쟁점은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가 양립 가능하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평화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힘(군사력)이 있어야 평화가 유지되는 것인지, 평화의 유지와 확장은 평화적 수단으로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 하는 물음이 이 논란의 중심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물음은 과거에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응당 총을 든 군인이나 ‘멸공’ 옆에 비둘기를 그려놓는 식으로 형상화하곤 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총을 들어야 평화도 지켜진다는 믿음이 신념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주입되고 각인되었다. 이런 까닭에 안보, 특히 군사안보에 대한 물음은 그 자체가 금기시 되었고, 국가가 펼치는 안보사업은 성역사업이 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평화는 곧 군사안보만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제 국민들도, ‘안보’, ‘국가기밀’, ‘군사기지’, 이런 것들에 대해 당연히 물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터져 나온 것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이다. 따라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비단, 제주에 이런 군사기지가 적합하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금기시되고 성역시 되었던 국가안보사업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임은 물론, 나아가 과연 군사안보에 기댄 평화란 오늘 날에 가능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남북을 가르는 DMZ, 미래를 가를지 모르는 제주해군기지 일찍이 DMZ는 남북을 가르는 철책선으로서 만이 아니라,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경계가 되었다. 분단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 생각조차 가능한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의 구분을 금기와 강제로서 형성해 나갔는데, DMZ는 그것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DMZ가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경계의 골을 깊게 하는 동안, 정작 DMZ 안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꽃들이 피어나고, 수많은 종류의 새가 둥지를 틀거나 철따라 이동하는 천연의 정거장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도, 이 곳 DMZ의 녹슨 경계가 왜 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철책을 경계로 대립하는 분단의 상황이 더 이상 서로에게 이롭지 못할 뿐 아니라, 굳이 필요치 않다는 또 다른 당위로 새롭게 대체되는 상황이다. 굳이 완성된 통일이 아니어도 남북이 소통하고 교류와 왕래가 필요하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DMZ는 오랜 세월, 남북을 가르는 경계의 상징 장소가 되어 왔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자칫하면 평화로 흘러야할 남쪽 바다를 긴장과 갈등의 바다로 가르는 미래의 경계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이럴 때, DMZ와 강정이 만난 것이다. DMZ는 안보와 군사적 논리에 기댄 평화를 새롭게 다시 써야 할 처지에 서 있고, 제주는 해군기지 문제로 인하여 평화의 섬의 논리와 내용을 새롭게 써나가야 하는 처지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불온한’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이제는 'from JEJU to DMZ'로! 지금 대선이 한창이지만,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차기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할 가장 큰 숙제로 끌어안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큰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DMZ 평화가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는 염원들이 생겨나고, 바로 이러한 때에 강정이 평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 평화란 어떤 실체이어야 하며,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어떤 프로세스로 나가야 하는지, 이를 기반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한반도는 어떤 위치와 역할이어야 하는지의 문제에 한 가운데 놓여있는 것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이다. 이런 까닭에, 한반도 평화문제의 가장 민감하고 첨예한 장소인 DMZ를 바라보는 일도 제주 강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안에 DMZ도 놓여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DMZ의 초대로 이뤄졌지만,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제주에서 DMZ를 초청한 만남이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from JEJU to DMZ' !
2017-07-21 | hrights | 조회: 260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Mahdi Abdul Hadi, Head of PASSIA, http://www.passia.org) 8월 14일 밤, 예루살렘과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권능의 밤(Laylat al-Qadr), 라마단의 신성한 밤을 기리기 위해 성지 예루살렘(동예루살렘-1967년 이스라엘 점령지)에 함께 모였다. 무슬림들은 610년 권능의 밤에 코란의 첫 계시가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2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티카프(하룻밤 동안 모스크에 머무르면서, 코란을 읽는 의식)를 하기 위해 알 아크사 모스크에 모였다. 이티카프는 이른 아침까지 계속된다. 예루살렘의 구 도시(동예루살렘)는 하룻밤 동안 해방된 것처럼 보였다. 군중들이 예루살렘 구도시 중심에 있는 하람 알 샤리프의 매우 상징적인 장소(알 아크사 모스크)에 가기 위해 다마스쿠스 문으로 몰려들면서, 다마스쿠스 문에서 알 아크사 모스크에 이르는 구시가지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예루살렘 구 도시 전체가 사람들로 완전히 뒤 덥혔다. 전례 없이, 이스라엘 정부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예루살렘 출입 허가권을 발행했다. 이에 따라 40세 이상의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남성들은 이스라엘의 최소한의 보안 감시를 통과해서 예루살렘 출입을 허가를 받았다. 이것은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도시를 점령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서안과 예루살렘을 분할하는 경계가 열리고, 서안과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함께 모이면서, 팔레스타인들의 의식으로부터 매일 사라져가는 성지 예루살렘은 다시 한 번 팔레스타인인들의 도시가 되었다. 