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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뉴스공감] 권은정 작가 "이 책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말이죠" (CPBC뉴스,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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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6-27 09:56
조회
50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오창익의 뉴스공감>

○ 진행 : 오창익 앵커

○ 출연 : 권은정 작가 /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저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광주 대교구장을 지내셨죠. 윤공희 대주교의 책이 나왔는데 <북한 교회이야기>라는 책입니다. 윤공희 대주교께서 구술하시고 권은정 작가가 쓰셨는데요. 부제가 있네요. ‘하느님의 섭리, 그 안에 저를 맡기나이다.’ 이 책을 청취자 여러분께 권해드리고 싶어서 작가 권은정 선생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권은정 선생님은 전문 인터뷰 작가라고 소개해드리면 맞나요?

▶맞습니다.

▷윤공희 대주교님과 만나서 인터뷰를 하신 거고 내용을 쓰신 거죠?

▶집필 과정을 말씀드리면 제가 처음부터 인터뷰를 맡은 건 아니고 제가 앞에 8차례 인터뷰를 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제가 그걸 받아서 몇 차례 인터뷰와 집필을 제가 맡았죠.

▷윤공희 대주교님을 만나러 광주에 가셨겠네요.

▶서너 차례 갔고 제가 그분을 뵙게 작년 9월인데 빠른 속도로 얼마 전 부활 직전에 책이 나왔어요.

▷만나신 건 실제로 얼마나 만나셨습니까?

▶제가 서너 번 뵀어요.

▷한 번 뵐 때마다 대략 얼마 동안 인터뷰를 했나요.

▶1시간 정도 말씀 나눴습니다.

▷윤공희 대주교님이 1924년생이잖아요. 예전에 세는 나이로는 백수라고 해서 일백 백에 일 자를 빼면 흰 백 자 백수.

▶올해 99세.

▷이런 구술에 지장이 있거나 하지 않았나요.

▶너무 놀랐고 그분을 뵈러 간 모든 분들이 놀라요. 굉장히 정정하시고 도대체 한 세기를 사시는 분이 어떻게 저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하신지.

▷옛날 얘기에 대한 기억력도 정확하신 건가요?

▶기억력은 저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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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고마운 얘기네요. 이를 테면 이 책을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어린 시절 얘기, 1930년대 얘기를 하시잖아요. 어렸을 때 진남포 성당의 학교 다닌 얘기 어떤 친구가 있었다는 얘기도 하는데 이런 기억들이 머릿속에 남아 계신 거네요.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고 제가 이번 책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건 초고를 드리면 교정을 직접 해주시는데 빨간 볼펜으로 아주 상세하게 아주 디테일하게.

▷예를 들면 세례명이 틀렸다, 연도가 틀렸다 이런 거요.

▶시간, 장소, 문맥상 정확한 표시까지 다 지적해 주셨어요.

▷훈련의 결과인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타고난 건지 엄청나신 분이네요.

▶저는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살면 저렇게 되나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윤공희 대주교님은 청취자 여러분들도 많이 아시겠지만 비극적인 1980년 5월의 광주의 교구장이기도 하셨고 평양교구출신인데 청취자 중에 젊은 분들은 윤공희 대주교님이 낯설 수 있어서 소개를 해 주신다면요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1924년생이시고 거의 100세 한 세기를 살고 계시는 교회 안에 가장 큰 어르신인데 최고 성직자시죠. 대주교시니까. 광주대교구장 역임하시고 지금은 광주가톨릭대학 주교관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계세요.

그런데 이분이 훌륭하신 건 뭐냐 하면 책에도 나와 있지만 1924년에서 그 이후 북한에서의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그 이야기를 남한에 오셔서 당신의 바탕이 되시도록 잘 일궈 오시면서 한국 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하셨다는 거죠.

그게 굉장히 추상적인 그분에 관한 것이고 1963년 39세에 바오로 6세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으셨어요. 63년이라고 하면 바오로 6세라고 하면 우리 교회 안에서 굉장히 먼 시간이죠. 그리고 바티칸공의회 1, 2, 3, 4차를 다 제2차 바티칸 1, 2, 3, 4회기를 다 참석하셨어요.

▷처음에는 신부로서 하셨고 그다음에 주교가 돼서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하셨던.

▶그다음에 수원교구장. 1963년. 수원교구를 맡으면서 서울대교구의 교구장 서리를 잠깐 맡으셨다가 그다음에 광주 대교구장을 맡으셨죠.

