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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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영전/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우리가 살고 있는 분단조국에, 진정으로 전쟁기운이 사라지고, 진정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자주 반문해 본다. 지난 6.25 전쟁에서 비참했던 그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에 전쟁국의 지도자들이 수시로 상호 방문을 하고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있기도 했다.  내 눈으로 본 5살 적 기억에도 생생한 세계 제2차 대전의 막바지에서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았던 일제 말이었다. 그들의 압제 하에서 나라 잃은 슬픔에도 만세를 불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때 기억에 무궁화 꽃이 눈병을 옮긴다며 꽃을 못 보게 하기도 했었다.  무궁화 꽃은 영원한 우리나라의 국화로 사랑받고 있지 않았던가. 그처럼 일제는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만행을 자행했었다. 지난날 북한은 적은 액수로 북일 간에 대일청구권 등을 합의 하지 않았다. 북은 미국과도 지금까지 북일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남북이 동시에 UN에 오래전에 가입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미·일과 정식 수교를 했는데도, 북한과는 미·일 양국이 수교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제연합 유엔의 세계평화에도 반할 뿐 아니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그렇게 따돌림 받던 쿠바도 몇 년 전에 미국과 수교를 맺었다. 헌데 북한과는 아직도 수교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국제질서의 규범이 어떠했는가? 지난 봄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세계가 지켜 본 가운데 악수를 하며 함께 했다. 지금의 세계 질서에서 비 수교국과의 정상회담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마 두 정상들은 보편타당한 지구촌 인류평화에 다가간다는 정신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북은 분단만 아니었다면 남과 함께한 8천만 단군조선의 후예로 한 핏줄로 맺어진 같은 동포가 아닌가? 제2차 세계대전의 흉물인 38선을 그어 남북으로 갈라놓은 세계 강대국들의 행패에 우리 동포들은 마냥 슬프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지구촌 세계 속에 비록 면적과 인구가 적지만 세계 12개국의 순위에 당당한 자부심이다.  강대국들의 격전지였던 한(조선)반도가 두 동강 난 38선에서 6.25전쟁의 아픔에 그어진 155마일 휴전선으로 분단 된지도 65년의 긴 세월이 흘러갔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분단국으로 살아온 남북은 과연 언제 통일된 나라가 될 것인가? 한없는 자괴감마저 드는 게 오직 필자만의 생각일까?  조국분단 73년 만에 한반도 평화통일론이 찾아왔다. 지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6.15선언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선언이었다. 그 두 선언들이 계속 이어 졌다면 아마 지금쯤 많은 남북교류와 협력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을 터이다. 필자도 당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과 통일단체 임원으로 금강산 5회와 개성공단 3회를 다녀왔다.  북의 동포들도 진정 남북통일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이요, 퍼주기 10년이란 악의에 찬 몰염치 수구 세력들의 집권 10년이 얼마나 분단의 아픔에 상처를 안겨 주었는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조금만 더 평화통일에 다가 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수구 보수정권의 남북갈등 10년은 남북이 평화와 통일에 마치 장막을 치듯 막히고 말았다. 빈번하게 일어난 천안함 사건 등의 진실도, 서해 전에도 마치 당연한 진실처럼 몰고 간 사건들이었다. 그간 6.15와 10.4선언이 무색할 정도의 남북 갈등유발은 동포들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얼마나 아쉬운 역사적 순간들인가를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깝다.  필자는 다음해면 팔순의 나이에 접어든다. 태어난 1941년 일제 35년에서 일제는 마지막 발악을 부리던 해였다. 한없이 징용에 끌려가고 공출을 내야 했던 그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비록 어렸지만 어지간한 용어들까지 일본어 사용을 강제당하기도 했다. 1945년 8월15일 어른들과 형 누나들이 태극기를 들고 시내로 돌진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해방되었으면 당당한 독립국이 되어야 했었는데도, 남북에 미국과 소련은 소위 38선을 긋고 남은 미국이, 북은 소련이 과도기 3년을 통제했다. 남북이 정권을 수립할 때까지 그들이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해방이 곧 미국과 소련의 과도기 정권에 의존해야 했으니 참으로 슬픈 현상이었다.  북은 6개월 만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고, 남은 3년 만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다. 남북의 동포들이 하나의 정부를 세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나 약소국의 설움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았다. 북은 정권수립 5달 후에 소련이 물러갔다. 하지만 남에는 미군이 계속 주둔했다. 한때 북과의 형평성에 반하기에 미군이 오키나와 지점으로 물러선 듯 했었다.  이에 6.25전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있다. 소련은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고 미국은 6.25 전쟁으로 인한 3년 전쟁에 소위 연합군까지 동원하여 한반도를 사수하고 1.4후퇴와 중공소련군까지 출동하는 국제전이 이어졌다.  이 또한 슬픈 한(조선)반도였다. 일제 35년에 다시 외세에 7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그들의 그늘에 마냥 기를 펴지 못했다. 남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민주당 장면정권 8개월, 심지어 박정희의 5.16이 일어나 유신까지 18년 6개월 장기집권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이명박근혜 10년 그리고 촛불혁명에 문재인 정권 3년차를 집권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정권의 집권 70년을 보면 보수 수구적 정권이 58년 민주정권이 12년의 정권이었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공화국의 근본을 망각한 군사정권의 집권은 헌정사에 부끄러움을 남기고 말았다. 이 또한 주변 강대국 패권주의가 위세를 부리던 결과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을 논할 때에 필히 참고할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 남북은 벌써 오래전에 용케도 유엔 회원국으로 당당히 가입하였다. 그런데 유엔으로부터 과연 남북은 공히 균등하게 회원국의 대우를 받고 있었는가. 남은 미국과 일본과 수교를 맺었는데 북은 아직도 일본, 미국과 수교를 하지 않고 있어 유엔회원국으로 너무도 불공평하지 않는가? 사진 출처 - 뉴시스  필자는 1965년 2월부터 1965년 5월까지1년3개월 동안 베트남에 용병으로 파견되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비둘기부대에서 청룡, 맹호, 백마, 백구 등 년 인원 5만 3천명이 9년 동안 파견되었는데, 전사가 6천여 명 부상 2만4천명 고엽제 환자가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미군을 비롯한 참전 연합군도 많은 전사 부상자가 속출했고, 결국10여 년 만에 호치민이 이끄는 월맹군에 연전연패했다. 그들은 진즉 외세를 물리치고 그동안 부진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당당히 북미간 회담의 장소로 제공을 하고 있다.  미국은 그간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전쟁이 베트남 전쟁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베트남과도 국교를 수교했다. 그리고 금번 호치민시에서 북미정상 회담을 가졌다. 결국은 미국이 대 중국을 겨냥한 지역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가 아닌가?  전쟁은 인간멸살이기에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강대국의 최신무기 미사일 핵무기 등 생산과 이를 사용함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전쟁의 상흔은 우리 후손들에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은 전사자는 물론 고엽제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군들은 자국에서 보상을 받았지만 한국군은 많은 고엽제 환자들이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고엽제 환자는 면했지만 전우인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북미 정상이 하노이에서 전쟁 아닌 평화의 선언을 기대했는데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제 전쟁 아닌 평화세상을 이루는데 모두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염원해 본다.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9-03-07 | hrights | 조회: 1146 | 추천: 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지난해 한 남성의 고발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드러나게 된 ‘버닝썬 물뽕사건’은 2015년 소라넷의 실시간 강간 동영상 촬영과 유포, 양진호 사건으로 드러난 불법촬영물 유포 사이트와 피해자에게 돈을 받고 동영상을 삭제하는 기관이 같다는 것. 17년 동안 소라넷에 대한 조치는 미루고, 몇 년 안 된 워마드의 홍대촬영은 즉각 조치하는 남성 경찰과 검찰, 사법부의 관점이라는 프레임의 연장선에 있다. 그것은 여성들의 몸은 남성들의 관음과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실천의 장으로 존재하지만 남성의 몸은 여성에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이중 잣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혜화동 불법촬영 근절 시위에서 10만이 넘는 여성들이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를 외치며 불법촬영의 예방과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할 때 많은 남성들은 ‘과격하다!’ 고 했다.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모든 남성을 적으로 모는 여성운동은 옳지 않은 거라며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했었다. 경찰은 이러한 여성들의 분노에 대통령까지 나서자 강력대응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몰카 판매 금지’ 같은 가장 중요한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강력처벌의 수준도 기대 이하였다. 남자들은 그 피해가 자신의 아내, 누나, 여동생, 딸일 때는 피해자 여성보다 더 분노하는데 그 이유는 본인 소유물에 대한 침해라는 관점에서의 분노일 때가 많다. 그리고 대다수 남자들은 곧이어 아내, 딸 등의 행실을 따지며 피해자에게 분노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가 이미 거대한 구조로 정착되었고, 일상화되었으며, 자신도 타인의 여자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구조이기 때문에 일상화된 사건에 개인의 저항이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자들은 구조에 분노하기보다는 피해자에 분노하고 낙인을 찍으면서 더욱 더 견고하게 남성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수록, 항상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어야 하는 여성들의 존재가 커질수록, 음침한 남성연대는 여성의 몸과 성을 훑고 착취하고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소라넷, 양진호의 사이트 외 수많은 불법사이트들이 존재하고 떼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남성연대,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찍는 놈, 올리는 놈, 보는 놈’ 모두가 여성폭력, 여성착취라는 카르텔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소라넷의 실시간 강간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 경찰은 ‘장난’이라고 했다. 