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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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박현도/ 종교학자 시리아 내전을 틈타 세력을 불린 순니파 무슬림 무장단체 ISIL이 지난 6월 29일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을 이슬람국가(Islamic State)로 선포하였다. ISIL은 ‘Islamic State of Iraq and Levant’의 약어다. Levant의 머리글자 L 대신 원 아랍어인 샴(Sham)의 머리글자 S를 써서 ISIS라고도 한다. 샴은 아랍어 지명에서 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가리킨다. 이를 불어에서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인 ‘르방(Levant)’이라고 불렀고, 이 불어 표현이 영어로 굳어져 레반트가 되었다. 이제 이들과 이들이 세운 국가는 IS(Islamic State)로 언론에 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이 표방하는 이슬람국가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영원한 신의 말씀이 담긴 꾸란과 예언자의 언행에 따른 이슬람법이 시행되는 나라다. 그런데 문제는 이슬람법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들이 이슬람법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이슬람국가에서 법학자들이 이슬람법을 공부하고 해석하여 삶 속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축이 되었다. 꾸란과 예언자의 언행에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꾸란과 언행을 바탕으로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이슬람국가를 세웠다고 하는 저들 무장 세력에게는 그러한 능력도 학자도 없다. 오로지 총과 칼, 그리고 자신들이 진정한 무슬림으로 이슬람을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는 착각만이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이슬람법학의 틀에서 보면 IS가 내세우는 이슬람법은 혹세무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둑질한 자의 손목을 자르고 간통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것만 알 뿐, 그러한 극형에 처할 때 거쳐야하는 치밀하고도 치열한 법해석과 사법과정은 알지 못한다. 게다가 비무슬림을 대하는 태도는 극악하기 그지없다. 수 백 년 이상 이슬람국가에서 문제없이 살아 온 그리스도교인들과 야지드(Yazid)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을 보라.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과거 무슬림들이 잘못이라도 했다는 양 유서 깊은 교회를 파괴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인들을 죽이고, 고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신앙전통이 혼합된 형태의 종교를 믿는 야지드인들을 악마 숭배자로 간주하여 산채로 매장하고 여자는 노예로 삼는 등 인간이라면 도대체 할 수 없는 일을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 신께 도움을 구하고 예배하는 이들이 신의 피조물들을 자기 멋대로 죽이고 있다. 신앙의 조상들이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면서 이슬람법이 지배하는 국가를 수립했다고 만방에 떠든다. 추악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ISIL 퍼레이드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이들이 죽이는 대상이 어디 비무슬림뿐이랴! 같은 무슬림이라도 자신들이 믿는 방식대로 따르지 않으면 모두 처형한다. 같은 종파인 순니파 무슬림마저도! 시아파 무슬림은 이들 눈에는 결단코 이단이니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시아파 모스크를 파괴하고 시아파 무슬림을 살해하였다. 오죽이나 잔인했으면 근본주의의 화신으로 불리는 알카에다마저 이들 IS 무장 세력과 선을 그었을까나!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IS를 발본색원하는 것이다. 이번만은 국익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신의 이름으로 살인을 하고 여성과 어린이를 능욕하고 금수처럼 부리는 이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꾸란에서 신은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면서 자신의 대리자라고 하였다. 그렇다. 인간은 신의 대리자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을 신의 이름으로 죽이다니, IS 무장 세력이야말로 진정 용서할 수 없는 불신자들이다.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인류의 행복을 위해 IS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에게는 단 한 치의 땅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과 믿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인을 밥 먹듯 자행하는 이들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무슬림,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서 IS는 가능한 한 빨리 축출해서 더 이상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 신, 양심, 인권의 명령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423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이 쓴 『트랜스크리틱』(송태욱 옮김, 한길사, 2006)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나에게 흥미롭게 생각되는 것은 1982년에 린턴(Michael Linton)이 고안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지역 교환 거래 제도)이다. LETS는 참가자가 자기 계좌를 갖고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목록에 올려 자발적으로 교환하며, 그 결과가 계좌에 기록되는 다각 결제 시스템이다. LETS의 통화는 중앙은행에서 발권하는 현금과 달리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 그때마다 새롭게 발행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의 흑자와 적자를 합하면 0이 된다. 그러나 지극히 간단한 이 시스템에는 화폐의 이율배반을 해결할 열쇠가 포함되어 있다.(57쪽)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고진은 마르크스의 사회사상을 높이 평가하는 반(反)자본주의 사상가다. 국가자본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스탈린주의에 기초한 소련의 해체 이후,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 자본주의를 일거에 뒤엎는 대대적인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그 대신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를 곳곳에서 허물 수 있는 합법적인 운동의 길을 모색한다. 고진은 노동자가 주체성을 발휘하는 “소비의 장소”를 강조하면서 전일적인 시장에서의 대대적인 소비 보이콧 운동을 하자고 제안하고, 그 대안으로서 1982년 캐나다의 린턴이 고안한 LETS 경제 체계를 활성화하자고 제안하고, 지역마다의 LETS 공동체를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연합공동체’로 번역될 수 있음)이라 칭하면서, “어소시에이션들의 어소시에이션”을 통해 새로운 정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고진의 대안적인 어소시에이션 이론은 한국의 이진경 선생이『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2006)라는 저작을 통해 제안하는 “코뮨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이진경 선생의 코뮨주의는 종전의 공산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반(反)자본주의적인 시민운동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벗어난 ‘외부’들을 창안하는 법을, 자본주의의 곳곳에 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촉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 그 오지 않은 시간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부재하는 이상향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조차 우리 자신이 창안하고 ‘살아갈 수 있는’ 현재성의 시제를 갖는 ‘현실적인 이행운동’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이런 종류의 활동을 명명하기 위해 우리는 ‘코뮨주의’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 여기서 우리는 ‘공동으로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공산’(共産)주의라는 번역어 대신에, 가치법칙에 따른 교환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선물(munis)을 통해 하나로 결합(com)되는 관계로서 ‘코뮨’(commune)을 직접 음역(音譯)하여 ‘코뮨주의’라고 재개념화했다.(305-6쪽) 고진의 어소시에이션 이론과 마찬가지로 이진경 선생의 코뮨주의 이론 역시 대단히 시론적(試論的)이어서 이론적으로도 많이 보강이 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실천적으로 그 현실적합성을 입증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진경 선생은 <수유·공간 너머>라는 학문공동체를 통해 일정하게 그 실효성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고진이 말한 LETS 경제 체계를 도입한 일종의 어소시에이션 공동체가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이미 그 가능성의 물꼬를 시험적으로나마 제법 힘차게 터고 있었다. 어찌 반가운 소식이 아니겠는가. 다름 아니라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한겨레신문> 13면 전체에서 다룬 기획 기사가 실렸던 것이다. “ ‘인간의 얼굴’ 지역화폐 … 지역경제 · 공동체 부활 ‘일석이조’ ”라는 큰 글씨의 제하에 국내의 주요 지역화폐 운동에 관한 내용이 전면을 할애해서 소개되었다. 대전, 과천, 구미, 광명, 대구, 의정부, 성남, 부산, 수원, 그리고 서울의 17개 자치구 등에서 지역화폐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은평이품앗이>의 경우처럼 많게는 2100여 명의 회원과 58개의 가맹점이 가입한 경우도 있고, 적게는 <수원시민화폐 추진모임>처럼 시민 100여 명과 몇몇 매장들이 10만 원씩을 내 9월부터 3개월간 시범 운영될 예정인 곳도 있었다. 아마 가장 오래된 경우로는 대전의 <한밭레츠>인 것 같은데 2000년 회원 70여 명으로 시작해서 현재 68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활동을 하는 곳곳의 지역에서는 각기 나름의 지역화폐 이름을 가지고 있다. ‘두루’, ‘아리’, ‘고리’, ‘그루’, ‘문’, ‘늘품’, ‘누리’, ‘넘실’, ‘송이’, ‘별’ 등 다들 예쁜 이름들을 잘도 정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서울이(e)품앗이’의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재능 품앗이 사례들. 맨 아래 오른쪽 끝에 있는 사진은 지역화폐를 매개로 한 가상의 도서관인 경기도 수원 ‘구름위의 도서관’에서 발행한 지역화폐 ‘별’. 