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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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영전/ (사)평화연대 이사장  멀리보이는 서석산 자락으로 이어진 분적 산봉우리 아래, 효골이란 마을이 있다. 선대로부터 오백 년이나 자자일촌하며 살아온 6형제 중 셋째 할아버지 둘째 아들로, 아호(雅號)가 동강(東崗)이신 아버지의 참적(慘迹)의 삶을 돌아본다. 치욕적인 을사 늑약의 해에 나시고 분단조국 46년 동안에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조국의 통일도 못 보시고 82세에 사세((辭世)하셨다.    어버이날, 일 년 사이 몰라보게 자란 증손자손녀가 앙증맞은 손으로 만든 빨간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준다. 그리고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어버이 은혜』 노래까지 불러 흐뭇하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 지셨다. 아마 지난날 험한 세상을 살아오셨던 세월이 생각나시었을 터다.  이렇게 자식과 손자녀들에게 효도를 받고 있으려니, 한 세대를 넘게 모셨던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허전해 지면서 과거의 일들이 눈앞에 아롱거린다. 나를 세상에 나게 하시어 자식을 얻고 손자까지 두어 대를 이어가고 있으니, 부모님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게 당연지사다.  부모님을 모시는 동안, 아버지는 깊은 밤이면 여러 얘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팔순을 넘기실 때 나는 넌지시 “기록을 남기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 나이에 무슨 글이냐”고 하시면서도 노심초사 기억을 더듬어 몇 개월 만에 원고지 5장 분량의 글을 달필로 써놓으셨다. 여러 차례 당신의 기지(機智)로 사선을 넘나들던 사연과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일들도 적혀 있었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내가 ‘아버지께 못할 일을 해 드렸구나’ 하는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버지는 열아홉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숙모님의 양자가 되었다. 그러고는 성년이 되어 딸 많은 홍 씨 가문의 맏딸에게 장가를 드셨다. 아들을 많이 낳으시어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집안과 주위로부터 부러움도 샀다. 맏아들이 똑똑해 군청과 면사무소 호적 서기로 근무하여 장차 면장과 군수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부모님 사진 사진 출처 - 필자  그런데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봄 어느 날, 친구인 김 면장이 집을 찾아왔다.  “자네 아들이 근간에 자리 비우고 서에서 요주의 인물이라는 통보까지 받아 걱정돼 찾아왔네.”  아버지는 요즘 똑똑한 젊은이들이 좌편에 서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당신 아들이 그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청천벽력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 후 맏형은 피해 다니다 결국 붙들렸다. 좌익 활동에 관여한 조직을 불라고 한 달 남짓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재판도 없이 스물두 살의 나이로 진외가 앞산에서 총탄에 숨지고 말았다. 우리 집은 형의 죽음으로 몇 년 동안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칠월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섰다.  “이 댁이 영철 동지의 집입니까? 아드님의 투철한 조국애를 높이 평가합니다. 오늘부터 아버지께서는 효지면의 위원장이 되십니다.”  “아니 당신들은 누군데 내 아들을 알고 나더러 위원장이 되라는 거요? 나는 무식한 농부일 뿐이오. 유식한 사람을 찾아 시키시오. 나는 못합니다.”  “못 하신다고요? 그러면 반동입니다. 그냥 맡으시면 됩니다.”  아버지는 ‘반동’이라는 위협적인 언사에 그만 말문을 닫고 말았다. 1년 전에는 아들을 잃었는데 이번에는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은 아버지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고 심란하게 했다. 좌우익으로 갈린 친척과 면민들의 갈등은 어쩌면 희생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법이 없이도 살아갈 아버지는 선의의 관리자로 중립을 지키며 희생을 막았다.  국군의 9․28수복으로 인민군은 물러갔다. 아버지는 무등산으로 일단 피신해 가는데 삼거리가 나왔다. 과연 어느 길을 가야 하나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산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빨치산이 될 것이고 시내로 나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지만 부역자가 된다. 아버지는 노모와 처자식을 생각하여 시내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군경 합동으로 벌이는 토벌대의 검문을 어찌 통과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궁리 끝에 초가집에 걸려 있는 호미와 약초 망태를 둘러멨다.  한참을 가자 완전무장한 토벌대가 아버지를 향해 총을 들이댔다. “누구냐? 멈추어라.” “나는 노모가 위독해 약초 캐러 갔다 오는 길이오.”  그들은 의심을 하면서도 효자라면서, 위험하니 빨리 가라고 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증명서를 하나 해주시오.” 아버지는 간청을 통해 얻은 확인서로 세 번씩이나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아버지는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부역자는 신고하라’는 공고를 보고 ‘살기 위해 부역을 했노라’고 자진신고를 했다.  추수를 끝내고 의용군에서 자수한 19살의 둘째아들을 국군에 입대시킨 후 1․4후퇴가 있던 날 밤이었다.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마을의 적막을 깼다. 이윽고 누군가 담을 넘어 안방 문을 와락 열었다. “석천이가 개새끼들에게 자수를 해? 우리를 배반했어!” 하며 집안 곳곳을 뒤졌다. 아버지는 마침 진외가에 출타 중이었다. 한참 후 뒷산에서 난 수발의 총성에 부역자 수명이 쓰러졌다.  어느 날 아버지와 내가 울타리를 엮고 있을 때였다. 남루한 차림의 두 사람이 집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피할 사이가 없이 그들은 다가왔다. 이제 틀림없이 붙들릴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아버지 앞에 선 그들이 불쑥 말을 던졌다.  “말 좀 물읍시다. 이 마을에 윤석천이란 사람이 어느 집에 사나요?”  “나는 다른 마을에서 일하러 와서 모릅니다. 저 안쪽에 가서 물어 보시오.”  아버지의 위기의 순간을 지켜보던 나는 어찌 이 순간을 모면할까 마음이 몹시 탔었는데,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하시고는 곧바로 자리를 피하셨다. 나도 바로 육모정자로 가서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 날도 두 명이 붙들렸는데 뒷산에서 총살을 당했다.  전쟁이 휴전에 임박했을 때였다. 꽃샘추위로 함박눈이 내리던 날 밤, 집안의 귀염둥이 막내가 고열이 심해 단방약을 썼지만 열이 내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주에서 한의원을 하는 친구에게 약을 지으러 갔다. 식구들이 애타게 기다렸어도 아버지는 폭설 때문에 그날 밤 돌아오지 못했다.  한밤중에 막내가 몹시 보채며 울고 있을 때, 사복차림의 두 사람이 들이닥쳐 이불을 걷어차며 아버지를 찾았다. 할머니가 “아들은 없소. 손녀딸이 아파 약을 지으러 갔소. 제발 돌아가시오.”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벽장까지 뒤졌다. 나는 이불 속에서 막내를 껴안고 떨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에 깨어나서 보니 아이의 몸이 싸늘했다. 숙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고 했으나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동생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한약을 지어가지고 돌아오셨다. 그러나 당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막내가 죽었다며 자책을 하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막내가 아비를 살렸다. 이 험한 세상에서 차라리 잘 갔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그 말씀이 야속하게만 들렸다. “오빠, 오빠!” 하던 귀여운 다섯 살 배기 동생이 아니었던가.  숨진 막내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옹기 항아리 관에 묻었다. 그 자리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꽂았다. 하늘나라에서 큰오빠도 만나고 부디 평안히 잠들라며 빌었다. 4년 전 맏형을 죽관(竹棺)으로 진외가 앞산에 묻었던 기억까지 되살아나 한없이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휴전 협정으로 이제는 부역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효골 들판에서 일을 끝내고 집에 오셨는데 서 정보과에서 “잠시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며 연행해 갔다.  이제 모두가 끝난 줄만 알았는데 또 무슨 일인가. 일주일이 지나고 3주가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풀려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조사를 받고 있는지 어머니는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마침 맏형이 하숙할 때 이웃의 정미소 집 아들이 서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머니는 그를 찾아가 아버지의 그간 사정을 알렸는데 다음날 상세한 내용을 전해왔다.  