온라인이니까. 불법촬영물 사이트도 마찬가지로 대응했다. 안이하게. 온라인이라 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말이다. 버닝썬은 어떤가? 온라인은 결론일 뿐이다. 동영상은 결론이고 서론, 본론은 오프라인에서 발생한다. 버닝썬은 그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뽕을 술에 타서 여성을 심신불가능 상태로 만들고 바로 위층의 호텔로 끌어가 성폭행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서 사이트에 올리고, 그걸 보는 남성들은 ‘학습’한 후 실습에 돌입한다. 한 좌석에 수십에서 수백씩 하는 돈을 뿌려가며 여성을 낚고 약을 먹이고 싫다면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여성은 이들에게 무엇일까? 누군가 나를 인간이하로 취급할 때, 그 누군가가 권력/힘을 가지고 있고 또 집단이라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개인적으로는 저항하다가 위압을 당할 것이고, 피해자임에도 숨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피해자이거나 될 가능성이 있는 동질의 집단이 있다면? 피억압자 정체성을 극복 했는가 아닌가에 따라 대응은 달라질 것이다.  여성들은 그동안 너무도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억압과 착취를 당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착취를 버젓이 자랑 질하고 전시함으로써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위협하면서 더욱더 침묵하고 순응하라고 강요한다. “안 그러면 너도 이렇게 될 거야.” 라고. 순응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고, 순결하면서 섹시해야 하고, 여성성을 갖춰야 하며, 남자가 부를 때는 언제든 ‘네’를 말해야 하는 존재이다. 여기에는 화장품, 옷, 구두, 가방, 여성교양 및 취미, 과학적 모성(수유방법, 영재만들기...) 및 가사노동( 인테리어, 청소, 위생, 요리, 수납...), 클럽, 호텔, 성매매 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산업들인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이든 사무직이든 여성은 남성의 63%의 임금밖에 못 받으며 노동하고 있다. 이 역시 여성착취에 기반 한 산업이다. 여성은 집 안과 밖에서 평생을 노동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지만, 사회와 국가는, 이데올로기와 관습은 여성의 노동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착취를 은폐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착취는 ‘구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남성들의 ‘행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둘은 상호구성하면서 여성착취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는 주범이다. 때문에 “과격하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착취의 은폐성을 각성한 여성들은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자들은 구조로서의 가부장적 남성연대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착취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MBC  버닝썬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에는 아쉽다는 표현, 그립다는 표현, 꼭 부활하자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이건 과감한 자기주장이 아니다. 아주 무식한, 무사유한 결과의 표현이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하는 자의 자의식일 뿐이다.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다. 악은 악하고자 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사고하지 않음으로써, 집단적으로는 시시비비를 논하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착취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사고 없이, 논의 없이 실천하는 수많은 이들, 특히 남성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고, 가부장제 산업구조는 여성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자본의 원시적축적의 진원지인 것이다. 여자 친구를 성매매로 몰고 돈을 갈취하는 남자들은 그저 그러한 진실을 실천하고 있는 중 일 뿐이다.
2019-02-20 | hrights | 조회: 1259 | 추천: 7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유엔 인권 사무소에 따르면, 2015년 3월 이후 2018년 8월 23일까지 예멘 내전으로 민간인 6,660명이 사망하고, 10,563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실제 숫자는 이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2018년 12월 6일-13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유엔 중재로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이끄는 예멘 정부와 반군을 이끄는 후티 사이의 협상으로 전략적 격전지인 예멘 서부지역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알 후데이다와 타이즈 지역 등에 대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 휴전협정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2019년 1월 말 현재 이 지역들에서 양 측 사이의 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예멘 내전이 종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주요한 걸프 왕국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가 예멘 내전에 깊이 개입하면서 각각 서로 다른 파벌들을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지도1.에서 보듯이, 사우디는 하디정부, 아랍에메리트는 남부과도위원회, 카타르는 이란과 함께 후티정부를 각각 지원하고 있다. 지도1. 2019년 1월, 무장 파벌들의 통제 지역  2015년 3월, 이 내전은 하디정부의 장악력을 높이려는 사우디 주도의 아랍연합군(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수단,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과 후티 민병대를 지원하는 이란 등 양 측 적대국들의 개입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2017년 이후, 아랍에미리트가 지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는 사우디가 후원하는 하디정부뿐만 아니라 이란과 카타르가 지원하는 후티정부와도 교전하고 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사우디의 통제권 밖에서 적대적인 전선을 구축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남부과도위원회가 창설된 이후, 전선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면서 더 복잡해진 형국이다. 전임 아덴 주지사 아이다루스 알 주바이디(아덴 주지사 재임:2015년 12월 7일-2017년 4월 27일)가 하디 대통령의 아덴 주지사 해고 결정에 항의하면서, 남부과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렇게 하디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분리해 나온 남부과도위원회의 최고지도자는 알 주바이디이며, 남부과도위원회 본부는 아덴에 있다. 남부과도위원회는 1990년 북예멘과 남예멘을 통합해 창설된 예멘 공화국(1990-내전) 이전에 존재했던 남예멘(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지역 영토 대부분에 대한 통치권을 추구한다(지도2. 참조). 이를 반영하듯, 남부과도위원회는 남예멘 영역에 속했던 7개주, 즉 아덴, 라히즈, 달레, 사부흐, 하드라마우트, 알 마흐라, 소코트라 주의 전임 주지사들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남부 살라피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인 하니 빈 브레이크를 구성원으로 포함한다. 남부과도위원회의 목표는 남부지역에서 하디정부를 대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2. 북예멘과 남예멘 영토  2017년 5월 12일, 하디 대통령은 이러한 남부 분리 독립 가능성을 거부하면서, 남부과도위원회를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하고, 불법으로 선언했다. 2018년 2월초 아덴에서 남부과도위원회와 하디정부군 사이의 교전으로 40명 이상 사망하였으며, 남부과도위원회가 아덴의 주요 정부 건물들과 기반시설들을 장악하였다. 현실적으로 남부 예멘 지역에서 하디정부 세력은 남부과도위원회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2019년 1월 말 현재 하디 대통령은 그의 아들들, 각료들과 함께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2015년 2월, 하디는 후티에게 밀려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수도 사나에서 가택 연금되었다. 한 달 후에, 그는 사나를 탈출하여, 자신의 고향 아덴으로 피신한 이후 사임을 철회하고, 후티를 쿠데타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2015년 3월 25일 후티세력이 아덴으로 진격하면서, 보트를 이용해 아덴을 탈출하여 리야드로 피신했다. 2015년 9월 사우디의 아덴 폭격 성공으로 하디가 일시적으로 아덴에 복귀하였으나, 그는 다시 리야드로 탈출하였다.  반면, 새로 창립된 남부과도위원회는 아덴에 본부를 두고 각주의 전임 주지사들과 협력하여 현지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아덴 주민들은 아랍에미리트가 후원하는 아덴은 두바이처럼, 번영하는 항구도시로서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2019년 1월 현재, 아랍에미리트가 후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는 사우디가 후원하는 하디정부를 능가하는 매우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2017년 6월 5일,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연합은 카타르가 무장단체들 및 알카에다와 ISIS를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카타르와 모든 관계 중단을 선언하고, 카타르의 예멘내전 참가를 중단시켰다. 반면 같은 날, 후티가 이끄는 소위 혁명위원회 위원장인 무함마드 알리 알 후티는 카타르와 협력할 용의가 있으며, 카타르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남부과도위원회 대변인 살렘 알 울라끼는 “카타르가 후티에게 무기를 사도록 재정지원을 함으로써, 예멘뿐만 아니라 아랍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이란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일한다.”고 주장했다. 