서울이품앗이 홍보 영상 갈무리, 구름위의 도서관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에서는 지역화폐 전문가로서 가톨릭대학교 교수인 천경희 선생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최근 지역화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박수혁 취재기자가 전하는 그녀의 말은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이 돈으로 환산되는 통로를 갖지 않으면 무능력자나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래서 국가화폐인 돈이 없으면 빵을 먹을 수도 없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노동력도 쓸모없게 된다. 이에 반해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돈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노동과 물품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서 지역화폐 운동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대표적인 공동체라 할 수 있는 대전의 <한밭레츠>의 사무국장 박현숙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이 눈길을 끈다. 지역화폐 운동을 ‘하나의 사업’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남는 게 없게 된다. 지역화폐는 천천히 사람 간의 신뢰를 쌓고, 관계를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천경희 선생과 박현숙 선생의 말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뿐만 아니라 지역화폐 운동이 나름의 반(反)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이를 활성화해서 자본주의적인 폐해를 극복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돈의 활용인 자본에 종속된 인간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뭔가 심중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그 심중한 호기심을 풀어내고 싶어 다시 고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본제 시장경제와 달리 LETS에서 화폐는 자본으로 전화되지 않는다. 그저 이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제로섬 원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환이 활발하게 행해지는데도, 결과적으로 화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화폐는 존재한다’와 동시에 ‘화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율배반이 해결된다.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에서 말하자면, LETS 통화는 일반적 등가물이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관계지을 뿐 자신이 자립적이지 않다. 즉 화폐의 페티시즘이 생기지 않는다. ‘교환 가능성’으로서의 화폐를 비축하는 것에 의미가 없고, 적자가 늘어나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 국가에 의한 단일 통화와 달리 LETS는 복수적이고 다종다양체로 존재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지역 통화와 달리 LETS에서는 각자가(다지 계좌에 기록할 뿐이지만) 통화를 발행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이다. 국가 주권의 하나가 화폐 발행권에 있다고 한다면, LETS는 말뿐인 인민 주권이 아니라 각자를 진정한 주권자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LETS가 단순히 지역 경제를 보호하고 진흥케 하는 통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위 같은 책, 58-9쪽) 인용이 다소 길었다. 학자가 하는 이야기는 신문기사와는 달리 역시 ‘현학적’이다. 하지만 그 핵심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 내용을 필자 나름으로 보충해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지역화폐는 각자가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일정한 척도에 따라 목록(예컨대 누리집)에 올림으로써 각자가 발행하는 것이다. (2) 지역화폐는 그 자체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이다. (3) 지역화폐는 쌓아둔다고 해서 이득이 되지 않고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으로부터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받아 향유함으로써만 이득을 본다. (4) 따라서 지역화폐는 돈을 벌기 위한 돈으로 쓰일 수 없다. (5) 만약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면 남들의 재화와 서비스를 통한 향유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지 소유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6) 지역화폐를 통해서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횡행하는 바 돈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감이 생길 수 없다. (7) 지역화폐는 사용하는 인민 각자가 발행권을 갖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주권재민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하나의 방책이다. 지역화폐 공동체 운동은 이진경 선생의 말처럼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벗어난 ‘외부’들을 창안하는 법, 자본주의의 곳곳에 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방법”의 창안이며 실현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자신의 노동력과 그 노동력에 의한 생산물을 자본주의 활성화를 기하는 국가의 단일 화폐로 환산하는 것에 ‘뼛속 깊이’ 길들여진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 및 행동 곳곳에 구멍을 내어 우리의 현존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외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와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경제생활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인간 현존을 창조해 냄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한 인간”의 삶을 살면서 서로를 통해 각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수 있도록 해 보자는 운동이 바로 지역화폐 운동인 것이다. 내친 김에 ‘Wikipedia’에서 ‘LETS’ 항목을 쳐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길지만 핵심 대목을 그대로 옮긴다. LETS 네트워크는 이자 없는 지역 신용을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물물교환을 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한 회원이 다른 사람을 위해 아기 돌봄을 함으로써 신용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용을 나중에 같은 네트워크에 속한 다른 사람에게서 목수 일을 제공받는 데 쓸 수 있다. 다른 지역 통화와는 달리, LETS에서는 임시 화폐가 발행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모든 회원들이 언제든지 알 수 있는 중앙의 장소에 거래 내역이 기록된다. 네트워크의 회원들에 의해 그리고 회원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용이 발행되기 때문에, LETS는 상호 신용체계로 간주된다. 많은 사람들이 LETS 체계를 운용하고 활용하는 다각적인 방법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전통적인 국가 통화는 대체로 벌기는 어려운 반면 쓰기는 쉽다. 현재로서는 LETS는 상대적으로 벌기는 쉽고 쓰기는 어렵다. LETS 체계는 대체로, 자발적이고 비영리적이고 비정부적인 조직에 근거한 공동체들이 맞닥뜨리는 모든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LETS를 조직하는 사람들은 종종 업무가 과중하다고 불평하고 소모성에 시달리기도 한다. 결국 많은 기획들이 무산되기도 했다. 그 많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공동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여러 가지 어려움은 당연히 예상된다. 이미 온몸으로 습관화된, 인간을 존중하는 대신에 화폐를 숭배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강력하게 저항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문 기사에는 “ ‘송파머니’를 많이 보유한 회원들로부터 ‘쓸 곳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지역화폐 계좌가 마이너스가 돼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도 있어 논란이 됐다.”라는 <장미화 송파품앗이>의 회장의 말을 전하고 있다. 화폐의 소유량을 삶의 척도로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삶으로부터 향유의 다양성과 질적인 정도를 삶의 척도로 부추기는 새로운 공동체적인 삶으로 이행해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능력에 따른 기여와 필요에 의한 향유의 결합으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기왕의 지역화폐 공동체들이 서로 공동체들의 공동체적인 소통을 통해 지혜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지역화폐 공동체들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겨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이에 저 앞에서 인용한 박현숙 선생의 말을 상기할 것을 권하고, 역시 신문에서 전하고 있는 <원주협동사회네트워크>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는 김선기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지역통화를 합시다.’는 식으로 이익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사용하다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지역통화는 동력을 잃게 된다. 제도화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1) http://en.wikipedia.org/wiki/Local_exchange_trading_system(2014.07.22)
