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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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강자의 논리에 따르면,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받아 마땅하다. 이때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겉으로 보면, 무력이 더 우세하면 강자고 그렇지 못하면 약자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면, 무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강하면 강자고 그렇지 못하면 약자다. 또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면,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강자고 목숨을 위해 자유를 버리는 자는 약자다.  강자의 논리는 개인들보다 집단들 사이에서 더 잘 작동한다. 개인은 쉽게 눈에 띄지만, 집단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내놓고 자신이 더 강하다고 내세우는 자는 자칫 속물로 취급되기 쉽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집단들 간에는 강자의 논리가 집단 무의식적으로 쉽게 표현된다.  자신들이 강자라고 여기는 집단은 약자라고 여기는 집단을 덜 인간화되어 있고 그만큼 더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집단은 자유보다 생명을 더 중시한 나머지 굴욕과 예속을 수치라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우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강자의 논리는 보편적인 원칙이나 가치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목숨보다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자들에게까지 자유를 허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자의 논리에 따른 자유의 원칙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래서 약자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인권을 말살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했던 과거를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현재 그들보다 더 강한 자들에게만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약한 탓에 식민의 예속을 경험한 집단은 강하기에 식민의 지배를 부린 자들에게 잘못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항간의 말은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는 시대적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강자의 논리에 따르면,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자유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은 강자를 지칭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근본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강자에게 저항하지 않고 친밀하게 굴고, 친밀하게 구는 것을 건방지다고 여기면 일정하게 굴복하고, 굴복하는 것마저 부족하다고 여기면 아예 예속되어서라도 생명을 보존하는 것은 약자에게 할당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기는 것은 약자의 논리다. 하지만 이런 약자의 논리는 강자의 논리에 속해 있다. 그 핵심은 ‘약자는 자유로울 자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생명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 역시 아무도 없다.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헤겔은 자유를 위해 생명을 저버릴 수 있는 자는 주인이고, 생명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노예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예는 주인의 노예가 아니고 생명의 노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자기의식에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공존하면서 투쟁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강자라고 여기는 자에 의해 나에게 극단적인 위기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한 번만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목숨을 애원할라치면, 같은 자기의식의 다른 곳에서 ‘죽일 테면 어디 죽여봐!’ 하고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자기의식에서 이같이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일어나 충돌을 일으켜 싸우기도 하거니와 한 집단 안에서 주인의식과 노예의식이 일어나 충돌을 일으켜 싸우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한쪽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위기에 처했는데 자존심이니 자립심이니 하는 한갓 감정을 내세워 무책임하게 잘난 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과연 그렇게 허약한 것은 자립심도 자존심도 없는 맹목적인 생명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인과 노예의 대결은 쉽게 주인의 승리로 끝날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헤겔에 따르면 주인은 노예의 노동에 의존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길든다. 다른 한편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생산물을 통해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주인은 노예의 노예가 되고, 노예는 주인의 주인이 된다.  타인의 생명을 겨누고 노리는 자는 기실 타인의 자유를 겨누어 탈취하고자 하는 자다. 자유는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따라 생명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것과 약하다는 것의 판별은 얼마만큼 자유를 위해 생명을 활용하는가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의 전략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 보 후퇴에 스며들어 있는, 오로지 목숨 부지를 위한 기회주의적인 속내를 정확하게 제거하기가 전혀 쉽지 않다. 이 보 전진은 핑계일 뿐 일 보 후퇴가 바로 투항이기 쉽다. 특히 그동안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싸워 온 자가 아닐 경우 더욱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생의 최선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행복은 인간 고유의 기능인 “탁월성에 따른 이성적인 영혼의 활동” 자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탁월성에 지적인 탁월성과 성격의 탁월성이 구분되어 있다고 말하고, 성격적 탁월성의 핵심을 중용이라고 했다. 죽음이 두렵다는 감정을 가지면서도 정의로운 일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용에 의한 용기라고 말한다.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나아가면 만용이 되고, 죽음을 너무 두려워해서 물러서면 비겁함이 된다고 했다. 매사에 중용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지혜를 ‘프로네시스(phronēsis)’ 즉 ‘실천적 지혜’라고 말하면서,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여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자유를 위한 이성적 활동을 포기하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사진 출처 - 구글  삶은 습관이다. 많은 물질적 여유를 누리다가 그러지 못하는 처지가 되면 불행하다고 여기고, 조금의 물질적 여유만을 갖다가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면 행복하다고 여긴다. 모두가 가진 것을 잘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누면 풍족한데, 거머쥐고 있으면 부족하다. 집단 구성원 모두가 자유를 위한 생명을 추구한다면, 나누는 일을 더욱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두려움은 거머쥐게끔 하고, 거머쥐게 되면 그만큼 부족하다고 여기게 된다. 위기가 닥치면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어 드러난다. 위기가 기회인 까닭이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679 | 추천: 4
이 윤/ 경찰관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탱자나무 가시는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억세고 촘촘해서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시골집에서 담장 대신 많이 사용되었다. 그 나무에도 열매가 달렸다. 다만 여름방학에 본 탱자는 매우 단단하면서도 쭈글거려서 일단 식재료의 외관이 아니었고, 냄새도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억센 가시로 인한 접근 불가능성, 단단한 과육과 떫고 시큼한 냄새는 번식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진화 사례로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만했다. 탱자는 내게 ‘너, 나 먹을 용기 있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탱자야, 미안해!! 나에겐 그 정도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동생에게 먹어보라고 했어.  뉴스를 보면서 ‘좌파/우파’라는 단어가 들리면 귤화위지의 고사가 떠오른다. 유럽에서 건너 온 좌파라는 말이 때로 종북이라는 말과 함께 패키지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탱자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좌익/우익이 사용된 것은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 의회에서다. 의회 의장이 볼 때 왼쪽에 공화파가 앉아서 ‘좌익’,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아서 ‘우익’이라고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후 공화파들이 장악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도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왼쪽에 앉고, 보수적인 지롱드파가 오른쪽에 앉았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보수적이거나 혁명 진행에 소극적이고 온건한 세력은 우익으로, 상대적으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세력은 좌익으로 나누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좌익과 우익은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1815년 이후 극우, 극좌,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등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지만 좌/우라는 용어가 특정한 정치적 이념 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좌익은 ‘자유, 평등, 조합, 권리, 진전, 개혁, 국제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우익은 ‘권위, 위계, 질서, 의무, 전통, 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위키피디아 참조). 요즘 ‘좌파’라는 말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이런 특징을 알고 사용하시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좌우파의 기원이 된 국민공회(국회)의 자리 배치. 의장석을 기준으로 급진적인 자코뱅파는 왼쪽에 앉았고, 보수적인 지롱드파는는 오른쪽에 앉았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렇듯 좌파/우파가 귤일 때에는 특정 이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급진적 개혁을 선호하면 좌파, 과거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개선하는 것을 선호하면 우파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으로 건너와 탱자가 되면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직후인 1945년 말 발표된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1946년 1월 신탁통치 찬성 편에 가담한 공산주의자들과 그 주변세력을 좌익, 반대편에 가담한 이승만·한민당 세력을 우익으로 호칭하였다. 그 후로 다른 내용들은 증발하고 ‘좌익=공산주의’와 ‘우익=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만 남은 것으로 여겨진다. 용어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하고 당시의 시대적 특징을 대변하는 내용만을 반복하여 사용한 결과일 것이다. 낮은 문맹률이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등식이 아직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미스터리이긴 하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은 좌파일까, 우파일까? 민주주의를 주권재민으로 해석한다면 권리의 평등, 결정에의 공정한 참여가 그 핵심적인 요소인데, 여기에 자유를 합하면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향유하고, 공동체의 결정에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참여함을 의미하는 것이니, 자유민주주의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할 뿐 방향성과 속도를 내포하지 않으므로 좌파/우파로 구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의 상태로부터 혁신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려 하면 좌파일 것이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느리게 변화하고자 한다면 우파일 것이다. 굳이 억지로 구분한다면 위키피디아에 의할 때 자유, 평등이 좌파의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자유민주주의자는 좌파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 나는 경찰관으로서 권한이 집중된 국가경찰제도보다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완전한 형태의 자치경찰제를 선호한다. 경찰기관이 정책이나 의사를 결정할 때 주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사구조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 검사의 직접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재량권 및 독점권,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없어지기를 원한다. 아마도 권한이 한 곳에 집중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이끌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인 듯하다. 어릴 적 군인이 되고 싶기도 했는데, 아찔하다. 따라서 경찰 권력구조와 수사구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체제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라서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회경제체제에 대해서라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자유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도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성과에 대한 합리적 분배, 노력과 근로에 대한 합당한 보상,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원한다. 사회 내의 불공평, 불공정, 불합리, 부당함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갑자기 뒤집어져 혼란해지는 것은 싫다. 경찰관에게 혼란과 무질서는 곧 바빠지는 업무와 위험을 의미하기에 싫기도 하지만, 그런 혼란 자체가 초래하는 불안함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 연금제도나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경제체제 문제에서 나는 우파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퉁쳐서 좌파 또는 우파라고 규정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 스스로도 내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 없고, 또 원래 그런 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책과 환경에 따라 좌파일 수도 있고 우파일 수도 있다. 이제는 좀 ‘좌파=진보=공산(사회)주의자’, ‘우파=보수=자유민주주의자’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그만 듣고 싶다. 들을 때마다 탱자의 떨떠름한 시큼함이 느껴진다. 나는 잘못된 말을 들으면 지적질을 하고 싶은 고약한 성격인데, 방송에서 그런 발언을 들으면 지적질 못하는 것이 매우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허리가 자주 아프다.  한 번 탱자가 된 귤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역진화가 가능할까? 도대체 이 탱자가 된 ‘좌파/우파’를 어떻게 귤로 되돌릴 수 있을지...