인공 기간에 피해를 당한 사람이 고발을 했는데 ‘자신이 아니고 아버지가 지시했다고’ 해서 조사 받고 고문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온갖 고문을 버티다가 견디기 어려워 그들의 요구대로 거짓 자백을 해버릴까 했으나 결국 아무 잘못이 없음이 밝혀져 누명을 벗고 풀려났다. 고문 후유증에 심지어는 똥물까지 마시면서 차츰 기력을 회복하셨다.  험한 세상에서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했지만 처남과 아랫동서와 사촌형제들, 그리고 조카들도 전쟁 와중에 죽어갔다. 그러나 단순히 부역자라고 해서 죽어간 사람들도 분단과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이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고 이제는 해원(解寃)하자고 아버지는 적어 놓으셨다.  아버지의 비망록에는 사선을 넘는 부분이 소설보다 더 리얼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러 번 위험한 고비에서 기지를 발휘해 번번이 위기를 넘기셨다. 이순에 이르러서는 한 많은 지난 세월을 시조창으로 여일하시며 세월을 보내셨다. 구월에 나시어 시월 스무날, 여든두 살에 사세(辭世)하셨다.  나는 당신의 혼이 담겨 있는 기록을 대하면서 오래 전에 고향 선산에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께 다시 한 번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 아버지, 부디 영면하소서.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8-10-10 | hrights | 조회: 1192 | 추천: 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올 초부터 1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여성화를 강요하는 ‘꾸밈노동’ 일체를 거부하는 ‘탈 코르셋’ 운동이 일고 있다. 이들은 머리를 자르거나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인증샷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남학생 교복을 입고, 화장품을 버리는 등의 행동들을 sns를 통해 공유하면서 이 운동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빠르면 초등학교 4학년, 느려도 6학년쯤에는 다들 화장을 시작한다.", "결막염 걸려서 눈이 빨간색이어도 렌즈를 낀다. ... 안 끼면 안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럼 ... 못생겨진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화장을 해야 한다는 ... 학교는 엄청난 코르셋 집단이 됐다."(BBC. 2018. 6.1)  초등학생부터 화장을 하고, 학교는 화장을 강요한다. 언젠가부터 길에서, 학교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은 모두가 ‘실제로’ 화장한 차림이다. 빨간 입술, 하얀 얼굴, 긴 머리, 달라붙는 교복 등. 화장이 처벌의 대상이었던 세대인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딸에게 물었다가 오히려 몰상식한 구시대 유물 취급받았다. 나의 학창시절은 교복치마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카락, 손톱길이 마저 규격화하고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화장으로 대표되는 ‘여학생 되기’라는 담론과 실천은 통제와는 다른 자유이고 선택일까?  푸코는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통치방식이 위계와 폭력에 기반한 신체형벌사회에서 규율, 감옥 등이 대신하는 규율사회로 변모하면서 어떻게 흩어진 개인들이 규율에 복종하고 살아가는지를 규명한다. 근대사회는 커다란 ‘판옵티콘’ 사회이다. 이는 감옥으로, 간수 한 사람이 모든 재소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로 설계되어 있다. 때문에 재소자들은 간수의 감시를 일상화, 내면화하여 스스로 감옥의 규율에 복종하는 데 이것이 ‘규율사회’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지만 일상화된 감시의 존재를 내면화하고 복종하는 것을 주체적 선택이라 여기게 만드는 것 또한 규율사회의 특징이다. 그리고 여기서 규율권력은 각 개인의 몸을 통해 구현된다. 스스로 몸과 행동을 통제하면서 작동한다. 내면화는 이렇게 스스로 규제에 복종하도록 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구조적인 이데올로기, 담론, 규율 등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나의 세대가 체벌이라는 형태가 몸에 행해졌다면, 현재는 ‘화장’=‘여성’이라는 담론을 ‘소비’와 ‘노력’을 통해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몸은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장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여자와 남자가 앉는 모습은 단적으로 누가 권력의 주체인지 드러낸다. 남자는 주체이고 여성은 대상이다. 여아=분홍색, 남아=파랑색으로 출산준비물이 구분되고 장난감도 여아와 남아가 구분되는 젠더화가 점점 더 고착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여성성이 남성성에 비해 열등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는 데 있다. 호주에서는 2013년 바이크갱단을 효과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분홍색 죄수복을 입혔다. 굴욕감을 주기 위해서다. 여자들은 분홍색=무력함이라는 정치적 함의에 무지한채로 분홍 옷을 입도록 기대되고 있다.  코르셋은 과거 여성들이 잘록한 허리와 불룩한 가슴 및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착용하던 체형보정물이다. 그것이 현재에는 날씬한 몸, 화장, 하이힐, 성형수술 등 온갖 꾸밈노동으로 남아있다. 남자들은 전문성으로 평가받지만 여자들은 언론에 의해 어떤 옷, 신발, 가방-코르셋-을 들었는지 외모에 주목한다. 혹자는 ‘몸’, ‘외모’는 ‘선택’이고 ‘주체성의 발현’ 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푸코의 권력형태의 변화와 그에 적응하는 인간/몸을 보면 사회적으로 권력담론에 의해 몸/신체가 구성됨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 권력구조에서 몸은 철저히 여성화, 남성화 담론에 의해 구성된다. 남성성, 여성성은 일종의 정치적 산물이며 권력집단인 남성들에 의해 구성된, 사실은 강제이다. 모든 지배체제에서 지배계층은 인위적인 분리를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당화한다. 노예제도가 자연스러운 인종적 우열의 결과라고 주장했듯이. 여성의 외모 가꾸기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은 꾸밈이 사실은 여성임을 한눈에 드러내고, 나아가 성적흥분을 느끼기 위한 남자들의 각본이자 요구라는 사실. 남성성은 지배를, 여성성은 굴종을 의미-여성해방을 통해 사라질 의미체계-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최근 국내 출간된 『탈 코르셋』에서 페미니즘 심리학자 디 그레이엄은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 증후군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인질들이 보이는 행동인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폭력으로 위협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친절을 내보인다면 두 집단 사이에는 애착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한 마디로 여자와 남자 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화장, 성형수술, 제모 및 왁싱, 하이힐, 갑갑한 복장’ 등 해로운 미용관습을 제시한다. 즉 “여성성이란 적의 마음을 사로잡아 적과 잘 지내기 위한 청사진”인 것이고 여성적인 행동들인 ‘지력, 조심성, 눈치, 대인관계 능력, 매력, 섹슈얼리티, 속임수, 회피’등은 전형적인 피지배계층의 행동들이 된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꾸밈행위가 강요된 코르셋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자들의 꾸밈노동이 남자의 물리력과 위협 대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두렵고 너무나 정교하게 이데올로기/담론/규율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적 규율을 수용함으로써 ‘내면의 식민화-가부장적 질서의 체화-’를 통해 ‘여성성’=‘성적대상화’=‘꾸미기’라는 신화에 갇혀버리게 된다.  원래 화장은 성매매업의 여성들에서 나타났다. 붉은 립스틱은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고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개였다. 그러던 것이 1920-30년대 여성들의 공적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미용 산업이 등장하고 화장이 일반여성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아랍의 예로 보면 아랍 여성들이 서구식 복장과 화장에서 다시 베일을 쓴 것은 1980-90년대 들어서인데 이는 이곳 여성들이 사회활동이 활발해진 때이기도 하다. 전통적 여성영역이던 가정 밖에서 외부남성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으로, 자신이 아랍의 전통과 종교-그 사회 남성들의 가치관-를 존중하고 그에 복종함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베일도 화장도 감춘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가지며, 화장 역시도 성적대상, 성적흥분을 느끼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역할-가부장적 전통이자 종교-을 수용/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는 감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만큼 뻔뻔하지 않음–피지배자로서의 예의-을 보일 때에야 안전할 수 있고 그래서 공적진출 후에도 인간으로보다는 성적대상임을 드러내야 하는 화장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 이데올로기/규율/담론의 재생산에는 권력의 연결고리들이 존재한다. 성매매산업과 대부업, 미용 산업(의료계포함)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성매매를 통해 축적된 자본이 대부업체로, 화장품과 옷을 사기위해 여자들이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고, 다시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 하는-은 여성과 화장, 성매매와 자본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드러낸다.   ‘탈 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여성의 성적대상화인 꾸밈노동에 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을 것을 부추기며 남성 성애화의 소비대상으로 존재하길 거부하는 실천운동이다. 나아가 이 운동의 일환인 “소비 총파업”은 매월 첫 주 일요일에 일체의 소비를 금하고 38-3·8여성의 날-이 포함된 액수만큼 저축해 자신과 여성해방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탈 코르셋’은 개인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선택’으로 보이는 여자들의 꾸미기가 사실은 강요 및 강제된 규율로서 구조적 억압이었음을 각성하고 고발하는 운동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최근 홍대 남자모델 영상 유포자인 여성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워마드 운영자에게 국제적인 수배령이 내려지고, 성폭력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여기서도 여전한 ‘코르셋’을 발견한다. 남자와 여자의 ‘놀이’의 범주에 대한 코르셋, 성폭력피해자가 내면화해야하는 규율로 작동하는 코르셋이다. 남성지배체제로서의 가부장 권력의 공공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권력은 언젠가는 대체된다. 여성들이 현재의 분노를 힘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애써 흥분하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 코르셋’은 부정의하고 불평등하며, 전제적인 남성규율에 대한 저항이자 해방운동이다.  “모든 여자가 화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화장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예뻐 보이기 위해 한다는 것”,  “예쁜 것만이 정답인 사회가 아니라 모든 얼굴이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사회를 원한다.”(경향신문 인터뷰 중에서)
2018-08-30 | hrights | 조회: 2020 | 추천: 1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다들 알다시피, 습관으로 정착된 행동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그 방식은 고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습관을 왜 어떻게 형성하게 되는가? 하는 물음에 먼저 답했으면 한다. 2.  습관은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초다. 모든 생물체들은 환경에 잘 적응해야만 살아남는다. 환경은 시시때때로 매번 다르게 주어진다. 그런데 개별 생명체는 늘 다르게 주어지는 환경의 내용에 일일이 특별하게 대응할 수도 없고 대응할 필요도 없다. 생명체는 지금 당장 주어진 환경에 ‘전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이때 ‘전형’(典型)은 흔히 ‘패턴’이라 부르는 것인데, 생물체와 환경 간의 오래된 접촉에 의해 형성된다. 생물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작동하는 전형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장구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유전되는 종적(種的)인 전형이고, 다른 하나는 개체로서의 생물체가 자신의 삶을 살면서 변이를 이루어 형성하는 개별적인 전형이다. 후자는 전자의 바탕 위에서 형성될 뿐만 아니라, 달리 보면 전자를 활용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종의 생물체들 간에 각기 나름의 다른 행동 방식이 전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행동 방식의 전형은 각 생물체의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행동을 통한 표현의 바탕에는 각 생물체의 일반화된 유기적인 구조 ― 행동의 표현이 그때마다 특수한데 비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가 있어 그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각 생물체의 유기적인 구조가 어떤가에 따라 그 생물체의 행동을 통한 표현이 달라지는데, 양쪽을 매개하는 것이 전형인 것이다.  생명체는 구조-전형-표현이 마치 삼발의 솥처럼 작동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이에 생명체를 ‘전형에 따른 구조의 체계’라 부를 수도 있고, ‘전형에 따른 표현의 체계’라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 형태의 체계인 생명체는 자신이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그 속에 살면서 접속하는 환경을 그 나름으로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관찰자인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각 생물체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이 동일한 것 같지만, 각 생물체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자신의 체계에 따라 이미 달리 구성된 환경인 것이다. 각 생물체에게 있어서 체계-환경의 쌍은 이원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동되어 구성함과 구성됨을 주고받는 또 다른 상위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각 생물체에게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른 생물체들이 자신의 환경을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각 생물체들은 다른 생물체들을 자신의 환경으로 구성하되, 기존에 자신이 형성한 환경에 원만하게 편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환경 구성이 생물체들 간에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공존이 잘 이루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생물체들 간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체계가 심하게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붕괴되기도 한다.  3.  인간 역시 각자가 나름의 생명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 구조-전형-표현의 활동을 계속해서 해 나간다. 인간 생명은 자신의 환경 구성적 체계적인 위력을 그 어떤 다른 종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결과, 급기야 기묘한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제 자신마저 특이한 방식으로 환경으로 삼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명 활동을 제 스스로 뒤돌아보아 자신의 생명 활동 자체를 또 다시 새로운 생명 활동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환경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소 어렵게 말하면, 인간 생명은 ‘재귀적인 환경 구성적 활동’을 발휘하는 데서 그 특유성을 갖는다.  이러한 재귀적인 환경 구성적 활동 덕분에 자신이 지닌 생명의 힘을 발휘해서 환경에 대한 행동으로 표현할 때, 인간은 그 표현에 자신의 생명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앎을 담아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생명의 힘을 발휘해서 행동으로 표현할 때, 그 표현에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앎을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앎은 인간 특유의 앎으로써 여느 다른 일반적인 생물체들이 갖는 앎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 생물체들의 앎은 자신의 생명 체계 속에 닫혀버린 앎이고 그래서 사실 연계에 포섭된 앎이지만, 인간 고유의 앎은 자신의 생명 체계로부터 열려 있는 앎 ― 물론 이 열림의 정도는 인간 생명 체계 내에서 볼 때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실현될 것이다. ― 이고 사실 연계를 넘어선 의미 상황에서의 앎이다.       자신의 생명 체계로부터 열려 있는 이 같은 앎을 통해 인간만의 활동인 의미 생산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간이 생산하는 의미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 나름의 구조적인 체계를 형성하되, 자신의 체계 속에 닫혀있지 않고 계속해서 새롭게 열려나가는 구조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의미들을 인간 생명의 체계는 또 다시 자신의 환경으로 재구성하여 편입시킨다.    의미 생산의 과정과 그 결과들의 응축 및 환경 구성에의 재활용 등의 전반적인 과정을 일컬어 역사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만이 역사를 지닌 것이다. 재귀적 생명 활동을 통해 제 스스로를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는 힘을 발휘하되, 그 자기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의미를 자신 바깥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그 의미를 각자의 환경으로 재구성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역사적 인간’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 역사에서 무슨 필연적인 법칙이 존립한다거나 그 법칙을 찾아낸다거나 그 법칙을 모두에게 적용하려 한다거나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사적 인간이란 처음부터 역동적으로 열려있는 존재이고, 그 역사적 인간의 삶을 통해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런 역사적 삶의 환경으로 주어지는 역사 역시 역동적으로 열려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간을 가장 적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언어다. 