남부과도위원회 청년 분과장인 나자르 하이삼은 “카타르 정부는 후티가 더 많은 무기를 살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알 자지라 뉴스 방송과 이란과 레바논의 방송망 등을 통해서 무슬림형제단과 후티를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2018년 5월, 카타르 정보장교 무흐신 알 카르비가 후티와 협력한 혐의로 예멘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예멘-오만 접경지대 화물 항구를 통해 예멘을 탈출하려다가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가 충돌하는 행보는 사우디 주도의 아랍연합군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예멘 지배권을 대상으로 한 걸프 왕국들 사이의 투쟁이 예멘 현지의 서로 다른 무장 파벌들을 후원하면서 예멘 내전을 이끄는 강력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등 국제사회가 주도하는 예멘 분쟁 해결 노력은 쉽게 성취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랍에미리트가 후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는 카타르가 후원하는 후티가 장악하고 있는 북부지역보다는, 오히려 사우디가 후원하고 하디정부가 통제하는 남부지역을 확고하게 장악하기 위해서 더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역내 강국들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연계된 예멘 내전 상황을 쉽게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사우디는 북서부에서는 카타르에게, 남부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에게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 상황은 하디정부를 중심으로 예멘 내전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사우디에게 결코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Aden's STC says Qatar is giving Houthis financial support, Ali Mahmood, July 23, 2018,   https://www.thenational.ae/world/mena/aden-s-stc-says-qatar-is-giving-houthis-financial-support-1.753172 Arab coalition suspends Qatar’s participation in Yemen,  5 June 2017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gulf/2017/06/05/Arab-coalition-suspends-Qatar-s-participation-in-Yemen.html Banished Aden governor forms independent "South Yemen" council, 11 May, 2017  https://www.alaraby.co.uk/english/News/2017/5/11/Governor-turned-president-Adens-Al-Zubaidi-announces-council-to-govern-South-Yemen GCC rejects formation of Yemen transitional council, 14 May 2017   https://www.aljazeera.com/news/2017/05/gcc-rejects-formation-yemen-transitional-council-170513141733873.html Hadi Rejects ‘South Council,’ Urges Members to Clarify their Stances, May 12, 2017,   https://eng-archive.aawsat.com/ibrahim-al-qurashi/news-middle-east/hadi-rejects-south-council-urges-members-clarify-stances Houthi militia leaders, Iran come to Qatar’s defense after severance of ties, 6 June 2017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gulf/2017/06/06/Houthis-join-Iran-come-to-Qatar-s-defense-after-severance-of-ties.html How did Qatar back the Houthis in Yemen? Aug. 3, 2017,   https://www.egypttoday.com/Article/2/15264/How-did-Qatar-back-the-Houthis-in-Yemen Manuel Almeida(2018). Federation plan should be top priority in Yemen, February 08, 2018, http://www.arabnews.com/node/1242136 Qatar Human Rights Committee condemns arrest of Qatari national, 14 May 2018  https://www.aljazeera.com/news/2018/05/qatar-human-rights-committee-condemns-arrest-qatari-national-180514094117721.html Qatari intelligence officer arrested over Houthi militia support, 2 May 2018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gulf/2018/05/02/Qatari-intelligence-officer-arrested-over-Houthi-militia-support.html Yemen on the brink: how the UAE is profiting from the chaos of civil war, Fri 21 Dec 2018,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8/dec/21/yemen-uae-united-arab-emirates-profiting-from-chaos-of-civil-war Yemeni government arrests a Qatari officer on suspicion of cooperation with Houthi militia, 02 May 2018, http://www.arabnews.com/node/1295421/middle-east Yemeni President Hadi 'under house arrest' in Riyadh, 7 Nov 2017   https://www.aljazeera.com/news/2017/11/yemen-president-hadi-house-arrest-riyadh-171107082638642.html Yemen Prime Minister Holed Up As Separatists Seize Most Of Key Southern City, January 30, 2018  https://www.npr.org/sections/thetwo-way/2018/01/30/581821833/yemen-prime-minister-holed-up-as-separatists-seize-most-of-key-southern-city
2019-02-08 | hrights | 조회: 2180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갑갑하다.  최근 들어 왠지 갑갑하다. 정국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원인이지 싶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벌려놓고 수습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촛불시민항쟁의 위력으로 수십 년 간의 징역형이 예상될 정도로 무능과 부패를 저지른 두 명의 역대 대통령을 수감시켜 놓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옛날 같으면 이들의 수하에서 이른바 호가호위한 자들은 아예 척살되거나 어딘가에 숨어 숨죽이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적반하장 격으로 정가에서는 물론이고 백주대낮에 목소리를 높일 뿐만 아니라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네들이 정의요 진리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 뒤에서 법적으로 작동하리라 여겨지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의 덕목이 어른거리고, 이를 저들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느껴야 하는 심사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고 뭐고 아예 그 싹을 자르듯이 하면서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던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이 그들의 정치사회적인 아버지였고 뿌리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한편으로 민주주의의 허약성의 일면을 떠올리게 되니 어찌 심사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주적인 법 절차에 따라 이른바 적폐청산을 과감하고도 순조롭게 수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 동안,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 운운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일찍부터 나돌아 다니더니 급기야 현 여당에서 길러내어 두 번씩이나 도지사를 지낸 인물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가 되고, 역시 여당에서 길러낸 두 명의 도지사가 범죄 혐의를 받고서 검찰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짓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수고대하던 적폐청산, 그 깃발이 찢어진 채 허공에서 나부끼는 형국이다.  게다가 적폐청산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경제 난국’이 발목을 잡는다. 과연 경제 난국인가? 경제가 어떻게 어려운지 그 원리는 물론이고 실상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이 교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정치적으로 일단 백기를 든 셈이다. 반대 야당에서는 적폐청산에 몰두하느라 경제를 망쳐버렸고 남북 평화에만 정신이 팔려 경제를 망쳐버렸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없을뿐더러 앞뒤 논리도 맞지 않는 억지인데도 짐짓 또는 진심으로 그렇게 주장한다. 이를 통해 저들이 적폐청산은 말할 것도 없고 분단극복 · 남북평화와 같은 민족의 역사적인 숙원마저도 정치적인 술책의 재제에 불과하다고 여김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불리하게 만든다면 그 어떤 정의나 진정한 가치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북평화세력과 적폐청산을 외치는 자들이야말로 적폐청산의 대상이라고 떠든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극을 달린다. 그런데 마치 그네들이 ‘턱도 없이’ 내뱉는 이러한 말들이 적중이라도 한 것처럼 청와대 최고의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비위’가 터져 나왔다. 수사 개입 운운하기도 하고 근무시간에 한가하게 골프를 쳤다는 소식이 전국을 강타했다. 전면교체가 결정되었다. 꿀 먹은 벙어리 신세,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민주독재’라는 팻말을 들고서 민주노총에서 일보삼배까지 해 가면서 현 정권의 노동 정책을 전격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광주형 일자리 운운하더니 현대자동차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밀실야합의 예산심사 결과 각종 복지예산액은 현저히 거부되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름과 면면이 소개되면서 마치 승전고를 울리듯이 지역개발을 위한 예산액이 증폭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여당이 거부한 탓에 두 정당 대표가 단식 중이다. 이와 더불어 물론 쉽다고 여긴 것은 결코 아니지만, 연초부터 불어 닥친 민족을 위한 큰 소식에 이어 여러모로 힘써 성과를 올려온 끝에 아직도 충분히 기대해마지 않는 분단극복 · 남북평화의 염원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북미간의 대 협상도 그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조차 아직은 오리무중 말만 무성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니 어찌 갑갑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필부마저 이렇듯 갑갑한데 목숨을 걸기까지 하면서 민주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 온 많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대통령이 과연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당시 대통령 박근혜 씨가 밤이 되면 청와대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할까 하고 그저 궁금해 했다. 그런데 지금의 대통령은 해결되지 않은 채 산적한 현안들을 붙들고서 씨름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2. 분하다  그래서 분한 마음이 일어난다. 어떻게 만든 절호의 기회였던가,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떻게 또 다시 날려버리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갑갑한 마음과 겹쳐 분한 마음이 이는 것이다. 심지어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것도 몰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더욱 분하다. 정치란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 권력을 손에 쥐면 다들 그렇게 변심하기 마련임을 몰랐어, 그동안 억눌려 살아온 사람들이 이때가 기회다 하고서 잇속을 챙기려는 마음이 더 강하지 않겠어, 기회가 왔는데도 초심으로 돌아가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모두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어, ‘내로남불’이라고 하지 않던가, 등등. 