2017-08-07 | hrights | 조회: 474 | 추천: 0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최소한의 생존력을 확보하려는 하마스 선택 7월 8일부터 계속된 이스라엘의 가자공격으로 7월 22일까지 팔레스타인인들 603명이 사망하였고, 4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스라엘 군인도 27명 사망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의 지상공격 3일 째인 7월 19일(토)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방위권을 재확인하고, 지상공격을 포함하는 가자공격을 지지하였다. 다음 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주민 99명을 학살하였고, 전투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인도 13명 사망하였다. 20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퇴로를 찾지 못한 하마스는 카타르를 통해서 미국에게 휴전 조건들을 전달하였다. 이 조건들은 “즉각적인 휴전, 군사와 안보 작전 중지, 가자 봉쇄 완전철폐, 국경 개방, 어업지역 12마일까지 확대, 완충지대 제거, 2014년 6월 12일 이후 수감된 이스라엘 감옥 수감자 전원석방”을 포함한다. 이것은 하마스와 가자주민들이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로 보인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조건들이 잘 실행되는지 미국이 감독해 달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략적인 정치행위자인 하마스는 현재 가자 위기가 미국의 도움이 있어야만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마스의 이러한 태도는 15일 압델 파타 알 시시 이집트 정부가 제시한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중재안을 거부하면서, 국제항구와 국제공항 건설을 포함하는 자신들의 휴전 전제조건 10개항과 10년간의 휴전 기간을 제시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 가자와 서안 상황: 일상화된 학살, 봉쇄, 억압 ▶ 학살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6월 12일 3명의 이스라엘 정착민 소년을 납치 살해했다는 분명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빌미로 가자주민을 학살하였다. 사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은 일상적인 일이다. 한 예로 2014년 5월 15일 이스라엘 군인이 두 명의 팔레스타인 소년들을 살해하고, 한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주류 미디어는 이러한 비양심적인 팔레스타인 소년살해를 보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공격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그 빌미를 찾거나 기획한다. 다음 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공격과 살해가 일상적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2006년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사망자 기간 팔레스타인인(명) 이스라엘인(명) 2006 650(1/3 어린이) 27 2007 370 13 2008.01-2008.11 432 29 2008.12.27-2009.1.18(22일) 1,400 13(5명은 자국 오폭) 2012.11.14-2012.22.21(8일) 167 4 2014.7.8-22(15일) 603 27   ▶ 가자: 고립된 감옥, 생존을 위한 하마스의 저항 하늘만 뚫린 이 대형 감옥에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6개의 출입구,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경계를 분리시키는 5백 미터 폭의 보안(완충)지대가 있다. 2007년 9월 23일,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를 ‘적지(enemy entity)’라고 선언하였다. 이곳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2014년 현재 1,816,379명으로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5,046/㎢)이며, 이들 대부분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현재 이스라엘 영토에서 추방당한 난민과 그 후손들이다. 전체 주민 중 70퍼센트는 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UNRWA)에 등록된 난민들이며, 주민들 대부분은 국제기구들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빈곤, 실업, 연료, 전기, 식량 부족뿐만 아니라 수출입이 전면적으로 차단되면서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집단 체벌을 당하고 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필자 ▶ 서안: 가자학살 규탄, 점령철폐 시위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도 인구 10만, 20만, 30만 등 대도시 단위로 갇혀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행을 봉쇄하는 장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가르는 8m 콘크리트 분리장벽, 이스라엘인들만 이용할 수 있고 팔레스타인 도시를 관통하는 도로, 팔레스타인 도시입구를 지키는 이스라엘검문소 등이다. 게다가 도시 내에는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파타) 보안대와 경찰이 있고, 도시 안과 밖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통제하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있다. 도시간의 통행은 반드시 이스라엘검문소를 통과해야한다. 2014년 7월 10일, 오후 10시 서안 북부도시 제닌 광장에서 250명 정도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학살규탄과 점령철폐 시위를 했다. 이 때 시위를 저지하려는 팔레스타인 보안대와 경찰들 그리고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에게 돌을 던졌고, 보안대는 시위대에게 최루탄과 공포탄을 쏘았다. 9명의 시위자들이 팔레스타인 보안대를 공격하고, 공공질서를 붕괴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현재 이러한 가자학살 규탄과 점령철폐 시위가 툴카렘, 라말라, 헤브론 등 서안 도시 곳곳에서 연일 발생하고 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필자   ■ 장기 지속적인 팔레스타인인 인종청소 이스라엘이 2014년 7월 8일부터 시작한 이스라엘의 가자주민 공격과 학살은 20세기 초 이스라엘국가 건설 준비과정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는 장기 지속적인 팔레스타인 인종청소 정책의 일환이다. 유대민족기금(Jewish National Fund)의 운영자였던 요셉 와이츠(Joseph Weitz, 1890–1972)는 1941년 6월 22일 일기에 ‘아랍인 인종청소와 전쟁’을 의미하는 글을 다음과 같이 썼다. “아랍인들이 제거되고, 국경이 약간 확장된다면, 이스라엘 땅(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영역)은 전혀 좁지 않다. 국경은 북쪽으로 리타니(레바논), 동쪽으로 골란고원(시리아)까지 확장될 것이고, 아랍인들은 시리아와 이라크로 이주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다. 우리는 여기서 아랍인들과 함께 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종청소와 전쟁계획에 따라, 이스라엘국가 건설과정에서 시온주의 무장단체는 팔레스타인 마을을 50%(531개 마을) 이상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대량학살하면서 72만 6천 명(약 75%)을 고향에서 축출하였다(당시 영국위임통치 정부의 탄압으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축출된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부재지주의 소유지는 대부분 유대민족기금의 땅으로 처리되었다. 70여 년 전 요셉 와이츠의 인종청소와 전쟁계획은 팔레스타인 원주민 75% 이상을 축출시킨 1948년 전쟁과, 30%(43만 4천 명) 이상을 축출시킨 1967년 전쟁을 거쳐, 가자를 공격하는 2014년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정책의 토대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서 아랍인을 학살하고, 축출하며 인종청소를 통해 건국되었고,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 2006년 하마스-파타 통합정부 해체 기획과 내전 2006년 1월 자치정부 총선에서 하마스는 전체 132석 중 76석을 확보한 최대 정당이었다. 필자가 이 선거에 국제 감시단원으로 참가했는데 이 선거는 매우 공정했다. 2006년 3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하마스 소속 이스마엘 하니야를 총리로 하는 하마스-파타 통합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미국,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하마스를 합법적인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고 테러단체라는 이름을 붙였고, 통합정부에게 다양한 경제적인 제재를 부과하였다. 2006년 6월 하마스-파타 통합정부를 해체시키려는 시도로 이스라엘은 파타 소속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하마스를 약화시키려고 시도하면서 하마스 소속의원들을 체포하고, 가자를 공격하였다. 2007년경에 이스라엘과 국제적인 경제제재로 인해서 하마스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는 정부직원들의 월급도 체불하였다. 결국 2007년 6월 10-15일 파타/하마스 사이에 내전이 발발하였다. 그 결과 하마스가 가자지역을, 파타가 서안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 내전은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를 막으려는 이스라엘의 기획으로부터 나왔고, 결국은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를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을 위협하는 핵심적인 사안으로 간주한다. ■ 2014년 하마스-파타 통합정부와 하마스 ▶ 경제난에 처한 하마스 2011년 아랍 역내의 급격한 정치변동과 함께, 시리아 내전에서 하마스가 시리아 반정부군편에 서면서, 전통적인 후원자이던 시리아, 헤즈볼라, 이란을 모두 잃었다. 게다가 2013년 7월 이집트에서는 압델 파타 알 시시가 군부쿠데타로 무슬림형제단을 축출시키면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과 동맹관계였던 하마스에 대한 탄압정책으로 이집트와 가자를 연결하던 1,300개의 터널을 폐쇄하였다. 당시 이 터널들은 하마스의 주요한 세입의 원천이었다. 현재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협력하여 국경 검문소와 해상을 봉쇄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하마스 정부는 외부 후원금도 거의 잃고, 수출입이 전면 차단된 상태에서 극심한 경제난에 처하게 되었고, 4만 명이 넘는 하마스 정부직원들의 월급도 체불하는 등 가자통치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하마스는 파타와의 통합정부를 구성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 통합정부 조기해체와 하마스 재기 결국 2014년 4월 23일 서안을 통치하는 파타/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민주적인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를 창출하기 위한 일정표를 포함하는 파타-하마스 화해협정을 발표하였다. 이 일정표의 골자는 5주 이내에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6개월 이내에 대통령선거와 의회선거를 동시에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 일정표에 따라, 6월 2일 라미 함달라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임시통합정부가 구성되었고, 12월 초에 대통령선거와 의회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부르면서, 서안을 통치하는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가 하마스와 화해협정을 추구함으로써 평화 노력을 파괴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하마스를 선택하든지 이스라엘을 선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바스를 윽박질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7월 8일부터 이스라엘 가자 공격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기획에 따라, 팔레스타인 통합정부는 조기에 무력화될 것이고, 이전 상태로 복귀하여 카타르-터키의 후원을 받는 하마스는 가자를, 사우디-이집트-요르단의 후원을 받는 파타는 서안을 통치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할 통치정책은 성공할 것이다. 