2019-07-16 | hrights | 조회: 1897 | 추천: 5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세상에 태어나 생의 삶을 다하면 고종명(考終命)에 이른다. 이순(耳順)을 지내고 칠순(七旬)에 이어 팔순(八旬)을 바라보면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내 생애를 아름다운 삶으로 고종명 할 수 있을 것인 가다. 인생은 출생도 중요하지만 생의 마무리를 잘해야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였다.  내 삶이 어느 사이에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을 보냈다. 반백년 전에는 고려장 감의 나이라 했다. 칠순나이를 인생 칠십 지금시(人生七十只今時)라고들 했었다. 수명이 늘어나 팔순을 넘어서 구순, 그리고 백수까지도 살아 계신 분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행복이 오랜 수명을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이라고 한다. 뜻하지 않은 지병으로 자주 병원과 치료약에 의존하여 생을 유지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장수가 아닐 터이다. 나이 들어도 자신이 스스로 해내는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고들 한다.  내 살아온 세월은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면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주변 패권주의 국가들의 징검다리처럼 여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터이다. 우리 선대들은 지난날, 치욕적인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조국의 광복과 해방을 염원하면서 모질게도 살아 왔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맞이한 광복은 바로 분단에다 이념갈등이 고조되었다. 아울러 남북분단이 계속되더니 결국은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치러 내야만 했다.   이런 세월에 그동안 나는 어찌 살아 왔는가. 돌아보면 일제 말, 태평양전쟁이 나던 해에 태어났었다. 어린 나는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어른들과도 함께했다. 이어3년의 미군정이 끝나고도 남북이 통일 된 나라가 아닌, 3.8선을 그은 분단 정부를 각각 세우고 말았다.  결국 분단과 좌우갈등은 계속되고 하나 된 민족의 통일정부는 요원하기만 했었다. 오직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정권을 세우고 말았다. 분단으로 인한 6.25 전쟁은 많은 동포들의 죽음과 민족 갈등을 가져왔다. 7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전쟁은 더욱 큰 아픔과 고통이었다. 아까운 목숨들을 잃고 참적의 세월을 살아가야 했던 남북의 동포들이었다. 또한 분단으로 인한 갈등으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상을 덧씌워 더욱 아픔을 안겨준 일들을 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전쟁과 분단이 남긴 아픔은 끝이 없었다.   또한 전쟁을 겪은 어린 나는, 6.25를 전후해서 우리 집의 장남인 22살의 맏형과 26살의 외삼촌 그리고 당숙들, 심지어는 머슴들까지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사실을 목도했었다. 인간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죽임을 당하고 또한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 1965년 1월에 군에서 제대 3개월을 남기고,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지원했었다. 당시 나는 그 위험한 전쟁에 어찌하여 명분도 없는 월남전에 지원하였는가? 오직 신원조회 통과여부와 경험을 위한 모험이라지만 더구나 용병이라는 사실에 곧 후회했었다.  그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참전할 용기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목숨은 하느님에게 맡기기로 했었다. 전후방이 없는 전쟁터에서 몇 차례 교전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참전 했었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왔지만 곧 후회를 했다. 우리 분단조국에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베트남에 통일을 방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을 이기고 통일을 이루어 냈다.  베트남 전쟁에서 귀국한 나는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의 꿈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분단을 허물기 위해서는 통일운동을 솔선해서 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북은 각 각 여러 방식으로 통일을 위해 줄달음 쳤지만 강대국들의 등살에 모두가 허사였다.  우리 남북에 초기에는 북진통일론에서 멸공, 승공, 반공, 무력, 심지어는 흡수통일론까지 폈지만 무리였다. 북 또한 6.25를 해방통일의 유일한 기회로 생각했다지만 착각이었다. 이로 인해 남북은 전쟁으로 인한 천만의 이산가족을 양산하고 말았다.  그동안의 통일방안에 종지부를 찍은 6.15 선언으로, 남북의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만이 한반도 통일방안이었다. 한 세대 전, 베트남의 통일을 무력통일이라 하지만, 사실은 민족통일이었다. 우리에게도 오직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이 주변국들과 함께 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사진 출처 - 서울교육  내 살아온 생애와 남은 삶은 오직 전쟁이 아닌 평화다. 과연 한반도의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통일이 언제 이루어질까. 73년의 지구촌 최장기 분단은 부끄러운 너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8천만 동포들이 우리소원은 평화통일이라고 간절히 노래하고 있지 않는가.  지난 73년 전, 맏형이 꿈꾸었던 하나 된 조국통일에 대한 여망을 팔순을 맞이할 아우가 부단히 진력하고 있다. 허나 우리 민족사에 아니 세계사에 길이 남을 통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분단으로 인한 슬픈 가족사가 있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내가 함께한, 효열 집안의 전효당 가훈을 실천하는 일도 내겐 중요하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삶의 끝자락은 가족들과 그리고 내 인연들의 건강하고 평화로운 고종명(考終命)이다. 그리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분단조국이 아닌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로 하나 된 조국과 민족이리라. 우리 남북 8천만 동포는 그 어느 때 보다 한반도 평화통일 기운이 서린다며 진정으로 통일의 그날을 꿈꾼다.    앞으로 많지 않게 남은 내 생애, 지구촌 세계 평화는 물론, 분단을 허물고 삼천리금수강산에 통일의 꽃이 만발하는 그날이 오기를 진정으로 소원한다. 한결같이 우리의 소원,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 우리 내 고종명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일 것이다.  분단조국 삼천리금수강산에 평화통일의 그날을 온 8천만 동포들이 기원한다.
