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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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광조/ CBS PD ‘유서를 대신 써주며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파렴치한.’ 1991년 5월 8일, 재야단체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김기설 사회부장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죽음을 택했다. 한 달 전 시위도중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경찰에 맞아 사망한 데 대한 항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총무부장이었던 김기설 씨의 동료 강기훈 씨가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며 죽음을 부추겼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돼 법의 심판을 받았다.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월. 강기훈 씨는 3년을 꼬박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강기훈 씨가 겪었을 절망과 고통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패륜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강기훈 씨의 이후 인생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사건 당시부터 조작 논란이 일었던 이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가 내일(2월 13일) 이뤄진다. 사건이 발생한지 23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재심권고 결정을 내린지 7년만의 일이다. 그 사이 20대의 청년은 50대가 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23년 전 그를 ‘패륜범’으로 몰아가는 데는 김기설 씨의 유서 필적이 강기훈 씨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국과수의 필적감정결과가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필적감정결과는 바로 그 국과수에 의해 뒤집혔다.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기대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다. 판결 결과는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무죄 선고가 나오더라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강기훈 씨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의 시간을 도대체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강기훈 씨를 패륜범으로 몰아 인생을 파괴했던 검찰은 여전히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고 당시 강기훈 씨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은 출세가도를 달려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지 않은가(담당 검사였던 곽상도 씨는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냈다). 재심 결과 검찰과 재판부의 잘못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반성을 기대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사람이 다치면 책임을 지게 돼 있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국가폭력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못하는 현실은 내게 지극히 비정상으로 보인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들에게는 최소한 변호사 자격이라도 박탈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1991년 당시 고 김기설 씨가 남긴 유서와 강기훈 씨의 자술서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최근 화제가 됐던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됐던 “부림사건” 담당 검사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 한 때 우리사회에서 진행됐던 ‘과거사 정리’ 작업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 분들에게 한 마디라도 욕설을 하거나 부당한 처우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책임지겠다.” ”한 달간 피의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면 경찰이나 검찰청에 신고가 들어왔을 텐데 당시에 전혀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부림 사건이나 유서대필 사건처럼 국가권력의 기만과 폭력이 과거 한 때의 일이라면 답답함과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우리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미래의 어느 시점엔가 청산해야 할 ‘과거사’가 무더기로 쌓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내부 고발자를 소영웅주의에 우쭐한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수사와 재판은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아니 진실을 밝혀낼 수나 있을까?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해고 사건은 또 어떤가? 최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1심 판결을 뒤집고 해고무효 판결을 내렸지만 그동안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인한 후유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땅에서 정의는 끊임없이 유예되고 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05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국가’, ‘민족’, ‘종교’ 등에 대해 강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한국의 진보 좌파 지식인들의 지식은 실제로는 철저한 서구 중심적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비서구/비중심부 지역들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에 대해 매우 단선적이고, 일면적인 사변적 분석만을 내놓기 십상이다.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즉 좌파적 성향의 조직들이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거나 저항 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적이거나 종교에 기반해 있거나 심지어 특정 지배 엘리트를 지지하는 것처럼 외형상 극도로 모순적인 상황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서구/비중심부 지역들에 대한 진단과 분석이 이러할진대, (신)자유주의자들이 좌파들보다 급진적인 의제를 내세워 개혁을 주도하고, 시장주의자들/서구화주의자들이 민주화 운동 혹은 저항 운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등 소위 옛 사회주의 진영 혹은 체제전환국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한층 더 어려움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당 중심의 서구 정치학 논리에 빠져 선출되지 않은 관료 등에 의한 과두 지배 세력의 지배를 간과하고, 시장 체제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의 잣대로 설명하려는 비과학적인 경향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도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보도와 해설을 못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설명은 위에서 언급한 거의 모든 요인들이 집약된 매우 복잡한 설명을 요구한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좌/우, 동부/서부(수도 포함), 친서구/친러시아, 민주주의/독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친러시아주의의 문제가 중층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이론과 개념에 근거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특성이 있다. 