알 아크사 모스크 주변으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공간을 찾지 못했던 많은 서안지구 사람들은 이 밤을 서 예루살렘, 자파와 하이파(현재 이스라엘 도시들) 등 방문할 기회로 이용하고, 개인적으로 그리워하던 곳들을 방문했다. 일부 사람들은 살라딘 거리에서 쇼핑하기도하고, 말하와 마밀라에 있는 쇼핑센터들로 향했다. 축제 분위기는 동쪽의 알 아크사 모스크와 팔레스타인들이 전통적으로 거주해왔던 도시 지역에만 갇혀있지 않았다. 서쪽으로, 종교의 경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여름 축제(Chutzot Hayotzer 2012)를 위해 힌놈 계곡(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 경계)에 모였다. 예루살렘 구도시 전경. 오른쪽이 바위돔 모스크(황금돔)이고 반대편 왼쪽의 검은돔이 알 아크사 모스크이다. 알 아크사 모스크는 예루살렘 구도시 중심에 있는 하람 알 샤리프의 매우 상징적인 장소이다 사진 출처 - 홍미정 교수   이스라엘 안보는 예루살렘 주변의 수많은 도로들을 폐쇄하고 주요 지역에 추가적으로 부대를 배치하여 힘의 과시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보여준 전례 없는 개방은 이스라엘 안보 문제와 팔레스타인인들과의 미래관계 등과 관련한 동시대 이스라엘인들의 생각에 관해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이 사건의 의미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에게 미칠 영향을 읽어내기 위해서, 정치, 안보, 미래 전략의 관점에서 그 밤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하나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가 서안 지구에 대한 안보 정책을 급격히 바꾸기 전에 시험하는 하나의 시도라는 낙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과 이스라엘 국가 사이의 경계가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유연한 경계’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문을 열어주고, 예루살렘에서 권능의 밤이 개방과 상호 관용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어쩌면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유대 국가’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이스라엘 공동체와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사고 없이 하룻밤이라도 성지 예루살렘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 체제라는 생각을 고착시켜야한다는 두려움의 담론은 새로운 현실을 직면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말 그들의 이웃들과 함께일 때 ‘더 안전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아라파트 사망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안에서 이스라엘 점령민들, 군인들, 물자들이 어떤 저항도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100퍼센트의 안보를 누려왔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안보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 구성원들 대부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감옥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6,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감옥에 수감되어있다. 좀 더 넓은 그림에서 볼 때, 가자 지역을 감시하는 책임이 이집트의 어깨로 천천히 옮겨감에 따라 가자 또한 이스라엘 안보 문제에서 덜 중요해 지고 있다.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존재를 결정짓는 현재 진행 중인 정치적 난국이 부가될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확실히 지금 상태에서 많은 안정을 도모하고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의 인구학적인 균형을 위협하지 않을 방식으로, 틈새가 많은 경계를 갖는 팔레스타인 자치 독립체가 이스라엘과 공존할 수 있는지’ 등 새로운 정세의 실행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양 측이 직면한 끝없는 도전들 중 하나는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를 분할하려는 이스라엘의 계획이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논쟁적인 ‘헤브론 모델(이브라힘 모스크 분할)’에 따라서 알 아크사 모스크를 분할하려고 한다고 밝혀왔다. 헤브론에 존재하는 이브라힘 모스크는 이스라엘 군대가 접근 권리를 통제함에 따라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무력으로 분할’된 곳이다. 팔레스타인들은 헤브론의 이브라힘 모스크 분할 방식이 알 아크사 모스크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절대 반대한다. 무력으로 이루어진 방식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권능의 밤 동안 수 십 만 명의 팔레스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지들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재확인하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인들의 독점적인 도시가 아니라고 이스라엘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 영문 원고 번역은 정지혜(청년 칼럼니스트)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7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지난 3월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의 하나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앞으로는 폭력학생에 대한 징계사항을 학생생활 기록부에 기재하고, 이를 졸업 후 5년 동안 보관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부의 방침에 대해 몇몇 일선 교육청은 이것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처분이거나 혹은 ‘이중처벌’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8월 초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의 교육부 지침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며, 따라서 졸업 이전이라도 이러한 기록이 삭제될 수 있도록 하는 ‘중간삭제제도’와 같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학교 내의 폭력을 방지 내지 감소시켜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이 가해 학생에 대한 일방적인 처벌의 강화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과도한 입시경쟁을 비롯한 학업의 부담이나 또래들과의 집단생활에서 오는 불가피한 갈등 등을 고려해보면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모든 책임이 가해 학생에게만 있다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어느 정도의 징계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해당 학생의 장래 기회를 박탈하는 과도하고 ‘비교육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육부의 방침은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문제가 된 사건이 징계되었음이 당연히 전제로 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기록을 통하여 또 다른 