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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되짚어본 이선균 보도…“그건 알권리 아니다”(24.01.0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1-05 10:55
조회
207

  • 수정 2024-01-05 08:42

  • 등록 2024-01-05 05:01


배우 이선균씨 발인식이 열린 2023년 12월29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차가 유족과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배우 이선균(48)씨가 세상을 떠난 지 약 일주일이 흘렀다. 이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석달 가까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세번의 공개 소환, 간이검사와 정밀감정이 이뤄졌으나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이씨는 마지막 대면조사를 받고 귀가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7일 세상을 떠났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경찰뿐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빙자한 무책임한 보도로 인격권을 침해한 언론이 이씨의 죽음에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레커’ 유튜버와 경쟁한 언론 


이씨에 대한 경찰 조사 사실은 지난해 10월19일 구체적인 혐의가 확정되기 전 경찰 내사(입건 전 조사) 단계부터 한 매체 보도로 알려졌다. 이튿날 이씨 소속사가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신문, 방송, 온라인 매체, 유튜브 채널 등에서 관련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약검사에 쓰인 체모의 종류까지 받아쓰는 보도가 이어지는 한편, 사안의 선정성을 부각하는 헤드라인이 줄을 이었다. 방송을 통해 사적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언론 전문가들은 제도권 미디어가 판단력을 잃고 유튜브 채널과 경쟁하며 과잉 보도를 해 혼란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는 이씨의 사적 전화통화 내용을 내보낸 한국방송(KBS) 보도를 언급하며 “소위 ‘사이버 레커’(온라인에서의 무분별한 이슈몰이 행태를 사설 구난차에 빗대 표현한 신조어) 유튜버만 욕할 것이 아니라 언론도 똑같은 것 아니냐는 대중의 배신감이 있다”며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사법적인 판단 전에 이미 언론이 이씨를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KBS)이 2023년 11월24일 ‘뉴스9’에서 이선균씨 관련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한 뉴스 화면. 한국방송 보도화면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지난달 29일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어 한국방송 보도와 함께 이씨 사망 전날(26일) 그의 혐의 사실에 관한 유흥업소 관계자의 경찰 진술 내용을 전한 제이티비시(JTBC) 보도, 유족 동의 없이 이씨의 유서 내용을 공개하며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위반한 티브이(TV)조선 보도 등을 짚으며 “반복되는 무책임”이라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유명인을 ‘망신주기 수사’로 벼랑 끝에 몰아넣고, 개인의 명예를 실추하는 무책임한 보도가 더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 알권리 아닌 단순한 호기심” 


과잉 보도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해당 언론사가 내세우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다. ‘유명 연예인의 범죄 혐의는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실체를 규명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리다. 지난달 10일 방영된 자사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에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라는 비판을 받은 한국방송의 해명도 같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인에 대한 알권리와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을 구분해야 한다고 짚으며, 언론이 이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연예인들은 미디어의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유명인의 사생활이나 범죄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호기심이지, ‘국민의 알권리’라는 기본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알권리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그 대상이 유명인이 아니라 공인이어야 한다. 공인이 자신의 직권·지위를 이용해 사회에 피해를 준 경우에 권력 감시의 관점에서 수사 상황을 알리고 보도하는 것이지, (이씨 사건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와룡공원 인근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이씨에 대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초빙교수(테크노컬처)는 “1970년대부터 한국 사회는 연예인을 마약 근절 캠페인의 모델로 삼거나 마약 범죄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이런 통제는 효과적이었다”며 이씨가 당한 곤욕이 역사적으로 반복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범죄자) 프레임에 말려들면 잃을 것이 많은 직종이 연예인이고, 그들은 변명도 할 틈 없이 희생당해왔다”며 “연예인을 표적 삼아 자극적인 보도를 해온 언론이 이제라도 가십 소비 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약한 연예인의 미디어 인권…자성 논의 지속해야


 여론 앞에 자신을 변호하기 어려운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도 무책임 보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부정적 이슈가 커지면 광고든 방송이든 바로 끊기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못 하게 말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력 20년이 넘는 한 배우는 “연예인이 사생활을 노출하며 돈을 버는 것도 맞지만,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전 국민이 파파라치가 되어가는 것 같다. 종종 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씨의 죽음 이후에 일부 언론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때뿐이다. 꾸준하게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도 포털을 검색하면 ‘이선균 추모’와 같은 열쇳말을 제목에 끼워 넣고 ‘클릭 장사’에 나선 기사를 볼 수 있다. 이씨의 사생활을 폭로하며 이슈몰이를 했던 일부 유튜브 채널도 여전하다.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무너진다”며 “혼란스러운 미디어 환경에서 언론 스스로 중심을 잡고 보도 행태를 돌아보는 논의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강수 남지은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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