먼저, 독자적 민족 국가를 제대로 형성해 본 역사가 거의 없었던 우크라이나는 말 그대로 만들어진 국가이다(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족과 러시아 민족 간에 차이가 없었다는 일각의 과도한 교조주의적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마치 옛 유고 연방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처럼 지금의 동부 지방은 러시아에, 그리고 서부 지방은 폴란드, 오스트리아 제국 등에 오랫동안 복속되어 온 탓에 양 지역의 문화적 차이는 한국의 동/서 지역 간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극도로 이질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후 소련 시대를 거치면서 한층 더 큰 규모로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은 거의 동부 산업 지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이는 한층 더 동부 지역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이 서부와 다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종교 역시 양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의 차이를 더 크게 하는 요인이었고, 동부 지방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잘 구사하게 되는 등 언어적 요소는 양 지역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만들어 준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 건 바로 소련이라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와 그 붕괴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대안은 곧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고 생각했던 시기, 사회주의는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정체성의 파괴를 의미했고, 소련은 곧 러시아를 의미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소련에 반대하는 것이란 자유주의와 동시에 민족주의적 과제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탈소련/러시아란 곧 유럽화를 의미했고, 동시에 유럽자본주의의 주변부로의 종속이 차라리 낫다는 논리 속에서 시장경제로의 복귀는 곧 유럽으로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 개방을 의미했다.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로 사망자가 속출한 가운데 지난 1월 24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 중심부에서 정교회 사제들이 시위대와 경찰 저지선 사이에 서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공산당은 '좌파'적 당이라기보다는 ‘친러시아적인 당’ 혹은 ‘러시아화된 우크라이나인들의 당’, 혹은 아예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당’으로 간주되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도모하던 당시에 '좌'란 지배자 러시아를 의미했으며, 저항 세력은 말 그대로 ‘러시아적인 것’과 ‘현실 사회주의적인 것’에 반대되는 거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좌'는 양 민족을 막론하고 그 어떤 진보적 의미도 갖지 못 한 채, 그저 ‘새로운 시장체제를 제대로 선도할 수 없는 무능하고 억압적인 옛 지배층’을 의미할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체제 전환 이후 동이든 서든, 구 공산당 세력이든 저항세력이든 간에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매우 빠르게 구 노멘클라투라 관료집단들의 지배를 용인 혹은 스스로 그 일원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과거 ‘좌’라는 이름으로 지배했던 기간 동안에 이론과는 달리, 실제로는 자유주의 단계에서 쟁취한 성과조차 파괴되었던 이 땅에서 이제 오히려 진보적인 의제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절묘하게도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와 시장경제'를 지원한다는 서구의 이익과 맞아떨어졌거나 혹은 그 명목 하에 체제를 붕괴시켰고, 약화된 공산당에 이어 러시아의 앞잡이로서 러시아와 구 엘리트들(현재는 동부 지역 산업 올리가르히)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권 세력에 맞서는 세력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서구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적인 세력이자 서구식 시장경제 개혁을 추구하며 우크라이나의 이익을 지키는 세력으로 칭송되었다. 이러한 세력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의 힘을 이용하여 소위 색깔혁명을 일으켜 집권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들의 정책은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었고, 계속된 경제 위기 속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아 현 친 러시아 세력들에게 정권을 내 주고 만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저항세력에는 반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서 아나키스트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친서구적 신자유주의 세력까지 함께 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저항 세력에는 서구의 지원을 받는 시민사회단체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일반 시민들,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들, 인권활동가, 반인종주의/반파시스트 사회운동가들, 양심적 언론인, 작가들과 같은 매우 모순적인 집단들이 함께 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와 이해를 같이 하는 올리가르히들도 이들을 후원한다. 중요한 건 반대편인 친 러시아 세력 쪽에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쪽 진영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조직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과 같은 체제전환기 국가들이나 비중심부 지역 국가들에서의 상황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보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민중의 시위가 단순하게 서구의 조종을 받는 것으로 판단해서도 안 되지만, 현재 정권이 권위주의 정권이기 때문에 현재의 민중의 투쟁을 쉽게 민주화 투쟁으로 규정하고 지지해서도 안 되는 매우 복잡한 상황들은 낡은 잣대로 세상을 해석해 온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485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주연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 그가 모델로 했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 혹은 그리움, 80년대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한 아련한 회고 ….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것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영화가 완전한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만큼, 적어도 당시에 이를 직접 경험하거나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법도 하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이런 것이다. 1980년대 초반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부산에서 개업을 한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게 상고를 졸업한 사람이고, 그래서 보통 법률가들이 하지 않는 (부동산이나 세무와 같은) 새로운 법영역을 개척한다. 여하튼, 이를 통해 작지 않은 부를 얻게 된 이 변호사는 요트를 즐기고 마침내 대기업으로부터 일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게 된다. 