누군가가 지껄일 것 같은 온갖 ‘무서운’ 말들이 뇌리 속에서 맴돌면서 갑갑하고 분한 마음에 이어 자괴감마저 이는 것이다. 각종 가짜 뉴스들이 모든 일들을 희석시켜 전후좌우를 분간치 못하게 하고 그런 와중에 부패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온갖 간사한 술책을 부리는 자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이 마음들이 뭉쳐져 원통하다는 마음마저 이는 것이다. 3. 차분한 마음으로  철학자 하이데거는 감정이 존재를 표현하고 일러준다고 했다. 갑갑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어찌 나 한 사람에게서만 일 것인가. 추운 겨울에 수시로 나가 촛불을 들고서 수십 년 갑갑하고 분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래도 차분하게 질서정연하게 대업을 이루어낸 그 수많은 인물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갑갑하고 분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민주 세력의 집단적인 감정은 그들의 존재를 표현하고 일러줄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촛불의 위력으로 집권을 하게 된 세력들은 그야말로 현명하면서도 성실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아직도 순진하게 믿고 싶고 사실은 믿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의거해 위임받은 일시적인 권한임을 명명백백하게 마음에 아로새겨야 한다. 자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면면을 보건대, 당신들이 맡은 일을 당신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을 대신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 일은 얼마나 중차대한가. 그런 어렵고 엄중한 일을 맡은 자들은 함부로 웃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슬퍼해서도 안 된다. 마치 권력을 누리니 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하는 심사를 지닌 양 만면에 미소를 띠고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그런가 하면,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모습을 보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격조 없이 비난해대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가. 서로를 오로지 권력을 탐하는 자들로만 여기게 되면 상대를 무조건 내 권력을 위협하는 적으로 여겨 그처럼 후안무치한 방식으로 비난의 공격을 퍼부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후안무치한 정치꾼들을 몰아내어 발본색원할 수 있을지 차분하고도 현명하게 그리고 빈틈없이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라도 그 뜻과 지혜를 모아 실천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처럼 민주 시민들의 힘으로 맡게 된 국민주권의 국가 권력을 한낱 정치꾼들의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2018-12-12 | hrights | 조회: 1289 | 추천: 11
윤영전/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세상을 한 80여년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과의 아름다운 삶을 이어왔다고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필자다. 그러기에 지난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연이 되어, 자신의 사고를 높이고 자연스럽게 지식까지 습득하면서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많은 인연들과의 삶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만남의 시간을 자주 갖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인연의 끝자락에 아쉬워하며 부족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즐거움을 갖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연들을 공유하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오기도 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인연으로 한 세대를 훌쩍 넘겨버린 지 오랜 세월인데, 특별히 만남을 청해왔다. 몇 달에 한번 보는 형편이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물론 그가 어떤 문제로 나를 찾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먼저, 그를 잠깐 소개한다. 우리가 불혹의 나이 언저리에 이르렀을 때에 만학도의 향학열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대학원 경영연수과정에 동문으로 함께하여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왔었기에 상당히 절친한 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류 박사는 자신의 전공이자 전문적 연구학문인 최면심리학의 박사이며 심리학연구소장으로 거침없는 연구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보기드문 유명 학자였다.  그는, 한 5년 전의 만남에서 심리 최면연구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서로가 소통하기 쉬운 시문학에도 접근하면서 이미 유명인사와의 교류도 넓히며 벌써 시집을 상재했다고 하였다.  류 박사는 필자에게 시집 앞면에 멋들어진 축하 서예를 부탁하였고 나는 흔쾌히 붓을 들어 “好書文樂. 人生幸福” ‘祝, 류한평 박사 시집, 인생을 행복하게’  出刊記念 書藝 1점을 써 주었다. 한국최면심리학선구자, 류 박사가 서정 잠언 힐링 시집을 낸다니! 그는 감성을 자극해 마음을 즐겁게! 심신공통을 치유생활에 활력을! 주안점으로 한 내용으로, 얼마 후에 좋은 시들을 게재한 시집을 출간하였다. 사진 출처 - 대한심리연구소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바로 금년 중반에 류 박사는 나에게 깊이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서초구 반포성당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면서 약속장소에 갔다. 다름 아닌 “고뇌의 결단” 이라며 자신이 심리학 최면술의 대가라고들 하지만, 가톨릭에 영세를 받기로 했다면서 나에게 代者를 서 달라고 했다.  나는 선뜻 “안 그래도 류 박사가 신령 최면 세계에서 신의 존재에 수긍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했었는데, 아주 반가운 소식이라”고 대 환영이라 했다. 그리고 보름 후에 성당 영세 미사에서, 그의 등에 손을 얹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제자가 되기를 간구했었다. 류 박사도 만족해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함께 느끼는 순간이었다.  올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평소 몸에 약간의 질환이 있는 것 같아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었다. 물론 옛 나이로 치면 여든을 몇 년 지났으니 건강이 젊은 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정능력에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심리학 박사로 최면의 대가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걱정이었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은 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해 걱정이었다. 아들과의 어려운 통화를 하면서 병세를 물었다. 현재 의사의 소견은 면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금지시키고 있다는 엄격한 말을 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러기를 1-2개월이 되었다. 다시 병세를 물었지만 호전이 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 한번, 잠깐이라도 병문안을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도 제한된다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단 한번 이라도 만날 수 없다니! 야속하기만 했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는 류 박사를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는 충남 청양 출신으로 일본 최면과학원을 졸업했고 국제공인의학 최면치료사 자격증을 따고 명예 교육학 박사도 받았다. 미국, 일본 최면대학 객원교수로 활약하며 당신의 전공인 최면 심리관련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류 박사는 자기최면, 타인최면, 건강최면 등 21권의 최면 정신건강에 대한 저서가 있다. 국내 다수의 대학과 정부기관, 주요 약품제약회사, 중앙공무원 등 수많은 강의와 실험을 직접 보여주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심리학의 최상지식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학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지난날 고인이 되기 전에 육 여사의 치료와 생전 윤보선 전 대통령도 직접 방문해 심리 최면술로 치료를 한 그였다. 국내외는 물론 해외에도 출강하고 국내외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당신의 전문인 최면 심리치료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자신이 갖고 있는 특수하고 실재적인 전문 최면을 가능한 보다 많이 시술하였다. 나는 그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연구로, 많은 심리치료가 이루어져 환자들이 즐거움을 갖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들에게서 온 연락은 결국 회생하시지 못하고 운명했다는 비보였다. 나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단 한번 이라도 만나야 했는데, 그만 그 많은 인연들과 영원히 이별이라니 너무도 아픈 마음이었다. 우리 동기회서 조화를 보내고 빈소를 찾았다.  유족의 슬픔이 얼마나 클까? 아무나 하지 못한 특수한 심령 최면술에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안을 받았는데, 당신 본인이 이런 비통을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통탄뿐이다. 영안실 영정에 온화하고 다정한 류 박사의 모습이 너무도 평안해 보였다. 부디 저승에서도 많은 영혼들에 평안을 돌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류 박사는 평소 나의 분단조국과 평화통일에 대한 운동을 격려해 주었었다. 나는 그 때마다 “전쟁광들 모두심리치료로 허물어 버리면 좋겠다”며 반 농담도 했었다, 류 박사의 아래 시를 상기한다.  “민족이 함께 사는 길” 남북 분단 대치 어언 70년, 왜 단군의 한 핏줄끼리 갈라져서 적대시 하고 싸워야 하나? 남북이 충돌하여 핵전쟁이 나면, 모두 몰살인데, 더러 살아남는다 해도 문명은 파괴되고, 자연은 방사능에 오염. 생존하기 힘들 텐데, 전쟁에서 이긴들 무슨 소용. 우리 민족이 함께 사는 길은 통일뿐. 통일로 어느 한쪽이 손해 본다 해도, 전쟁으로 다 처참해 지는 것 보다 백번 낫지 않을까? 통일의 기본 요건은 먼저 상대 존중 포용 교류, 친화와 신뢰를 구축 하는 일, 남북통일, 적을 동지로 만들 수 있는 지혜와 신념과 용기를 가진 통치자가 나오면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류 박사님 부디 영면하소서!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8-12-05 | hrights | 조회: 1024 | 추천: 1