결국 하마스는 이집트를 대체하면서 중재에 나선 카타르(역내 정치변동에서 무슬림형제단 지원)의 경제 원조를 받아 정부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재기에 성공할 것이다. 게다가 이스라엘 또한 이스라엘군 27명이나 살해한 ‘막강한 적, 하마스의 이미지’를 활용하면서,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를 위한 주민학살기획은 되풀이되고, 서안/가자, 파타/하마스 분할 통치 전략은 계속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학살당하고, 탄압받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세계시민사회의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선행되어야할 조치는 가자뿐만 아니라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를 철폐하고, 주민과 물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434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얼마 전 월드컵 경기에서 등장한 켈트 십자가를 계기로 이와 관련된 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 혹은 스킨헤드 문제가 다시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 바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내내 4월 20일 히틀러 생일에는 외국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결석을 허용해 줄 만큼 스킨헤드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외국인들 뿐 아니라 옛 소련 독립 국가 출신 이주자들, 심지어 러시아 연방 내 비러시아계 소수민족들에게도 러시아 스킨헤드로부터의 일상적 위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최근 다소 잠잠해지는 듯했던 러시아 극우파 인종혐오주의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 합병, 그리고 뒤이은 서구와의 대립 속에서 전반적인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고양 국면을 맞아 다시 수면 위로 올라 올 기세이다. 개방화와 자유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1980년대 소련에는 ‘류베릐’, ‘고쁘니끼’, ‘아프간쯰’ 등으로 불리는 여러 비공식 청년 집단들이 존재했다. 개방 풍조를 거부하고 구 질서를 옹호하는 이들은 록 음악 등에 심취한 일부 소련 젊은이들에 대해 타락한 서구 문화를 갈구하는 자들이라면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이러한 집단들은 광적인 축구팬들과 뒤섞이고 독일 등 유럽의 스킨헤드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해 스킨헤드라 칭하게 되었다. 항간에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 스킨헤드는 전형적인 독일식 나치즘을 추종하는 그룹에서부터 극우적 러시아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그룹, 그리고 사회주의로부터 내용을 차용한 듯 한 모습을 보이는 그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철십자’, ‘켈트 십자가’ 등의 문양을 지니고, ‘히틀러 만세’의 구호를 외치는 집단들이 있는가 하면, 고대 슬라브인들의 전통 문양인 ‘콜로브라트’를 들고 ‘루시에게 영광을’이나 ‘러시아인들을 위한 러시아’ 등을 외치는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집단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민머리에 서유럽 스킨헤드의 전형적인 복장인 검은 자켓을 착용하기도 하지만, 러시아식 군복과 군화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단속이 강화되자 머리를 기르고 군화나 점퍼를 착용하지 않는 스킨헤드들이 더 많아졌다. 스킨헤드 조직원들의 연령은 10대에서 30대에 걸쳐 다양한 편이지만, 대부분의 조직원들의 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조직의 이데올로그들의 연령은 높은 편이다. 계급적으로는 체제전환 과정에서 심각한 고통을 겪은 하층계급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의 청소년들도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대도시의 새로운 스킨헤드들은 20-30대의 엘리트로서 서구식 사고와 생활 방식을 하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등 이들의 출신 계급 계층이 변화하고 있다. 스킨헤드들이 "거리에서 사라져라, 너희 동네로 돌아가라" 란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러시아에서 스킨헤드가 탄생한 사회적 배경은 소련 체제 해체 이후 시장 경제로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극심한 경제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체제전환 과정에서의 기업들의 도산과 생산 하락으로 인한 완전 고용제의 파산과 복지 제도의 붕괴는 대량 실업과 빈곤을 야기했고, 범죄와 질병, 마약과 알콜 중독 등 온갖 종류의 사회 문제들을 만연케 했으며, 이는 곧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수준의 하락과 불안정화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극심한 사회 양극화 현상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박탈감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급격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발현하게 되는 토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 불평등에 대한 박탈감과 크게 고조된 증오와 분노의 감정 분출과 해소는 비러시아 소수민족과 외국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의도와 목적에 의해 특정 민족이나 특정 국가를 향한 러시아 사회의 외국인혐오증이 조장되는 경우도 많았다. 푸틴은 체첸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위해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 시기에 러시아의 외국인혐오증이 급증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푸틴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단행함으로써 연방 붕괴를 막음과 동시에 국가 운용의 효율성을 증진하고자 하였고, 소위 ‘대러시아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다수 러시아인을 결집시키며 소수민족을 주변화 하는 정책을 통해 소수민족들을 억압하였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푸틴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제노포비아적인 발언을 지속함으로써 러시아 영토 내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을 좌절시키고, 반서구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러시아를 강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내부 단결의 공고화를 강조했다. 이러한 국가의 의도는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1990년대 말 체첸전쟁이 일어나고 나서부터 러시아의 제노포비아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였고, 서구와 충돌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는 눈에 띄게 러시아 민족주의, 애국주의적 감정의 고양과 이에 따른 비러시아인에 대한 적대의식이 증가하였다. 2002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민의 21%가 스킨헤드는 러시아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고, 경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다음 해 한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 3000 여 명 중 31%가 러시아 스킨헤드는 러시아의 애국자라고 답하기도 했다. 2011년 한 연구기관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민족주의의 주 원인으로 ‘소수민족의 행동’으로 지목한 응답자는 44% 달한 반면, ‘러시아인들의 민족적 선입견’으로 지목한 응답자는 단 5%에 지나지 않았던 결과에서 보듯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감은 일반 러시아인들에게도 만연해 있는 정서이다. 국가 및 사회가 배타적 인종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일 때, 이러한 상황은 스킨헤드 현상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가 약화된 상황에서는 경제 상황의 악화나 국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국가는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데 대중을 기꺼이 동원할 것이다. 언론과 학교, 종교 기관 등이 자신의 본연의 기능이 마비된 채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적극 선전하는 도구로 변질될 경우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정정도의 외국인혐오증과 극우적 민족주의는 반여성주의나 정치적 보수주의와 조우하고 있고, 국가기구 역시 이를 처벌하기는커녕 이용하거나 방조하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사회의 퇴행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비교연구와 이를 통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75 | 추천: 0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이번 주는 국회의 ‘청문회 주간’이라 한다. 월요일부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모두 8명의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진행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가운데 압권은 9일 열리는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이다. 논문표절이나 연구비 횡령과 같이 학자 출신에게 단골로 따라붙는 의혹 이외에도 그에게는 기명칼럼의 대필이나 부실수업과 같은 매우 근본적인 도덕적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여기에서 후보자 개개인들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다시 한 번 재검토 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청문회 때마다 제기되었던 위장전입이나 탈세, 부동산 투기, 군대관련 의혹 등은 이제 국민들에게 식상한 듯도 하고, 사실 각 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의 청문결과는 그 임명과 관련해 법적인 구속력도 없는 것이어서, 부적격 결과에도 불구하고 임명이 강행된다 해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말 수도 있을 것이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하지만, 한탄을 넘어서서 어찌 보면 이제는 포기라도 해야 할 듯한, 위 식상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개인비리를 보면 마치 한국의 성장지상주의의 약사(略史)라도 대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착잡하다. 나라 전체가 개발에 도움만 된다면 경제력 확대에 도움만 된다면 약자를 착취하고 세금을 강탈하여 무슨 일이라도 할 듯 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들이야 오죽했을까. 