한데, 서울에 이어 때마침 부산에서 터진 학생들에 대한 ‘용공조작’사건에 자신이 아는 청년이 관련되고, 순수한 정의감으로 변호를 시작한 그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고문과 진술의 조작, 사상 탄압과 그 배후의 정치권력을 마주하게 되어, 결국 이를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30여년이나 지난 일이고, 그래서 20대의 청년들에게는 옛날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를 지닌 정도라지만, 정작 처음에 이 영화의 배급사가 가장 꺼려했던 것은 대중의 ‘정치혐오’ 현상이었다고 한다. 정치의식의 각성과정을 그린 영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사람들이 정치를 싫어하는, 그래서 이런 류의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였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뭘 보여주려 한 것일까. 마치 게임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법정공방, 그 속에서 마침내 승리하는 진실 혹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에 굴복하고야 마는 정의. 그런 것인가, 거기에 그치고 마는 것인가. 영화 <변호인> 사진 출처 - 씨네21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 영화의 감독은 말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노가 며칠, 몇 주 가는 건 쉽다는 것이다. 이 분노가 성찰을 통해 몇 년이 지속됐고 … 신념의 공감과 연대가 이분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이 끝났어도, 그래서 한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아니 그럴수록 더욱 더 국민의 정치참여는 중요하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이고, 다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를 결정하는 것은 늘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정치인이 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프롬(Fromm)이 말하였듯이, 사람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넘어서는 ‘사회적 건강’이라는 것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사회 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회의 주요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실현여부와 관계없이,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당당한 한 구성원이라는 자존감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흔히 말해지듯이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고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철도, 의료와 같은 공공사업을 사영화하고 연금과 같은 복지혜택을 축소하며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정을 마구 해대도 말이다. 이런 탓일까. 지금은 고인이 된,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의 두 대통령은 서로 매우 비슷한 말을 남겼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행동하는 양심”이 민주주의의 유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이유로 다음과 같은 말도 가능하다.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핍박받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변호인, “천만 관객”이라는 변호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79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조카가 인사차 찾아왔다. 이 조카는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안정된 직장(특급호텔 외식사업부)의 정규직을 그만두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언니네 부부는 반대했지만 사표는 수리된 뒤였고 조카는 이미 서울에 있는 직장 두 군데서 오퍼를 받은 상태였다. 낯선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에 애가 적응하기 힘들까봐 내게 몇 달 동안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20대 중반의 조카는 중학교 때부터 바텐더를 꿈꾸어왔고 국내에서 경력을 쌓아 싱가포르나 대만에서 바텐더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꿈을 갖고 키워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해 보였고 나는 그 꿈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카는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힘든 업무를 자신의 꿈과 경력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그야말로 버틴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교대근무도 아니라 매일 야간 시간에 일을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야간 근무는 낮과 밤을 구분해서 살아온 신체의 생체리듬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오래한다고 해서 적응이 돼 밤에 일하는 게 덜 힘들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조카는 어느 날 갑자기 잘렸다. 업소가 무리하게 확장을 한 탓인지 불경기 때문인지 사장이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직원들을 내보낸 것이다. 몇 달 후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부르겠다는 얘기만 남기고. 다른 업소에 취직을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던 한 달을 보내고 조카는 다시 그 업소로 돌아가 1년 가까이 일을 했다. 채 일 년이 되기 전에 이미 그 업소에선 가장 고참이 되었다 한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자 작년 이맘때 벌어졌던 구조조정 분위기가 다시 조성되었다. 작년 일을 경험한 직원은 조카뿐이었다. 조카는 매해 사장이 경력이 짧은 직원들을 구조 조정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같은 경우를 당하고 싶지 않아 사표를 냈다.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측은 ‘우리 회사는 퇴직금을 퇴사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준다’고 했단다. 이미 사표를 내기 전에 월급도 밀린 적이 있어서 신용교통카드가 정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모한테 연락하지 그랬어? 라고 말했지만 중요한 건 당장의 차비 얼마가 아닌 걸 조카도 나도 안다. 그녀가 바텐더로서의 경력을 무사히 국내에서 쌓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어야 할까?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쉽게 격려할 수 있을까? 조카를 보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같은 업계의 후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들이 아직 위에 많이 있으니 제 또래에는 관리자로서의 비전을 갖기 힘들어요.”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는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IMF 이후인 것 같은데) 신입보다는 경력자를 주로 고용해오고 있다. 알고 보니 꼭 이 업계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꾸리고 있는 대다수 70년대 학번 사장들은 출판이 호황일 때 회사를 차렸고 그나마 대부분 내 나이 때거나 더 젊을 때 사장이 되었는데, 앞으로 후배들이 그렇게 사장으로 기반을 가지거나 사내에서 임원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고. “여러분들도 열심히 하면 이 자리에 올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발언은 정말 무책임한 거라고. 나는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50대들을 보고 얘기한 것이었고 30대인 후배는 여전히 회사에서 윗사람인 40대 선배를 두고 한 얘기이다. 