김학성/ 전주교도소 의무관  오늘날 교정시설은 교정이념에 따라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성공적 재사회화라는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대규모 시설에의 과밀수용 등 교정교화를 위한 기본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교정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혐오시설 수준에 놓여 있으며, 출소자들에 대한 인식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국민들은 각종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죄행위의 잔인함과 흉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범인들의 빠른 검거와 강력한 처벌을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교정시설에 수용된 이후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또 소위 교정교화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들이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와 어떠한 과정을 겪으면서 재적응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이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법행위를 반복하며 소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사회적 폐해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사회 재적응 과정에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사회공동체적 노력은 필수적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수형자 교정교화와 사회적응, 교정시설을 둘러싼 우리사회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형자 교정교화는 교정시설에만 의존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 교정시설 내 대다수 수용자들은 우리사회로부터 낙인 받고 영구히 격리되어야 할 전과자가 아니라, 언젠가는 건전한 시민사회 일원으로 복귀해야 하는 우리 이웃 주민이다. 이들의 범죄 성향 여부를 떠나 이들이 정작 사회로 돌아가 지역사회에 재적응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 누구도 범죄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만성적 실업과 심화된 사회양극화의 현실 속에 일반 국민들조차 감내하기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이들이 출소 후 지역사회에 재적응하기까지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은 바로 이웃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 도움에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교정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에서이다.  첫째,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과거 일제시대 독립군이나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투옥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들이 교정시설에 투영되어 있다. 교정교화의 상징이 되어야 할 교정시설이 고문이나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인권침해 시설로 인식되어 있으며 심지어 합리적 여론 형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언론매체에서조차 감옥이나 간수라는 용어가 사라지지 않는 실정이다.  둘째, 교정시설은 그 특성상 사건 사고 위주의 언론보도에 매우 취약한 시설에 속한다. 교정교화를 위한 현실적 토대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보도내용의 상당수는 도주, 사망사고 내지 인권침해 사례 등 사건, 사고 위주가 주를 이루어 왔다. 이에 따른 교도관의 책임과 자질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고생하는 대다수 교도관과는 상관없이 교정시설이 마치 인권탄압이나 부정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어, 결과적으로는 교정행정이 더욱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왔다.  셋째, 교정시설 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수형자들의 실생활에 기반 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인권정책, 관련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의식 부재이다. 최근 인권의식의 향상에 따라 교정시설 내 수용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상당히 높아져 있으면서도, 정작 인권의 근간이 되는 낙후된 시설 개선과 과밀수용의 해결 등 수형자 기본생활권 확립에는 무관심하다. 대규모 시설에의 과밀수용은 그 자체로 수형자간 불필요한 갈등을 증가시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파괴할 뿐 아니라 교정교화의 기본이 되는 분류처우를 어렵게 하는 등 인권처우와 교정교화의 존립근거를 흔드는 독소적 요소이다. 사실상 수형자 인권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수형생활의 기본권 보장의 근간이 되는 교정시설의 현대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정시설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장벽은 교정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겨 자신들의 주거지역내 시설설립을 적극 반대하는 지역사회주민들의 인식이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형자들의 생활상과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현장 교도관들의 합리적 의견이 교정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  국민이 교정시설을 혐오시설, 인권탄압과 부정비리의 온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가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지역사회적응으로부터 멀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직도 인권탄압의 주체를 교도관으로 잘못 인식시키고 있는 일부 인권단체나 언론매체들은 합리적인 여론 형성의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수형자들의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교도관들의 의견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현실에 맞는 교정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매체들의 교정시설에 대한 합리적 성찰을 위한 노력들은 시민들의 교정시설 인식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수형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회공동체적 노력은 수용자 교정교화와 사회 재적응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이다. 교정교화의 궁극적 완성은 교정시설에서가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정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시민의 행복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사회안전망으로써, 시민사회의 적극적 관심과 연계 속에 이들의 교정교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시설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2018-11-27 | hrights | 조회: 1012 | 추천: 6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아홉 달 동안 제주에 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여행 와서 보던 제주와 살고 있는 제주는 완전 별개라는 것이다. 여행 와서 보고 싶은 모습만 보던 제주와 현재 살고 있는 제주는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내가 이곳에서 말하는 제주는 뉴스에 나오는 제주와도, 여행지 제주와도 다르다. 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여행지에서는 부딪히지 않을 감정들. 어떤 때는 너무나 불편해서 집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것들.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이곳의 오래된 문화와 내가 배우고 누리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이곳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 몇 달 혹은 일 년 정도 살다 다시 육지로 나갈 거라면 무시하고 넘겨 버릴 수 있겠지만, 제주에서 나갈 때를 정하지 않은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내야 하는 것들이다. 소화하다, 이 표현이 적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지 알게 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지는 않는 상태. 현재까지는 그 상태로 제주에서 나는 살고 있다.  모다들엉 놀게마씸   제주 생활과 함께 시작한 나의 도서관 사서 자원봉사.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사업과 행사를 치러야 하는 줄 알았다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상가리 마을 작은 축제 도서관에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사진 출처 - 필자  '모다들엉 놀게마씸'은 제주말로 "모여서 함께 놀자”라는 뜻이다. 상가리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는 제주시마을만들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9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유기견을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이들과 나눈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해요>, 직접 요리하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던 <요리 조리 어린이 요리 체험>, <캘리그래피로 만나는 명언>, <조물조물 아이 클레이>, <캐릭터 그리기>, 같이 마을길을 걸으며 구석구석 알게 한 <우리 동네 한바퀴>, 10주간 매주 노인정에서 그림책 읽어드린 <책 읽어주는 사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한 <어린이 게이트볼 교실>, <중국어 동극>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새마을문고협회의 지원으로 <중국어 그림책>과 <제주어 동요 배우기> 수업도 이루어졌다. 시골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 체험을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위 수업들 외에도 동네에서 영화 보자는 취지로 영화상영을 네 차례나 열어 아이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 모든 수업과 행사 참가자가 400명을 넘었으니 시골 마을에서 이런 행사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올해의 모든 프로그램을 끝내고 총정리하면서 도서관축제를 마련했다. 주민들이 기증해준 600여 권의 책을 무료나눔하고, 올해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제주어동요’ 공연, 더럭초 5학년들의 ‘오카리나’ 연주, 4학년들의 ‘중국어 동극’ 등 축하공연도 열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행사를 준비한 도서관 사서들 모두 뿌듯해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깔끔하고 아이들이 책읽기에 포근한 마을도서관. 올초 리모델링되기 전에도 도서관이긴 했으나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창고 비슷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무료봉사하는 사서들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책들도 제대로 분류가 되고 새 책들도 다수 들어오는 등 살아움직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전에 편하게 이곳을 드나들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새단장을 한 후 잘 모르는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는 도서관이 왠지 불편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 모양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몇몇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마을 예산으로 리모델링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해 보자는 취지로 자원봉사자들이 나섰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작 본인들은 소외시키고 마치 이주민들끼리 모이는 아지트처럼 비쳤던 것 같다. 