징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 곧 ‘이중처벌’의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기록 자체는 (이것이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한) 형벌의 성격을 갖지 않으므로, 처벌이 중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침에서 드러나는 교육부의 의도는 학생부의 기재를 통하여 이것이 입시에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폭력행위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의 한 관료는 “입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으므로 이러한 기재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높일 수 있고, 따라서 예방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스스로 이러한 기재가 본래의 징계와는 별도로 또 하나의 불이익한 (형벌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중처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   국가인권위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배라 지적한 학생 생활도움카드. 사진은 교과부가 전국 학교에 보낸 것이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기재가 이른바 ‘문제학생’들을 원천적으로 교육 대상에서 제외하는 ‘배제전략’과 맞아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형벌이 갖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국가의 이러한 개입부터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낙인이론’에 의하면, 형벌과 같은 공적인 제재의 효과는 이러한 제재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제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안도하면서 피제재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게 되고, 혹여나 그러한 범주에 들지 않도록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앞으로 범죄행위를 하지 않게 되는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제재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달라지게 됨에 따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놓치게 되고, 더 나아가 이것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생각, 즉 ‘자기 정체성’을 달라지게 하여 ‘경력 범죄인’, 즉 상습범이 되는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과의 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낙인이란 사실, 바로 범죄기록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지위나 평가들을 압도해 버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가 제재를 기준으로 하여 사람들을 분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형벌이 필요한 이유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까닭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이 제재대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결속을 통해 그 사회의 (범죄)통제에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생겨난다. 이러한 범죄의 통제내지 감소전략은 ‘직업범죄인’으로 분류되는 소수의 정상사회로부터의 배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적어도 일정한 사람들의 범죄는 반복된다. 범죄통제 당국은 굳이 이것을 막으려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당연히 이것이 전체 범죄의 관리에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수의 범죄자들은 당국의 특별관리 대상이 된다. 이를 위해 다시 범죄기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사실 전과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제도는 이와 같이 상습범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위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교육부가 이러한 정도의 배제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생활부의 기재를 도입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기재가 되기 시작하면 부분적으로라도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기재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여 폭력행위에 가담하려 하지 않겠지만, 소수는 한 번 혹은 반복된 기재로 인해 진학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문제학생’, ‘폭력학생’, 나아가 ‘전과자’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기비하는 적어도 몇 년간은 기록에 의해 객관화될 것이고, 당사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족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낙인효과는 오직 극소수에 대한 것일 뿐이며, 심각한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법질서는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잘못을 했더라도 그에 합당한 범위에서 처벌을 받을 수 있을 뿐, 이를 넘어서는 과도한 제재는 책임주의와 비례의 원칙에 벗어나는 위법한 것이 되는 까닭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43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좌파적 이론들 간의 격돌 일정한 나름의 관심에 따라 책들을 읽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주장들이 있다. 특히 이런 느낌을 주는 주장들이 서로 완전히 대립되는 경우, ‘무식한’ 독자로서는 아연실색 그 바탕에서의 근거를 엄청나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최근 독서를 통해 이런 경험을 했다. 첫 번째 경험은 조반니 아리기(1937-2009)가 쓴 『베이징의 아담스미스』(강진아 옮김, 도서출판길, 2009)를 읽던 중에 “이윤을 추구하여 시장 교환이 확대되더라도, 중국에서 발전의 성격은 꼭 자본주의적이지는 않다.”(46-7쪽)라는 대목을 읽었을 때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교환’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이 아니던가.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들 간의 무한 경쟁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는 미시적/거시적 온갖 문제들을 자아내는 근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아리기가 이렇게 굳이 이윤 추구의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를 준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결국에 아리기는 “그 궁극적인 사회적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중국의 경제적 부활은, 점점 더 많은 학자들 사이에 이 시장 형성 과정과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은 세계사에서 볼 때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47쪽)라고 말한다. 