조카 얘기를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후배 얘기를 들었을 때도 할 말이 없었다. 조카에게 무슨 근거로 노동조건이 그야말로 후진 그 바닥에도 볕 들 날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겠나. 후배에게 그래도 너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20대들보단 나은 처지 아니냐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이를 불문하고 세대를 불문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처지에 모두들 놓여 있는 것 같다. 둘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개개인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정말이지 혼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 많다. 말이 연대지 불법해고에 맞서 같이 나서자고 하기엔 개인적으로 처해 있는 조건이 너무 다양하다. 어쩌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뭔가 상식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건일 때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에 아는 분이 회사의 비상식적인 고용조건을 거부하고 퇴사한 뒤에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맞습니다. 배부른 선택입니다. 저는 당분간 사직을 해도 먹고사는 데는 당장 큰 걱정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배고프고 힘들 땐, 원칙적인 선택을 하기 힘듭니다. 아니 더 순종해야 합니다. 최근 국회 청소노동자 한 분이 비정규직에게 노동 3권 보장하면 나라가 어찌되겠냐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자근자근 짓이겨버린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봤습니다. 배고파서 원칙 못 지키는 것도 서러운데 그나마 배부른 상태에서조차 원칙을 못 지키면 그 땐, 원칙은 없는 겁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575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불안의 검은 피로 쓴 젊음의 대자보들이 거리에 나붙는다 저런 철없는 망나니들이 있나 일일이 조사 보고토록! 충성 경쟁 드높은 목소리 손발들이 분주하다 머리에 맨 붉은 정의의 띠들 가족들의 생계 눈에 선연한데도 더 이상 배부른 자들의 놀음에 장단을 맞출 수 없다는 철도노조 파업의 거룩한 포효 개 같은 새끼들 누가 내린 명령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먹던 그릇 발로 차 뒤집어엎고 다 잡아들여! 사방에서 들리는 몽둥이 호루라기 소리 요란하다 부정 선거 방조하는 대통령은 사퇴하라 현실을 비켜난 광야의 곳곳에서 무거운 침묵의 돌들이 입을 열어 순교의 각오를 외친다 저 미친 늙은 놈의 선동을 봤나 뼈 속 깊이 새겨진 종북주의의 유전자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으니 이 어쩌면 좋으냐!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편 궁민(窮民)이 있지 않습니까. 수 만 킬로볼트의 전기에 감전될 수 없다 성스러운 생명의 날카로운 몸들 부르짖는 아우성이 넘쳐나더니 아뿔싸! 결국 사람들이 제 스스로의 목숨마저 끊는구나 저런 바보 멍청이들이 있나 누가 죽으라고 했나! 살라고 했지 언제 적 빨갱이 놀음을 아직도 하다니, 뭐 하고 있어! 배후를 더욱 철저히 조사해! 지당하신 말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자칫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기댄 노예로 자랄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 다함께 백년대계 참 된 교육을 천직으로 삼아 움직이는 전국교사노동조합 종북 빨갱이 새끼들이 무슨 교육을 한다는 거야 아니, 눈엣 가시를 빼지 못하고 뭐하는 거야! 어떻게든 해체시켜! 옙! 좌우당간 없애버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다 검찰총장, 특별수사팀장 국정원 부정한 대선 개입을 향한 발본색원의 기미, 정의의 한 줄기 실마리 보인다 했더니 아니, 저 놈 누구 애비야? 아니, 저 놈 지가 누구 새끼인지 모르나? 찍어내 버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혹시 후폭풍이 일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말 들어봤어!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현우씨(고대 경영학과)가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학내 게시판에 붙여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오후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학우들의 연이은 지지하는 대자보들이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과거가 돌아오고 있다. 잔인한 기억의 무덤이 열리고 독재자의 망령,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도열한 군복 단추들이 광채를 뽐내는 환상이 어른거린다 “나를 살해한 너희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지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리라.” 독재자의 망령이 아귀의 입을 열고서 원한과 복수를 명했던가 왜 갑자기 어둠이 내렸을까 왜 민주 자유의 대낮이 불현듯 착각이었을까 우리 모두들 푹 팬 눈, 웅크린 돌이 되어 터질 듯 짓눌리는 가슴팍 겨우 두 손으로 거머쥐고서 독재타도! 독재타도! 수도 없이 외치고 또 외치고 나무토막처럼 퍽퍽 위대하게 넘어지고 잘리고 천신만고 수 십 년 민주 자유의 대낮을 열었다고 했건만 아뿔싸! 또 다시 푹 팬 눈, 흥건한 불안 미래에서 과거로 뒤집혀 내리 덮쳐누르는 망령의 시간이라니 아름다운 낱말들마저 빼앗겨 하나하나 추악해지고 모두의 생명을 보호하겠노라고 모두의 삶을 의미 있게 하겠노라고 모두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겠노라고 새빨간 거짓말 그들 빨간 옷을 입은 이유였구나 그 새빨간 거짓말 말고는 그 누구도 주지 않은 권력이 아닌가 불법으로 빼앗아 간 권력이 아닌가 용케도 권력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그 손들의 뼈마디 돌아오고 있다 아니 벌써 돌아왔다 확인사살의 총성으로 무장한 망령이 머리 위를 선회하며 날고 있다 움푹 팬 눈을 부릅뜨고서 망령을 내려다보아야 한다 불안의 검은 피로 쓴 젊은이들의 대자보 정확한 인식, 분노의 붉은 피 한 두 번이던가 더없는 민주 자유의 무기로 되살아나 망령을 짓눌러 원한과 복수, 어둠의 목소리를 짓눌러 망령에 씐 분주한 수족들을 함께 묶어 심연의 무덤으로 내려 보내야 한다 허위의 입술과 혀도 위장의 옷차림과 미소도 뒤집어진 허구의 시간과 함께 저 심연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민주 자유의 시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2017-08-07 | hrights | 조회: 273 | 추천: 0
이은규/ 인권연대 '숨' 일꾼 주말 아침이었다. 커튼을 여니 모처럼 겨울 하늘이 맑았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져 오는 햇빛, 눈이 부셨다. 오랜만에 멀쩡한 아침 기분을 만끽하며 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속이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부엌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린다. “그런 노래 부르지 마. 종북이라며 욕할지도 몰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노래까지도 눈치 보아야 하는 2013년 겨울. “그러거나 말거나.”아내의 농담을 받아 더 큰 소리로 흥얼거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속이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불렀다. 그랬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 순간 나는 이십대였으며 1990년대를 숨 쉬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금요일, 토요일마다 공사다망한(연애?) 큰 아들을 제외하고 열아홉 살 큰 딸부터 다섯 살 막내딸까지 우리 가족은 함께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있다. 각자의 취향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함께 감상하며 수다를 떤다. 물론 감상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다. 