인간의 언어활동은 반드시 의미의 열린 구조적 체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로서의 환경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삶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진 출처 - pixabay 4.   이제 습관으로 되돌아오자. 생물체 일반에 있어서 습관은 행동의 습관이다. 행동은 환경 속에서 환경을 향해 이루어지는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전형에 의거한 표현이다. 거꾸로 보면, 행동의 표현을 일정한 전형에 따라 해 나가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습관은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해 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이처럼 애초 생명체들이 자신의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형성 ‧ 발휘하는 습관은 이제 인간의 단계에 이르러 그 내용이 바뀐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기본적으로 형성 ‧ 발휘하는 습관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역사성에 의거해서 의미를 형성 ‧ 발휘하는 습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습관을 통해 자신의 생명활동이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발휘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 고유의 역사성에 의거한 의미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습관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 인간들은 이 의미 영역에서의 습관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더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발휘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여느 생물체들과 달리 의미를 생산해 내어 그것을 자신의 환경으로 삼는 인간 생명의 구조적 체계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이러한 인간 생명의 특이한 열림은 그 생명의 환경 역시 열려 있어 여느 생물체들의 환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융통성과 가변성이 크다는 것을 일러준다. 아울러 가변성이 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기존의 생명 활동의 습관을 필요에 따라 바꾸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5.  길게는 70년, 짧게는 30년 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모처럼 이루어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역사적 기운을 일구어낸 북미 관계가 최근 들어 답보 상태를 보이는 모습이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미국에서는 ‘비핵화의 목록과 프로그램’을 먼저 내놓으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종전선언을 통한 체제안정의 기초’를 먼저 보장하라는 주장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호 불신의 바탕에는 그동안 형성되어 온 역사적인 습관들과 그에 따른 투쟁이 작동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환경이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데도, 그동안의 환경에서 형성되어 오랫동안 생존에 유리하다고 여겨온 습관이 새로운 환경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습관을 바꾸면 생명활동에 지장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환경이 크게 바뀌어 기존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기존의 습관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습관의 길을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생명 공동체들은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 문명을 일구어온 북반구 온대에서 폭염이 지속되면서 지구 온난화의 거센 파고가 지구적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공존의 환경 형성을 향한 인간 생명체의 체계적인 구조의 혁신이 요구된다. 겨우 이백 여년에 걸친 생산력 중심의 기술 산업주의의 삶과 그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지배 중심의 경쟁이 이처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헤게모니를 통해 역사적 의미의 삶을 구축하고 영위하고자 하는 세력의 그 무서운 습관은 언제쯤 역사의 무대에서 영구히 사라질 것인가? 대대적인 습관의 개변이 요구되는 데도 기존의 삶을 유지해 온 습관의 역습은 강고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역습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용기 있게 극복할 수 있는 정치 외교적 실천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2018-08-16 | hrights | 조회: 1060 | 추천: 4
윤영전/ (사)평화연대 이사장  한반도(북은 조선반도)는 73년이란 최장기 분단국이다. 해외에서 흔히 “코리아”하면 북이냐, 남이냐를 따져 물을 때에는 언제나 고역스럽다. 세계 210여 개국에서 나의 조국이 가장 오랜 세월동안 분단국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한반도 분단의 근원은 오랜 일제의 조선침략 100년 전, 을사늑약으로부터 그들의 패권주의가 아세아 침략에 이르렀을 때다. 우리 3.1혁명 6.10만세 학생의거 등 숱한 저항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들에게 35년이란 압제 하에서 수난을 당해야만 했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뜻있는 많은 애국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 던져 조국광복과 해방을 위해 순국하셨다. 32세의 안중근 의사와 24세의 윤봉길 의사는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이등박문과 백천을 대낮 행사장에서 척살하기도 하였다.  돌아보면 필자는 일제 침략으로 이어진 남북분단에 살아와야만 했다. 반백년 전, 65년대 초반에는 제네바협정에 의해 그들은 월남과 월맹으로 17도선 나뉘었다. 당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미국이 동남아 패권을 위한 월남에 파견되었다. 이때 박정희 정권은 한국전쟁에서 5만여 미군이 전사로, 월남전에 지원 파견을 결정하였다. 필자는 제대말년 65년 초에, “가면 다 죽는다.”는 월남전에 미국의 용병으로 7개국이 함께 참전을 했었다.  65년부터 10년간 연인원 총 33만 여명이 참전해 6천여 명의 전사자가 속출했다. 부상자도 1만 5천명, 당시 17도전선 월맹과 월남으로 나뉜 남베트남 전쟁은 한국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사시사철 우기와 건기로 나뉜, 베트남은 정글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많은 고엽제 전우까지 양산되었다. 소위 월맹 정규군이 아닌 월남 내 베트콩세력에 연전연패를 거듭해, 미국과 참전국이 패전해, 통일되어 평화를 찾았다. 아주 오래전에는 남북 예멘과 동서독도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외세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었다. 동포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하지만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50년대 4월 혁명에도 참여하고 반민주화 투쟁도 했었지만, 군사반란으로 자주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의 꿈인 평화통일을 왜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국민들은 통일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가. 남북 8천만 동포가 진정 평화와 통일을 원하고 있는가? 집권한 정부마다 지역과 각 계층에 따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고 소원인 평화통일은 우리의 절대적인 최대의 과제이고 꿈이기도 했다.  헌법에도 명시한 평화통일은 정부와 국민 모두 부단히 진력해 이뤄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그동안 보수집권이 반백년이고 진보집권은 겨우 10년이었다. 이제는 지난해 천칠백 만이 뜻을 모은 적폐청산, 드디어 평화통일을 이뤄낸다는 명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통일은 우리의 절체절명의 기회이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조상이 물려준 하나 된 조국인데, 일제 35년에서 우리 힘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외세가 이 땅에 들어와 전리품처럼 되었다. 남북위정자들의 갈등으로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한 게 통한이었다. 오래전에 남북은 각각 유엔의 회원국으로 가입되었으나 여전히 변방이었다.  그간 6.15와 10.4선언으로 평화통일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반세기만에 남북협력이 이뤄지고 올림픽도 함께해냈다. 금강산에 2백만 관광이 이뤄지고 개성공단에 2만5천명이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지고 남북이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모습이 그간 10여 동안 이뤄져, 이대로 가면 통일은 가까운 듯 했었다.  그러나 수구 반통일 세력이 다시 집권해 10년이나 교류가 중단되었다. 이번에 추석을 기해 우여곡절 끝에 재개될 이산가족상봉은 지난 상봉과 같이 눈물드라마를 연출할 것이다.