우선 이는 아리기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이 제시한, 물질생활의 층, 시장의 층, 자본주의 층이라고 하는 이른바 ‘삼분법적 도식’을 강력하게 받아들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브로델은 시장은 투명한 영역으로서 자본주의 이전부터 발전해 왔고 자본주의는 불투명한 영역으로서 투명한 영역인 시장 위에 덮씌워진 것이라고 여긴다. 아무튼 이를 바탕으로 아리기는 현재의 중국의 경제 발전에서 자본주의를 벗어난 시장 경제,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가능성을 보고자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경험은 크리스 하먼(1942-2009)의 『좀비자본주의』(이정구/최용찬 옮김, 책갈피, 2012)을 읽던 중에 “신흥 관료 집단이 생산을 통제한 국가들(1920년대 말 이후의 소련, 제2차세계대전 후의 동유럽과 중국,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의 다양한 옛 식민지 국가들)에서도 똑같은 자본주의 논리가 작용했다. 그런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자처했지만, 그들의 경제적 동역할은 더 광범한 자본주의 세계와의 상호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들은 국경선 밖의 자본주의 나라들과 거래할 때 상품생산의 논리에 끌려 들어갔다.(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축적을 시작해서 시장 경쟁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에도 종속됐다.) (…) 그런 사회를 지배한 자들도 마르크스 당대의 사적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축적의 ‘의인화’였고, 그 때문에 생산수단을 이용해 힘들게 하는 임금노동자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본가계급의 일원이었다.”(157-8쪽)이라는 대목을 읽었을 때이다. 예사로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및 중국과 북한 등이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크리스 하먼은 그런 국가들조차도 사실인즉슨 국가자본주의에 해당했던 것이고, 그 지도자들은 다름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일원으로서 대다수 인민들을 임금노동자로서 착취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역사상 제대로 된 공산주의는 물론이고 사회주의조차도 제대로 이룬 국가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하물며 이른바 자본주의적인 세계 체제 속에서 엄청난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에 대해 자본주의 체제라고 할 수 없다고 하는 조반니 아리기의 주장은 크리스 하먼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넋을 잃은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조반니 아리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이제까지 유지되었으나 2008년 위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그 헤게모니를 상실할 처지에 놓여 있고,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쪽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그동안의 인위적인 유럽식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이른바 자연스러운 시장 경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아리기의 생각은 크리스 하먼이 볼 때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것에 불과하다. 크리스 하먼은 자본주의적인 시장 경제는 노동자들의 노동으로부터 누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해서 더 많은 축적을 이룰 것인가 하는 기업가들 간의 무한 경쟁에 의해 유지되는데, 그런 한에 있어서 자본주의 체제는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저하 경향에 의해 반드시 불황에 이어 공황을 맞게 되어 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가들이 강력하게 개입해 심지어 전쟁과 같은 대대적인 국가적 지출을 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 승자독식의 재편성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호황을 맞지만 다시 불황과 공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크리스 하먼은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조반니 아리기와 크리스 하먼의 이러한 격돌이 어찌 필자의 서재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지겠는가. 세계적인 좌파 경제학자들 간의 이론적인 격돌은 여러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강력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핵심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규정하건 간에 세상을 풍미하는 일체의 가치가 산출되는 원천이 무엇이며, 그 결과물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소유 및 향유하는가, 그에 따른 부조리와 불평등이 어떻게 수많은 대다수의 인민들로부터 인간됨의 권리를, 즉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고 발휘하면서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 가는가 하는 것이다. 좌파적 이론들 간의 대격돌이 중요한 것은 개개 인간들이 어떻게 체제적인 구조에 의해 삶을 근원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사안 때문이다. 2.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체제, 그나마. 세계 자본주의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10-15년을 주기로 예사로 반복되던 불황과 공황의 도래가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지적인 현상이었다면, 오늘날의 위기로 다가오는 불황과 공황에의 공포는 전 세계적이다. 그동안 세계화의 과정을 통해 세계 전체의 경제가 자본주의, 특히 금융자본주의의 위력에 의해 거의 완전히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 이후 반복되다가 1997년 동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세계의 불황이 금융투기의 세계화를 통해 반짝 극복되는가 했더니 급기야 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부터 그 거대한 거품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세계 전체를 출렁이게 하더니 그 강력한 여진이 이제 유럽으로 건너가 세계 전체를 향해 또 다시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세계 경제의 신 엔진으로 불린 중국마저 경제성장의 폭이 떨어지면서 내수시장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과 1년 전 쯤에 ‘월스트리트 점령’의 구호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심지어 1500개 도시에서 시위가 있었고, 99:1이라는 세계 부가가치 획득에 관한 불균형의 비율을 소리 높여 외쳤다. 