아이들은 쓰레기와 나정이, 그리고 칠봉이의 사랑이야기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삼천포와 윤진이, 해태와 빙그레 그리고 성동일, 이일화 부부의 에피소드에 웃고 쓰러지고 한다. 1994년을 거쳐 1995년이 배경인 까닭으로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다. 드라마에서 인용되는 신문기사와 뉴스들에 대한 내용을 묻고는 한다. 삐삐 같은 이제는 보기 힘든 물건들과 시사적인 것도 있지만 주로 스포츠와 연예에 관련된 궁금증이다. 이를테면 이상민이 누구냐?, 서태지와 아이들하고 EXO하고 비교하면 누가 더 인기가 클 것인가, 삼풍백화점 사건이 무엇이냐 등등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런 저런 문의들을 하고는 한다. 문의가 폭주할라치면 드라마 끝나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라 권고한다. 그럴 때 마다 생각한다. ‘허 참 별일도 다 있네. 드라마를 보며 아이들하고 수다를 다 떨고...’ 무튼 이 드라마를 나도 좋아한다. 다 큰 아이들이 불타는 금요일 밤 밖에 나가지 않고 나와 놀아주니 좋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가족 모습이 좋고 무엇보다 추억할 수 있어 좋다. ‘그래 추억할 수 있어 좋다.’ ‘응답하라 1994’를 보면 까맣게 잊고 있던 당시 일상의 기억들이 부실 부실 눈 비비며 일어나고 있다. 1994년 여름은 매우 더웠고 첫아이 민주가 탄생했으며 목 넘김이 부드러운 하이트 캔 맥주를 원 샷 한 해이다. 그리고 그해 출범한 고(故) 김근태 선배가 이끌었던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충북지부 조직국장으로 일하던 때이기도 하다. 빠르게 순간 이동하던 기억들이 숨을 고른다. ‘따뜻했던 사람, 민주주의자 김근태...’ 송송 눈발이 내리듯 많은 기억들이 가만 가만 내려앉는다.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떴고 그들의 꿈은 현실이 되거나 여전한 꿈으로 지체되고 있다. 그들이 꾸었던 꿈의 동기는 사랑이었으리라. 형제에 대한 사랑,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있지만 너무 가까워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있는 자들은 눈먼 길 위에서 서로 분노의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응답하라 1994’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노래들은 추억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015B, 김민종, 이문세, 김광석의 노래는 오십을 앞둔 심장을 이십년 전으로 거슬러 요동치게 한다. 특별히 김광석은 아련하고 그 여운이 길다. 명치 아래쪽이 스르르 하니 모래성 내려앉듯 하고는 한다. 미소 짓는 슬픔이라니...“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고(故) 김광석 노래 그날들) ‘응답하라 1994’에는 이 노래도 나온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 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삼천포와 해태 그리고 나정이가 삼천포 주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을 보며 곁에 있는 아내를 흘끗 바라보았다. 왕년에 총여학생회장을 했던 아내는 나정이보다 더 앳되고 이~뻣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아내는 텔레비전에 응답하느라 이런 나를 보지 못한다.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 따뜻해지는 시간을 ‘응답하라 1994’가 선물하고 있다. 오래된 노래들의 위로와 격려가 참 좋은 시절이 왔다. 사진 출처 - 티브이데일리 아날로그한 추억을 가만 가만 쓰다듬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린다. “어휴 요새 박근혜 때문에 자꾸 분노하게 되네. 지가 뭐라고 내 심사를 이렇게 뒤흔들어.” 지난여름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은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영규 형님 이다. 나는 당뇨에, 혈압에, 건강이 좋지 않은 형이 걱정되어 말씀 드렸다. “분노하지 마세요. 분노할 힘이 있다면 사랑하는데 힘쓰자고요. 분노할 대상은 적고 사랑할 대상은 전부니까요.” “그래 그래야겠지...” 통화를 마친 후 무의식적으로 한 말을 되새김질 하며 짐짓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그래 사랑하는데 힘쓰자. 사랑할 대상은 전부다.’ 내 오래된 노래는 오래된 미래를 희망한다. 그래서 힘이 있고 단순하다. 현재 우리의 삶이 노래가 되어 미래의 희망이기를 바란다. 햇빛 환하게 밝은 지금, 나도 모르게 또 흥얼거린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기쁨의 그날 위해 함께 할 친구들이 있잖아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친구랍니다...” 얼~쑤
2017-08-07 | hrights | 조회: 329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솔직히 나는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지 알지 못할뿐더러, 세상을 둘로 쫙 나누어보는 언론의 이분법적 시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꼴보수’니, ‘입진보’니 하는 별칭에 까지 이르면 할 말이 더 없어진다. 도대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지키는 것과 나아가자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어쩜 그리 명확하게들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로 꼽힌다. 그런데 막말로 인권, 민주화는 진보의 대명사 아닌가? 보편적 인권과 보편적 민주화를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진보고, 꼭 집어서 북한인권, 북한민주화를 이야기하면 호전적인 보수인가? 초등학생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어른들이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민감한 정치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더하다. 보수와 진보 이분법은 양반이다. 급기야 홍어까지 등장해서 우리 코가 아니라 가슴을 찌른다. 5·18 광주민주항쟁 희생자 관을 두고 “홍어 택배 대기중”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초특급 “호로자식”이다. 차라리 “절라도(전라도) 깽깽이”가 더 인간적이다. 망자를 두고 “홍어 택배”라니,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패륜아다. 말끝마다 홍어 운운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한다. 그들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이들은 종북이라고 부른다. 특히 종북 민주당을 지지하는 깽깽이들을 이제는 대놓고 종북홍어라고 부른다. 지극히 창조적인 국어사용이라고 상이라도 주어야할까 보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홍어라고 부르는 것이 보수인가? 그게 보수라면 나는 보수 안 할란다. 나는 북한인권, 북한민주화에 우리가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권이나 민주화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폭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못 본체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동포가 아니라도 도와야할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통을 모른 체 하면서 진보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으로 간주되는 세력도 싫다. 그래서 나는 진보도 안 할란다. 지난 6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진보(왼쪽)와 보수단체가 마주 보며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상반된 내용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나는 세간에서 정해준 진보도, 보수도 모두 안 할란다. 종북홍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는 싸가지 없는 자칭 보수도 싫고, 인권, 민주를 줄기차게 외치다가도 북한인권, 북한민주화라는 말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인양 입을 꽉 다물어버리는 자칭 진보도 싫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보수고, 진보란 말인가. 보수니 진보니 편을 가르는 현실을 보면 정신분열증이 올 판이다. 보편적 정의나 기준도 없이 정파끼리 짝을 지어 내 편, 네 편 나누어 보수니, 진보니 하며 마구 이름을 갖다 붙이니 말이다. 