▷광주대교구장이 되신 게 1973년인데 73년에 태어나신 분이 우리 나이로 50이니까 정말 역사죠.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어머니가 명동성당 신자셨는데 1950년 전쟁 나던 해에 윤공희 신부님 당시 사제서품 받고 명동성당 보좌로 부임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의 신부님이니까 정말 까마득하게 여겨져요.

▶내일이 6.25잖아요. 72년 전에 6.25가 발발했는데 그 당시 윤공희 신부님은 사제서품 받고 두 달 뒤 명동성당 보좌 신부로 일하셨어요. 합창단도 맡으시고 개성 그때는 국민학교, 교리교사로 일하시고 했는데 그때 6.25를 맞으셨어요.

▷6.25때 한국전쟁 때 신부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는 것도 놀랍지만 그때의 일을 아주 정확히 기억하시고 빨간펜도 해주시고 새로운 책을 내게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정말 꼭 소개 시켜 드리고 싶어서 했는데 주로 작업을 의정부 교구에서 많이 작업을 했어요.

▶왜 의정부교구에서 나왔나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 여기서 상세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의정부교구에 교구장이 이기헌 주교시거든요. 이분이 평양교구 출신의 마지막 세대, 막내.

▷이기헌 주교님은 평양교구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3살 때 엄마 품에 안겨서 월남을 하신 거예요.

▷태어나시거나 아기 때 평양교구셨다.

▶평양교구 출신의 성직자라고 할 수 있죠. 이 프로젝트도 이기헌 주교님께서 시작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이기헌 주교님께서 주교회의 안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9년간 맡으셨더라고요.

▷민족, 화해, 일치, 통일 이런 걸 고민하는 주교회의위원회죠.

▶9년간 맡아서 일을 하시면서 누구보다 남북 간 교류와 이런 거에 생각이 많으셨겠죠. 특히 왜 윤공희 대주교님의 책을, 그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했는지 생각하면 가족 간 평양 계실 때 상당히 가까운 사이셨죠.

그러니까 이기헌 주교님한테 윤공희 대주교님은 마치 삼촌 같은 정이 느껴진다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이기헌 주교가 3살 때 윤공희 대주교님 형님이 평양에서 의사로 일하셨는데 이기헌 베드로 아기가 거기 가서 폐렴치료를 받은 적이 있대요. 그리고 부모님들도 굉장히 가깝게 지내셨고 그래서 같이 월남한 성직자로서 유대가 있으신 거죠.

▷교구는 달랐지만 어렸을 때부터 윤공희 신부님 또는 윤공희 주교님을 보면서 자라난 세대군요.

▶그리고 특히 이기헌 주교께서는 평양교구 출신의 마지막 막내로서 윤공희 대주교님의 북한 이야기를 오늘날 남한에 있는 신자들한테 들려드리고 싶은 것이고 이 책이 윤공희 대주교님한테는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으신 거죠. 그래서 의정부교구 안에 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구술사 프로젝트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천주교 교구가 많은데 의정부교구에서 하는 연구소 이름이 동북아평화예요.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는데 어떤 취지인가요.

▶의정부교구에 참회와 속죄성당 거기를 가 보시면 의문이 다 풀려요. 참회와 속죄성당이 2013년에 완공돼서 성모님께 봉헌됐는데 6월 25일. 마침 오늘이 하루 전인데 굉장히 의미가 있는 시점인데 거기 가 보면 멀리 임진강 너머로 황해도가 보여요.

누가 거기서 남북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리 민족의 고통이나 상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거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남북한 교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의정부교구가 그런 큰 고민을 떠맡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정부교구가 위치한 곳이 남북 접경지역이라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겠군요. 성당 이름이 참회와 속죄. 그동안의 전쟁, 분단, 서로 미워하고 갈등했던 것에 대해서 참회하고 속죄한다는 뜻이네요.

▶전 교황님이 전 대사 출신인, 성지순례자들한테 굉장히 인기가 있는 곳이라고 해요. 거기 가면 실제로 건물이라든가 그 안에 내부 장식들이 남북한의 협조로 이뤄진 거라고 합니다. 그 안에 모자이크가 북한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제작돼서 우리한테 왔다고.

▷분단 상황에서요? 극적인 성당이네요.

▶2006년 그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어디 있습니까?

▶파주에 있습니다. 그런데 건물도 굉장히 특이해요. 그게 당시 북한 지역에 있던 초대 건물 양식이거든요. 기와양식의 순수한 우리.