이들에게 남의 업적을 가로채고 남이 수고한 대가를 횡령하며 돈으로 연줄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 그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래도 되는 것일까? 범죄학에서 말하는 범죄인의 심리기제 중에 ‘중화기술’이라는 것이 있다. 범죄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스스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을 고안한다는 것인데, 이 가운데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한 연구에 따르면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공직자의 80% 이상이 자신은 억울하게 처벌되었다고 믿으며, 그 까닭은 자신이 속한 공직부서가 전체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이 사실이라면 물론 더 큰 문제이겠지만,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믿음은 그 사회의 도덕적 기반, 법치주의의 기반이 무너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법을 지키라, 도덕적으로 살아라하고 말할 수 있을까? 갑작스레 인과 예가 지배하는 조선사회나 칼뱅의 청교도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대충 얼버무린 수단을 검증되지도 않은 목적이 정당화하는 시대는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할 수 없이 우리 사회는 저성장에 청년실업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제는 전 사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각 부문의 내실을 다져야만 한다. 학자는 연구를 해야 하고 기업은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정보기관은 정치세력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나라의 경쟁력도 생길 것이다. 이른바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에 근접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시 청문회로 돌아가보자. 이 시대에 필요한 고위공직자의 상은 어떤 모습일까.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국민과 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 이러한 답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대통령도 말했다지만, ‘너무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할 사람’은 쉬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부터는 어떤 구실로든 부정의한 수단으로,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수고를 가로채 자신의 출세와 치부에 이용한 사람들은 인사 대상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변화된 시대의 요구에 합치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의로운 것이다. 이들은 그 동안 너무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06 | 추천: 0
정지영/ 서울DPI 회장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5월 3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증진, 보호 및 보장하고, 장애인의 천부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에서 시작하고 대한민국 헌법에도 보장되어있는 국민으로서의 인권과 존엄이 장애인을 명시한 국제조약으로서 재확인 된 것입니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보장되는 장애인의 권리들은 새로운 것들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장애인도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권리는 왜 다시 확인 받아야할까요? 장애인도 인권의 기본인 보편성에 따르면 국가가 권리를 보호해야할 ‘모든 국민’에 이미 속해 있지 않나요? 장애인이 가진 어려움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보다는 휠체어를 사용해야하는 것에 대하여, 점자를 사용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자유로움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빵과 장미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장애인의 권리영역에는 이렇게 자유권과 사회권이 공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권리협약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자유권적인 영역 외에 사회권영역에 속하는 것들이 담겨있고, 사회권적인 측면은 즉각적 이행보다 점진적 이행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만,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하는 것, 장애인의 천부적 존엄성 증진을 위한 점진적 이행이라는 것은 권리가 유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권리협약에 이동권, 자립생활권, 법 앞의 동등한 권한, 고유한 권리 같은, 장애인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자립생활권입니다. 제19조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의 동참(Living independently and being included in the community)이라는 조항은 처음에는 자기결정권을 핵심가치로 하는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의 권리’였습니다. 자립생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재정 지원’에 대한 부담과 ‘자립생활’을 또 하나의 서비스로 보는 국가들의 반대로 ‘자립적으로 생활함’으로 후퇴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활동보조(personal assistance)’입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 낯선 단어 활동보조. 활동보조는 1968년 미국의 버클리대학에 에드로버츠라는 중증의 장애학생이 입학하면서 생겨났습니다.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요. 전신마비로 호흡기까지 하고 있는 에드로버츠는 교내의 코웰병원에 기숙하면서 학교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입원환자로서 독립심이 강했던 에드로버츠는 코웰병원의 입원환자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학교생활을 거부하고 동료장애인들과 함께 신체장애학생지원프로그램을 70년도에 만들어내게 됩니다. 에드로버츠는 ‘자립’의 정의를 신체적·경제적 독립으로 규정했을 때 이미 자립은 불가능한 사람들, 즉 장애인은 애초에 자립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립’을 ‘스스로 자신의 생활법을 결정하는 것’으로 정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것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자립’한 것이 됩니다. 에드로버츠는 72년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러한 사회적 지원이 계속되게 하기 위하여 72년에 미국 버클리에 최초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게 됩니다. <15살에 소아마비에 걸린 에드로버츠 (Edward V. Roberts) 1935~1995)는 장애는 사회와 환경에 의하여 구성되고 디자인된다고 말했습니다.> 활동보조라는 것이 한국에 소개 된 것은 한국의 장애운동가들이 미국과 일본을 통해 배워온 자립생활 이념을 한국에서 실천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의 자립생활’ 조항이 삽입되고 2008년부터 활동보조서비스가(현재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최중증장애인에게 한 달에 80시간의 활동보조인이 지원되었습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한 달이면 약 720시간이 됩니다. 한 달에 80시간이라는 시간은 하루 평균 2.6시간. 당시 속된말로 세끼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오기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최증증장애인에게는 보건복지부에서 한 달에 약 100시간을 줍니다. 서울의 경우에는 100시간에 100시간을 추가로 주게 되며 다양한 특례지원(독거인가, 고령자와 함께 살고 있는가, 직업을 가졌는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가 등의 추가조건)에 따라 최대 600시간 정도(각 구청지원까지 포함)를 지원받습니다. 물론 이렇게 받는 사람은 많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더 많이 좋아진 게 사실입니다. 불과 7년 만에 몇 배 증가 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전국에 이러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중증장애인은 약 6만 명입니다. 그 중 4만 8천여 명만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제도를 1만 2천여 명이 포기 하고 사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가장 큰 이유는 중증장애인이 필요한 시간을 자신이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기위해서는 인정조사를 통해 점수를 받아야하고 그 점수 기준에 따라 시간이 배정되는데 현재는 장애 1,2급까지만 그 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장애등급제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결국은 내가 필요한 시간보다 덜 받거나, 더 받게 될 수밖에 없어 스스로 이용을 포기하는 장애인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가 다는 아닙니다만. 2012년 화재사고로 사망한 故 김주영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김주영씨는 월 360시간 즉 하루 12시간 정도의 활동보조시간을 지원받았습니다. 12시간은 출근준비와 잠자기 정리시간까지를 쓰고 12시간은 혼자서 지내야했습니다. 자는 동안은 별 일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 별일이 혼자서 잠자리에 든 시간에 일어나 10분 만에 도착한 소방차도 그녀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호흡기를 24시간 사용하던 故 오지석군도 월 218시간의 활동보조시간을 지원받았습니다. 독거가 되면 김주영씨처럼 좀 더 많은 시간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했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한 달의 나머지 502시간은 어머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활동보조인과 어머니와의 짧은 교대시간에 오지석군의 호흡기는 문제를 일으켰고 오지석군의 손가락과 마우스로, 마우스와 연결된 컴퓨터로 즉각 긴급 호출이 있었으나 결국 호흡정지가 와서 40여일의 중환자실 사투 끝에 6월 1일 사망하였습니다. 국가는 말합니다. 잠잘 때는 활동보조인이 필요 없지 않느냐.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는 별일 아닌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삶을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국가는 말합니다. 아직 활동보조 서비스를 모든 장애인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더 어려운 장애인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한 달에 50시간이던 100시간이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나 한 달에 50시간 100시간 필요한 사람의 절박함이 단 1분도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절박함보다 우선일까요. 