상대방을 독재자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라 부르면서 친일행적 비판에 열 올리던 소위 진보들은 자기 조상들의 친일전력은 애써 외면하고 숨겼다. 연좌제는 유신의 산물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부친의 죄를 딸에게 묻는 연좌제를 정적에게 적용하고는 속 시원한 말 했다면서 자화자찬이다. 어디 그뿐이랴. 보수만 논문 표절하는 것처럼 떠들었는데, 진보도 장난 아니게 베꼈다. 얼굴 들기 어렵도록 친일, 표절 소동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는 확인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적어도 친일과 논문 표절에는 보수와 진보 편 가르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만하자. 보수와 진보로 나눠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어차피 둘 다 보편적 정의나 인권에는 눈을 감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에게나 “너 보수지?” “너 진보지?” 하며 다그치듯 묻는 것도 모자라 보수니 진보니 엿장수 마음대로 줄 세우는 짓을 이제는 제발 “쫌” 그만 하자. 이러다간 노예 사회를 해방시키지 못한 예수는 보수, 여성에게 더 많은 계율을 내린 부처도 보수라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 말도 안 되는 보수·진보 노름 그만하고 보편적 정의, 인권, 민주에 대해 이야기하자. 보편 말이다, 보편! * 뱀꼬리: 제가 보수를 진보보다 먼저 쓴 이유는 한글 자모에서 ‘ㅂ’이 ‘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미리 밝히지 않아 괜히 쓸 데 없이 추리들 하시느라 애쓰게 해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정말 그러셨다면... 오~메, 어짜스까라이~
2017-08-07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최근 새마을 운동의 본격적인 해외 보급이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의 대외 원조 혹은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2010년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이후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은 정부와 산업계는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관심 영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그 어떤 분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의 정부 각 부처는 물론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대규모로 관여하고 참여하고 있지만, 현재의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의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자세로 임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제 진부한 주제로 여겨질 정도로 전 지구적인 담론이 되어 있지만, 막상 전 세계가 연관되어 있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 선도 기관들이 금액을 지원하는 등 이러한 세계화가 실질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소위 국제개발협력 영역에는 개발 관련 정부 기관들과 관련 학자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나마 외형적으로는 서구 사민 주의적 의제들이 크게 반영되어 있는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방향과는 정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현재 국제개발협력의 선구자인 양 활동하는 한국의 주요 관련자들이 국내적으로는 복지를 포퓰리즘 등으로 왜곡하는 데 앞장서 온 수구적 관료들과 학자들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기이하게도 한국적 개발협력 모델을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을 재현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새마을 운동과 같은 한국의 개발 개념은 한국의 발전사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시공을 초월해 재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러한 모델을 보급, 전수하는 방식의 국제개발협력 지원은 지양해야 하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에 앞서 지금까지 개도국을 지원하는 미명 하에 논의되어 온 개발 개념이 사실은 중심부 서구 선진국들의 이익이 명백히 반영된 결과라는 사실, 즉 개발 개념이 지닌 본질과 그에 따른 명암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막대한 개발협력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저발전국가들에서 국부가 외채 등으로 빠져 나가는 부분이 더 큰 현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끔찍한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국제 원조 혹은 국제개발협력이 완전히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 2월 르완다 수도 키갈리 외곽 무심바 마을의 한국국제협력단 사업현장에서 현지 주민들이 수로를 파고 있다. 이 마을은 한국국제협력단이 새마을운동 사업지로 선정한 마을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 하지만, 몇 가지 대안적인 개발협력의 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개발 이슈 외에도 다양한 이슈가 제기될 향후, 수원국들의 경제자립 및 내발적 발전 등 저발전 수원국들의 자생력을 증강하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아울러 수원국의 필요에 입각한다는 의제는 수원국의 중앙과 지역의 권력 엘리트들이 아닌 원조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 지역 대중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그 대중들의 직접적 참여를 통해 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원조 효과성의 제고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개발협력 의제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수원국들의 빈곤 퇴치를 넘어 복지 사회 건설, 그리고 사회경제적 실질적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양성평등 등의 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 세계적 경제위기, 탄소 가스 배출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 식량 및 식수 위기, 부국과 빈국 간 양극화, 국내 빈곤 및 양극화 등의 지구적인 문제를 고려한 협력 사업이 발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생태계와 인간발전의 조화를 파괴하는 개발과 성장 모델을 지양하고, 생태적 사고에 입각한 협동경제발전, 인간복지향상에 입각한 개발 모델을 추구, 빈곤퇴치를 넘어 자조와 자립, 그리고 자치능력을 고양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소득창출과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국제협력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향후에는 저탄소 대안경제적 관점에서의 협력이 중요하게 대두될 것으로 생각되는 바, 이러한 분야 중 태양열, 조력, 풍력 등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협력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 협력 분야 중 중 폐기물 에너지 산업의 경우 이미 유럽에서 폐기물 처리와 재생에너지 생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도시 및 농촌의 정비 및 현대화, 개발 사업 분야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정책과 연계된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즉 빈곤 퇴치, 건강 및 가족계획, 위기 예방, 환경정책 및 환경보호, 지속 가능한 경제 개발, 식량 안전과 농업, 식수 및 쓰레기 처리, 공공관리, 이주 노동자, 길거리 아동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공공서비스 관련 분야 중심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 보건의료, 주택 등의 분야 협력은 해당 국가의 의무 및 무상, 