나보다 몇 년씩 먼저 제주에 온 다른 사서들은 이미 이주민과 토박이들 사이의 거리감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자꾸 만나고 부딪혀야 서로에 대해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상가리마을도서관 사진 출처 - 필자  도서관 사서들이 2인 1조로 10주간 노인정에서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나는 첫 책으로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책을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에 나오는 곶감은 제주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땅콩도 잘 재배하지 않고, 겨울은 쉬는 시기가 아닌 귤 수확철이라는....어르신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부랴부랴 책읽기를 끝내니 진땀이 났다. 책읽기가 끝나면 다른 사서가 민요를 몇 가락 불러드렸는데, 역시 책보다는 민요!   이주민들이 늘면서 그들이 제주로 데리고 들어오는 애완견들도 늘었다. 시골에서 가장 눈에 띄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개에 대한 인식인 듯하다. 시골에서도 개를 많이들 키운다. 마당에 개집을 두고 집 안에 들이지는 않는다. 여름 한 날 도서관 뒤에서 어르신들에게 수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큰소리가 났다. 대접하는 부부 중 부인이 애완견을 안고 수박 근처에 온 것이다. 할머니가 먹을 것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며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먹을 음식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것과 같이 산다는 개념의 차이만큼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할머니가 밭에서 쭈그려 일하고 할아버지는 밭두렁에서 담배 피면서 쉬는 풍경이다. 할아버지는 경운기 옆에서 쉬고 할머니가 농약통을 짊어지고 농약을 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모든 할아버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길 바라지만). 제주의 할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년 내내 바쁘게 움직인다. 할머니들이 보기에 집에만 있는 여자들(대부분 이주민 엄마들)은 놀고먹는 팔자 좋은 인간들이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토박이 딸, 며느리 중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은 없다. 집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들은 봤어도.  내가 사는 집은 주변이 다 새로 지은 집들이라 마을 한가운데 있는 농가주택처럼 옆집 할머니가 안 계신다. 그래서 생활하면서 특별히 눈치를 많이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골살이는 언제 어느 때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가리마을도서관과  리사무소는 출입문을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오후 5시 리사무소 사무장이 퇴근하면서 도서관 문도 잠근다. 가끔 그러지 않을 때 마을 주민 누군가가 도서관에 들렀다 불이라도 켜두고 가는 날이면, 어르신 누군가가 저녁 늦게라도 사무장에게 전화해 알려주신다고 한다. 도서관 운영한답시고 마을 비용을 헤프게 쓴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뭐라도 꼬투리를 잡으면 도서관에 대한 불만을 함께 얘기하신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본인들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다 제주 시내나 육지에 살고 있고, 막상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모두 이주민이다. 젊은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활기가 생기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평생 가꾸고 일구고 살아온 동네가 본인들 자식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식들에게 이 시골로 들어와 살라고 말은 못해도 심정적으로는 같이 살고 싶은 것인가. 그 감정을 이주민들에게 투사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2018-11-21 | hrights | 조회: 1029 | 추천: 3
: 온건 이슬람과 극단주의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왕세자 무함마드의 영구집권 기획   2018년 9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창설 기념사에서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관용적이고, 온건한 이슬람’의 원칙을 지키고, ‘극단주의, 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지난 해 10월 24일 왕세자로 등극한지 4개 월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는 ‘극단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며,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을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밝힌 정책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만 왕세자가 되풀이해서 주장하는 이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은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며, 이슬람정부의 특성, 세습통치, 군주제 등에 대한 종교적 토론을 허용하는가? 시민사회와 노조가 활성화되는 것을 허용하는가? 선출된 의회,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정부 설립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18년 9월 16일자 사우디 인권 상황 보고에 따르면, 유명한 법률가, 판사, 학자, 과학자, 언론인 등 양심수 2,613명이 수감되어있다. 사실 왕세자 무함마드가 제창한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은 국내 반대파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역내 경쟁자들이나 카타르와 이란 등 외부의 적에 맞서고, 권력을 영구적으로 유지,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기획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왕세자 무함마드는 올해 3월 미국 방문 하루 전날 미국 CBS TV와의 인터뷰에서 영구집권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오직 죽음’만이 자신의 사우디아라비아 통치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  친정부 종교기구 활용, 국내의 반대파 알 사흐와 잠재우기   왕세자 무함마드가 제창한 ‘온건 이슬람’은 왕세자 자신의 집권에 장애물로 판단되는 무슬림형제단(2014년 사우디내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과 연계된 단체 알 사흐와를 겨냥한 것이다. 알 사흐와는 입헌군주제 등 선거를 통한 민주적인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1년 2월 28일 알 사흐와 운동 소속 셰이크 살만 알 아우다를 포함한 1,550명이  [제도와 권리의 국가를 향하여] 청원을 압둘라 왕에게 제출하면서, ‘완전한 입법권을 가진 선출된 국민의회, 왕과 총리 직위 분리(현재는 국왕이 총리 겸직), 정치범 석방, 행정상의 부패종결, 언론의 자유, 인권 활동가들의 여행 금지 철회’ 등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알 사흐와의 정치적 요구사항이다. 이러한 알 사흐와의 요구는 영구집권을 꾀하는 왕세자 무함마드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이에 맞서 왕세자 무함마드는 자신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친정부 종교기구를 활용한다. 대표적인 친정부 종교기구인 고위급 울라마위원회의 활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에 활용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왕이 고위급 울라마위원회 위원장과 21명의 위원들을 임명하고, 정부는 이들에게 각각 월급을 지급한다. 현재 이 위원회가 파트와를 내리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으며, 보수적인 와하비 성직자이며 친정부 인사인 그랜드 무프티 압둘 아지즈 알 셰이크가 위원장이다.  2017년 6월 21일 고위급 울라마위원회는 알 사흐와의 요구에 맞서 정당 금지, 신정정치와 독재정치를 의미하는 파트와를 내놓았다. “무슬림형제단은 옳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슬림형제단 구성원들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도당들이다. 이들은 올바른 신앙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코란과 하디스에는 다수의 정당과 단체들을 허락하는 것이 전혀 없다. 반대로, 코란과 하디스는 이것들을 비난한다.” 이와 같은 고위급 울라마위원회의 활동은 왕이 종교를 정치에 적극 활용하는 적절한 예다.  앞서 2017년 6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역내에서 카타르가 테러 단체들을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카타르와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단절하였다. 9월 9일 1천 4백 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알 사흐와 소속 성직자 살만 알 아우다는 트위터에 사우디와 카타르의 화해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신이여 국민들을 위하여 그들(사우디와 카타르)의 마음을 합치게 하소서”라고 썼다. 1만 5천 명이 좋아요, 1만 3천 명이 리트윗, 약 2천명이 대답했다. 이 글을 게시한 몇 시간 후에 살만 알 아우다가 체포 수감되면서 강경 탄압에 불을 붙였다. 이후 며칠 동안 무슬림형제단 동조자들과 왕세자를 비난한 혐의를 받은 인사들이 30명 이상 검거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사우디 내에서 미디어 등을 통하여 매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거 사건 이후, 고위급 울라마위원회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코란과 하디스를 토대로 창설되었다. 코란과 하디스에 정당이나 정치이념에 대한 근거는 없다.”고 트위터에 썼다. 사우디 보안대는 살만 알 아우다, 아와드 알 카르니, 알리 알 오마리를 비롯한 체포된 인사들을 스파이조직 구성원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운영하는 센터 등에서 강의하면서, 카타르를 비난하지 않았고, 청년들을 혁명적인 활동에 동원하기 위하여 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하는 등 은밀하게 대중들을 조직하여 시위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9월 5일, 사우디 특별 형사법정은 비밀회의를 열고, 알리 알 오마리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30가지 이상의 테러리즘 죄목을 붙였다. 지난해 9월 체포될 당시 알 오마리는 유명한 성직자이며, 인권 운동가이고, 메카 개방 대학총장으로 매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 알 사흐와를 후원하는 외부세력: 카타르, 무슬림형제단,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   사우디의 알 사흐와 탄압 정책에 맞서, 카타르에 기반을 둔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IUMS)은 2017년 9월 11일 내놓은 성명에서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 이사회 구성원인 살만 알 아우다와 아와드 알 카르니, 알리 알 오마리 등의 체포와 구금 행위를 비난하고 살만 왕에게 이들의 석방을 요청하였다. 특히 이 성명에서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은 “구금된 학자들이 정치적 논쟁에서 인질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살만 알 아우다는 GCC형제국가들 사이의 통합을 요구하였을 뿐이다. 그의 마지막 트윗은 GCC국가들이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은 의장 유스프 알 까르다위가 이끄는 수니와 시아의 경계를 넘어 9만 명의 무슬림학자들로 구성된 세계적인 조직이며, 특히 국제 무슬림형제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이 조직의 가장 큰 후원자는 카타르다. 