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겠다는 이산가족상봉은 인도주의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한 동포와 혈육이 만나지 못할 이유는 궁색하기만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평화연대  고질적인 남북갈등은 물론, 남남갈등에 동서갈등까지의 작태는 분단조국의 아픔을 더해오고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단순히 정권안보에 편승해 간다면 이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터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평화의 기운이 올 것이다. 지구촌에서 최장기 분단국의 너울을 쓰고 있는 한반도, 분단아픔에서 얼마나 더 살아가야 하나! 진정 우리의 소원이고 꿈인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야만 한다.   그래도 우리의 조국 남북 한(조선)반도에 드디어 평화통일의 장이 열리고 있다. 전쟁으로 힘겨루기에 열중하던 주변 강대국들이 늦었지만 한반도 평화통일에 많은 합의와 약속을 이뤄내고 있다. 분단 70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에 진정한 봄기운이다.  올 초에 아주 어렵게 이루어진 동계올림픽 성사는 세계평화의 기운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오랜 원한의 갈등 탓에 짐작하기도 어려웠던 정상들의 만남은 세계 평화의 물결로 넘실될 것이다. 소위 세계 패권 대국의 강대국들이 분단국 정상들과 회담은 세계평화에 기여할게 분명할 터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찾아온 한반도 평화통일 기운을, 여야 정치권은 물론, 분단조국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 지도자와 국민들이 다 같이 이뤄내야 한다. 만약에 이에 대한 부조리한 비판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있다면 준엄한 심판을 받을 터이다.   기회는 그리 쉽게, 자주 오지 않는다. 분단조국 73년, 내 나이 팔순에 접어든 이때에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2018-08-16 | hrights | 조회: 908 | 추천: 4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예루살렘 이슬람교 재단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간 이스라엘 정착민 3천 900여명이 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에 쳐들어왔다. 이 정착민들은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 마당에서 예배드리는 무슬림들 사이에 끼어들어, 이곳이 3천 년 전 건설된 솔로몬성전 터였다는 신화를 떠벌리고, 탈무드를 큰소리로 읽기도 하는 등 무슬림들을 자극했다. 이들은 솔로몬성전을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를 대체하는 유대교 성전 건설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스라엘은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 단지 주변에 터널을 파는 등 이 단지를 붕괴 위험에 빠뜨리는 공세적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 사진 출처 - PASSIA제공, http://www.passia.org/  7월 19일(목), 이스라엘 의회는 ‘민족 국가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예루살렘을 포함한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 대한 유대화 정책에 정점을 찍었다. 이 법은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스라엘의 ‘민족 국가 법’ 1. 이스라엘 땅(역사적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고향이다. 이곳에 이스라엘 국가가 건설되었다. 2. 이스라엘 국가는 유대인들의 고향이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천부적, 종교적, 역사적 자결권을 성취한다. 3. 이스라엘 국가에서 민족 자결권을 행사할 권리는 유대인들에게만 있다. 게다가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 이스라엘은 유대인 이민과 귀환을 위해 개방될 것이며 유대 정착촌 개발을 민족의 가치로 간주하며, 유대 정착촌 건설과 강화를 고무시키고 촉진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이 법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의 전면적인 유대화를 강화하면서, 아랍-이슬람 문화를 일소하는 중요한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유대화 정책의 핵심 대상에는 8세기 초에 건설된 예루살렘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가 있다.  예루살렘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초기 무슬림들의 기도 방향이었으며, 알 아크사 복합단지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알 부라끄라는 날개 달린 인면 말을 타고 밤의 여행을 하였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장소(바위돔 모스크 터)’이기도 하다. 알 부라끄 모스크 입구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이번 여름 예루살렘 현지조사에서, 필자는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 내 규모가 작지만, 매우 특별한 알 부라끄 모스크를 방문하였다. 이 모스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밤의 여행’을 기념해서 14세기에 건설되었다. 이 모스크는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의 서쪽 벽, 일명 알 부라끄 벽(통곡의 벽) 안쪽에 붙어있다. 이러한 알 부라끄 모스크의 존재는 서쪽 벽이 무슬림들에게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징표다. 알 부라끄 말 고리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7월 27일(금), 알 아크사 모스크 금요일 예배에서, 알 아크사 모스크 이맘이며, 이슬람 최고 위원회 의장인 셰이크 아크리마 사브리(Dr. Sheikh Ekrima Sabri)는 지속적으로 공격당하는 알 아크사 모스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셰이크 아크리마 사브리의 금요 설교  알 아크사 모스크는 이스라엘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며칠 전에 이스라엘이 땅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알 아크사 모스크 서쪽 벽 돌 몇 개가 떨어져 나갔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땅을 파헤치는 이유는 3천 년 전 건설된 솔로몬 성전 터라는 허황된 주장을 입증하는 단 하나의 돌이라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진짜 이유는 알 아크사 모스크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알 아크사 모스크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무슬림들은 알 아크사 모스크를 방어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알 아크사 모스크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아무도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해서 협상할 권리가 없고, 알 아크사 모스크 땅을 단 한 뼘도 양도하지 못한다. 알 아크사는 우리의 교의의 일부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오늘날까지 내려온 유산이다.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여전히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세력은 ‘민족 국가 법’을 제정함으로써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억압적인 조치들을 부과하고 있다.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은 결코 자신들의 합법적인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알 아크사 땅을 단 한 뼘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셰이크 아크리마 사브리 사진 출처 - 루바바 사브리 제공  이날 12시 30분부터 진행된 셰이크 아크리마 사브리의 금요 예배 설교가 끝난 직후, 이스라엘 군대는 최루 가스총을 쏘는 등, 알 아크사 모스크 공격을 시작하면서 모스크로부터 무슬림들을 쫓아내었고, 일부 무슬림들을 모스크 내부에 가두고 문을 폐쇄했다. 쫓겨난 무슬림들은 모스크 입구에서 계속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2018-08-07 | hrights | 조회: 2119 | 추천: 9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지난 6월 14일부터 19일까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러시아 극동 연구팀>의 일원으로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연구팀은 러시아극동역사연구소와 “Small East Asia in Russian Far East"란 주제 아래 인문사회분야로는 최초로 한·러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의 문이 활짝 열린 후, 극동은 가능성과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았다. 세계 육지 면적의 1/20, 러시아 면적의 1/3, 한반도 면적의 28배에 해당하는 이 거대한 땅은 중국과는 4300km, 북한과는 19km에 걸쳐 국경을 접하고, 일본과는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동아시아 국가 간 교차로에 해당한다. 극동 러시아 지역 사진 출처 - 뉴시스  러시아 극동은 1980년대 말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이래, 한반도-아시아-유럽 루트의 핵심매개로, 통일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미래거점으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푸틴이 ‘신동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는 석유, 가스, 석탄 등 막대한 에너지 자원의 동아시아 보급기지, 농업개발협력을 통한 동아시아 식량 보급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확대한 철도망, 전력망, 송유관, 가스관이 교차하는 새로운 교통물류의 전진기지로 주목받았다. 