최근에는 독일에서는 7%의 인구가 2조 유로, 그러니까 2800조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사이 그리스의 대다수 서민들에 이어 스페인의 대다수 서민들이 엄청난 실업과 재산 압류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우스퓨어의 최대 집결지가 되어버린 분당. 이명박 정부 들어 경기도 성남 분당 집값은 큰 기울기로 떨어졌고, 전셋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세계금융투기의 현금지급기로 불리는 한국의 상황 역시 마치 일촉즉발의 위기를 앞두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하우스 퓨어’라 불리는 가구들이 1/3에 달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고, 미국 정부에서조차 한국의 가계부채의 급등과 규모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하우스 퓨어’의 계층에서는 그동안 부동산의 거품이 꺼지면서 거의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집이 집이 아니라 감옥에 다름 아니라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죽어라고 일해서 금융부채의 이자를 갚는 것마저 힘겨워 목숨을 건 룰렛 게임과 같은 돌려막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경제 악화의 여파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삼성전자의 총 주식 금액은 198조원을 상회하는 호조세를 보이는 가운데, 지난 7년간 일본 주요 대기업들의 성장세에 비해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의 성장세가 3배 정도 된다는 텔레비전 뉴스가 나오고 있다. 집집마다 대략 통신비가 적어도 월 30만원에 이르고 반값 등록금 운동은 구호만 무성할 뿐 아무런 성과도 없는 가운데 청년 실업률은 잦아들 줄 모르고, 800만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의 제살 뜯어먹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정치권은 온통 연말의 대선을 향한 레이스에 몰두하고 있다.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 대해 가장 예민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할 이른바 좌파 진보 세력을 대변하는 통합진보당이 엉뚱한 의회권력 다툼으로 지리멸렬한 상태로 내홍을 겪고 있어 아무런 정치적 활동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뼈 빠지게 일한다. 그리고 절약하면서 아이들의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 수천만의 서민들은 대체로 이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1997년 세계경제의 흐름에 의해 ‘IMF 사태’라고 하는 직격탄을 맞아 대대적인 불황이 삽시간에 밀려왔다.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건만 각자는 거대한 사회구조적인 위력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밀려버리는 것이다. 겨우 안간 힘을 쓰고서 생활을 유지하려 하는데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이어졌고 이에 비생산적인 소득에 모두가 몰두하는 왜곡된 경제생활이 이어졌다. 결국에는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부동산 거품이 푹 꺼지면서 제 스스로의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금융자본의 자구책과 맞물려 실질소득의 악화와 가계대출에 의한 이자부담에 시달리면서 대다수의 시민들이 현상유지라도 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저녁 5시에 출근해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 5시에 돌아오는 학교 경비원 일을 해서 월 90만원의 봉급을 받아 집 대출의 이자를 갚기에 바쁜 70대 노인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이 노인의 모습으로 웅변되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구조적인 인간성 박탈과 착취를 누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는가? 더욱이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부터 발원하여 세계경제 전체가 위기를 맞아 크게 흔들리고 있고 그 흔들림에 의해 각국의 경제가 방향을 잃고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면, 이 위기를 책임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선의 길은 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가 그저 거대 자본가들을 기축으로 삼아 움직이는 데서 벗어나 최대한 진정으로 거대 자본에 맞서서 싸우면서 모든 가능한 정책들을 총동원해 고통 받는 서민들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적극 옹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거대 자본가들이 요구하는바 제국주의적인 압력의 정체를 정확하게 진단해서 자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여러 부문에서의 역량을 아울러 마련해야 한다. 과연 대선 주자들 중 누가 어느 세력이 이러한 과업을 짊어지고서 치고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및 실천력을 조금이라도 더 가졌는가를 유심히 살펴야 할 일이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36 | 추천: 0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아마 「질투」라는 드라마를 보면서였던가, 한국에서 부모 노릇이 저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기억이 난다. 1991년이었나…? 고 최진실씨가 절정으로 발랄할 때, 끈적거리지 않고 유쾌한 듯 사랑스러운 성격과 줄거리를 한국이 다시 학습하기 시작했을 때. 젊은이들 사이 사랑의 재치를 그려냈던 「질투」에서 부모 역할은 딱 한 명, 최진실씨 어머니로 김창숙씨가 나왔던가 했을 뿐이었는데, 그이는 나이가 먹었달 뿐 젊은 세대와 하나 다를 것 없는 어머니였다. 작가라는 근엄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고, 대신 딸 못지않게 귀여운 엄마. 그로부턴, 물론 ‘아침 드라마’나 ‘저녁 8:30 드라마’의 세계에선 여전히 속물적인 열혈한이거나 소시민적 덕성의 화신인 부모가 등장해 자식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든가 모범적으로 이끌지만, 미니시리즈에서는 그런 ‘촌스러운’ 부모상이 대략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는 진작, 「러브스토리」(1971) 이후 격렬한 세대 갈등이 문제된 바 없잖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러브스토리」, 반전과 ’68혁명과 히피 문화 이후, 세대 갈등의 통속적이지만 순정한 마무리. 영화가 끝난 후 올리버는 어떻게 살았을까…?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 유명한 대사는, 제니퍼가 죽은 후 올리버가 대부호인 제 아버지를 향해 던진 대사이기도 했다는데 말이다. 「러브스토리」의 제니퍼와 올리버처럼, 사랑한다고 꼭 행복해지리라는 건 환상이다. 만약 기적적으로 ‘완전한 사랑’을 이루었다면 그 대가는 제니퍼의 불치병 같은 비극이 되리라. 인간에 의해 자연에 의해, 우리는 어차피 배신당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렇지만 젊을 때는 환상이나마 다른 가치를 좇지 않을 수 없다. 「러브스토리」도 그 점을 인정했다. 패배하고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기성의 권위에, 돈에, 제도에 맞서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마지막 장면, 제니퍼와의 추억이 깃든 스케이트장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던 올리버는, 아마 그곳을 떠난 후 아버지의 세계로 돌아갔겠지만, 그래도 ‘사랑했다는 기억’은 종생토록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절이 가 버렸다. 