또 국가는 말합니다. 현재 활동보조인의 시급이 8,555원(각종 수수료와 사회보험료를 제외하면 6,200원 정도임)으로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활동보조인의 처우를 먼저 개선해야 지금처럼 활동보조인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저런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포기한 1만 2천여 명으로 인해 2011년 활동보조예산의 1,300억 원이 불용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930여억 원이 불용되었고요. 1,300억 원이 남았을 때 정부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장애2급까지 받을 수 있게 확대했습니다. 900여억 원이 남은 지금은 3급까지 확대한다고 합니다. 김주영씨의 죽음으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요구가 거세지고, 또 올해 오지석군의 죽음으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보장의 요구가 거세지자, 국가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의 형평성 문제,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부정수급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건강보험 기록과 최근 몇 년간의 제공기록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몇 백 시간이라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은 이나마 서비스가 줄어들까 또 다시 24시간 보장 요구에 움츠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24시간의 활동보조 지원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요구하지 못한 장애인동료들의 미안함이 더 컸었던 故 오지석군의 장례식. 사진 출처 - 에이블뉴스 국가는 매년 예산액보다 돈은 남는데, 24시간 지원은 그 선례를 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장애인을 서비스의 수혜자이자 한 번 주면 끝없이 바라는 사회의 기생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2012년 서울DPI에서는 2명의 중증장애인에게 한 달 동안 하루 24시간의 활동보조인을 지원해 준적이 있었습니다. 그 한 달이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할 수 밖에 없는 미안함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처럼 사회활동이 늘었거나, 생산성이 생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혼자 잘 때는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었는데, 밤에도 목이마를 때는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그 중 한명이었던 오지석군은 말했습니다. 자다가 호흡기가 빠지는 두려움 때문에 푹 잘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깰 때까지 푹 잘 수 있었다고. 활동보조서비스가 그냥 서비스가 아니라 어떤 장애인에게는 인간답게 살 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902 | 추천: 0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요즘은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들의 가슴이 미어지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세월호로 생떼같은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과 군대총기사건으로 자녀들을 잃고만 부모들을 보면서, 그들의 한숨과 절망과 분노에 공감하면서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지 화가 난다. 이런 화와 분노가 국가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져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버리겠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소고기 FTA로 촛불이 한참이던 시기, ‘5년을 어떻게 기다리나?’ 고 했지만 그 5년은 10년으로 늘었고 얼마가 더 늘어날 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동안 근대의 산물이라던 ‘합리’와 ‘이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확인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일상까지 침투한 ‘권력’뿐이다.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어야 하는 예술가, 세월호 구조작업의 현실에 대해 말했다는 이유로 입을 봉쇄당한 잠수부. 한국인이 부지런하지 않다는 근거도 역사도 없는 주장을 해대는 무개념 인사의 뻔뻔함.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 때문이다. 국가는 유일하게 폭력을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사용가능한 조직이다. 그러나 그 폭력은 국가존재의 토대가 되는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 평화에 대한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지금 폭력은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 평화를 앗아가는 쪽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사소한 일상까지 침투한 권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자기감시와 검열을 자행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라면 당연히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돈보다 생명이, 국가기밀과 국가안전보다 국민의 생명이 먼저 보장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회의하도록 한다. 대다수 서민들에게 국가는 없다. 다만 국가로부터 소비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누군가의 국가를 위해. 그 누군가란 기독교의 현세금욕적 부지런함을, 자본주의의와 결합해 인간을 재화축적의 노예로 만드는 것을 합리화라 믿는 역사적, 사회적 맹인으로서의 누군가와 같은 부류들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회에 참가한 한 시민 손피켓을 든 채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난 요즘 부지런과는 먼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머릿속 어딘가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압박감이 있다. 항상 노동과 자기계발과 성장이란 강박에 갇힌 삶을 살다가 놓아버린 그 강박적 삶이 습관처럼 들러붙어 버린 것이다.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노동은 사실 ‘돈’이기도 하다. 자기계발과 성장은 말이 그럴듯할 뿐, 실제로는 좀 더 자본주의에 맞는 인간, 멀티플한 인간이 되기 위한 투자일 뿐이다. 이렇게 우린 노동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계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항상 쫓기듯이 살아간다. 그것이 열심히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다. 그렇게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언젠가는 나아질 미래를 꿈꾼다. 꿈과 희망은 국가와 사회가 정의롭다고 믿는 한 만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국가가 정의롭지 못한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배신감과 절망감에 스스로 이 공동체를 버리려는 사람들이, 그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있다. 너무 절망한 나머지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보다 돈, 권력이 우선되는 사회에서 이런 배신감은 예고된 것이었다. 돈과 권력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몇몇을 위한 소모품이 되는 사회. 부지런함과 근면성을 강조하며 대다수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어 소수의 손에 쥐어주는 사회. 현실의 고통을 이성애적 사랑이라는 환상으로 도피하도록 하는 그리하여 온통 성애만이 넘쳐나는 사회에선 인간마저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지친다. 헐떡이며 살아가는 것에 지치고, 부정의가 정의로 둔갑되는 현실에 지치고, 한줌 혀로 사람들을 농락하는 부류들에 지치고, 그 농락에 놀아나는 군상들에 지친다. 주체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 역시 하나의 부품이었다. 주체로, 주인으로 살기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느린 생활방식이 아닐까 한다. 느린 시간 속에서야 타인이 보이고, 그들의 아픔이 보이고, 그들의 애절한 삶들이 보인다. 그리고 공감할 수 있다. 느린 시간이어야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의 대안을 고민할 수 있다. 느린 시간일 때 분노를 연민과 동정과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느리게 사는 연습을 해볼 참이다. 더 많이. 그래서 이 아픈 시대, 사회, 국가에서 일어나는 아픔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사랑하고자 한다. 아픔들이 서로 사랑해야 아픔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 아픔들이 가진 힘이다. “더 이상 아픔이 없기를...그리고 아픔들이 연대하기를...”
2017-08-07 | hrights | 조회: 288 | 추천: 0
박현도/ 종교학자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기상천외한 구호를 내걸고 일인시위를 벌이며 표를 구걸한 여당과 세월호만 믿고 복지부동한 존재 없는 야당을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해 준 선거가 끝났다.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했지만, 찜찜하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 투표라지만, 내 세금 먹고 사는 여야의 저 가증스러운 얼굴을 보자니 울화가 치민다. 야당 단일화 운운하며 사퇴한 후 선거보조금만 챙겨간 모 야당은 분노를 더 돋운다. 어쩜 이리도 계산이 빠르단 말인가. 말로만 외치는 인권, 민주, 진보라는 구호에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수백 명이나 죽었는데도 민심을 돌본다는 정치꾼들이 한 일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세금을 먹고 살 그런 정치꾼을 또 뽑는다. 다음 선거 때까지 이들은 이제 우리 상전이 되어 제멋대로 놀 것이다. 그래서 짜증난다. 여당은 대통령 뒤에 숨고, 야당은 계파 이익 수호에 정신이 없다. 여야 공히 표가 필요할 때만 민심 운운한다. 그나마 우리에게 고개 숙이는 때가 선거뿐이니 선거가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라도 판을 갈아엎을 수는 없을까? 제대로 된 보수와 제대로 된 진보가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는 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안보장사, 인권장사, 민주장사 하는 얼치기 보수와 진보들. 보수라고 진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1993년 캐나다 총선에서 156석의 집권여당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이 단 2석만을 얻었다. 