공공성 개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질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주택의 경우 난방 시설 현대화 등을 통한 에너지 효율화, 그리고 서민 주택 건설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주택이 재산과 투기의 수단이 되고, 사회적 불평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 분야 협력의 경우에도 현지에서의 중장기적인 플랜 하 지속가능한 사업들을 제안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실질적인 무상 초등기초교육 확대, 양성평등 교육 강화 등을 위한 사업들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분야 협력도 소수에게 혜택을 주는 분야 중심의 의료 현대화 사업보다는 무상 의료 시스템 구축과 질적 제고를 위한 협력이 위주가 되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분야들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이나 일반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국가적인 대단위 성장보다는 지역 단위의 자립경제 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공동체나 협동조합 등 시민사회의 대안적 경제가 실현되도록 원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자원 확보 중심적 정책을 지양하고, 노동 집약적 공해산업의 이전이나 한국 기업들의 하청 중심의 협력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새마을 운동의 해외 확산 정책을 한국형 개발협력모델로 만들려는 것은 인류의 진보에 정면으로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0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Mahdi Abdul Hadi, Head of PASSIA, http://www.passia.org)   현재 팔레스타인 정치 상황은 다음 세 개의 화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계속할 것인가, 둘째, 서안을 통치하는 파타와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화해를 할 것인가, 셋째, 팔레스타인에서 선거가 실시될 것인가 등이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가 개인적으로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헌신하고 있으며, 협상을 유일한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대통령 직위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아랍 연맹 외무장관들을 이용해서 이 협상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의 임기가 2009년에 이미 만료되었기 때문에 그의 합법성은 매우 약화되었다. 따라서 합법성의 문제는 그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다(그는 2005년에 선출되어 2009년에 권한이 만료되었다). 요르단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 매우 깊게 관여하고 있으며, 파트너로서 워싱턴(미국), 텔아비브(이스라엘) 그리고 라말라(팔레스타인 자치정부-파타-)의 모든 정보와 연락망을 공유하고 있다 (요르단은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협상 내용을 파악한다). 하마스는 파타와 압바스의 가장 주요한 적수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마스 운동은 현재 정치적으로 완전히 약화되었으며, 시리아, 헤즈볼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모든 동맹자들을 잃었다. 그러나 10월 6일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샬은 공개 성명과 터키 총리 에르도간과의 만남에서 압바스에게 화해를 요청했다. 이러한 행위는 하마스의 동맹국인 이란 (특히 새로운 대통령 루하니의 선출과 함께 찾아온 변화된 분위기의)과 미국, 유럽연합과의 관계회복을 긍정적으로 인지한 결과다. 동시에 미국의 국무장관 존 케리는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에 대한 40억 달러 ‘경제 정책’을 제시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주변지역과 통합시키려는 노력의 일부다 (이스라엘과 그 이웃들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역내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게토’ 의지를 종결시키려는 조치다) 위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음을 이해해야한다. 미국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특사인 마르틱 인디크(Martik Indyk, 주 이스라엘 미국대사)가 경우에 따라 동석한 채, 예루살렘에서 치피 리브니(이스라엘)와 에레카트(팔레스타인)가 예루살렘에서 9회 회담을 가졌다. 다른 한편으로, 제네바에서의 에피소드가 제2의 제네바를 목표로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베드 라보와 이스라엘의 우리 사비르가 미국의 데니스 로스(Dennis Ross)의 지휘를 받는 또 하나의 협상 팀을 함께 꾸렸다. 하지만 라말라는 제네바 대화가 진퇴양난이며 내용이 없고, 치피 리브니와의 대화를 위한 과정만이 중요하다고 밝힘으로써, 기존 9개월간의 치피 리브니와의 대화를 무기한 연장할 것을 암시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회 (NGO와 좌파 단체)는 이러한 처사를 비난하고, 치피 리브니와의 협상연장은 단지 네타냐후 정권에게 정착촌을 확장하고 예루살렘을 유대화를 은폐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며 협상중지를 촉구하고 있다. ▲ 마흐디 압둘 하디(Mahdi Abdul Hadi)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 소장   □ 파타와 하마스의 화해 하마스와 파타의 지속되는 균열로 보아, 최근의 진행과정은 화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이란 대통령 루하니는 이란과 하마스의 관계를 재확립하여 미국과 유럽연합과의 대화에서 정치적 카드로 사용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터키 총리 에르도간은 하마스에 힘을 부여함으로써 그가 최근에 잃어버린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두 양상을 반영하여 물러난 하마스의 가자 통치자 이스마엘 하니야가 파타와 다른 당파들이 정치권력을 공유할 것을 제안하였다(이는 거절당했다). 이스마엘 하니야는 라파 국경을 개방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유럽연합이 지키게 하자는 이집트의 제안을 승낙했고, 이것은 2005년부터 이미 시행되어 왔다. 하지만 파타 중앙 위원회 위원인 지브릴 라주브는 “우리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병사의 안전과 안보를 보장하리라고 믿지 않으며, 라파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리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아주 짧게 열렸던 기회의 문이 다시 닫혔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압바스 대통령은 이 제안을 승낙하거나 거절하겠다는 공식적인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분간 파타와 하마스 간에 화해 노력이 사실상 끝났음을 의미한다.   □ 팔레스타인 선거 가까운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선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지난달에 파타 혁명 위원회에서 일어난 진행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파타 혁명 위원회의 의원들은 압바스에게 오래 전에 약속했듯이 가까운 미래에 대리인을 임명하라고 제안했다. 다시 한 번 제안된 이름은 마르완 바르구티(이스라엘 감옥에 수감 중)였는데, 그가 임명되면 감옥에서 석방될 수도 있으며, 파타 중앙 위원회 출신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이 에서였다. 압바스는 혼란된 감정을 경험했고, 대부분의 주장들이 자신이 반대하고 있는 다흘란 캠프에서부터 나왔으므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가자 지구(하마스 통치)에서의 선거 없이, 서안(팔레스타인 자치정부-파타 통치) 에서의 선거는 계획대로 진행될 것임을 암시했다. 이는 진행되고 있는 협상과 유럽연합과 미국의 지속적인 지지에 달려있다. 