적어도 상징의 차원에서라면 이제 부모 세대는 대항할 만한 권력도 설득될 만한 위엄도 아니다. 요즘 10대나 20대는 부모와 다툴 때도 각개격파식 피로를 느끼기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체 사회적이거나 상징적인 명분이 부족한 것이다. 기성이 유독 썩어 있다는 의식도, 저 썩은 기성만 물리치면 새 질서를 기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어느덧 10대나 20대로 자라난 자식을 보게 된 386 세대는 너나없이 ‘좋은 부모’, ‘친구 같은 엄마 아빠’를 목표 삼고 있고. 요즘은 조금씩, 그렇지, 격통 없는 성장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한동안은 「질투」식 부모 모델이 승승장구하는 걸 참기 힘들었다. 물론 보고 대할 땐 유쾌했지만, ‘부모를 무찌르며’ 자라난 세대가 막상 ‘무찔릴’ 자리는 한사코 뿌리치는 것 같아 그 점이 불쾌했던 것이다. 나이 든다는 건 자리 내 주는 법을 배운다는 뜻도 돼야지 않을까, 부모라면 가끔은 몰이해해 보일 정도로 강경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친구 같은 부모가 아니라 밥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불만 품고 대들고 비난하면서도 아무 자의식 없이 밀어 넣는 밥. 그러다 문득 나이 든 언제, 얼마나 많은 수고가 깃들어 있었나 울컥 느끼게 해 주는 밥. 드라마 '질투'에서 최진실씨의 어머니로 출연한 김창숙씨. 그이는 나이가 먹었달 뿐 젊은 세대와 하나 다를 것 없는 어머니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엄만 몰라(도 돼).” 밥 같은 부모에 참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들어보니 이 말은 어지간히 섭섭하고 열 받는 말이다. 아무도 무찌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무찔리는(군림하는) 부모’, ‘밥 같은 부모’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깨달으며 슬금 꽁무니 빼게 된 까닭도 있다. ‘무찔리는 부모’와 ‘밥 같은 부모’ 사이 복잡한 위상도 머릿살 아프고. 어쩌면 갈등과 대결 대 합의와 대화라는 상상력 자체가 낡은 것일지 모른다, 갈등 속에서 합의 보고 대결하면서 대화하는 게 현실 속 논리일진대, 그걸 ‘뒷거래’가 아니라 ‘게임의 규칙’으로 만드는 게 새로운 몫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뒤따라온다. 친구 같은 부모란 게 무작정 친하게 지낸다는 말과 전혀 다른 말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평생 사춘기라, 부모 노릇도 매일매일이 후회다. 그야말로 나날이 다른 시행착오가 있을 따름, 올바른 길 따위는 없으리라는 마음이 점점 굳어가지만, 그래도 할 만한 노릇이긴 하다. 실수하는 만큼 생각하고 배우기도 하니까 말이다. 한국에서 부모 노릇, 예의 ‘교육 문제’를 빼더라도 참 쉽지 않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57 | 추천: 0
이은규/ 인권연대 '숨' 사무국장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소리가 있다. 다종다양한 소리가 오늘도 내가 사는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민서는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말을 아주 많이 한다. 질문도 많고, 요구도 많다. 우리가 자신의 말에 주위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으면 귀담아 들을 때까지 같은 말을 한 음씩 높여가며 반복한다. 민서는 늘 말을 한다, 잠 잘 때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민서는 나의 딸이다. 그리고 이제 32개월이 된 세상의 초짜다. 나는 민서의 말이 자주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린다. “조용히 좀 해.” 그럼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내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민서의 눈망울과 말에 질릴 때쯤 꽥하고 소리를 지른다. “시끄럽다고!” 이쯤 되면 민서는 잦아들고 내소리가 커지고 덩달아 말이 많아진다. ‘이것은 아이를 위한 교육이야. 예의를 가르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리고는 무시무시한 전의(!)를 불태우며 아이의 마음에 부릅뜬 눈과 엄격한 소리를 쏟아 붓는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으나 아이가 알아듣는지는 모르겠다. 겨우 평화가 찾아 왔다 여길 즈음 민서는 또 내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요구를 한다.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후유... 아이는 언제 클까?’ 오늘도 민서는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있다. 잠시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진압을 할까, 회유를 할까.’ 고민을 하던 내 머리와는 다르게 “휴~~, 아이는 왜 저렇게 시끄러울까요? 이미 다섯 아이를 두고 있음에도 민서 같은 아이는 처음입니다. 왜 저런 걸까요?” 물음이 마음 가운데로 던져졌다. 잠시 후 뜻밖의 대답이 울려나왔다. “민서니까.” “응?”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민서니까 시끄럽다고?’ 여전히 민서는 떠들고 있었다. “민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할뿐이야. 가만히 들어봐라. 이야기가 있잖아. 원하는 것과 불편한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어. 귀담아 듣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반복할 뿐이라고.” “아이쿠.” 그랬다. 아이들은 언제나 처음이었으나 나는 오만한 어른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아 언제 클까? 나는...’ 문제는 듣지 않으려 하는 나에게 있었다. 책을 읽는다, 대화를 나눈다, 식사를 한다, 잠을 잔다,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 등등 온갖 이유를 내세우며 아이의 말을 귀찮다 여기는 내 모습들이 펼쳐진다. ‘어유 창피해.’ 부끄러운 마음, 그 자리로 민서의 소란스러움이 아름다운 노랫가락으로 찾아든다. 공손하게 민서에게 다가갔다. 눈을 맞추고는 “고맙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네 말을 잘 들을게.” “응!” 대답을 한다. 민서가 나름 진솔한 아빠의 사과를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이 왜 이렇게 화끈거릴까?’ 민서와 그의 형제들이 어른이 되어 나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떠한 소리든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지금! 그들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듣는 게 먼저다!” 아직 내 마음의 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거야.” “?” 수수께끼를 풀 듯 찬찬히 마음을 살폈다. 소란스러운 민주주의라니... 잠시 후, 또!! ‘아하!’와 ‘어이쿠!’가 동시에 교차한다. 나는 민주주의를 아주 갈망한다. 그러나 나의 지난 민주주의는 내 마음대로의 민주주의 인 것이다. 하늘과 땅에 가득한 나만의 소리. 그 세상은 얼마나 볼품없고 사람들은 숨 막힐까? 소란스럽다는 표현에 덧 씌어 놓았던 올무를 활짝 벗겨 놓으니 마치 새 하늘을 본 듯이 눈이 부시다. “소란스러움이여 부활하라!” 귀한 가르침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반영해 보았다. 결코 조용할 수 없는 게 사람이 사는 사회다. 저마다의 소리가 있기에 그러하다. 