2019-06-19 | hrights | 조회: 1154 | 추천: 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6월 3일, 지인이 올린 글은 5월 29일에 있었던 경찰대학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강사 당사자가 당하고 느낀 상황들, 그로인한 분노와 당혹감, 좌절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은 우리 모두는 역시 분노와 어처구니없음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당일저녁 TV 방송인 ‘스트레이트’에서는 ‘정보경찰’의 정권에 대한 무한 아첨과 아부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점에서 경로당까지 대중동향을 파악하고, 심지어 역술인의 점괘까지 동원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대응전략이 필요한지 까지 제시하며 정권유지를 위해 복무해온 경찰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한 정권의 모습에서 경찰이 다만 검찰에 비해 약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권의 독립, 경찰의 독립,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개혁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치안정책과정>의 ‘성 평등’ 교육장에서 보여준 그들의 행태와, 시민의 인권이 아니라 정치권의 권력에 아첨하는 모습은 경찰의 독립이나 자치제로의 변화는 성급한 것을 넘어 결코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지난해 혜화역 붉은 시위에서 여성들은 여경을 90%로 하라고 주장하였다. 현재 여경은 1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90%에 대한 요구는 그동안 경찰들이 여성문제 혹은 여성인권문제와 관련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보여준 편파적인 수사결과 때문이었다. 불법촬영이 이루어져도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와 여성인 경우에 대한 수사 과정이나 결과가 판이한 것에 대해, 결국 경찰들이 대다수 남성들이기 때문에 남성카르텔이 당연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남성에 대해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는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랜 관행을 깨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옳았다.  교육을 해본 이는 대체로 알 수 있다. 하나의 교육을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관련 자료의 수집, 분석, 현실 사례 발굴과 분석, 어느 땐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한 요구조사까지, 제대로 된 교육의 효과를 위해 많은 시간의 지적, 감정적, 신체적 노력을 기울인다. 교육생들과 어떻게 하면 같이 호흡하며 교육의 장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교육안을 만든다. 왜냐하면 인권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일방적, 소위 저금식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교육의 장, 교육의 과정자체가 인권이 발현되면서 상호 인식전환, 인권의식의 상승, 인권지식의 확장, 인권 고양의 장이 되는, 즉 교육자와 피교육자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교육의 내용과 결과를 구성해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5월 29일에 있은 총경(경찰서장)급 간부들이 보여준 성평등 교육과정에서의 ‘분탕질’에 대해 분노한다. 이는 기본 중에 기본인, 그리고 경찰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간/ 인권에 대한 예의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 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오만함이다. 결코 시민이나 국민의 인권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식한 행위와 태도일 뿐이다. 이러한 태도, 교육자를 무시하고, 토론을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이나 하고, 통계에 대해 시비를 걸며,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으로 교육자를 업신여기거나 항의하는 태도들은 분명히 혐오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혐오는 이들이 권력을 가진 자이자 권력을 가졌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혐오는 피권력자는 가질 수 없는 정동이다. 피권력자는 권력자의 혐오에 대해 분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경찰집단의 권력에 대한 오만함이자, 인권과 성에 대한 편견이다. 지난해 8월 경찰청에서 열린 성평등 감수성 교육 모습 사진 출처 - 경찰청 “누군가 뒤에서 ‘피곤한데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그냥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을 무시하고 토론 방법과 시간을 설명하고 조별 토론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조별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별 토론 시작을 알리는 순간, 15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 조별 토론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귀찮게 이런 거 왜 하냐’는 불평이 나왔고, ‘졸리다’, ‘자, 커피나 마셔볼까’라면서 우르르 자리를 이탈했다.” “이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50대 여자 박사인 강사와 그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성 평등이라는 주제 자체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강의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되었다.”  곧 경찰 최고 간부가 될 이들에게는 자신이 교육의 대상, 그것도 성 평등이라는 주제의 피교육생이 된다는 것, 나아가 여성이 강사라는 것, 여성박사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자격지심 등은 평소 이들이 여성과 여성들의 경험에 대해 얼마나 혐오적인 태도를 가졌는가를 보여준다. 혐오는 인권과 같이 갈 수 없다. 정보경찰이 정권을 위해 한 짓들이나 성 평등 교육에서 이들이 보여준 만행들은 경찰집단의 인권의식의 천박함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민갑룡 청장은 권고를 했다고 하지만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경찰대상의 성 평등 교육의 실태조사, 내실 있는 교육을 위한 지침마련, 나아가 지난 29일 교육에 참석한 이들의 진급제외 혹은 징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및 자치경찰제 도입이라는 개혁을 경찰집단이 원한다면 그에 맞는 행태들을 해야 할 것이지만 현재 이들의 모습에서 개혁이후의 경찰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거나, 여과 없이 드러난 이들의 행태에서 반 인권적, 반성평등적인 태도가 이들 집단의 문화, 관습, 관행이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대한 기대는 경찰집단 스스로의 이유와 원인으로 인해 점점 더 소원해질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이 감내해야 할 것이다.
2019-06-05 | hrights | 조회: 923 | 추천: 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정치는 이성적 행위다.  개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를 통해 생명을 얻어 현존한다. 어릴 때 부모의 보살핌이 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어느 누구건 간에 가족의 도움과 함께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개개인의 욕망의 형성과 실현의 부단한 변화와 발달은 철저하게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욕망 실현을 둘러싸고서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충돌을 제 스스로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이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자가 이성을 발휘하여 사회 전체적인 욕망과 이익의 충돌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데서 정치가 성립한다. 그래서 이성은 정치적 이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정치의 필요성은 욕망에 근거하지만,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은 이성에 근거한다. 정치의 필요성이 욕망에 근거한다는 것은 최대한의 실현을 원하는 개개인의 욕망들 간의 충돌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정치가 정치적 행위자의 개인적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정치적 행위의 원리적인 정당성은 이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현실적인 정당성은 법에 근거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절차의 한계를 규정한다. 그 한계는 각자가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하되, 그 노력이 다른 사람이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하는 기회와 노력을 저해하지 않는 그 접점에서 성립한다. 말하자면, 법은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호혜적인 욕망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그 조건으로서 어떻게 하면 공존 가능한 자유를 찾아 보장할 것인가를 성찰하여 규정하는 인간의 능력이 이성이다. 그러니까 법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해서 설립되어야 한다. 이에 이성은 법적인 이성으로 나타난다.  입법을 하는 정치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법이 이성이 명령하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반드시 사회적으로 혼란이 일어난다. 그런 만큼, 나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침범하고, 나의 욕망 실현을 위해 남의 욕망 실현을 가로막는 일을 합법화함으로써 서로 간의 대립과 충돌을 부추기고 정당화함으로써 힘을 통한 약육강식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사진 출처 - 구글 2. 이성을 벗어나 멍한 광기로  흔히들 개개 정치인들은 자신을 대표로 내세운 지역이나 단체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개개 정치인들은 각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 현실은 정부가 제시한 예산을 심의하는 데서 여실히 나타난다. 그리하여 각 지역이나 단체 심지어 개인마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공을 세운’ 정치인을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표로 피선된 개개 정치인은 선택된 순간부터 국가 구성원들 전체의 이익을 조화롭게 조율하는 이성적인 존재로서 중립화된다. 그래서 헌법 제7조 1항에서 모든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명기된 것처럼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로 정의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은 그가 사회적으로는 사인(私人)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오로지 공인(公人)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사인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적인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할 경우 일반 국민들의 범법 행위보다 더욱 엄하게 처벌되어야 마땅한 까닭이다.  정치인으로서 국회의원은 무엇보다 다른 국회의원들과, 특히 다른 정파에 속한 국회의원들과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 나는 본래 이기적이야.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하고서 강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한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국가 구성원 전체의 조화로운 이익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국회의원은 특히 그렇다.  정치인은 정치 행위의 결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개개 정치인이 과연 앞으로 어떤 정치 행위의 결과를 낳을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그동안 그가 과연 얼마나 어떻게 자신의 욕망 실현보다 다른 사람들의 욕망 실현을 위해 삶을 살아왔는가, 그리하여 그동안의 그의 삶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는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와 무관하게 오로지 미래를 향한 선전과 선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정파적이고 심지어 이기적인 감정을 분출토록 하여 일종의 왜곡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간단히 말해 사기꾼일 뿐이다.  