내재해 있는, 네 번째 중요한 점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도전하고 있는 경제적, 금융적,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갇힌 거리에 나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와 좌절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안보협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특수부대는 제닌 난민캠프와 나블루스 발라타 난민캠프에서의 시위를 비롯한 모든 팔레스타인 시위를 과도하게 진압하고 있다. 하람 알-샤리프(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무력을 이용해 성지를 공유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 증가하는 청년 체포 등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팔레스타인 내에서 더욱 더 많은 영토를 지배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이스라엘의 열정적인 노력을 나타낸다. * 영문 원고 번역은 김해서 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15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분노의 범죄학’이라는 것이 있다. 일찍이 수십 년 전,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Merton)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풍요를 보면서 이것이 미국인들에게 물질적 성공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제시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다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합법적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불법적인 수단, 즉 범죄를 저지르게 할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사회가 제시하는 목표와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현실 사이의 갈등을 머튼은 ‘긴장’이라고 불렀거니와, 이러한 긴장이 일상화된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긴장의 범죄학’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분노의 범죄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장밋빛 환상과 열악한 현실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격은 만성적인 긴장을 넘어 좌절과 우울,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쌓이게 되고, 마침내 이것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과 같은 범죄행위로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개인이 느끼는 분노는 반드시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자존감의 상처, 즉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하는 것과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또 만약 이 사회가 나름대로 공평한 경쟁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실패한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택시의 불친절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택시요금이 지나치게 낮다거나 운전기사들이 과도하게 오랜 시간 동안 노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적인 문제들은 결국 이를 감당해야 하는 개인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으로 쌓이게 된다. 피곤하고 힘든데 웃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아니 웃기는커녕 작은 말 한마디에도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어디 택시뿐인가. 새벽부터 밤까지 오직 시험만을 생각해야 하는 학교에서, 아무리 갖은 방법을 써 보아도 계속해서 탈락하는 입사면접에서, 분명히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차별과 해고의 불안에 늘 시달려야 하는 노동현장에서, 퇴직 후 느껴야 하는 경제적 곤궁과 가족 간의 갈등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한다. 분노는 때로 적당한 정도를 넘어 주위의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며,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냉정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의 범죄율은 그러나,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다. 범죄율은 보통 인구 10만 명당 범죄인수로 측정하는데 한국의 경우 대개 120에서 130정도로 북유럽이나 서유럽에 비하면 다소 높지만, 일반적으로 치안이 불안하다고 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미국은 이 수치가 700을 넘어선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아시아의 범죄율이 전반적으로 낮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관의 권력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준법의식이 잘 발달한 것이 주요한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천년도 더 넘게 개인보다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유학의 세계관에 의해 지배되어온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나라에서 정한 법은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분노의 범죄학’의 설명이 틀린 것일까. 우리가 잘 아는 다른 통계 하나는 자살률에 대한 것인데, 이것은 문제에 대한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수년간 10만명당 30명 선을 육박하고 있는데, 이것은 OECD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위의 범죄율과 비교해 보더라도 상대적으로 약 1/4에 해당하니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범죄율 가운데에서 살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높지 않으리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지만,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살인 범죄로 인한 그것 보다 훨씬 많으리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모든 자살이 분노나 좌절에 의한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적어도 상당수의 자살이 그러한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자살은 전이된 살인이며, 약화된 살인”일 수 있다. 터져나오는 분노를 공공의식의 압력으로 표출할 수 없을 때, 이것은 방향을 바꾸어 자기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좌절은 그 대부분이 사회적 조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래서 우리는 보통 자살의 문제를 개인적인 병리현상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았을까. 우리는 여기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범죄에 대해서도 이런 생각이 적용될 수 있을까.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을 포함하여 4대악을 척결해야 한다고 한다. 폭력이 좋다는 것도 아니고, 폭력이 자살과 같다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의 원인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때로 폭력으로 밖에는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그렇게 깊은 분노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분노의 범죄학’의 이런 해석이 맞다면 두려울 뿐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 정도를 낮추는 쪽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노력할 밖에.
2017-08-07 | hrights | 조회: 29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