남·북·러 삼각경협, 중국 동북3성-극동 연계개발, 러·일 에너지 브릿지 프로젝트 들이 잘 보여주듯이, 러시아 극동이 가진 가능성의 핵심은 이곳이 남·북·중·일·러 간 양자/다자적 접촉을 필연화, 전면화한다는데 있다.  이런 의미는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중·일·러가 마주한 러시아 극동은 인접국들이 전면적으로 조우하며 그 속에서 국경, 민족, 국민국가와 같은 근대적 개념이 실험된 역동적 공간이었다. 러시아 극동을 구성하는 문명의 핵심은 하나의 국가성 속에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국가들이 충돌하는 ‘초국가적’ 접촉과 충돌 속에 형성되었다. 연해주, 하바롭스크, 사할린의 주권 교체, 사라진 극동공화국의 운명, 북방 원주민의 식민화 과정 등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국경, 민족, 국민국가와 같은 근대적 패러다임의 유효성이 실험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근대성의 폭력과 한계가 목도된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러·일, 한·중, 북·러 역사영토논쟁이 역설적으로 대변하듯이, 러시아 극동은 조선이면서, 러시아면서, 중국이면서, 일본이었고, 따라서 그 어느 것도 아니었으며, 동시에 그 이상이었다. 그 공간은 근대적 팽창의 무한공간이자, 그 위반의 주목할 만한 사례로, 공간적으로 서양과 동양 사이, 시간적으로 근대와 비(非)근대, 가치적으로 문명과 야만 사이에 존재했다. 따라서 러시아 극동은 동아시아의 초국가적 공존 구상에 생생한 사례가 되어줄 수 있다. 그러한 역사를 몸으로 재현하는 존재가 바로 러시아 극동 내 남·북·중·일 이주자들이다.  현재 러시아 극동에는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 중국 노동자와 조선족, 북한 노동자가 함께 공존한다. 극동 거주 고려인(한인)의 총수는 연해주 3만 명, 사할린 3만명, 하바롭스크 1.5만명, 캄차트카 2천명을 포함해 약 8만 명이다. 중국 노동자의 경우, 불법이주가 많아 정확한 수치 파악이 힘들지만, 수십만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략 3만 5천 명으로 추산되는 러시아 전체 북한 노동자 중 약 1/3, 즉 1만 명가량이 극동의 건설, 어업, 농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탈북 루트 중 하나인 극동의 특성으로 인해, 물론 정확한 수치 파악은 불가능하지만, 탈북 난민의 존재도 여기 더해질 수 있다.  이처럼 이곳 에스닉 코리안 공동체의 경우 다원화와 내부 분화가 활발하다. 즉, 고려인, 사할린 한인, 조선족, 북한노동자, 탈북난민, 한국인처럼, 민족으로는 동일하나, 다른 국적의, 따라서 다른 역사, 다른 문화를 가진 다양한 갈래의 한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한다. (고려인은 1937년 스탈린 강제이주 시 중앙아시아로 떠났다가 소련 시기 귀환한 고려인과 소련 붕괴 후 귀환한 고려인으로 또 나뉜다.) 이 공동체 속에서 같은 민족정체성과 남·북·중·일·러가 교차된 다국적, 다문화 정체성 사이의 경합을 보다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 국적국의 위상에 따라 현재 이 공동체 내부에 어떤 위계와 서열, 그로 인한 갈등과 반목이 가시화될 조짐이 포착되기도 한다. 한민족 공동체의 이 다양한 일원들은 중국인이나, 다양한 CIS 출신 이민자들과 목하 경쟁 중이다. 한민족 공동체, 나아가 러시아 극동의 이 ‘작은 동아시아’의 현재를 따져보고 미래를 가늠하는 일이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각종 구상의 현실성을 따져볼 시금석이 되어줄 수 있을까.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2018-08-01 | hrights | 조회: 1566 | 추천: 4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벌써 여름이다. 제주에 내려올 때만 해도 아직 외투를 벗지 못했고 어승생 근처에서 눈썰매를 탔다. 서울에서 산 28년 동안 가장 추운 겨울이었고 제주 역시 그랬다고 한다. 5개월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인데 여러 일을 겪다 보니 벌써 제주에 몇 년은 산 것 같은 기분이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 이주해 적응 중이니 ‘(외지인이) 제주에서 (적응하며) 사는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회사에 입사하면 처음 몇 달간 가장 질문이 많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곳에 이사 와서 적응하려고 신경 써서 눈귀를 밝히고 있는 이주 초창기에 가장 많은 것을 듣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 집을 얻은 마을은 애월읍 상가리이다. 마을에 변변한 슈퍼마켓도 없고 관광객이 들를 만한 곳이라고는 카페 하나, 음식점 하나 정도. 그러니 외지 사람들은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마을에서 매해 포제를 지내는 포제단과 400년 된 보호수가 집 건너편 언덕에 있고, 집 근처 리사무소로 걸어가다 보면 한라산이 훤히 바라보인다. 집에서 시우 학교를 가려면 리사무소 마당을 가로질러야 한다. 최근 폭염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매일 아침 학교에 걸어갔는데 거의 그 시간에 할머니들은 경로당으로 걸어오시고 할아버지들은 나무 밑 의자와 정자에 앉아 계신다. 열심히 인사를 하면서 다니긴 하는데 우리 얼굴을 기억하시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학기 초에는 한 할아버지가 시우에게 인사 잘한다고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시우가 입학한 학교는 외지인들에게 사진 찍기 좋은 학교로 유명한 더럭초등학교이다. 작년까지 분교였으나 올해부터 초등학교로 승격됐다. 벌써 몇 해 전 전교생이 60명을 넘었으나 전교생이 100명을 넘은 올해 초등학교가 됐다. 제주행이 정해지고 난 뒤에는 어느 지역으로 갈지, 어떤 집으로 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친구가 사는 애월을 선택한 후에는 아이가 학교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집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학교가 더럭초등학교였다. 가장 큰 이유는 학교가 한쪽 면을 제외한 3면이 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그 도로들로 대형 덤프트럭이 수시로 지나다닌다는 것과 덤프트럭들보다 더 많은 수의 관광객이 학교를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든다는 점이다. 나의 기준으로는 학교 주변환경이 위험하고 번잡한데다 학교 부지도 상당히 작아서 늘어나는 학생수를 수용할 확장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랬지만 결국 구한 집은 그 학교를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상가리 집이다. 학교에 대한 걱정스럽고 못마땅한 부분들은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아이 걸음으로 10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넓고 예쁘다. 이른 봄부터 동백 꽃길이었다가 동백이 질 무렵 벚꽃이 피고 버찌가 익어 떨어지면 수국이 피기 시작한다. 더럭초등학교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평소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집과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 노동자에게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육아를 할 때도 조합원들이 어린이집이 있는 그 동네에 살지 않고서 마을과 어울려 공동육아를 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도시 노동자들이 각자 사는 곳에서 마을공동체 생활이 가능하려면 말 그대로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퇴근 후 가질 수 있는 여가시간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읍내도 아니고 면사무소가 있는 곳도 아니고 리사무소가 있는 곳.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던 곳. 과연 제주 시골의 마을공동체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이사하고 일주일 내에 옆집 뒷집에 인사는 했는데 경로당에 인사를 하러 가야 하는 건지, 이장님한테 이사 왔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2주가 흘렀다. 마을공동체는커녕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날이 흐르다 딸의 입학식 날이 되었다. 더럭초등학교 승격 축하식도 입학식날 열렸다. 입학식 전후로 여러 방송국에서 시골 분교가 초등학교가 된 더럭의 사례를 취재해 갔다. 아이들 수가 급격히 줄어든 요즘 학생수가 꾸준히 늘어나 분교에서 초등학교로 승격된 시골 학교는 정말 특이한 경우이다. 입학식을 마치고 리사무소 옆 마을도서관에 들렀다. 이사 와서 갈 곳 없어 마을 이곳저곳 산책할 때 들렀던 곳인데 작지만 아이들이 책 읽기에 편안하게 잘 정리된 공간이었다. 그날은 사서가 있어서 마을도서관(정식 명칭은 상가리 새마을 작은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리모델링을 했고, 사서들이 하루씩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 한 명이 그만두어 본인이 이틀을 도서관에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사 온 뒤 집 근처인 이 도서관 옆을 오가며 시우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해서 나도 모르게 “그럼, 제가 하루를 맡아도 될까요?”라고 겁 없이 사서를 자청하게 되었다. 이 작은도서관이 올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2018-07-25 | hrights | 조회: 997 | 추천: 5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양심적 병역거부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양심(良心)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를 말한다. 