근엄하고 권위 있는 어른들의 잔소리만 반복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발현될 수 없다. 특정 집단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위협적인 소리만 난무하는 곳에서 사람의 소리는 수장되거나 한줄기 재로 사라질 것이다. 억압되고 왜곡된 소리는 세상을 마비시키고 획일화시키기 일쑤다. ‘국민과 함께하는 법원’을 주제로 ‘소통2012 국민 속으로’ 토론회가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대회의실에서 시민·문화인·교수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패널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청중들이 발언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각 사람이 저마다 원하는 것과 불편한 것, 부당하고 억울한 것들에 대해 소리 낼 수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지, 그 소리들이 듣기 싫다고 법으로 교육으로 폭력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것들을 통해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파시즘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소리가 절멸된 세상은 폐허와 다름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린아이와 같은 민주주의를 다시금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우리가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을 때 길러진다. 강요되고 왜곡된 소리들에 맞설 때 민주주의와 나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소란스럽다. “세상은 더 소란스러워야 한다!” 매미소리 진동하는 가운데 새의 지저귐과 바람결 따라 나뭇잎의 소리 들려오는 여름 한낮이 참 고맙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75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2012년 대통령 선거로 인하여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 집중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중동 특사로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중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던 조지 미첼(2011년 5월사임)과 데니스 로스(2011년 11월사임)가 연이어 사임하고, 현재까지 이들의 후임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 내에서 중동 정책을 담당하는 자리는 완전히 공석으로 남아있다. 현재는 미 국무부가 중동의 새로운 정치 환경에 미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7월 중순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이집트 방문은 정치 이슬람(무슬림 형제단)으로부터 출현한 새로운 정치 체제들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다. 중동에서 계속 진행 중인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현재의 진통을 고려할 때,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잠재적인 새로운 파트너들을 수용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입장이다. 워싱턴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the Arab Awakening)와 관련해서는 매우 신중했다. 반면, 리비아 사태에 NATO가 개입하는 문제에 너무 깊이 연루되었고, 예멘과 바레인의 반정부시위에 대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우디 왕국의 정책을 지지했다. 미국은 시리아 사태에 관해서는 외교적인 난관에 봉착해 있다. 미국의 모호하고 무관심한 행위들이 시리아의 고군분투하는 반정부 운동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바샤르 알 아사드로 하여금 학살을 계속하게 한다.   ▲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 소장(http://www.passia.org/)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은 이집트를 포함한 아랍 국가들에서 미국의 존재와 관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힐러리는 주요 정치가들과의 회의와 그 후의 발언들에서 매우 신중했지만, 미국과 각 아랍 국가의 중심부와 유대를 강화시키는 것과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국경 획정 협정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1990년대 이후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끝없는 협상, 현재 진행 중인 이란-헤즈볼라-하마스에 맞선 미국-이스라엘의 전략적인 군사동맹을 이스라엘에게 확약한다는 메시지만큼은 명확하였다. 아랍 지역 주민들은 워싱턴에 대하여 서로 다른 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집트 곱틱교도들(기독교)이 힐러리 클린턴의 이집트 문제 개입에 반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곱틱교도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과거의 유대를 단절하기 위한 표시로 힐러리 클린턴에게 토마토를 던졌다. 이러한 이집트 곱틱교도들의 분노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보여준 미 국무장관 힐러리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냉담함과 같은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새로운 파트너들을 수용하고, 미국이 평화 협상에 참가하는 파트너로서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야할 것이다. * 영문 원고 번역은 정지혜(청년 칼럼니스트)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2017-07-21 | hrights | 조회: 234 | 추천: 0
신하영옥/ 광명인권센터장 갑작스러운 과정과 결정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의 재 경험이었다. 마감을 하루 앞 둔 임용정보, 이로 인한 늦은 밤까지의 책상머리 컴퓨터 작업이 그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예전 단체 활동에서의 땡처리 작업방식을 떠올리며, 스트레스 만땅인 상황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과 귀차니즘을 동반했다. 그럼에도 호기심과 끝가지 가보자는 성격, 가족경제를 누군가에게만 책임지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등등이 현재 여기, 광명인권위원회 내 인권센터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이제 3주차다. 그동안 여성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성주의 입장에서 여성이라는 몸과 감정, 이성을 비롯해 생활전반에 가해지는 폭력을 중심으로 한 인권침해를 주로 다루었기에 포괄적인 인권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동안 왜 여성인권이 인권과 별도로 다루어져야 하는 가에 대한 의혹, 여성을 넘어 인권일반을 여성인권운동의 정치학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여성인권운동의 정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란 질문을 가진 내게 이 일은 그런 의혹과 생각을 실천해볼 수 있는 도전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호기심과 욕망이 생긴다. 