정치적 사기꾼들은, 히틀러의 인종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선동 정치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철저히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숨겨져 있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그리하여 맹목적인 공격과 투쟁을 향한 동물적 본능을 자극한다. 우선 이성적인 근거 제시는 전혀 필요 없다고 여긴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주장을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는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세뇌의 과정이 진척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일신의 영달을 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모두 악하다고 여긴다. 그 악의 요인들을 가상적으로 집단화한다. 그렇게 집단화된 악의 세력을 현실 어디에서건 찾아낸다. 이제 그 악의 세력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객관적으로는 풍차를 적으로 여겨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신의 뜻을 실현하는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성한 행위로 여긴다. 정치적 사기꾼은 제 자신을 그렇게 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여기고 선전 선동을 일삼는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사기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적대적 관계의 해소다. 그래서 정치적 사기꾼은 이성적 인간을 두려워한다. 이성적 인식 능력으로써 적대적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불행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적시하고 실천적 이성 능력으로써 그 불행한 사실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들을 두려워한다. 두려워한 탓에 공격을 가하고, 공격하기 위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암암리에 퍼뜨린다. 그 술책으로 각종 이데올로기적인 기호와 상징을 만들어내어 마치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참다운 이성의 화신인 양 선전한다. 그리하여 억압되었던 이기적 본능을 분출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들을 끌어 모은다. 이기적 본능의 집단이 형성되고, 정치적 사기꾼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적대 세력에 의해 공격받아 위기에 처해 있는 희생자들이라고 느끼게끔 한다. 모인 자들은 집단적인 광분과 광기로 제 정신을 잃는다. 대체로 이성을 잃은 멍한 눈빛으로 개인성을 상실한 하나의 덩어리 집단이 된다. ‘끌어내려라!’, ‘죽여라!’, ‘목을 따 와라!’ 등의 극단적인 망언들이 넘쳐나게 된다.
2019-05-22 | hrights | 조회: 876 | 추천: 3
이 윤/ 경찰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나만 그렇게 오해했는지 몰라도 고등학교 시절 국민윤리 시간에 이 글귀를 보았을 때 ‘인간은 생각을 해야만 의미 있게 산다는 말인가? 건방진 말을 한 사람이군’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나중에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다스베이더가 ‘내가 네 애비다’라고 말하는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오답을 정답으로 알고 산 세월에 비례한 충격이었다. 아마 아직도 잘못 이해한 상태로 살고 계신 분도 많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하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 일신상의 문제가 되면 언제까지나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그 중 하나가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수사기관의 ‘구속’이다. 구속은 법에 의해 권한이 부여된 강제수사 중 가장 강력하다. 평소에는 구속이 무슨 뜻인지 왜 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 수 있지만, 나 자신이 구속된다면 갑자기 팔이나 다리 하나가 잘라진 것처럼 인생 일부가 무너짐을 느낄 것이다. 몇 달 전 친척분의 아들이 친구와 싸워서 상대가 다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혹시 구속이 될까봐 전전긍긍하시기에 구속까지 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어떻게든 구속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 구속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잘못으로 구속이 되더라도 엄청난 일인데, 내가 잘못이 없는데도 또는 잘못한 것은 있지만 구속까지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구속되어 가족과 격리되고 직장도 갈 수 없게 된다면 인생 막장 느낌에다가 억울함까지 추가될 것이다. 구속의 이유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재판 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형벌권이 원활하게 집행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재판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재판 이후에 형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죄 없는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당사자의 방어권을 제한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무죄판결을 받는 것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범죄혐의가 상당한 정도로 입증된 사람만이 구속의 대상이 된다. 즉 구속의 요건 중 ‘혐의의 입증’이라고 하는 요건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고, 피의자가 도망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야만 구속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필요적 고려사유로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 재범 위험성이 있지만 ‘고려’사유일 뿐이고 구속을 시키려면 결국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 수사를 직접 하였던 경험과 지금도 경찰서에서 영장심사관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의 원래 취지와 실제 구속을 다루는 형사사법체계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구속이 처벌이라는 오해  가장 큰 괴리감은 본래 목적과 달리 구속 자체를 형벌권 행사의 일부로 본다는 것이다.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저런 사람을 구속하지 않고 놓아주면 피해자들이 억울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마치 피의자가 무죄판결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러나 앞에 설명했듯이 구속은 재판에 피고인을 출석시키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형벌은 아니다. 나중에 유죄판결을 받으면 형을 선고받고 죗값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오해를 한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아마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할 경우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그 결과가 징역형이나 금고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범죄자에 대해 구속을 하지 않으면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낮고, 구속이 되어야만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사람들은 구속에 형벌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매일경제 뉴스에 의하면 검찰의 구속기소 비율은 감소하는데 법원의 법정구속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앞으로는 이런 오해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죄 지은 놈은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오해는 ‘죄 지은 놈은 구속된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죄 지은 사람들이 다 구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 명제는 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위 명제의 역인 ‘구속된 놈은 죄 지은 놈’도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죄를 지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단정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무죄추정의 원칙) 뒤의 명제가 꼭 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일로 인해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접하면 일단 그 사람의 죄가 인정되었다고 믿는다. 이후 재판에서 그 사람이 무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잘 기사화되지도 않거니와 기사가 나오더라도 사람들은 구속될 때만큼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때 정부의 구조 방기를 폭로하여 해경청장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던 홍가혜씨는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사를 잘 못해서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는 오해  ‘구속된 놈은 죄 지은 놈’이라는 오해로부터 다시 파생되는 오해는 수사기관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사람들은 수사기관이 수사를 잘 못해서 죄를 인정받지 못하였거나,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어서 기각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여부는 수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라든지 범인임이 인정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수사를 잘 해서 모든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입증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주거부정이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해주지 않는다. 반대로 홍가혜씨 사례처럼 구속 당시에 범죄혐의가 상당하여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하더라도 재판에 의해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 영장발부를 위한 법원의 심사는 정식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수사를 잘 못하였다거나 수사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범죄혐의가 미처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수사기관은 최소한 그 부분만큼은 많은 검토를 거치므로 빈번한 일은 아니다. 수사를 잘 하면 구속을 잘 시킨다는 오해  앞의 오해를 뒤집어 생각하면 수사를 잘 해야 구속을 잘 시킨다는 인식도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없어졌지만 예전 경찰에서는 특진 등 형사활동실적을 평가할 때 예를 들면 구속은 10점, 불구속은 2점과 같은 기준을 적용했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구속을 시켜 점수를 잘 받으려 했었다. 이런 기준은 수사를 잘 해야 구속을 시킬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증거수집을 잘 하고, 사건을 면밀하게 잘 검토하고, 피의자를 잘 신문해서 범죄에 대한 시인을 받으면 당연히 구속이 될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사를 잘 해도 피의자에게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 피해자 등에게 가해를 가할 우려, 재범을 할 우려가 없다면 구속을 하지 않는 것이 구속의 원래 취지에 맞다. 그것이 불구속재판의 원칙이다. 지금은 경찰에서 위와 같은 실적평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수사관들은 부서와 개인의 성과평가나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 힘들게 수사한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의자를 구속한 사건이 수사관에게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이라는 결과만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수사관들이 구속영장신청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런 기준은 수사는 열심히 하였지만 구속까지는 시키지 않은 수사관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하다. 