이 양심이란 말이 우리나라 헌법에 세 차례 나온다. 첫 번째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제19조), 두 번째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것(제46조 제2항), 세 번째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것(제103조)이다. 이처럼 헌법은 양심의 자유와 직무의 양심성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어원적으로 양심은 그리스어 ‘suneidesis’로부터 유래하는데, 이는 ‘함께 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함께 안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양심을 ‘하느님의 목소리’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양심 속 깊은 데서 법을 발견하고,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준 법이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복종해야 할 법이며, 이 법의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며 행하고 악은 피하도록 사람을 타이르고 필요하면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피하라’고 마음의 귀에 들려주는 것이라고 한다(사목헌장 16항).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써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이라고 한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에는 이러한 양심 형성의 자유와 양심상 결정의 자유를 포함하는 내심적 자유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부작위에 의하여 양심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 즉 양심상 결정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 받지 아니할 자유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양심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의 형성 및 실현 과정에 대하여 부당한 법적 강제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소극적인 방어권으로써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라고 법적 의미의 양심을 설명하고 있다. 양심의 의미에 대해서 윤리적, 종교적, 법적 표현이 서로 조금씩은 다르지만 옳고 그름의 분별이라는 지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직접 총을 드는 등의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하는 것과, 실정법에 따른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 모두가 개인의 옳고 그름의 분별에 따른 양심의 결과이다.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하든 국가와 사회는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법관에게 요구되는 양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내면적 기준과 외적 기준을 더욱 강하게 요청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 헌법은 판결을 함에 있어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한 양심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법관의 양심은 아주 엄격한 법의 잣대로 가늠되는 것이다. 법관의 판결이 누가 보더라도 자의적이거나 불편부당하고, 권력에 야합한 결과라면 이를 두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법치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생명이 그들의 양심에 따른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실제 수많은 조작사건과 노동자에 대한 판결들에서 그러한 결과들이 빚어지지 않았던가. 따라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법관의 양심을 위배한 너무도 중대한 헌법위반이며 범죄인 것이다.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매사를 양심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산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인류공동체의 평화로 연결된다. 양심의 목소리는 그러한 지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인 것이다.
2018-07-19 | hrights | 조회: 1260 | 추천: 4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사회주의 체제의 종언과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생산력의 급격한 하락 등으로 인한 구조적 실업, 이에 따른 전반적인 빈곤화, 대규모 해외 이주 등의 사회 현상, 그리고 사망률이나 평균 수명 등 거의 모든 사회 지표의 악화, 사회양극화와 지역 간 발전의 불균형 등의 문제들을 야기하였다. 특히 체제전환으로 인한 다양한 사적 행위자들의 등장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런데 심각한 혼란기에 사적 행위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비공식적이고 반범죄적인 영역에서 이윤을 창출했고, 그러한 왜곡된 공간의 형성을 구조화했다. 아직 시장경제체제의 규칙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작동하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미미했던 인간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이윤 창출 구조도 만들어졌다.   그러한 구조의 가장 심각한 착취 구조는 바로 러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 산업이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산업은 불안정한 시기에 최고의 이윤을 남기는 산업으로 여겨졌고, 사회주의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에 기반한 조직화된 폭력 집단들이 우후죽순 대규모로 만들어지면서, 지배 엘리트의 비호 하에 러시아 내에서는 물론 외국 조직폭력집단과 연계하여 해외 성매매 산업 시장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법적으로는 불법인 데다가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와는 달리, 소위 집결지 형태의 성매매 지역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독립한 공화국들이나 러시아 지방으로부터 여성들이 공급되는 등 성산업은 확대일로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수의 러시아 여성들이 러시아 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나 창피하게도 한국인들은 그 어떤 국가 국민들보다 추악한 방법을 통해 아픈 러시아 사회를 파고들었다. 이미 동남아 제국가들에서와 중국 각 지역에서 악명을 떨쳐 온 한국인들은 특히 가난하고 불안정한 국가들에서는 예외 없이 막대한 뇌물을 들여가며 현지 범죄 조직들과 부패 관료, 부패 경찰들의 비호 하에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놀랍게도 섹스 관광객보다는 이들 국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지상사들이다. 한국 기업이 있는 곳에 한국 룸살롱이 있다는 말은 위험천만한 국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성접대 문화는 빈곤한 국가들에서는 성매매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한층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가난한 국가 내에서도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가난한 여성들의 처지를 극단적으로 악용하여 성적으로 착취하는 작태는, 먼저 고려인으로 인해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것에 호감을 갖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따라 한국식 성매매 업소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형태는 이들 지역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했던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다소 늦게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러시아 여성들을 주로 데려 왔으나, 이들이 남성의 총체적인 성적 노리개로 만들어지는 동양식 기생의 역할을 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모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한국 성산업가들은 중앙아시아의 한인 성매매 업소로부터 여성들을 불법적으로 송출 받아 영업을 하는 등, 말 그대로 국제적인 범죄 집단화되었다.  이러한 성매매 업소들은 기본적인 간판도 달지 못 한 채 지하 창고 등을 개조하여 영업을 했지만, 교민 숫자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여성들이 많이 공급되어 있었다. 이는 어마어마한 한국인 남성들이 성매매를 하는 공간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기업인이나 교민 사업가, 출장객이나 관광객들은 물론 공관 및 공관으로 찾아오는 관료들 역시도 이들 불법 성매매 업소의 주요 고객이었다. 특히 성매매는 한인 여행사-한인 호텔-한인 가라오케가 하나의 카르텔로 조직화 되어왔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김영란법 등으로 인해 일부는 출입에 제한이 생기는 등 변화의 조짐도 있지만, 특히 한인 가라오케에서의 1차와 한인 호텔에서의 2차와 같은 구조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그런데 너무나 창피하게도 이러한 추악한 여성 착취와 부패 고리를 폭로하고 시정해 나가야 할 언론인들은 말 할 것도 없지만, 러시아를 사랑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오히려 그러한 구조에 대해 방조를 넘어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음은 심히 유감이다. 