세계 선거 역사상 실로 유례가 없는 대참패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만에 당 간판을 내리고 다른 당과 합쳐 재창당하여 13년만인 2006년에야 비로소 집권당으로 간신히 다시 살아났다. 우리나라도 여든 야든 지려면 이정도로 져야 정신을 차리는데, 어휴, 그럴 날이 오긴 올까나. 지금처럼 지연, 혈연, 학연에 얽혀 투표를 하는 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체념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여야 모두 ‘억’ 소리 나도록 선거로 민심 쿠데타를 벌일 날을 꿈꿔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앞줄 맨 왼쪽)이 1952년 7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해 반공 포로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세월호가 앗아간 우리 아이들, 그리고 안타까운 희생자들. 입술이 닳도록 읊어대던 우리의 국격은 세월호로 민낯을 드러냈고, 그 민낯을 더욱 민망하게 만드는 사람들 대열 맨 앞에는 어디 내놓기에 “쪽팔린” 우리나라 정치가 있다.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선장과 우리 위정자들이 다른 점은 없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백성 몰래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고, 6.25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안심하라고 거짓 방송을 하며 만류하던 미군을 뿌리치고 서울을 버렸다. ‘나만 살자 36계 줄행랑 DNA’가 ‘지도자’급 한국인의 피에 흐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는 우리 일반 평민들이 ‘지도자’를 버릴 때다. 특히 ‘정치’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인물들을 말이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이, 6.25때는 의용군들이 나라를 지켰다. 지금 세월호 참사라는 전시를 맞아서는 우리 시민들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주둥이만 나불대는 정치인들을 버리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불쌍하게 생을 마친 우리 아이들,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정신 차리고 지켜야 한다. 입만 열면 민심이니, 민주니, 인권이니, 국격이니 하면서 목소리만 높이는 여야 정치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신 바짝 차리고 감시할 일이다. 그래야 세월호의 슬픈 주검들의 한을 풀 수 있지 않겠는가! 신뢰와 도의를 잃은 지 오래된 우리 정치에 저항의 출사표를 던져야 할 때다. 말을 너무 잘 들어 죽어야만 했던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약아빠진 세금 먹는 하마들에게 저항을 선언할 때다. 우리가 승리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세월호 탈상을 하는 거다. 잊지 말자. 월드컵이 다가 오니 더욱 정신 차리고 잊지 말자. 브라주카(브라질 월드컵 공인구)에 정신 팔린 우매한 시민은 되지 말자. 우리는 아직 세월호의 상주니 말이다. 진심을 담아 세월호 우리 아이들, 그리고 무고한 우리 시민들의 명복을 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282 | 추천: 0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뜬금없는 문자를 받았다. 그 문자는 이 회사와 직원들을 깔보지 말라는 것과 그러면 너도 똑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왜 이런 문자를 받게 된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밝히지도 않고 다짜고짜 협박하고 비아냥거리는 문자를 보내는 게 조직 문화인지 그 사람의 특징인지 따지고 싶진 않다. 다만 무엇이 그런 거칠고 예의 없는 방식으로 자기표현을 하게 한 것인지 궁금하다. 익명의 문자를 받고 난 후 나는 평소보다 좀 더 남의 눈치를 보았고 언행에 자기검열을 강화했다. 이제껏 회사에 경력자로 여러 번 입사해본 경험이 있지만 동료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회사에 대해 발언한 적이 꽤 있었기 때문에 보통은 사장이나 임원진과 껄끄러웠던 적은 있지만 동료들과 그런 일은 없었다. 위 경우를 겪고 보니, 내가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의사를 밝혀온 것들이 어쩌면 그렇지 못한 조직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할 말 다하고 사는 것처럼 비쳐지는 내게도 실은 마음 불편한 경우가 꽤 있다. 나는 핸드폰 발신번호가 1588이나 1599이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텔레마케팅 전화임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통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늘 조금씩 불편했다. 최대한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길게 응대했다가 십여 분을 넘기게 되면 애초에 끊지 못한 본인에게도 화가 나고, 계속 거절하는 나를 향해 일방적으로 말을 하는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도 화가 난다. 또 식당이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거나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대체로 외면하는 편인데, 꼭 마음에 뒤끝이 남는다. 지하철에서 서명을 받고 후원을 요청하는 단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때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건 구세군 냄비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마음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마음들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개념 있고 동정심도 있고 사회의식도 있고 사회적인 매너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무)의식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 불편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직장이나 친구 사이에서 있을 수도 있고, 시댁과의 관계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혹시 그런 상황에서 내 마음 불편함을 감추려고 성급하게 타인에게 화를 내거나 비아냥거리지는 않는지,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이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그 반대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거나 부당한 경우에 항변하지 못해 마음 불편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세심하게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사회적 페르소나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을 찾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근래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었는데, 주인공들의 독백이 단순하지만 울림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 짧은 독백 속에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음직한, 하지만 남에게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못한, 자신이 느낀 마음 불편함의 이유들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짚어보는 성찰이 담겨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그날의 사소한 일이나 마음 쓰임에 대해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배려’가 아닐까. 사진 출처 - 예스24 다시 회사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어느 조직이든 누군가 입바른 소리를 하면 구성원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말한 사람이 그 조직의 뉴 페이스라면 ‘누군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느냐, 뭘 얼마나 안다고 그러느냐’ 하는 핀잔 혹은 뒷소리를 듣게 된다. 잘 알든 모르든 조직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인데 왜 자신을 공격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 속마음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나도 잘못된 줄은 알지만 조직의 논리에 맞춰 사느라 마음 불편한데 왜 그걸 후비고 드나, 라는. 이제껏 고쳐야 하는 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동의해온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마음 불편함을 타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상쇄하려는 것은 아닐까. 조직의 구성원이 자기 의견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사장이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본이 권력인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가 내는 목소리는 그 사람의 지위와 경제력과 신변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밥줄이 걸린 것이다. 그 위험을 겪을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는 자가 있다면, 발언 내용에 동의 여부를 떠나 감히 조직이 권력의 이름으로 발언자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조직의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노조가 있든 없든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그런 목소리가 자유롭고 풍부하게 발현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개개인의 ‘마음 불편함’ 정도는 과감하게 떨쳐 버릴 순 없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관성의 법칙처럼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고 그 패턴을 지키려 한다고 했을 때, 새로운 변화에 대한 거부반응은 인간이 가진 보수적인 본능일지도 모른다. 행동하지 않는다고, 침묵한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데다 실제로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용기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눈을 갖고 있다면, 타인을 통해 새롭게 뭔가를 깨닫거나 배울 수도 있고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존감을 갖는다’의 다른 표현이다. 자존감과 자기 배려가 있다면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마음 불편함'이 아니라 찬찬히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09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그들만의 배타적인 명칭으로 불리는 ‘구원파’를 일으켰다는 유병언 씨와 그의 장남 유대균을 비롯한 일족들이 한국사회 전체로부터 쫓기고 있다. 유병언에 대한 현상금이 5천만 원에서 5억 원으로, 유대균에 대한 현상금이 3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올랐다. 