관리자들이 구속이라는 결과보다 수사의 과정 자체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이런 경향이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누가 일을 잘 하였는지에 대한 완벽한 평가방법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의 성과에 대해 단순히 구속시킨 숫자로만 평가하는 것은 구속 많이 시킨 수사관이 일을 잘한다는 오해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20년 전 이야기지만 재산범의 경우 피해액 2천만 원 이상, 상해의 경우 전치 3주 이상이면 피의자 구속여부에 대하여 검사에게 지휘를 받으라는 기준이 있었다. 이런 기준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공식적인 것도 아니다. 위 기준 때문에 범죄로 인한 피해정도가 크면 다른 구속사유가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검사에게 사건을 보내 구속을 해야 할 것인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절차가 귀찮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보이는 피의자에 대해서 검사가 내 생각과 다르게 피해정도가 크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라는 지휘를 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데 아직도 이와 유사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 5월 1일자 세계일보 기사에 의하면 대검찰청 검찰미래위원회가 검찰의 구형과 구속 기준을 공개하라고 권고했으며, 기준의 비공개로 인해 검찰은 폐쇄적이고 자의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한다. 또 법조브로커 활동 및 ‘유전무죄’의 사법 불신을 키우는 데 검찰의 ‘깜깜이’ 사건처리가 원인이었다는 것이 미래위의 판단이라고 하였다. 위 비공개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예전과 같이 구체적인 피해정도가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면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예비재판처럼 될 수 있고, 경찰 수사관들로 하여금 피해정도가 큰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한다는 잘못된 태도를 갖게 할 수 있음이 우려된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례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구속이 되었고, 형사소송법상 구속의 필요적 고려사유에도 ‘범죄의 중대성’이 포함되어 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높은 처단형을 받을 것이 예상되어 도주할 가능성이 높으니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의 범죄행위가 중대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 경찰 수사관들도 잘 모르고 있다. 모든 범죄사건에 기계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기준이 있다면 공개하여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 그보다는 구속의 본래 취지에 맞게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도주하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명확하지 않으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차원에서 합당할 것이다. 구속을 수사의 도구로 여기는 오해  구속에 대한 가장 위험한 오해는 구속을 수사의 도구로 여기는 태도이다. TV나 신문에서 종종 ‘○○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이후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라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대한항공 조○○ 갑질사건, 드루킹 사건, 김학의 별장 성폭력 사건 등)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는데 왜 수사가 난항을 겪는지 의문이 생긴다. 구속을 수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범죄행위나 공범에 대해 잘 진술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 할 때 일단 구속시켜놓으면 술술 잘 진술할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도 구시대적이지만 수사기관에게는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구속의 이런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들이 입증하고 있지만 굳이 연구할 필요도 없이 누구라도 며칠만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한다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까지 진술할 마음이 생기게 됨을 알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생각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수사관들은 잘 풀리지 않는 사건의 피의자를 일단 구속시켜서 원하는 답변을 듣고 싶겠지만 자칫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수도 있으므로 가장 경계하고 피해야 할 태도다. 문제는 수사기관에 의한 구속영장 기각사건을 보도하는 언론과 그런 언론보도를 다시 수사의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수사기관에 있다. 언론이나 수사기관 모두 구속의 본래 취지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위와 같은 구속에 대한 오해들이 만연하다보니 범죄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를 봐줬다는 오해를 하기 쉽다. 수사관은 쓸데없는 오해나 그 오해에 의한 민원을 사지 않기 위해서 피해가 큰 사건이나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는 일단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검사가 청구하지 않아서 또는 판사가 기각하여 구속하지 못했다는 책임회피의 마음이 없지 않다. 그러다보니 수사과정에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죄를 지었는데 왜 구속을 하지 않느냐는 비난은 수사과정에서의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구속이 되어야만 징역형을 받는 것도 아니다. 불구속 재판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면 법정구속이 되기도 한다.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오해, 죄 지은 사람은 구속된다는 오해, 수사를 잘 하면 구속을 잘 시킨다는 오해, 큰 죄를 지으면 구속된다는 오해, 구속해야 수사가 잘 풀린다는 오해. 일상의 평범한 생활을 하는 시민들과 수사기관들이 구속에 대한 이런 다섯 가지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신도 약해질 것이다. 순수하게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재범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성에 대해서만 판단하여 피의자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 정도만큼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사기관 종사자들과 사건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사부터 구속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누구라도 신뢰할 수 있는 형사사법체계가 확립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사정기관을 장악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2019-05-15 | hrights | 조회: 1584 | 추천: 7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2019년 5월 3일, 수 천 명의 가자 주민들이 이스라엘과 가자 경계를 따라서 57번째 ‘위대한 귀환 행진’을 하였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과 12년 동안 계속된 가자봉쇄 종식을 요구하는 이 행진은 2018년 3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된다. 1~57번째 행진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행진 시위대 285명이 사망하고, 32,000명이 부상당했다.  같은 날, 이스라엘 외무부는 “2020년 1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무슬림연맹의 초청을 받은 유대-이스라엘 대표단이 사우디를 공식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공세적인 정책으로 곤경에 처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외면한 채, 트럼프의 기획, 소위 ‘세기의 협상’을 지지하는 등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19년 4월 21일, 카이로에서 개최된 아랍연맹 회의에서 사우디, UAE와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트럼프의 협상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였다. 대신 아랍연맹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으로 재정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매달 1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약속하였다. 앞서 2017년 12월 6일, 트럼프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한 2주 후에 압바스 수반이 사우디를 방문하였다. 이 때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압바스 수반에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트럼프 선언 및 세기의 협상’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운영 자금이 얼마인지 물었고, 압바스 수반은 매년 1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빈 살만은 압바스 수반에게 ‘세기의 협상을 수용할 경우, 그 대가로 10년에 걸쳐 10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지난해 11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요르단강 서안 지구 헤브론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밀고들어 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떠난 거리 곳곳에 이스라엘 국기가 걸려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이렇게 사우디 및 아랍연맹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운영 자금을 지원하도록 유도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속내는 무엇일까? 만약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해체된다면, 동예루살렘과 서안, 가자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약 500만 명 대한 관리 부담이 온전히 이스라엘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불가피하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대인들과 동등한 이스라엘 시민권을 부여하거나 강제로 축출시켜야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완전히 거부하면서, 유약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활용함으로써 인구적인 부담을 덜고,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과 미국이 압바스 수반에게 부여한 역할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완전히 포기하고, 동예루살렘 주권을 이스라엘에게 공식적으로 넘겨주면서, 서안에서 점령촌 건설 사업을 강화하도록 이스라엘과 협력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점령촌과 검문소 등으로 고립된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의 장에서 팔레스타인은 이미 국가로서의 지위를 얻었다. 팔레스타인은 2011년 10월 31일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었다. 이로써 유네스코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최초의 유엔 기구가 되었다. 게다가 2016년, 2017년, 2018년 계속해서 유네스코는 이스라엘이 유대교 성지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과 헤브론의 성지들에 대한 무슬림들과 팔레스타인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2011년부터 8년간 연회비(각각 850만 달러, 6억 1천 700만 달러)를 납부하지 않은 채로, 2018년 12월 31일 유네스코를 탈퇴하였다. 또 2012년 11월 29일,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위는 비회원 옵서버 단체에서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로 승격되었다. 