이것이 바로 사우디가 카타르를 적대시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사우디는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의 구금자 석방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7년 10월 8일 사우디 외무장관 아델 알 주바이르는 “사우디는 극단주의를 퍼뜨리는 수 천 명의 모스크 이맘들을 해고했다. 카타르가 다른 나라들의 국내 문제에 개입하려는 기도로 테러리즘에 자금을 댄다. 모든 나라는 테러리즘, 테러리즘에 자금지원, 극단주의, 증오 선전하기,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려는 시도 등에 분명하게 ‘NO’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카타르를 거세게 비난하였다.  2018년 3월 초에,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CBS 인터뷰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요소들이 사우디 학교를 침공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알카에다와 IS 같은 다른 무장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규정하였다.”고 밝혔다. 곧이어 3월 20일 사우디 교육부 장관 아흐마드 알 이사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슬림형제단 영향을 근절하기 위하여 교육 과정을 개편하고 있고, 금지된 무슬림형제단이나 그 이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해고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우디 교육부의 조치는 작년 9월 사우디 국립대학이 무슬림형제단과 연대 혐의가 있는 고용인들을 해고시킬 것이라고 선언한 이후 계속되는 무슬림형제단 탄압정책이다.  무슬림형제단원들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에서 사회주의-아랍민족주의 정부들의 탄압을 피해 사우디로 들어왔다. 사우디왕국은 사회주의-아랍민족주의자들에 맞서는 대항마로서 피난민 무슬림형제단을 수용하였다. 이후 무슬림형제단은 사우디왕국의 교육제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알 사흐와 조직을 창설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초 이라크의 쿠웨이트와 사우디 침공 당시, 살만 알 아우다 등으로 대표되는 사흐와 운동은 입헌군주제 등 정치개혁을 주장하면서, 강력한 정부 반대파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1년 아랍봉기 이후, 이들은 입헌군주제 등 정치개혁 요구를 다시 제기하였다.  현재 왕세자 무함마드의 강력한 탄압 정책으로 사흐와 운동은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우디 내부와 역내 정치상황을 고려해 볼 때, 카타르의 후원을 받는 거대 국제 조직인 무슬림형제단과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과 연계된 사흐와 운동의 폭발적 잠재력은 적당한 시기가 도래한다면 언제든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18-11-07 | hrights | 조회: 2076 | 추천: 6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9월 11일 인천의 B여중에서 교사에 의한 성희롱, 성차별 행위들에 대한 “스쿨(School) 미투(me too)”가 있었다. 인천지역의 여러 중, 고등학교에서도 제보들이 이어졌다. B중학교의 사건이 발생하고 인천지역 여성단체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여, 교육청 방문과 교육감 면담, 관련기관 및 학부모와 여성단체 등이 참여한 ‘집단 간담회’, 해당 학교들에 성교육 실시와 가해교사 분리,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합의하였고 B중학교의 피해학생 전수조사를 교육청과 경찰청이 진행하였다. 그러나 장학사들과 학생이 마주앉아 피해사실을 종이에 적는 방식이나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써라”, “정확하게 ‘미투’인 것만 써라”, “이걸 쓰면 너는 경찰 조사를 받아 피곤해질 수 있다.”는 등의 언행은 학생들을 더욱 불안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방식과 언행 자체가 2차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없는 것, 피해자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또한 학부모와 여성단체들은 학교장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교육과정에서 발생한 학생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교육감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정치적인 행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교육청의 이 같은 처사는 인권감수성이 엉망임을 보여준다.  인천 경찰서도 제법 빠르게 피해학생들을 무기명으로 전수조사하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였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피해자와 분리조사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특정’해야 하므로 기명으로 다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관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외면한 교육청과 마찬가지의 무지하고 몽매한 대응, 인권감수성 제로의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경찰청에 질의서를 통해 피해자들의 신원보장, 무기명조사를 통해 가해자로 판명된 경우 인지수사를 하라는 등의 의견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계획을 묻자, 기명수사 대신 ‘가명조서제도’를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학교들은 제보 학생을 색출하는 것에만 집중하였고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학생들로부터 격리하는데 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는 반드시 격리되어야 하지만 “교사의 경우 학생들과 분리하면서 교원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수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해자를 봐야하는 학생들의 괴로움이 지속되고, 교사들의 협박성 발언으로 인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 전남 광주에서 ‘스쿨 미투’ 발생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와 학생들을 바로 격리하고 가해지목인 전원을 경찰조사 의뢰하여 처벌하게 한 것과 대조적이다. 나아가 B중학교의 경우는 성폭력예방을 위한 가정통신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성폭력 예방책’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성폭력을 피해자가 예방 가능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인천의 스쿨 미투 학교에서는 영어시험에 성폭력 피해자인 연예인을 사례로 제시하는 등, ‘여성폭력’에 대한 저열한 수준의 인권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스쿨 미투 제기된 학교서 보낸 '성폭력 예방법' 가정통신문 사진 출처 - 연합뉴스(트위터 캡처)  인천의 ‘스쿨 미투’ 운동은 이처럼 학교 내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교육청, 경찰청, 해당 학교들의 저급한 인권감수성 및 여성폭력 감수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여성들은 싸움을 통해 여성운동의 과제를 발견하면서 모두 함께 성장 중이다.  ‘스쿨 미투’는 어쩌면 성인 여성들의 개인적인 ‘미투’ 운동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기도 하다. 여자와 남자라는 위계,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 어른과 청소년이라는 위계 등 여러 가지 위계구조가 중층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이던 학내의 교사 성폭력을 사회적 이슈로 불러내고 ‘스쿨 미투’를 확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다층적인 위계를 뚫고 나온 피해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우리는 불꽃이다”라는 포스트잇을 교무실 문과 게시판에 붙여가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불편/부당 -> 인지 -> 각성 -> 실천/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 중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어머니들’ 역시 딸들의 성장에 힘입어 각성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여성단체들과 연대하여 교내 성폭력의 근절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단체들’도 그동안 분명히 존재하여 왔었고, 어쩌면 여성운동가인 자신들도 당했을 법한, 그러나 각성하지 못해 지나쳤던 교내 성폭력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며, 이것이 여성운동의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성운동은 그 세대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재구성, 재생산되고 있다.  ‘미러링’을 통해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밝혀내고, 강간사이트를 밝혀 조사 및 폐쇄하게 하고, ‘불편한 용기’라는 ‘붉은 시위’를 통해 디지털 성폭력이 여성들을 성적 대상물로 전락시킴은 물론 그 자체가 이미 ‘성폭력’임을 알려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급진적 여성운동은 사회전반적인 성폭력 반대분위기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여성운동과 상관없던 많은 여성들의 ‘미투’ 운동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 ‘미투’ 운동은 ‘스쿨 미투’로 발전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도 발생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한 개인의 남성이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성폭력 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럿의 여성들보다도 남자 하나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의 투명한 반영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밝히고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결국 여성들의 ‘힘 갖추기(empowerment)’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인권은 한 발짝 더 나아갈 기회가 된다. 시련은 굴복이 아니라 저항을 가져오고 있다. 그것도 점점 더 많은 세대들을 통해서 그렇다. 여성운동은 세대 간 연대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8-10-24 | hrights | 조회: 1128 | 추천: 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한지 7년 정도 되었다. 현재 세 곳에서 하고 있는데, 수강생을 다 합치면 30명 쯤 된다. 그 중에 남자 수강생은 단 한 명뿐이다. 7년 동안의 수강생들을 모두 감안해도 생각나는 남자는 네 명 정도뿐이다.  그래서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한국의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 같다,  남자들은 직업 전선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 하기에 바쁜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제공해 주는 재정적인 여유를 통해 이렇게 철학, 문학, 예술 및 다른 여러 주제들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인간으로서 그 특유한 인문 예술적 교양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로 여자들이 누린다, 그러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행복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존재를 다듬고 가꾸는 데 열심이고, 그녀들 나름의 여성적 공동성을 함께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강의하는 나보다 강의를 듣는 그녀들이 더 행복하다는 묘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녀들에게서는 왠지 그동안 살아온 긴 세월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의 분위기가 풍긴다. 