그런가 하면, 최종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한 대통령 박근혜 씨를 지목해 시위대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종이팻말을 손에 든 채 까치발로 조금이라도 더 공중으로 높이 들고자 애를 쓰고 있다. 이 두 장면이 필자의 상상 속에서 교차 환위되면서 잠시 혼란이 인다. 마치 구원파 신도들 사이에서 “유병언 퇴진”이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것 같고, 흡사 대한민국 국민들이 박근혜와 그 일파들에게 현상금을 붙여 체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착시인가, 현실인가? 착시와 현실이 교차 환위를 일삼게 되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를 진단할 수 없게 되고, 범죄적인 사건이 났을 때 유죄와 무죄가 뒤범벅이 되어 가늠을 할 수 없게 된다. 체포되어야 할 사람이 체포되어 마땅한 사람을 뒤쫓고, 그렇게 해서 쫓기는 사람이 쫓는 사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 쫓기는 사람으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쫓기는 사람이 쫓는 사람을 더욱 더 강력하게 쫓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른바 구원파 신도들은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교주’로 알려진 유병언을 쫓기는 자에서 쫓는 자로 만들어 검찰을 최종 지휘하는 대통령 박근혜 씨를 쫓기는 자로 만들고자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 씨가 쫓기는 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녀 나름으로는 쓰디 쓴 울분에 아마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으리라, 예전과 다르게 부풀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서 짐작하게 된다. 작년에 국가정보원에 의한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해서 곳곳에서 대통령직을 내놓고 물러나라는 국민들의 아우성에 한없이 쫓기고 쫓기는 신세였는데, “나로서는 선거에서 덕 본 게 없다.”라는 핑계로 일관하면서 이제 겨우 그 현상 수배의 그물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300명 이상의 꽃다운 생명이 애처롭게, 너무나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건이 터져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이제는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수족들로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여긴 모든 부서들이 결정적인 시간에 다 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부실하기 짝이 없이 절름거리면서 허위와 오류와 무책임을 남발하고 그녀 자신을 쫓기는 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몸이 무거우면 쫓기면서 달아나는 데 얼마나 불리할 것인가. 그래서 수족들을 잘라낸다. 한결 몸이 가벼워지면서 달아나는 데 유리한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40일째인 지난 25일 전남 진도군청에서 열린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정례브리핑 도중 브리핑룸에 비치된 텔레비전에서 검찰의 수사를 피해 도피중인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수배전단이 방영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쫓기는 자의 신세가 얼마나 무참한가에 대해서는 현재 현상금 5억 원이 걸린 유병언 씨가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유병언 씨 역시 그 나름으로는 쓰디 쓴 울분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하고 나 하고 무슨 직접적인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고서 속으로는 자신을 뒤쫓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 씨를 한없이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대통령 박근혜 씨와 그의 부친인 박정희 씨의 경제성장 으로 환원되는 애국적인 정신을 곧이곧대로 실현했다고 자임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제 스스로 국가의 일등 공신이라고 여기고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각종 아이디어 상표들을 안출하여 자본주의적인 상품 판매에서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입증했고, 사진 작품 1점 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한국 사진 예술의 격을 한껏 높였고, 창조적 기업인이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영원히 사장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서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성공적인 실례를 그 누구보다도 보란 듯이 보여주었고, 경제 민주화라는 허울을 과감히 내던지고 어떻게든 경제 성장을 이루어 대내외적인 국력을 신장시켜야 한다는 ‘애국적’ 신념으로 일관했고, 10만 명에 육박하는 신도들로부터 한없는 존경을 받으면서 경제와 종교를 하나로 묶어내는 위업을 이루었고, “원수이자 암 덩어리인 규제”를 혁파한 그 열매를 가장 멋지게 거두어들인 실업가로 올라섰고 기타 등등. 이렇듯 쫓기는 자의 핑계와 항변은 끝이 없다. 그 핑계와 항변이 쫓는 자의 심정과 판박이처럼 똑같다는 점에서 모두에게서 냉소를 자아내는 대대적인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자신의 애꿎은 가슴을 두드리고 참사 현장에서 “진정한 영웅들”을 거명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 대대적인 비극의 연출에서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해서 잠시나마 쉬어가도록 하는 에피소드 양념에 불과하다. 쫓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쫓기는 자가 쫓기다가 멈칫 뒤돌아서서 기염을 토한다. 국가 전체가 자신을 뒤쫓고 있으니, 더 이상 자신을 뒤쫓지 못하도록 국가 전체를, 그 주권과 영토와 국민을 개조해버리겠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제아무리 쫓으려고 해도, 제아무리 체포하려고 해도, 제아무리 감옥에 집어넣으려 해도 집어넣을 수 없는 국가를 쫓아가 체포하고 감금시켜버리겠다는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착시와 현실의 교차 환위가 다시 일어난다. 국가의 정권을 맡은 대표 통치자가 국가를 쫓기 시작하자 당연히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에 대대적인 혼동이 일어난다. 자신의 꼬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한없이 맴을 도는 고양이처럼, 그래서 비록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면서 큰 상처를 입는다 할지라도 꼬리를 잘라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참 그 맴을 바라보면서 휘둥그레 초점을 잡지 못하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구경꾼이 되고 만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에 붙은 불이 자신의 몸에 옮아 붙을까봐, “어느 누구도 참사로부터 책임을 면할 수 없다.”라는 누군가의 물타기 전법의 외침에 놀란 나머지 노심초사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대통령이 꼬리를 자르자 자신이 쫓기는 일은 없겠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만 아니라, 환호의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이래저래 쫓고 쫓기는 연쇄 과정이 순환되는 그 원환에 끌려들고 말면 틀림없이 역사는 실천적으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되돌이표 합창을 할 가능성이 크다. 쫓기는 줄 몰랐는데 막상 쫓기고 보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쫓기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미 쫓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 역시 이미 쫓기고 있었다. 그렇게 쫓기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생명을 주고서라도 결코 놓칠 수 없는 금쪽같은 자식들을 세월호에 태웠던 것이다. 당하고 보니 아무 잘못도 없이 한껏 쫓기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니, 쫓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 원죄인 양 망연자실 통곡한다. 어떻게 쫓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을 쫓기 시작했다. 쫓기게 된 대통령은 자신이 왜 쫓기는가를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쫓기고 있으니 무조건 쫓길 수밖에 없었으나, 잠시 생각해 보니 자신 역시 누군가를 쫓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고, 국가를 쫓아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해경을 쫓아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해운협회를 쫓아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급기야 정확한 사냥감인 유병언과 그 일족을 쫓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작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유병언의 무엇을 쫓아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자칫 엉뚱하게 유병언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쫓다가는 도리어 자신의 욕망을 쫓는 꼴이 되어 겨우 진화했다고 여겨지는 꼬리에 붙은 불을 스스로 재점화 하여 심지어 폭발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쯤 생각을 하고 보니, 불세출의 천재 시인 이상의 오감도 시 제1호가 떠오른다. 오감도 시 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人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쫓기는 자들만 있을 뿐, 쫓는 자는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쫓는 자도 무엇인가에 의해 또는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있기에, 그래서 무조건 쫓지 않으면 안 되는가 보다 싶어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쫓다 보니 어느덧 쫓는 자가 되고 말았다면 어떻게 되는가? 한참 열심히 쫓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자신을 쫓는 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틀림없이 닥치고 말 그 다행스런 낭패감은 자신이 쫓기고 있음에 틀림없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우리 모두를 뒤쫓고 있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유령의 정체를 정확하게 캐내어, 그 유령이 그야말로 유령에 불과하다는 것을, 따라서 그 유령이 발휘하는 권력이 본질상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보니 전혀 쫓고 쫓길 까닭이 없다는 것을, 쫓고 쫓기는 통에 단 한 번 주어진 생명의 시간들을 우왕좌왕 얼마나 방향을 잃고서 낭비하고 있었는가를 우리의 무의식의 심층에 이르기까지 만천하에 폭로하여 뒤집어야 한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34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