특히 교수 등 교육자와 연구자라는 집단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심지어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학술회의 및 국가 간 친선 교류 목적의 방문 시에도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불법 업소에서 서로의 인맥 만들기와 출세를 위한 수단, 성적 쾌락의 수단으로 여성을 대상화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남북과 북미 간 관계 개선으로 인한 한반도 평화와 공영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동북아 평화협력 공동체의 중요한 축인 남북러 삼각 협력의 구상들이 점점 더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 기업-한인 성매매 산업 카르텔이라는 오래된 적폐가 청산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들의 시장 진출은 곧 재앙이 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적극적으로 해외에서의 한인 성매매 카르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역사적 노력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러한 길에 지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먼저 과거를 반성하고 전면으로 나서야 할 시간이 왔다.      
2018-06-27 | hrights | 조회: 1102 | 추천: 4
윤영전/ (사)평화연대 이사장  우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기의 담판’이 드디어 오늘 아침 싱가포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두 차례나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새 대안을 제시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만족할 만한한 합의를 했다고 밝혀 빅딜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사람 모두 이른바 통 큰 빅딜 합의를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한반도 명운(命運)을 가를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울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새 대안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할 경우, 미국이 해 줄 체제안전보장과 협력방안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합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번에 “미국과 북한이 오랫동안 적국이었으나 이제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해 북한이 진정으로 핵 폐기에 나선다면 미국도 적대정책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고 공격도, 침공도 하지 않는다는 체제안전보장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도 과거와는 달리 미국이 적대정책을 중단한다면 핵 프로그램을 이른 시일 안에 완전 폐기할 수 있다는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주한미군철수와 같은 민감한 요구는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기의 담판’을 숨죽이고 바라보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없애고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줄 평화통일의 그날을 바라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것입니다. 그 성공여부는 곧 결판이 날 것입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합니다. 이 세기의 담판도 한갓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까 너무나 조심스럽고 숨이 막힐 지경이기도 합니다만, 긍정적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조바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늘 만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의 우리 삶을 바꿔놓을 것은 물론, 대대로 운명을 결정지을 아주 중대한 분수령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약소국가의 수장이라도 어쩌면 자존심 상하는 말 한 마디에 회담을 결렬 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발 두 사람이 양국을 대표하는 국가의 수반이라는 금도(襟度)를 지켜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진정성입니다. 트럼프는 며칠 전, 김정은을 만나 보면 1분 내로 그의 진정성을 알아 볼 수 있다고 호언(豪言)을 했었습니다.  누구든지 진심을 다해 호소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감동받은 상대방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의 솔직함과 진정성 때문에 최대한 도와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세기의 담판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과 진정성이라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두 지도자가 이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지키면 좋겠습니다.  먼저 진실한 행동입니다. 회담 대상에게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행동이 필요합니다. 움직여야 변화하듯 진심을 알리기 위한 실천이 첫 번째입니다. 아무리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지요.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다음은 공감입니다. 행동하고 표현할 때 있어 공감적 교감은 필수입니다. 모두가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가치일 때 진정성은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행위, 공감가지 않는 행동으로는 진정성을 나타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닌 공감과 소통할 수 있는 진심입니다. 과연 실행이 가능한 약속인지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실현 가능성 있는 약속입니다. 공감 가는 행동으로 호감을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반쪽의 진심은 허위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마음에는 신뢰와 믿음이 따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는 말 이 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는데 있어 시간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진심은 말 그대로 진짜입니다. 가짜가 아니기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진실 된 회담을 하면 이 모든 걱정과 근심은 없을 것입니다. 즉 그간의 위기 국면에서 아무리 그럴 듯한 언약을 해도 실현 불가능한 공허한 얘기는 오히려 의문만을 갖게 합니다. 이제는 한반도 평화, 조선반도의 평화를 이루어내면 세계 평화의 그날도 오겠지요.  아시아, 아니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원칙적인 기본 약속을 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화끈하고 시원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이었겠지만 앞으로 기약을 한 일들이 있기에 아쉬움에서도 다행이지요.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요, 인구가 수억에 가까운 대국과 겨우 인구 2천2백만의 북한과의 대등한 회담도 생각해 보면 북한의 최대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사진 출처 - 구글  트럼프는 아마도 곧 있을 중간선거와 그리고 2년 후의 대선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이 회담에 전략적으로 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약속한 모든 것을 당장이라도 시원스럽게 받아내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앞으로의 계획들이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대국으로서 해내야할 일들을 공허한 약속보다는 화끈한 딜 즉,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 기꺼이 약속을 앞당겨 실천한다는 아량도 필요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분단 73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수차례의 전쟁과 얼마나 많은 위협들이 존재했습니까? 그러기에 한반도 8천만 동포들은 공포에 떨기도 했습니다. 과연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은 요원한 것인가?하는 의문들이 항상 존재하였지요. 그래도 이만한 안정의 정세로 변화하고 있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합니다. 한편 북의 가공할 핵무기 존재에 신경을 썼지요.   이제 우리는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이 분단이후 최대의 성과 보다는 주도면밀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국민과 함께해야 합니다. 꿈같은 올해의 중대 회담의 결과가 쉽게 이루어 질 수 없는 대사였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이제 남북 8천만 동포와 위정자들의 가일층 노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다가갔으면 합니다. 함께 노력해요. 
2018-06-14 | hrights | 조회: 1105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