게다가 2015년 4월 팔레스타인은 공식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회원이 되었다. 2017년 9월 20일 4개의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는 ICC에게 계획적 살인, 주민 추방, 점령촌 건설, 가자에 연안 천연가스 자원 채굴과 파괴 등 광범위한 재산 파괴와 전유 등 광범위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행위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요구하였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에서 무엇인가 주권국가로서 의미 있는 행보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트럼프가 내놓은 기획, ‘세기의 협상’은 주권국가로 발돋움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노력을 완전히 좌절시키는 행위다. 2019년 4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며, 수석보좌관인 재러드 쿠쉬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트럼프의 세기의 협상이 라마단이 끝나는 6월 초에 그 전모를 드러낼 것이며, 이 협상에서 ‘두 국가 해법’이라는 어구는 없다”라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이 협상안에 ‘팔레스타인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미 실행되고 있는 트럼프의 기획, ‘세기의 협상’은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들에서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박탈하는 반면, 이스라엘 주권을 부여하고,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다음과 같이 실행되고 있다. 트럼프의 기획, 세기의 협상 ▶ 2017.12.06. 트럼프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 선언. 2018.05.14.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 ▶ 2018.08.31. UNRWA(UN 팔레스타인 난민 기구) 분담금 지급중단 선언 : 미국은 UNRWA의 연간 예산 12억 달러 중 1/4이 넘는 $3억 5천만 달러를 분담해왔음. ▶ 2018.09.10. 미국무부의 PLO 워싱턴 사무소 폐쇄 선언 : PLO가 이스라엘과 직접적이고 의미 있는 협상을 추진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임. 이와 관련하여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팔레스타인인들이 ICC에 이스라엘을 제소했다고 비난하고, 미국은 ICC를 포함한 어떤 조직에게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제한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 ▶ 2018.12.31. 미국과 이스라엘 동시에 유네스코 탈퇴. ▶ 2019.02.01. 미국은 서안과 가자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모든 원조 중단선언 : 팔레스타인 보안대에 연간 6천만 달러가 넘는 지원금 중단. 이 자금을 받은 팔레스타인 보안대는 서안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협력. 팔레스타인 학생들에게 주는 정부장학금 및 원조 프로그램 지원중단. ▶ 2019.03.25. 트럼프의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주권’ 선언. ▶ 2019.04.05. 주변 아랍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 계획 폭로 :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원천 봉쇄 및 이스라엘 영토 확장 -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 100만 명에게 시민권 부여하고, 요르단 영토(Al-Baqoura, Al-Ghamr)를 이스라엘에게 양도할 것.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요르단은 450억 달러 외국 원조와 프로젝트 자금을 지원 받음. - 사우디는 요르단이 이스라엘에게 양도한 위 영토와 비슷한 크기의 사우디-요르단 국경지역 영토를 요르단에게 양도할 것. - 3자 연방구성: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서안), 이스라엘 서안 점령촌 행정부 - 레바논은 4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시민권 부여할 것. - 이집트는 가자지역 근처 시나이반도에 가자 주민들을 위한 공업지대 건설하고, 650억 달러 상당의 외국원조와 공업지대 프로젝트 자금을 지원 받음.  2019년 4월 29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리야드 만수르는 “우리는 트럼프의 평화계획, ‘세기의 협상’을 거부한다. 국제법, 유엔결의에 기초하지 않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들은 모두 불공정하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점령촌 건설 활동, 팔레스타인 주택 파괴, 팔레스타인 주민들 체포와 살해 등으로 팔레스타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만수르 대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이 국제법, 유엔결의 및 인권 존중에 토대를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게 국제법과 유엔결의 등을 지키라고 주장한다.  반면, 같은 회의에서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 대니 대논은 성서를 들어 올리면서 “구약 성서에서 신이 팔레스타인 땅 전부를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서안을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전 영토를 점령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대사의 주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권 주장은 성서 이외에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 및 세계 유대인들 조상은 대체로 8세기 중반에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이며, 구약 속 인물들과는 혈통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및 주요 아랍 국가들은 1967년 이스라엘 점령지에 이스라엘 주권을 부여하는 트럼프의 세기의 협상을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을 박탈하는데 협력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2019-05-08 | hrights | 조회: 1204 | 추천: 3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도 간다. 고희(古稀)를 10년 전에 보내고 희수(喜壽)를 지난해에 보냈다. 명년이면 팔순의 나이인데, 가는 세월 어찌 붙잡을 수 있을까? 지난 세월보다 짧은 여생을, 우리소원인 ‘분단조국 평화통일’을 기필코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  지나온 삶을 어찌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최선을 다했지만 후회도 많았던 삶이었다. 내 살아온 세월이 격동의 시대였기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삶이었다. 기쁘고 즐거움 보다 질곡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기만 하다.  한때는 혼돈의 시대에 잘못 태어났다고 치부해 버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안이하게 무료한 시간으로 허송세월 보내기도 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노력도 부족했기에 한없이 자괴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내 탓이었기에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허나 어느 때는 궤변도 더러 늘어놓았다. 시대와 조상을 잘못 만나서, 아니 운이 없어서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허나 진솔하게 생각해보면 게으름을 피우고 노력도 않으면서 남 탓이라 한다면 이는 궤변일 터이다. 어느 때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고 도전하여 결실을 거두는 일도 있었기에 후회와 보람도 있었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 전후에서 철부지였던 어린 나는, 맏형의 억울한 죽음과 혼돈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때 각인되었던 아픔의 세월이 성년이 되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스물두 살에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집안기둥인 맏형이 65년 만에야,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실로 오랜 세월 인고의 아픔이었다.  반백년 전, 나 또한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그때 파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참전 13개월 동안 전선 없는 전쟁터에서 생과 사 갈림길의 순간이었다. 삶의 귀함을 인식하고 분단국의 평화와 통일을 더욱 갈망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부역자 신원 조회를 이겨냈고, 둘째형이 인민의용군에서 또한 국군으로 참전한 전투에 부상을 입고 상이제대를 했다. 그 후 형의 세 차례의 선거로 집안이 기울어져 진학의 꿈도 접어야 했었다. 그러나 “배워야 하고 아는 게 힘이다”에 주경야독으로 학업에 임하였다.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할 뻔도 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도 잃지 않았던 순간이, 내 인생에 기로이기도 했다.  또한 집안의 슬픔은 열일곱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양할머니가 우리 8남매 손 자녀를 조산원처럼 척척 받아내고 양육하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양할머니가 열녀로, 부모님이 효자효부로, 나는 3남이면서 30년 부모님을 모셔 효열 3대가로 이어 왔었다. 8남매 중에서 내가 기준과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가문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풍비박산 집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런 사실들이 자화자찬처럼 느껴져 송구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자성하고 자책하면서 다짐하곤 했다. 과연 남은 세월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늘 생각했다. 지난 삶을 잘 이어가고 과오를 뉘우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삶이었다고 생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부족한 글쓰기에 다가갔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에 대한 흥미가 성년에 더욱 살아나면서 만학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 배우면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다. 욕심이 과했는지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글을 쓰는데 문학에서 소설과 수필을 쓰고 칼럼도 쓰고, 또한 서예 붓글씨도 어려서부터 쓰고 있다. 여러 분야 작품을 선보이지만 역시 부족하기만 하다. 많은 퇴고와 연마를 해야 하는데 시간 부족으로 미진한 작품을 내고 만다. 퇴고를 잘해야 했는데도 미진한 작품이 나오면 후회가 뒤따를 뿐이다.  항상 내 스스로 게으름과 서두르는 잘못을 저지르는 면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 나에게 다가온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조선반도 분단의 아픔을 어찌 치유하느냐? 는 무거운 주제였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말로나 노래만 하지 말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봉에 앞장서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진 출처 - 평화방송  나는 실천을 위해 평화통일에 진력하는 여러 단체의 일원이 되고, 간부가 되고 단체에 책임을 맡아야 했다. 분단 현실에는 일제에 36년을 지배당하고 해방이 아닌 분단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외세를 막지 못하고 이루어졌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인식한다면 우리 8천만 동포들이 외면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나라 잃은 설움에 32세 안중근 의사와 23세 윤봉길 의사가 계신다. 처자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정신을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윤봉길 의사는 내 윤문중의 형님항렬이다. 8․15 광복은 바로 분단으로 이어져 75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러만 갔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분단국가로 언제 평화통일의 그날이 올까? 필연코 우리가 이뤄내야 한다.  우리의 조국이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8천만 동포들이 분발해야 한다. 나는 지난 통일교육위원으로, 평화연대 등 재야단체 임원으로, 통준사 공동대표도 맡고 있지만 항상 부족하기만 하다. 비록 통일을 원하지 않는 동포나 그리고 주변 외세가 있어도 우리는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하지 않을까.  오랜 분단에 조국의 통일을 위해 희생되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오래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록 두 분 의사(義士)처럼 젊지 않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제 내 생애를 ‘마무리 잘하는 삶’은 정의 평화 통일의 길 일 뿐이다. 오랜 분단조국의 평화통일 보다 더 소중한 꿈이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최선을 다한 삶을 살면서, 나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 또한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우리 8천만 동포의 꿈이요 소원인, 한(조선)반도에 평화통일을 필연코 이뤄내야 한다. 그래서 평화통일 세상에서 살아가는 꿈을 자주 꾸고 있다.