▷윤공희 대주교님이 다녔다는 진남포 성당과 비슷한. 의정부교구에서 큰일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청취자들 중에 신자도 있고 신자 아니신 분들도 있는데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책 제목이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 일반 서점에서 파는 거죠? 교보, 알라딘, YES24이런 데.

▶교보에서 팔고 가톨릭 서점에게도 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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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은 할 수 있을 텐데 왜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설명을 하시면요.
▶저는 사실 이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좋은 시간을, 그리스도인으로 말하자면 은총의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글 쓰는 게 은총의 시간은 아니고 고통스러운 시간이고.

▶저는 이 초고를 제가 거의 두 달 반 만에 완성했어요. 이게 지금 300페이지가 넘는데 원고지 한 1000매가량 되는데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제가 작업을 마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워했어요.

그리고 고3처럼 했다고 표현하는데 밥 먹는 시간 빼고 이 일에 매달렸거든요. 초고를 해서 윤 대주교님께 드리고 어떻게 저한테 반응을 하실까 어떤 대답을 주실까 두근거리면서 기다렸을 때 원고 초고를 받으러 갔을 때 제 손을 잡으시면서 수고 많았다. 정말 눈물이 났죠.

▷우리들은 왜 봐야 하는지.

▶한국 교회를 성모님께 바친다고 기도할 때 많이 말하는데 그러면 남한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남한만 잘 봐달라고 기도하진 않을 거란 말이에요. 우리 교회라고 할 때는 남북한 교회인 거죠. 지금 우리가 북한 교회에 대해서 뭘 알고 있고 덕원신학교 우리가 북한 교회에 대해서 피부로 뭘 느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할 말이 별로 없을 거예요.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런데 윤공희 대주교님의 <북한 교회 이야기> 책은 북한에서 나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소신학교를 보내고 덕원신학교를 다니셨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사제의 꿈을 가지고 하느니께 의탁하며 지냈던 맑은 순수한 그러니까 열정에 사로잡힌 청년 윤공희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고 당시 북한 교회, 북한 가톨릭신자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그걸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거는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그런 거하고 전혀 상관없이 우리가 북한을 왜 우리의 한 형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그걸 좀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윤공희 대주교님이 신학생일 때 신부가 되기 직전에 피난을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에 평양교구를 비롯해서 북한 교회는 탄압을 받았죠.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게 된 거고 생사가 불명인 분들도 많고 그래서 북한교회는 사실상 없어지다시피 한 거 아닌가 싶은데. 물론 평양의 장충성당이라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우리 가톨릭신자들이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순교를 만들어 버린, 가해자이기도 한데요. 북한당국은.

▶그걸 남북한의 정치적인 거로 보자면 우리는 과연 화해와 용서, 그 손을 쉽게 내밀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그 북한의 동토의 땅에 알에서 숨 쉬고 있는 신자들의 기도 소리를 떠올려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윤 대주교님하고 이 책 작업을 할 때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주교님 생각도 그렇고 듣는 저도 그렇고 지금 분명히 북한, 어떤 지역에서 분명히 묵주 알을 굴리면서 성모송을 바치는 신자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침묵의 교회가 있다.

▶사실 북한 교회를 침묵의 교회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침묵보다 더 큰 소리가 있을까요. 침묵이라는 게 소리 없음이 아니고 소리가 잠겨 있는 거예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노래도 있는 것처럼 그 침묵이 터져 나오면 그 어떤 함성보다 크다는 거죠. 그래서 북한교회에서 우리가 박해, 200년 동안 교회가 박해에 시달렸죠. 그런데 우리 지금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잖아요. 지금 6.25 발발 한국전쟁 발발 72주년 그런데 100년도 아직 안 됐어요. 저는 이 시기를 뚫고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북한 지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너무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남한 교회의 신자들은 북한 교회의 신자들에게 미안함, 송구함 이런 걸 가지고 뭐라도 작은 역할이라도 찾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서울대교구에서 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하나씩 갖기’ 운동도 하고 그런데 평화에 대한 우리 열망을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게 아닌가. 저는 그게 우리가 반드시 종교가 정치하고 사회 동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평화라는 건 종교 안에서 말하는 평화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안에서 평화를 말하는 거죠. 그때 우리 종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청취자 여러분들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꼭 구해서 읽어보시고 읽어보시면 느낌이 있을 텐데 그 느낌을 형제자매들과 나누시고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요. 권은정 작가님의 작업이 보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원문보기: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826685&path=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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