나는 강의를 통해 그녀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들을 매주 준비하느라 시간에 쫓기기 예사다. 물론 강의하는 데서 심지어 뿌듯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녀들을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강의는 의무고, 그녀들에게 수강은 자유다.     그녀들이라고 해서 나름의 고민이나 심지어 불행이라 불러야 하는 힘겨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주로 중년에 이른 그녀들에게서 자녀들을 보살피고 늙은 부모들을 봉양하느라 힘겹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 와중에 그녀들만을 위해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고들 한다. 다행이다.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그녀들처럼 자신의 존재를 가꾸는 일에 시간을 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꼭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바람직하고 그래서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이 얼마나 많겠는가. 2.  그런데 요즈음 그녀들에게 ‘여자, 너의 여성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열 번의 강의를 하기로 한 뒤, 여섯 번의 강의를 하고 네 번이 남았다. 이 주제를 놓고서 강의를 하려고 계획할 때부터 무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백컨대, 이 주제로 강의를 하려 한 것은 나를 위해서였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성에 대해 모를 뿐만 아니라 여성의 느낌을 공감할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랑했던 어머니도 여자였고, 내 누이들도 여자다. 때로는 대책 없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다고 여겼던 그녀들도 여자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도 여자다. 게다가 앞서 말한 내가 아끼는 열성적인 수강생들도 여자다. 그러고 보면 사회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반 정도가 여자다. 그녀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녀들의 느낌을 잘 느낄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들을 사랑하고 또는 사랑해야 하고, 하다못해 이해해야 한다. 과연 그 사랑과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그리고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혹시 근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체제가 여전히 강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정말이지 많은 여자들이 나의 삶에 여러모로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남자인 나는 그녀들에 대해, 그러니까 그녀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이 지닌 그 미묘한 의미의 세계에 대해 과연 한 발짝이라도 제대로 가까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때로는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때로는 짐짓 망각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따지기만 한 것은 물론이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고, 풍경을 바라보고, 또 사물을 느끼는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궁금하다. 나는 이른바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신의 존재가 절대적이라 믿고 심지어 신학교를 다니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정말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 또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서른이 되면서 결정적으로 신을 버리게 되었고 그 이후로 교회를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신을 버리기로 결단하고 신 없이 살기 시작하면서 느꼈다. ‘아! 그렇구나.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처럼 자유로운 감정으로 살고 있었구나!’  신을 믿다가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로서 살다가 남성을 버리고 여자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성전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 이는 마치 내가 나임을 버리고 너로서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여성인 여자와 남성인 남자 두 사람 사이에 과연 상호주관적인 소통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달리 말해, 성 의식 사이에 소통은 가능한가? 하고서 묻게 된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몸과 영혼> 사진 출처 - 경향신문 3.  하지만 이성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 하고 나아가 더 느끼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려는 자세와 마음가짐만으로도 이미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여자라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러나 여자의 진짜 불행은, 그것이 불행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그때는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틀렸다. 어쨌든 만약 여자가 여성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남자들을 대하면, 남자들은 그녀와 소통이 된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소통은 일방적인 포섭에 의한 폭력일 가능성이 높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당시 “오늘날 여자들은 ‘여성스러움’의 신화를 뒤엎고, 자신들의 독립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 말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생긴 몸의 생물학적인 차이와 그 기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양성 사이의 소통에서 생물학적인 근본 차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차이는 동성 간의 소통과는 다른 새로운 소통의 영역을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성 간의 소통에서 문제는 사회경제적인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구조 때문에 생겨나는 양성 사이의 일반적인 격차와 그에 따른 차별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물학적인 차이마저 차별의 근거가 된다고 여기는 일반적으로 체화된 의식일 것이다.  성 관계와 관련해 나의 의식을 반성해 본다. 남성에 속한 나는 여성에 속한 여자들을 만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위협으로 느끼거나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물어본 적도 없고 명백한 근거도 없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들도 대개 그럴 것이다. 과연 여자들도 남자들에 대해 그럴까? 이 역시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남자들을 만날 때 일반적으로 왠지 모르게 위협을 느껴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경계할 것 같다. 이런 나의 추정이 틀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보부아르 말 중에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대목은 이런 나의 추정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잠재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어서도 안 되고, 그 잠재적인 불이익이 현실화될까봐 불안해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강력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여성은 연약하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남성은 용감하고 직설적이고 진솔하다, 여성은 겁이 많고 우회적이고 음모적이다, 남성은 주체적이고 여성은 대상적이다. 이러한 차별을 수반한 편견이 집단 무의식에 의해 암암리에 또는 경우에 따라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기를 바란다.  이런 편견은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다, 남성은 논리적이고 여성은 직관적이다, 남성은 사건 중심적이고 여성은 감각 중심적이다, 남성은 집중적이고 여성은 다각적이다, 남성은 단기적이고 여성은 장기적이다, 등의 비교적 비차별적인 일반적인 차이마저 차별의 구도 속에 집어넣도록 한다. 그래서 여성이 지닌 특성들은 남성이 지닌 특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기게 한다.  오랜 세월동안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남성 지배적인 가부장적 제도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차별의 체제가 편견 형성의 원인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편견들이 체제와 제도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에 누구건 벗어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역시 쉽게 알 수 있다.  사실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어떤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다르다. 남성 체계에 의해 여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매사에 그런 지배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 느끼고 행동할 줄 안다는 것은 다르다. 내가 여성을 이해하고자 여러 여자 이론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혁신적인 담론들에 동의한다고 해서 남녀 관계에서 이미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남성으로서의 나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일전에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제자뻘 되는 어느 한 여성을 만났다. 이야기 중에 내가 요즘 여성에 관한 강의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아니! 선생님마저 그런 강의를 하면 어떡합니까?”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힐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순간적으로, ‘남자인 선생님이 여성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여성주의 담론마저 남성 지배적인 구도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 아닙니까?’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녀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남자인 내가 여성주의를 이해하려 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자 하고 그래서 심지어 그것에 관한 강의를 시도하는 것마저 거기에 이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성 차별의 심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남자인 개인으로서 무척 난감한 입장에 처한 것이다.       
2018-10-17 | hrights | 조회: 1121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