2019-04-17 | hrights | 조회: 970 | 추천: 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올 해의 제주 4·3항쟁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제주도민에 대한 국가폭력으로서의 의미규정과 더불어 경찰총장의 사과가 있었다. 4·3은 다 알겠지만 신탁을 반대하는 제주도민에 대한 빨갱이 규정과 더불어 민관으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해 제주도민의 다수가 처형되거나 고문 받는 등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여전히 제주도민들의 가슴에 남아있고, 누군가는 피해자로서, 또 누군가는 가해자로서 이웃을 대해야 하는 도민들은 삶 그 자체가 고통으로 남아있다.  이에 앞서 3월 27일~28일에는 ‘제주 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가 열렸고, 28일은 제주 4·3 문학세미나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가 열렸다. 기조 강연은 ‘제주 4·3사건 진행 시 제주여성사회의 수난과 극복’을 주제로 『한라산의 노을』을 집필한 한림화 작가가 맡았다. 한림화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제주의 150개 마을을 직접 돌아다니며 모은 제주 4·3사례 중 여성들의 피해를 소개했다.  “4·3사건 진행 과정에서 공비로 의심되는 이들의 은신처 혹은 행방을 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족구성원, 특히 여성들은 무차별 성고문 당한 후 학살됐다. 그러한 학살을 두고 민관군경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대리사살=대살’이라는 명칭을 서슴없이 사용하면서 당연시했음을 확인했다.”며 “대신 죽이는 방법은 성고문 후 나무에 목매달아 서서히 죽이기,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고 죽이기 등 다양했다.” 특히 “제주여성 인권말살 현장 중에 직접적인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 즉 성고문에 대한 사례는 들어도 또 들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았다. 심지어 가해자들이 제주여성을 성노예로 삼은 예도 몇 건 있었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829, 제주의 소리 2019. 4. 10)  구체적인 사례들은 위의 사이트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국가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과 정치적 자율권을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주체이다. 국가는 권력형성의 주체로서 시민을 목적으로 하는, 법의 수립 및 권리의 정립이라는 목적이면서 동시에 시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과 권리를 유지, 보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가 목적이든 수단이든 그것은 시민의 권리라는 목적어가 존재함을 전제한다. 그러나 국가는 한편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적인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조직체’이자 스스로 판결하는 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가의 권력은 어느 때고 폭력으로 돌변하기 쉬우며 이에 대한 판결 또한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쉽다. 제주 4·3항쟁을 비롯한 부마항쟁, 광주 5·18 등의 진상이 뒤늦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주4.3평화공원 내에 설치된 ‘변뱅생 모녀상’. 작품 제목은 ‘비설’이다. 1949년 1월 6일 토벌을 피해 거친오름을 오르다가 여성 변뱅생(당시 25세)이 두 살 배기 딸을 끌어안고 죽은 채 다음해 봄에 발견됐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  여성신문  국가폭력은 다른 종류의 모든 폭력(저항폭력)을 불법으로 규정지음으로써 불법적인 폭력에 대한 엄단과 처벌을 주장함으로써 벌어진다. 공적인 자율권으로써의 저항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하는 국가폭력은 국민들의 사적 자율성에 대한 보호를 근거로 내세우며, 여기서 국민은 권력형성의 주체가 아닌 권리보호의 대상으로 추락한다. 시민의 자율성을 주장하지만 공적인 자율성 –저항권, 공론형성권-을 무시하는 국가권력은 폭력이 된다. 국민을 공적시민권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가폭력은 국민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을 국가의 호명에 반응하는 순응적 대상으로 만들고 길들이고 양육해야 하는 대상으로 볼 때 발생한다. 제주에서, 부산 ․ 마산에서, 광주에서 저항했던 시민들은 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국가의 부름에 반항하는, 따라서 폭력적인 계도를 통해 순종하도록 해야만 하는 존재로서 국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폭력과정에는 반드시 ‘여성화’, ‘성애화’의 과정이 진행된다.   “토벌대에 의한 제주도민의 수난은 집단적 성폭력의 양태로 나타났다. 겁탈은 말할 것도 없고 임신부와 출산중인 부녀자를 총살하고, 한 마을 사람들을 나체로 결집시켜 놓고 가족관계를 불문하고 남녀를 지목하여 강제로 성행위를 시키다가 총살하는...”(김성례. 1988)  이는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가할 때 이는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방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피해자들이 강간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를 통해 성폭력 여성 피해자들이 피해의 탓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자책 혹은 자기분노를 통해 국가폭력의 부당성을 가리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광주에서 계엄군에 의해 행해진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들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광주의 피해자 및 그 가족들 역시 수치심에 꽁꽁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드러나지 못했다.  국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또 국가는 상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서의 국가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수탈에 기반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으로서의 차별-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은 여전히 여성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위축하게 한다. 여성에 대한 만연한 폭력들이 서슴없이 자행되는 데는 그러한 아버지이자 상인으로서의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 배경이 있다. 내전이든, 전쟁이든 위기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성은 국가의 배임아래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국가폭력-시민권에서의 소외-이 여성에게는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권력이 도처에 있다면 저항도 도처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극악한 국가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위축되었던 희생자들은 이제 말하기 시작했고 끔찍한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듯이 여성들도 저항권을 행사 중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중의 저항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과정에 있다. 공적저항과 사적저항 두 가지의 바퀴를 굴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저항은 점차 세대를 이어가면서 확산되고 있다. 스쿨미투는 그러한 면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예다.