여기 와서 처음 한 것은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인권조례’와 더불어 ‘인권도시’ 담론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현병철체제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갑자기 인권기본조례표준안을 만들고 인권조례와 그 상설기구들을 지자체에 확산하고 있는지 그 꼼수가 이해되지는 않지만, ‘인권조례’를 확산하는 것이 ‘인권도시’담론의 연장에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인권도시’ 담론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다분한데, 이 담론은 그동안 나의 주된 관심이었던, ‘풀뿌리여성운동’, ‘지역여성(생활정치)운동’ 담론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1년에 번역한 <인권도시-사회발전을 위한 시민의 약속>에 인권도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인권도시는 일반시민과 사회 활동가부터 정책입안자와 지역관료들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인권규정과 기준에 의거하여 남녀노소 모두의 삶의 질과 안전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촉진하고 지역사회 전반이 참여하여 대화를 추구하는 공동체이다”(Stephen p. Marks 외, “인권도시란 무엇인가?”, pp37) ▲ 경기도 광명시(시장 양기대)가 시·도를 제외한 기초 자치단체 중에서 최초로 지난달 말 인권센터를 개소했다. 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요약하면 인권의 틀을 가지고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 지역사회 구성원이 참여하여 논의, 결정, 실천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협치를 전제로 참여민주주의, 시민이 주인이 되는 풀뿌리민주주의, 삶의 모든 영역이 주제가 되는 생활정치라고 할 수 있다. 시민과 국가기관 및 제도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자연과 환경과의 관계, 시민과 국제질서와의관계 등등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을 인권, 인간개발, 인간안보의 측면에서 재고하고 논의하고 해결해가는 공동체를 말한다. 핵심은 아무래도 인간개발이 아닐까 싶다. 교육과 학습을 통해 품격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 이를 통해 그간의 사람들의 생활양식, 문화와 도덕, 가치관을 바꾸어 내는 것이 인권도시의 핵심과제가 아닐까 한다. 이곳은 내게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새로운 일처리 및 관계맺기 방식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금 낯설고 때론 외로움도 느낀다. 그렇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무엇이 다른지, 무엇이 같은지 알아가고 있고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불안과 피로함을 서로 다른 어투와 논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역사적 도덕관을 가진 정치인들을 향해 분노하는 것도 듣고 있고 성찰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르다는 점 역시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나와 그들이 그리고 그들과 그들이. 이 다름이 한편에선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내겐 긴장감이거나 두려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하모니가 더욱 더 소중하고 무게감으로 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도 한다. 인권도시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계급도, 성도, 인종도, 성적취향도 다 다른 사람들, 그로인해 개별들이 가지는 욕망조차 다른 이들이 계급, 성, 인종, 취향과 욕망의 다름을 끄집어내어 토로하고 한 편의 욕망이 다른 편의 욕망을 무시하거나 제압하지 않는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 나아가 다름의 조화를 방해하는 제도나 권력, 자본, 발전담론들을 극복해내고 다른 존재들의 행복을 최우선의 과제로 하는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돈을 가진 사람이 담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자기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의 벽들을 넘나드는 것이다. 이해와 배려와 관용이 주요한 가치로 되는 도시공동체로서 공적영역을 국가나 권력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들의 생활담론들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점차로 공적인 영역을 넓혀나가고, 궁극에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적 인권도시란 성을 중심으로 한 차별과 권리의 침해가 없어짐과 동시에 여성들의 경험과 관점이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는 것이다. 남성과 같이 일한 경험이 아주 적은 나는 남성과 여성의 감수성의 차이를 벌써 발견한다. 남성은 개인생활과 공적생활이 별반 구분되지 않고 구분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하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과 인간생활의 기준은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현재 기준의)공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솔직한 자신을 감추거나 일정정도 포기하거나 해야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정치에 직접 나서는 것을 남성보다 더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풀바람, 2012, <제5회 풀뿌리여성대회 워크숍>) 그리고 여전히 이중의 잣대가 있다. 공적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적존재를 버릴 것을 바라면서도 여성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감 같은 것을 말한다. 옷발과 화장발, 여성흡연에 대한 거부감이 여성성에 대한 기대라면,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시간 외 근무를 마다않는 여직원에 대한 칭찬 등은 남성화된 공적존재이기를 바라는 기대이다. 현재의 공적공간은 남성 중심으로 성별화 되어있다. 때문에 여성주의적 인권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적인 공간을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성별화의 해체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여성들이 진출하여 과장되거나 위축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삶과 생활, 인식과 사유방식을 보여줌으로써, 남성화된 공적공간을 교란하고 재구성하는 방법과 한편으로 전 시민을 대상으로 인권교육과 담론의 확산을 통해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근절하는 전략이다. 재기발랄, 왁자지껄, 미소와 포옹, 장난과 재치가 넘치는 공적영역을 상상해본다. 반바지 입은 의원들이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회의하면 왜 안 되나? 권력중심의 경직성을 걷어내야 인권도시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성인남성들보다는 아이와 여성들, 주변인들이 중심성을 비트는 해학과 풍자에 강하다. 누구를 인권도시공동체의 주체로 내세워야 할까?
2017-07-21 | hrights | 조회: 24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