2019-04-10 | hrights | 조회: 963 | 추천: 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시장과 도덕  보통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해서 정치를 맡아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기대를 갖는다. 그 기대는 시민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곤궁함이나 억울함을 직접 해결해 주리라 믿지 않는다. 사회의 공공성에 입각한 바람직한 원칙과 법을 정치인들이 제대로 마련함으로써 그에 따라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리라 믿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의 공공성에 관련된 사회의 체제와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장과 도덕이다. 시장은 도덕과 무관하게 오로지 재화와 부의 배타적인 소유를 둘러싼 이익관계에 따라 작동한다. 그 반면, 도덕은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인격적이고 정신적인 호혜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작동한다.  사회의 공공성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합리성과 그에 따른 합의에 의해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공공성과 직결되는 사회적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합리성과 합의는 한편으로는 시장의 이익관계에서 성립하여 작동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도덕의 인격적인 상호관계에서 성립하여 작동할 수도 있다. 사회의 공공성 형성과 사회적 정의의 구현을 둘러싸고서 시장과 도덕은 대체로 길항작용을 한다. 그 강함과 약함에 있어서 서로 반비례하는 것이다.  사회의 공공성의 구축과 확대는 사회적인 정의를 보편적으로 실현하는 바탕이 된다. 올바른 정치는 사회의 공공성 구축과 확대를 통해 사회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정치는 시장이 요구하는 내용과 도덕이 요구하는 내용을 아울러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 여기에 정치의 딜레마가 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도덕을 멀리한다. 그런가 하면 도덕은 기본적으로 인격적인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시장에 대해 규범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정치는 그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공공성과 합리성은 철저히 계산에 입각한다. 그 계산은 투입 ‧ 지출되는 자본과 그에 따라 새롭게 산출되는 자본의 관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때 사회적 공공성은 자본 위주의 계산에 따른 예측이 얼마나 가능한가에 따라 그 범위와 강도가 결정된다. 말하자면 시장적 질서가 곧 시장에 의거한 사회적 공공성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합리성은 자본 위주의 계산적인 예측을 더욱 정확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만 작동한다. 그리하여 시장의 구도에서는 애초 진리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성찰적 합리성이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선험적 ‧ 초월적으로 그 본질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고래의 관점은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상호 주체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할 때 그 공동체를 통해 공공적으로 추구되는 의미와 가치에서 진리가 성립한다고 여긴다. 모두가 모두를 통해 자신의 삶을 최대한 긍정할 수 있을 때 그 의미와 가치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의 구조적인 체제 속에서 생산한 일체의 것들이 공공적인 가치를 지닌 재화로써 상품화되어 사회적 상징물인 화폐를 매개로 대대적인 연결망을 통해 교환되는 장소다. 문제는 시장이 온갖 다층적인 복잡한 연결망의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인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생산물이 제대로 된 값으로 교환되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으로 시장은 불신의 구도로 작동하고, 그리하여 누구나 자신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보다 실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라 여기면서 암암리에 박탈감을 갖는다. 말하자면 남들에게 더 많이 주고 남들로부터 덜 받게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지출하거나 기여한 몫에 비해 사회가 제공하는 편의의 정도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통해 수행하는 정치적 행위가 우선 목표로 삼아 추구할 것은 시장을 불신의 구도로부터 구출하는 일이다. 어차피 시장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시장을 통해 각자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되 사회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공정하게 자신의 정당한 몫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적 행위의 최우선 과제다. 이에 필요한 것이 보편적인 안목에 따른 성찰적 합리성이고 그에 따라 성립되는 도덕에 의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조정이다.  보통 시민들에게 시장은 너무나 복잡한 체계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시장을 통한 부의 획득과 누적 그리고 대를 이은 계승에 대해 사회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몫이 과연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는 소득세나 증여세 및 상속세의 비율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납세자는 부당하게 많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수혜자는 부당하게 적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장이 지닌 근본적인 불신의 구도는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넘쳐나도록 하고 그리하여 호혜적인 사회적 공공성마저 근본적으로 훼손하여 사회적인 불화를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호혜적인 사회적 공공성을 지탱하는 것이 도덕이다. 상호 신뢰가 없이는 도덕이 성립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남이 적건 많건 나의 이익을 부당하게 가로챌 수 있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한, 서로를 통해 성립할 수밖에 없는 인격의 상호인정과 그에 따른 도덕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2. 현실 한국정치와 도덕  서로의 정당한 몫을 보장하는 가운데 나의 정당한 몫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고, 그러한 정의로운 행동의 가능성을 잣대로 실제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도덕이다. 그리고 정치는 이러한 도덕에 바탕을 두고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드러나는 한국의 정치는 도덕과 아예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든 남의 몫을 빼앗아 나의 몫을 강화하려는 행태를 보이면서 정치적인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도덕에 의거한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을 구축 ‧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혹시라도 상대방이 그런 노력이 보일라치면 어떻게든 이기적인 권력욕에 의한 것인 양 변조시켜 비난한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정치적인 행태가 그러하다. 대대적인 폭력으로 사람들을 죽여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다음 정권을 찬탈한 세력을 비호하는 자신들의 행동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온갖 희생을 다한 끝에 그러한 세력을 몰아내고 겨우 형성한 민주주의가 법적으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당연한 양심적인 행동인 양 내놓고 과시한다. 이는 자신들의 정치적 혈통이 얼마나 무섭고 추악한 것인가를 제 스스로 증명하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그들의 전당대회의 모습에서 이러한 왜곡된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러한 자유한국당의 정치 행태는 정치에서 도덕이 실종되면 민주주의마저 어떻게 실질을 상실하고 그 형식만으로 심각한 폐해를 낳을 수 있는가를 여실히 입증해 보인다. 그런 정치적 혈통 속에서 자행한 온갖 무법적이고 파렴치한 무지와 악행을 민주적인 법과 절차에 의해 국가적인 권력으로써 처벌하는 일을 ‘폭압정치’로 몰아붙이면서 마치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신봉자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억울한 희생자인 양 국민을 호도한다. 그럼으로써 정치란 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 필요 충분한 목표인 양 하고, 그래서 시쳇말인 ‘내로남불’이란 말을 남발하면서 현 정권 세력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정치권력을 향한 야욕에 불타는 것으로 몰아붙여 그 왜곡된 판 위에서 무조건 현 정권의 정책들을 비난한다. 모처럼의 남북평화를 위한 노력마저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이를 위해 시장에서도 좀처럼 들어볼 수 없는 극단적인 감정적 망언들을 기염을 토하듯이 경쟁적으로 외쳐댄다.  사진 출처 - KBS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모든 국민들로부터 제거해 버리려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든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도록 함으로써 뒤죽박죽의 정치판을 만들고 그런 가운데 도덕과 아예 무관한 정치를 정착시킴으로써 그네들이 과거에 저질러온 비도덕적 ‧ 비합법적 행위들을 비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지도부의 주장들을 보면, 마치 정권을 잃어버린 탓에 현 정권에 의해 그들의 과거가 비도덕적이고 비합법적으로 부당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선전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의 핵심은 정치를 철저한 불신의 구도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구성하는 불신의 구도가 당연한 것인 양 자리를 잡게 되고, 상호 신뢰에 근거한 도덕을 바탕으로 한 사회 공공성이 무너지고, 사회 공공성에 의거한 법마저 권위를 잃게 되면서 법치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행위로 치부된다. 그리하여 법의 힘을 빌려 최소한으로 시장의 힘을 조정하고 나아가 도덕을 힘을 빌려 최대한 시장의 힘을 조정하고자 하는 정치 행위의 본질적인 가능성이 현저히 약화된다. 그 결과, 사회 공동체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넓고 깊은 국민 개개인의 삶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불신은 사회적인 불신을 낳고, 사회적인 불신은 개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한시바삐 정치를 불신의 늪에서 구해내야 하는 까닭이다. 정치적 불신의 구도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 불신에 의한 감정으로 정치에서 요구되는 성찰적 합리성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법을 도덕 위에 세우고, 그 법으로써 정치적 혼돈과 불신을 조장하는 세력들을 준엄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칼날 위에 선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한다. 
2019-03-13 | hrights | 조회: 1105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